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가 선보인 5천원짜리 통큰치킨이 막을 내렸다. 트위터 글을 통한 청와대 정무수석의 노련한 꾸짖음에 조용히 꼬리를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 다. 소비자들과 네티즌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경제학자들도 이를 매우 긍정적인 반향으로 보고 흥분한 것 같다. 소비자들이 깨어나서 ‘소비자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 은 것으로 보는 시각1)도 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보자. 도대체 FTA와 같은 엄청난 이득에도 꿈쩍 않던 소비 자들이 1주일 밖에 판매되지 않았던 통큰치킨에는 왜 그렇게 벌떼같이 흥분하였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비자들은 FTA 체결하라며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데모한 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그러려니 담담했던 소비자들이 FTA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사소한 이득이 사라진 것에 왜 그렇게 아쉬워하고 흥분하는 것인 가?
이 문제 뒤에는 경제적 이득의 본질에 대한 미묘하면서도 섬세한 인식이 숨어 있 다. 핵심은 ‘실현된’ 이득인지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통큰치킨 사태는 소비자가 그 맛을 일단 한 번 보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비록 1주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5천원짜리 통큰치킨의 효과는 엄청났다. 각종 매체도 뉴스거리로 또는 비난거리로 통큰치킨을 홍보해 준 셈이다. 만약 통큰치킨이 언론과 여론의 비난으로 또 청와대의 직ㆍ간접적 압력으로 매장에서 출시되기 전에 사라졌다면 정말 조용히 이 문제는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가 짧은 기간이나마 통큰치킨의 이득 을 누렸는데 이를 도로 빼앗아가니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주지 않았으면 모르는데 줬다가 뺐으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박탈감을 크게 느끼지만 이보다 더 큰 것이 시간적인 박탈감이다. 어제 누리던 편익을 오늘 누리지 못하게 된다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정책을 시행하는 데 있어서 이런 문제점은 유의하여야 할 대목이다. 정부가 표를 의식해서 선심성으로 복지정책을 함부로 펼쳐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복지혜택을 맛 본 국민들은 정부의 재정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를 축소하거나 없애려고 할 때 강하게 저항한다. 정부의 복지지출 계획을 일단 짜놓으면 줄이기가
1) 김진국, 「’통큰치킨’ 판매중단과 소비자 혁명의 기운」, 자유기업원 CFE Viewpoint No.203, 2010.
12. 20.
왜 통큰치킨에 소비자는 흥분하는가?
조성봉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2010-12-24
거의 어려운 이른바 불가역성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애초에 복 지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꼭 필요한 것인지, 인센티브의 왜곡은 없는지, 모럴해저드의 문제는 없는지 또는 재정적자로 정부가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은 없는지 심사숙고 해야 하는 것이다.
FTA는 비록 소비자에게는 통큰치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혜택을 주지만
‘실현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서 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데모하는 소비자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오히려 FTA와 관련해서는 이를 반대 하는 이익집단의 데모와 이들의 로비를 받은 정치가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뿐이 다. 왜 반대하는 사람들이 데모하는가? 이 역시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실현된 이득이 사라질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이득을 놓치게 되는 집단의 반 발이 큰 것이다. 통큰치킨의 경우에도 목소리를 높인 것은 통큰치킨으로 인해 소비자 들을 놓칠 위험에 처한 프랜차이즈 배달치킨점들이었던 것이다.
동일한 논의를 SSM에 대한 반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 SSM이 들어서면 골목안의 소비자들은 혜택을 보기 마련이다. 가까운 곳에 값싸고 좋은 상품을 파는 가게가 생 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소비자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아직 SSM이 열린 것 은 아니어서 그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내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신 들의 이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재래시장 상인과 골목의 구멍가게이다. 그리고 이들 의 목소리는 정치권에서 여야를 구분할 것 없이 대변되어 이번 국회에서 ‘유통산업발 전법’과 ‘대중소기업상생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이다. 만약 이미 들어와 있는 SSM을 규제하는 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한다면 관련 법안을 지지하는 의원들에게는 정치 적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미 그 혜택을 보고 있는 소비자들의 실현된 이득 을 뺏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올바른 정책과 정치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정치의 본질이 국민들의 다양한 이해를 반영하는 것인 만큼 이처럼 목소리를 내고 표로 결집되는 이익집단을 대변하 는 것이 어차피 정치의 숙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국민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진정한 경제적 편익이 어느 편이 클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답 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당장 눈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이익집단을 따르 기보다는 ‘소리 없는 다수(silent majority)’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위대한 정치가들은 국가와 국민 전체의 편익이 무엇인지 늘 생각하고 추구해 왔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본래 보수당(Tory) 소속이었 으나 1904년 진보당(Liberals)으로 당적을 바꾼다. 그 이유는 보수당이 자신들의 지 지기반인 부농들의 이해를 대변하여 곡물의 자유로운 무역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처 칠은 지지기반과 실현된 이득과는 무관하게 영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많은 소비자들이
싼 값에 곡물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른바 자유무역과 시장의 힘을 신뢰한 것이었다.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간 후 2차 대전 직전 수상이 되어 처음 행한 연설에서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을 요구한 정치가답게 처칠은 실현된 이득을 계산하는 정치적 책략가(politician)가 아니라 보이지 않고 실현되지 않더라도 국민에 게 진정 중요한 이득이 무엇인가를 고민한 정치적 지도자(statesman)였다.
이번 통큰치킨 사태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은 프랜차이즈 배달치킨점들을 편들어 통 큰치킨이 사라지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다시 소비자들과 네티즌들의 거센 반발이 일 자 대통령이 직접 프랜차이즈 배달치킨점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함으로써 다시 소 비자들의 편을 드는 모양새를 취했다. 반발하는 집단의 이해를 구하려 분주한 모습이 었다. 그러나 이처럼 일일이 누구 편을 들고 번번이 청와대가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이 역시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할 때 ‘작은 정부, 큰 시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촛불시위와 금융위기를 거치고 지방선거 를 치른 후에는 친서민 정책과 공정사회를 내세우며 시장에 개입하고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이제 다시 ‘작은 정부, 큰 시장’이란 초심으로 돌아가 야 한다. 그것이 당장에는 ‘실현된 이득’이 없어 소리를 내지 않는 다수의 국민을 위 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