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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주차- 신천 변을 따라 나타나는 문화지형경관과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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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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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주차- 신천 변을 따라 나타나는 문화지형경관과 스토리텔링

신천은 비슬산 북동사면(용계천)과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우미산 남서쪽 밤티재 부근에서 각 각 발원하여 대구로 흘러 들어와 북구 침산동 침산 부근에서 금호강으로 합류한다. 신천은 금 호강의 최대 지류로 총길이 27km, 유역면적 165㎢에 달한다. 신천의 하상경사는 비교적 큰 편이다. 상류부인 가창교에서 상동교까지는 1/140이고, 하류부인 상동교로부터 침산교까지는 1/300정도이다. 따라서 유속도 빨라 상류는 초속 4∼5m, 하류는 초속 2∼3m의 유속을 보인 다. 이처럼 신천의 활발한 침식작용은 신천 변 곳곳에 수려한 지형경관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 다. 그러나 지난 시절 개발의 과정에서 정겹고 흥미로운 전설과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던 신 천의 문화지형이 하나 둘씩 사라져, 지금은 남아 있는 지형경관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나 마 신천 변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명소로는 가창교 부근에서 앞산 고산골 입구에 이르는 곳에 발달하는 용두산(앞산)의 수려한 경관들과 동신교∼수성교 사이 강바닥에 나타나는 공룡발자 국 화석뿐이다. 이마저도 신천 좌안도로 공사로 인해 상당부분 훼손돼 옛 모습이 많이 사라진 상태이다.

1) 신천 지명유래에 관한 오해와 진실

신천이라는 용어가 새로 생겨난 하천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알아보기 위 해 대구 판관 이서가 제방을 축조했던 1778년(정조 2년) 이전에 발간된 대구 고지도와 고문헌 을 조사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팔도여지지도(16세기 후기), 광여도(1698년∼1703년), 해동지도(18세기 초), 좌해분도(18 세기 중기), 동국지도(18세기 중기) 등에 표현된 신천의 위치는 현재 신천의 위치와 동일하다.

둘째, 경상도지리지(1425년),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의 대구편에 는 이미 신천이라는 지명이 나타나고 있다.

셋째, 신천이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이다. 고문헌을 두루 살펴봐도 대구 신천의 지명유래에 대 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신천이라는 용어가 대구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경기도 양주시의 신천(新川)이나 서울 강동구 잠실역 주변의 신천(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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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쌓았다는 내용만 있고 신천의 물줄기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림 1. 상동교 동편에 위치하는 이공제비

2) 강가 바위절벽(하식애) 용두바위

용두산은 신천 변에 인접해 있는 앞산의 한 부분이다. 신천 변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는 산 줄기를 말하는데, 마치 생긴 모습이 용의 모습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두산 북단에 는 원삼국시대 말기 내지는 삼국시대 초기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용두토성이 있어 용 두산의 실체를 분명히 해준다. 본 토성은 대구분지의 남쪽 관문역할 즉, 대구에서 청도로 이 어지는 주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용두토성이 위치하는 아래쪽 은 앞산의 고산골에서 흘러나와 신천으로 합류하는 부위에 높이 5∼10m 정도의 아담한 바위 절벽이 발달한다. 본 바위는 그것의 외양이 마치 용이 신천의 물을 마시는 용의 머리 부분과 도 흡사하여 ‘용두(龍頭)바위’라 불려왔다(그림 2). ‘용’이라는 신비감 때문인지 대구지역 사람 들은 예로부터 길일을 택해 이곳에서 촛불기도를 해오곤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곳을 통과 하는 고가도로의 개설로 인해 용머리의 모습이 상당부분 훼손되어 버렸다. 신천 변에는 원래 용두바위가 2개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고산골 입구의 용두바위 외에 또 하나의 용두바위 는 신천대로 공사 도중 훼손돼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용두바위 위로는 사찰이 있었 고 사찰 전면으로는 좁은 길이 나있어 이곳을 통해 앞산으로 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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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고산골 옆 앞산 능선에서 내려다 본 용두바위

그림 3. 신천 고가도로 건설로 용두바위가 훼손되는 과정

3) 용두산의 수려한 지형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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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산기슭 기반암에 발달하는 판상절리지형의 구조적 특성은 고인돌을 생산하기에 적합할 뿐 더러 겨울 신천의 동결은 이러한 큰 돌을 운반하기에 더 없이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기 때문이 다. 따라서 이곳에서 채석된 큰 돌들은 인근 여러 곳으로 운반돼 고인돌의 원재료로 활용되었 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토르 역시 고인돌의 원재료로 활용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지형·지질 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 판상절리지형과 더불어 고인돌의 중요 석재 공급원이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그런데 최근 완공된 앞산터널과 신천고가도로로 인해 상당부분 훼손되었고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지형조차도 경관훼손이 심한 편이다. 필자와 언론사 그리고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본 경관들을 이렇게라도 보존하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 각한다.

그림 4. 신천 변의 수려한 문화지형경관

4) 용두산 기슭의 구석기유물 바위그늘(암음)

신천 변을 따라 강바닥으로부터 약 10여 m 높이에 분포하는 바위그늘은 일종의 큰 돌로 이 루어져 있다(그림 5). 큰 돌은 동굴식으로 구성된 경우와 상부가 돌출 돼 동물의 가죽이나 나 뭇가지 등으로 지면으로 이어지게 덮을 수 있을 정도의 지형적 특성을 보인다. 이곳은 신천의 범람으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하여 선사시대 인류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천혜의 주거지 였을 것이다. 주거지 근방에서는 어로와 수렵채집이 가능하여 식량 및 용수 구득은 물론 침수 로부터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어 선사시대 주거지로서는 최고의 조건을 가지는 곳이었다. 실 제로 본 바위그늘에서는 삼국시대의 유물은 물론 청동기시대, 신석기시대, 구석기시대로 추정 되는 유물도 발굴되었다는 학계의 보고가 있었다(국립대구박물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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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신천 변에 위치하는 바위그늘(암음)

5) 공룡발자국 화석

동신교 상류 약 200m 지점 부근 강바닥 퇴적층에 약 70∼80여개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나타 난다. 이곳의 퇴적암은 약 1억만년 전의 중생대 백악기 지층으로 한반도에 공룡이 번성했던 시기에 살았던 공룡들이 남겨 놓은 흔적들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공룡들은 대부분 초식공룡인 용각류가 대부분이나 육식공룡이 수각류도 나타난다. 신천 가까운 곳으로는 고산골 입구에도 공룡발자국 화석이 존재한다. 특히 대구를 비롯해 경상도 일대는 중생대 백악기 당시 거대한 호수였던 것으로 파악되며 퇴적 당시의 환경을 알 수 있는 화석들인 곳곳에 나타난다. 대표적 인 것으로는 고산골 입구 실개천 바닥에 당시의 건조했던 환경을 알 수 있는 건열(m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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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신천 우안 동신교 상류 강바닥에 나타나는 공룡발자국 화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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