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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번역을 둘러싼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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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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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시 번역을 둘러싼 논쟁

14)

장 유 승*

❙국문초록❙

이 논문은 한시 번역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일별하고

,

한시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번역 방 법을 모색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

동서양을 막론하고 번역에서 논쟁이 가장 치열한 분야는 시 분야이다

.

언어의 차이로 인해 번역시가 원시에 함축된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 가 되는 것은 시의 운율이다

.

시의 운율은 해당 언어의 특수성에 바탕하며

,

번역시는 원시가 지닌 운율을 그대 로 재현하기 어렵다

.

한시 번역에 대한 논의는 대개 원시의 운율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

학술번역의 경우 정 확한 의미의 전달을 우선하므로 운율은 좀처럼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반면

,

대중번역의 경우 원시의 율격을 음보율로 재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

이로 인해 원시의 운율과 번역시의 음보율 간의 상관관계를 규 명하려는 시도가 이어졌으나

,

성공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

번역시의 음보는 원시의 율격과 무관한 독자적인 율 격이다

.

그럼에도 한시 번역은 여전히 음보율에 집착하여

불완전번역

과잉번역

을 야기하고 있다

.

시의 운율에 대한 현재의 논의는 문면에 드러나는 외형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양한 내재율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

전편에 걸쳐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정형성이 있어야

시답다

는 관념은 한국 고전시가의 특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소치이다

.

현대의 독자에게 천편일률적인 번역시의 운율은 의미가 없으며

,

운율에 집착하 는 번역은 한시의 대중화를 저해할 수도 있다

.

시다움이 정형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진대

,

한시를 천편일률적 인

4

음보로 번역하는 관행을 탈피하고

,

다양한 운율로 과감히 번역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

[

주제어

]

한시

,

번역

,

원시

,

번역시

,

운율

,

음보율

❙목 차❙

.

한시 번역의 특수성

.

한시 번역에 대한 논의

.

운율의 번역은 가능한가

.

운율의 번역은 필요한가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 confuci@hanmail.net

(2)

Ⅰ. 한시 번역의 특수성

2013

년 우리나라 전체 출판물 가운데 번역서 비중은

21.6%

이다

. 2012

(25.7%)

2011

(26.5%)

에 비 하면 다소 낮아졌으나

,

가까운 중국

(6.6%)

과 일본

(7.0%)

에 비하면

3

배가 넘는 수치이다

.

베스트셀러에서 번 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다

.

국내 연간 종합베스트셀러

30

위권 도서 가운데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 이 절반을 넘는다

.

한국 출판 시장의 해외콘텐츠 의존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

1)

그런데 이처럼 번역서가 범람하는 출판시장에서 유독 국내서가 선전하는 분야가 있다

.

다름아닌 시 분야 이다

.

전체 출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지만

,

시 분야에 한해서는 국내서가 번역서에 대해 확고한 우위 를 점하고 있다

.

시 분야에서 번역서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사례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

이 현상은 시의 본질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

시의 창작은 독자가 시어의 이면에 함축된 의미를 파악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

독자가 시어의 이면에 함축된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인이 사 용하는 언어와 시인을 둘러싼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시는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의 문학이다

.

번역시의 언어는 원시와 상이하다

.

언어의 차이로 인해

,

번역시는 원시에 함축된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기 어렵다

.

시인과 언어를 공유하는 독자라도 시에 함축된 의미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

하물며 번역으로 시를 접하는 독자가 간단히 읽어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

설령 번역시가 원시의 함축을

100%

담아내는데 성공하 더라도

,

시인과 문화를 공유하지 않는 독자는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기 쉽다

.

또한 번역시는 원시가 지닌 운율 따위의 각종 언어적 효과를 그대로 재현하기 어렵다

.

시의 언어적 효과 는 해당 언어의 특수성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

원시의 운율은 원시를 읽는 독자만이 느낄 수 있으며

,

번 역시를 읽는 독자는 결코 느낄 수 없다

.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시 번역자는 원시의 운율을 재현하는 것을 포기 하고

,

번역시에 나름의 운율을 부여하곤 한다

.

이로 인해 번역시에도 나름의 운율이 존재하지만

,

번역시의 운 율은 원시의 그것과는 전혀 상이한 것임에 분명하다

.

제아무리 번역이 언어와 문화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라지만

,

시 번역은 이처럼 좁히기 어려운 한계를 안 고 출발하는 셈이다

.

이것이 바로 시 번역이 어려운 까닭이며

,

동서양을 막론하고 번역에서 논쟁이 가장 치 열한 분야가 시 분야인 이유이다

.

한국의 한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 역시 언어와 문화의 간격을 좁히는 작업이다

.

다행히 한국 한시의 작자와 독자는 언어와 문화를 일부나마 공유한다

.

이것이 현대의 독자에게 한시의 이해를 기대할 수 있는 이 유이며

,

또 현대의 독자가 한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러한 공통분모에도 불구하고 한시 의 번역 역시 논란이 많다

.

한시 번역에 대한 논란은 한시의 운율을 번역시에서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에 집 중되어 있다

.

본고에서는 한시 번역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한시의 의미를 효과적으 로 전달하고 독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번역 방법을 모색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

1)김선남·강순애, 「한국 번역출판의 발전방안 연구」, 뺷서지학연구뺸 61, 한국서지학회, 2015, 265쪽. 이상의 통계는 이 논문과 백원근, 「번역출판의 양적 성장과 그 함의」, 뺷번역출판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에서 인용.

(3)

Ⅱ. 한시 번역에 대한 논의

1. 대중번역

한시 번역에 대한 최초의 논의는 박수천의 연구이다

.

2) 박수천은 근체시의 율격을 재현할 수 있는 번역 방 법을 모색하였다

.

한시의 율격은 한시의 문학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며

,

특히 근체시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율격의 정형성에 있으므로

, “

근체시 번역은 이 정형성을 최대한 살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

3)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박수천에 따르면 근체시의 정형성을 이루는 요소는 ① 句數 ② 字數 ③ 押韻 ④ 平仄 ⑤

평측에 의한 분 절에서 발생하는 율격

4)이다

.

이 다섯 가지 요소 가운데 구수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원시가 절구라면 번 역시는

4

,

원시가 율시라면 번역시는

8

구로 배열하면 그만이다

.

그러나 자수와 압운

,

평측은 고립어인 漢 語와 교착어인 國語의 본질적 차이로 인해 사실상 재현이 불가능하다

.

남는 것은

평측에 의한 분절에서 발생 하는 율격

뿐인데

,

이것은 우리 고전시가의 音步와 유사하다

.

따라서 박수천은

근체시의 정형성을 번역에서 재생하려면 음보의 수를 고려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

이라고 보았다

.

5)

한시의 율격을 음보로 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

다만 박수천의 논의는 원시의 운율 과 번역시의 음보 간의 상관관계를 이론적으로 해명하려는 첫 번째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

그는 번역시의 음보가 원시의

평측에 의한 분절

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秋雲

/

漠漠

/

四山

/

空 가을구름

/

막막하고

/

사방 산은

/

비었는데

○○

×× ×

○ ○

落葉

/

無聲

/

滿地

/

紅 낙엽은

/

소리 없이

/

땅에 가득

/

붉었다네

××

○○

××

立馬

/

溪橋

/

/

歸路 시내다리

/

말 세우고

/

돌아갈 길

/

묻노라니

××

○○

×

×

不知

/

身在

/

圖畵

/

中 몰랐다네

/

이 내 몸이

/

그림 속에

/

있는 줄을

×

○ ○○

×

○ ○

2) 박수천, 「근체시의 율격과 번역」, 뺷한국한시연구뺸 1, 한국한시학회, 1993.

3) 위의 논문, 140쪽.

4)박수천에 따르면 평측에 의한 분절이란 5언시의 경우 2/2/1, 7언시의 경우 2/2/2/1 등으로 의미단위 및 호흡단위가 구분되 는데, 5언시의 경우 세 토막, 7언시의 경우 네 토막으로 구성되며, 번역에서는 음보로 표현될 수 있다고 하였다(위의 논문, 146~147쪽).

5)박수천은 이밖에도 원시의 拗句를 번역시에서 강조를 통해 나타낼 수 있다는 점, 압운도 동일음소 ‘ㅏ’ 또는 ‘ㅔ’를 반복함으 로써 재현할 수 있다는 점, 근체시의 특징적 수사기교의 하나인 對句를 효과적으로 수용할 것 등을 강조하였으나 논의의 핵 심이 아니므로 논하지 않는다.

(4)

박수천이 예시한 원시와 번역시이다

.

언뜻 보기에 번역시는 음보를 통해 원시의 율격을 적절히 재현한 것 같지만

, ‘

평측에 의한 분절

에 따르면

1

구는 山 앞에서 분절이 되어야 하고

, 4

구는 知 앞에서 분절이 되어야 한다

.

그런데 박수천이 표기한 원시의

‘/’

는 원시의 의미 단위에 의한 분절이며

,

평측에 의한 분절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의미 단위에 의한 분절은

12

곳에서 이루어지는데

,

이 가운데 평측이 바뀌지 않은 곳이

4

곳이다

.

의미 단위에 의한 분절과 평측에 의한 분절은 동일한 것으로 오해되곤 하지만

,

이처럼 이 두 가지는 일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한시 구법의 다양성 때문이다

. 5

언시는

2/3, 7

언시는

2/2/3

으로 분절된다는 것이 통 념이나

,

이러한 분절은 낭송에 있어서의 休止에 불과하며

,

한시 구법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

평측에 의한 분절을 무시하고

,

원시의 의미 단위에 의한 분절에 따라 음보를 구성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 1,2,3

구는 원시의 분절이 번역시의 음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만

, 4

구는 그렇지 않다

.

원시의 분절은

不知

/

身在

/

圖畵

/

이지만

,

번역시의 음보는

몰랐다네

(

不知

)/

이 내 몸이

(

)/

그림 속에

(

圖畵中

)/

있는 줄을

(

)”

이 된다

.

이것은 평측에 의한 분절과도 맞지 않고 의미 단위에 의한 분절과도 맞지 않는다

.

결국 원시의 율격과 번역시의 음보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셈이다

.

박수천의 논의는 양자의 연관성을 이론적으로 해명하였 다고 보기 어렵다

.

이병주의 논의6)는 본격적인 번역론이라기보다는 번역 경험의 회고에 가깝다

.

다만 오랜 경험에 바탕한 그 의 견해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

.

그는 수십 편의 한시 번역을 예시하고

,

그렇게 번역한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

설명이 필요한 이유는 의역으로 인하여 번역시와 원시 간에 상당한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병주의 번역시가 원시와의 간격이 현저한 이유는

,

그가 한시 번역에서 음보율은 물론이거니와 가급적이 면 字數律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자수율을 엄격히 준수하는 번역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

그는

譯詩의 要領은 助詞의 놓임으로 좌우됨을 새삼 깨치었다

.”

라는 견해를 밝히 며

,

조사의 조절을 통해 자수율을 맞출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다만 조사를 제외한 다른 문법성분은 자수의 조절이 쉽지 않으리라 짐작되는데

,

그 역시

虛辭는 그런대로 아쉽지 않은 우리말인데 비해 實辭가 워낙 모 자라

다는 고충을 토로하였다

.

기실 그의 번역시 가운데 상당수는 원시의 의미를 충실히 전달하면서도 절묘하게 자수율을 준수하여

,

원 시의 정형성을 반영하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자수율의 준수를 한시 번역의 필수 조건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

자수율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

이병주의 번역시에서는 한시에 사용된 시어를 그 대로 사용하거나

,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古語를 사용한 예를 흔히 볼 수 있다

.

게다가 조사의 무리한 생략 과 변용이 많아 원시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

자수율에 집착한 나머지 번역어의 문법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사례도 자주 보인다

.

이병주의 번역은 한시 번역에서 자수율에 대한 고려가 지니는 장 점과 단점을 모두 보여준다고 하겠다

.

송준호의 논의7) 역시 본격적인 번역론이라 하기는 어렵다

.

그는 한시의 유형을

28

가지로 분류하고 각 유 형의 번역에서 주의할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다

.

시의 함의를 충분히 파악하여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6) 이병주, 「한국한시의 번역 문제」, 뺷새국어생활뺸 6, 국립국어연구원, 1996.

7) 송준호, 「우리 한시의 해석과 번역을 위한 몇 가지 제요」, 뺷인문과학뺸 78, 연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1997.

(5)

이견이 있을 수 없으나

,

그 분류의 기준이 모호하고 분류 항목도 추상적이므로 그의 유형 분류를 번역 현장 에서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중요한 것은 그가 예시한 한시 번역이 음보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 다는 것이다

.

그는 한시의 번역이

작품의 실제 내용을 진실하고 정확하게 해석해야 하고 그 해석된 것을 우리 말과 글 에서의 개념으로 환원하고 우리 시가의 멋과 가락으로 옮겨 놓는 번역작업

8)이라고 하면서

, “

그냥 사전적 의 미의 축자적 해석이나 그냥 산문장적 구조로서의 관습만을 따른 문의 파악 등의 안이한 태도는 이제 지양돼 야 한다

.”

9)고 하였다

.

한시의 번역은 의미의 전달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

그 자체로 독자적인 문학작품이 되 어야 한다는 것이다

.

여기서 그가 번역시의 시적 특질

,

즉 운율적 요소를 중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한시의 운율이 번역시의 음보를 통해 재현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의 평소 지론으로 알려져 있다

.

10)

송준호는 또다른 논의11)에서 한시의 운율을 번역시의 음보로 재현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설명한 바 있 다

.

한시

5

언구의 의미단위는

3

개이므로 이는 번역시에서

3

개의 음보로 재현되어야 하며

,

한시

7

언구의 의미 단위는

4

개이므로 이는 번역시에서

4

개의 음보로 재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는 박수천의 논의와 유사한 데

,

한시의

1

구의 의미단위 수는 일정하지 않으며

,

의미단위에 의한 분절 역시 번역시의 음보와 일치하지 않 다는 점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다

.

그가 예시한 번역시에서조차 원시의 의미단위와 번역시의 음보가 일치하 지 않는 사례는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

그럼에도 송준호가 음보에 집착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그는 한국 한시 작가들의 음감이

3, 4, 5

음절로 이루어진

4

음보에 체질화되어 있었다고 하면서

,

한시는

우리 선인들이 자신들의 시상을 기본적으로는 우리 말의 감각과 구조

,

그리고 표현의 양식으로 구성하여 한시라는 틀로 전환 형상화한 것

12)이라고 주장하였다

.

다시 말해 한시 작가들은 우리말과 우리 음감으로 시상을 구성하였으며

,

한시는 이를 번역하여 표현하는 수 단에 불과하였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한시의 번역은

한시라는 틀로 형상화하기 이전 바로 우리말로서의 시상 구성 상태로 되돌려놓는 작업일 뿐

13)이라고 단언하였다

.

3, 4, 5

음절로 이루어진

4

음보를 과연 우리 고전시가의 전형적 율격으로 볼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

논리에 따르면 한시는 독자적인 문학 장르가 아니라 국문시가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 는데

,

이 점은 동의하기 어렵다

.

한시는 그 자체의 역사성을 지닌 독자적 장르이며

,

한시의 창작은 그 장르적 특수성에 입각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한시의 창작에 앞서 시상의 형상화가 우리말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는 그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

이상

3

인의 논의는 모두 번역시의 율격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

번역시의 율격에 대한 고려는 일 차적으로 원시의 율격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

이들이 번역시의 율격을 중시한 데는 또다른

8) 위의 논문, 117쪽. 9) 위의 논문, 118쪽.

10) 예시한 시를 보면 가급적 음절수까지 일치시키려 한 점으로 미루어 자수율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1) 송준호, 「해석과 번역을 위한 몇 가지 제요」, 뺷한국명가한시선뺸, 문헌과해석사, 1999.

12) 위의 논문, 22쪽. 13) 위와 같은 곳.

(6)

이유가 있다

.

번역시의 율격에 대한 고려는 한시의 대중적 향유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다

.

기실 박수천의 논의는 학술번역이 아닌 대중번역을 위한 것이었다

.

그는

현시점의 한시문학은 일부 전문 가들의 연구대상 단계를 넘어서 문화대중도 손쉽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어야 한다

.”

14)고 주장하면서

,

일반독자가 번역만을 읽고도 근체시가 지닌 정형의 미감을 십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충실한 번역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

그가 이렇게 운율적 요소를 강조한 이유는 한시의 독자가

작품의 정형성을

,

율격을 그리고 작자의 문학적 意匠을 완전하게 향유하기를 기대

15)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

이병주와 송준호는 대중번역을 대상으로 한 논의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이들이 평소 주력한 작업으로 보건대

,

대중번역 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

그렇다면 한시의 대중번역은 운율적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는 점에 있어서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

2. 학술번역

이처럼 한시 번역에 대한 초창기 논의가 모두 대중번역을 대상으로 삼은 반면

,

고순희의 논의16)는 학술번 역을 대상으로 삼았다

.

고순희는 두 편의 논문을 통해 전통시대의 한시 번역 양상을 고찰하고

,

이를 바탕으 로 바람직한 한시 번역 방법을 모색하였다

.

그에 따르면 뺷杜詩諺解뺸

,

뺷百聯抄解뺸

,

뺷詩經諺解뺸 등 조선시대의 한시 번역은 모두 축자역에 가까우며

,

이로 인해 번역시의 길이가 길어지고 시구마다 길이의 편차가 심해지 는 현상이 나타난다

.

이러한 번역 방법은 시의 운율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

비록 浩然齋 金 氏의 뺷曾祖考詩稿뺸에서 운율을 고려한 흔적이 엿보이긴 하지만

,

과거 한시 번역에서 운율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

통시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한시 번역은 갈수록 직역에 가까워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

그 이유는 한시 창작 기반의 확대로 원시를 이해할 수 있는 독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

조선 후기로 갈수록 한시 번역서 가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였다

.

고순희에 따르면

,

운율을 고려한 한시 번역은 金億이 최초이다

.

김억은 원시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 을 포기하는 대신

,

번역시 나름의 운율을 확보하였다

. 5

언시를

3

음보로

, 7

언시를

4

음보로 번역하는 것도 김 억에게서 비롯되었으며

,

종결사로

‘~

를 즐겨 사용하는 것도 그가 효시이다

. ‘~

는 본디 우리 고전시가에 별로 쓰이지 않았으며

,

근대 민요에 현저하게 나타난다

.

근대에 접어들어 민요의 향유 범위가 넓어지면서 장 르를 막론하고 개화기 시가에 두루 쓰이게 되었는데

,

김억이 이를 차용하였다는 것이다

.

17)

창작에 가까운 의역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

음보에 의한 율격의 확보 및 종결사

‘~

의 활용 등은 지금의 한시 번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

지금의 한시 번역 문체의 수준은 어쩌면 개화기 및 애국계몽기의 연 장선 상에서 그 정도가 둔화된 수준

18)이라는 고순희의 지적은 타당하다고 보인다

.

14) 박수천, 위의 논문, 136쪽. 15) 위의 논문, 156쪽.

16) 고순희, 「한시 번역문체 연구(Ⅰ):한시 번역문체의 사적 검토」, 뺷한국한문학연구뺸 27, 한국한문학회, 2001; 「한시 번역문 체 연구(Ⅱ):우리 한시 번역의 성격과 번역문체의 제문제」, 뺷고전문학연구뺸 20, 한국고전문학회, 2001.

17) 고순희, 앞의 논문, 2001a, 56~58쪽.

(7)

고순희는 번역시의 율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하였으나

,

음보는 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보았

. 3, 4

음보 위주의 번역시 율격은 민요 및 가사의 그것과 흡사하며

,

이로 인해 한시의 독자적인 장르적 위상

이 불분명해졌다는 것이다

.

따라서

한시의 장르적 성격을 염두에 둔 번역은 억지로

3, 4

음보에 율격을 맞추려 는 노력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

을 염두에 두고

, “

한시 고유의 행 전개방식과

5

언과

7

언 등의 글자 수의 고정성이 아울러 고려된 새로운 번역 형식이 고안되어야

19)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

이론적으론 타 당하지만

,

한시의 모든 율격적 특징을 반영하는 번역시 형식의 고안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

김정화의 논의20)는 박수천과 마찬가지로 한시 율격을 번역시에서 재현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를 탐색한 것 이다

.

그는

율격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詩譯이 이루어질 수 없다

.”

21)고 단언하며

,

한시의 번역은 한 시와 한국 전통 시가의 율격적 공통분모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김정화에 따르면

,

한시 를 한국한자음으로 읽을 경우

5

언구는

2/3

으로

, 7

언구는

4/3

으로 읽게 되는데

,

이것은 한시의 율격이 한국 전통 시가의

2

율어구

(2

음보

)

로 파악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

여기에 율격적 유사성과 의미량을 고려하면

, 7

언 한시의

1

구는

4

율어구

(4

음보

)

로 번역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그는 崔顥의

<

黃鶴樓

>

를 통해 한시의

7

언구를

4

율어구로 번역한 사례를 제시하였다

.

昔人已乘黃鶴去 옛사람 벌써 황학 타고 떠나니

此地空餘黃鶴樓 이땅에 쓸쓸히 황학루만 남았네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은 한 번 가고 다시 오지 않는데

白雲千載空悠悠 흰구름은 천년을 유유히 흐르네

晴川歷歷漢陽樹 밝은 하늘엔 한양수가 역력하고

芳草萋萋鸚鵡洲 아름다운 풀은 앵무주에 무성하네

日暮鄕關何處是 해는 저문데 고향은 어디메뇨

煙波江上使人愁 안개 낀 강가에서 슬픔에 잠기누나

요컨대 김정화의 주장은 한시의

7

언구가

4/3

으로 분절되므로 전

4

자를

2

음보로

,

3

자를

2

음보로 번역함 으로써 한시의 율격을 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한시의

7

언구가

4/3

으로 분절된다는 주장은 앞서 살 펴본 바와 같이 한시 구법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소치이며

,

원시의 분절과 번역시의 음보가 항상 정확히 대응되는 것도 아니다

.

심지어 김정화가 예시한 사례에서조차 원시의 분절과 번역시의 음보는 일치하 지 않는다

.

번역시의 음보를 기준으로 원시를 분절하면 아래와 같다

.

18) 고순희, 앞의 논문, 2001b, 289쪽. 19) 위의 논문, 295쪽.

20) 김정화, 「한시 번역에 나타나는 율격적 특질」, 뺷한문교육연구뺸 19, 한국한문교육학회, 2002. 김정화는 논의 대상이 학술번 역인지 대중번역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이 논문의 목적은 한국과 일본의 한시 번역이 각국의 언어적 특질에 따라 원시와 어떠한 율격적 대응을 이루는지 확인하는 것이며(567쪽), 나아가 두 나라의 서로 다른 율격적 미의식을 엿보는 것이

다.(591쪽) 논의의 목적이 대중번역을 통한 독자의 저변 확대 또는 가독성 제고에 있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므로, 학술번역

의 장에서 논의한다. 21) 위의 논문, 556쪽.

(8)

昔人

/

/

乘黃鶴

/

去 此地

/

/

/

黃鶴樓 黃鶴

/

一去

/

/

復返 白雲

/

千載

/

/

悠悠 晴

/

/

歷歷

/

漢陽樹 芳

/

/

萋萋

/

鸚鵡洲 日

/

/

鄕關

/

何處是 煙波

/

江上

/

使人

/

1

구의 경우

,

원시를

4/3

으로 분절하면 昔人已乘

/

黃鶴去가 된다

.

김정화의 주장대로라면 전

4

자를

2

음보

,

3

자를

2

음보로 번역해야 하는데

, “

옛사람 벌써

/

황학 타고 떠나니

[

昔人已

/

乘黃鶴去

]”

라는 번역은 원시의 전

3

자를

2

음보

,

4

자를

2

음보로 번역한 결과이다

. “

이땅에 쓸쓸히

/

황학루만 남았네

[

此地空

/

餘黃鶴樓

]”

라고 번역한

2

구 역시 전

3

자를

2

음보

,

4

자를

2

음보로 번역한 것이다

.

번역시의 음보와 원시의 분절을 일관되게 조응시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

또다른 문제는 동일한 문법적 자질이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게 번역된다는 것이다

.

예컨대

3

구의

黃鶴

’, 4

구의

白雲

은 형용사

+

명사의 구조이며

,

이들은

1

음보로 번역하였다

.

반면

5

구의

晴川

6

구의

芳草

역시 형용사

+

명사의 구조인데

,

이들은

2

음보로 번역하였다

.

동일한 문법적 자질이 독자적으로

1

음보를 이루기도 하고

,

그렇지 않기도 한다는 점은 문제라 하겠다

.

뿐만 아니라

2

구의

黃鶴樓

’, 5

구의

漢陽樹

’, 6

구의

鸚鵡洲

등은 모두

1

음보로 번역되었으며

,

이는 후

3

자가

2

음보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과 모순된다

.

결국 한 시의 율격과 번역시의 음보 간에는 어떠한 관련성도 찾을 수 없다

. 7

언 한시의

1

구가

4

음보로 번역되는 현상 은 한시의 율격에 바탕한 결과가 아니라 번역자의 자의적 선택에 의한 결과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

성범중의 논의22)는 학술연구자를 위한 한시 번역에 대한 것인데

,

그의 논의는 번역시를 율격에 대한 구속 으로부터 과감히 해방시키려고 시도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

율격에 얽매이면

부자연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

작품에 따라서는 도저히 음보나

4

음보의 형식으로 번역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

23)는 점

,

그 리고 한시의 독특한 발상법과 표현법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축자적인 직역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24)

김동준25)은 한시 번역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검토하고

,

번역의 유형을 ① 직역에 충실한 번역방식 ② 음 보율을 적용한 번역 ③ 의역에 충실한 번역의 세 가지로 나누었다

.

그는 각 유형이 지닌 장단점을 구분하고

,

다양한 독자층을 고려하여 번역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

다시 말해 학술번역은 ①

,

대중번역은 ②와

22) 성범중, 「한시 연구와 한시 번역」, 뺷배달말뺸 33, 배달말학회, 2003.

23) 위의 논문, 42쪽. 24) 위의 논문, 43쪽.

25) 김동준, 「번역학 관점에서의 한국한문문학작품 번역 재론:한시의 번역을 중심으로」, 뺷민족문화연구뺸 46, 고려대학교 민족 문화연구원, 2007.

(9)

③의 방식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대중번역의 경우 율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본 점은 박수천

,

이 병주

,

송준호와 마찬가지이나

,

학술번역의 경우 율격에 대한 고려가 그다지 절실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보아 도 무방할 듯하다

.

이종묵의 논의26) 역시 성범중

,

김동준과 유사하다

.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성이며

,

문학이라는 미명 하에 부정확하고 애매한 번역이 횡행하는 현실은 문제라고 하였다

.

학술적인 목적의 한시 번역은 원문 에 밀착하여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27)조선시대 한시 번역 역시 학자를 대상으로 한 학술번역과 초학자 및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하는 대중번역이 존재하였으므로

,

학술번역과 대중번역은 엄밀 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학술번역은 작품의 제목

,

원문

,

번역문

,

교감

,

주석

,

해설이 구비되어야 하며

,

특히 주석은 단순히 단어의 뜻을 풀이하는 수준을 넘어야 하고

,

정확한 번역을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전체적 인 해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였다

.

28) 다만 원시의 운율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 았는데

,

이는 한시 번역의 일차적인 목표를 의미의 전달에 두었기 때문이다

.

의미의 전달이 운율의 전달에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이처럼 한시 번역에 대한 논의는 점차 운율의 구속으로부터 탈피하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

김영봉29)

시가 다른 장르의 문학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운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

30)이라고 전제하면서도

, “

한시 번역의 필요성은 바로 한시 원문의 이해가 일차적인 목적

31)임을 강조하였다

.

그는 내용을 충실히 전달하면 서도 일관성 있는 운율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

언어 구조의 근본적인 차이

,

전고의 활용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원시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운율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였 다

.

選譯이 아닌 完譯의 경우에는 운율에 대한 고려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 다

.

따라서

독자층을 이원화해서 각기 번역의 방식을 달리 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

32)이라는 타협점을 내 놓았다

.

기관의 번역사업을 대상으로 한 최근의 연구33) 역시 운율은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

학술번역에 서 운율은 더 이상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겠다

.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면

,

많은 논자들이 한시의 번역은 학술번역과 대중번역으로 구분되어야 한다 는 점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학술번역과 대중번역의 이원화 추세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는 현실 을 고려하면

,

번역시의 언어는 독자에 따라 달라져야 마땅하다

.

학술번역은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직 역 위주로

,

대중번역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 과감히 의역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도 이견이 없을 듯하다

.

다 만 대중번역에서 원시의 운율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좀더 논의가 필요하다

.

26) 이종묵, 「조선시대 한시 번역의 전통과 한시 번역의 모델」, 뺷민족문화뺸 32, 민족문화추진회, 2008.

27) 위의 논문, 76쪽. 28) 위의 논문, 90쪽.

29) 김영봉, 「한시 번역문에서 운율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뺷번역시의 운율뺸, 소명출판, 2012.

30) 위의 논문, 105쪽. 31) 위의 논문, 129쪽. 32) 위의 논문, 130쪽.

33) 김종태, 「한시 번역의 구성과 표현」, 뺷고전번역연구뺸 3, 한국고전번역학회, 2012.

(10)

Ⅲ. 운율의 번역은 가능한가

번역시의 운율을 중시하는 논자들은

시는 시다워야 한다

는 입장을 견지한다

.

번역시가 원시의 운율을 그 대로 재현하지는 못하더라도

,

음보율을 통해 시의 필수요소인 운율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시에 운율 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뒤집어보면 운율이 없으면 시가 아니라는 주장이 되는데

,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 지는 이 명제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

시와 시 아닌 것을 구분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시의 핵심은 함축과 운율이다

.

시 에 함축된 의미는 시어를 번역함으로써 전달 가능하다

.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고 생각되면 주석을 통해 함축 된 의미를 밝힐 수도 있다

.

다만 함축된 의미가 문면에 드러나도록 의역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

이렇게 되 면 더 이상 함축이 아니라 진술이 되기 때문이다

.

경우에 따라서는 의역이 필요하나

,

의역으로 인해 함축이 사라지면 시를 시답게 만드는 요소 가운데 하나를 잃게 된다

.

그렇다면 운율은 번역이 가능한가

?

漢語의 속성과 國語의 속성은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 분이 더 많다

.

이로 인해 한시 운율의 근간을 이루는 押韻과 平仄은 물론

,

雙聲疊韻과 같은 다기한 운율적 요소들을 모두 번역시에서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대안은 있다

.

한시의 운율을 우리시의 운율로 대체하는 것이다

.

한시 번역에서는 대개 음보율이 대안으로 선택되는데

,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시의 운율과 번역시의 음보는 정확히 대응되지 않는다

.

음보는 원시 운율의 재현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단지 번역시에 나름의 율격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시 번역에서 음보율을 고수하는 사례가 많은 이유는 그것이 우리 고전시가의 지배적 율격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

음보율은 민요

,

시조

,

가사 등 우리 고전시가에 두루 적용되는 율격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러나 고전시가 분야에서 음보율은 논란이 많은 개념이다

.

34)음보율의 모호한 실체에 대해 비 판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음보율을 우리 고전시가의 보편적 율격인양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로 지 적하지 않을 수 없다

.

번역시에 나름의 운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

그것이 반드시 음보율이어 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

설령 음보율이 우리 고전시가의 전형적인 율격이라 하더라도

,

한시의 율격을 고 전시가의 음보율로 대체한다면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번역이 아니라 飜案에 해당한다

.

그런데 운율의 번안 이 가능하다면

,

함축의 번안도 가능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

김억의 한시 번역이 바로 그 예다

.

김억은 한시의 번역이 또다른 창작임을 강조하며

原詩에서 얻은 바 詩想을 나의 맘에 좋도록 料理해 놓

35)은 것이라는 견해를 감추지 않았다

.

기실 그의 한시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번안 또는 창작에 가깝다

.

그의 번역시는 원시와 거리가 상당하고

,

전고나 용사에 대한 주석도 없다

.

김억의 한시번역은 오늘날 학술번 역은 물론 대중번역에서도 좀처럼 용납되기 어려울 것이다

.

34) 이 점에 대해서는 김진희, 「시조 율격론의 난제」, 뺷한국시가연구뺸 36, 한국시가학회, 2014, 4장 참조. 35) 홍순석 편, 뺷岸曙金億全集뺸 3 漢詩選集, 한국문화사, 1987(고순희, 앞의 논문, 2001a, 50쪽 재인용).

(11)

굳이 번안의 수준에 이르지 않더라도

,

운율에 집착하면 의역의 정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

이렇게 되면 함 축이 손상된다

.

시를 시답게 만든다며 운율을 고려하는 역자들이 시를 시답게 만드는 또다른 요소인 함축의 손상에 대해 별로 고려가 없다는 점은 문제이다

.

창작시에서 운율과 함축은 시의 본질을 구성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이지만

,

번역 과정에서 운율과 함축은 배타적인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

이 경우

,

하나를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희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

대부분의 번역자가 음보율의 적용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지만

,

자수율의 적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것도 모 순이다

.

자수율은 분절의 일관성을 제시하지 못하며

,

번역어의 선택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우려 때문일 것 이다

.

그러나 이는 음보율에 대한 집착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 다

.

음보와 의미단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

번역어의 선택을 제한하기는 자수율이나 음보율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음보율에 대한 집착은 필연적으로

불완전번역

또는

과잉번역

을 야기하며

,

번역 현 장에서 암암리에 큰 폐해를 낳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Ⅳ. 운율의 번역은 필요한가

한시 번역에서 운율을 처음으로 고려했던 김억이 활동한 시기는 한국고전시가의 율격에 대한 탐색이 치열 한 시기였다

.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근대적 문학연구를 통해 한국 고전시가의 특질을 해명하 고

,

새로운 시 형식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

한시 번역에서 율격에 대한 고려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

수백 년에 걸친 우리나라의 한시 번역사에서 율격이 고려 대상이 된 사례는 거의 찾을 수 없다

.

36) 한시 번역에서 율격을 고려한 것은 김억이 최초라 하겠으며

,

이는 당시 한국 고전시가 율격에 대한 논의를 배경으로 나온 것이었다

.

김억은 한국의 한 시 번역사에서 이정표를 세우는 한편

,

시를 시답게 하는 핵심이 운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른바

격조시형 론

을 제시하였다

.

37) 근대적 자유시에 경도된 당대 시단은 김억의

격조시형론

에 대해 비판 일색이었으나

,

유독 한시 번역에서만은 지금까지도 김억의

격조시형론

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논리에 얽매여 있는 것이 현실 이다

.

시의 운율에 대한 현재의 논의는

,

문면에 드러나는 외형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양한 내재율을 인정하 는 추세이다

.

전편에 걸쳐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정형성이 있어야

시답다

는 관념은 한국 고전시가의 운율에

36) 고순희는 호연재 김씨의 시선집 뺷증조고시고뺸에서 번역시에 음보율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고 주장하였으나(56쪽) 김영봉에 따르면 뺷증조고시고뺸에서 운율성이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전체적으로는 뺷두시언해뺸의 번 역 양식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뺷두시언해뺸에서도 부분적으로 운율을 의식한 듯한 번역이 보인다는 점을 또다 른 근거로 제시하였다(김영봉, 위의 논문, 112쪽).

37) 격조시형론에 대해서는 김정화, 「근대 초기 시형의 모색과 율격 논의 – 김억의 「격조시형론」을 중심으로」, 뺷한국문학이론과 비평뺸 50,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11.

(12)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소치이다

.

이러한 상황에서 유독 한시 번역만 재래의 음보율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다

.

그간 한시 번역에서 율격의 재현을 강조한 이들은 모두 한시의 대중화를 위해 의미있는 시도를 하였다

.

이들은 한시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율격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

하지만 이 점에 대 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

보다 많은 이들이 한시를 접하는 것은 한시 연구자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며

,

율격의 재현 역시 대중에게 다가가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

그러나 한시의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 다

.

과연 한시의 독자가 원하는 것이 번역시를 통해 한시의 율격적 특징을 체감하는 것인가

.

기실 율격에 대 한 기대는 극히 미미하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

현대의 독자에게 번역시의 음보율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

안대회의 뺷새벽한시뺸

(

태학사

, 2014)

는 한시 번역에서 율격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라는 고정관념을 탈피 한 시도로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

이 책은 한시

100

수를 번역한 것으로

,

현대 독자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한시를 위주로 선발하였다

.

한시의 대중적 향유에 목적이 있는만큼

,

과감한 의역으로 평이하고 감각적으로 번역하였다

.

한시의 율격 또한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

저자는 서문에서

정형시의 틀을 벗어나 번역한 시 자체가 현대 독자에게 한 편의 완결된 작품으로 읽힐 수 있도록 옮겼다

.”

라고 밝혔는데

,

이 책의 첫머리에 실려 있는 申緯의

<

後秋柳詩

>

에 대한 번역에는 이러한 저자의 의도가 현저히 반영되어 있다

.

바람도 없이 떠난 잎이

철렁

!’

땅에 떨어지니 無風脫葉下鏘然

야윈 가지 한 올 한 올 저녁 안개 속에

걸려 있다

.

瘦影絲絲掛暮煙

부러진 갈대 마른 연잎이랑

서로 기대 서 있을 때 折葦枯荷相伴住 원앙새는 옷이 추워

잠도 채 못 이룬다

.

鴛鴦衣冷不成眠

(13)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원시의

1

구를

2~4

구로 다양하게 번역한 점이다

.

그간

7

언 한시의

1

구를

2

구로 번역 한 사례가 없지 않았으나

,

이처럼 한 작품 내에서조차

2~4

구로 다양하게 번역한 것은 기존의 한시 번역에서 는 찾아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시도이다

.

그 결과

,

위 작품은 한시의 번역이라기보다는 한 편의 현대시에 가 까운 인상을 준다

.

음보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지는 않은 듯하나

,

번역시의 음보는 원시의 율격과 무관하게 독자적인 율격을 이루고 있다

.

위 시를 비롯하여 이 책에 수록된 번역시에서는 한시 운율의 흔적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

이러한 번역 방식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

한시의 대중화를 위한 참신한 시도로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

운율에 집착하는 번역은 천편일률적인 번역시를 산생할 위험을 안고 있다

.

독자가 천편일률적인 번역시에 서 감흥을 느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

운율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한시의 대중화와 현대적 향유를 저해하는 요소라고 하겠다

.

시다움이 정형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진대

,

한시를 천편일률적인

4

음보로 번역하는 관행을 탈피하고

,

다양한 운율로 과감히 번역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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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5

5

29

일에 투고되어

,

2015

6

9

일까지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 2015

6

28

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

2015

7

6

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가 결정되었음

.

(15)

❙Abstract❙

Discussions on the Translation of Sino-Korean Poetry

38)

Jang, Yoo-seung*

The aim of this thesis is to examine existing discussions on the translation of Sino-Korean poetry, and to pursue a translation method of Sino-Korean poetry for enhanced accessibility by readers. Both in the east and in the west, the most controversial issue in translation is poetry. It is because the implicit meaning of the original poetry is hard to be transferred through the translated version. In particular, rhythm is problematic. Rhythm of poetry is based on the speciality of the relevant language and therefore, it is hard to represent rhythm of the original version.

Discussions on rhythm of poetry have been progressed to recognize various kinds of intrinsic rhythms removing the adherence to the appearance rhythm in the text. But, translation of Sino-Korean poetry has been still focusing on metric rhythm. The concept that authentic ‘poetry’

needs a set of pattern regularly repeated in the whole text is the outcome of lack of understanding on the features of the Korean classical poetry.

To the contemporary readers, the stereotypical rhythm in the translated poetry is meaningless, and the translation focusing only on rhythm may hinder the popularization of Sino-Korean poetry.

Since the authenticity of poetry does not mean patterned poetry, it is necessary to translate Sino-Korean poetry in a various rhythm patterns instead of translating it in 4-metric rhythm only.

[Key Words] Sino-Korean poetry, translation, primitive poetry, translated poetry, rhythm, metric rhythm

* Senior Researcher, Academy of Asian Studies, Dankook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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