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聯句와 하이카이(俳諧)의 구조적 특성 비교 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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聯句와 하이카이(俳諧)의 구조적 특성 비교 연구

‒ <城南聯句>와 ‘쇼몬 하이카이’(蕉門俳諧)를 중심으로 ‒

52) 신 은 경*

❙국문초록❙

연구와 하이카이는 복수의 작자가 하나의 텍스트를 완성해 간다는 독특한 생산방식으로 인해 텍스트 길이 가 장편화하는 경향이 있고, 화자의 고양된 정서의 유지 및 표출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원심화 경향을 보이며, 문학을 창작하는 일에 놀이의 요소가 크게 강조된다는 공통성을 지닌다. 이러한 공통점들은 두 문학양식을 비 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연구는 완성된 하나의 텍스트가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닌 ‘한 편의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에 비해 하이카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연구에서 개개 구를 통괄하여 한 편의 텍스트로 인식되게 하는 장치들로서 ‘제목’ ‘종결 징표’ ‘압운’ 등이 있는데 하이카이의 경우 이런 요소들이 결여되어 있다. 하이카이에서도 연구의 제목과 유사한 것으로 후시모노(賦物), 압운과 비슷한 것으로 마에쿠(前句)라는 것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어떤 공통의 요소를 ‘나열’해 가는 성격을 띨 뿐, 개개의 구 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구실을 하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전체의 통일성’이 추구되는 연구와 ‘부분의 독자성’이 중시되는 하이카이의 특성은 ‘구조’와 ‘구성’이라는 말로 변별할 수 있다.

[주제어] 연구, 하이카이, 장편화, 원심성, 놀이성, 제목, 종결 징표, 압운, 후시모노, 마에쿠

Ⅰ. 들어가는 말

문학작품은 일반적으로 ‘어떤 작가나 시인이 자신의 사상과 감정, 의견을 개성적인 언어표현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정의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복수의 작자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공동 창작 한다고 하는 상황은 문학생산의 획기적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텍스트가 생산되는 과정에 2인 이상 복수의 작자가 개입되어 있는 시 양식으로는 唱和詩, 和韻詩, 次韻詩, 酬酌詩, 集句詩, 聯句, 일본의 렌가(連歌)나 하이카이(俳諧) 등이 있다. 창화시는 복수의 시인이 서로 시를 주 고받는 형태이고, 차운시는 어떤 사람이 지은 시의 운을 가져와 같은 운을 사용하여 자신의 시를 짓는 것이

* 우석대학교 / fnsek@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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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집구시는 어느 한 시인이 기존의 여러 시인의 시구들을 모아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형태이다. 이 경우 복수의 작자가 개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완성된 한 편의 시의 작자는 한 명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에 비해 연구나 렌가, 하이카이는 복수의 작자가 모여 번갈아 가며 일정한 數의 구를 지어 한 편을 완성 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앞서의 시 양식들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지닌다. 즉, 하나의 텍스트가 1인의 작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냐 복수의 작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이카이(俳諧)는 달리 ‘렌쿠’(連句)라고도 하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 5/7/5字의 上句와 7/7字의 下句를 번 갈아 지으며 36구, 100구1)등을 완성하는 공동합작의 문학양식이라는 점에서 그 독특성을 찾을 수 있다. 하 이카이는 ‘하이카이노렌가’(俳諧の連歌)를 줄여서 말한 것인데 이는 하이카이가 렌가와 별개의 양식이 아니라 렌가의 한 종류로 출발했다는 것, 그리고 그 근원은 렌가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렌가나 하이카이 한 권을 짓는 데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칙2)이 있어 참여자3)들은 이를 숙지해야 하므로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소양 이 없으면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가 없다. 하이카이의 첫구를 ‘홋쿠’(發句)라고 하는데 이것이 독립하여 ‘하이 쿠’(俳句)라는 문학양식이 성립되었다.

漢詩 영역에 있어 聯句 또한 몇 사람이 모여 구를 번갈아 지으면서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는 공동 합작의 문학양식이라는 점에서 하이카이와 공통점을 지닌다. 연구의 최초 작품으로는 보통 漢武帝 때의 <柏梁臺>를 드는데 이 작품은 7언 26구로 되어 있고 1인 1구로 매구마다 押韻을 한 것이다. <백량대> 시 이후 宋 孝武 帝의 <華林曲水>, 梁 武帝의 <淸暑殿>, 唐 中宗의 <內殿> 등도 1인 1구 매구 압운의 형식으로 <백량대>를 모방하여 지어진 것들이다. 六朝時代에 들어오면 1인 1구 매구 압운의 ‘백량체’ 외에도 1인 1구 隔句 押韻, 1인 2구 격구 압운, 1인 4구 격구 압운과 같은 다양한 형식이 생겨나게 된다. 연구 창작이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는 것은 中唐에 들어와서이다. 이 시기에는 韓愈와 孟郊에 의한 306구의 대작 <城南聯句>와 같은 장편 이 출현하기도 했고 참가하는 작자수도 2인~5인이 다수를 이루는 가운데 29인이 참여하는 작품도 나타났 다.4) 이 시기에는 한유, 맹교 외에도 白居易·顔眞卿·皎然 등이 연구 작자로 활약했다.

이 글은 공동합작이라는 동질성을 지닌 연구와 하이카이를 비교 검토5)해 보는 데 목표를 둔다. 구체적으 로 Ⅱ장에서는 두 문학양식을 비교 검토할 수 있는 근거로서 양자가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을 살피고 Ⅲ장

1)이렇게 하여 이루어진 36, 100구 등의 텍스트를 이라 부른다. 2)이를 시키모쿠’(式目)라 한다.

3)이를 렌쥬’(連衆)라 한다.

4)顔眞卿 등이 지은 <登峴山觀李左相石尊>이 그 작품이다. 能勢朝次, 「聯句と連歌」, 連歌硏究 (能勢朝次著作集7), 京都: 思文 閣出版, 1985, 26.

5)이 두 문학양식은 여러 사람의 공동합작이라는 특이한 공통점으로 인해 그 영향관계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렌가는 短連歌와 長連歌 ‒ 혹은 鎖連歌 ‒ 로 나뉘는데, 두 사람이 각각 5/7/5의 上句와 7/7의 下句를 지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短 連歌에서 3구 이상을 지어 길게 이어가는 長連歌로 발전하는 과정은 두 가지 관점에서 설명된다. 하나는 5/7/5의 상구에 7/7의 하구를 이어가는 형태로부터 거꾸로 7/7의 구에 5/7/5의 구로 답을 해가는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고 보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聯句에서 영향을 받아 생겨났다고 보는 관점이다. 자료의 부족으로 長連歌의 발생과 발전에 있어 중국 聯句의 영향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렵지만 聯句가 鎖連歌의 발생에 간여하지는 않았지만

발달에는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는 관점(能勢朝次, 앞의 논문, 4)이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는 듯하다. 이는 長連歌의 발생은 7/7의 구에 5/7/5의 구를 이어붙이는 시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오늘날의 형식으로 발달·정착 되는 과정에는 聯句가 간여했다고 보는 절충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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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두 문학양식의 차이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연구는 韓愈와 孟郊의 공동합작인 <城南聯句>를, 하이카 이는 바쇼풍 ‒ 혹은 쇼몬(蕉門)‒ 하이카이를 대상으로 하고자 한다. ‘바쇼풍’ 또는 ‘쇼몬’(蕉門)6)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한 권의 하이카이가 여러 사람의 공동합작품이지 바쇼 한 개인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럼 에도 바쇼의 이름을 붙여 ‘바쇼풍’ ‘쇼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쇼가 ‘소쇼’(宗匠)7)로 참여한 座의 렌쥬(連 衆)들이 바쇼와 문학적 교분을 나누거나 작풍·유파상으로 같은 방향을 취하거나 師弟 관계에 놓인 문인들로 서 어떤 식으로든 바쇼의 영향권 안에 놓이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비교 대상으로 <성남연구>와 쇼몬 하이 카이를 택한 것은 해당 분야의 연구자들이 이들을 각 양식을 대표하는 텍스트로 꼽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지 만 필자가 여러 텍스트들을 검토한 결과 이들이 연구와 하이카이의 구조적 특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8)

Ⅱ. 연구와 하이카이의 공분모

여러 사람이 모여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해 간다는 텍스트 생산 여건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와 직접적 연관을 지닌다. 첫째는 텍스트 하나의 길이가 자연히 길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화자의 고 양된 정서를 표출하는 데 중점이 놓인 순수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점이며 셋째는 문학을 창작 하는 일에 유희나 놀이의 요소가 크게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연구와 하이카이에 공통되는 요소들로서 두 문학양식을 비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1. 장편화의 경향

일단 둘 이상이 모여 일정한 형식의 구를 번갈아 지어간다고 하는 형태는 어느 정도 텍스트 분량이 확보 되는 것을 말한다. 연구의 경우 2인이 각각 두 구씩 지어 한 수의 절구를 이루어내기도 하고 렌가의 경우도 2구나 3구만으로 이루어지는 短連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연구는 수십 구, 하이카이는 36구나 100구를 기본 으로 한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 排律이나 歌辭처럼 한 사람이 어떤 단위를 계속 반복·중첩시키면서 텍스트의 길이를 늘려가는 시가 양식이 존재해 왔으나 일본의 경우는 한 사람이 이처럼 반복에 의해 텍스트 확장을 이 루어 가는 방식이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 전통 시가의 역사는 오히려 短篇化 과정의 역사라고 해도 될

6) ‘바쇼의 문하라는 뜻.

7) ‘宗匠이란 하이카이의 興行이 이루어지는 의 長을 가리키는 말로 전문 俳諧師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이 선택되는데 宗匠이 되면 어떤 유파의 리더로 문단을 거느리며 하이카이 작품에 대하여 우열의 판정 혹은 비평을 행하는 点者나 判者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伊地知鐵男, 俳諧大辭典, 明治書院, 1981, 403.

8)연구의 경우 습작과 유희의 한 형태로 出句와 對句만을 짓는 예가 적지 않았으나 하이카이와의 동이점을 추출하기에는 적합 지 않으므로 비교의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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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큼 萬葉歌의 長歌에서 5/7/5/7/7의 短歌 즉 和歌로, 다시 와카의 上句와 下句를 분리하여 나누어 부르는 短連歌 방식이 유행하다가 5/7/5의 구가 하이쿠(俳句)라는 最短詩 형태로 독립하는 과정을 보인다. 그러므로 일본 시가사에 있어 여러 사람이 5/7/5구와 7/7구를 번갈아 이어감으로써 텍스트 하나를 완성한다고 하는 것은 시텍스트의 장편화를 이루는 유일한 방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의 배율과 한국의 가사가 보여주는 장편화가 어떤 단위의 ‘반복에 의한 확장’이라는 성격을 띤다면, 일본 시가의 장편화는 ‘복수 작자’ 의 참여에 의한 텍스트 ‘분량의 증가’라는 성격을 띤다고 하겠다.

중국의 대표적인 장편시인 排律은 ‘10구 이상으로 된 律詩’9)로 정의되는 만큼 반복과 중첩이 이루어지는 단위는 동질성을 띠는 두 개의 구 즉 對仗의 기본이 되는 한 쌍의 구이다. 首聯과 尾聯을 제외한 나머지 구 들에 對仗의 규칙을 부여하면서 텍스트 확장을 이루는 것이다. 두 개의 구는 어휘나 내용뿐만 아니라 문법적 으로도 대응되고 있어 ‘내용+구문’의 병렬은 두 개의 구를 한 단위로 묶어주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연구도 크게 보아 복수의 작자가 참여하는 배율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對偶法이 텍스트 장편화의 기본원리가 된다. 이에 비해 하이카이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구를 교체해감으로써 장편화가 이루어지는데 이 두 개의 구는

‘쌍’의 개념이 아니므로 대우법과는 무관하다.

텍스트의 장편화가 길이라고 하는 외형적 확장만이 아닌 담고 있는 내용의 증대를 의미한다고 할 때, 외형 적으로 동일하다 해도 한시의 한 구와 일본시의 한 구는 내용상 큰 차이가 있다. 한자는 表意文字이고 일본 가나는 音節文字이므로 같은 글자수라 해도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의 양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연구와는 달리 하이카이의 경우 한 사람이 앞의 구를 이어받아 새로운 구를 짓는다는 행위는 마에쿠에 대한 연상작용을 토대로 하는 것이지 앞에서 진술되어온 내용 위에 새로운 내용을 ‘축적’하는 개념을 뜻하는 것이 아니므로 외형적인 구의 수의 증가가 내용의 증폭을 의미한다고 할 수는 없다. 요컨대 하이카이가 공동합작 에 따른 장편화의 길을 걷는다 해서 그것이 꼭 ‘내용’과 ‘정보’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전제해 야 한다.

2. 원심적 경향

장편화에 이어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텍스트를 공동 제작한다고 하는 형태는 완성된 텍스트가 순수 서 정시와는 거리가 먼 텍스트성을 지니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순수 서정시란 어느 한 순간 의 시인의 고양된 정서를 짧고 함축적인 어구로 농축시키는 문학 형태다. 그러나 연구와 하이카이 이 두 형 태의 문학 양식은 자신의 구를 짓는 과정에서 앞서 지은 구를 깊이 음미하고 감상하는 수용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前句의 수용자로부터 자신의 구의 발신자로 끊임없이 변모해 가는 과정이 연구와 하이카이의 생산 과 정인 것이다. 이처럼 시인 또는 시적 화자가 바뀜에 따라 앞구에 표현된 정서 및 텐션을 이어받아 유지·발 전시키기 어려워지게 된다. 서정시는 한 개인의 내면세계 다시 말해 자의식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데 이처럼

9)王力(), 송용준(역주), 漢語詩律學 1, 소명출판, 2005·2007,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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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식의 주체가 계속 바뀌므로 언어를 통해 형성된 한 시인의 혹은 한 시적 화자의 농밀한 감정의 세계가 일관되게 유지되기 어려워지고 한 ‘개인’의 내면세계의 표출이라고 하는 서정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연구와 하이카이의 제작 과정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집단성’의 조건으로 인해 밖으로 끊임없이 원 심적 힘을 작용시켜 가는 과정10)이라 할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서정시는 개인의 내면세계의 표현이라는 점에 서 그 창작 과정은 안으로 구심적 힘을 농축해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두 문학양식의 ‘집단성’은

‘개인성’과 상충되기 때문에 순수 서정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연구와 하이카이는 경치나 사물과 같은 외부세계의 대상을 포착하여 그 양태를 서술하고 묘사하는 것에 중점이 두어지는 텍스트성을 띠 게 된다. 그리하여 ‘我’보다는 ‘物’의 세계를 지향하는 텍스트성을 지니는 경향이 있다.

3. 놀이적 요소

복수의 작자가 같은 자리에 모여 번갈아가며 구를 짓는다고 하는 텍스트 생산 여건은 자연스럽게 유희 적·놀이적 성격을 띠게 된다. 물론 모든 문학작품 창작은 그 자체에 놀이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무엇인 가를 새롭게 만드는 것 자체가 놀이이고, 문학이란 언어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나 하이카이처럼 여러 사람이 모여 어떤 규칙 하에 상호협력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고 하는 일은 재미나 즐거움만이 아닌 집단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효과까지 가져오므로 놀이의 성격은 1인 작가일 때보다 더 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복수 작자로 인해 놀이성이 배가된다고 하는 점은 연구나 렌가의 발생과정을 보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聯句는 시를 지음에 있어 ‘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 전제되기 때문에 연구를 짓는다는 것은 ‘자신’과 ‘타자’ 사이의 긴장과 상호협력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며 이로 인해 개인의 독자성은 자연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 러므로 한 개인이 완결된 작품을 지어 그 작품으로 평가받는 중국의 문학풍토에서 연구는 주류가 될 수 없었 고 詩會의 여흥으로 지어지는 2류 문학으로 인식되었다.

연구는 君臣 간의 창화의 성격을 띠고 제작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치적·문학적으로 성향이 비슷한 사람 들이 모여 연대감과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친목의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이같은 집단적 모임은 詩才를 연마하고 여러 사람 앞에서 詩才를 과시·발표하는 기회의 장이 되기도 했고 단순히 여흥이나 기지를 즐기 는 장이 되기도 했다.11) 그러나 연구의 본질은 시재 연마나 作詩 연습, 시재의 과시보다는 취향이 비슷한 사 람들끼리 모여 함께 짓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고 그 일체감을 함께 맛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놀이’로서의 성격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구가 일종의 ‘놀이’로 행해졌다는 것을 말해 주는 한 단서로 詩話總龜 에 실려 있는 蘇軾의 어린 시절

10) 堀切実, 表現としての俳諧 , ぺりかん社, 1988, 10.

11) 埋田重夫, 「白居易と韓愈の聯句について」, ≪中國詩文論叢≫ 第2, 東京: 中国詩文研究会, 1983, 40. 여기서는 唐代의 연구를 대상으로 언급한 것이지만 이같은 사정은 여타 연구의 보편적 양상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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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를 들 수 있는데 이 이야기의 내용은 ‘동생 및 마을사람 몇몇과 어울려 6언의 연구를 지으면서 좌중의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12)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 이야기가 ‘詼諧’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로 미루어 연구 및 연구를 짓는 일이 일종의 재미있는 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연구가 지어졌 던 집회의 場13)이 대개 水堂·水亭·池亭·溪館·船中·樓閣 등과 같은 개방 공간이라는 점도 연구가 지니 는 놀이적 성격을 말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연구는 이처럼 놀이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유해무익이라는 시각도 있었던 것이다.14)

놀이에 규칙이 있듯, 연구를 짓는 과정에서도 나름의 규칙이 있었을 것이다. 시를 짓기에 앞서,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句作의 순서와 句의 수는 어떻게 할 것이며 총 몇 구를 완성해야 하는가의 문제, 그리고 순 번이 돌아왔을 때 구를 완성해야 하는 시간은 얼마로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 또 押韻은 무슨 韻字로 몇 구마 다 할 것인가 등에 대한 대강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며 이같은 계획이 놀이의 규칙과 같은 구실을 했을 것으 로 본다.

하이카이의 경우도 크게 다름이 없다. 복수 작자의 합작품으로서의 하이카이의 기원은 ‘단렌가’(短連歌)로 거슬러 올라간다.15) 단렌가는 애초부터 와카를 짓는 모임에서 와카 句作의 여흥으로 재미삼아 한 수의 와카 를 두 사람이 나누어 부른 데서 발생한 것16)으로 창화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기지와 골계를 그 본질로 한다. 그러므로 단렌가는 기본적으로 앞 사람이 읊은 구를 ‘질문’으로 하여 다음 사람이 재치있게 ‘답’을 하는 일종 의 機智問答의 성격17)을 띠고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지적인 흥미를 가지고 자신이 말을 건넨 것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응대하고 어떻게 답할 것인가 지켜보는 재미와 즐거움은 1인이 한 수를 완성하는 와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며 이것이 렌가가 가지는 놀이적·유희적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5/7/5 구에 7/7구로 이어받아 唱和하는 것에서 한 단계 나아가 7/7구에 다시 5/7/5구를 이어가 ‘죠렌가’(長連歌)가 발생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지적인 호기심과 흥미가 큰 작용을 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후시모노(賦物)나 마에 쿠즈키(前句付)18)는 렌가에 내포된 이같은 지적 유희성이 최고조로 발휘된 형태라 할 수 있다. 유희에 규칙 이 수반되듯, 렌가에도 세부적인 규칙19)과 참가 렌쥬의 역할, 렌가 한 권의 총 句數 등이 정해지고 여타 형 식이 다듬어지면서 렌가는 하나의 문학양식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12) “幼時 里人程建用 楊堯咨 舍弟子由 會學舍中 天雨聯句六言. 程云庭松偃仰如醉 楊云夏雨凄凉似秋 余云有客高吟擁鼻 子由云 無人共喫饅頭. 坐皆絶倒. 今四十餘年矣.” 阮閱() , 詩話總龜 前集 卷四十一 「詼諧門上」, 北京: 人民文學出版社, 1998. 이 일화는 원래 蘇軾文集 第六十八卷 「記裏舍聯句」條에 수록되어 있다.

13) 埋田重夫, 앞의 논문, 40.

14) 宋의 嚴羽가 그 대표적 예이다. 川合康三, 「韓愈·孟郊 <城南聯句>初探」, 中國文學報 第61, 京都大学大学院文学研究 , 2000, 51.

15) 하이카이가 독립된 문학장르로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보면, 5/7/5/7/7의 句로 이루어진 한 편의 와카를 두 사람이 唱和 형 식으로 上句 5/7/5와 下句 7/7로 나누어 부른 데서 短連歌가 발생했고 短連歌의 7/7구에 5/7/5구를 덧붙여가는 식으로 해 3구 이상의 長連歌가 발생했으며 고상한 표현으로 짓는 기존 렌가에서 벗어나 일상적 소재를 취하여 일상적 언어로 표 현하는 하이카이노렌가(俳諧連歌)가 나오게 되었다.

16) 能勢朝次, 앞의 논문, 52. 17) 能勢朝次, 앞의 논문, 53~55.

18)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서술될 것이다. 19) 이를 式目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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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연구와 하이카이의 차이

복수의 작자가 하나의 텍스트를 완성해 간다는 독특한 생산방식으로 인해 위와 같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 으면서도 두 문학양식은 중국과 일본이라는 상이한 토양에서 성장한 만큼 문학적 차이 또한 적지 않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연구 한 편 혹은 하이카이 한 권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부분들 간의 관계에서 발견된다. 두 문학양식은 2인 이상 複數의 작자가 모여 時空을 함께 하면서 구를 짓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연구의 경우는 그것이 내용에 있어 일관성과 통일성을 지닌 ‘한 편의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에 비해 하 이카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를 지닌다. 두 시 양식을 면밀히 비교 검토해 본 결과 양자는 ‘제목’ ‘종 결 징표’ ‘텍스트에 일관성과 규칙성을 부여하는 요소’ ‘완성된 텍스트의 성격’의 측면에서 확연한 차이와 특 징을 드러내고 있어 이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1. 詩題의 유무

(1) 竹影金瑣碎 (孟郊) 대나무 그림자는 금가루처럼 부서지고 泉音玉淙琤 (韓愈) 샘물 소리는 옥구슬처럼 낭랑하게 울리네 琉璃翦木葉 ( 愈 ) 나뭇잎 잘려진 모습은 유리처럼 보이고 翡翠開園英 ( 郊 )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은 비취와도 같구나 流滑隨仄步 ( 郊 ) 길이 미끄러워 몸을 기울인 채 걸으며 搜尋得深行 ( 愈 ) 幽境을 찾아 깊은 곳까지 들어간다.

遙岑出寸碧 ( 愈 ) 아득한 산봉우리에 한 마디 푸른 빛 돋아 나오니 遠目增雙明 ( 郊 ) 멀리 바라보매 두 눈에 밝음을 더하였네

위는 唐代의 시인 韓愈(768~824)와 孟郊(751~814)의 공동합작인 <城南聯句>20)의 첫 8구를 인용한 것이 다. <성남연구>는 1인 2구를 짓고 격구마다 庚韻으로 압운을 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出句를 지으면 다음 사 람이 對句와 다음 연의 出句를 짓고, 다시 다음 사람이 앞사람의 출구를 받아 대구와 다음 연의 출구를 지어 내려가 마지막 한 사람이 대구만을 지어 마무리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첫 出句는 맹교가, 마지막 對句는 한유가 마무리지었다.

제목의 ‘城南’은 長安의 남쪽 근교로 귀인들의 별장이 모여있던 지역이다.21) 시 안에 묘사된 것이 누구의 별장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 두 시인은 성남의 어느 별장에 모여 주변의 풍광을 각각 153구씩 지어 총 306구의 장편시로 묘사하였다. 어느 한 곳에 시선을 고정하여 대상을 관찰·감상하는 것이 아니고 안과

20) 韓昌黎詩集 , 漢詩大觀 3, 韓國學 資料院, 2007.

21) 한유도 만년에 여기에 별장을 짓고 <遊城南十六首>(816년 작) 등을 지었으나 <성남연구>는 그가 江陵에서 소환되어 國子 博士의 직에 나아갈 무렵인 806년에 지어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막 長安에 돌아온 한유가 자신의 별장을 갖고 있었는 지 의문시되기도 한다. 川合康三, 앞의 논문, 61.

(8)

밖, 위와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 근거리와 원거리 등으로 시점을 이동시켜 가면서 경물을 묘사하여 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1구~4구는 저택 안에서 정원 풍경을 그려내었고 5구~8구는 시적 대상으로부터 주체로 초점을 바꾸어 시적 화자가 별장 밖으로 나와(5~6구) 멀리 산봉우리를 조망하는 모습(7~8구)을 묘사하였다. 제1구와 2구의 竹影 과 泉音, 金과 玉, 瑣碎와 淙琤, 제3구와 4구의 琉璃와 翡翠, 翦과 開, 木葉과 園英은 문법상으로나 의미상으 로 완벽한 짝을 이루어 경물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제5구와 6구, 제7구와 8구도 마찬가지다.

시 全篇에 걸쳐 이와 같은 對偶法이 長篇의 구를 이어가는 기본 원리로 작용하면서 306개나 되는 句를 하 나의 작품으로 응집시키는 데 기여한다. 여기에 더하여 결정적으로 수 백여 구가 제 각각이 아닌 어느 한 작 품의 일부로 인식되게 하는 요소는 바로 <城南聯句>라고 하는 시 ‘제목’이다.22) 여기서 ‘성남’은 연구를 짓는 실질적 장소가 되는 동시에 시의 소재나 내용이 이 주변의 자연경관을 중심으로 할 것임을 미리 시사하는 시 적 징표가 된다. 즉, 시를 구성하는 개개의 구들은 ‘성남’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306개의 구로 이루어진 시적 언술은 통일성을 지닌 하나의 텍스트로 인식될 수 있게 된다. 전체와 부분의 이같은 관계는 아래 하이카이 작품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2) 1. 市中は物のにほひや夏の月 (“시중에는 갖가지 냄새가 진동하는구나, 여름날의 달.” 凢兆) 2. あつしあつしと門門の聲 (“집집마다 더워 더워하는 소리.” 芭蕉)

3. 二番草取りも果さず穗に出て (“풀뽑기를 두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삭이 패었구나.” 去來) 4. 灰うちたたくうらめ一枚 (“재를 털어낸 눈퉁멸 한 마리.” 兆)

…(中略)…

12. 待人入れし小御門(“문지기가 주인이 기다리는 사람을 안으로 들인다네.” 來)

13. 立かかり屏風を倒す女子共 (“누가 왔나 엿보던 여자들이 둘러 놓은 병풍을 쓰러뜨렸네.” 兆)

이는 하이카이집 도롱이를 쓴 원숭이 ( 猿蓑 )23)에 수록된 「여름달」(夏の月)의 卷24)의 일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하이카이는 보통 5/7/5의 上句와 7/7의 下句를 교체해 가며 짓게 되는데 5/7/5구인 제1구25)는 여 름날 더위 때문에 음식 냄새가 가득 배인 시정의 모습을 묘사하였고, 7/7로 된 제2구26)에서는 홋쿠의 ‘여름’ 이미지를 이어받아 여기저기서 ‘더워하는 모습’을 구체화하였으며, 제3구27)에서는 앞구의 ‘더위’를 이어받아

22) 연구에서 개개의 시구들이 제목에 의해 전체의 부분들로 작용하게 되는 대표적 예를 李瀣의 <甲申孟秋十五日 龍山翫月聯句 七十三韻>( 溫溪先生逸稿 卷之二)에서 찾아볼 수 있다. 146구로 이루어진 장편의 텍스트는 詩作이 이루어진 시간·공간 (음력 715일 龍山), 시의 소재()와 주제(玩月), 시의 길이(73, 146)를 포함하는 시 제목에 의해 각 부분들이 통일성을 지닌 전체로 응집된다.

23) 바쇼의 제자 去来와 凡兆의 편집으로 1690년에 나온 하이카이집으로 「はつしぐれの卷」 「夏の月の卷」 「きりぎりすの卷」 「梅 若菜の卷」 등 4편의 가센(歌仙)이 수록되어 있다. 가센은 36구로 된 하이카이를 가리킨다. 松尾芭蕉(), 大谷篤藏·中村俊 (校注), 芭蕉句集, 東京: 岩波書店, 1962, 383~386.

24) 芭蕉와 그 문하의 凢兆, 去來 이렇게 3인이 모여 읊은 三吟 가센 형식의 하이카이다. 25) 이를 홋쿠’(發句)라 한다.

26) 이를 와키쿠’(脇句)라 한다. 27) 이를 다이산’(第三)이라 한다.

(9)

더위 때문에 곡식의 이삭이 빨리 패인 것을 읊었다. 그리고 제4구28)는 앞구의 ‘곡식 이삭’에서 연상되는 ‘농 촌’의 이미지를 이어받아 시골에서 재에 생선 한 마리를 구워먹는 소박한 식사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제12 구는 안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주인을 위해 문을 열어 상대를 들이는 문지기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제13구는 들어온 사람이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설정하에 병풍 안을 엿보려 하다 병풍을 쓰러뜨린 여자들의 모습을 표현 하였다.

이로써 알 수 있듯 서로 인접한 구와 구는 연관성을 지니지만 하나 건너뛴 구와는 아무런 연관성을 지니 지 않는다. 하이카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는 3구로서 이를 각각 A, B, C라 할 때 쓰케쿠(付句) C를 기준으 로 B를 마에쿠(前句), A를 우치코시(打越)라 한다. 인접하는 A와 B, B와 C는 단어나 의미, 분위기, 이미지 등에서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나 C와 A는 연관이 없어야 한다. 구와 구의 결합을 가리키는 쓰케아이(付 合)에서 쓰케쿠(C)가 우치코시(A)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은 피해야 하는 항목 중 하나인 것이다.

앞서 <성남연구>는 임의로 선택한 어느 句라 해도 그들 사이에는 모종의 연관성이 개재해 있다. 그 구들 에 담긴 구체적 내용은 다를지라도 ‘성남’의 풍광과 관계된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묶일 수 있고 <성남연 구>라는 제목이 이러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이에 비해 위 하이카이에서 제1구와 제12, 13구 사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제1구와 3구 사이에도 그 어떠한 연관이 없으며 또 연관이 없을 것이 요구된다. 「여름 달」의 경우는 이 가센 작품의 고유한 제목이 아니라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홋쿠의 끝 부분을 따서 임의로 붙인 유동적 표기일 뿐이며29) 부분이 전체와 의미를 가지게 하는, 다시 말해 부분이 전체 속에서 해석될 수 있는 요소로서 작용하지 않는 것이다. 제12구와 13구를 예로 들어 보아도 제목인 ‘여름’을 연상시키는 그 어 떤 요소도 발견할 수 없다.

렌가나 하이카이에 있어서도 연구의 제목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후시모노’(賦物)라는 것이 있다. 후시모노란 렌가나 하이카이 첫머리에 그 卷의 제목처럼 표기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白黑’의 후시모노라면 上下의 각구에 흰색 사물과 흑색 사물을 교대로 읊어나가는 것이고 ‘賦餠花俳諧’라고 하면 ‘餠’과 ‘花’에 속하 는 사물들을 읊는 것이다. ‘賦’라는 것은 ‘구분하여 배치한다’는 뜻으로 내용상으로는 와카(和歌)에 있어서의

‘모노노나(物名)’와 비슷하다. 와카에 있어 ‘모노노나’란 句의 의미와는 무관하게 사물의 이름을 와카 작품 안 에 숨겨서 읊는 것을 가리키며 이로 인해 ‘가쿠시다이’(隱題)라고 칭해지기도 하는 일종의 언어 유희 수법이 다.30) 이것이 賦物連歌(物名連歌)--物名俳諧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31)

그러나 렌가나 하이카이의 ‘후시모노’는 일견 연구의 제목과 비슷해 보이면서도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28) 4구부터는 별도의 이름이 없는 平句이다.

29) 따라서 하이카이집 편찬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질 수도 있다.

30) 예를 들어 古今和歌集 10권 「모노노나(物名)」에 ほととぎす라는 詞書 다음에 나오는 來くきほど時過きぬれや待ちわび てあう鳴くなる聲の人をとよむる라는 작품을 보면 밑줄 時過부분에 해당하는 음은 도키스’(ときす)이고 이것을 앞 단어

ほど”(호도)와 함께 읽으면 호토토기스가 되어 詞書의 모노노나(物名)를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31) 加藤定彦(), 森川昭·加藤定彦·乾裕幸(校注), 「過渡期の選集: 犬子集 の付句を中心に」, 初期俳諧集 , 岩波書店, 1991·

1995, 601; 秋山虔·神保五弥·佐竹昭広 編, 「賦物」, 日本古典文學史 基礎知識, 有斐閣, 1975·1982, 306.

(10)

(3) をのが名の紅葉やとづるこごり鮒 (“그 이름처럼 붕어 국물 굳은 것이 단풍처럼 물들었구나”)32) 鍋の中でも鴨はかはいり (“냄비 안에서도 오리는 강으로 들어가네”)33)

鷄やさむふて屋ねにのぼる覽 (“닭은 추워서 지붕으로 올라가는구나”)34)

위는 ‘魚鳥’라는 후시모노가 붙어 있는 賦物連歌의 첫 세 구를 인용한 것으로 초기 하이카이집인 에노코

슈 ( 犬子集 ) 16권에 실려 있다. 후시모노인 ‘魚鳥’가 作句의 지침과도 같은 구실을 하면서 매 구가 물고기

나 새를 소재로 하여 전개될 것임을 시사한다. 첫째 구에서는 ‘붕어’, 둘째 구에서는 ‘오리’, 셋째 구에서는

‘닭’이 그 구체적인 사물에 해당한다. 여기서 ‘魚鳥’는 각 구에서 읊어지는 사물과 인접의 관계에 놓임으로써 구 전체를 通御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연구에서의 ‘제목’처럼 텍스트 부분들에 일관성과 통일성을 부여 하여 전체로 통합되게 한다는 점에서 거의 동일한 기능을 행한다. 다시 말해 연구의 제목과 하이카이의 후시 모노는 텍스트 전체와 각 부분들이 유기적 관계를 지니게 하는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러나 양자 사이에는 차이도 존재한다. 연구 제목의 경우 부분과 전체뿐만 아니라 부분과 부분, 즉 각 구 와 구도 긴밀한 연관을 가지게 하는 지침으로 작용하지만, 후시모노의 경우 부분과 부분이 상호 긴밀한 관계 를 지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위 「魚鳥」의 경우 후시모노는 첫 구와 둘째 구가 상호 의미작용 을 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해 ‘단풍색으로 굳어진 붕어 국물’과 ‘냄비 안의 오리’가 서로 결합하여 어떤 의미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매개 혹은 인도하는 구실을 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賦物連歌나 賦物俳諧의 경우 각 구들은 후시모노에 속한 사물들을 ‘열거’하는 개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으며, 후시모노를 설정하여 구를 지어나가는 방식은 텍스트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문학에서 ‘유희’나 ‘재미’를 얻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연구의 제목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각 부분들에게 일관성을 부여하는 요소가 있었다는 것은 텍 스트를 통일체로 인식하는 시각이 내재해 있음을 말해 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長連歌가 형성되면서 한동안 유행했던 후시모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형식화, 무용지물화되어 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헤 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햐쿠인(百韻)35)과 같은 장편양식이 성립되어 가는 무렵에는 후시모노 에 해당하는 사물이 각 구마다 읊어졌고 후시모노는 전체 한 권을 통괄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러나 무로 마치 시대에 들어오면 첫 여덟 구에, 그 다음은 처음 세 구에, 그리고 다시 홋쿠 중 주요한 체언을 골라 一座 의 宗匠이나 執筆36)이 그것을 후시모노로 정하여 懷紙의 첫부분에 제목처럼 ‘賦山河連歌’ 등과 같이 표기하 는 식으로 홋쿠와만 관련을 갖게 하다가 그마저도 形骸化되어 결국 사라지게 된 것이다.37)

32) 젤라틴 성분이 많은 생선을 끓여 그 국물이 젤 상태가 된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붕어를 가지고 만든 것이므로 그 색깔이 단풍처럼 붉다는 것을 말하였다. 犬子集 제16권 森川昭·加藤定彦·乾裕幸 校注, 「魚鳥」, 初期俳諧集, 岩波書店, 1991·

1995, 232.

33) “かはいり는 물고기··육고기 등의 껍질을 삶아 거기에 다시 국물을 넣어 만든 요리인데 음이 강으로 들어간다는 뜻의

川入り와 같다. 이같은 동음이의어를 가케고토바’(掛詞)라 한다. 같은 곳.

34) 이 구는 오리는 추우면 물로 들어가고 닭은 추우면 나무에 올라간다는 속담에 의거하고 있다. 같은 곳. 35) 100구로 이루어진 하이카이를 햐쿠인’(百韻)이라 한다.

36) ‘宗匠이란 하이카이의 興行이 이루어지는 의 長을 가리키고 執筆은 興行에 관한 것을 기록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1)

쇼몬 하이카이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하이카이집 표주박 ( ひさご , 1690年)에 수록 된 芭蕉·珎(珍)碩·曲水 三吟38)의 36구 작품 ‒ 가센(歌仙)39) 「벚꽃일까」(桜かな」)의 巻40)에 홋쿠가 시 작되는 바로 앞에 붙어 있는 ‘花見’이라는 단어가 그에 해당한다.

(4) 1. 木のもとに汁も鱠も櫻かな (“나무 아래 국물도 생선회도 벚꽃이라네” 翁) 2. 西日のどかによき天氣なり (“지는 해 한가로운 좋은 날씨로다” 珎碩)

3. 旅人の虱かき行春暮て (“나그네, 이가 문 곳 긁으며 걸어가는 봄날 저물고” 曲水)41)

홋쿠는 벚꽃이 흩날려 ‘꽃놀이’(花見)를 위해 마련된 음식이 꽃잎으로 뒤덮인 모습을 읊었고 둘째 구는 나 무 아래서 꽃놀이한다는 데서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를 연상하여 읊었으며 셋째 구에서는 나그네가 걸어가는 장면을 통해 봄이 지나가고 있음을 읊었다. 이로부터 ‘花見’이라는 말은 첫구와만 관련을 지니는 것으로 후시 모노가 형식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하이카이 작품에는 이같은 흔적조차도 남아 있지 않으 며 후시모노는 결국 사라지고 만다. 이같은 현상은 連歌나 俳諧 全篇에 일관되는 요소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혹은 일관된 요소에 의한 통일성이나 통제를 거부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2. 종결 징표의 유무

연구 한 편을 하나의 완결된 구조물로 인식하게 하는 요소로 제목 외에 ‘종결 징표’를 들 수 있다. 앞에서 어떤 패턴이 계속 반복되다가 그 기대감 혹은 예측성이 무너지게 될 때 우리는 종결을 감지하게 된다.42)시조 의 경우 3·4조의 패턴이 종장에 이르러 3/5/4/3으로 바뀌게 되는 것도 그 한 예라 할 수 있다. <성남연구>

의 경우 주변의 경관, 경물에 대한 묘사가 이어지다가 제301구에 이르러 다음과 같이 어조가 바뀌게 된다.

足勝自多詣 (郊) 다리는 튼튼하여 스스로 여기저기 다닐 수 있고 心貪敵無勍 (愈) 욕심은 많지만 어떠한 상대도 강하지 않다네 始知樂名教 (愈) 비로소 名敎43)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何用苦拘佇 (郊) 어찌하여 구속을 괴로워할 것인가?

37) 秋山虔·神保五弥·佐竹昭広 編, 「賦物」, 日本古典文學史 基礎知識, 有斐閣, 1975·1982, 306; 伊地知鐵男, 俳諧大 辭典, 明治書院, 1981, 677~678; 加藤定彦, 앞의 논문, 601.

38) 세 사람의 連衆이 교대로 읊어 36구를 이룬 것을 가리킨다. 39) 36구로 된 하이카이를 가센’(歌仙)이라 한다.

40) 하이카이에서 제목은 고유의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구분하기 위해 홋쿠의 어느 부분을 따서 임의로 붙인 유동적인 것이므 로 편찬자·연구자에 따라 다른 제목이 붙기도 한다.

41) 松尾芭蕉(), 大谷篤藏·中村俊定(校注), 芭蕉句集, 東京: 岩波書店, 1962, 360.

42) 시적 종결에 관한 것은 Barbara H. Smith, Poetic Closure: A Study of How Poems En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8.

43) ‘名敎명분으로 중심을 삼는 가르침을 말한다.

(12)

畢景任詩趣 (郊) 이제 벼슬살이 끝내고 시적 흥취에 맡기려 하는데 焉能守鏗鏗(愈) 어찌해야 이 기분을 明澄하게 지켜갈 수 있을까?

주변 경관이나 경물로부터 시적 주체의 내면세계로 묘사의 초점이 이동하여 화자의 심정을 읊조리는 것으 로 마무리가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반복패턴이 무너짐으로써 독자는 종결을 감지하고 306개의 구로 이루어진 언술을 하나의 전체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한 번 형성된 어떤 패턴이 변화없이 계속 반복 된다면 그 텍스트는 닫혀진 구조 혹은 완결된 전체로 인식될 수 없다. 반복성 혹은 예측성이 깨짐으로써 종 결을 알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2) 「여름달」의 끝 두 구는,

35. 手のひらに虱這はする花のかげ (“꽃나무 그늘, 손바닥에서 이가 기어 다닌다.” 蕉) 36. がすみうごかぬ昼のねむたさ (“안개도 흐르지 않는 봄날 오후의 졸음.” 來)

와 같이 제1~34구까지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한 채 끝맺음을 하고 있다. 어떤 패턴의 반복이 종결되었음을 알리는 유일한 징표는 歌仙이 36개의 구로 되어 있다는 텍스트 외적 조건뿐이다. 위의 경우 36번째의 구를 읊었다는 것은 곧 언술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리는 징표가 된다. 이 구성물을 하나의 텍스트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는 문학적 취향이 비슷한 連衆이 모여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면서 36구를 지었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다.

하이카이의 경우 맨 끝구를 ‘아게쿠’(擧句)라 하여 축하와 평안을 기원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읊조린다는 式 目의 규정이 있다. 아게쿠의 앞구는 ‘꽃’을 읊는 위치44)이므로 아게쿠는 春季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을 읊 는 것이 일반적이다.45) 그러나, 이것이 하이카이 한 권을 종결시키는 징표는 될 수 없다. 하이카이 어느 구 에서도 봄날의 평화로운 풍경을 읊을 수 있는 것이고 꼭 아게쿠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 텍스트에 일관성과 규칙성을 부여하는 요소

제목과 종결 징표 외에 연구를 이루는 개개 구들을 응집하여 완결된 통일체로 구현하는 또 다른 요소로서

‘押韻’을 들 수 있다. 같은 운에 속하는 글자를 선택하여 격구마다 끝에 배치하는 규칙을 일관되게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개개 구의 집합체를 하나의 텍스트로 인식케 하는 중요 요소가 된다. 연구 창작이 급격히 증가하 게 되는 中唐 이후에는 5언에 1인 2구 격구 압운이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었는데 <성남연구>는 그 대표적 예 라 할 수 있다.

44) 式目에 의하면 어느 특정 소재 ‒ 주로 ‒ 를 정해진 장소에서 읊게 되어 있는데 이를 定座라 한다. ‘花の定座’ ‘月の 定座와 같은 식으로 나타낸다.

45) 乾裕幸(), 森川昭·加藤定彦·乾裕幸(校注), 「連句槪說」, 初期俳諧集, 岩波書店, 1991·1995, 568.

(13)

렌가나 하이카이에 있어서도 연구의 韻字처럼 개개의 구에 어떤 일관된 요소를 부여하여 그것들이 통일된 전체의 일부처럼 인식되게 하는 ‘마에쿠즈케’(前句付)라는 것이 있다. 7/7 혹은 5/7/5의 구가 미리 주어지고 그것을 실마리로 하여 수수께끼를 풀어가듯 구를 이어가는 것이다.

(6) (前句) 白き物こそ黑くなりけれ(“흰것이 검게 변했다네.”)

(付句) ことかけば雪を硯の水にして (“부족하다면 눈을 연적의 물로 해서.”) 若き時のねはだや忍ぶ姥おうぢ (“늙은 아내의 젊은 시절 피부가 그립구나.”) 杉原のうら迄書や戀の文 (“스기하라 종이46) 안쪽까지 빽빽이 쓰여진 사랑의 편지.”) 上らうのおかほにかかるみだれ髮 (“귀부인의 얼굴에 흘러내린 머리칼.”)47)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흰 것이 검게 변했다’는 7/7자의 마에쿠(前句)에 대하여 5/7/5자의 쓰케쿠(付 句)를 이어가는데 마에쿠를 수수께끼 문제로 삼아 흰 것이 검게 변하는 사물이나 현상을 답으로 제시하는 방 식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쓰케쿠에서는 눈녹은 물을 연적에 담아 갈았을 때 검은 색으로 변하는 것을 내용 으로 하였고, 두 번째 쓰케쿠는 젊은 시절에는 하얗던 아내의 피부가 늙어서는 검게 변해 버렸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 번째 구의 경우는 하얀 종이가 빽빽하게 쓰여진 글씨로 인해 검어졌다는 것을 표현하였고, 네 번째 구는 귀부인의 하얀 피부가 흘러내린 머리칼로 검게 덮인 모습을 그려냈다. 위는 150개의 쓰케쿠 중 네 개의 구를 인용한 것인데 나머지 146개의 구도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마에쿠는 연구의 韻字처럼 개개 구를 지음에 있어 제약 혹은 규칙으로 작용하여 각 구에 통일성과 일관성을 부여한다. 이 경우도 앞서 살핀 후시모노와 개개의 구들처럼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 놓이며 마에쿠 와 쓰케쿠 간에 인접관계가 성립한다. ‘눈녹은 물’이나 ‘젊은 시절 아내의 피부’ ‘종이’ 그리고 ‘귀부인의 얼굴’ 은 마에쿠의 ‘흰 것’에 속하는 사물들의 종류를 나열한 것이고 ‘연적의 먹물’ ‘늙은 아내의 피부’ ‘종이에 쓰인 글씨’ ‘귀부인의 검은 머리’는 ‘검은 것’에 속하는 사물들을 나열한 것이므로 이 네 쌍의 사물들과 마에쿠는 인접의 관계에 놓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네 개의 항목들은 ‘흰 것’이라는 점에서 등가관계에 놓이기는 하나 이 네 사물들을 포함하는 네 구의 내용들 사이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즉, 이 네 구가 결합하여 어떤 새로 운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내용이 그냥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구와 구의 순서를 바 꾸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

이에 비해 연구의 경우는 韻을 포함한 구 전체의 의미와 의미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제목에 함축된 주 제를 구현해 간다. 앞서 예를 든 <성남연구>의 첫 네 구 “竹影金瑣碎/泉音玉淙琤/琉璃翦木葉/翡翠開園英”에 서 운자가 들어 있는 제2구와 4구는 운뿐만 아니라 의미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정원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어 두 구의 순서를 바꾼다 해도 ‘정원의 모습’을 묘사한다고 하는 ‘전체 의미’ 관점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원문 본래의 번역(a)과 2구와 4구의 순서를 바꾼 뒤의 번역(b)을 비교해 보면,

46) 衫原 産의 종이. 닥나무를 원료로 하여 만든 얇고 부드러운 종이.

47) 犬子集 第17卷 「一句付句百五十句」의 첫 다섯 구(No.2356~2359)를 인용한 것으로 모두 貞德이 지은 것이다.

(14)

(a) 竹影金瑣碎 (孟郊) 대나무 그림자는 금가루처럼 부서지고 泉音玉淙琤 (韓愈) 샘물 소리는 옥구슬처럼 낭랑하게 울리네 琉璃翦木葉 ( 愈 ) 나뭇잎 잘려진 모습은 유리처럼 보이고 翡翠開園英 ( 郊 )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은 비취와도 같구나

(b) 竹影金瑣碎 (孟郊) 대나무 그림자는 금가루처럼 부서지고 翡翠開園英 ( 郊 )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은 비취와도 같구나 琉璃翦木葉 ( 愈 ) 나뭇잎 잘려진 모습은 유리처럼 보이고 泉音玉淙琤 (韓愈) 샘물 소리는 옥구슬처럼 낭랑하게 울리네

와 같이 (b)에서는 의미상으로 ‘대나무’와 ‘샘물’이라는 자연물이 각각 ‘비취’와 ‘유리’라고 하는 광물과 불균형 의 짝을 이루게 된다. 또 (a)에서는 竹과 泉, 影과 音, 金과 玉, 瑣碎와 淙琤, 제3구와 4구의 琉璃와 翡翠, 翦과 開, 木葉과 園英이 문법상으로도 완벽한 짝을 이루는 것에 반해, (b)의 경우는 ‘金’과 ‘開’, ‘翦’과 ‘玉’,

‘瑣碎’와 ‘園英’, ‘木葉’과 ‘淙琤’이 문법적으로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원의 모습’을 묘사한다고 하는 내용을 전달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對偶의 균형이 깨지면서 의미 조직에 세부적 균열이 가해지는 것 을 발견하게 된다.

요컨대 연구에서의 韻과 하이카이의 마에쿠는 각 부분들에 통일성을 부여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운’은 부분과 부분의 상호 의미작용에도 긴밀하게 간여하는 반면 ‘마에쿠’는 텍스트 맨 앞에 놓여 쓰케쿠를 짓는 방 법을 알려주는 하나의 샘플로 작용하는 것에 그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구에서의 韻과는 달리 마에 쿠즈케는 언어 유희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발견된다. 또한 한시에서 押韻은 계속 그 중요성이 유지되는 것에 비해 이 마에쿠즈케는 하이카이에서 더 이상 존속의 의미를 지니지 않게 되고 결국 그 모습을 감추고 만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완성된 텍스트의 성격:構造와 構成

이상의 비교에서 드러나듯 하이카이 한 권은 인접한 구와 구가 연상작용에 의해 유사한 분위기나 이미지 를 이어가는 連鎖性만이 강조될 뿐 개개 구를 일관된 의미 혹은 주제를 지닌 하나의 통합체로 완결시키는 요 소가 발달해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접한 구와 구를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짓고 그 관계에서 형성되 는 미적 효과를 즐기는 것을 목적으로 할 뿐 부분을 결합하여 의미상의 통일체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는 관심 이 두지 않는 문학 양식인 것이다. 이 점이 복수 작가의 공동합작품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면서도 하이카이가 연구와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와 하이카이를 이루는 개개 구들을 ‘부분’이라 하고 개개 구들로 이루어지는 합성물을 ‘전체’라 하여 부분과 전체라는 관점에서 이 두 문학양식을 비교해 볼 때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먼저 부분과 부분의 관 계를 볼 때 연구의 경우 出句와 對句, 하이카이의 경우 마에쿠와 쓰케쿠 사이에는 분명한 연관성이 존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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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러나 ‘부분’을 인접한 구가 아닌 임의의 다른 구로 확대해 볼 때 연구의 경우는 그 구들 간에도 연관성 이 있고 제목이 이를 가능케 하는 반면, 하이카이에서는 인접해 있는 두 구만 연관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차 이가 있다.

다음으로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보면 연구의 경우는 앞서 논한 것처럼 개개의 구가 전체 텍스트와 유기적 인 관계에 놓이면서 그물망처럼 얽혀 ‘의미상으로 통일성을 지닌 완결체’를 이루는 반면, 하이카이의 경우는 의미상으로 어떠한 관련성도 지니지 않는다. 또한 연구의 경우 부분과 부분이 결합하여 단지 통일성을 지닌 전체를 이루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전체=부분의 합+α’의 의미를 지닌다. 각 부분에, 그 부분들이 결합하여 상호작용하는 데서 형성되는 새로운 의미요소까지 합쳐져 전체를 이루는 것이다. 반면 하이카이의 경우는

‘전체=부분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는데, 각 부분들은 마치 모래알들이 서로 섞여 있는 것과 같아 그 합은 ‘모 래무더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유기적 관련을 지니면서 어떤 통합된 질서를 드러낼 때 우리는 이를 보통 ‘構 造’라는 말로 칭하는데 연구 한 편은 분명 ‘‘構造物’로 규정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36구 혹은 100구로 이루어진 하이카이 한 편48)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모래알들이 섞여 있는 모래무더기 에 비유할 수 있어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하이카이 한 권은 ‘의미상으로 완결된 한 편의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지 않으며 개개의 시구가 전체와 연관성을 지니지 않은 채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어 이를 구조물과 구분 하여 ‘構成物’이라는 말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연구는 전체가 의미상으로 일관성·통일성을 지니는 한 편의 시로서의 성격을 띠는 것에 비해 하 이카이는 의미나 주제에 있어 전체의 통일성을 결여했거나 혹은 그것을 지향하지 않는 시, 나아가서는 통일 성을 거부하는 시로서의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 차이는 전체 속의 어느 한 부분이 그 맥락을 떠나서도 어느 정도 독립성을 획득한다고 하는 일본 시가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중국 시 의 경우는 줄거리나 일관된 사상·내용, 배경이나 장면의 설명이 들어 있어 그것이 독자에게 전달되고 납득 이 될 때 시로서 인정이 되는 반면, 일본의 전통 시가에서는 이런 요소가 결여돼도 어느 한 사물에 대한 순 간적 포착과 영탄이 그대로 한 편의 시로 성립될 수 있었다.49) 논리를 가지고 길게 부연하거나 묘사하기보다 는 어느 한 순간의 고양된 정서를 표현하는 것에 더 중점이 주어지므로 시의 길이는 자연히 짧아지고 특정의 주제나 사상, 줄거리를 가지지 않는 시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정서가 고양된 정점의 순 간에 대한 전후 맥락의 설명이 필요한 경우는 詞書를 붙여 그 상황을 보충하였던 것이다. 렌가나 하이카이가 복수 작자의 공동 합작이면서도 한 구 한 구가 한 단위로서 어느 정도 독립성을 지닐 수 있는 것도 이런 맥 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48) 이를 이라는 말로 나타낸다.

49) 鈴木修次, 中國文學 日本文學 , 東京書籍株式會社, 1987·1991, 6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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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나가는 말

연구와 하이카이는 공동합작의 산물이라는 공분모를 지니면서도 詩題의 유무, 압운과 같은 시에 규칙성과 일관성을 부여하는 요소의 유무, 종결 징표의 유무, 완성된 텍스트의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점 을 살펴 보았다. 두 문학 양식간의 이같은 차이는 중국과 일본의 문학적 전통의 차이와 결부지어 논할 때 더 욱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나 이 글에서는 거기까지 논의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하이카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형식을 갖추고 하나의 시장르로 개화·정착된 반면 연구는 존속은 되고 있지 만 시의 양식으로 정착·성행하지 않았던 것도, 한 작자의 작품이 완결된 한 편의 작품이 될 것을 요구하여 전체 속에 개인이 용해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중국의 문학적 전통과 島嶼文化에서 비롯되는 일본인의 집단 주의적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이런 점 또한 깊이 천착하지 못했으며 이상의 문제점들은 다른 논문을 기약하기로 한다.

<참고문헌>

1.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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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bara H. Smith, Poetic Closure: A Study of How Poems En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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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논문은 2018년 5월 23일에 투고되어,

2018년 6월 15일까지 편집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2018년 10월 22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18년 10월 24일에 편집위원회에서 게재가 결정되었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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