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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술의 순례 - 조선의 과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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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 술의 순례 - 조선의 과실주

허시명 술 평론가, 막걸리학교 교장

과실주는 과실로 만든 모든 술을 말하지만, 현재 과실주를 대표하는 것은 와인, 즉 포도주이다.

포도주는 포도나 그 즙액을 발효해 만든 알코올음료이다. 그런데 일반 가정에서 소주와 설탕을 이 용하여 포도주를 담그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밖에 소주에 담아 침출하는 과실주로 매실주, 모과주, 앵두주, 무화과주, 딸기주, 산사자주, 밀감주, 유자주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술은 과실주가 아니고 혼성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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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건강에 대한 관심과 무역 자유화로 포도주 수입량이 급증했다. 2008년 수입 주류가 6억 7천만 달러를 차지했는데, 그중에서 포도주(25%)가 위스키(38%)에 육박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포도주를 포함한 국산 과실주 제조장도 제법 늘어나고 있다. 과실주에 관심을 보이는 국내 과수 농가도 늘어나 포도주, 머루주, 복분자주, 사과주, 감술, 다래주 등 다양한 과실주가 생산되고 있다.

수입산 포도주가 범람하니 한국 포도주의 역사가 미미한 것처럼 여겨지겠지만, 한반도의 포 도주 역사는 그리 녹록지 않다. 우리나라 포도주의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헌 에 따르면, 『고려사』충렬왕 편에 포도주가 처음 등장한다. 고려 충렬왕 28년(1302년) 2월에는

“원나라 황제가 왕에게 포도주를 선물로 보내주었다”라고 했고, 34년(1308년)에는“중찬 최유 엄이 원나라에서 돌아왔는데 황제가 왕에게 포도주를 보냈다”라고 했다. 고려 왕실에서는 그때 처음 수입 포도주를 맛본 셈이다. 그 포도주가 원나라에서 제조된 것인지, 실크로드를 타고 온 서역의 포도주인지는 알 수 없다.

한반도에서 포도주를 빚은 것은 그 뒤로 여겨진다. 하지만 유럽식 포도주는 아니었다. 조선 중기에 저술된『동의보감』에서“익은 포도를 비벼서 낸 즙을 찹쌀밥과 흰누룩에 섞어 빚으면 저 절로 술이 된다. 맛도 매우 좋다. 산포도도 괜찮다”라고 했다. 조선 후기에 저술된『양주방』에는

“익은 포도를 짜서 즙을 내 두터운 그릇에 담고, 찹쌀을 깨끗이 씻고 또 씻어 묽게 쪄, 좋은 누룩 가루를 섞어 포도즙까지 한데 빚으면 자연히 술이 되어 빛과 맛이 좋다. 산포도로도 하고, 빚는 법과 분량은 보아가며 뜻대로 하라. 술밑을 하려면 찹쌀로 빚는 술 방문에 첫날이나 이틀째에 포도즙을 섞어 빚되, 방문에서 물을 한 되쯤 덜어라”라고 좀 더 상세하게 적고 있다.

조선시대 포도주는 누룩과 찹쌀 고두밥과 포도즙을 함께 넣는 독특한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 다. 또 하나의 근본적인 차이는 조선시대 포도나무가 지금의 포도나무와 다르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와인 제조장에서 포도주의 원료로 쓰는 품종은, 주로 생과로 많이 소비되는 캠벨얼리이다.

이는 조선시대엔 없었고, 1906년에 뚝섬원예모범장이 설립된 이후에 농가에 널리 보급된 품종 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포도나무는 어떤 품종일까? 포도를 잘 그리기로 소문난 조선시대의 화가 황 집중(1533년~?)의「묵포도도」에 등장하는 것은 잎이 다섯 갈래 진 까마귀머루다. 신사임당 (1504~1551년)이 그린 포도를 보면, 포도 한 송이 안에 검붉게 익은 포도와 아직 익지 않은 포도 가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 머루로 여겨진다. 포도는 한 송이에 매달린 알맹이가 한꺼번에 익고, 머루는 드문드문 익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조선시대 포도주의 원료가 된 것은 머루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뿌리를 따지면 머루는 포도의 조상이다. 고려가요「청산별곡」에“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 다”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듯이, 머루는 우리 산야의 토박이였다. 이렇게 보면 지금 빚는 머루주 가 한국 전통 포도주의 맥을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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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포도주의 역사는 개항기에 접어들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이전에 유럽 포도주를 맛본 이 들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와인 통이 제주도에 표류한 적이 있었는데, 하멜이 그에 대한 기록 을 남겼다. 때는 효종 4년(1653년)에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타이완을 거쳐 일본 나가사키로 향 하던 하멜 일행이 폭풍을 만나 난파해 제주도에 상륙했다. 그때 모두 36명이 제주도에 상륙해 제주 관아로 끌려가 취조를 받았다. 그런 다음 한양으로 끌려가 14년간이나 억류 생활을 했다.

하멜은 현종 4년(1666년)에 일행 8명과 함께 탈출해 일본을 거쳐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고국으 로 돌아간 하멜이 제주에서 경험한 것을 적은 책이『하멜 표류기』이다. 이『하멜 표류기』에 조선 에 상륙한 포도주 이야기가 나온다. 『효종실록』에는 난파한 이들의 배에서 거두어 올린 통 안에 약재, 사슴 가죽, 나무 향 따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포도주 이야기는 없다. 하멜은 난 파한 다음 날인 1653년 8월 16일에 상륙한 바닷가에 혹여 먹을 것이 없나 돌아보다가 포도주 한 통(a cask of claret)을 얻었다고 한다. 이‘클라레’포도주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최초의 유럽 포 도주인 셈이다. 클라레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로제 와인 톤의 엷은 빛이 나는 레 드 와인을 가리킨다. 하멜 일행은 이 포도주를 제주도의 관리에게 작은 망원경, 선장이 쓰던 은 잔과 함께 상납했다. 이에 대해『하멜 표류기』에“제주 관리들이 그 술을 썩 좋아하여 취흥이 도 도할 때까지 마시기를 마지 아니 하였다”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한반도의 제주 땅에 상륙한 프 랑스 보르도 와인은 상륙한 지 5일 만에 제주 관리의 몸속으로 사라져갔다. 『효종실록』에 클라 레 와인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법으로 지정하는 과실주의 제법은 다양하다. 당이 발효가 되는 원리는 동일하지만, 과실 을 얼마나 넣느냐, 당을 얼마나 추가하느냐, 주정이나 첨가물을 넣느냐에 따라 그 특성과 기질 이 다르다. 주세법에 따르면 과실즙이나 건조한 과실을 100% 사용하면 순수 과실주, 과실에 당 분을 첨가하면 보당 과실주, 순수 과실주나 보당 과실주에 탄산가스를 주입하면 발포성 과실주, 순수 과실주나 보당 과실주에 과실즙이나 첨가물을 넣으면 과즙 첨가 과실주, 순수 과실주나 보 당 과실주에 주정이나 브랜디나 일반 증류주를 넣으면 알코올 강화 과일주가 된다. 그런데 현재 과실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과실에 당분을 첨가한 보당 과실주와 과실을 발효시킨 뒤에 주정을 첨가하는 알코올 강화 과일주이다. 아직 한국의 과실주가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과실을 100% 사용한 순수 과일주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근자에 생산량이 늘어난 과일주로 복분자주와 머루주를 꼽을 수 있다. 복분자는 고창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량이 늘더니 지금은 재배 지역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고창 복분자의 생산 추이 만 보더라도 1999년에 110톤이던 것이 2002년 에 320톤, 2007년에는 1,510톤으로 근 10년 사

사진 1. 복분자를 수확하는 모습 사진 2. 복분자로 빚은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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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약 15배나 성장했다. 머루 재배지도 파주 감악산, 무주 구천동, 지리산 주변 지역으로 확산 되었는데, 무주에만 4개의 머루주 공장이 생기고, 전체적으로 20개가 넘는 머루주 제조 공장이 생겼다.

과실의 특성을 보았을 때, 한국 포도주의 큰 계보를 잇고 있는 것이 머루주로 여겨진다. 머루 는 포도의 먼 조상이고, 조선시대에는 머루가 포도의 대명사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머루는 포도보다 색소가 진해서 먹으면 입이 새까매질 정도이다. 신맛에 가려 포도보다 덜 달게 느껴진 다. 머루주의 맛은 포도주보다 걸쭉하고 무겁게 느껴진다. 머루의 크기는 포도의 3분의 1에 지 나지 않는다. 그런데 씨앗의 크기는 포도와 같아, 껍질과 씨앗을 빼고 나면 머루의 과육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머루는 생과로는 먹을 것이 없어 대부분이 머루즙이나 머루주로 가공 된다. 압착 수율을 보면, 포도는 75% 가량이 즙으로 나오는데, 머루는 55% 가량이 즙으로 나온 다. 게다가 수확기의 머루 가격은 1kg에 2,000원이 넘는데, 포도는 1,000원이 안 된다. 머루주 의 제조 원가가 포도주보다 3~4배 높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포도주와 머루주 담는 법은 동일한데, 가정에서 담을 수 있는 포도주 제조법을 소개하면 다음 과 같다.

먼저 포도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거나, 혹은 씻지 않고 그냥 포도를 한 알 한 알 따내어 함지 에 담는다. 그런 다음 포도를 맨손으로 치대듯이 으깬다. 포도 껍질과 포도 알이 분리되고, 포도 즙이 흥건히 고이도록 주물러 터뜨린다. 포도주 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분량을 조사하여 부족한 당을 첨가하는 과정이다. 재배 기간이 길어 일조량이 많은 지중해의 포도는 당도가 24Brix(브릭스, 당도를 재는 단위. 그 절반의 수치가 알코올 도수로 전환된다)가 나오는데, 우리 포도는 14Brix쯤 나온다. 나머지 부족한 당도는 설탕으로 보충해준다. 이때 설탕량은 알코올 농 도를 몇 %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설탕 첨가량=포도 무게×〔(목적 당도-현재 당도)÷(100-목적 당도)〕

이 공식만 알면, 집에서도 누구나 맛있는 포도주를 담글 수 있다. 여기서 목적 당도는 알코올 13도 와인을 만들겠다면 26Brix이 되고, 조금 약하게 12도 와인을 만들겠다면 24Brix가 된다.

Brix 수치를 기준으로 했을 때, 발효되고 나면 그 절반 정도 수치가 알코올로 전환된다. 그리고 현재의 포도 당도는 14Brix쯤으로 설정하면 된다. 포도 3kg을 기준으로 13도짜리 포도주를 담 그겠다면 설탕 486g을 넣으면 된다. 포도주의 갈변을 막고 잡균을 없애려면 아황산염을 티스푼 으로 반쯤 넣는다. 아황산염을 넣고 4시간이 지난 뒤에 효모를 포도량의 0.02%를 넣는다. 그 뒤 에 25℃ 정도의 상온에서 일주일쯤 발효시킨다. 일주일 뒤에 체에 걸러 발효된 포도주와 포도 껍질, 씨를 분리한다. 분리한 포도주를 시원한 곳이나 냉장고에 보관하여 서너 달쯤 숙성시킨 다. 서너 달 뒤에 가라앉은 앙금을 제거하면 맛있는 포도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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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주는 집에서 손쉽게 담가 먹을 수 있지만, 가양주와 상품화된 술의 품질 차이가 크기 때 문에 전혀 다른 술이라는 느낌이 든다. 포도의 단맛과 신맛, 떫은맛을 어떻게 조절했는지와 발 효 조건, 숙성 시기, 그리고 보관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의 술들이 생겨난다. 이렇듯 빚는 이와 조건에 따라 개성이 달라지기 때문에 국내산 와인의 존재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진제공 | 허시명〕

포도 으깨기 포도주 빚기 체험을 하는

동호인들

포도주 양조시설 포도주 숙성탱크

사진 3. 포도주 빚는 과정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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