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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s 精 神精 神 分 析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精 神精 神分 析分 析分 析 :::: 第第第第 11 卷卷卷卷 第第第 2 號第 號號 2 0 0 0號 Vol. 11, No. 2, page 272~281, 2 0 0 0
김언희의 詩에 대한 精神分析的 考察
李 炳 郁*
A Psychoanalytic Study on Un-Hee Kim’s Poem
Byung-Wook Lee, M.D.*
머 릿 말
시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 인이란 그가 속한 시대를 대변하는 중요한 거울이요 지표가 된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획일적 인 사회라 하더라도 시인의 목소리는 사람들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시대상의 변천에 따라 그리고 그 시대를 사는 사 람들의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시인들도 제각기 다른 목소리 로 노래를 부르지만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시인에게는 분명 히 주어진 사명이 있다. 시인의 사명은 당연히 시를 읽는 독 자들에게 시적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 감동이 란 차원에서만 시의 가치를 규정짓기가 현대에 올수록 더욱 어려워졌다. 현대시의 난해성 때문이다.
20세기는 해체의 시대였다. 모든 것이 분석되고 해체되 는 운명을 걷게 되었다. 서정시란 시대착오적인 어휘가 되 고 말았다. 인간의 모든 담론들이 텍스트가 되어 분해되고 해체될 운명을 감수해야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난해 시인 李箱은 20세기 詩壇에서도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혁 명적인 시작업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들은 일종 의 심리주의적 작품들로 독자들의 사랑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조두영(1999)은 李箱의 시 분석에서 시란 무의식의 산물 인 언어만으로써는 완벽하게 될 수 없을 때가 많아 시인은 그 뒤에 오랜 시간을 두고 의식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짜낸 시어로써 군데군데의 공간을 메워 전체를 연결시키는 작업 을 한다고 하였다. 이와 비슷한 견지에서 박진환(1996)은 李箱의 시적 유희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풀이
하는 자리에서 李箱 자신의 유아적 퇴행과 심리적 외상 및 방어기제를 연관시켰다. 이와 같은 작업은 특히 난해한 작 가의 작품일수록 그 이해를 돕는데 지름길이 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작품 자체의 예술적 가치에 흠집을 낼 수도 있다.
김언희(2000)는 그런 점에서 여자로 환생한 李箱과도 같 은 매우 도발적인 시인이다. 작품의 기조로 보건대 만약 그 녀 앞에서 여류시인 운운 한다면 아마도 상당한 곤혹을 치 뤄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여성으로 태어났 다는 피할 수 없는 조건 자체에 대하여 시인은 강렬한 거부 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인의 남다른 동기에 서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라는 작품의 출생을 추정해 볼 수도 있겠다. 본 저자는 이 시집에서 엄청 난 전율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감동의 전율이 아니라 고통 과 허무에서 다가오는 전율이다. 그리고 동시에 고통에 찬 삶의 질곡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대며 살아가 는 수많은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을 함께 떠올리면서 이러한 시인의 고통이 도대체 어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당연히 갖게 되었다.
김언희의 시는 외관상 결코 난해하지 않다. 평자에 따라 서는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고 적나라한 것이 오히려 흠이 될 수도 있다고 할지 모른다. 여과 없이 쏟아내는 듯한 지독 한 어휘들과 살기가 느껴지는 독설들의 잔치상 앞에서 따뜻 한 마음의 위로나 미적 감동을 구한다면 그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더욱 큰 자존심 의 상처만 남기고 시집을 내던져 버릴테니까 말이다. 따라 서 인간의 다양한 고통을 접하고 사는 정신과의사로서 한 시인의 처절한 욕설과 독설이 왜 이러한 모습으로 나와야만 하는지 그 배경에 관심을 보일 수는 있겠다. 그것은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무수한 인간들의 고통과 갈등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타인의 정신적 고통에 동참하고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Department of Psychiatry, College of Medicine, Hallym Univer- sity, Seoul, Korea
李 炳 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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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독자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그리고 독자는 왜 시를 읽는가?
시인과 독자 사이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 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심도있는 논의들이 있어왔다. 분석 적 문학비평으로 유명한 Wright(1984)는 20세기 문학에 끼친 정신분석의 영향을 언급하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 이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크나큰 영감을 불어넣어준 것은 사 실이지만 미학에 접근하는 문제에 있어서만은 정신분석이 철학에 미칠 수가 없다고 하였다. 그녀는 특히 프로이트가 예술가를 노이로제 환자와 동일시하고 꿈과 예술, 그리고 본능적 욕구를 관련시킨 점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그러 나 Freud(1927)는 창조적인 시인 앞에서 정신분석학적 방 법은 손을 들 수 밖에 없다고 실토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Freud(1908)는 창조적인 예술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내면적 비밀을 성취하는지에 대해서도 정신분석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솔직히 시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 자신보다 오히려 수많은 예술가들과 비 평가들 사이에 정신분석이론은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 던 것이다.
Arieti(1976)는 시와 심미적 과정을 탐색하면서 오늘날 의 작가에게 시란 독자들로 하여금 일상의 삶을 비껴가게 하는 동시에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한 아름다움과 상상치도 못했던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주는 마술적 합성과정의 일종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일상으로부터 벗어남이 결코 세상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마술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재발견토록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다. 그는 시의 역할에 대해서도 일차과정과 이차과정의 구 성요소들간의 관계를 명료하게 밝혀준다는 측면에서 시만큼 뛰어난 예술 장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시를 높이 평가했다.
이와는 좀 다른 시각에서 Green(1978)은 작품을 통한 작 가와 독자 사이의 의사교환은 분석가와 환자 사이의 관계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현대시에 끼친 정신분석의 영향에 대하여는 일찍부터 언급되어 왔다. 이승 훈(1989)의 증언에 의하면 이미 1947년에 김기림이 현대 시에 끼친 프로이트의 영향을 언급하면서 자유연상법에 의 한 무의식 탐색기법을 시인들도 시의 기법에 적용하기 시작 했음을 밝힌 바 있다. Freud(1908)는 시인과 공상의 관계 를 탐색하면서 우리가 시인과 더불어 마음의 심층 속에 있 는 근원으로부터 쾌감을 얻게 되지만 시인이 제공하는 모든 미적 쾌감은 작품감상의 고유한 즐거움 중의 하나이며 이는 일종의 긴장감의 해방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자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독자 자 신의 공상을 즐기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아동 의 놀이와 어른의 공상을 대비시키면서 시인은 이처럼 놀이 에 몰두하는 아동과 같은 일을 한다고 하였다. 더욱이 행복 한 사람은 결코 공상하지 않으며 불만족한 사람만이 공상한 다는 고전적인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즉 불만족스런 현실의 수정이든 에로틱한 소망이든 모든 공상은 소망충족에 기초 한다는 것이며 작가는 작품의 주인공이 겪게 되는 위태로운 운명을 지켜보며“나는 절대로 안전하다”는 안심으로 위안 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마광수(1989)는 심리주의 비평이라 는 용어를 통하여 현대시에 대한 정신분석적인 해석방법을 시도하였다. 그는 특히 프로이트의 리비도이론의 관점에서 주로 새도매저키즘, 페티시즘, 에로스와 타나토스, 관음증과 나르시즘, 노출증 등의 승화 차원에서 한국 현대시를 논하 였는데 Wright(1984)는 평하기를 정신분석적 담론은 현대 적인 양식의 고해성사이며 금지된 것을 바라보는 것은 쾌락 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문학은 이러한 도착적인 쾌락으로 흘러넘침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논의들은 결국 시인과 독자간에 이루어지는 의식적, 무의식 적 교감은 오늘날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에 논의되고 있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과 흡사하지만 시인과 독자는 서로를 알지 못하며 상호 교류를 통하여 자신들의 무의식에 대한 통찰에 이르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근친상간적 욕구와 환상
1995년에 나온 김언희의 첫시집 [트렁크]는 독자들에게 심상치 않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 가죽 트렁크/이렇게 질겨빠진, 이렇게 팅팅 불은, 이 렇게 무거운/지퍼를 열면/몸뚱어리 전체가 아가리가 되어 벌 어지는/수취거부로/반송되어져 온/토막난 추억이 비닐에 싸 인 채 쑤셔박혀 있는, 이렇게/코를 찌르는, 이렇게/엽기적인”
[트렁크]
시인은 자신의 연상을 껌 씹듯 내뱉으며 독자들의 연상을 유도한다. 일종의 상호연상이라고 할까. 남진우(2000)는 가 족간의 금기에 대한 파괴와 해체를 목표로 하는 김언희가 개설한 가족극장에서 보여주는 시나리오, 즉 아버지와 어머 니, 그리고 딸이라는 세 배우를 통하여 온갖 착란과 전락의 소용돌이를 보여줌을 지적하고 결국 성과 가족을 둘러싼 모 든 금기와 신화를 산산이 부숴버림으로써 근친상간은 서커 스의 일종이 되고 근친살해는 막간의 여흥거리가 된다고 논 평하였다. 이처럼 김언희의 시집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에 나타난 세계는 주로 딸과 아버지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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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지는 성적 환상과 욕구로 가득 차 있다. 거의 노골적인 성관계의 묘사는 시적 감흥보다는 독자들의 잠재적인 근친 상간적 욕구를 자극함으로서 다 같은 무의식의 한 배를 탔 다는 공감대를 얻기 위한 시인의 바램을 반영하는 것 같다.
특히 마지막 3부의 가족극장 연작시 부분은 부모에 대한 적 개심과 혐오감이 절정에 이른 감이 있다. 여기에 나타난 세 계는 인간의 마음속에 전개되는 地獄圖 그 자체라 할만큼 가 장 극단적이고도 여과되지 않은 증오의 표현으로 가득하다.
가족극장의 첫 번째 시를 보자.
“아버지가 내 얼굴에 던져 박은 사과/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은 식칼/아버지가 내 가슴에 던져 박 는 사과/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는 식칼/아버지 가 내 자궁에 던져 박을 사과/아버지가 그 사과에 던져 박을 식칼”[TE]
이 시에서 반복되는 시어는 아버지, 나의 몸, 던지고 박음, 사과와 식칼이다. 여기서 사과는 성적 상징의 표현이요, 식 칼은 죽이고 싶도록 미운 적개심의 상징적 표현이다. 부녀 사이에 전개되는 성적 욕망과 이율배반적인 적개심이 혼재 된 모순된 심리상태가 드러나 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 간의 근친상간적 욕구는 피할 도리가 없는 거의 숙명적인 조건이기도 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윤리적인 단어 중의 하나는 근친상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인간 무의식의 상당 부분은 이처럼 비도덕적인 세계로 가 득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갈등 과 고통 속에 괴로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모르 는 게 약이라는 말도 있지만 알아서 도움되는 일도 많은 법 이다. 인간 의식과 내면의 상호 반목과 충돌 그리고 타협에 서 비롯되는 온갖 정신병리현상들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 다. 문제는 그러한 모순과 병리를 이해하고 납득하며 그것 에 얽매이지 않고 앞으로 더욱 진보해 나아가는 것이 순서 이지만 그렇게 순조로운 과정을 밟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이 필요하고 종교가 요구되었던 것 이다. 시의 내용을 문자적 의미로만 본다면 오히려 아버지 에 대한 격렬한 적개심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근 친상간적 욕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 다. 그러나 시의 이면에 깔린 전체적인 배경은 부녀간에 도 착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사장면이며 딸이 아버지에게 보이는 강렬한 증오심은 오히려 강렬한 애정의 반어법이기 쉽다.
즉 작품이라는 시인의 의식적 표현세계에는 일종의 반동형 성에 의하여 증오심으로 나타남으로서 시인 자신의 근친상 간적 욕구는 자신의 무의식세계 안에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안
전하게 포장하여 전혀 상반된 감정 양식인 것처럼 말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욕망 분출은 시인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적어도 시 에서는 부도덕한 아버지가 힘없는 딸을 강제로 겁탈하는 듯 한 묘사로 일관되고 있지만 무의식의 진실은 그와 정반대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한 현상은 실제 정신치료 임상에서 도 비일비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들은 전 도된 메시지를 읽게 되는 것이다. 김언희의 시는 근친상간 적 성폭행을 고발하는 시가 아니다. 단순히 성폭행을 고발 하기 위해서 그토록 적나라하고 치밀하며 자극적인 시어의 반복은 굳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근친상간을 노래하는 시는 귀를 원하는 게 아니라 눈과 상 상력을 요구한다. 즉 관음증적 시선을 통하여 성적인 공상 또는 정신적 자위행위에 호소한다. 따라서 시인의 시어 선 택과 표현 기법은 자연히 시각적 자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 이러한 전략은 오늘날의 시각적 세대를 대표하는 젊은이 들에게 상당히 섹스어필하는 자극이 될 수 있겠다. 예를 들 어 보기로 하자. [과부가 된 아버지]에서는 허리를 꼬는 아 버지, 과부가 된 아버지, 생리중인 아버지, 시뻘건 아버지의 음부, 아버지의 질, 빗자루 손잡이와 그짓을 하고, 자동차 뒷자리에서 스무켤레의 구두와 하고, 유리상자 속에서 왕뱀 과 동거를 하는 아버지, 나를 부르는 아버지 등의 표현처럼 굶주린 성적 욕구에 몸부림치는 과부의 모습에 아버지를 전 치시키면서 딸을 요구하는 아버지의 동물적 욕구를 묘사하 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아버지에게 투사함으로 서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방어기제를 나타내고 있다. 시인의 사물 인식은 모든 대상이 성적으로 비치고 있는데 [껌]에서 도 마찬가지다. 찌르고 찔리고 벌리고, 고무질과 고무살, 음 부, 씹고, 한입에, 처덕처덕 등의 표현은 노골적인 성적 환 상을 자극한다. [반죽]에서는 절단된 다리, 자궁 속에서 썩 어가는 걸레, 붉어지는 사마귀의 눈동자, 충혈된 단백질, 금 단의 고기반죽, 진기한 오물, 등에 와서 달라붙는 그것, 녹 슨 부엌칼로 밤새도록 자르는 잘리는 그것의 대가리, 밤새 도록 내가 물고 잠드는 썩은 생선 대가리 등의 표현처럼 성 행위와 남근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 및 증오심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는 곧 남근선망을 억압하고 오히려 그에 상반되는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반동형성임을 알 수 있다. [이리 와 요 아버지]에서는 더욱 노골적이다.
“이리 와요 아버지 내 음부를 하나 나눠 드릴게 아니면 하나 만들어드릴까 아버지 정교한 수제품으 로 아버지 웃으세요 아버지 아버지의 첫날밤 침대맡 에는 일곱 어머니의 창자로 짠 화환이 붉디 푸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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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 있잖아요 벗으세요 아버지 밀봉된 아버지 쇠가죽처럼 질겨빠진 아버지의 처녀막을 찢어드릴게 손 잡이 달린 나의 성기로 아버지 아주 죽여드릴게 몇 번이고 아버지 깊숙이 손잡이까지 깊숙이 아버지 심 장이 갈래갈래 터져버리는 황홀경을 아버지 절정을 아버지 비명의 레이스 비명의 프릴 비명의 란제리로 밤단장한 아버지 처년 척하는 아버지 그래봤자 아버 진 갈보예요 사지를 버르적거리며 경련하는 아버지 좋으세요 아버지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를 뿌리째 파 내드릴게”
이쯤되면 근친상간적 욕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독자의 관음증을 자극함으로서 자신의 무대에 동참시키고자 한다.
[HOTEL ON HORIZON]은 호텔에서의 정사 장면을 통 하여 독자들의 근친상간적 환상을 자극한다.
“ 지평선/호텔/꼭대기층/마지막 방/낡아빠진 침대 스프링이/저 혼자 삐걱이며 자위를 하고/당겨올리면/
착착 맞물려 올라오는 세기말의/크리넥스, 아버지, 나는/환생한/티슈예요/바르면/그 자리서 짐승이 되는 연고/작다고 느끼세요?/더 긴 시간 원하세요, 해면체 아버지?”
이토록 작가가 집요할 정도로 일관되게 반윤리적 근친상 간적 표현과 성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 태도를 유지하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독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지 옥체험과도 유사한 끔찍스런 잔혹미의 극치를 느끼게끔 할 것이 뻔한 의도를 작가는 왜 고집하는 것일까. 시집의 서두 에서 작가 자신이 경고하고 있다.“임산부나 노약자는 읽을 수 없습니다. 심장이 약한 사람, 과민체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는 구토, 오한, 발열, 흥분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중략 … 무엇보다 이 시는 똥 핥는 개처럼 당신을 싹 핥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시인의 경고처럼 작가는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야기시키기 위해 작품을 썼으며 동시에 마지막 표현대로 자신의 유혹에 걸려든 독자, 즉 똥 같은 타인들을 개처럼 핥아 치워버림으 로서 자신의 세상에 대한 적대감과 복수심을 해소하기 위한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 즉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소용돌이 치는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것 을 외부로 투사하고 일반화시켜 적대시하고 있는데 이는 바 로 투사적 동일시의 기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원초적인 단계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모순된 감정 및 욕구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아픔과
고뇌를 시인은 노골적으로 회피하고 있으며 따라서 보다 예 술적 감동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데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 는 듯 하다. 그러한 망설임은 비록 고통 그 자체의 감정이긴 하지만 승화라는 증류수를 통하여 영원히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 역시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달리 말 해서 시인은 고통을 못이겨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듯이 보이 지만 사실은 그러한 고통을 즐기고 원하는 듯이 강한 집착 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 상황이야말로 인간 무의식이 지닌 악마성이라고 하겠다. 아니면 시인이 말하는 짐승 그 자체일 것이다. 시인은 길들여지는 것을 두려워 한 다. 길들여진 짐승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제 몸 어딘가에 남근이 남 아 있거나 아니면 뽑혔거나 할 거예요. 여자는 잠재적으로 남자지요.” 남근을 지닌 여자, 이빨 돋은 자궁, 이 모든 용어 는 이미 정신분석의 고전적 문헌들에서 언급된 표현들이 아 닌가(Fenichel 1945). 남근선망을 말한 프로이트에 대해서 그토록 페미니스트들이 줄기차게 그를 쇼비니스트로 비난해 왔던 바로 그 주제가 아니던가. 남근을 지니지 못하였다는 원망, 자신에게도 남근을 나눠주고 공유해 주기를 바라는 소 망은 결국 좌절되기 마련이며 그로 인한 딸의 뼈아픈 좌절 감은 남근을 지닌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돌변한다. 아 버지에 대한 성적 갈망과 소유하지 못할 남근을 차라리 제 거해 버리려는 복수심은 뭇 남성들에 대한 이유없는 적개심 과 경쟁심리로 나타나기 마련이며 더 나아가 불감증의 주된 원인도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시나리오는 무의식 안에서 이 루어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인간의 일상적인 의식세계에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性과 음식
성과 음식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속 한다. 따라서 시인은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 대해서도 성적 인 환상을 투사한다. [고등어 대가리]에서 능욕된 밥상 홀로 남는다, 가랑이를 벌린 채 내던져진 젓가락들과 엉덩이를 까내린 채 엎어져 있는 숟가락, 네가 흘렸니? 붉은 국물이 흥건히 괴어 있는 비닐 식탁보를 들추지마, 충혈된 눈깔로 무얼 더 보고 싶니, 너 고등어 대가리! 등의 표현은 밥상인 지 침대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인 표현과 어휘들 로 난무한다. 물론 저속한 일상대화에도 한 여성을 따 먹는 다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성적 환상을 통한 시인의 투시 력은 실로 놀라울 뿐이다.
작가는 성과 음식을 통하여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즐겨 표 현하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면 햄버거, 껌, 고기, 마요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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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떡, 사탕, 버섯국, 팔보채, 생선회, 달걀, 정어리, 수박, 사과, 호두 등의 시어 선택을 통하여 성적 환상을 자극하는 효과를 시도하고 있다. 먹는 음식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도구들도 모두 성적 환상의 소도구가 된다. 숟 가락, 젓가락, 냄비, 도마, 식칼, 식탁보, 밥상, 이쑤시개, 수 저통, 주전자, 나이프 등의 도구들 모두 시인의 성적 시선 을 피해 나갈 수 없다. 일례로 [햄버거가 있는 풍경]을 한 번 보자.
“식빵 한 조각을 깔고 식빵 한 조각을 덮고/다져 진 살코기가/오한을 참고 있다/짓무른 상추 혓바닥 에/검은 반점들이 번지고/엎어놓은 스텐 식기 아래/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른 채 도르르 몸을 말고 죽어 있는 괄태충/행운목은, /토막난 몸통에서 돋아나오는 잎사귀를/증오한다 제 잎사귀가/아닌/푸른/”
여기서 햄버거의 모습은 남녀가 위 아래로 합쳐진 성교 장면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끼어 오한에 떨고 있는 살코기는 그네들의 희생양으로 묘사되고 있다. 썩은 상추와 도 같은 인간들의 혓바닥은 혐오의 대상이며 차가운 스텐 식기 아래에는 벌레가 두 손을 사타구니에 찌른 채 죽어 있 다. 토막난 몸통은 갈기갈기 찢기운 육체의 단말마적 외침 이다. 거기서 돋아난 잎사귀를 시인은 본래의 자기가 아니 라고 증오한다.
정신의학 용어로 인간의 자아방어기제 중에는 sexuali- zation이 있다. 금지된 욕망과 관련된 불안을 회피하기 위하 여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성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기제를 말 한다(Vaillant 1977). 시인 김언희의 시력은 유독 성애화된 렌즈의 기능 발달로 인하여 남들이 포착할 수 없는 사물과 기능들에서도 그녀만의 예리하고 기발한 성적 의미와 형상 미를 추구하는 실로 비범하다 아니할 수 없는 놀라운 경지 를 보이고 있다. 어떤 평자에 따라서는 이처럼 섹스로 도배 를 한듯한 표현들의 범람에 대하여 오늘날의 우리사회가 요 구하는 천박한 섹스화의 물결에 영합한 얄팍한 속물주의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치가 않다. 실제 로 초기 정신분석의 역사에서 프로이트가 서구인들로부터 가장 격렬하게 매도당하고 비하된 이유 중의 하나는 그의 유 아성욕설 및 리비도가설 때문이었다. 당시 서구인들의 소위 건전한 자아는 프로이트가 파헤친 (김언희가 시에서 자주 표현한 무덤을 파헤치듯이) 무의식의 어둠과 도착적인 세계 를 수용하기에는 너무도 보수적이며 탄력성을 상실하였고 고루한 가치관에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서구사 회의 합리주의로 포장된 위선과 가식을 가차없이 벗기고 그 이면에 가리워진 무의식세계를 과감히 폭로함으로서 서구인
들의 자존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는데 사 실상 그러한 노출의 아픔을 통해서 치료에 대한 동기부여가 생겨나고 동시에 치유의 가능성도 보이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한세기 전에 시도했던 작업을 김언희는 그녀 의 시작업을 통해서 다시 재현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시 에는 치유의 기능이 없다. 시집 한권을 통독함으로서 자기 통찰에 이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작 시를 쓰 는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시인은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동력에 의해 끊임없이 시를 뱉어내고 시어를 고르며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지만 시인이 일단 그러한 욕망에서 자유로워질 때 시심은 고갈되고 시는 증발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불길한 예감 때문에 수많은 시인들 이 잠 못이루는 밤을 지새우며 시작에 몰두하는지도 모른다.
성과 폭력, 죽음
김언희의 시에는 작가가 여성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잔 혹한 표현들이 주종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김언희는 독자 들의 허를 찌른 셈이며 이 세상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편견 에 일격을 가한 셈이다. 파격적인 표현은 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린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전 기충격요법을 가하듯 계속해서 뒤통수를 때린다. 물론 평범 은 이미 미덕이 되지 못하고 새롭게 튀어야 미덕이 되는 세 계가 되고 말았지만 시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 싶다.
마치 새도매저키즘적인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도착적 세계는 과연 시인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를 보자.
“말라죽은 앵두나무 아래 잠자는 저 여자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양 한 마리가 무릎을 꿇은 채 여자의 잠속을 절룩 절룩 걸어다닌다 도끼에 찍힌 자국들이 헐벗은 사타구니처 럼 드러나 있는 앵두나무 저 여자는 언제 죽을까 죽은 앵두 나무 아래 죽을 줄 모르는 저 여자 미친 사내가 도끼를 들 고 다시 등뒤에 선다 미래의 상처가 여자의 두개골 속에서 시커멓게 벌어진다 앵두나무 죽은 앵두나무 말라죽은 앵두 나무 도랑을 가득 채우고 흐르는 것은 검은 머리카락이다”
의사이면서 20세기 독일시의 대표주자인 고트프리이트 벤을 연상시키는 냉혹한 표현 방식도 눈에 띄지만 그보다 더한 도착적 표현이 가미됨으로서 구원이나 희망의 가능성 조차 실종되어버리고 가치전도를 꾀하는 의식혁명의 색채거 나 아니면 위선과 가식에 물든 현대인들을 조소하고 혐오하 는 동시에 시인 자신조차 학대하는 자학적 경향마저 보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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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서 작가의 의도가 오히려 불분명해져버린 느낌이 든다.고트프리이트 벤의 시는 냉혹함이 특징이지만 김언희처럼 잔혹하지는 않다. 냉혹함이란 차가움이며 헤밍웨이의 소설 [킬러]처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작가의 태도가 드러나는 것이 특징인데 잔혹함이란 타인을 해치는데서 쾌감을 느끼 는 병적 감정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히려 도착에 가까운 심리상태인 것이다. 즉 Benn(1974)의 시에서는 쥐새끼들, 시체공시소, 익사한 여인, 똥, 눈알, 피, 수술칼 등의 표현들 이 흔히 쓰여졌지만 주로 시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배경이나 상징으로서 표현된 반면에 김언희는 노골적으로 잔혹한 행 위를 나타내는데 사용된 표현들이 주종을 이룬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녀의 시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구멍에 대한 혐오감, 남근에 대한 복수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같은/똥같은/갈보같은 구멍/천역에 찌들린 구멍, 피로로 썩어가는 구멍, 이미/끝장이 난 구멍/끝장이 난 다음에도 중얼거리는/크르륵거리는 구멍, 풍선껌 을/씹는, 말랑말랑한 이빨로/내 머리를 씹는, 옴쭉/옴 쭉 나를 /삼키는 구멍/헐, 헐, 헐/웃는/구멍”[황혼이 질 때면]
[그러엄, 이내]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익숙해진대두 고옫 도마는 칼, 때문에 있는거야.
칼 맞는 재미로 사는 거라구, 난자당하는 맛에, 그래 금방 익숙해질테니 두고봐, 일단 피 맛만 보게 되면 그래, 도마는 피를, 먹고 사는 거야, 난도질의 현장 에서, 셀 수도 없는 칼자국들이 피를, 그렇게 피 없 이는 못 살게 되는 거지, 그러엄 이내 익숙해져, 도 마처럼,”
여기서 시인은 남성의 상징을 칼로서 여성의 상징을 도마 로 비유하고 남녀의 성관계를 난도질의 현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칼과 도마, 피와 난자 등의 극단적인 잔혹스런 표현을 통하여 사랑이 소실된 육체들의 동물적 본능과 마비되고 실 종된 윤리의식을 부각시키고 자극함으로서 혹자에 따라서는 단순한 시인의 환상이나 욕구 부정 차원이 아니라 차마 말 할 수 없는 성적, 심리적 외상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시인의 욕구와 동기는 가열차다.
[파]에도 역시 칼이 등장한다.
“비가 내리고/정신없이/칼을 찾고 있지 비가/내리고 투명 한 벌레들이/실실이 내리고 손아귀에 칼이/돋아 있지 유리 창에/벌레들이/주르르/미끄러져내리고 정신없이 칼/버릴 데 를/찾고 있지 빨랫줄 위에/벌레들이 곰실거리지 칼날에서/
식은 땀이 뚜둑/뚜둑 떨어지지 비가/내리지 벌레비/눈썹 위/
허옇게 알을/슬지 손아귀에 들붙어/떨어지지 않는/칼을 으 적/으적/씹고 있지”
칼을 으적으적 씹어 먹을 만큼 대단한 적개심이 아닐 수 없다.
[늙은 창녀의 노래 2]를 보자.
“나를 입고/나를 신고/나를 걸타고/한 입 또 한 입 나를/
베어 무는 당신/피 빨고 노래 빨고/질겅질겅 씹어 재떨이에/
내뱉는 당신/온몸에 남은 푸른 이빨자국들을/사랑할게요 시 퍼렇게/사랑할게요 가지 말아요/버리지 말아요 나의/기둥서 방 당신/붙잡을 바짓가랑이도 없는 당신/입에서 항문으로/당 신의 음경에/꼬치 꿰인 채/뜨거운 전기오븐 속을/빙글빙글 빙글/영겁회귀/돌고 돌게요 간도/쓸개도 없이”
여기서 한가지 고찰해 본다면 시의 화자는 남성에 대하여 상당한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을 짓밟고 학대하며 성 적인 착취에 혈안이 되어있는 마귀상으로 남성을 묘사하고 있다. 동시에 작품마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에 대하여 극 도의 잔혹한 복수심과 증오심, 혐오감 등을 숨기지 않고 있 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남근선망(penis envy)으로 설명한 바 있다. 인간의 근원적인 선망은 강렬한 적개심을 동반한다. 질 투 때문에 살인도 저지르는 게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흔한 일 이다. 살인의 역사보다 질투의 역사가 더 오래되었다. 카인 이 아벨을 죽인 것은 질투 때문이었다. 클라인은 프로이트에 맞서 남근선망보다 더욱 원초적인 유방선망(breast envy) 을 주장하였지만 두 학자의 대립도 어찌보면 남녀간의 성대 결 구도로 보여지기도 한다. 즉 남근이 우세하냐 아니면 유 방이 더 우세하냐의 싸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남성인 프 로이트는 남근 위주의 학설 때문에 남성우월주의자로 비난 받았지만 클라인의 유방 위주의 학설은 또 다른 여성우월주 의라고 비난받았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라베]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는 음산한 분위기는 ne- crophilic한 도착적인 표현을 통하여 근친상간이 곧 屍姦이 나 마찬가지의 절망적인 상황임을 외치고 있다. Grave는 아 주 느리게를 뜻하는 이태리말이기도 하지만 기묘하게도 영 어 철자로는 무덤을 가리킨다.
“그 여자의 몸속에는 그 남자의 시신(屍身)이 매 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속에는 그 여자의 시신 (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 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 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시취(屍 臭)를 맡았다 그 남자의 정액에서 그녀는 시즙(屍汁) 맛을 보았다 서로의 몸을 열고 들어가면 물이 줄줄 흐르는 자신의 성기가 물크레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김언희의 詩에 대한 精神分析的 考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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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屍姦)이야 근친 상간이라구 묵계 아래 그들은 서로를 파헤쳤다 손톱 발톱으로 구멍구멍 붉은 지렁 이가 기어나오는 각자의 유골을 수습하였다 파헤쳐 진 곳을 얼기설기 흙으로 덮었다 그는 그의 파묘(破 墓) 자리를 떠도는 갈 데 없는 망령이 되었다 그녀 는 그녀의 파묘(破墓) 자리를 떠도는 음산한 귀곡성 (鬼哭聲)이 되었다”
여기서 성과 죽음은 서로 관통하며 일체가 된다. 성과 죽 음은 인간의 내면에 몰래 자리잡은 동물적 특성을 증거한다.
따라서 성과 폭력, 죽음은 함께 붙어 다니는 괴물이다. 에로 스가 타나토스로 뒤바뀌는 순간들이 시인의 예리한 감수성 에 포착된다. Segal(1997)은 죽음의 본능을 논하면서 잭 런던의 소설 [Martin Eden]을 재치있게 인용한 바 있다.
주인공 마틴이 마지막에 투신 자살을 기도하는데 물 속에 뛰어들자마자 그는 자동적으로 헤엄을 치려고 발버둥친 것 이다. 그는 헤엄을 멈추려고 생각했지만 그의 손이 말을 듣 지 않았다.“이것이 바로 살려는 의지다.”라고 그는 생각하 고 그런 자신의 생각에 조소를 퍼부었다. 즉 삶에의 의지와 죽음에의 의지가 동시에 작용하고 대립하고 있는 장면이다.
작가들은 이처럼 순간적인 포착에 뛰어난 재능들을 지니고 있다. 김언희의 시에 흘러넘치는 성과 폭력, 죽음의 이미지 들은 결국 아버지를 갈망하고 부인하며 살해하고자 하는 양 가적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러한 모순의 위기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환상 속의 부녀가 함께 동반자 살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구원의 방도가 보이지 않는 무 의미한 행위의 반복 속에 시인은 부녀간의 절망적 근친상간 장면과 거세 및 살해욕망 등을 감추지 않고 죽음의 끝까지 몰고간다.
시인과 나르시즘
시는 시인의 전부가 아니고 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시는 시인의 일부를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런 점에 서 시는 시인과 전혀 무관 할 수 없다. 시인 자신도 그런 점 을 각오하고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자신과 전혀 무 관한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다면 그는 심리학을 부정해야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 심리를 빼놓고 쓰여진 예술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예술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르시즘적이다. 가장 완벽한 나르시즘 상태는 태어 난 직후 수개월간 엄마 품에 안겨 젖을 빨 때라고 할 수 있 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관점에서 나르시즘을 보면 서 예술가들은 이러한 나르시즘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
하고 빠지기 쉬운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며 무의식에 가장 민감한 이런 예술가들이야말로 위험한 무의식세계를 어느 누구보다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특권과 자질을 지닌 사 람들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Segal(1983)은 대상관계이론의 관점에서 나르시즘의 구조를 죽음의 본능과 선망의 표현 및 그것에 대항하는 방어라고 보았다. 즉 삶의 본능은 자기애 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사랑이 대상과의 애정관계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삶에 대한 애정은 자기 자신 을 포함하여 삶을 제공하는 대상(life-giving object)까지 도 사랑함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르시즘에서는 삶을 제공하는 관계(life-giving relationships) 및 건강한 자기 애(self-love)가 똑같이 공격당하기 때문에 죽음의 본능과 선망의 우세 속에서 강렬한 원초적 감정에 대한 방어가 활 성화된다고 보았다.
정신의학적 임상경험에서 볼 때,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들은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자신 밖에 모 르며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자신에 몰두한다. 남에게 관심 을 보일 경우는 타인들로부터 존경과 박수, 부러움과 열광 적인 환영을 받기를 원할 때 뿐이다. 그들은 항상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으며 남들이 무관심하 면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인 간으로 남아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에 자신의 재능과 우수함을 알 리고 유명세를 얻기 위해 안간 힘을 쓴다. 사랑을 받으려고 만 하지 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이용하고 일단 출세하고 성공하고 나면 뒤도 돌아 보지 않고 냉담하게 군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데 명수다. 자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믿으면서 사람 들을 멸시한다. 자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우 수한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타인들은 당연히 자기 밑에서 떠받들고 존경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그러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여지없이 그를 공박하고 증오하며 복 수하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카리스마적이어서 이상한 매력을 발산하기 마련이므로 항상 추종자들을 형성하고 다 닌다. 따라서 나르시즘의 병리가 깊을수록 추종세력을 형성 하는 세계에 안주하며 자신의 왕국을 구축한다. 예를 들면, 종교단체나 정치적 단체는 이들의 주된 서식처가 된다. 그 러나 예술가들은 독자적인 생활을 주로 하기 때문에 충족되 지 못한 자신들의 욕구를 창작생활로 승화시키는 사람들도 많지만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의 예술가들은 정신적 방황과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거나 발광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특히 천재들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독일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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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예술의 시발은 외부적 사물이나 자연의 낭만적 또는사실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심리적 실상을 작 가 자신의 내면적 과정을 통하여 과감하게 드러내 보임으로 서 심리주의와 연결된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세계는 위험으 로 가득 차 있다. 그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오늘날의 젊은 시 인들은 자신들의 절망적인 용광로 속을 용기있게 밖으로 쏟 아내 붓는 것이다. 환자들과의 면담을 통하여 환자의 무의 식적 환상과 욕망을 항상 접하며 살아가는 정신분석가나 정 신치료자는 온갖 추악하고 끔찍하며 비상식적인 무의식 내 용에 아주 익숙한 직업인이다. 그러기에 예술작품에 반영된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을 접할 때도 그와 마찬가지로 비현실 적 무의식 내용에 압도되지 않고 관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90년대의 젊은 시인들에 대하여 논하는 자리에 서, 어떤 평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 우스와 미궁에 관한 이야기를 빌어 현대문명과 자연의 대립 구도로 현대시의 특징을 끌고 나가기도 하였지만 김언희의 시는 현대인의 절망적 상황을 총체적으로 압축한 그런 거창 한 문명사적 내용이라기 보다는 지방도시의 한 소박한 중년 여성의 내면에도 일상적 대화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없고 풀 길도 없는 강렬한 내적 갈등과 욕망이 그녀의 무의식 속 에 흐르고 있음을 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증거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지도 모른다. 남진우(2000)는 김언 희를 메두사의 시에 비유하였는데 신화에서 목이 잘린 메두 사의 머리를 본 사람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돌이 된다고 전 해진다. 그런데 메두사에 대해서 프로이트가 이미 발표한 아주 흥미로운 짧은 글이 있다. [메두사의 머리]에서 프로이 트는 목을 자른 다는 것은 거세를 의미하며 따라서 메두사 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다름아닌 거세공포라는 것이다. 메 두사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뱀들 역시 무수한 남근들을 상 징함으로서 거세공포를 완화시켜주는 효과를 지닌다는 설명 이며 또한 메두사를 본 순간 돌처럼 굳는다는 것도 발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성적인 욕망을 물 리치기 위해서 처녀인 아테네 여신은 자신의 방패에 이 무 서운 공포의 머리를 붙였다는 해석이다(Freud 1922). 김언 희의 시를 본 독자들은 거세공포를 느낄 것인가 아니면 흥 분할 것인가. 그러나 전율은 공포와 흥분에서 동시에 경험 되어질 수도 있다. 김언희의 시는 분명 끔찍스런 전율을 일 으킨다. 그런 점에서 메두사의 비유는 적절하다. 다만 그 배 경에 숨겨있는 거세공포를 프로이트는 지적한 것이다.
시인 김언희는 어느덧 두 딸을 둔 40대 후반의 여성이다.
남편은 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큰딸은 의대 본과 3학년 에 다닌다고 한다. 그녀는 지금도 경남 사천시 모 고등학교 에서 영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수줍음을 타고 나즈막한 목
소리에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평자들이 말하듯 그녀의 시집은“도발적이고 엽기적이며 가차없는 언어들”로 이루어 져 너무도 위험하며“살인적인 음란”으로 독자들을 고문한 다. 그녀의 어휘들은“잔혹한 유희”의 잔치 속에 독자들로 하여금“비현실적인 지옥의 악몽”을 연상케 한다.“아버지 의 성기”가 날뛰는 시적 무대가 마치“난자당한 사체실” 같 다고도 한다. 왜 그런 시를 쓰는지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시 인은“마려우니까요. 뭔가 마려운데 뭐가 마려운지도 모르 고, 그게 뭘까 고민하면서 쓰여진 것들이 제 시죠”라고 대 답했다고 한다. 그녀의 답변은 자신조차 제어하기 어려운 시 인 자신의 무의식적 사고와 욕망의 분출을 의미한다. 시인 의 말은 마치 카우치에 누워 분석받는 환자가 자유연상을 통 하여 자신의 내면에 도사린 원초적인 욕구들을 언어화시키 는 작업과 유사하게 들린다. 마려운 것은 아래로 나오는 것 이지 머리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인은 자신의 드러 난 무의식적 환상에 대하여 해석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 나 그러한 시작업을 통하여 상당한 카타르시스는 느낄 것이 다.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온갖 도착적, 공격적, 비윤리적 그리고 나르시즘적인 욕망과 환상들이 일단 예술적 포장이 라는 안전장치의 틀속에서 호흡하게 됨으로서 시인은 자신 의 욕구를 충족하는 동시에 자신의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됨으로서 자신의 심리적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맺 음 말
김언희의 시는 한마디로 근친상간적 주제의 엽기적인 잔 혹시이다. 어찌보면 세기말적인 허무주의에 가까운 극단적 인 퇴폐시라고 할 수도 있다. 노래하는 시가 아니라 차라리 뱉어내는 시에 가깝다. 시인은 시적 감동을 표현한 게 아니 라 자신의 내적 욕구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뱉어냄으로서 그 녀와 비슷한 정신적, 성적 체험의 함정에 걸린 독자들의 무 의식을 두드리고 공감을 얻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독자들에 게는 지옥같은 체험으로 복수를 가하고 있다. 김언희의 시세 계에 사랑이나 용서는 없다. 타협과 절충도 없다. 오로지 적 과 증오만이 존재하는 극단적 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 나쁜 놈과 죽일 놈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인간의 유형은 단지 가해 자와 피해자,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노예일 뿐이다. 시는 다양 한 사회상의 일부를 반영한다. 그러나 어떠한 시도 시인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단 한편의 시에도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사상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김언희가 낳은 시는 그녀의 무의식적 환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러나 시인의 의식세 계는 그녀와 이웃한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 리 인간의 평범한 의식속에는 비범한 무의식이 도사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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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리고 양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실랑이가 끝없이 이 어지기 마련인데 시인은 그 틈새를 여지없이 파고들어 각자 의 비밀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마치 겉과 속이 뒤집어진 공 처럼 시인은 예술적 마술로 독자들에게 최면을 건다.
김언희는 잔혹하고 도착적인 절망상태를 표현하는 가운데 참된 사랑의 결핍이 어떠한 결과
를 초래하는지 묵시적으로 우리에게 암시하는 바 크다고 하 겠다. 물론 작가 자신에게 그러한 의도가 실제로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절망적인 몸부림 끝에 토해지는 시어들의 틈새에 빠지고 없는 것은 결국 참된 사랑이란 단어 밖에 없 기 때문이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이란 말은 나타 날줄 모른다. 그리움도 없다. 지옥같은 포르노적 몸부림과 복수의 칼날 내음만이 난무할 뿐이다. 진정한 사랑과 따스 함이 증발한 세계란 결국 처절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 가. 이러한 시가 세기말이 아니고 새로운 세기초에 나왔다 는 것은 역설적인 동시에 대중들의 꿈같은 환상을 깨는 역 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처한 세계의 실상, 즉 사랑이 실종된 삭막한 황무지처럼 참담한 세상의 모습을 보 는 것 같아 김언희의 시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의 시에는 모두 마침표가 없다. 말을 잇는 콤마는 있는 데 마침표가 없다는 것은 말을 끝내고 난 뒤의 마지막 침묵 을 시인은 두려워하고 있으며 계속 보존하고 이어가야만 할 욕망의 분출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깊은 골 안에는 참된 의미의 삶과 사랑에의 열망을 희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언어의 종말을 나타내는 마침표는 곧 시인의 죽음 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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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炳 郁
281 ABSTRACT
A Psychoanalytic Study on Un-Hee Kim’s Poem
Byung-Wook Lee, M.D.*
Un-Hee Kim is a Korean poetess, and she is not famous but sensational in our time. When I read her poems recently, I was shocked by her sado-masochistic, sexually deviated, incestuous, necrophilic expression of cruelty and rage, aggression, hostility. I feel that she attempts to revenge toward her father and all men unknown to her. Kim’s poetry reveals vividly the incest and cruelty. She confessed that she feels to have a penis, and take a man inside her body. This means that she has an unresolved oedipal issue and strong penis envy, and she tries to deny it within her poems. Our new millenium is very paradoxical and ironical in some points because we meet a terrible nihilistic poet at new benevolent age. I don’t know her personally, but heard to her character as a very shy and introvert, polite woman.
This duality and disharmony between her reality and works was more interested to me. I think that the poet’s role in our time is dying very slowly because the many artists get off their mission to build up the human spirit’s upgrading and integration.
KEY WORDS:Poems·Incest·Cruel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