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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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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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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목차

1. 모잠비크의 국기, 아프리카의 5색・ ・ ・6 2. 인도양은 모잠비크의 호수・ ・ ・8 3. 마푸토, 인도양의 진주・ ・ ・10

4. 모잠비크, 그렇게 덥지 않다며?・ ・ ・13 5. 모잠비크의 Wildlife・ ・ ・16

6. 모잠비크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나?・ ・ ・19 7. 모잠비크는 이슬람 술탄의 이름이었다고? ・ ・ ・21 8. 세계 제2의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 ・ ・23

9. 모잠비크의 먹거리・ ・ ・25 10. 모잠비크의 보물들・ ・ ・26 11. 모잠비크의 산업 구조・ ・ ・32 12. 모잠비크의 역사・ ・ ・38

13. 모잠비크 경제, 점핑 점핑!・ ・ ・49 14. 성장중인 언론 보도・ ・ ・50 15. 높은 교육열・ ・ ・53 16. 모잠비크의 보건・ ・ ・57 17. 독특한 문화예술・ ・ ・58 18. 모잠비크, 여기 가볼까?・ ・ ・60

19. 에우제비우, 아프리카의“흑표범”・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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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모잠비크의 국기는 1983년 5월 1일에 채택된 것으로 1975년 독립당시 사용되었던 5색 무늬의 국기에, 모잠비크 문장이 삽입되었다.

다섯 가지 색과 네 개의 문양이 상징하는 바는 아래와 같다.

모잠비크 국기 변천사를 보면 모잠비크가 포르투갈로부터 해방되면서 삼색기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잠비크 국기 변천사>

모잠비크뿐만 아니라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국기에서는 팬아프리카 컬러(Pan-African Colours)인 초록, 검정, 노랑, 빨강, 하얀색이 자주 등장한다.

모잠비크의 국기, 아프리카의 5색

0 1.

다섯가지 색 네개의 문양

초록색 울창한 산림과 비옥한 토지 별 독립, 희망, 신세계

검정색 아프리카 대륙과 국민 책 교육, 면학

노란색 풍부한 에너지・광물자원 괭이 생산, 근면, 농업 빨간색 독립 투쟁 때 흘린 피 총 자유를 위한 투쟁 의지

하얀색 평화

마지막 포루투갈령

동아프리카 국기 1974.9.5-1975.6.25 1975.6.25-1983.4. 1983.4.-198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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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의 문장은 1990년대 다당제 도입 이후 채택되었으며, 국기와 동일한 초록, 노랑, 빨강, 검정, 흰색이 주조를 이룬다. 중앙의 톱니바퀴는 노동을, 옥수수 줄기는 농업과 자연을, AK-47총은 자유 쟁취를 위한 불굴의 투쟁 의지를 상징한다.

‘팬 아프리카 컬러’는 공식 용어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국기에 자주 등장하는 초록, 노랑, 빨강색을 의미한다.

현재 베냉, 세네갈, 카메룬, 토고, 콩고, 기니, 부르키나파소 등 약 19개의 국가에서 자국의 국기에 팬 아프리카 컬러를 사용하고 있다.

tip!

팬아프리카 컬러(Pan-African colours)

가나 세네갈

기니 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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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의 가장 큰 지형적 특징은 인도양에 접한 총 2,470km에 이르는 긴 해안선이다. 아프리카 내륙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를 가진 이 지역은 10세기 이전부터 아랍,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상인들과 중남부 내륙 지역의 아프리카 부족간 교역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에도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풍부한 에너지・광물 자원의 수출 경로로 각광받고 있다.

모잠비크는 현재 3,000km의 철도와 30,000km의 도로, 460km의 수로를 보유하고 있으며, 모잠비크

정부의 적극적인 외자유치, 원조자금을 활용한 인프라 관련 투자 확대로 그 지정학적 가치가 점차 증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특히 모잠비크의 최남단에 위치한 수도 마푸토는 동부아프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도시 중 하나로, 연간 2천만톤의 물동량을 처리하고 있으며,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인도양의 물류 허브로 급부상 중이다.

인도양은 모잠비크의 호수

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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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마푸토항의 이모저모

마푸토항은 1850년에 설립되어 남아공, 스와질랜드와의 교역 중심지로 기능하다가 1895년 남아공의 수도 프레토리아로 연결되는 철도가 생기면서 광물자원 수출항으로 급격히 성장하였다. 이에 그 당시 수도였던 모잠비크섬을 대신하여 마푸토가 새로운 수도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20세기 초 마푸토항은 안정적인 성장을 거듭하며 유럽, 중동, 인도 등 다양한 국적 선박의 안착지가 되었다. 1975년 모잠비크의 독립과 함께 포르투갈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으나 1992년 내전 종식 이후 다시 급성장하여 모잠비크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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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푸토는 모잠비크의 수도로 모잠비크 제 1의 도시이다. 포르투갈 식민통치 시절에는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발견했던 포르투갈의 상인의 이름인 로렌소 마르케스(Lourenco Marques) 라고 불렸다.

마푸토는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 사이에 케이프타운이나 리오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한 때 내전을 겪으면서 도시가 황폐해진 적도 있었으나, 점차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마푸토에는 1910년대에 건축한 기차역도 있는데, 대리석 장식과 거대한 동판 지붕을 갖추고 있어 마치 거대한 궁전처럼 보인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마푸토에는 공산주의 이론가, 좌파 지도자들의 이름을 딴

거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푸토에서 길을 물으면, “칼 마르크스 거리를 따라서 쭈욱 가다가, 마오쩌둥 거리에서 우회전하고 레닌 거리에서 좌회전한 후 체 게바라 거리로 들어서면 있어요.”라는 식으로 재미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이 중에는‘김일성 거리’도 있다.

마푸토, 인도양의 진주

0 3.

¸

마푸토 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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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은 모잠비크 혁명 영웅들을 기리는 장소로서, 모잠비크의 얼이 서려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리석 재질의 별 모양 구조가 특징적이며, 중앙부에는 혁명 영웅 에두아루도 몬들라네(Eduardo Mondlane),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국민 시인 호세 크라베리나(Jose´ Craveirinha)가 안장되어 있다.

내부에는 모잠비크의 유명한 화가이자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말랑가타나가 1975년 독립당시 제작한 95미터 길이의 벽화가 유명하다.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매년 2월 3일‘영웅의 날’에만 개방하고 있으며, 그 외의 날에 광장에 진입 혹은 관람하고자 할 때에는 공보실(Bureau de Informaca˜o Pu´blica)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내부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tip!

마푸토 국립현충원

¸ 모잠비크 독립의 아버지이자‘아프리카의

체게바라’로 불리는 사모라 마셸 대통령을 그린 벽화

현충원에 혁명 영웅을 그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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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마푸토 시청(The Municipal Council Building)

브라질 건축가 캔들(Franz Kandl)과 포르투갈 건축가 텍세이라(Francisco dos Santos Pinto Teixeira)가 참여하여 1914년부터 1945년까지 31년에 걸쳐 지었다. 전통적인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정면은 이오닉 및 고린식 풍의 디자인이 차용되었다.

※ 이오닉 및 고린식 양식은 고전주의 양식 (이오닉, 도릭 및 고린식) 중 하나로서, 각각 기원전 6세기 및 기원후 2세기 그리스에서 비롯되었음.

외벽을 겹으로 처리하여 방음, 방열, 방습의 기능을 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이 특징이며, 아름다운 외관 및 독립광장을 정면에 둔 구조로 인하여 다양한 문화 행사의 배경으로도 쓰이고 있다.

시민들에게는‘궁전’(The Palace)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현재 시의회 및 시청으로

2012년 김황식 총리 모잠비크 현충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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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잠비크의 지형

모잠비크의 국토는 한반도의 3.6배인 약 80만 평방킬로미터로, 해안선을 따라 남북으로 띠 모양을 이루며 펼쳐져 있다. 국토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잠베지강을 경계로 크게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모잠비크, 그렇게 덥지 않다며?

0 4.

tip!

‘모잠비크의 대동맥’잠베지(Zambezi)강

잠베지강은 아프리카에서 4번째로 긴 강이며, 아프리카로부터 인도양으로 흐르는 가장 큰 강이다.

‘큰 수로’, ‘위대한 강’이라는 뜻을 가진 잠베지강의 유역 면적은 1,390,000㎢이며, 길이는 2,574㎞에 이른다. 앙골라, 잠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를 거쳐 모잠비크를 가로지르며 인도양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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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의 대부분은 평지이며, 약 2,500km에 달하는 긴 해안선을 따라 야생의 매력을 간직한 모래 해변이 끝없이 펼쳐진다. 해안 지대의 평야에는 중부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잠베지강, 림포포강 등 수많은 하천들의 하구가 분포하고 있어 늪지대를 형성하며, 사탕수수, 면화 등 농사에 적합한 비옥한 토양을 제공한다.

한편, 북부와 서부의 탄자니아, 잠비아, 말라위 국경 부근을 따라 해발고도 200~600m에 이르는 고원지대가 병풍처럼 펼쳐져 자연적인 경계를 형성한다.

동남부 지역에서는 짐바브웨 국경 지대에 위치한 해발고도 2,438m의 빙가산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해발 200m이하의 평지이다.

유량의 계절적 변동은 비교적 적으며, 급류가 있기 때문에 내륙 수로로서의 이용가치는 적으나, 급류를 이용하여 대규모의 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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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잠비크의 기후

모잠비크는 적도에서 가까워질수록 고온다습한 열대기후가, 남부로 내려갈수록 온난습윤한 아열대 기후가 나타난다. 북부 탄자니아와의 국경 부근에서는 전형적인 적도의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모잠비크의 계절은 4월~10월의 건기와 11월~3월의 우기로 구분된다. 우리의 겨울에 해당하는 6월과 7월에는 기온이 15~23도로 생활하기에 쾌적하나, 남부 해안지역의 경우 가뭄의 피해를 입기도 한다.

여름에 해당하는 11월~3월의 기온은 약 25~34도로 해안지대에서는 폭풍, 해일 등의 대규모 자연 재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연평균 강우량은 북서부 고지대 1,420㎜, 남동부 500~75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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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에는 육・해・공의 다양한 동・식물종이 서식하고 있어 마다가스카르와 더불어 인도양 연안 동부아프리카 지역 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모잠비크 정부는 니아사(Niassa) 동물보호지역, 고롱고사(Gorongosa) 국립공원 등을 지정하고 UNESCO 등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생물다양성 보존에 힘쓰고 있다.

모잠비크의 Wildlife

0 5.

Naissa 동물보호지역 / Gorongosa 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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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고롱고사(Gorongosa) 국립공원

성경 속 대홍수 때‘노아의 방주’가 도착한 땅으로 알려진 고롱고사 국립공원은 모잠비크의 심장부로서 대아프리카 열곡(Great African Rift Valley)의 남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절경이 무척 유명하다.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성분의 토양, 산림지・사바나・목초지 등 세 가지 식생, 계절성 홍수 및 침수가 고롱고사만의 다양하고 독특한 생태계를 탄생시켰다. 고롱고사에서만 발견되는 동식물이 있을 정도로 놀랍도록 다양한 동물이 서식하고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하지만, 1977~1992년 약 100만명의 희생자를 낸 잔혹한 내전에 휘말리면서 고롱고사의 생태계 역시 처참하게 훼손됐다. 굶주린 병사들이 고기를 얻고자 야생 동물의 95%를 마구잡이로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내전이 끝난 후, 검게 들판을 물들이던 14,000마리의 들소는 고작 15마리만 남았고, 3,000여 마리였던 얼룩말은 5마리만이 남았다. 먹잇감이 사라지자 치타, 표범과 같은 대형포식자도 자취를 감추었다. 사자는 500여 마리 중 5마리만이 남았다.

Gorongosa 국립공원 입구

고롱고사 국립공원 헬기에서 본 고롱고사 국립공원 전경

(20)

이에 모잠비크 정부는 2004년부터 미국인 사업가 그렉 카(Greg Carr)가 세운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Carr 재단과 함께 고롱고사 국립공원 생태계를 복원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첫 단계로 초식동물을 이주시키고, 이들이 안전하게 번식할 수 있도록 강력한 밀렵 방지책을 폈다.

잃어버린 낙원을 찾기 위한 환경보호론자들의 노력 덕택에 코끼리와 하마를 시작으로 버팔로, 치타, 얼룩말, 사자 등 야생동물들이 점차 고롱고사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인간에 의한 파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인근 주민들을 위해 학교와 보건소도 세우고 지역 공동체에 혜택을 줄 수 있는 환경관광 산업을 발달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Greg Ca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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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잠 비 크 인 구 의 99.66%가 반 투 어 계 (語 系 )의 아프리카인이며, 낮은 비율이지만 유럽인(0.06%), 유로아프리카인(0.2%), 인도인(0.08%)도 있다.

모잠비크는 총 16개의 종족으로 구성되는데, 지리적 구분과 비슷하게 잠베지강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뉜다.

북쪽은 모계사회로서 주로 유목이나 이동 농경 생활을 하고, 남쪽은 정착 농경 생활을 하고 있다.

최대 종족은 인구의 약 40%를 차지하는 마쿠아 (Makhuwa/Makua)족으로 잠베지강 북부를 중심으로 거주한다.

모잠비크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나?

0 6.

마쿠아족 엄마와 아이

총가족 전통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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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타 종족으로는 마콘데족(북동부), 냔자족(북서부), 야나족・마니카족(중부), 총가족・샹가나족(남부) 등이 있다.

(23)

모잠비크의 3대 종교는 카톨릭(28.4%), 개신교(27.5%), 이슬람교(17.9%)로 유럽 식민통치의 역사와 아프리카와 인도양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500여년간에 걸친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의 영향으로 국민의 28.4%가 카톨릭교도 이며, 식민 시절 건립된 카톨릭 성당들은 모잠비크의 중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한편, 남아공, 짐바브웨 등 영어권 국가의 영향으로 개신교가 27.5%를 차지하고 있는데, 최근 남아공, 미국, 영국 선교사들의 활발한 선교 활동으로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모잠비크에 가장 먼저 진출한 외래 종교는 이슬람교이다. 10세기 이전부터 예멘, 오만 등 아라비아 반도의 아랍인들이 동부 아프리카로 진출하면서 북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모잠비크라는 국명도 이슬람 술탄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15세기 말, 바스코 다 가마가 모잠비크섬을 발견했을 때

모잠비크는 이슬람 술탄의 이름이었다고?

0 7.

마푸토 대성당/ 베이라 대성당

(24)

무사 음비키(Mussa Mbiki)라는 이슬람 술탄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무사 음비키의 포르투갈식 발음이 바로 모잠비크였던 것이다.

현재 이슬람 교도는 북부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대부분 수니파이며, 현지 종교와 만나 토착화되었다. 모잠비크는 현재 이슬람기구(OIC)의 회원이기도 하다.

이 외에 인도 이주민의 후손들이 전파한 힌두교와 유대교 등이 있지만, 고대부터 전래된 반투어족의 토착 신앙이 모잠비크인들의 의식과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어 대부분 토착화되어 온건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슬람 사원앞에 서 있는 신도

마푸토의 힌두교 사원 모잠비크 섬의 이슬람 사원

(25)

모잠비크는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모잠비크의 인구가 약 2,500만명인 것을 감안할 때, 브라질에 이은 제 2의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이다. 제 3의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는 인구 1,900만명의 앙골라이며, 포르투갈어 종주국인 포르투갈은 인구 1,100여만명으로 4위에 불과하다.

아프리카에는 포르투갈어를 쓰는 국가가 모잠비크, 앙골라 이외에도 카보베르데(53만), 상투메프린시페 (16만), 기니비사우(160만) 등 총 5개국이 있어 포르투갈어는 아프리카 연합(AU)의 4대 공식 언어(불어, 영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중 하나로 채택되었다.

모잠비크는 1996년 창설된 포어권국가공동체의 회원국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세계 제2의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

0 8.

아프리카의 포어 사용 국가 / 전세계 포어 사용 국가

포어권국가공동체 상징

(26)

모잠비크에서 포르투갈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용되며, 부족마다 토속 언어가 남아 있어 지방으로 갈수록 토속어가 많이 사용된다.

모잠비크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아프리카어는 모두 반투어 계열에 속하는데 이는 다시 북부의 마쿠와-롬웨(Makua-Lomwe)어, 중앙의 세나-니얀자 (Sena-Nyanja)어, 남쪽의 쏭가(Tsonga)어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으며, 스와힐리어도 쓰인다.

(27)

모잠비크의 주식은 주로 옥수수와 쌀이나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답게 참새우, 가재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가 발달되어 있다.

코코넛 밀크와 piri-piri 고추가 모잠비크 요리의 양념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데, piri-piri 고추는 기분 좋은 매운 맛을 낸다고 한다. piri-piri 소스를 곁들인 치킨은 모잠비크의 자랑이다.

대표적인 지역 요리로는 옥수수 및 카사바를 재료로 떡처럼 만든 쉬마(xima)가 있으며, 쉬마는 보통 고기, 야채 등과 함께 먹는다.

또 다른 대표음식으로는 코코넛, 땅콩, 호박잎, 토마토가 주재료인 마타파(matapa)가 있다. 마타파는 모잠비크 게부자 대통령이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모잠비크의 먹거리

0 9.

piri-piri고추와 piri-piri 소스 piri-piri 소스를 곁들인 치킨

마타파 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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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의 보물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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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연가스

모잠비크의 보물 중 보물은 바로 천연가스라고 할 수 있다. 모잠비크 북쪽 해상광구 Area 1과 Area 4에서 매장량 약 35억톤으로 추정되는 가스가 발견되었다. 가스 탐사가 진행되고 있어 확인 매장량은 지속 증가할 전망이다.

tip!

한국가스공사 모잠비크 가스탐사 현황

한국가스공사는 1997년 해외 가스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동남아를 시작으로 전 세계 천연가스 탐사와 개발 사업을 한층 강화시켰다. 모잠비크에서는 2007년 7월 지분인수계약을 시작으로 2011년 해상가스광구(Area4광구, 지분율 10%) 탐사를 시작한 이래 7개의 가스전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약 1억 8천만톤에 달하는 대규모 가스전으로 국내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5년치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모잠비크 해상광구 천연가스 발견 경과

- 2011.10 첫번째 탐사정(Mamba South-1) 시추, 최초 가스 발견(가스부존량 22.5Tcf)

- 2012.02 두번째 탐사정(Mamba North-1) 시추, 추가 가스 발견 (가스부존량 7.5Tcf)

- 2012.03 세번째 탐사정(Mamba North East-1) 시추, 추가가스발견 (가스부존량 10Tcf~12Tcf)

- 2012.05 네번째 탐사정(Coral-1) 시추, 추가 가스 발견 (가스부존량 7Tcf~10Tcf).

(30)

2. 원유

가스 생산시 부수적으로 생산되는 액체 생산물로 초경질 원유인 컨덴세이트의 매장량은 2천만배럴로, 일산량은 1,000배럴 정도이다.

3. 기타광물

알루미늄, 티타늄, 석탄, 보크사이트, 탄탈라이트, 에메랄드, 금, 석회석, 화강암 등 많은 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석탄 매장량은 약 20억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생산량은 2012년 500만톤으로 2015년에는 4,000만톤까지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 2012.08 다섯번째 탐사정(Mamba North East-2) 시추, 추가가스발견 (가스부존량 10Tcf)

- 2012.12 여섯, 일곱 번째 평가정(Mamba South 2, Coral-2) 시추, 추가 가스 발견(가스부존량 6Tcf)

(31)

기술적・제도적 인프라 부족으로 안해 미개발된 광물자원이 많아 외국 자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요 광종 생산현황(2012)

주) U.SGS 2013, WMS 2012 Yearbook, USGS 2010 Minerals Yearbook 광 종 단위 모잠비크(A) 세계(B) A/B(%) 세계순위

알루미늄 천톤 550 44,900 1.2% 14

티타늄 천톤 380 6,200 6.1% 7

탄탈륨 톤 260 765 34.0% 1

금 톤 8 - - -

지르코늄 천톤 47 1,420 3.3% 7

석탄(2010) 톤 50,000 7,255,000,000 -

tip!

모잠비크의 수력발전 댐

카호라 바사(Cahora Bassa)댐 수력발전소

1970년에 건설된 카호라 바사댐은 배수역 면적이 22.5만㎢가 넘는‘모잠비크의 대동맥’잠베지강에 위치한 아치형의 다목적 댐이다. 발전소에는 마푸토로 직접 송전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 남아공 국영전력회사(Eskom)로 우선 송전 후 마푸토로

(32)

재송전한다. 연간 전력생산능력이 국내 수요량 200MW의 100배에 달하는 2,075MW에 달해 남아공, 짐바브웨, 말라위 등에 수출하며, 2004년에는 전력수출액만 1억불(모잠비크 총수출의 7%)을 기록하였다. 모잠비크 정부는 전력 수출을 늘리고, 급성장하는 국내 산업의 전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카호라 바사댐을 확장시키고, 추가로 댐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다.

또한 이곳은 주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코루마나댐(Corumana Dam)

모잠비크 남쪽에 위치해 있는 댐으로서 수도 마푸토에서 약 90km에 위치한 코루마나댐(Corumana Dam)은 사비에강(Sebie River)의 수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1980년 말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완공하였다. 코루마나댐 덕분에 29,000헥타르의 농지 개간과 18,000명의 경제활동(주변 노동력의 70%)이 가능해졌다. 코루마나댐의 농지에서는 매년 400,000톤의 사탕수수가 생산되어 75%가 수출되고 잇다.

댐의 총 수용력은 880 입방미터이며, 현재 이것을 1,375 입방미터로 늘리는 작업이 세계 은행(World Bank)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다.

2010년에는 마푸토시의 연간 소비량 9,100만 입방미터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1억달러를 투자하여 코루마나댐과 마푸토시를 파이프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투자를 바탕으로 코루마나댐은 농지개간, 경제활동 지원, 마푸토로의 물 공급 이외에도 향후 20~30년 동안 모잠비크의 경제개발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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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코루마나댐 주변에는 수산물들이 풍부해 잉어 및 민물 낚시를 하려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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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업

모잠비크의 주곡은 면화, 옥수수, 사탕수수, 캐슈넛, 카사바, 코코넛 등이다.

전체 인구의 80%가 농촌지역에 거주하고, 모잠비크 GDP에서 농업이 28.4%를 차지하는 등 농업은 모잠비크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모잠비크 정부는 농업부문 성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는데, 이에 힘입어 최근 설탕, 면화 및 담배 등 주요 작물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모잠비크는 2011년 3월 세계은행으로부터 7천만달러 차관을 제공받았으며 이를 소팔라, 마니카, 잠베지 지역(총 5,000헥타르)에 집중 투자하면서 관개시설 50%, 농작물 개발 30%, 농산물 가공 20%에 각각 사용할 예정이다.

2. 광업

광업부문은 2009년 기준으로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4%에 불과하지만, 광물 부존량을 고려할 때 모잠비크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모잠비크의 산업 구조

11.

사탕수수 밭 옥수수 수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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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해지면서 석탄 생산이 제한되었으나, 2007년 6월 Vale社의 모아티즈 탄전 투자를 계기로 석탄관련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철도 등 인프라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석탄생산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어, 생산량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Tete 지역 석탄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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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수산업

모잠비크는 인도양과 접한 해안선 2,470km를 보유하고 있어 알루미늄 수출이 본격화되기 전까지 수산물이 모잠비크의 최대 수출 품목이었다. 어업 생산량은 연간 20만톤으로 여전히 음식과 영양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외환보유액 증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모잠비크 사람들은 연간 평균 10kg의 생선을 소비하는데 이는 모잠비크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섭취하는 동물성 단백질의 50%에 해당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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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조업

모잠비크 GDP의 26%를 차지하는 제조업은 숙련노동력 부족, 원자재 및 자본 조달 난항, 사회주의 경제체제하 경영 미숙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1995년 민영화가 본격 추진된 이후 회복세로 돌아서, 1995~97년간 산출량이 평균 11.1% 증가하였다.

Mozal 알루미늄 제련소가 첫 생산을 완료한 2001년에는 33% 성장을 기록하였다.

알루미늄 생산 외에도 건축 자재, 농산물 가공, 음료 및 소비재 부분이 최근 가장 활발한 생산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tip!

Mozal 알루미늄 제련소

Mozal 알루미늄 제련소는 마푸토에서 서쪽으로 20km떨어진 곳에 1998년 설립되었다. 모잠비크 정부가 4%를 투자하고 나머지는 외국기업들의 투자로 이루어졌으며, 알루미늄 수출을 목적으로 세워졌다.

정식 가동은 2000년에 시작하였는데 현재 모잠비크 최대이자 아프리카에서는 두

이른 아침 마쿠아족 어촌 고기잡이 배 새우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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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에너지

현재 모잠비크 국영에너지회사(ENH)가 외국 투자기업과의 합작투자 및 공동생산 계약 등의 형식으로 천연가스를 개발 중이다.

남아공 가스개발 업체 Sasol이 Inhambane주 천연가스 광구를 모잠비크측과 함께 개발하였으며, 남아공으로의 가스 수송을 위해 6억불 규모의 파이프라인(865km)을 2004년 완공하였다.

모잠비크 정부는 에너지 개발 분야에서 남아공의 과도한 영향력 확대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한국의 투자 확대도 희망하고 있다.

6. 관광업

관광업은 1992년 내전 종식 후 모잠비크 산업 중 가장 급성장하였고 3만 5천명에 이르는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세계관광기구 통계에 따르면 2005년도 모잠비크 관광산업 성장률은 37%로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며 그 해 관광 수입은 1억 8백만 달러에

번째로 큰 알루미늄 제련소로서 연간 58만톤을 생산하고 있다. Mozal 알루미늄 제련소가 모잠비크 수출의 30%를 창출하고 모잠비크 생산 전기의 45%를 소비한다고 하니 Mozal 알루미늄 제련소가 모잠비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13년 2월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알루미늄 케이블 제조사 중의 하나인 바레인의 미달 케이블社와 5만톤을 공급하기로 계약하였다. 이 계약에 따라 미달 케이블이 모잠비크에 공장을 세우고 알루미늄을 가공하면 Mozal 알루미늄 제련소에서 생산되는 알루미늄이 모잠비크 내에서 처음으로 이용되는 것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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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는 71만명으로 증가할 정도로 방문객의 수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11년에는 국가 총생산량에서 관광업이 44.7%를 차지하였다.

모잠비크 플라밍고베이 근처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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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잠비크인들은 어디서 왔나? : 반투어계 민족의 정착 (1~4세기)

모잠비크의 선사시대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오늘날 칼라하리 사막 등 남아프리카에 분포한 것으로 알려진 부시맨족의 선조가 이 지역에 최초로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세기부터 잠베지 계곡을 따라 반투어를 사용하는 내륙의 부족들이 해안 지대로 이동하면서 점차 부시맨족을 밀어내고 4세기까지 오늘날의 모잠비크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모잠비크의 역사

12.

영화“God must be crazy”에 출연한

부시맨 칼라하리 사막 부시맨

반투 민족의 이동경로 반투어계 부족의 무기와 수공예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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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생활을 영위하고 철을 사용할 줄 알았으며, 계급 사회를 유지하였다. 또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족의 직업을 전수했으며, 구전을 통해 지식을 전수하는 등 초보적인 교육 제도를 발전시켰다.

2. 중세 아프리카의 코스모폴리스 (10~15세기)

모잠비크는 아프리카 대륙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10세기경부터 인도, 아랍, 중국, 심지어는 인도네시아 상인들이 활발히 진출하여 다국적 무역항이 발달하였다. 이들은 금, 상아 무역에 종사하며 아프리카 부족장들과 결탁하여 현지 주민들을 노예로 착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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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중세 페르시아 문헌 속의 모잠비크

페르시아 선장 출신인 이븐 샤리아르는 900~945년간 여행담을 기록한‘인도의 풍물기행’이라는 저서에서 모잠비크의 해안에 정박한 인도네시아 상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중국 인근에 위치한 섬에서 온 Waq-Waq(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상인들은 수백여개의 선박을 이끌고 모잠비크 해안에 도착하여, 아프리카의 토산품과 Zeng(오늘날의 아프리카 동부 해안 지대) 출신 노예들을 마구잡이로 사들였다.”

또한 아랍인들이 모잠비크 연안의 섬이나, 일부 해안지대를 통치하기도 했다.

중세 아랍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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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루투갈의 식민 통치 (16-20세기)

◦인도 가기 전에 잠시 쉬려다... 모잠비크 발견

모잠비크는 1498년 포루투갈의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을 위한 1차 원정(1497-1499) 당시 유럽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다.

이후 1507년 바스코 다 가마는 2차 원정을 실시하여 아랍인들을 몰아내고 모잠비크 섬을 점령하였으며, 도시와 요새를 건설하면서 이후 500여년간 지속된 식민 통치의 기틀을 마련한다.

◦북부 해안도시의 발달 (16-18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중세의 아랍인들이 그랬듯이 북부 해안지대에 무역항을 건설하여 오토만 제국과 아라비아 반도의 왕국들을 상대로 상아와 노예무역을 자행하였다.

바스코 다가마 초상화 제1차 인도항로 개척 원정 경로

모잠비크 섬 요새의 전경 17세기초포르투갈에서제작한모잠비크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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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7세기부터 포르투갈 왕정은 공신들에게 모잠비크 영토를 사유지로 제공하였으며, 이에 모잠비크는 점차 중앙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19세기 중반까지 현지 주민들에 대한 수탈과 억압은 더욱 악화되었다.

◦금을 찾아서 : 마푸토의 부상

19세기 남아공의 트란스발 지역에서 금, 석탄 등 자원 개발이 추진되면서 모잠비크 내륙 지역에 대한 진출이 본격화된다. 19세기 중반 남아공의 트란스발 지역과 로렌쏘 마르케스(오늘날의 마푸토)항을 잇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모잠비크의 중심이 북부의 모잠비크섬에서 최남단의 마푸토로 이동하게 된다.

◦다국적 기업의 통치(1891-1929) : 먹이도 안 주고 황금알만 낳으라 하면...

포르투갈 정부는 1891년부터 1929년까지 모잠비크의 영토를 3등분 하여 3개의

트란스발지역 1905년 마푸토 전경

20세기 초 모잠비크 컴퍼니의 거점 도시였던 베이라 항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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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권 및 세금 징수권을 부여받는 대가로 철도, 도로, 학교, 병원 등 기본 인프라를 건설하고 개발 이익의 일부를 포르투갈 정부에 지불했다.

베이라 항을 중심으로 한 중부 지역은 주로 프랑스의 자본이 투입된 모잠비크 컴퍼니가 통치하였고, 북부 지역은 영국과 남아공 자본이 투입된 니아사 컴퍼니가, 남부는 포르투갈, 독일, 프랑스, 남아공, 영국 자본이 투입된 잠베지 컴퍼니가 통치하였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로 학교, 보건 등 기초 인프라 투자가 저조 했으며 현지 노동은 착취 당해 모잠비크 경제는 더욱 악화되었다. 모잠비크 컴퍼니만 유일하게 1900년 베이라 항과 내륙의 살리스버리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하고 향후 모잠비크의 주요 수출 품목이 된 사탕수수의 경작을 발전시켰다.

◦살라자르의 중앙집권적 식민 통치(1929-1968)와 독립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던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이 1960년대에 독립한데 비해 모잠비크를 비롯한 포르투갈 식민지들은 1975년에 이르러서야 독립을 쟁취한다. 이는 1968년까지 포르투갈을 장기 집권한 살라자르의 중앙집권적인 식민 정책에 기인한다.

모잠비크 컴퍼니 발행 우표와 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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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자르 정권의 식민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하에 모잠비크인들의 저항도 더욱 거세져 Frelimo(모잠비크 해방전선)를 창설하고 독립 투쟁을 본격적으로 개시하였다. Frelimo는 무장 투쟁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과도정부의 지위를 승인 받기 위한 외교 노력을 병행하였다.

1974년9월 Frelimo-포르투갈간 모잠비크 독립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과도정부를 수립 하였으며 1975년6월25일 마침내 독립을 선포하였다.

모잠비크의 초대 대통령으로 1969년 Frelimo를 이 끌 던 사 모 라 마 셸 (Samora Machel)이 추대되었다.

1934년 최초로 개최된 포르투갈 식민지 박람회

포스터 아프리카를 방문중인 살라자르

모잠비크의 초대 대통령 사모라 마셸 (Samora Machel), 1933-1986. 1986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할때까지 11년간 모잠비크이 초대 대통령으로 집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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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독립의 기쁨도 잠시 : 모잠비크 내전 (1980-1992)

마셸 대통령은 1975년 6월 25일 독립 후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기초한 일당독재국가를 지향하였다. 소련, 쿠바의 원조에 의존하는 등 공산주의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 반면, 당시 백인 정권이 집권하고 있던 남아공과 로데지아(지금의 짐바브웨)와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tip!

게부자 대통령과 Frelimo

2013년 6월 모잠비크 대통령으로는 최초 공식 방한하는 게부자 대통령은 20세가 되던 1963년부터 Frelimo에 입당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입당 후 불과 2년 후인 1965년 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5년 모잠비크 독립 이후 초대 내무장관을 역임하였고, 1983년 중장 신분으로 내무장관에 재임명되었다.

2002년 6월에는 Frelimo당의 차기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으며, 2004년 대선에서 63.7%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 2009년 75%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하였다.

가운데가 Guebuza 내무장관, 오른쪽은 Machel 대통령

Frelimo의 선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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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실패와 남아공, 로데지아와의 관계 악화로 철도와 항만 수입이 급감하면서 모잠비크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고 민심은 악화되었다. 이 틈을 타 남아공과 로데지아 정부는 반사회주의 무장 세력인 Renamo(모잠비크 저항운동)를 비밀리에 지원하면서 모잠비크는 내전상태에 돌입하였다.

내전 기간 중 총 100만명이 사망하였고, 170만명의 난민과 수백만명의 국내피난민이 발생하였다. 1992년 10월 4일 유엔의 중재 하에 Frelimo당과 Renamo당의 평화협정 체결로 내전은 종결되었고, 이후 Renamo당은 보수 성향의 제 1야당으로 정착하여, Frelimo/Renamo 양당 구도가 확립되었다.

Renamo의 당 깃발

모잠비크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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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모잠비크 행복시대를 향하여 : 모잠비크의 최근 발전상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한계를 경험한 마셸

대통령은 Frelimo당 내 극좌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0년 가족단위 농장의 사유화를 인정하였으며, 1983년에는 IMF, 세계은행에 가입하고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한 대외원조 및 외자유치를 본격적으로 추구하였다.

그 뒤를 이은 시사노(Joaquim Chissano) 대통령은 더욱더 과감한 친서방・친시장경제 노선을 추구하면서 대폭적인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남아공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외자를 적극 유치하였으며,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유상원조를 제공받아 기초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Frelimo당은 1989년 마르크시즘과 공식 결별하였으며, 다당제를 도입하여 민주화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1992년 Renamo당과의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는 유엔 PKO가 주둔하면서 모잠비크의 재건과 민주화를 지원하였다.

1994년 평화적인 선거를 통해 Frelimo당이 승리하고 시사노 대통령이 당선되었는데, Renamo당도 이를 인정하는 등 정세가 안정되자 유엔 PKO는 1995년 철군하였다.

1999.12.3 Chissano 모잠비크 대통령의 투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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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대선에서 시사노 대통령은 현법에 의해 4선 출마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3선 출마를 거부하였고, 이때부터 게부자 대통령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 게부자 대통령은 강력한 지도력을 바탕으로 국정을 장악하여, 개방을 통한 경제개발정책을 적극 추진 중이다.

1999년, 2004년, 2009년 대선 및 총선이 대체로 민주적・평화적으로 실시되면서 국제사회는 모잠비크를 내전 후 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화합을 달성한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2013년 5월 모잠비크를 방문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MDG(새천년개발계획)관련 유엔회의에서 모잠비크를 MDG달성의 모범사례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게부자 현 모잠비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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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독립 시 모잠비크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그릇된 처방과 1977~92년간의 참혹한 내전은 모잠비크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혼란의 와중에도 모잠비크 정부는 1987년 경제안정화를 위해 일련의 거시 경제 개혁을 단행하였고, 국제사회의 원조와 1994년 선거 이후의 정치적 안정에 힘입어 모잠비크 경제 성장률은 극적으로 상승하였다. 최근 12년간 모잠비크의 평균 경제 성장률은 6~8%에 달한다.

[표] 모잠비크의 경제성장률(2008-2013, %)

◆ 자료 : EIU Report

게부자 정부는 압도적 지지기반을 토대로 외국기업 투자 유치에 진력하며 재정 건전화・금융개혁・민간부문 및 공공부문 개혁 기조 아래 경제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낙후된 인프라, 제도적 기반 부족 등으로 개발이 되지 않은 천연자원에 대한 외국 자본들의 관심이 모잠비크의 고속 성장을 더욱 촉진할 것이라 전망된다.

천연가스, 석탄, 티타늄과 같은 광대한 자원과 수력발전에서 발생하는 수입이 5년 이내에 원조 수입을 능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향후 모잠비크 경제 부흥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모잠비크 경제, 점핑 점핑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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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헌법 개정으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정부의 언론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감소하였다. 모잠비크 내 언론은 독립기구이자 언론의 자유 보장과 정보공개청구권 보장을 임무로 띄고 있는 최고언론위원회(Supreme Mass Media Council)에 의해 규제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 언론기관이 종종 공정성을 잃어 비난을 받고 있는데, 선거를 치를수록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몇 년간 민영 미디어도 상당히 성장하였다. 하지만, 형사상 명예훼손법이 있어 자기검열이 존재해 상당수 언론매체가 親정부적 성향을 보인다.

1. 신문

신문은 약 100만명 정도의 아주 적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공식 언어이기는 하나 인구의 10%밖에 사용하지 않는 포르투갈어로 발행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세금을 높게 부과하여 높아진 구독료 역시 낮은 구독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주요 일간지로는 마푸토에서 발행되는 Noticias(관영지)와 마푸토와 베이라에서 동시에 발행되는 Diario De Mocambique(관영지)가 있으며, 주요 주간지로는 일요지인 Domingo(관영지)가 있다. 4개의 주요 독립지는 모두 주간지로 마푸토를 기반으로 하는데 Savana, O Pai´s, Zambeze, Magazine Independence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는 O Pai´s가 가장 많은 독자수를 확보하고 있다. 이메일이나 팩스로 배포되는 민영 전자신문도 급성장 중인데 역시 대부분 마푸토에 위치해 있다.

성장중인 언론 보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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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송사

유일하게 전국적 파급력을 가진 Televisa˜o de Mocambique(TVM)는 관영 방송사로서 마푸토를 비롯한 대부분의 도시 지역에 포르투갈어로 방송하며, 베이라와 남풀라에는 지역 언어로도 방송을 한다. 5개의 민영 방송사는 모두 마푸토에서 방송을 내보낸다.

tip!

Noticias

Noticias는 은퇴한 포르투갈 무관이 1926년 발행을 시작하였고 1975년 Frelimo 정부가 인수해 관영지가 되었다. 사모라 마셸 대통령이 사회주의를 채택했을 때는 Noticias만 빼고 모든 일간지가 발행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현재 모잠비크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신문으로 정부 비판 기사는 거의 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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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식 前 국무총리 방문 소식이 실린 Noticias

Televisa˜o de Mocamb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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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문맹률로 인해 라디오는 모잠비크 대중에게 인쇄매체보다 더 중요한 뉴스 공급원 역할을 한다. Ra´dio Mocambique(RM)은 정부소유 라디오 방송사로 전국에는 포르투갈어로, 지방에는 지역어로 송신한다. 가장 많은 청취자를 확보해 영향력도 가장 크다. TV보다 쉽게 운영할 수 있어 지방에서 소규모 청취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사도 많다. 현재 운영 중인 70개의 커뮤니티 라디오들은 유네스코나 다른 국제원조단체의 후원으로 설립・운영되고 있는데 자원봉사에 의존하기 때문에 관리 및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크다.

3. 통신사

관영통신사인 Mozambique News Agency는 모잠비크에 관한 뉴스를 수집・배포하며 Pan African News-Agency와 같은 통신사와 협력을 하고 있다.

현재 모잠비크에는 로이터를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해외 뉴스 통신사도 활동하고 있다.

4. 인터넷

인터넷 접속에 제한은 없으나 보급률은 굉장히 낮다. 2011년에는 인구의 4%만이 인터넷을 사용하였으며 그마저도 대부분 주요 도시에 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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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Mocamb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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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독립 이후 Frelimo당은, 포르투갈 지배 하에서 모잠비크 사람들이 가지는 교육 기회가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보편 교육을 제공하는데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1977년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그 성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고, 내전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양적 ・질적으로 상당한 개선이 이루어지게 된다.

2007년에는 정부의 빈곤감소 전략의 일환으로 교육부문 투자가 급속도로 늘어 총지출의 22%를 차지할 정도였는데, 이에 힘입어 모잠비크 취학인구는 1992년 120만명에서 2006년 480만명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자격 미달인 교사와 낙후된 교육시설로 인해 사실상 교육 효과는 매우 저조하며 학생들이 중도에 교육을 포기하는 비율이 30%에 이른다. 오직 8.5%만이 중고등/대학교육을 받는다. USAID에 따르면 모잠비크는 아직 학교와 교사가 부족하며 성인의 60%가 문맹이라고 한다.

국내적으로 공립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만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과 계획은 주로 국제사회 원조로 이루어지고 있다. 12살까지 의무・무상교육이지만 입학비가 있어 많은 가정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교와 자원이 부족해 의무교육법이 일관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높은 교육열

15.

나무아래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잠비크 학생들 Airbus 자선사업으로 새 책상에 앉아있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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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모잠비크 정부는 Manica, Tete, Gaza 州 고등교육기관 설립 타당성 조사를 실시하였다.

가장 크고 오래된 대학교는 Eduardo Mondlane 대학교로 1962년 마푸토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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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의 열린수업

Eduardo Mondlane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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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마니싸지역(Manica) 빈곤퇴치 지원사업 개요

마니싸 지역은 수도 마푸토 북쪽으로 80km 거리에 위치한 인구 20만명의 도시로서 고속도로에 인접하여 모잠비크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등 타 도시로의 개발 파급효과가 크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현재‘KOICA-포스코-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등 민관이 협력(PPP : Public, Private, Partnership)하여 자립형 아프리카 모델 구현 및 확산을 위해 노력중이다.

관련 프로젝트로는 마니싸 농업훈련센터를 통해 의식개선 교육 및 시범농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문맹퇴치교실을 운영을 통해 학생들에게 보충수업, 학용품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선교사 및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직원(2명), NGO직원(1명) 포함하여 약 20여명의 한국인 직원이 현지 상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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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나의 작은 도서관 My small library

유엔 세계관광기구 스텝(ST-EP) 재단은 2009년부터 모잠비크의 마푸토 등 5개 지역에‘작은 도서관’을 개관하여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및 송파구청의 후원으로 개관된 5개 도서관에는 현지 언어인

포르투갈어로 된 책과 영역된 한국동화책 등 도서 3,000권 이상을 비롯하여, 책장, 원탁, 의자, 사서용 책걸상 세트 등 가구와 문구류, 축구공, 구급상자, 교육용 포스터 등이 구비되어 있다.

이 도서관들은 문맹률이 50%가 넘는 모잠비크의 어린이 및 지역주민에게 독서 기회와 교육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개발 및 빈곤퇴치 의지 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 스텝재단의‘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조성사업

○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스텝(ST-EP : Sustainable Tourism for Eliminating Poverty)재단(이사장 : 도영심)

-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스텝재단은 국제기구 소속이지만 주로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국내 기관의 지원금으로 아프리카 등 극빈국의 빈곤퇴치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 스텝재단의 주요 사업 중 하나인‘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Thank You Small Library)’운동은 저개발국에 소규모 도서관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2007년 아프리카에 도서관을 지어주기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가나, 에티오피아, 세네갈・남아공, 탄자니아, 베트남, 중국 등에 123개 도서관을 개관했다.

(59)

교육정책과 마찬가지로 보건정책 역시 기본 보건 수준의 양적・질적 개선을 목표로 이루어져왔다. 내전 후에 보건부문 투자는 엄청나게 증가하였고 2007년에는 총지출의 12.4%를 차지하였다. 모잠비크 정부는 특히 보건소를 늘리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모잠비크의 보건・의료 수준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열악한 편이다. 2012년 평균수명은 50.7년으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평균 54.9년보다 짧으며 2012년 모성사망비(출생아 10만명당 산모사망 비율)는 490명으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평균 475명보다 높다.

모잠비크인의 주요 사망원인은 말라리아(1위, 29%), 에이즈(2위, 27%)이다.

모잠비크는 연중 전 지역에 걸쳐 말라리아 감염 위험이 있으며, 특히 우기인 12월~4월경에 말라리아 위험이 높다.

UNAIDS 보고서(2010년)에 따르면 15~49세 인구 중 에이즈 유병률은 11.5%이며, 성인 및 아동을 포함한 총 감염자 수는 약 140만명, 사망자 수는 약 1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교사의 17%가 감염되어 에이즈 감염은 교육 부문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에이즈로 인한 고아 숫자도 2011년 150만명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모잠비크의 보건

16.

파상풍 주사를 맞는 어린이 지역 보건 센터에서 대기중인 주민들

(60)

모잠비크는 식민지 시기와 내전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전통예술을 보존해 왔다. 마콘데족의 목각 수공예품과 초피족의 음악은 가장 잘 알려진 모잠비크의 전통예술품이다.

모잠비크의 대표적인 미술가로는 말란가타나(Malangatana)가 있 다 . 그 는 상 징 성 이 강 한 초현실주의 화풍을 추구하는데 국가폭력과 개인의 폭력을 다룬 작품을 제작, 발표하여 전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또한 모잠비크의 전통악기로는 루펨베(lupembe)와 마림바(marimba)가 유명하다. 루펨베는 주로 북쪽지방에서 전해져 내려온 전통악기이며, 마림바는 남아프리카 전체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실로폰 형태의 악기이다. 특히 남쪽지방에는 마림바를 연주하는‘마림바 오케스트라’가 유명하다.

전 통 음 악 이 외 에 도 도 시 를 중 심 으 로 모잠비크의 현대음악도 접할 수 있는데, 지방의 전통적인 마지카(majika) 리듬의 영향을 받은 경쾌한 스타일의‘마라벤타’가 유명하다.

독특한 문화예술

17.

마콘데족의 목각 수공예품

말란가타나 작품

마림바 연주와 모잠비크 전통춤을 선보이는 초피족

Lupembe

(61)

한편, 모잠비크는 식민지 시기와 내전을 거치는 동안, 시(詩)를 통하여 희망을 노래하면서 고난을 극복하였으며, 특히 포르투갈 식민통치 하에서 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달한 모잠비크의 국민시인‘호세 크라베리나’의‘혁명의 꽃’이 유명하다. 호세 크라베리나는 수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하였다.

tip!

혁명의 꽃 (원제: Spring of Bullets)

어깨에는 탄대를 메고 나의 마지막 치욕을 움켜쥐며

나의 영토를 떠나지 않은 채, 모잠비크 북부로 이주한다

그곳 북부에서 나는 칡으로 연명하고 동물이 마시는 빗물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며

휴식 시간에, 나의 총알들 대신 옥수수 묶음을 손질한다.

때로는 밭을 갈며, 때로는 무릎으로, 팔꿈치로 기어다닌다

그러다가 수풀 한가운데 숨어있을 그 때

탄대의 총알들을 조준하여 장교의 군복에 가장 붉은 꽃을 피운다.

총알로써 재탈환하는 우리 아름다운 자유의 값비싼 댓가여!

호세 크라베리나

(62)

1. 모잠비크 섬(Mozambique Island)

모잠비크 섬은 모잠비크 해협과 Mossuril만 사이, 모잠비크 북쪽에 위치해 있다. 모잠비크 섬은 육지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으나 지금은 다 리 로 연 결 되 어 있 어 사 실 상 육 지 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섬 자체는 길이 약 3km, 너비 200~500m로 크지 않다. 하지만 1898년 수도가 마푸토로 바뀔 때까지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의 수도였으며, 유적지 대부분이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고 관광지로도 아주 인기가 많다.

이 중 최고의 볼거리는 상파울로 예배당과 궁전인데, 이곳은 1700년대 통치자와 왕족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포르투갈, 아라비아, 인도, 중국에서 온 가구와 장식품들이 보관되어 있다. 섬의 북쪽에 위치한 세바스티앙 요새 역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모잠비크, 여기 가볼까?

18.

상파울로 예배당

세바스티앙 요새 모잠비크 섬 다리

(63)

대부분의 역사적 건축물은 섬 북쪽 끝에 있고 14,000여명의 주민들은 섬 남쪽 끝에 있는 Makuti 마을의 갈대 집에서 살고 있다.

2. 바자루토 군도 해상 국립공원

해안선에서 약 10km 떨어져 있는 바자루토 군도 해상 국립공원은 푸른 하늘과 바다, 모래사장과 야자수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산호초 사이를 오가며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을 수 있는 이곳은 모잠비크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Makuti 마을의 갈대 집

(64)

1. 모잠비크 출신 전설적 축구선수, 에우제비우

에우제비우 다 실바 페헤이라(Euse´bio da Silva Ferreira)는

‘에우제비우(Euse´bio)’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포르투갈의 유명 축구선수이다. 포르투갈의 대표적 축구선수로 알려진 그는 사실 모잠비크(당시 포르투갈령) 출신이다.

1966년 처음으로 포르투갈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을 때, 그는 포르투갈 대표로 뛰며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등 포르투갈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그는 북한과의 8강전 경기에서 포르투갈이 0-3으로 뒤진 상황에서 후반에 무려 4골을 몰아치며 포르투갈의 5-3 역전승을 이끌었다.

그는 검은 피부색과 폭발적인 스피드, 파워풀한 경기력으로

‘흑표범’또는‘흑진주’로 불렸으며, 특히 정확한 오른발 슛이 일품이었다. 에우제비우는 포르투갈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하기 전에도 포르투갈의 축구 클럽인 벤피카에서 활약하며 15년간 715경기에 출전, 727골을 득점하며 1965년‘올해의 유럽 축구선수’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에서 선정한‘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중 9위에 오르고, 2004년‘펠레가 선정한 최고의 축구선수 FIFA 100’에 포함되었으며, 2003년 포르투갈 축구협회로부터‘UEFA 창립 50주년 기념상’을 수상하였다.

남미나 유럽이 아닌 제3대륙 아프리카 출신으로 세계적인 축구스타 반열에 오르기는

에우제비우, 아프리카의“흑표범’

19.

(65)

2. 모잠비크 출신 슈퍼모델, 타샤 데 베스콘셀로스 모잠비크 출신의 슈퍼모델‘타샤 데 베스콘셀로스(Tasha de Vasconcelos)’는 19세에 엘리트 모델 에이전시의 눈에 띈 후 이브생 로랑,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 럭셔리 브랜드의‘얼굴’로 활동해왔으며, 니베아의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모잠비크에서 태어나 자라며, 내전과 빈곤으로 신음하는 아프리카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였다. 스스로가“나는 아프리카인입니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이다. 실제로 그녀는 할아버지가 모잠비크 내전 중 게릴라 군에게 살해당했고 남은 가족이 캐나다로 도피했던 아픈 기억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슈퍼모델로서 뿐만 아니라 자선활동으로도 유명하다.

“소외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나누고 상생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역설하는 그녀는 2006년 아프리카

산모 및 신생아 사망률 감소를 목표로 한 자선재단 아모르(AMOR)를 창설해 왕성히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각종 기부금 모금행사를 통해 마련한 돈과 루이뷔통의 재정적 후원을 바탕으로 아프리카 남동부 말라위에 산부인과 병동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연간 9만2천달러에 달하는 병동 운영비 마련은 만만치 않지만, 그녀의 활동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패션업계는 물론이고 국제 구호단체 및 유럽연합(EU) 등에서도 그녀의 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66)
(67)
(68)
(69)

CONTENTS 목차

Ⅰ. 개관

70

Ⅱ. 약사

74

Ⅲ. 정치

1. 헌법 78 2. 정치조직 78 3. 주요정세 81

Ⅳ. 경제

1. 경제일반 82 2. 부문별 현황 83 3. 최근 동향 86 4. 교역 현황 89

Ⅴ. 사회・문화 1. 언론 90 2. 교육 91 3. 보건 91

Ⅵ. 우리나라와의 관계

93

Ⅶ. 북한과의 관계

100

ⅦI. 참고 자료

1. 행정부 구성 103

2. 주요 인사 인적사항 104

(70)

모잠비크 국기

(71)

모잠비크 지도

(72)

1. 일 반

○ 국 명 : 모잠비크 공화국(Republic of Mozambique)

○ 면 적 : 799,380㎢(세계 35위, 한반도의 약 3.6배 크기)

○ 인 구 : 2,390여만명(2012년), 세계 50위 - 인구밀도 : 28.7명/㎢, 세계 178위 - 인구증가율 : 2.44%

※ 모잠비크 인구 중 50%이상이 북쪽 지역에 밀집 거주

○ 수 도 : 마푸토(Maputo, 197만명)(2012년)

※ 주요도시 현황 : 베이라(Beira, 44만명), 남풀라(Nampula, 58만명), 치모이오(Chimoio, 27만명), 나칼라(Nacala, 23만명), 퀘ㄹ리마니(Quelimane, 21만명)

○ 언 어 : 포르투갈어(공용어), 토속어(Makua-Lomwe어, Tsonga어, Sena- Nyanja어 등)

※ 포르투갈어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나, 지방으로 갈수록 사용자의 수가 감소

○ 종 족 : Makhuwa족, Tsonga족, Lomwe족, Sena족 등 원주민 99.66%, EuroAfrican 0.2%, 유럽인 0.06%

개 관

I

(73)

○ 종 교 : 카톨릭 28.4%, 개신교 27.7%, 이슬람교 17.9%, 기타 등등(CIA World Factbook, 2007)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 국가원수 : Armando Emilio Guebuza 대통령(2004년 대통령 당선, 2009년 재선 성공)

※ 대통령 임기 5년

※ 총리 : Alberto Vaquina(2012.12월 임명)

- 모잠비크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며, 행정부내 서열 2위

※ 외교장관 : Oldemiro Baloi

○ 의 회 : 단원제 (250석)

○ 주요정당

- 여당 : Frelimo (Frente de Libertaca˜o de Mocambique, Front for the Liberation of Mozambique)

- 야당 : Renamo (Resistencia Nacional Mocambique, Mozambique National Resistance)

○ 시 차 : 한국보다 7시간 늦음

○ 독립일 : 1975.6.25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 공휴일(總 9일) : 1.1(New Year’s Day), 2.3(Heroes’Day), 4.7(Women’s Day), 5.1(Labour Day), 6.25(Independence Day), 9.7(Victory Day), 9.25(Armed Forces Day), 11.10(Maputo Day-Maputo only), 12.25(Famil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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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 지리 및 기후

○ 위 치 : 아프리카 남동부

- 탄자니아(북), 말라위(북서), 잠비아(북서), 짐바브웨(서), 남아공(남서), 스와질랜드(남) 등 6개국과 접경

○ 기 후 : 열대, 아열대

- 수도(해발 59m) : 가장 더운 시기(2월, 22~31℃), 가장 추운 시기(7월, 13~24℃), 최대 건기(7~8월, 평균 13mm), 최대 우기(1월, 평균 130mm)

3. 경 제

○ GDP : 136억불(2012년, EIU 추정치)

○ 실질 GDP 성장률 : 7.4%(2012년, EIU 추정치)

○ 1인당 GDP : 1,073불 (2012년, EIU 추정치)

※ 유엔지정 최빈개도국(LDC)

○ 화폐단위 : 1$ = 29.80 Metical(MT)

○ 인플레이션 : 6.4%(2013년, EIU 추정치)

○ 자 원 : 석탄, 티타늄, 천연가스, 흑연 등

4. 전반적인 정세 평가

○ 모잠비크는 500년에 걸쳐 포르투갈 식민통치 과정에서 종족간 통혼 및 이주 장려 정책 등으로 특정 종족 출신이라는 정체감이 많이 퇴색

(75)

○ 최근 여야 양당구도(Frelimo vs Remano)의 제도적 정착, 기독교- 이슬람교도간 혼인 및 개종 빈도 증가 등으로, 과거에 비해 지역간 갈등 (남부-여당, 북부-야당)이 많이 감소

○ 상기와 같이, 사회 전반적으로 갈등의 요인이 많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정치적 안정이 유지된다는 전제하에 경제발전의 유리한 토대가 구성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 가능

- 금년도 지방선거 및 내년도 총선・대선에서도 집권 Frelimo 당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것으로 예측

(76)

1. 독립이전

○ 1498 바스코다가마의 모잠비크 발견 (포르투갈의 對인도 무역 중간정착지 역할)

○ 1700 포르투갈의 내륙진출 (식민지 건설)

○ 1875 포르투갈, 영국과의 Maputo항 소유권 분쟁에서 승리

○ 20세기초까지 Mozambique, Niassa, Zambezi companies들이 영토를 할양 받아 사실상 지배

○ 1930년대초 포르투갈, 중앙집권적 식민지배체제 확립

- 포르투갈인 다수 유입 및 아프리카 현지인들의 정부관료체제 진입 차단

○ 1962 Frelimo(모잠비크 해방전선) 발족 : Udenamo, Manu, Unami 등 3개 민족주의 정당 통합

○ 1963 포르투갈 영토로 편입

○ 1964 Frelimo, 반식민 게릴라전(무장독립투쟁) 개시

○ 1974.4 Gaetano 포르투갈 독재정권 몰락이후, 모잠비크에 대한 포르투갈의 통제 약화

약 사

II

(77)

○ 1974.9 Frelimo-포르투갈간 모잠비크 독립에 관한 협정 체결 및 과도정부 수립

○ 1975.6.25 모잠비크 독립

- Samora Machel 초대 대통령 취임

2. 독립이후

○ 1976.3 Rhodesia(現 잠비아(北) 및 짐바브웨(南))와의 국경 폐쇄

○ 1977.2 Frelimo당 제3차 전당대회 개최

- Marx-Leninism에 기초한 일당독재국가 선언

○ 1979.12 Rhodesia와의 국경 재개방

○ 1980.11 과거 Rhodesia 정보기관 출신들이 반혁명 무장세력인 Renamo당을 결성, 남아공 군부의 지원하에 내전을 일으킴.

○ 1984.3 모잠비크-남아공간 Nkomati 조약(불가침 조약) 체결, 전선 6개국 정상회의, Nkomati 조약 추인

○ 1986.10 Samora Machel 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면서, Joaquim Chissano 당시 외교장관이 Frelimo당 중앙위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취임

○ 1989.7 Frelimo당 제5차 전당대회에서 장기간의 내전으로 인한 국정피폐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당 규정에서 Marx- Leninism 삭제 조치 단행

○ 1990.11 헌법개정

(78)

○ 1992.10 내전 종식 (이태리 정부 주선)

○ 1994.11 Chissano 대통령 당선, Frelimo당 총선 승리(독립 이후 최초의 다당제 민주 선거) 및 Renamo당과의 연정 거부

○ 1998 Frelimo당은 Renamo당의 입장을 상당 부분 수용한 헌법개정안을 제출하였으나, Renamo당내 강경파의 반대로 개정안 통과 무산

○ 1999.12 33개 주요 city 및 town 지자체 선거 최초 실시, Chissano 대통령 재선 및 Frelimo당 총선 승리

- 대선 및 총선 부정선거 시비로 정국 혼란이 초래되었으나, Chissano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점차 정국 안정 달성

○ 2002.6 Frelimo당 중앙위, Armando Guebuza를 차기 대선 후보로 선출

○ 2004.12 Guebuza 대통령 당선, Frelimo당 압승으로 정치적 안정 달성

- 부패척결, 법치확립의 기조를 추구하면서, 서구 원조공여국 및 IMF・세계은행의 지원을 토대로 경제개혁 추진

○ 2005.2 Guebuza 대통령 취임

○ 2005.9 국회의원 보궐선거 부정시비를 둘러싸고 Renamo당 지지세력과 경찰간 충돌 발생

○ 2007.6 모잠비크, IMF의 양허성 차관 지원대상국가 해제

○ 2008.3 Guebuza 대통령, 취임이래 최대 폭 개각 단행

(79)

○ 2009.10 Guebuza 대통령, 재선 성공, Frelimo당 승리

○ 2012.10 Vaquina 총리 임명

○ 2013.1 대홍수로 36명 사망, 이재민 8만5천명 발생

○ 2013.5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2007년 취임후 최초 방문

참조

관련 문서

• 외교국제협력부 장관 (Ministre des Affaires Etrang ères et de la Coopération Internationale). • 아프리카

※ 굽타가 부정부패 연루 혐의를 받던 네네(Nene) 전 재무장관, 기가바 전 내무장관이 연속 사임함에 따라, 같은 혐의를 받고 있는 Bathabile Dlamini 대통령실 여성부

This study, explored government instability after democratic transition in Korea with a criteria-ministerial resignations, as a result, explained three fac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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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법정관리․폐업․폐교 등의 사유로 대학에 의한 사업의 계속적인 수행이 불가능하거나 이를 계속 수행할 필요가 없다고 장관 또는 전문기관의 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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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교수

 전화 또는 편지로 묻는 독자들에게 대답하는 칼럼.  Hotline, Action line, Call Quest, S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