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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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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학-산문

강의 최진형

(2)

역사 서술의 전범 <사기(史記)>

사마천(BC145~BC86) 편찬 <사기(史記)>의 체계(全 130편)

본기(本紀) 12편 – 역대 왕조의 변천/정치, 행적 (편년체 서술) 표(表) 10편 – 각 시대에 대한 역사를 도표로 서술

서(書) 8편 – 국가제도의 연혁, 변천 등 서술 (문화사/제도사) 세가(世家) 30편 – 제후의 연대기

열전(列傳) 70편 – 개인의 전기

(3)

전(傳)의 전통과 가전체(假傳體) 몽유록의 유행

전(傳) 의 형식

- 인정기술 - 행적

- 논찬

※ 전의 궁극적 지향 : 인물 포폄(褒貶)을 통한 재도(載道)의식

※ 전의 종류 – 사전(史傳), 사전(私傳), 가전(家傳), 가전(假傳), 탁전(托傳)

※ 假傳體 – 전의 입전 대상을 사물로 치환함.

전의 양식에 관한 다양한 활용 가능성

(4)

을지문덕

을지문덕은 그의 세계(世系)가 자세하지 않다. 자질이 강용하고 지모가 있으며, 겸하여 글도 지을 줄 알았다. 수나라 개황 년간에 양제가 조서를 내려 고구려를 치게 하였다. 이에 좌익위대장구 우문술은 부여도로 나오고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은 낙랑도로 나와서 구군(九軍)과 함께 압록수에 이르렀다. 문덕이 왕명을 받아 그 진영에 나가 거짓 항복하니 실은 그 허실을 보기 위함이었다. 술과

중문이 이에 앞서 황제의 밀지를 받되 고구려의 왕이나 문덕을 만나거든 잡으라 하였다. 중문 등이 구류하려 하였는데 위무사로 있던 상서우승 유사룡이 굳이 말리므로 그만 문덕의 돌아감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곧 깊이 뉘우치며 사람을 보내 문덕을 속여 말하기를 “또 의논할 일이 있으니 다시 오라” 하였다.

문덕이 돌아보지도 않고 드디어 압록강을 건너 돌아왔다. 술과 중문이 문덕을 놓치고 속으로 불안하였다. 술은 식량이 다 하였음으로 해서 돌아가려 하였다.

중문은 정예부대로 문덕을 쫓아가면 공을 이룰 것이라 하였다. 술이 이를 말리니 중문이 노하여 “장군이 10만병력을 가지고 능히 이 소적을 무찌르지 못하면 무슨 낯으로 황제를 보겠는가” 하였다. 술 등이 마지못하여 따라 압록수를 건너 추격하였는데, 문덕은 수의 군사가 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피로하게 하려고 싸움마다 패하여 달아나니, 술 등은 하루 동안 일곱 번 싸워 다 이겼다. 갑자기 이긴 것을 믿고 또 중의(衆議)에 몰려 마침내 동쪽 살수(청천강)를 건너

평양성과 30리 되는 곳에 군영을 설치하였다. 문덕이 중문에게 시를 지어보냈다.

(5)

을지문덕(2)

“그대의 신책은 천문을 궁구했고 / 묘산은 지리를 다했도다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 족한 줄 알아 그만둠이 어떠리”

중문이 답서를 보냈다. 문덕이 또 사자를 보내 거짓 항복하고 술에게 청하기를 “군사를 돌이키면 왕을 모시고 행재소로 가서 조견하겠다”

고 하였다. 술은 군사들이 피로하여 다시 싸울 수 없고, 또 평양성이 험고하여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렵자 마침내 그 거짓 항복에 의해 돌아가는데, 방진(方陣)을 만들어 행군하였다. 문덕이 군사를 출동하여 사면으로 공격하였다.

술 등이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행군하여 살수에 이르러 군사가 반쯤 건너자 문덕이 군사를 내어 그 후군을 맹격하여 우둔위장군 신세웅을 죽이니, 적의 제군이 다 무너져 이를 금지할 수 없었다.

구군(九軍)의 장사가 달아나 돌아가니 일일일야에 압록수에 도달하니 사백오십리를 간 것이다. 처음 요수를 건넜을 때는 구군 삼십만 오천이었는데, 돌아가 요동성에 이르니 오직 이천칠백 인이 남았다.

사신(史臣)이 논하여 말한다. 양제의 요동전역은 출사의 성함이 전고에 없었다.

고구려가 한 변방의 소국으로서 능히 이를 막아내어 스스로를 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군사를 거의 다 섬멸한 것은 문덕 한 사람의 힘이었다. 전에 이르기를

“군자가 있지 않으면 어찌 능히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랴?” 하였는데 참으로 옳은 말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44, 열전>

(6)

백운거사전(白雲居士傳)

백운거사(白雲居士)는 선생의 자호이니, 그 이름을 숨기고 그 호를 드러낸 것이다. 그가 이렇게 자호하게 된 취지는 선생의 백운어록(白雲語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집에는 자주 식량이 떨어져서 끼니를 잇지 못하였으나 선생은 스스로 유쾌히 지냈다. 성격이 소탈하여 단속할 줄을 모르고 우주를 좁게

여겼으며, 항상 술을 마시고 취해 있었다. 초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갑게 곧 가서 잔뜩 취해 가지고 돌아왔으니, 아마도 옛적 도연명(陶淵明)의 무리이리라.

거문고를 타고 술을 마시며 이렇게 세월을 보냈다. 이것이 그의 실록(實錄)이다.

거사(居士)는 취중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천지로 금침을 하고 / 天地爲衾枕 강하로 주지를 삼아 / 江河作酒池 천일 동안 계속 마시어 / 願成千日飮

취해서 태평 시대를 보내리 / 醉過太平時 또 다음과 같이 스스로 찬(贊)을 지었다.

“뜻이 본래 천지 밖에 있으니, 천지도 포용하지 못하리로다. 장차 원기(元氣)의 모체(母體)와 함께 무한한 공허의 세계에 노닐겠도다.”

이규보(李奎報, 1168~1241),<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

(7)

지괴(志怪)와 전기(傳奇)

지괴 : 단순히 귀환(鬼幻)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

단순하고 쉬운 서사양식으로 초자연적인 사건을 ‘기록’

전기 : 사건의 처리 방법이 지괴와 다름. 역사가의 태도로 창작 사가(史家)의 태도와 필법으로 지괴와 역사를 배합.

창작성이 가미됨.

※ 당대 배형(裵鉶)이 <전기(傳奇)>란 이름으로 3권의 온권을 지어 고병(高騈)에게 바쳤다 함.

※ 온권(溫卷) : 당대(唐代) 문인들이 이문기담(異聞奇談)을 전술해 놓은 것.

자신의 문장실력을 과시하고, 상사의 기호에 영합하여 출세의 수단으로 삼음.

(8)

조신몽(調信夢)

옛날 신라(新羅)가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世逵寺)의 장원(莊園)이 명주(溟洲) 날리군(捺李郡)에 있었는데, 본사(本寺)에서 중 조신(調信)을 보내서 장원(莊園)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좋아하고 아주 반했다.

여러 번 낙산사(洛山寺) 관음보살(觀音菩薩)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또 불당(佛堂)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꿈 속에 갑자기 김씨 낭자(娘子)가 기쁜 낯빛을 하고 문으로 들어와 활짝 웃으면서, “저는 일찍부터 스님을 잠깐 뵙고 알게 되어 마음 속으로 사랑해서 잠시도 잊지

못했으나 부모의 명령에 못 이겨 억지로 딴 사람에게로 시집갔었습니다. 지금 내외(內外)가 되기를 원해서 온 것입니다.”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하며 그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와 사십여 년 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좋지 못한 음식마저도 계속해 갈 수가 없었고,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십 년 동안 초야(草野)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몸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溟洲)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십오 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어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9)

조신몽(調信夢)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羽曲懸)―지금의 우현(羽懸)―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었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십 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물을 몇 줄이고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하였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 했었습니다. 한 가지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오십 년 동안에 정(情)은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게 얽혔 으니 가위 두터운 인연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쇠약한 병이 해 마다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도 날로 더욱 닥쳐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나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문전(門前)에 걸식하는 부끄 러움은 산더미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사랑에 있어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초(芝草)와 난초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이제 그대는 내가 있어서 누(累)가 되고 나는 그대 때문에 더 근심이 됩니다. 가만히 옛날 기쁘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대와 내가 어찌해서 이런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10)

조신몽(調信夢)

뭇새가 다 함께 굶어 죽는 것보다는 차라리 짝 잃은 난조(鸞鳥)가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만 못할 것입니다. 추우면 버리고 더우면 친하는 것은 인정(人情)에 차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행하고 그치는 것은 인력(人力)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헤어지고 만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원컨대 이 말을 따라 헤어지기로 합시다.”

조신이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각각 아이 둘씩 나누어 데리고 장차 떠나려 하니 여인이 말하였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그대는 남쪽으로 가십시오.”

이리하여 서로 작별하고 길을 떠나려 하는데 꿈에서 깨었다.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惘然)히 세상 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살의 상(像)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 을 길이 없 다 . 그는 돌 아 와서 해현 에 묻 은 아이 를 파보 니 그 것 은 바 로 돌미륵(石彌勒)이다. 물로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私財)를 내서 정토사(淨土寺)를 세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

<삼국유사(三國遺事)>

(11)

풍속과 역사를 담은 야담의 세계

'이야기주머니'[說囊] 김옹은 이야기를 아주 잘하여 듣는 사람들은 누구없이 포복절도하였다. 그가 바야흐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잡아 살을 붙이고 양념을 치며 착착 자유자재로 끌고 가는 재간은 참으로 귀신이 돕는 듯 하였다. 가위 익살의 제일인자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을 조롱하고 깨우치는 뜻이 담기었음을 알게 된다.

『추재집(秋齋集)』

(12)

야담에 비친 조선후기 사회상

-몰락양반

유진사는 집이 가난하여 조석도 차리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더욱이 흉년을 만나 살아갈 길이 막연했다. 긴긴 여름날에 연 5일 간이나 밥솥에 불을 지피지 못했다. 허기를 견디기 어려워

사랑방에 누워 있었다. 내당에서 오랫동안 사람 소리도 없이

조용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몸을 일으켜 가 보려 했지만 기운을 낼 수 없었다. 엉금엉금 기어 안방으로 가 보니, 마침 그의 아내가 입에 무엇인가를 우물거리고 있다가 유진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여 감추면서 얼굴을 붉혔다.

"여보 무엇을 먹고 있다가 나를 보고 숨기오?"

"먹을 만한 것이 있으면 저 혼자 먹고 말겠어요? 아까 정신이

어지러워 쓰러져 있는데 수박씨가 벽에 말라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집어다 씹으니 빈 껍질이었어요. 그래서 한숨이 나오다가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그만 겸연쩍어졌답니다."

하고 손에서 수박씨를 내보이는 것이었다. 그들 부부는 서로 눈물을 흘렸다.

『청구야담』

(13)

야담에 비친 조선후기 사회상

-富 추구

- (전략)-

날이 저물면 그들 부부는 매일 밤 뒤뜰에 나가 구멍 예 닐 곱 을 파 고 들 어 왔 다 . 그 리 고 섣 달 이 되 자 주머니를 많이 만들어서 마을의 여러 집 머슴들에게 나눠주면서 개똥 한 섬으로 그 값을 정해 주었다. 초봄 날이 풀릴 무렵 파 놓은 구덩이를 모두 개똥으로 메우고 봄보리를 파종하였다. 그 해 큰 풍작이어서 거의 100여 짐을 거두었다. 또 이어서 담배를 심어 수십 냥의 돈을 손에 쥐었다. 이처럼 근근히 하여 6, 7년이 지나자 전곡이 집에 가득 찼다.

- (후략)-

『청구야담』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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