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저작자표시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저작자표시"

Copied!
103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이용자는 아래의 조건을 따르는 경우에 한하여 자유롭게

l 이 저작물을 복제, 배포, 전송, 전시, 공연 및 방송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따라야 합니다:

l 귀하는, 이 저작물의 재이용이나 배포의 경우, 이 저작물에 적용된 이용허락조건 을 명확하게 나타내어야 합니다.

l 저작권자로부터 별도의 허가를 받으면 이러한 조건들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작권법에 따른 이용자의 권리는 위의 내용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용허락규약(Legal Code)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한 것입니다.

Disclaimer

저작자표시. 귀하는 원저작자를 표시하여야 합니다.

비영리. 귀하는 이 저작물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변경금지. 귀하는 이 저작물을 개작, 변형 또는 가공할 수 없습니다.

(2)

2021년 2월 석사학위 논문

백민석 소설에 나타나는 반(反)-오이디푸스적 사유와

분열증적 글쓰기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양 준 영

[UCI]I804:24011-200000360075 [UCI]I804:24011-200000360075

(3)

백민석 소설에 나타나는 반(反)-오이디푸스적 사유와

분열증적 글쓰기

A Study on the Anti-Oedipal Thought

and Schizophrenic Writing in Baek Minseok's Novel

2021년 2월 25일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양 준 영

(4)

백민석 소설에 나타나는 반(反)-오이디푸스적 사유와

분열증적 글쓰기

지도교수 신 형 철

이 논문을 문학 석사학위 신청 논문으로 제출함

2020년 10월

조선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양 준 영

(5)

양준영의 석사학위논문을 인준함

위원장 조선대학교 교 수 이승우 위 원 조선 대 학교 교 수 신 형 철 위 원 조선대학교 교 수 신용목

2020년 11 월

조선대학교 대학원

(6)

목 차

제 1 장 서론 ···1

제 1 절 연구 목적 ···1

제 2 절 선행 연구에 대한 논의 ···3

제 3 절 연구의 시각 ···13

제 2 장 가족주의와 복종하는 주체 ― 『목화밭 엽기전』을 중심으로 ···17

제 1 절 가족의 허구성과 극한의 가족주의 ···17

제 2 절 가족주의의 젠더 왜곡과 성별 이분법 ···26

제 3 절 복종하는 주체가 생산되는 방식 ···33

제 3 장 분열증적 주체의 도주선 ― 『불쌍한 꼬마 한스』를 중심으로 ···43

제 1 절 욕망의 부당한 사용 ···47

제 2 절 ‘되기’, 특이성의 출현과 보편성에의 위협 ··· 53

(7)

제 4 장 분열증적 ‘쓰기’의 몇 가지 층위

―『헤이, 우리 소풍 간다』를 중심으로 ···65

제 1 절 환원되지 않는 차이와 선·악 표상의 해체

― 딱따구리의 서사와 K의 서사를 중심으로 ···67 제 2 절 환상성과 그를 증언하는 ‘쓰기’

― 딱따구리의 서사와 K의 ‘쓰기’를 중심으로 ···76 제 3 절 제3절 동물-되기의 강도와 독립성

― 딱따구리의 서사와 K의 아버지 회상을 중심으로 ···81

제 5 장 결론 ···87

(8)

【약어표기】

안티 : 『안티 오이디푸스』

고원 : 『천개의 고원』

차이 : 『차이와 반복』

소풍 : 『헤이, 우리 소풍 간다』

캔디/한스 : 『내가 사랑한 캔디/불쌍한 꼬마 한스』

목화밭 : 『목화밭 엽기전』

올빼미 : 『죽은 올빼미 농장』

박물지 :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장원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일러두기】

단행본에는 겹낫표(『』)를, 단편 등에는 낫표(「」)를 사용했다.

(9)

ABSTRACT

A Study on the Anti-Oedipal Thought and Schizophrenic Writing in Baek Minseok's Novel

Yang Jun-young

Advisor : Prof. Shin Hyoung-cheol, Ph.D.

Department of Literature and Creation, Graduate School of Chosun University

This study aims to clarify various psychoanalytical motifs appearing in Baek Min-seok’s novel and reinterpret this from Deleuze and Guattari’s schizo-analysis perspective.

Previous studies have seen absence of father and mother, grotesque violence, homosexual love, lack of legal consciousness, etc appearing in Baek Min-seok’s novel as characteristics of schizophrenic subject from the psychoanalytical perspective. Such studies understand the characteristics of schizophrenic subject as negative things and regard them as occurring from violence in history and society.

The existing studies understand the role of change and creation as being beyond control, because schizophrenic subject cannot be made to adapt to the social system.

The subjects appearing in Baek Min-seok’s novel are also typified as figures only who testify social deficiency in the position of‘infant.’But this paper focuses on playful style of life that they show and their fugitive aspects. They continue to attack the universalities in society and create a new concept. To illuminate such things properly, a new discourse differentiated from the existing psychoanalytic discourse is required.

Deleuze and Guattari’s schizo-analysis re-reasons the characteristics of schizophrenic subject into positive categories, negating the major fundamental assumptions of psychoanalysis. This is suggestive of the need to reason the limitations of psychoanalysis. The fundamental assumption of psychoanalysis is ‘familism.’

(10)

This paper discovered the fabrication of familism and the appearance of violence in an extreme family from Baek Min-seok’s novel. In the first place, familism in the novel forced gender distortion and gender dichotomy thinking through violence. Second, familism reasoned that obedient subject is produced through ‘labor’and the hatred and reification that the subject produces. Through this, this paper points out the limitations of psychoanalysis and its negative aspects and focuses on the potentiality of schizophrenic subject who can go beyond this.

The potentiality of schizophrenic subject can be inquired through Deleuze and Guattari’s ‘becoming’. This paper showed the process of‘becoming an animal’, ‘becoming a woman’, ‘becoming minority’, etc in Baek Min-seok’s novel and revealed the process of disintegrating the universality of social structure. This connected the aspects of figures shown in Baek Min-seok’s novel with characteristics of schizophrenic subject and showed how they escaped from the existing society.

In Baek Min-seok’s novel, type also has schizophrenic characteristics. This paper connected the schizophrenic characteristics as reasoned earlier with the writing style and showed how the writing style disintegrated ‘good-evil representation’ and

‘interpretation.’, ‘oedipianisation'

(11)

제1장 서론

제1절 연구 목적

정신분석의 보편적 개념들은 단순히 피분석가-분석가 사이의 임상학적 치료에만 머 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문학을 포함하여 다양한 학문 분야에 출현하여 모든 기호를 해 석하고 그 해석에 권위를 부여해왔다. 정신분석은 특히 문학의 다양한 사유(저자-전기 적 관점, 텍스트 내부의 허구적 인물-무의식을 중심으로, 텍스트-독자의 관계 등)에서 연구자·비평가가 소설의 기호를 과학적 타당성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백민석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정신분석학적 모티프들은 그의 소설들에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만들었다. 연구들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아버지와 어 머니의 부재, 문명과 대립하는 야만성, 동성애, 소설의 실험적 형식을 분열증적 인물들 의 증상(법에 대한 의식 결여, 시각과 청각, 후각 등에서 발생하는 환각, 유아기의 유 예 현상 등)과 연결하여 소설을 해명하였다. 이는 모든 증상들의 배후에 있는 x(팔루 스, 대상 a, 트라우마적 사건 등)를 찾는 작업으로, 그 작업들은 x를 이용하여 현실과 사회를 비판하였다. 이러한 사유는 분열증적 인물들의 증상을 부정적인 범주에서 사유 하기 때문에, 백민석 소설의 형식과 분열증적 인물들의 잠재성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 다.

이 연구는 ‘결여’로만 간주되었던 분열증적 인물들과 백민석 소설의 실험적 형식을 재발견하고, 정신분석학적 담론이 가진 한계를 파악하는 목적을 가진다.

사회는 표준들을 규합하여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에 따라 자본을 축적하는 인간 표 준을 내세운다. ‘축적’과 ‘표준’에 대한 거부에서 백민석의 인물들이 출현한다. 백민석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은 사회와 규범에서 벗어난다. 인물들은 일관적이지 않고 유목적 이다. 인물들은 다수로 형성된 남녀 사이의 결혼, 사회와 주체 사이를 잇는 부모, 사회 의 표준에 위치한 ‘남자’로부터 도주한다. 도주하는 인물들은 사회가 포획할 수 없는 양태로 그려지기에 저항과 전복의 잠재성을 가진다.

(12)

포획되지 않는 인물들을, 소설에 포획해야 하는 글쓰기 또한 기존 소설의 형식과는 다른 형식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다수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기표 들의 의미를 점유한다. 가령 로맨스 소설, 역사 소설과 같은 특정 유형의 소설들에서 강조되는 가치와 규율들은 다수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위한 경우가 많다. 로맨틱 소 설에서 강조되는 ‘이상적인 여성’-‘남성’을 위한 이상화-, 역사 소설에서 강조되는 국가 에 대한 윤리, 애국심, 정서-국가의 원활한 통치 전략-등에서 다수의 전략을 읽을 수 있다. 다수의 위치에 속한 주체들은 다수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그 의미를 보편으로 간주하거나, 그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때 소설은 이러한 의미와 가치 를 위해 편집증적 내러티브1)와 같은 소설의 문법과 규칙을 이용한다. 백민석의 소설은 독자가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기표들(가령 국가, 애국심, 남자 등)에 의문을 품게 한다.

지배/통치가 사물과 의미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그들의 체계를 공고화했다면 백민석은 분열증적 주체들의 삶(환상과 환각 등을 소설의 내용과 형식으로 구현)을 차용하여 그 것들에 저항한다.

문학의 일반이 ‘기-승-전-결’과 같은 단일한 서사와 파토스, 형식 등을 지시한다고 거칠게 말한다면, 이러한 연구는 문학의 일반에 대립되는 문학의 다양성을 활성화하는 기획이자, 사회의 표준이 포착할 수 없는 비표준과 소수에 대한 잠재성을 재발견하는 기획이다.

1) 김영찬은 편집증적 내러티브의 성격을 ‘음모론’으로 정의한다. 편집증적 서사가 음모론을 설득하기 위해, 소설 안에 있는 소재와 주제, 인물들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 즉, 편집증 적 서사를 소설의 의도(권선징악, 사회비판, 약자의 목소리 대변 등 하나의 목적과 주제의식을 내포) 를 충실히 반영한 서사라고 가정한다면 편집증적 서사는 사건과 인물을 가공하고 왜곡할 위험이 존 재한다. 현실의 인물과 사건은 특정한 의미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존재한 다. 백민석은 하나의 주제를 위해 인물과 사건을 가공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서사는 편집증적 서사와 달리 의미화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에 서론, 설명, 증명, 결론을 포 함하지 않는다. 더하여 하나의 줄거리로 요약되기 어려우며, 인간과 인간(인간과 사물)의 경계선도 뚜렷하지 않고, 시간 순으로 나열되지 않는 사건 등의 특징을 가진다. 본고는 이러한 서사를 분열증 적인 서사라고 명명한다. “편집증적 내러티브란 이 현실의 배후에는 그것을 조종하는 어떤 행위자가 있다고, 현실의 모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진정한 행위자의 음험한 전략에 의해 짜여지고 있다 고 상상하며 그에 기초해 현실의 사태를 파악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김영찬, 「개복치 우주(소설)론 과 일인용 너구리 소설 사용법」, 『비평극장의 유령들』, 2006, 139쪽.

(13)

제2절 선행 연구에 대한 논의

본고는 백민석 소설들에 대한 선행 연구를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살펴본다. 먼저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백민석을 포함한 작가들2)의 뿌리와 기원에 관한 이론이다. 이것 은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토대로 형성된 세대론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소재와 인물들 의 기원을 작가가 실존하는 시대의 대중매체, 역사적 사실, 사회 구조, 주거 공간에서 찾음으로써 소설의 등장인물들의 세대를 규정하고, 그 세대의 양태를 분석한다. 다음으 로는 소설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여정과 선택을 분석하는 논의이다. 이 러한 연구는 주로 정신분석에 기대어 자아를 탐구하며, 소설의 내용과 소재들을 가족 과 부모로 환원시켜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백민석 소설에서 나타나는 미학적 스타일과 그 효과에 대한 연구이다. 이는 백민석 소설의 주로 등장하는 환상성과 유희적 양식에 치중되어 있으며, 리얼리즘에 대립하는 측면에서 환상성의 기원과 효과를 분석하는 연 구이다.

먼저 세대론을 중심으로 소설의 인물들을 해명한 독해는 다음과 같다.

신수정은 90년대 신진 작가들 소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절망과 권태의 뿌리를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90년대 문학 이념에 대한 환멸 등에서 찾는다. 백민석 또한 동시대 작가로 현실의 파토스를 소설에 반영했다고 말한다. 신수정은 백민석이 이러한 역사적 징후(질병)를 극복하기 위해 유희와 환상성을 추구했다고 본다. 소설의 중심인물들이

‘아이들’인 이유 또한 그들이 유희와 환상성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주체들이기 때문이라 고 밝힌다. 이러한 논의는 백민석의 글쓰기 전략을 대변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소설이 유희적 예술에만 갇혀 사유되는 한계를 가진다.

김형중은 『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목화밭 엽기전』 등을 토대로 백민석 소설의 인물들을 397세대라고 부르며, 그들은 1990년 전후에 대학을 다 녔으며 70년대 초반 출생인 이들로 구성된다고 말한다.3) 그는 이들의 세 가지 특성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먼저 397세대는 가족으로 인한 상처, 즉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2) 신수정은 박청호, 배수아, 박성원, 김영하, 송경아, 김연수, 백민석 등을 포함하는 90년대 신진 작가 들의 뿌리를 이념에 대한 환멸 등 에서 찾는다. 신수정, 「텔레비전 키드의 유희-백민석론」, 『푸줏간 에 걸린 고기』, 문학동네, 2003, 177~193쪽.

김형중은 백민석, 김종광, 이명원, 홍기돈, 고명철 등을 범주화하고, 그들의 뿌리를 역사적 상황 (개 발 독재, 대중 문화, 전교조 제1세대, 아우라를 상실한 80년대적 저항의 몸짓 등)에서 찾는다. 김형 중,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켄타로우스의 비평』, 문학동네, 2005, 15~32쪽.

3) 김형중, 「녀석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켄타로우스의 비평』, 문학동네, 2005, 15~32쪽.

(14)

경험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학교에서 비롯한 상처, 학교 교육을 담당하는 국가 권력의 부패를 마주한 세대였다. 세 번째는 해방의 이데올로기의 호출에도 실패한 세대였다.

이제 아버지와 국가 권력, 해방 이데올로기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 세대들은 이미지, 즉 텔레비전 매체에 호출 당한다. 이는 신수정의 논의와 같은 방향으로, 백민석 소설에 서 등장하는 분열증적 인물의 양태, 패륜적 상상과 퇴행적 욕망의 기원을 구조의 폭력 과 부재한 주체성에서 찾는다.

안미영은 『죽은 올빼미의 농장』의 화자를 ‘아파트먼트 키즈’로 명명한다.4) ‘아파트 먼트 키즈’는 농지가 없는 도시에서 태어났으며, 인공의 세계에 길들여져 있는 인물이 다. 안미영은 아파트에서 성장한 화자로부터 퇴행적 특성을 산출하는데, 퇴행적 특성의 기원을 위의 연구들과 달리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화자를 아파트에 거주하는 현 세대와 동일시하는 분석과 ‘아파트먼트 키즈’의 명명을 볼 때, 그 기원의 준거를 아 파트에 거주하는 현 세대와 현 문화에서 찾는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백민석 소설을 자아의 형성 과정으로 간주하며, 등장인물들의 선택에서 주체 성을 찾는 연구이다.

신수정은 『헤이, 우리 소풍 간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딱따구리, 박스바니, 뽀빠 이, 새리, 일곱난쟁이 등)의 또 다른 기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부재에서 찾는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알지 못하는 인물들의 여정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적 해석을 시 도한다. 소설에서 아버지가 부재하는 인물들은 모성을 갈구하는 대신 아버지에 대한 연민(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진 인물들은 부성에 대하여 반항하는 감정을 가진다.)을 가진다. 신수정은 이러한 연민이 소설의 중심 서사를 이끌어간다고 말한다. 더하여 이 들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구적으로 유아적 특성을 가진 다고 말한다.

김영찬은 『죽은 올빼미의 농장』에서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화자, 해아리, 손자, 민)을 퇴행적인 인물, 도착적인 인물 등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인물들의 기원을 도시적 환경의 불모성에서 찾는다.5) 도시적 환경의 불모성에 의해 괴물로 규정된 화자는 어느 날 알 수 없는 발신인에게 편지를 받게 된다. 화자인 ‘나’는 발신인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인형을 들샘에 던지는 애도작업을 행한다. 김영찬은 소설의 서

4) 안미영, 「‘백민석 농장’과 아파트먼트 키즈의 생애」, 『죽은 올빼미 농장』, 작가정신, 2003, 197~210 쪽.

5) 김영찬, 「근대를 사는 괴물의 자의식 그리고 소설의 불안」, 『창작과비평』31(4), 창비, 2003.12, 415~420쪽.

(15)

사를 과거의 ‘나’와 결별하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이때 화자 앞에 놓여 있는 죽음과 관 련된 사건들은 화자의 자아가 유년기의 도착적인 증상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한다고 본 다. 이러한 논의는 소설의 서사를 주체의 성장 서사로, 사건들은 주체를 완성시키는 디 딤돌(또는 장애물)로 도식적으로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백민석의 환상성과 유희적 양식에 주목하는 연구들이 있다.

복거일은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를 해석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말한다.6) 『16믿 거나말거나박물지』의 유희적 양식과 해석의 난해함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기인한 것 으로 본다. ‘앎’의 초점을 둔 모더니즘과 달리 ‘있음’의 무게를 둔 포스트모더니즘의 성 향을 통해 백민석 소설의 환상성과 유희적 양식을 설명한다. 『16믿거나말거나박물 지』의 캘리포니아 나무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등은 어떠한 의미도 포함하지 않 는다. 그 기표들은 혁명, 자본을 지시하지 않는다. 그 기표들은 그저 ‘있음-존재’만을 표기하여 기표 배후에 있는 의미를 탈락시킨다.

하상일은 백민석 소설의 지향성,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비판한다.7) 먼저 그는 소 설에서 나타난 대중문화 소재의 기원을 자본주의와 문화산업의 논리에서 찾는다. 대중 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뒤틀린 몸과 성을 극대화한 엽기)는 대중의 기호를 좇는 자본 의 논리에서 탄생했다고 말하지만 백민석이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에서 쓴 후기

“이 믿거나말거나박물지들을 쓰면서 내가 걱정했던 것은 (…) 청탁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 걱정은 실제로, 몇 번 끔찍스럽고 부끄러운 현실로 나타나기 도 했고 덕분에 단편집 없이 장편만 두 권 먼저 낸, 낯선 전력을 쌓기도 했다.”(박물 지:282)를 감안했을 때 정당한 평가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소설의 환상성/성/욕망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 주제의식과 의미를 산출할 수 없는 내용/형식들은 독자에게 난해 함과 불편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8)

결론에서 하상일은 소설의 하위 문화의 소설 소재와 유희적 형식의 비판을 통해 소 설장르에 대한 복권, 즉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위한 소설을 주장한다. 이 는 소설을 ‘앎’이라는 모더니즘의 영역에서 두고,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기능하는 소설의 서사와 의미만을 소설로 정의하는 한계를 가진다.

6) 복거일, 「견딜 만한 지옥의 지도」,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문학과지성사, 1997, 256~280쪽.

7) 하상일, 「우리시대 독자들은 왜 '환상'에 탐닉하는가-하위문화와 우리 소설의 미래-백민석 소설의 엽기와 SF」, 『실천문학』, 실천문학사, 2000.11, 251~266쪽.

8) 윤지관은 백민석 작가의 과잉된 환상은 강한 사회적 환기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서술한다. 윤지관의 독해를 따르면 강간 및 살인에 대한 묘사는 사회 구조의 폭력을 상기하기 위한 시도로 읽어야 한다.

묘사의 목적은 독자에게 불쾌감을 주기 위한 것이지, 그것을 도착적으로 탐닉하기 위한 것이 아니 다. 윤지관, 「뫼비우스의 심층: 환상과 리얼리즘」, 『창작과비평』32(1), 창비, 2004.3, 257~280쪽.

(16)

양소진은 기존의 논의들이 백민석 소설이 가진 현실 전복과 비판에 치중되어 있음을 말한다.9) 하지만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에서 현실과 전복의 해석은 무의미하게 나 타나는데, 그것은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의 형식이 파편적이며, 소설의 내용은 ‘권 태’와 ‘유희’에 치중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의 해 석에 대한 불충분함을 민담과 연계하여 설명한다.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를 포함한 백민석 소설의 내재한 원리는 민담‧전설의 원리(환상성․그로테스크․심리적표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논의의 한계는 백민석 소설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 저항과 비판을 주목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는 인물들의 실제적인 폭력을 환상의 영역에서 제 한하여 설명한다. 이러한 결론은 백민석의 소설과 현실을 단절을 불러온다.

지금까지 진행된 백민석 소설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정신분석을 토대로 백민석 소설과 연계하여 역사적 상황을 분석하였다. 즉 국가, 이데올로기와 아버지를 동일화하 고, 그들의 부재에서 태어난 주체들(‘아파트먼트 키드’, ‘텔레비전 키드’, ‘397세대’ 등)을 역사적 공간과 시간, 매체와 연계해서 설명하였다. 소설의 인물들은 오이디푸스 콤플렉 스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체성을 가지지 못한 인물들로 정의된다. 정신분석을 토대로 한 연구·비평 해석은 주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분열증적 주체들에게 새로운 정 체성과 자아발견이라는 윤리적 목표를 제시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물들의 기원을 역 사적 시간과 공간(흑백 텔레비전에서 컬러 텔레비전으로 변한 순간, 국가 권력이 과잉 된 시간과 공간, 도시의 아파트 등)에 한정하여 찾는다. 인물들의 기원을 역사적 시간 과 공간에서 찾는 논의는 그들이 살았던 시간과 공간을 정확하고 풍성하게 재현하는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그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만 하거나(그들의 명 명법10)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와 역사에서 윤리적 목표를 재사유할 뿐 새로운 대 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다. 이러한 논의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먼저 세대론은 소설의 내용과 현실을 연계하여 사회 구조의 비판에 치중하는 논의 다. 세대론의 논의는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함에 있어 기여할 수 있지만, 소설의 인물들 을 역사적 사건(부모의 부재)에서 탄생한 ‘결핍된 주체’로만 전형화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정신분석의 토대에서 이뤄지며, 분열증적 주체의 잠재성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 다. 이는 백민석 소설에서 나타나는 오이디푸스 모델에 대한 고발과 오이디푸스 모델

9) 양소진, 「백민석 소설 연구 - 민담(民談)과의 친연성(親緣性)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 문, 2013.

10) ‘딱따구리 등 = 텔레비전 키드’, ‘70년대 초반 출생 작가 등 = 397 세대’, ‘화자, 손자 등 = 아파트 먼트 키드’

(17)

에 대한 탈주를 역기능으로 오인하는 독해의 한계로 이어진다. 이는 분열증적 주체에 대한 담론의 부재이자 동시에 정신분석 담론에만 치중한 결과이다. 이는 아버지와 어 머니의 기능을 초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부모-기능’의 연장에서 사회 구조를 사유하 는 만큼 구조의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이러한 효과를 소설의 분석에 적용했을 때, 백민석의 글쓰기 스타일과 미학적 전략 등은 세대론으로 환원될 위험이 있다. 세대론과 분리하여 백민석의 글쓰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또 다른 연구들은 소설의 형식에만 치중하는 논의이다. 그것들은 백민석 글쓰기의 미학적 전략에만 치중하여, 백민석 글쓰기가 함의하는 현실 전복적인 요소들을 파악하 는 데 어려움을 가진다.

신수정은 백민석의 소설 전반에 걸친 모티프들, 즉 하위문화에서 파급된 소설의 소 재, 환상성, 유희적 형식을 텔레비전 매체에서 발견한다. 그는 소설의 인물들을 텔레비 전 키드로 부르며, 그들의 기원을 컬러 텔레비전에서 찾는다.11) 이러한 논의는 확장되 어 작가의 소설 형식 안에서 텔레비전 매체의 특성을 발견한다. 즉, 그는 파편적인 몽 타주 형식, 시각에 의존하는 묘사, (개연성이나 인과관계를 대신하는) 우연적이고 환상 적인 구성 등을 텔레비전 매체와 연계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80년대 텔레비전 매체는 사회 구조의 폭력을 은폐하기 위한 선전도구로 사용됐다. 텔레비전은 전기 신호들을 의미화하여 위인이나 오로라공주와 손오공, 만화영화의 영웅들을 만들어냈다. 기만적인 전략으로 만화영화의 주인공들(선/악의 대립에서 ‘선’에 위치하는)과 스포츠의 팀(국가 와 지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하늘색대문집그것의 아버지는 축구 중계 방송 광이었다. (…) 온종일 틀어박혀 스포츠 중계 방송만 들여다보는 그것의 아 버지는 셔츠의 단추도 다 채우지 못할 정도로 몸이 불어 있었다.”(소풍:121) 이때 텔레 비전 매체는 서사와 시간에 의존하여 거짓 정체성들을 중심으로 의미화(국가에 대한 충성, 부모의 도덕적 책임 강화 등)를 구축하고 80년 세대를 가르쳤다. 권선징악과 같 은 인과관계, 구분이 분명한 선악의 이분법 등을 그들에게 설득했다. 이때 오히려 주체 는 시대의 폭력을 마주하는 대신 가상의 평화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서 발생한다. 백민석 소설의 형식, 즉 신수정이 말한 파편적인 몽타주 형식과 우연적이 고 환상적인 구성, 자유자재로 조정되는 시간 개념, 피아구별을 흐릿하게 만드는 소설 의 형식은 80년 텔레비전 매체의 속성에서는 기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11) 신수정, 「텔레비전 키드의 유희-백민석론」, 『푸줏간에 걸린 고기』, 문학동네, 2003.

(18)

한편 하상일은 소설장르의 특성을 보편적 서사와 연계하여 백민석 소설의 한계를 지 적한다. 이때 하상일이 말하는 보편적 서사는 개연성과 세계에 대한 의미화에 있다. 이 는 백민석의 소설을 개연성 없는 소설, 의미화를 해내지 못한 소설로 간주하며, 백민석 소설의 형식을 단순히 유희적 형식, 실험 문학에 가둔다. 백민석 소설의 형식을 살펴보 기 위해 다른 범주를 찾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흐름과 함께 양소진은 기존의 논의와 는 다르게 그것을 민담과 연계하여 전개하지만, 백민석 소설의 형식 안에서 현실 전복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본고는 이러한 한계가 분열증적 주체와 백민석의 글쓰기에 대한 불충분한 규명에서 시작한 것으로 간주한다. 분열증적 범주에서 존재하지 않는 부모를 불러와 인물들의 죄책감을 상기시키거나 분열증적 인물들의 목적지를 어머니의 자궁으로 설명하는 방식 은, 대상에 의미(이것은 아버지다. 이것은 어머니다. 이것은 남근이다. 이것은 자궁이 다.)를 강제한 결과이다. 정신분석의 주된 작업이 기표의 해석에 있다면, 그러한 해석 은 기표의 기능에 대한 사유를 어렵게 만든다. 정신분석이 의미와 해석에 집중하는 것 은 사회, 구조, 종교 등이 주체를 종속화시키는 메커니즘과 유사하다. 분석가·성직자는 진리의 주인에 초월적 기표(신, 언어, 정신분석학 지식)를 상정하고, 그 기표의 의미에 대한 지식의 보유자를 자처한다. 주체가 기표의 의미(욕망의 배후나 신의 뜻)를 물을 때 마다 분석가·성직자는 동음이의어처럼 아버지, 신을 반복해서 들려준다. 결국 의미 를 묻는 층위는 아버지나 신을 재현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백민석은 소설 안에서 기표의 의미를 묻는 대신 기표의 기능에 접근한다. 가령 인간 과 로봇의 차이를 묻는다면 우리는 생식 기능의 유무로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고, 그 생식 기능을 의미 차원에서 (신의 섭리 등) 설명할 것이다. 이때 기표의 의미를 끊임없 이 묻다 보면, 배후에는 신의 섭리나 원초적 아버지, 자연의 섭리, 이데아 등 증명할 수 없는 초월적 존재가 나타난다. 이는 인간이 감각할 수 없는 실재에 있는 것으로 간 주되기 때문에 신이 말하는 의미와 같은 것에 영원히 종속된다. 하지만 만약 로봇 또 한 생식 기능이 가능하다면 유일자 ‘인간’의 의미를 묻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분열-분석은 일체의 해석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분열-분석은 무의식적 재료를 발견 하는 일을 일부러 포기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 분열- 분석은 사회 기계들의 내재성 속에서 이 기계들의 사용과 기능을 발견한다.(안티:312)

(19)

백민석은 『목화밭 엽기전』에서 육체적인 아버지와 아버지 기능을 가진 삼촌, 즉 두 아버지를 내세워서 아버지 기표의 유일성을 무화한다. 더하여 잔혹한 삼촌은 육체 적인 아버지보다 더 과잉된 폭력으로 한창림을 억압한다. 이에 한창림은 살인을 하고, 그 모든 것은 삼촌 때문이라고 고백을 한다. 이제 주체의 모든 행동은 삼촌으로부터 설명 가능하다. 한창림이 삼촌과 닮은 육체와 성 행위를 한다면, 우울증에 걸린 여자와 결혼한다면, 살인을 한다면, 스너프 필름을 찍는다면, 고립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것은 모두 삼촌(아버지) 탓이다. 백민석은 모든 악의 근원에 삼촌과 아버지의 무능을 두고, 그것에 대해 비난한다. 이는 카프카의 고발과 같은 성격을 가진다.

(…) 내가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면, 결혼하지 못하게 된다면, 내가 글을 쓴다면, 글 을 쓸 수 없다면, 내가 이 세상에서 고개를 숙인다면, 무한히 황량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 했다면, 이 모든 게 다 아버지 탓이다. (…) 카프카는 이 모든 것 가운데 어 떤 것도 진실이 아니란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즉 그가 결혼할 수 없다는 것, 그가 글을 쓴다는 것, 황량하고 강렬한 세계에 매료되었던 것은 리비도의 관점에서 보아 완전히 긍정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파생된 반발은 아니었던 것이다. (…) 즉 카프카는 사랑하는 아버지를 증오하고 고발하며 유죄라고 선언하는 신경증적 유형의 고전적 오이디푸스로부터, 결백한 아버지의 가설, 아버지와 아들에 공통된 ‘고뇌’라는 가설에서 움직이는 훨씬 더 도착적인 오이디푸스로 나아간다는 것이 다. 이는 n번씩 거듭 고발하기 위한 것이고, 편집증적 해석의 계열을 통해 어디라고 말하거나 어디로 제한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비난을 퍼붓기 위한 것이다.

(…) 그 목적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장된 ‘사진’의 확대판을 얻으려는 것이다. 아버 지의 과도한 사진은 세계에 대한 지리적·역사적·정치적 지도 위에 투사되어, 그것으로 광대한 지역을 뒤덮게 된다. (…) 카프카가 말했듯이 문제는 자유가 아니라 출구다. 아 버지의 문제 역시 어떻게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오이디푸스적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거기서 아버지가 찾지 못했던 길을 찾아낼 것인가다.12)

1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카프카』, 이진경 옮김, 동문선, 2004, 29~31쪽.

(20)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에서 카프카는 모든 불행이 아버지에서 시작한다고 말한 다. 카프카는 모든 사건과 세계를 아버지의 상관 항으로 간주한다. 그 언표는 아버지에 대한 비난과 고발의 성격을 가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언표는 오이디푸스의 확장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의 확장, 즉 사회/국가/권력에 아버지의 이미지를 투여했을 때, 주 체는 그들이 아버지의 대체물이 아니라 사회/국가/권력의 생산물이 ‘아버지’라는 사실 을 깨닫는다. 아버지 또한 그들에게 굴복했으며, 연민의 대상이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삼촌’ 앞에서 한창림의 아버지는 한창림에게 비루하다. 반면에 아버지의 과잉으로 기 능하는 삼촌은 한창림을 ‘인간-되기’를 수행할 수 없는 극한의 상태로 밀어붙인다. 그 때 주체는 ‘인간-되기’를 포기하고 ‘동물-되기’를 수행한다.

다른 한편 오이디푸스의 희극적인 확대가 다른 억압적 삼각형들을 미세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한, 거기에는 그 삼각형들로부터 벗어나는 출구·탈주선의 가능성이 동시 에 나타난다. ‘악마적 세력들’의 비인간성에 대해 동물-되기의 하위-인간성이 응수한 다. 즉 고개를 숙이고 관료나 감시인, 판사나 피고로 남기보다는 차라리 곤충이 되고 개가 되고 원숭이가 되는 것, “망설이면서도 처음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13)

백민석의 또 다른 소설 『죽은 올빼미의 농장』에서는 『목화밭 엽기전』과 달리 아 버지의 기표를 재현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화자는 아버지가 없다. 정신분석 담론에서 부권 기능의 결여는 화자가 현실 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결과를 도출한다. 현실 감각 을 상실한 주체는 정신병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정신병자에게서 현실 상실의 원인을 찾지 않는다. “현실 상실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신병을 저 날조된 척도로 측정하고, 저 사이비 기준인 오이디푸스로 다시 끌어오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것은 추상적 조작이 아니다. 정신병자 안에, 바로 그에게, 결핍을 배정하기 위해서이더 라도, 어쨌든 정신병자에게 오이디푸스적 조직화가 강요되는 것이다.”(안티:220) 들뢰 즈·가타리는 아버지의 부재에서 정신병의 출현 가능성을 부정하고, 오이디푸스가 함의 하는 결핍에서 정신병자의 출현 가능성을 읽는다. 백민석 소설 『죽은 올빼미의 농 13)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카프카』, 이진경 옮김, 동문선, 2004, 36쪽.

(21)

장』에서는 이를 잘 보여준다. 분열증적인 화자14)는 신경증적 주체들이 생산해내는 생 산물을 생산하고, 그 또한 자본의 흐름-사회 구조에 속해 있다.15) 소설에서 화자는 분 열증적 주체의 양태를 보이지만 신경증적인 주체만 할 수 있다고 가정되는 수많은 기 능들을 그대로 수행한다.

백민석 소설의 두 극한-과잉된 아버지와 아버지의 부재-은 아버지 기표의 효과와 무능을 보여준다. 어떤 주체는 ‘아버지’의 효과로 스너프 필름 생산이라는 비-윤리적 생산을 보이고, 또 다른 주체는 ‘아버지’의 무능 안에서 여전히 생산으로 기능한다. 이 러한 생산들은 ‘아버지’를 통해 접근할 수 없는 또 다른 사유를 필요로 한다. 본고는 이에 들뢰즈·가타리의 이론을 통해 백민석 소설을 살펴보고자 한다.

본고는 백민석 소설을 크게 전기/후기로 분류해서 연구를 진행한다. 백민석의 전기 소설들(『헤이, 우리 소풍 간다(1995)』, 『내가 사랑한 캔디(1996)』, 『16믿거나말거 나박물지(1997)』, 『불쌍한 꼬마 한스(1998)』)은 특수한 문체16), 소설 구조,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후기의 작품들(『목화밭 엽기전(2000)』, 『러셔(2003)』, 『죽은 올 빼민 농장(2003)』)에서 변화가 발생한다. 전기에서 보여줬던 문체와 소설 구조는 간간 이 나타나고 그 대신 보편적 문장과 소설 구조가 전면에 출현하는데, 그 변화의 함의 는 작가의 후기에서 읽어낼 수 있다. “믿거나말거나박물지들을 쓰면서 걱정했던 것은 (…) 청탁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박물지:282) 작가의 걱정은 『16 믿거나말거나박물지』의 파급 가능성, 즉 소설의 낯섦으로 인해 독자의 거부에 대한 걱정으로 볼 수 있다. 소설의 낯섦은 독자에게 분열증적 주체에 대한 묘사를 전달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에 작가는 소설에서 가족주의의 폭력을 사유하는 방향으로 전 회한다. 백민석은 은폐된 가족주의에서 근대적 주체17)의 생산을 마주한다. 근대적 주체 14) 화자는 라깡의 진단 범주 중에 ‘정신병’의 범주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신병의 증상들은 환 각, 언어 장애(은유 생산 능력의 결여, 해체된 언어와 신조어 등), 상상적 관계의 우위, 통제되지 않는 충동들, 여성화 등이 있다. 이러한 증상과 화자의 상태를 비교했을 때 화자는 ‘정신병’-분열증 적 주체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옮김, 민음사, 2014, 133~178쪽.

15) 상징계의 수용 유무는 다양한 기준(법, 도덕 등)으로 측정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자본의 흐름 안 에서 주체의 운동(순행 또는 역행)을 통해 판별할 수 있다. 사회 구조의 영토와 자본주의의 영토는 완전히 일치하진 않더라도 중첩된 영토를 가지고 있다. 가령 국가의 일부인 법은 지속적인 자본의 흐름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되어 있다. 지속적인 자본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는 주체는 <정상인>처럼 상징적 질서에 속해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상계를 상징계로 덧쓰는 것(이는 <평범한 신경증 자>나 <정상인>의 진로이다)은, 경쟁이나 공격성으로 얼룩진 상상적인 관계를 이상, 권위, 수행, 법, 성과, 죄의식 등과 같은 상징적 관계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옮김, 민음사, 2014, 156쪽.

16) 갑자기 끊겨버린 문단, 특이한 위치의 마침표, 잦은 쉼표 사용 등

17) 들뢰즈·가타리가 정의한 주체는 정신분석의 언어로 규정된다. 그들은 근대적 주체의 출현이 가족주

(22)

는 아버지(어머니)의 욕망을 기준으로 자신의 욕망을 비난하며 환원한다. 이때 아버지 는 이미 오이디푸스에 사로잡힌 자이며, 두려움에 떠는 인물이다.

(…) 정신분석은 마치 아이가 먼저인 것처럼 군다(아버지는 단지 자기 얼니 시절 때 문에 아프다). (…) 또 모든 것이 아버지의 머릿 속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숨길수도 없 다. “네가 원하는 것은, 나를 죽이고 네 어머니와 동침하는 것, 바로 그거지? (……)”

이것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생각이다. (…) 지옥 같은 소란을 피우고 법을 앞세워 위협 하는 자는 바로 아버지다.(안티:459)

아버지는 자신의 욕망을 다양화하는 데 이미 실패한 자로, 그런 이를 아버지로 둔 근 대적 주체의 욕망 또한 사회 구조에 종속될 운명이다. 백민석은 이 과정에서 은폐된 가족주의의 폭력을 폭로함으로 주체 해방의 단초를 마련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후기 작품들에서 가족주의의 특징들을 과장하여 재현한다. 그 글쓰기는 과잉된 환상과 의미 화 가능한 소설 문법(편집증적인 소설의 구조, 문장, 인물, 편집증적인 서사)에 따라 가 족주의와 그 효과, 즉 등장인물에서 나타나는 과잉된 통일성(수컷, 강간, 살인, 폭력 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잔혹한 가상의 공간과 시간 안에서 편집증적 주체로 변하는 인물들은 결백하다고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저 오이디푸스라는 괴물을 내쫓길 바랐 을 뿐이다. 하지만 가족주의의 의도에 따라, 그들의 분투는 그들을 가족주의를 재생산 하는 주체로 탈바꿈시킨다.

본고는 가족주의에 대한 작가의 공포가 후기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단순히 분열증적 주체의 운동만으로, 가족주의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고 여긴 작가의 문제의식 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유는 분열증적 주체의 운동을 사유 하기에 앞서 가족주의에 대한 사유가 선행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보여준다. 본고는 이 러한 문제의식을 반영해 가족주의에 대한 문제를 앞장에 배치한 후 그것들을 탈주하는 분열증적 운동을 이후에 사유한다. 더하여 선행 연구가 백민석 글쓰기의 기원과 효과 를 단순히 매체의 영향과 실험적 소설로 한정했던 것과 달리, 분열증적 주체의 특질과 연계해서 그 글쓰기의 형식과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의와 욕망의 재현으로부터 탄생했다고 본다. 근대적 주체는 욕망을 다양하게 생산하는 대신 아버지 와 어머니만을 욕망하고 재현한다. “들뢰즈는 주체의 출현을 몇 가지 방식으로 진단한다. 그와 가 타리가 정신분석에 관해 쓴 글들은 욕망의 역사를 추적한다. 어떻게 생명이 부족적이고 집단적인 배치로부터 개인과 ‘그의’ 가족으로 이동했는지 그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다.” 클레어 콜브룩, 『들뢰 즈 이해하기』, 한정헌 옮김, 그린비, 2019, 186~187쪽.

(23)

제3절 연구의 시각

― 정신분석과 분열분석에 대하여

선행 연구에서 살펴봤듯이, 백민석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아버지의 부재와 분열증적 주체의 묘사는 정신분석 담론으로 해명하기에 불충분한 영역이 많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을 계승하고 있는 라캉은 분열증적 주체를 정신병의 범주에 위치시켰다. 그 범주 의 발생 메커니즘은 부권 기능의 폐제로 정의된다. 폐제는 부권적 기능의 부재를 나타 내며,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는 기표들이 정신병 환자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 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환자의 정신병적 징후를 발견하더라도 정신병, 즉 분열 증적 주체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하여 정신병 진단 후에도 정신병은 쉽게 치 료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정신분석은 분열증적 주체를 파악하는 언어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분열증적 주체의 특성을 증상으로 여기고 치료를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이것은 분열증적 주체에게 존재하지 않는 언어와 아버지를 불러 해명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 이라 볼 수 있다.

(…) <정신병>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세미나를 열었을 때 라캉은 이미 상당한 경 험을 쌓은 임상분석가였다(당시 그의 나이는 54세였고 적어도 25년간을 정신병과 씨름 해 왔다). 그러한 그도 (심지어는 정말 정신병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정신병의 <서명>

을 도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 세미나에서 밝히고 있다.18)

라캉의 정신분석은 정신병자를 구제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정신병 의 구조를 바꿀 순 없다. 한번 정신병이면, 영원한 정신병이다.19)

이를 위해 본고는 문학 작품을 해석하는 정신분석과 들뢰즈·가타리가 말하는 분열분 석의 비교를 통해 분열증적 주체들을 설명한다. 들뢰즈·가타리는 분열분석을 통해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욕망의 보편사(원시 시대, 전제군주시대, 자본주의 시대까지 의 역사와 정신분석의 출현)를 서술한다. 그들은 오이디푸스 모델이 주체를 사회에 편 입시키기 위한 억압 장치로 기능했다고 폭로한다.

18)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옮김, 민음사, 2014, 137~138쪽.

19) 브루스 핑크, 『라캉과 정신의학』, 맹정현 옮김, 민음사, 2014, 144쪽.

(24)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대상으로 한다. 주체의 무의식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관이 아 닌, 관념적인 실체로 간주한다. 정신분석은 그 관념적인 기관을 차지하고 있는 x를 찾 으려 열중한다. 그 x는 ‘모든 인간은 부모를 갖는다.’라는 전제와 연계되어 아버지와 어머니로 한정된다. 무의식에 존재하는 부모는 주체가 의식적으로 포착할 수 없다. 다 만 그것은 대표(ideational representative)로만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모든 행동을 통 해 무의식적으로 대표(ideational representative)된다. 즉 아버지를 향한 살해 욕망과 어머니를 향한 욕망은 금지되어 있는 욕망이며, 그것은 주체의 무의식에 자리한다. 무 의식적 표상으로 존재하는 욕망들은 환상이나 꿈을 통해 표현된다.

정신분석을 토대로 하는 연구·비평들은 문학을 금기된 욕망들이 표현되는 장으로 사 유한다. 즉 주체는 현실에서 표현될 수 없던 욕망과 금기들을 문학 속에서 재현한다고 본다.

[욕망이-인용자] 억압된 채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서 꿈이나 환상 등과 같은 변형 된 형태로 다시-나타나거나(represent), 문학이나 예술에서처럼 암묵적 형태로 다시- 나타나거나, 법적인 금지에서처럼 부정적 형태로 다시-나타납니다.20)

문학을 금기의 재현과 단일한 욕망의 재현으로 정의했을 때, 문학은 획일적인 장르 로 추락한다. 문학의 장에서 금기와 부모를 찾는 것은 작가의 경험을 재현할 뿐이다.

이러한 연구·비평은 인물들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 결국 같은 인물을 지시한다. 재 현되는 인물과 재현되는 서사는 새로운 창조성을 사유하지 못한다. 정신분석은 새로운 창조성을 가진 인물들을 아버지·어머니로 환원할 수 없는 광기의 범주에 둔다. 이때 주체가 가진 특이성은 왜곡되며 결핍으로 간주된다.

가령 신수정은 『헤이, 우리 소풍 간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딱따구리, 박스바니, 뽀빠이, 새리, 일곱난쟁이 등)의 기원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부재에서 찾는다. 인물 들의 서사는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명명되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표들은 모두 부 모와 관련되어서 설명되어진다. 그들의 종착지인 동굴 또한 형태의 유사성(구멍)으로 인해 어머니의 자궁으로 환원된다. 신수정은 동굴-자궁을 찾아가는 주체의 여정은 유 년기적 퇴행 욕망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설명은 동굴이 가지는 문학적 다의성 을 하나의 의미(어머니의 자궁)로만 환원하여 동굴 안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사건들(오 20) 이진경, 『노마디즘1』, 휴머니스트, 2013, 128~129쪽.

(25)

이디푸스를 초과하는 욕망들과 환상들, 설령 그것이 오이디푸스의 반대편에 있을지라 도)을 소거시킨다. 그 사건들처럼 특이성을 가진 인물들을 모두 다 결핍을 가진 인물 로 취급하며, 각각의 인물들이 가진 특이성을 구분하는데 실패한다.

정신분석의 목표는 소설이 현실의 재현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소설의 형식까지 제한 한다. 그것은 분열증적 소설의 잠재성을 긍정하는 대신, 언어 체계를 형성하지 못한 인 물의 중얼거림이나 사회 구조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격자의 주체성을 보여주는 실험 적인 소설로 치부할 수 있다.

백민석의 소설은 그로테스크, 환상성, 폭력성과 관련한 실험 소설로 평가되는데, 이 를 가족주의의 극한이 실현된 세계의 종언을 가리키는 분열증적인 징후와 대안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방향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는 것을 시사한다. 하나는 오이 디푸스 모델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분열 분석적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분열증적 소설의 잠재성에 대한 특질 연구이다. 첫 번째로 백민석 소설 안에서 가족주의의 극한 양상을 발견하고, 그것의 폭력을 사유한다. 다음으로 소설에서 나타나는 분열증적인 소설의 특 질을 정의한다. 이를 통해 분열증적인 소설에, ‘실패한 정신병자의 글쓰기’ 대신 ‘성공 한 고아의 예술’이라는 위상을 부여할 수 있다.

첫 번째 연구는 정신분석의 모티프들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소설 안에 그려진 인물들은 정신분석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꼭두각시 인형처럼 항상 반복된 행동 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물들의 모든 갈등은 아버지의 이름 아래 강요되는 도덕(법) 이나 어머니를 향한 욕망의 좌절에서 시작되어 그 생산물은 비극적 정서를 산출한다.

정신분석 담론은 오이디푸스와 같은 문학 작품에 내재해 있는 파토스를 인간의 원초적 인 것으로 소거시켜, 그것을 인간의 조건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비극적 정서는 모든 소 설에 존재하는 것처럼 설득되며, 해석이 강요된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는 실제로 그럴 만한 계기가 내포되어 있다. 그의 운명이 우 리를 감동시킨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될 수도 있고, 출생 전의 신탁이 우리에 게도 똑같이 저주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 최초의 성적 자 극을, 아버지에게 최초의 증오심과 폭력적 희망을 품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 른다. 우리의 꿈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우리를 설득시킨다.21)

21)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의 해석』, 김인순 옮김, 열린책들, 2003, 319쪽.

(26)

두 번째 연구는 분열증적 주체의 정당한 욕망 사용과 소설에 그것의 특질이 구현되 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잠재성을 정당하게 사유하기 위한 것이다. 정신분석의 욕망과 그것을 탈주하는 과정은 정신분석의 허구적 토대들을 고발하는 동시에 주체에 게 새로운 욕망의 잠재성을 제시한다.

이러한 비교는 정신분석이 개발한 가족주의의 효과와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 정신 분석의 목표는 주체의 심리적 이상을 치료하는 데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주체를 사 회 구조에 편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 구조는 특수성(여자, 광인, 난민, 흑인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사회 구조는 보편성(남자, 정상, 시민, 백인 등)을 토 대로 형성되는데, 이러한 보편성의 추구는 주체들의 잠재적 다양성을 소거시키는 방향 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과정은 주체들을 사회 구조에 복종화를 함의한다. 복종화를 해 체하는 전략으로 들뢰즈·가타리는 ‘동물-되기’라는 실천적 전략을 내세운다. 실천적 전 략은 소거시킬 수 없는 비-보편성을 극한으로 구현하여 보편으로 간주되는 것들을 의 문시하는 데 있다.

본고는 2장에서 가족(아버지, 어머니의 기능)의 허구성을 검토함으로 백민석 소설에 서 드러난 극한의 가족주의와 복종화된 주체의 발생을 규명한다.

3장에서는 백민석 소설에서 나타나는 결여의 욕망의 한계를 분석하고, 분열증적 주 체의 ‘동물-되기’ 양식을 연구한다. 이는 정신분석이 제안하는 ‘해석’에 대립하는 양식 이다.

4장에서는 백민석 소설에서 나타나는 분열증적 글쓰기의 형식을 살펴본다. 이는 피 터 브룩스의 전제22)를 통해 더 자세히 탐구될 수 있다. 브룩스는 문학적인 과정과 정 신적인 과정이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편집증적인 서사와 분열증적인 서사는 다르 다는 점을 시사한다. 우리는 이 점에서 분열증적인 주체의 정신 과정이 소설의 형식으 로 나타난다는 것을 추론 할 수 있다. 소설의 형식은 크게 소설의 구조와 문체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분열증적 소설 구조와 분열증적 소설 문체는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편집증적 서사를 따르는 소설은 독자와 텍스트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이를 전제하는데, 이는 텍스트와 의미를 강요받는 독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는 텍스트가 독자에게 항시 권위적인 아우라를 가진 위치에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분열증적인 텍스트는 다의적인 기표들을 발생시켜 새로운 생성을 보인다. 이 때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일어나는 해방 효과를 연구한다.

22) 피터 브룩스, 『정신분석과 이야기 행위』, 박인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9, 44쪽.

(27)

제2장 가족주의와 복종화 주체

―『목화밭 엽기전』을 중심으로

제1절 가족의 허구성과 극한의 가족주의

백민석 소설 『목화밭 엽기전』은 전작들(『헤이, 우리 소풍 간다』, 『내가 사랑한 캔디』, 『16믿거나말거나박물지』)에서 보여준 환상(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별할 수 없 는 서술, 의미화할 수 없고 ‘존재’만 하는 사건 등)과 문체(가령 문장의 끝에 마침표 대 신 쉼표 사용 등), 분열증적 인물 대신 충실한 현실감과 과잉된 자아를 가진 인물들이 출현한다. 이러한 시도는 전작들에 비하여 독자가 『목화밭 엽기전』의 서사를 이해하 기 쉽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그로테스크한 폭력의 묘사는 여전히 독자가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전작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가족주의’이다. 전작들에서 배경 모티프처럼 등장했던 가족주의는 『목화밭 엽기전』

에서 주요 모티프에 놓여 있다. 이러한 변화를 사유했을 때, 백민석의 문제의식은 분열 증적 주체의 잠재성에서 가족주의의 폭력으로 전회한 것으로 보인다. 그로테스크한 폭 력의 묘사는 비-가시성의 영역에서 작동했던 가족주의의 폭력을 가시성의 영역에서 보여준다. 동시에 그것은 익숙했던 가족주의를 낯설게 만든다.

『목화밭 엽기전』의 한창림은 대학교 시간강사로, 박태자는 수학강사로 일을 하며 남들처럼 살아간다. 이들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납치, 강간, 살해를 하고, 그 장 면을 촬영하는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촬영 비디오를 한창림의 옛 애인이었던 펫숍 삼 촌에게 팔고, 펫숍 삼촌은 그들의 범죄를 은폐하거나 지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소설 은 스너프 필름을 만드는 일과 평범한 일상의 기이한 공존을 보여주며, 그 공존을 가 능하게 만드는 삼촌을 무법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한창림의 폭행으로부터 시작한 우연 한 사건은 부부의 일상을 일그러뜨린다. 우연한 사건의 연쇄로 박태자는 펫숍 빌딩에 서 비참한 죽음을 맞고, 한창림은 서울랜드에서 구속된다. 하지만 펫숍 삼촌은 외부(법 을 초월하는 공간)에서 이 모든 사건을 관망할 뿐 잡히지 않는다.

소설에서 한창림과 박태자의 가해 경험은 쉽게 그들을 심판의 자리로 불러온다. 소 설은 명확히 식별 가능한 폭력 행위와 그 행위자의 폭력을 가시성의 영역에서 보이기 때문에, 그것은 독자에게 공포감을 전하는 동시에 폭력의 대응(피해자들의 구제와 예

(28)

방)을 촉구하는 양상을 보인다. 그로테스크한 폭력의 잔혹성은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 명 윤리를 촉발시키기 때문에, 생명 윤리는 피해자의 대척점에 있는 가해자-한창림에 게 책임을 묻는 형태를 가진다. 이때 가해자는 피해자들의 구제와 또 다른 폭력의 예 방을 위하여 분석 대상의 위치/윤리적 결단이 요구되는 위치로 간다. 이는 정신분석이 목표로 삼는 증상과 환자에 대한 분석으로 알레고리적 해석을 유도한다. 정신분석의 이론적 용이함과 이론의 익숙함으로 인해 소설의 독해는 한창림을 대상으로 인식하고 그의 변화를 촉구한다. 하지만 한창림은 자신의 폭력의 기원을 “피붙이 보다 더 가까 운”(목화밭:128) 삼촌이라고 진술한다.

사내애는, 거시기만 달려 있지 않으면 여자애로 성을 바꿔도 좋을 만큼, 그가 선호 하는 몸뚱일 갖고 있었다. 여자애도 아주 예쁜 여자애 말이다. (…) 희고, 보드랍고, 촉 촉했다.(목화밭:195)

(삼촌은) 이마며 뺨이며 팔목이며 드러난 살결들이 죄다 하앴다. 누이의 살결보다 한결 나아 보였다. (…) 그가 그런 사내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누이가 대본소에서 빌려 오곤 하는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 같다는 거였다.(목화밭:131)

이러한 진술에서 한창림이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육체적 특징과 삼촌의 육체가 유사하 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창림의 피해자들은 한창림의 성애의 대상이자, 폭력의 대상 이다. 한창림은 삼촌을 성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폭력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대상에게 성애/폭력을 재현한다. 이는 삼촌을 향한 한창림의 감정이 이중 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동시에 폭력의 기원이 삼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슬라보예 지젝은 『폭력이란 무엇인가』에서 폭력을 사유하기 위해서는 폭력을 경험 한 희생자의 증언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희생자의 증언은 진실보 다는 진정성의 층위에서 접근한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경험이 주체의 언어를 초과하는(사실에 대한 진술을 방해하는 수준에 이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 락에서 슬라보예 지젝은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한 증언의 진정성은 사건의 일관된 순서 와 정확함이 아닌, 혼란스러움과 비일관성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23) 이러한 관 점에서 한창림의 진술은 트라우마적 사건에 대한 증언의 양상을 보인다. 고장난 테이 23)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이현우·김희진·정일권 옮김, 난장이, 2012, 27쪽.

(29)

프처럼 반복되는 문장24)은 한창림이 겪은 트라우마적 시간과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둔 다. 그 문장은 소설의 맥락과 관련 없이 나타나는데,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가해자와 폭력의 흔적만을 남겨둔다. 가해자를 확인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과 돌발적인 문장의 출현은 한창림의 진술을 증언의 층위에 위치시킨다. 백민석은 한창림과 박태자의 피해 경험을 모호하게 묘사하고, 그들을 이중적 위치[피해자/가해자]에 둔다.

···휘몰아치는 빗발 가운데, 있지도 않은 기억까지 떠오른다. 아주 어렸을 적의 박 태자, 그녀 자신처럼 보였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쯤이다. 옅은 보랏빛의 치맛단이 짧 은 원피스를 입었다. (…) 그녀 허벅지 양쪽으로 피가 흥건했다. 걸쭉했고, 방울져 흘 러내리고 있었다. 그 피 탓에 그녀는 우는 걸까. 그 피를 쏟아지게 한 어떤 상황 탓에 우는 걸까.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는 저 뒤편의 환히 형광등 켜진 방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게 틀림없어 보였다. 저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무 일도 없었고, 그 저 피 탓에 우는 걸까. 어쨌거나 그 피는, 멋진 초록이었다.

(…) 그 장면은 아이를 집 뒤뜰에 팽개칠 때면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 그녀는[ 박 태자-인용자], 신경 쓰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녀는 피곤했다.(목화밭:109∼110)

누군가 그[한창림-인용자]의 입속에 비닐 빵 봉지를 쑤셔 박아 넣은 것 같았다.(목 화밭:9)

박태자/한창림의 강간과 살인 행위는 범죄 행위인 것은 분명하나, 그녀/그가 당한 강 간 경험25)-트라우마는 그녀/그의 사유를 정지시킨다. 이러한 순환(폭력의 피동 경험- 사유 정지-가해 행위-폭력의 피동 경험-···)은 독자가 박태자/한창림에게 윤리적 의무 와 죄악의 대가를 물을 수 없게 만든다. 독자는 오히려 박태자/한창림를 “플라스틱 인 형”(목화밭:78)처럼 생산된 생산물로 사유하며, 그들을 출현하게 만든 구조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24) 누군가 그의 입속에 비닐 빵 봉지를 쑤셔 넣은 것 같았다.(목화밭:9) 이 문장은 소설에서 반복되어 서술된다.

25) 한창림의 트라우마(폭력 피동) 경험은 소설에서 단 한 문장으로만 묘사되며,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30)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에 대한 법적 금지와 인간의 욕망을 인과 관계로 설정한 후에 인간의 욕망에 근친상간이 있다고 유추한다. “법은 인간들이 자신의 몇몇 본능들의 압 력 아래에서 행할 수 있는 것만을 금지한다. 따라서 근친상간에 대한 법적 금지로부터, 우리는 우리를 근친상간으로 몰아가는 자연적 본능이 있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26) 하지만 들뢰즈·가타리는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욕망을 비판한다. 들뢰즈·가타리의 욕 망은 ‘생산하는 욕망(무-오이디푸스적인)’으로 불리며, 그것은 현실의 결여를 재현하는 꿈(상상)과 아무 관련이 없으며,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라고 말 한다. “우리가 욕망을 오이디푸스와 관련시킬 때, 우리는 할 수 없이 욕망의 생산적 성 격을 무시하는 것이며, 우리는 욕망을 그 의식적 표현에 불과한 모호한 꿈이나 상상이 라고 단죄하는 것이며, 우리는 욕망을 독립적 실존들, 즉 생식자인 아버지, 어머니와 관련시키는 것이다.”(안티:193) 그들은 근친상간과 연계된 법의 숨겨진 의도를 의심하 며, 근친상간의 욕망을 허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법이 욕망 내지 본능들의 차원에서 완전히 허구적인 어떤 것을 금지하고는 자신의 신민들이 이 허구에 대응되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이들을 설득하는 데까지 일이 진행되기 때문이다.”(안티:205) 이것은 금 지와 결여의 욕망을 넘어, 그 허구에 대응하는 자연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설득의 과정까지 전제된다.

설득의 과정은 사회적 장(법, 도덕 등 다양한 규율들)에서 가족의 장(오이디푸스적) 까지 이행되는 과정27)으로 나타난다. “가족이란 한 사회의 경제 체계의 대중 심리적 재생산을 확보하는 한에서, 이 성적 억압을 위탁받은 담당자이다.”(안티:211) 이것은 가족의 장에서 이행되는 억압이 사회적 장에서 선행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생산 형 식에 내재한 탄압과 관련해 이해되어야 한다”(안티:211)는 것을 말한다. 즉 오이디푸스 적 억압은 선천적인 가족의 원형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국가, 법 등 사회적 장의 다양한 힘과 관련해서 형성된다. 여기에서 정신분석 담론은 가족적 억압을 정신 분석 개념-원형적인 오이디푸스의 특징과 연관하여 설명한다. 그 담론은 허구적 본원 성을 강요하여 사회의 편입을 정당화한다. 더하여 가족적 억압은 사회적 탄압과 구분

26) Sigmund Freud, totem et tabou, 1912, Paris : Payot, p.143.(안티:204)에서 재인용.

27) 들뢰즈·가타리는 가족적 억압과 사회적 탄압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그 이유는 억압과 탄압을 구분 하지 않고 사용할 때 발생하는 억압의 본원성 때문이다. 가족적 억압이 사회적 탄압에 선행한다고 이해될 때, 그것은 사회적 탄압을 은폐하는 효과를 가진다. 이에 들뢰즈·가타리는 둘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사회적 탄압을 선행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라이히의 힘은 어떻게 억압이 탄압에 의존하 는지를 밝혔다는 데 있다. 이것은 이 두 개념의 혼동을 조금도 내포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유순한 주체들을 형성하기 위해, 또 탄압적 구조들 속에 포함되는 사회구성체의 재생산을 확보하기 위해, 탄압은 바로 억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안티:211)

참조

관련 문서

- 전위의 증가에 따라 간섭확률도 증가 - 변형하면서 기계적인 강도증가...

Mollusks were among the first inhabitants of the Earth. Fossils of mollusks have been found in rocks and date back over 500 million years. Mollusk fossils are usually

등장인물들이 이야기의 압력하 에서 그들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본 모습이 드러나고 변화하 는 것이라면, 구조(플롯)는 바로 그 인물들이 선택하고 행동하는

•문법에 대한 규칙을 이해하고 적용할

인도의 세금법은 기간에 따라 자본을 Long-term과

주된 연결사(main connective)에 해당하는 규칙을 먼저 쓴다는 것만 기억하라.. 만일 제리가 쥐라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교육의 세기 라고 말할 정도로 교육에 대한 관심 ‘ ’ 과 가치가 날로 높아져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교육 기관은

정서․행동문제의 11개 하위척도별로 정상집단과 임상집단에 따라 형제관 계의 갈등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검정을 실시한 결과는 &lt;표 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