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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개념과 세 가지 원칙
인권감수성의 이해 및 인권의 언어로 말하기
1 인권의 개념과 세 가지 원칙
1) 인권의 개념 (1) 인권의 정의
인권이라는 말의 국어사전적 의미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1)’입니다.
모든 사람은 성별, 인종, 종교, 나이,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인 부 등에 상관없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권을 가지며 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인권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주어집니다. 또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없애버릴 수도, 잃어버릴 수도, 빼앗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인권은 양도불가능한(Inalienable) 것이 됩니다.2)
|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
출처 : https://unesco.delegfrance.org/
인권이라는 말은 1789년 프랑스혁명을 전후해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에 나오는 ‘인간의 권리’(Des Droits de l’Homme’)라는 표현을 영어권에서 ‘Rights of man(인간의 권리)’이라고 사용하였는데, ‘Man’이란 단어 때문에 마치 인권이
1)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2) 잭 도널리, 「인권과 국제정치」, 오름(2002)
남성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오해될 수 있다는 반론이 있어 지금은 ‘Man’이라는 말 대신 ‘Human’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1호는 인권을 “헌법 및 법률에서 보장하거나 대한민국이 가입·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및 국제관습법에서 인정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소속된 직장, 가족, 학교, 기타의 공동체나 조직에서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지느냐와 상관없이 인권을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자연법에 근거한 인본주의는 천부인권사상의 뿌리가 되었으며 그 사상은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엄하고 인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은 매우 당연한 듯 들리지만 모두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권을 정의하고자 할 때 단순히 언어적 해석에 주목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회적 문제 해결을 둘러싼 갈등을 포함한다면 인권은 매우 논쟁적인 개념입니다. 사형 제도를 둘러싼 오래된 논쟁에서부터 낙태문제,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의 문제, 성소수자의 권리문제 등 우리가 접하는 많은 사회문제들은 인권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현행법이라든지 종교적 태도 혹은 사회적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권의 역사적 발전 과정과 국제적으로 합의된 인권 원칙을 통해 인권을 보다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발전하는 인권의 개념
프랑스의 법학자 카렐 바삭(Karel Vasak)은 1977년 세계인권선언 30주년 기념연설에서 국제인권의 발전을 요약하며 3세대 인권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세 가지 구호를 근거로 인권의 3세대를 설정하였는데, 첫 번째는 ‘자유’라고 하는 국민의 정치적 권리, 두 번째는 ‘평등’에 근거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세 번째는 ‘우애, 박애’라고 하는 연대를 위한 권리입니다.
(가) 1세대 인권
1세대 인권은 시민적·정치적 권리로서 국가의 자의적인 간섭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보호받거나 정치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권리입니다. 정부의 역할을 제한하기 때문에 소극적 권리(Negative rights)로 불립니다. 그 보호를 위해 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구체화하여 불간섭(비개입)을 요구하는 권리로서, ‘…로부터의 자유’로 표현됩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대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제1조~제21조와 B규약 혹은 자유권규약으로 불리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전문과 본문 53개조)입니다.
(나) 2세대 인권
2세대 인권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로서 사회적 평등을 기초로 배분적 정의에 근거하여 제한된 가치의 생산과 자원의 배분에서 형평성을 보장받는 권리입니다. 이 권리들은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적극적으로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적극적 권리(Positive rights)로서 ‘…에 대한 권리’로 표현됩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를 대표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세계인권선언 제22조~제27조와 A규약 혹은 사회권 규약으로 불리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전문과 본문31개조)입니다.
(다) 3세대 인권
현대 사회에서 개인을 중심으로 한 인권의 문제가 집단으로 옮겨오고 구조적인 문제로 인권문제의 중심축이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세대 인권은 연대와 단결의 권리로서 집단권이라고도 일컬어지는데, 1세대∙2세대 인권은 이미 국제사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정리되었고, 국제인권규약으로 확립된 반면에 연대와 단결의 권리는 논의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고 제도적으로 확립되지도 않은 생성단계에 있는 권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쟁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권리, 환경에 대한 권리, 민족자결권, 문화유산에 대한 권리 등이 이에 속하며 경제개발에 참여하고 개발이익의 분배에 참여할 권리를 규정한 발전권도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종래 선진국에 비해 정치적·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국가를 창설하게 된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주장된 제3세대 인권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3세대 인권은 한 국가에 한정되는 인권의 개념이 아니라 국경을 초월하여 전지구적인 담론으로 인권을 개념화하기 때문에 국제적 협력을 필수적으로 전제합니다. 제3세대 인권의 내용은 아직 이론적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고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2) 인권을 이해하기 위한 세 가지 원칙
인권은 세계인권선언 이후 70년 가까운 세월을 통해 국제적인 발전을 거듭해왔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특성과 원칙이 만들어지고 다듬어졌습니다. 특히 1993년 비엔나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World Conference on Human Rights, Vienna)를 통해 모든 인권이 보편적이고 불가분적이며 상호의존적임을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3)
3) 비엔나선언 및 행동계획(Vienna Declaration and Programme of Action, 1993) 2부 3절: 모든 인권은 보편성, 불가 분성, 상호의존성과 상호관련성을 갖는다. 국제사회는 인권을 전 세계적으로 공정하고 평등한 방식으로, 대등하 게, 또 동일한 비중을 두고 다루어야 한다. 물론 민족적, 지역적 특수성과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배경의 중요성에 유념해야 하겠지만,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체계를 떠나서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신장하고 보호 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
(1) 인권의 보편성(Universality)
세계인권선언 제1조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한 존엄과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인권은 어른이 된 다음이나 일정한 자격을 갖춘 후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권리라는 뜻입니다. 특권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성장한 인권은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누구나 보편적으로 향유해야 할 권리입니다.4)
인권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보장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인권이 아니라 특권이 됩니다. 인권이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하는 까닭은 사람들이 차이를 명분삼아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차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인권의 불가분성(Indivisibility)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어느 한 쪽의 권리가 침해되면 나머지 권리도 보장될 수 없게 되는 상보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예컨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중 하나인 교육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결국 무지한 유권자가 되어 시민∙정치적 권리도 올바로 향유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시민∙정치적 권리의 하나인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하면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참정권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만 존중받게 되므로 결국 이들은 경제∙사회∙문화적인 이해관계에서 소외되게 됩니다. 따라서 양자의 권리가 모두 균등하게 존중될 때, 비로소 완전한 인권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국제인권규약에서는 인권을 ‘시민적・정치적 권리’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로 구분하기도 하고 제3세대 인권에서는 ‘평화권’, ‘연대권’, ‘집단권’ 등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분류는 편의를 위해 또는 어떤 부분을 강조하기 위한 분류에 불과합니다. 인권은 본질적으로 ‘나눌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권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사회권의 보장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유권의 행사는 어려울 것입니다.
(3) 인권의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
인권은 모든 걸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권리가 아닙니다. 사람은 추상적인
4) 우리나라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출 생지, 등록기준지, 성년이 되기 전의 주된 거주지 등을 말한다),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기혼·
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학력, 병력(病歷)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를 평등권침해로 금지하고 있다.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사회적 관계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구체적인 개인입니다. 나의 권리와 다른 사람의 권리, 나의 권리와 공동체의 권리, 공동체들 간의 권리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 의존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나의 권리는 사회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권리도 사회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드시 책임(공적 책임, 연대의 책임)도 따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 개인이 인권과 관련하여 갖는 책임은 자신의 권리를 알고 누려야 하는 책임과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지켜주어야 하는 두 가지 측면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인권의 상호의존적 성격 때문에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부득이하게 자신의 인권을 제한받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공의 안전이나 복리를 위해 (‘법률로써만’이라는 단서가 붙기는 하지만)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한이 가능하다고 해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으며 그것은 필요한 만큼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합리적으로 제한하여야 하고, 제한당하는 사람이 당하는 피해가 공동체가 얻을 이익보다 너무 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2 인권감수성의 이해 및 인권의 언어로 말하기
1) 인권감수성의 이해
인권감수성이라는 말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던 용어였으나 인권 담론의 확장과 인권교육의 확산으로 지금은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거칠게 정의하자면, ‘인권 문제 또는 그 징후를 감지하고 그에 응답하는 민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5)
예를 들어 어떤 사회적 사건을 접하게 되었을 때 단순히 개인적 감정의 변화(연민, 분노, 무관심 등)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이는 사건의 원인에 따라 대상의 고통에 대한 공감대에서부터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노, 문제를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복잡한 감정이 함께 일어날 겁니다. 그렇게 마음이 흔들린 그 순간은 기존의 삶을 어떤 변화로 이어지게도 합니다. 기억으로 저장하든, 누군가에게 그 소식을 전하든, 관련 문제를 더 탐구하든, 사건의 현장으로 달려가든,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보태든, 자기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때의 ‘나’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가 됩니다. 이처럼 인권감수성은 ‘감수성’이라는 사전적 정의처럼 외부 세계의 자극을 그저 피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알아차리고 마음이 움직이며 그에 응답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적극적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인권교육센터 들, 「인권교육 새로고침」, 교육공동체 벗(2018)
(1) 고정관념에 질문하기
| 장애인을 표현할 때 쓰는 이미지 |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표현할 때 쓰는 이미지입니다. 이 두 사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ISO(국제표준기구)에서 표현한 이미지는 장애인이 휠체어에 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는데, 수동적인 자세로 팔을 앞으로 하고 있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001년 KS(한국산업규격)에서는 이러한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팔을 뒤로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로 개정하였습니다.
단순히 장애인과 관련된 표식을 바꾼 디자인의 변화일 뿐이지만 이러한 변화에는 약자로서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변화가 뒤따릅니다. 이전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불편한’ 사람이라는 인식 뒤에 ‘불쌍한’ 사람, 그래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노력에 의해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적 시설이 확충되어 장애인들도 능동적인 사회활동이 가능한 환경이 갖추어지면서, 더 이상 장애인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일반적인 시민으로 인식되게 된 것입니다. 이 두 장의 그림은 인권교육에서 흔히 사용하는 그림으로 인권에 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는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 개정된 KS의 장애인 이미지 |
그런데 2014년 5월2일 KS는 다시 팔을 앞으로 하는 수동적인 모습으로 장애인 이미지를 개정하였습니다. 보건복지부는 ‘ISO 기준에 맞춰 이미지를 변경했다’라고 하지만 인권의 관점에서는 기존 KS 이미지를 다시 예전 모습으로 개정한 것이 오히려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미국 뉴욕의 디자이너 사라 핸드렌(Sara Hendren)은 기존 장애인 이미지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직접 휠체어를 밀고 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디자인을 바꿔 이 이미지를 기존 표지판 위에 붙이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바뀐 이미지를 처음 본 뉴욕시 측은 “공공 시설물을 파괴한다”며 반대했으나, 결국 46년 동안 유지되던 ISO의 장애인 표시를 2014년 7월 25일 바꾸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사례와는 대조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다름을 대하는 자세
유난히도 무더웠던 지난 2018년 여름, 영국의 한 학교 남학생들이 반바지 착용을 금지한 학교에 항의하며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은 "여름에 더운 이 나라는 언제든 반바지를 입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학교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남학생들의 '치마 입기' 열풍이 불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교복을 '제복'으로 생각해 남학생의 반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학교가 많기 때문입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의 동의를 얻어 치마와 바지를 바꾸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여학생들도
"치마보다 반바지가 편하다"라며 반바지를 입고 등교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일부 교직원들조차 쓸데없이 엄격한 규율은 없어져야 한다며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학교는 물론, 경찰청에까지 '정책을 재검토해달라'는 수백 개의 탄원서가 날아들자 일부 학교는 반바지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남자는 치마를 입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더위를 피하고 싶다는 실리적인 이유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 앞에 제대로 된 변명거리 조차 만들지 못합니다. 그저 전통이라거나 관습이라는 이유로 기존의 관행을 고수할 뿐입니다. 인권은 생활 속의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에서조차 ‘왜?’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남자다움이라거나 여자다움이라는 말은 이제 특정한 지정 성별에 어울리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만 해석되지 않습니다. 이미 사회에서 이분법적 성별구분은 더 이상의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있지 않고, 남자가 못할 일과 여자가 못할 일의 구분조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다움’의 기준이 외적인 전통과 관습에서 자기 내면의 바람과 욕구로 옮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2) 인권의 언어로 말하기 (1) 노예에서 주인으로
사람이 오랜 시간 타성과 억압에 젖어들게 되면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자기 스스로를 억압하는 의식이 생성되고 그것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학습된 무기력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는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부정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그 생각은 경험에 의해 다시 증폭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과거 역사 속 노예들이 그러한데, 노예 이전의 일상과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강제적으로 부당함을 경험하게 되면 처음에는 이와 맞서지만 지속적으로 반항에 따른 폭력을 경험하고 불이익을 받으면, 나중엔 복종하고 사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을 일찍 끝내면 빵을 주겠다는 주인의 말에 남들보다 일을 빨리 끝내 빵을 얻어먹고 그에 행복을 느끼는 것인데 구조적인 모순을 발견하기보다 구조 속에서의 일시적 평안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겪는 학습된 무기력은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의 도움이나 응원으로 성공의 경험이 쌓이게 될 때 비로소 무기력으로부터의 탈출이 가능하게 됩니다.
인권의 문제에서도 권리의 주체로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스스로의 권리 찾기와 더불어 주변의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인권의 상호의존성과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2) 배려에서 상호존중으로
“인권은 ○○이다”라는 낱말 넣기를 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배려’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배려는 사전적으로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는 마음은 훌륭한 인성의 덕목입니다. 하지만 인권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인권은 권리에 있어서 ‘동등한 인간’을 전제로 합니다. 인권은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체로 서기 위한 당사자의 노력과 상호의존성을 원칙을 하는 연대의 힘에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배려’는 권력과 힘의 차이, 위계에게 발생합니다. 도울 수 있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이 구분되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인권은 동등한 인간 사이의 연대를 전제로 하지만 배려는 차등적 권력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자발적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배려는 인격적 성숙을 위해 갖추어야 할 덕목에는 해당될 수 있으나 동등한 권리 사이에 작용하는 인권과는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또한 배려는 개인과 개인 간에 작동하는 원리이지만, 인권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보장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가 개인에게 보장해야 하는 공적인 의무와 책임을 강조합니다. 인권에서 배려가 강조되다 보면 사회적 책무나 국가가 담당해야 할 의무가 개인의 노력이나 희생에 떠넘겨질 수 있습니다.
(3) 내 안의 언어 찾기
오랫동안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경우 정체성을 구성하는 언어를 구성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의 경우 오래된 사회적 차별과 편견 속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구성하는 경험을 하게 되기 어렵습니다. 장애인을 나타내는 말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차별과 편견이 담긴 말들로 타자화되다가 당사자의 의식이 반영된 언어들로 바뀌어 가는데 이는 인권의 당사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언어를 스스로 획득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님, 소경, 맹인, 봉사 등의 호칭은 현재 시각장애인으로 통칭되는 말입니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말의 쓰임이나 대우가 달랐습니다. 1992년 한글학회에서 펴낸
<우리말큰사전>은 '장님'을 소경의 높임말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8년 연세대 언어정보개발연구원에서 엮은 <연세한국어사전>의 풀이에는 단순히 '눈이 먼 사람'으로 설명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1998년 <표준국어대사전>을 냈는데, 여기에서 '장님'은 '낮잡아 이르는 말'로 규정됩니다. 과거 우리말 사전들이 '장님'이란 단어를 두고 '높임말'에서부터 '낮잡아 이르는 말'까지 양극단으로 다루고 있는 모습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장애를 표현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이는 장애인의 인권 환경과 밀접한 연관을 맺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권의 당사자로서 장애인들 스스로가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고, 인권의 주체라는 점입니다. 한때 일부에서 ‘장애우’라는 호칭을 장애인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으나 장애인 당사자들에 의해 거부되며 오히려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