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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년도 안동대학교 특별학술연구 지원사업에 의해 연구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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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란파의 신학과 예술 화란파의 신학과 예술 화란파의 신학과 예술 화란파의 신학과 예술

*

1) 1) 1) 1)

서 성 록 서 성 록 서 성 록 서 성 록**

목차

들어가는 말 .

창조론의 역사적 배경 .

칼빈의 창조론

.

화란파 .

풍경화의 재평가 1.

성경적 읽기 2. ‘

칼빈주의의 역할 3.

계시로서의 자연 .

나오는 말 .

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

본 논문에서는17세기 등장한 화란파(Dutch School)를 통해 기독교적 자연관이

이 논문은 한국미학예술학회 년 봄 학술대회의 발표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 2004 .)

이 논문은 년도 안동대학교 특별학술연구 지원사업에 의해 연구되었음

* 2003 .

안동대학교 교수

**

(2)

예술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가를 고찰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먼저 주요 신학. 자들이 제기한 창조관점을 살펴본 뒤 화란파의 개관 작품해명 화란파에 끼친 개, , 신교의 영향 등을 각각 알아보게 될 것이다.

화란파의 자연적 사실주의는 일반적인 풍경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장르로 취급 되어왔다 때로는 플랑드르 영국의 풍경화 인상파와 마찬가지로 여러 풍경화중. , , 하나쯤으로 취급을 받아왔으나 그들의 풍경화는 단순한 감상용 그림이기 전에 당, 시의 기독교 세계관을 담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묘사대상 및 미. 적 대상이 아니라 창조주의 작품으로 이해되었으며 따라서 그 속에는 기독교의, 창조론이 깊숙이 녹아내려 있다 다시 말해 화란파에는 기독교적 자연관과 세계관. 이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깊이 있게 통찰해오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화란파의 성격과 본질을 기독교 관점에서 해석하여 원래의 취지를 밝 히고자 한다.

우리는 화란파의 풍경화를 고찰하기에 앞서 먼저 기독교의 창조론이 어떻게 전 개되어 왔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Ⅱ장에서는 초대 교부들의 변증론을 통해본 자연관을 살펴볼 것이다 창조주와 구속주를 따로 분리시킨 영지주의의 오류를 지. 적하고 이레네우스(Irenaeus) 이래로 가장 왕성하게 창조론을 언급한 요한 크리소 스톰(John Chrysostom), 그리고 어거스틴(Augustine)의 창조와 섭리를 각각 알아 볼 것이다 창조론은 칼빈. (John Calvin)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칼빈의 어거스틴처. 럼 자연이 없음에서 (ex nihilo)’ 생겨났음을 재차 확인하였고 자연계 속에 작용하 는 거룩한 섭리의 항구적인 보살핌을 특별히 강조하였다. Ⅲ장에서는 자연 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하나님의 증거요 창조 및 섭리의 강력한 표식으로 받아들인 칼빈의 창조론을 집중적으로 알아볼 것이다.1)

장에서는 화란파에 대한 평가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어떤 경.

위로 풍경화가 대거 제작되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란파의 풍경화가 그간 경, 시되어왔는지 그 이유를 밝힌 다음에 주요 화가들의 작품을 분석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화란파의 풍경화를 해석하는 틀로서 조수아 브루인(Josua Bruyn)이 제기한 성경적 읽기 를 소개하고 성경적 읽기 를 주요한 계기로 삼아 렘브란트를 위시

1) Susan E. Schreiner, The Theater of His Glory: Nature and the Natural

Order in the Thought of John Calvin , MI: Baker Academic, 1991.

(3)

하여 호옌 루이스달필립 코닝크의 작품에 담긴 의미를 점검해볼 것이다, , . 장에서는 성

경에 언급된 자연을 소개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자연과 우주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모두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계획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느(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된다 시 또한 하늘에서부터 땅 아

9:6), .( 19:1)

래까지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에 대한 표적을 드러내주지 않는 곳은 없다 자연계. 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그 분의 섭리를 명백히 증거 한다.

이런 자연이해는 화란파 초기부터 실질적으로 있어왔지만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 은 마르틴 드 클레인(Maarten de Klijn)이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클레인은. 칼빈이 자연계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로 보았다고 설명한다 이같은 긍정. 적인 견해는 칼빈과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자연을 정교하고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함으로써 예술을 성장시켰다고 말한다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아. 화란파는 한층 탄력을 받게 되었고 기독교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기게 된 것이다.

창조론의 역사적 배경 창조론의 역사적 배경 창조론의 역사적 배경 창조론의 역사적 배경 ....

올림피아 신화를 넘어 창조의 기독교 교리를 설정한 사람은 교회의 첫 교부인 안디옥의 데오필루스(Theophilus of Antioch)로 창조란 없음에서 (ex nihilo)’ 비롯 되었다고 했다.2) 세계의 영원성에 관한 희랍 사상에 반대하여 그는 없음에서 창 (creatio ex nihilo)’를 지상세계가 하나님께 의존해 있는 증거로 삼았다 희랍의. 철학이 당시 교부들의 변증론에 한 흐름이 되어갔는데 이에 관하여 오리겐

타소스의 디오도르 락탄티우스 그리고

(Origen), (Diodore of Tarsus), (Lactantius) 바실(Basil) 등은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가 창조세계를 파악하였다.3)

초대 기독교 사상가들은 한편으로는 희랍의 세계의 영원성에 관한 논의에 맞서 창조의 실재를 세웠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창조된 질서는 악한 세력의 작품이라 든지 혹은 빛의 하나님을 인정치 않았던 데미우르게(Demiurge)와 같은 영지주의자 (Gnosticists)과 대립각을 세웠다 창조주. (Creator)를 구속주(Redeemer)와 분리

2) Ibid., p.8.

3) Ibid., p.8.

(4)

시켰던 영지주의의 잘못된 구분에 관하여 이레네우스(Irenaeus)는 하나님의 일치 성 창조의 선함 그리고 역사적인 섭리를 옹호하였다, , .

특히 창조주를 구속주와 분리시킨 영지주의 시각에 대하여 이레네우스는 창조를 하셨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구속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통일성을 옹호하였다 그. 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그의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오직 한 분의 하나님이 계신 다”4)고 했다 그는 요한복음. 1:3에서 가리키는 만물 ’(all things)은 물리적 한시, 적 혹은 역사적인 범주를 일컫는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 세계는 이레네우스에 의. 하면 선하며 자비로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다, .

이레네우스 이래로 가장 창조론을 왕성하게 언급한 사람은 요한 크리소스톰 이다 크리소스톰은 우선 하나님의 섭리와 관련하여 창조론을 (John Chrysostom) .

펼쳤다. “수치를 당하는 자들에게”(Ad eos qui scandalizati sunt)라는 편지에서 크리소스톰은 자연의 경이 속에서 거룩한 섭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연. 의 질서나 조화 아름다움 그리고 유용성을 하나님의 손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이, , 유로 자연물 자체를 경외한 적이 없다 계절의 변환 천체의 회전 따위는 하나님의. , 영광을 나타낸다 크리소스톰에게 있어 바람과 바다식물 동물 산들 골짜기 나. , , , , , 무 등 모든 것들은 창조주의 선하심과 무한한 섭리 infinite providence’를 반영한 다.5) 크리소스톰이 보기에 하나님은 하나하나의 피조물을 통치하신다 세계는 한, . 순간도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봄과 섭리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리하여 세계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돌봄을 증거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적인 섭리적 행위의 지속을 반증한다.

크리소스톰은 나아가 하나님의 불가해성을 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해명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역사적 범위 속에서는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이나 계. , 획을 이해할 수 없다 그 분은 너무 높이 계시고 너무 멀리 계시며 너무 무한하셔. 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충분히 납득될 수가 없다 심지어 천사들조차 하나님의 이. 루 말할 수 없는 섭리는 한계가 없으며 깊이를 잴 수 없다’6)는 데에 동의한다 거.

4) Benjamin Charles Miler, Jr., Calvin's Doctrine of the Church , Leiden: E,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 J. Brill, 1970, p.190. “

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 1:1).

5) John Chrysostom, Ad eos qui scandalizati sunt , tr., Anne-Marie, Paris:

Les editinns du Cerf, Ⅶ . 26, 1961.

6) Ibid., Ⅱ . 1.

(5)

룩한 섭리 앞에서 모든 존재들은 불경스런 의혹을 제지해야 하며 인간사의 원인을 발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크리소스톰은 그러한 제지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신앙. 을 보존시켜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무궁한 거리가 있음을 존중하고 확신할 수 있게 해준다 크리소스톰이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지금 거울로. 희미하게 그마저도 먼 거리에서 보나 후에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마침내,

얼굴과 얼굴로 보게 될 것이다

.7) 따라서 크리소스톰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 보다 훨씬 참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계시를 믿는 것이다”8)고 말한다.

어거스틴(St.Augustine)은 기독교의 창조와 섭리의 교리를 충분히 해명하려고 애쓴 초대 교부로 인생을 바쳐서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성품과 창조의 선함을 간직하고 있는 창세기1-3장을 해석하는 데에 전심을 다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창세기의 문자적 주석

(De Genesis ad litteram)”9)으로 남겼다.

어거스틴은 창세기에 관한 가장 초기의 주석에서 마니교에서 제기한 문제 즉,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는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는 물음에 답하면서

?”

세 가지 속성을 담고 있다. 2) 라틴어로 된 집회서(Ecclesiasticus) 18:1절을 영 원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단번에 그리고 동시에 창조하셨다(God who

로 풀이하였다 lives forever created all things at one and the same time)” . 3) 그리고 창세기2:4 ,절 즉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를 이것은 천지에 관한 책이다 하루가 만들어졌을 때 하나님 . 께서는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모든 것을 초록으로 덮으셨다 로 풀이하였다, .” .

여기서 어거스틴은 창조의 두 계기 (moment)’ 혹은 측면 (aspect)’을 구분함으 로써 모순을 풀어가려고 했다 창세기. 1:1-2:3절에 언급된 창조의 첫 양상을 집회 서에 따라서 보면 동시에 지으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비시간적으로 파악, , 된다 창조의 이런 계기 속에서 하나님은 만물을 말씀을 통하여 있게 하셨다 이. .

7) Ibid., Ⅱ . 14.

8) Ibid., Ⅰ . 4-6. 크리소스톰의 신학을 적절하게 나타내주는 성경의 구절은 로 마서 11 장이다 .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 11:33).

9)Augustine, De Genesi ad litteram libri duodecim . .11.27- .12.28, Cf Eve Ⅴ

as Mother: Reaching for the Reality of History in Augustine's Later

Exegesis of Genesis in the History of Exegesis , Lewiston, NY: Edwin

Mellen, 1988.

(6)

같은 창조의 동시성(simultaneity)은 창세기2:4절의 단 하루라는 말에서도 기표 된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참회록(Confessions)10)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11)에서 다시 말하였듯이 시간과 변화가 동시적으로 세상에 창조되었기 때문에 창조 전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존재의 형이상학과 연관하 . 여 어거스틴은 오로지 하나님만이 참되게 존재하며 모든 시간적이며 변화하는 우 주 위에 계시는 최고의 존재로 보았다 하나님은 창조를 시간으로써 진행시키지. 않고 시간적 프로세스를 능가하는 영원성으로써 진행시키셨다고 한다.12)

창조주의 권세 전능함 그리고 모든 것을 유지시키는 힘은 모든 피조물이 순

, ,

종하는 원인이 된다 만약 이 권세가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것을 그친다면 그 종. 들은 더 이상 존재치 못할 것이며 자연계 전체는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만약

( ) .

하나님께서 피조계에서 손을 떼어버리신다면 세계는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심지. 어 우리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13)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시간적인 섭리를 논의할 때 하나님의 지속적인 통치와 천 사들의 매개적인 역할을 동시에 주장하였다. “창세기의 문자적 주석(De Genesi 에서 그는 역사의 도정 가운데 천사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한다고 ad litteram)”

보았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실체들을 창조하였을 뿐. 만 아니라 계속 유지시키신다고 여겼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활동 원인들의 노정. , , 그리고 천사들의 사역을 통하여 피조물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어. 거스틴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으로부터 출발하여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선적 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는 신적인 섭리를 밝혔다.

칼빈의 창조론 칼빈의 창조론 칼빈의 창조론 칼빈의 창조론 ....

10) St. Augustine's Confessions , tr., Willian Watt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1968.

11) Saint Augustine: The City of God , tr., G.Walsh, Garden City: Image Book, 1958.

12) Susan E. Schreiner, The Theater of His Glory: Nature and the Natural Order in the Thought of John Calvin , MI: Baker Academic, 1991, p.11.

13) De Genesi ad litteram libri duodecim, Ⅴ .23.44-46 in The Theater of His

Glory, p.12 재인용 .

(7)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칼빈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무에서 (ex nihilo)’ 비롯 되었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런 맥락에서 칼빈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세상을. 지으셨다는 전통적인 가르침을 계승한다 자연과 세상은 자신의 권세로 만물을 붙. 들고 계시는 아들을 통해 만들어졌다 칼빈에 따르면 성삼위는 창조시에 매우 적. , 극적이었다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아직 미분. 화되고 무형적인 물체를 존속시키는 데에 필수적이었다 이제 모세는 이 세상이. “ 유지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권능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여기서 그처럼 무질서한 덩. 어리가 어떻게 지탱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 이 질서나 통치에 의해 보존됨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세는 이 덩어리가. 아무리 혼돈 가운데 있었다 해도 성령의 은밀하신 권능에 의해 얼마 동안 지탱되 었다고 주장한다.”14)

칼빈은 창세기 주석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가만히 계시다가 세상을 창조하기로 결정하셨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창조에 관한 성경적 진실성을 변론하였다 칼빈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 동안 도대체 어떠했는지 의혹을 품는. 자들을 위하여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지옥을 준비해 오셨다는 주장에 동감하였다.

교회의 전통에 부합되게 칼빈은 만일 거룩한 섭리의 항구적인 보살핌이 배제된 다면 자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며 단번에 완전한 무질서와 혼돈으, 로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칼빈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 해석은 시편. 104 29절에서 보듯이15) 하나님께서 자연을 포기하시면 자연은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하나님께서 점차로 혼돈에서 존재를 있게 한 질서는 하나님의 직접적이며. 특별하며 강력한 섭리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인 질서 자체이다.

하나님의 은밀하신 영감 덕분에 이러한 혼돈은 와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

말해서 다른 어떤 곳으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혼돈이 질서정연하 게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

14) John Calvin, Calvin's Commentaries, Muti-Volume .Grand Rapids, Mich.,

존칼빈 성경주석 권 존 칼빈 성경주석 출판위

Eedmans, 1950-1972, 『 』 20 ,

원회 편역 성서원 , 2001( 이하 신구약의 각 권명으로 표현 ) Comm. on Gen.

1:2, p.49.

15) “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시 ”( 104:29).

(8)

롭게 하시나이다 시’( 104:30)라는 구절을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만일 하나님께서. 주님의 영을 거두신다면 모든 것은 즉각 본래의 모습인 흙으로 돌아가 버릴 것이 다.”16)

멜랑히톤(Philipp Melanchthon)과 마찬가지로 기독교 창조론에서 질서의 개념은 칼빈의 핵심적인 개념이다.17)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창조의 질서를 하나님의 증거요 창조 및 섭리의 강력한 표식으로 받아들였다.18) 그에게 질서란 교부나 중 세 신학자들처럼 어떤 위계적인 것이 아니다 칼빈은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척도. 로 묘사하거나 자연적 질서를 존재의 면밀한 위계적 사슬로 기술하지도 않았다.

질서는 모든 자연과 우주 그리고 사회에서 찾아지는데 위계로 나타나는 것이 아, 니라 영속성 규칙성 창조의 지속성으로 나타난다, , .

그러나 이러한 질서가 갖는 불안정성도 잊지 않았다 오직 위대하고 거룩한 권. 세만이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질서를 보존한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 “ 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 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느”( 9:6) “주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 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히”(

키케로 세네카 그리고 크리소스톰 을 환기하

1:3) (Cicero), (Seneca), (Chrysostom)

면서 칼빈은 창조주의 현존을 알리기 위해 별들과 하늘에서 볼 수 있듯이 훌륭하 게 짜여진 우주의 질서에 주목하였다.

어떤 것도 외관상 이 이상 더 아름다운 것으로 상상할 수 없는 하늘의 무수한

성군(multitute of stars)을 놀라운 질서에 따라 배치 배열하시고 서로 어울리게, 하신 그 예술가야말로 얼마나 위대한가 함을 우리가 생각할 때 비로소 이 법칙의 첫째 부분이 예증된다 그는 어떤 별들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위치를 고정시켜 놓. 으셨으며 어떤 별들에게는 한층 더 자유로운 운행을 허용하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 지정된 궤도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하셨으며 모든 별의 운행을 조정하여 별들로 하, 여금 낮과 밤 달과 해 그리고 계절을 구분하셨고 우리가 항상 보는대로 혼란이, , , 일어나지 않도록 날의 균차를 조절하셨다. ---이상의 몇 가지 예증만으로도 우주

16) Comm. on Gen.1:2, p.49.

17) Melanchton, Initia doctrinae phyicae , CR 13:200.

18) Günter Gloede, Theologia naturalis bei Calvin , Stuttgart: Kohhammer,

1935, pp.332-334.

(9)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을 아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충분히 밝혀준다.”19) 별들과 하늘은 하나님의 보살핌 없이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뿐만 아니라 혼란에 빠지게 된다 창조세계는 그 분의 정확성과 조화를 보여준다 창조주가 질서를 보. . 존하지 않는다면 상상할 수 없는 참상과 재난이 불어 닥치는 것을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은 곳에서 온 세상을 질서 있게 통제하시되 어느 것도 뒤죽박

,

죽되지 않도록 하시며 많은 소용돌이와 충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모든, 것을 합력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의도하신 목적을 이루는 일에 조금도 빈틈이 없으시다.”20)

칼빈에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임재를 거기에서 볼 수 있다는 데서, 피조물들을 지탱하시고 제약하시며 지휘하시는 데서 발견된다 자연은 자체로는. 질서를 지닐 수도 질서를 만들어갈 수도 없다 피조물은 질서를 갖추는 데 이바지, . 하지 못한다 오직 거룩한 분의 권세만이 우리가 인식하는 우주에서 장엄한 질서. 를 보존할 따름이다.

자연이 연속성을 갖는 것은 그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자기 행사로 인한 연속적인 즐거움에서 연유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세계를 그처럼 훌륭하게 꾸며 놓으셔서 우리로 이

아름다운 장관을 구경하게 하실 뿐 아니라 또한 그 세계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신 풍성하고 다양한 온갖 종류의 좋은 것들을 누리게 하신 것은 결코 작은 영광이 아 니다. --- 시편기자가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 하실지로다하는 말 씀을 덧붙이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 아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태초에 세우신 질. 서가 그의 선물들을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일에서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시기 때문 이다.”21)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온유하게 돌보시고 풍성하게 기르시는 데에서 기쁨을

19)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 ed., by John T.

McNeill. trans., by Ford Lewis Battles,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기독교강요 김종흡 외 공역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 』 , , 생명의 말씀사 , 1988, pp.282-83( 이하 Inst. 로 약칭).

20) Sermon on Job. 25:1-6, 서문강역 , 『 칼빈의 욥기강해 욥과 하나님 : 』 , 지 평서원, 1988, p.277.

21) Comm. on Ps. 104:32.

(10)

찾으신다 만일 그 분이 즐거움을 그친다면 땅에 생명을 주기를 중단한다면 혹은. , , 피조물을 진노의 눈길로 바라본다면 자연이란 곧 무질서의 상태로 들어갈 것이다, . 따라서 칼빈은 자연의 아름다움 뒤에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돌보심을 필요로 하는 연약함 의존성 깨어지기 쉬운 속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간주하였다, , .

화란파 화란파 화란파 화란파 ....

풍경화의 재평가 풍경화의 재평가풍경화의 재평가 풍경화의 재평가 1.

1.

1.

1.

세기에 융성한 화란파 는 위에서 말한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섭 17 (Dutch School)

리와 자연계시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미술은 화란이 경제적으로 활기에 넘치. 던 황금기에 종교적으로도 경건성을 잃지 않던 시대에 탄생되었다, .22)

화란파에서 가장 많이 제작된 것은 풍경화이다 바다를 그린 것 도시를 그린. , 것 전원을 그린 것 전투장면 그리고 해변을 그린 것 등 약, , , 30퍼센트 가량이 풍 경화였다 초상화가. 15퍼센트 정물화가 퍼센트 역사화가, 9 , 10퍼센트임을 감안할 때 화란에서 꾸준히 주목을 받았던 미술품은 풍경화였다 역사화가. 10퍼센트로 주 저앉았던 시기(1680-1689 )년 에 풍경화는 오히려36.5퍼센트나 상승하였다.23)

22) 유럽에서 화란만치 자유가 신장되고 문화적으로 발전한 나라가 없었다 화 . 란은 유럽의 기독교 국가 중에서도 가장 부강하였다 이 조그마한 나라는 . 활발한 해상 무역의 거점으로 부상하였고 유럽의 부자들을 암스테르담에 모 이게 하였으며 세계의 상업중심지가 되었다 . 17 세기에 제작된 그림 수는 무 려 9 백만여 점이었다 응접실과 작업실 침실 부엌 복도 할 것 없이 장소에 . , , , 적합한 그림을 선택해서 감상할 정도로 미술향유가 보편화되었다 또한 귀 . 족이나 성직자 부유한 부르주아 수집가들은 물론이고 제빵사 제봉사 대장 , , , 장이 같은 사람들도 집안을 장식하기 위해 그림을 구입하였다 그 외에도 . 정부나 자선기관을 비롯하여 민병대 길드 회사도 자신들의 건물을 장식하 , , 거나 기능을 보완할 의도로 그림을 주문하였다 이처럼 화란의 미술이 황금 . 기를 맞이한 것은 사회경제적 안정 및 칼빈주의가 제공하는 종교적 안정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Masters of 17th-Century Dutch Landscape Painting , ed., Peter C. Sutten, Rijsmusuem, Museum of Fine Arts, Philadelphia Museum of Art, 1987, p.4.

23) Art in History/History in Art, Studies in 17th-Century Dutch Culture ,

ed., by David Freedberg and Jan de Vri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 p.352.

(11)

당시 화란에는 풍경화가 활발하게 제작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풍, 경화에 관한 논의가 없었다 소책자에서 간간이 풍경화를 다루었을 뿐 대부분의. 이론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론과 고전에서 가져왔다 곰브리치. (Gombrich) 풍경화가 널리 보급되기 전에 알베르티(Alberti), 레오나르도(Leonardo)의 글들이 소개되어 풍경화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24)

그러나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어 풍경그림은 역사화의 일부로 간주되었을 뿐 화란처럼 독립된 장르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17세기 후반 화란의 미술이론가들인 사무엘 반 호흐스트라텐(Samuel van Hoogstraeten)과 헤라르트 드 라르세(Gerard 는 역사화가 최고의 예술형식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다 카렐 반

de Lairesse) .

만더(Karel van Mander)처럼 풍경화의 열렬한 지지자조차 풍경은 성공적인 인물화 가가 필연코 숙달해야만 하는 여러 미술 분야중 하나라고 언급하였다.25)

반 만더에 따르면 풍경화가들은 산보를 하며 전원생활을 즐겼던 사람들로 기술, 한다 그 시대에 작업은 주로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것은 미술의 역. 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시골에 나가 산보를 하면서 흥미로운 광경. 을 소묘했고 그 소묘를 토대로 스튜디오로 돌아와 유화로 완성시켰다 얀 리벤스. 의 화가가 있는 숲 풍경 이 있다 이 작품에는 관목 사이로 이젤을 (Jan Lievens) < > .

펼쳐놓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등장한다 반 에버딩겐. (Allart van Everdingen) 스칸드나비아에 있는 화가 도 마찬가지이다 몇 사람이 높은 지대에 올라 드넓게

< > .

펼쳐진 자연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17세기 미술기록가 아놀드 하우브라켄(Arnould 은 파울러스 포터 와 아드리안 반 데 벨드

Houbraken) (Paulus Potter) (Adriaen van 가 정규적으로 야외로 사생을 나갔다고 말한다 렘브란트 역시

de Velde) . 1640

대에 시골길을 따라 걸으면서 강가의 뚝방이나 암스테르담 외곽지대를 사생을 나 가 소묘와 판화작품을 남겼다.26)

화란파의 풍경화는 작품성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를 받지 못해왔다. W.스텍 하우(Wolfgang Stechow)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화란파는 프리드리히로부터도 멀 리 떨어져 있었던 것처럼 세잔느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27) 3백년간 동안이

24) Masters of 17th-Century Dutch Landscape Painting , ed., Peter C.

Sutten, p.8.

25) Ibid., p.9.

26) Ibid., p.9.

(12)

나 서양미술사에서 주마간산 식으로 파악되어온 것이 화란파이다 조수아 브루인. 은 그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한다

(Josua Bruyn) .28)

첫째로 사진뿐만 아니라 인상주의가 오늘날 우리가 모든 풍경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게다가 화란파의 화가들은 일반적으로 자연. 을 지형학적으로 정확히 그려내려는 욕심 또한 없었다 어쨌든 우리가. 17세기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있어 인상주의의 관점에서 보려는 경향이 오랜 기간 작용해왔 던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둘째로 아직도 낭만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풍경화가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이다 낭만주의의 관점에 따르면 화가들은 풍경을 그림으로. 써 그 속에 자신의 정신을 투영시키게 되는데 따라서 그 풍경은 화가가 창조해, 낸 그만의 풍경으로 실제적 환경의 재현과는 무관하다 이러한 초기 낭만주의적. 관점으로17세기 화란파 풍경화를 해석한 대표적인 예가 야곱 반 루이스달(Jacob

을 우울한 화가 로 보는 견해와 렘브란트

van Ruisdael) (the melancholic)’

를 슬픔에 잠긴 홀아비 화가

(Rembrandt van Rijn) (the inconsolable widower)’

보는 견해인데 이런 해석은 모두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셋째로, 17세기 화란파의 풍경화를 단순히 사실주의라고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배후에 심오한 의미층이 존재하는 것을 간과해왔다.

화란의 미술은 기독교의 창조론과 인생관을 은유적 상징적으로 반영해주고 있, 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성경적 우주관과 자연관이 관통하고 있다 이 무렵 화란의. . 풍경화는 인문학적으로 높은 교육을 받은 제한된 그룹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폭넓 은 계층의 사람들과 다양한 부류의 신앙인들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메시지가 없는 풍경은 풍경화로 그려지지도 못했다. .29) 것은 성경을 비롯하여 신앙생활을 돕기 위해 발간된 기독교 문헌들을 은유적으로

27) Wolfgang Stechow, Dutch Landscape Painting of the Seventeenth Century , National Gallery of Art, Kress Foundation Studies in the History of Art, no.1, London: Phaidon, 1966, p.8.

28) Josua Bruyn, “Toward a Scriptural Reading of Seventeenth-Century Dutch Landscape,” in Masters of 17th-Century Dutch Landscape Painting , ed., Peter C. Sutten, Rijsmusuem, Museum of Fine Arts, Philadelphia Museum of Art, 1987, pp.84-103.

29) Ibid., p.101.

(13)

이용해온 데에 기인한다.30)

화란의 시와 문학 역시 모든 자연물들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지으신 황홀한 피조물이며 그것이 신앙생활에 유익함을 준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 멀리13세기의 화란의 번역가B. 안젤리쿠스(Bartholomaeus Angelicus)는 지상세 계를 연구하는 것은 성경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 생각을 하나님께 집중시켜준다고 했고, C. 셀티우스(Conrad Celtius)는 하나님을 얼마든지 자연계 에서도 볼 수 있다고 했으며 야곱 헤스너, (Jacob Gesner)는 알프스를 보면서 자 신이 얼마나 전능하신 건축가의 작품에 매료되었는지를 밝힌 바 있다.31) 17세기 홀란드의 가톨릭 저술가였던H.L. 스피겔(Hendrick Laurensz Spiegel)J. 폰델( 역시 이런 생각에 동조하였다 스피겔은 아침에 모래언덕 Joost van den Vondel) .

과 간척지를 산보하면서 창조의 책 (book of Creation)’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고 했고 폰델 역시 아름다운 황혼을 보면서 하나님과 그 분의 지고하신 위엄을 보라 여기 그 분의 섭리가 드러나 있지 않은가 라고 감탄했다, ?” .32)

심지어 야곱 캇츠(Jacob Cats)같은 시인은 들판이나 시골로 가면 성경의 세계, 곧 이삭과 야곱의 구약시대로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콘스탄틴 호이겐스. 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모든 모래언덕 위까지 나타난다 고

(Constantin Huygens)

했는가 하면 성경과 자연은 거룩한 이해의 두 원천임을 강조하였다 이 두 권의. 책은 하나님의 뜻(will)과 권능(power)의 표현으로 각각 해석해야 한다는 말도 덧 붙였다.33)

따라서 화란파를 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의미층과 분 리시키거나 오늘날처럼 도덕적 및 종교적 가치를 상실한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30) 고전적 작가들이 쓴 글들이나 특별히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속담 이야 , 기들 인용구들은 주로 종교적이거나 도덕적 색채를 띤 교훈에 사용하기에 , 적합했을 뿐 아니라 문학적이거나 우화적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이 , 미지들을 창조해 내는 재료로 사용하기에도 적합했다 그리고 그렇게 창조 . 된 이미지들은 다시 역으로 격언과 교훈적 인용구들을 떠올리게 했다(Ibid., p.85).

31) Walters S. Gibon, “Scriptural Reading,” in: Pleasant Places: The Rustic Landscape from Bruegel to Ruisdael ,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0, p.63.

32) Ibid.,p.63.

33) Masters of 17th-Century Dutch Landscape Painting , ed., Peter C.

Sutten, p.13

(14)

오류를 범하게 된다.

성경적 읽기 성경적 읽기성경적 읽기 성경적 읽기 2. ‘ 2. ‘ 2. ‘ 2. ‘

화란파의 풍경화는 기독교 세계관에 기초를 두었기 때문에 이에 적합한 해석법 으로 브루인은 성경적 읽기 ’(Scriptural reading)를 제안한 바 있다.

부르인에 의하면, 17세기 미술가들은 현실을 가급적 실제적으로 재현해 내고자 고군분투하였고 화가의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그려졌을 경우 찬사를 받았으며 화, 가 자신들조차도 자연의 모방이 그들이 작업을 통해 달성해야 할 최종목표라는 생 각에 있어서 일말의 의심조차 없었다 감상자들의 경우도. -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림감상의 즐거움은 그림이 갖고 있는 회화적인 질(painterly quality)에 의해 결 정된다고 생각했다.3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7세기 화란파 사실주의는 사실주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프로그램에 의해 조명되어질 때 비로소 그것이 활짝 꽃을 피 울 수 있다”35)고 주장한다 화란파의 풍경화 속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온갖 이. 미지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이 이해틀을 벗어난다면 자의적인 해석이 되고 말 것이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따라서 그는 풍경화를 단순히 감상용으로 판단하는. 것과 달리 경건생활을 추구하였던, 17세기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면서 기독교 정신이 풍경화 속에서 어떻게 형용되었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36)

그들의 작품은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는 영적 순례의 표지판으로 비교될 수 있다 따라서 그 작품 안에는 멋진 광경에 대한 찬탄과 경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 희망이 무산되고 삶의 좌표를 잃으며 체험적 세계가 격랑에 휩싸이기도 한다.

야곱 루이스달(Jacob van Ruisdael)의 유대인 묘지< Jewish Cemetery>(1668-69) 를 살펴보면 상단에는 허물어진 성벽이 있고 골짜기를 따라 시냇물이 흐르고 시, 냇물 위에는 무지개가 화면 하단에는 죽은 나무와 석묘가 놓여있다 여기서 허물, .

34) Josua Bruyn, p.85.

35) Ibid., p.85.

36) Ibid., pp.84-103. 언어와 이미지 (word & image), 은유적 풍경화 (the 풍경화 읽기

metaphorical landscape), (the interpretation of the landscape),

도상해부학적 프로그램 (Iconographic Program) 등 .

(15)

어진 성벽은 옛 영화를 시냇물은 삶의 여정을 암석과 죽은 나무는 삶의 여정에, , 도사리는 수많은 위험을 각각 상징한다.37)

렘브란트(Rembrandt)의 돌다리< Stone Bridge>(1638-40)를 보면 화면 왼편에, 는 주막이 보이고 오른편에는 첨탑의 교회가 보이며 농부가 돌다리를 건너는 중이 다 봇짐을 진 채 농가 쪽으로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사람은 실은 천상을 향해 여행. 하는 순례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여인숙은 연약한 영혼을 지닌 사람이 쉽게. 죄를 지을 수 있는 곳,38) 교회는 순례자가 도달해야 할 새 예루살렘,39) 길은 그 리스도,40) 다리 역시 그리스도를,41) 여행자는 숲을 지나고 있는데 숲은 죄악이 범람하는 세상을 각각 상징한다.42) 그리고 강물은 허영을 나타낸다.43)

호옌(Jan van Goyen)의 바닷가의 오두막집< (Cottage near the Sea)>(1631) 는 해변의 낡은 오두막집과 주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이 묘사된다 오주막집에. 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나태와 향락의 죄를 상징한다면 먼 길을 떠나는 여행, 자들은 부패한 세상을 떠나 낙원으로 가는 순례자들을 각각 상징한다.44) 이런 상 징은 참나무가 있는 풍경< (Landscape with two Oaks)>(1641)에서도 똑같이 발견 된다 죽은 나무 밑에 두 사람이 빈둥거리고 있으며 멀리로 봇짐을 지고 떠나는. 여행자가 눈에 띈다 여기서 죽은 나무는 바니타스. (vanitas) ,45) 그 밑에 있는 사

37) C.R. Leslie, Memories of the Life of Constable , ed., Jonathan Mayme, London: Phaidon Press, 1951, pp.318-19.

38) Chaucer, Canterbury Tales , “The Pardoner's Tale,” Ⅵ , lines 480-482.

39) Bruyn, p.96.

40) 요한복음 14:6 절 참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 ”

41) Catherine of Siena, The Dialogue , trans., and intro., Suzanne Noffke, New York and Mawah, N.J: Palist Press, 1980, pp.64-71.

42) 1559 년경 화란 북부에서 공연된 연극에서 숲의 나라 ( werelds foreest ) 는 죄와 위험 으로 가득 찬 곳을 언급한다 또 단테의

‘ ’ . Inferno 에는 “ 내가 어두

운 숲 가운데 있는 것을 알았노라 는 구절이 나오는데 숲은 이처럼 참된 인 ” 생의 길에서 벗어난 타락을 암시한다.

43) 피치넬리 (Picinelli) 는 “ (Flumen)” 강 이라는 글에서 어거스틴의 말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 “ 빗물이 불어나 강이 되고 그것이 흘러넘쳐 격노한다 흐름 . 을 이루며 흐르다가 흘러 사라진다 인간의 운명이 이와 같다 태어나고 죽 . . 으며 누군가 죽으면 또 다른 이가 태어나 그를 대신하고 그 또한 자라나지 , 만 그 역시 오래 머물지 못한다 이 땅에 머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 . 가 ? 빗속에 삼켜지듯이 혼돈의 심연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과연 무 엇인가 ?” Bruyn, p.99 재인용 .

44) Walters S. Gibon, Pleasant Places:The Rustic Landscape from Bruegel

to Ruisdael ,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0, p.52.

(16)

람들은 나태와 향락에 빠진 세상을 그리고 오른 편에 언덕를 지나는 나그네는 지, 상생활에 종말을 고하고 본향 곧 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각각 상징한다, .46)

본향을 소망하는 내용은 루이스달의 벤하임 성의 풍경< (Wooded Landscape 에서 두드러진다 벤하임 성은 화면 속에 지형학적 with Benheim Castle)>(1653) .

인 모티브로서 등장하지 않았다 실제의 벤하임성은 평지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 벤하임 성은 나그네가 올라가야 할 천상의 예루살렘 (Heavenly Jerusalem)’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화면 앞부분에 울창한 나무들은 죄악이 관영하는 세상을. , 넘어진 나무들과 시들어 거의 죽게 된 나무들은 바니타스를 상징한다 죽은 나무. 들과 숲 다리에 위치한 성 등 화란파의 풍경화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이미지들, 은 브루인이 말한 것과 같이 지상생활에 대한 가르침과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 다.47)

이미지가 갖는 상징 중에서도 하늘을 유독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는 화란에는. 산이 없기 때문에 대지에 비해 하늘을 특별히 크게 취급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러나 환경적 요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 하늘을 크게 그림으로서 그들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창조주의 세계가 무한히 광대하며 그 권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 예의 하나가 화란의 필립 코닝크(Philips Koninck 1619-1688)이다 그의 그. 림은 렘브란트와 마찬가지로 칼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코닝크는 눈으로 보이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그리거나 조각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중세미술에서 자주. 보이는 천사나 성자를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크. , 고 웅장한 창공에 고정되었다.

특히 그는 하늘을 통해 측량할 수 없는 우주의 크기 창조주의 무한함을 표출하, 였다 유화 길가의 오두막집이 있는 파노라마. < (Panorama with Cottage linning a 년 의 경우 하늘이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드넓은 하늘 아래 사

Road)>(1655 ) , .

람들이 모여 산다 저 멀리로는 마을이 보이고 앞쪽으로는 매 사냥을 나온 사람들. ,

45) 바니타스는 전도서에서 유래되었다 .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이 모 든 것이 헛되도다 전 ”( 1:2) 바니타스는 지상적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 성을 그리고 영원한 삶에 대한 소망을 각각 담고 있다 , .

46) Walters S. Gibon, p.52.

47) Bruyn, p.101.

(17)

낚시꾼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한가로이 노는 오리들 그리고 평범한 집 몇, , , 채와 나무가 보인다 이 그림에서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이다 그. . 하늘은 어제나 오늘이나 어느 나라에서든 상관없이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풍경이, 다 코닝크가 그린 하늘은 제한이 없다. .

이 그림에서 사냥 나온 사람들 빨래하는 여인들 낙시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늘, , 의 무한한 공간 안에 흡수되어 버린다 유한은 무한에 견줄 수 없으며 일시적인. , 존재는 영원한 존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나아가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는 참으로 광대하고 신비로워서 우리의 눈과 머리로는 도저히 계측할 수 없음을 가르쳐준다.

야곱 반 루이스달(Jacob van Ruisdael)의 하렘풍경< (View of Haarem with 도 창조주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낸다 코닝크와 동시대 Bleaching Fields)>(1670) .

화가였으며 특별히 풍경화가로서 이름을 날렸던 루이스달은 하늘을 웅장하게 그렸 다 화면의. 2/3 가량 하늘이 차지하고 있다 호수와 들판 집과 교회는 아주 조그. , 맣다 밭에서 일하는 농부를 찾으려면 주의 깊게 그림을 살펴봐야 한다 왜 화가는. . 하늘을 이처럼 크게 그렸을까 이것은 화가의 개인적인 신앙고백일 수도 있지만? 동시대에 흐르는 기독교 세계관을 반영한다.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하늘이며 그 다음은 우주이며 보이지 않는 존재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이 그림은 보여준다 보이는 하늘 가. 운데 거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해준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 다는 데 대해서 하나님 자신보다 더 믿을만한 증인은 없으며 그래서 놀랍고 큰일 을 행한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 한다 이렇듯 화란파의 화가들은 하나님의 피조세. 계를 잘 정관( )하여 전능자의 무궁한 창조성을 전달하였다.

칼빈주의의 역할 칼빈주의의 역할칼빈주의의 역할 칼빈주의의 역할 3.

3.

3.

3.

화란의 풍경화가들은 중세와 달리 화면에 성경적인 이미지를 직접 기용하지 않 았기 때문에 단순히 미적이고 순수시각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최초의 유파라고 부 른다 말하자면 풍경화 자체를 자율적인 영역으로 자연을 대하는 화가의 개인적인. ,

기분이나 정서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48)

(18)

그러나 이런 막연한 견해가 재평가된 것은1982년 화란의 미술사가 마르틴 드 클레인(Maarten de Klijn)이 문제제기를 하면서부터이다 그에 의하면 화란의 미. , 술에서 사실적인 풍경화를 태동시킨 것은 세속적인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반대로 칼빈주의였다.49) 사실적인 풍경화의 태동은 직접적으로 북 네덜란드의 칼 빈주의의 영향에 기인한다.50) 이로써 다른 영역의 주권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주 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혔다 클레인은 칼빈이 자연계에 대하여 우리가 칭송할만. 한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로 보았다고 설명하였다 자연에 관한 이같은 긍정적인. 견해는 칼빈의 생각과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에게 세계 안으로 돌아오게 만들었 으며 자연을 연구함으로써 예술을 성장시켰을 뿐만 아니라17세기 자연과학의 발 흥에도 기여를 하게 만들었다.

칼빈의 견해를 존중했다고 해도 화가들이 칼빈주의 교리만을 따랐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카톨릭화가들이 개신교의 성경을 위해 삽화를 제작했던 것처럼 개신교화. 가들은 카톨릭 성경의 삽화를 제작하였고 가령 많은 풍경화를 그린 판 데 벨트 같은 칼빈주의자는 미사를 드리는 사제와 같은 카톨릭적인 (Esaias van de Velde)

테마를 그렸고 코닝크스루(Gilles van Coinxloo) 역시 안토니의 유혹 사막의 바울, 등 카톨릭적 환경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화를 그렸다 더구나 천 백여점의 풍경. 1 2 을 남겨 왕성한 활동을 한 고옌은 카톨릭 화가였다 이런 정황을 생각할 때 풍경. 화의 출현은 특정한 교리와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클레인의 주장은 잘못된 것일까 비록 개신교 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48) Reindert L. Falkenburg, “Calvinism and the Emergence of Dutch Seventheenth-Century Landscape - Critical Evaluation,” in: Seeing Beyond the Word: Visual Arts and the Calvinist Tradition, edited by Paul Corby Finney, Michigan, Cambridge: Grand Rapids, 1999, p.344.

49) M.de Klijn, De involed van het Calvinisme op de Noord Nederlands landschapschilderkunst 1570-1630 , Apeldoorn, 1982. 17 세기 화란의 미술과 칼빈주의와 관련한 문헌으로는 Erik Larsen and Jane P. Davidson, Calvinistic Economy and 17th Century Dutch Art , New York: University of America, 1979; Seeing Beyond the Word: Visual Arts and the Calvinist Tradition ., edited by Paul Corby Finney, Michigan, Cambridge:

Grand Rapids, 1999; Abraham Kuyper, Lectures on Calvinism , Grand Rapids, 1931; Jeremy S. Begbie, Voicing Creation's Praise-Toward a Theology of the Arts , T&T Clark Ltd, 1991 참조 .

50) William A. Dryness, Visual Faith: Art, Theology, and Worship in

Dialogue , Baker Book House, 2001, pp.51-58.

(19)

직접 교리적으로 결부시키지 않았으나 대체로 그들은 풍경화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자연에 대한 인식이 카톨릭 화가들과 기본적으로 달랐다 고옌과 같은. 예외가 있으나 카톨릭 화가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이코노그래피(iconography) 충실하여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주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 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화가들은 달랐다. .

세기와 세기의 칼빈주의자들은 자연 즉 창조계를 하나님의 두 번째

16 17 ,

’(second book)으로 여겼다 자연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지혜와 선하심과 은총. 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화란 개혁교회. (Dutch Reformed Church) 우리가 보는 세계는 아름다운 책과 같다 거기에서는 모든 창조물들이 큰 글씨와

.

작은 글씨로 정확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본성 바울이 로마서, ( 1:20절에서 말) 한대로 그 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똑똑하게 의식하게 만들어준다”51)고 선언 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호이겐스는 세계를 만물에 관한 책 혹은 하나님의 첫 번. ’(

째 책), ‘엿새 동안의 경이로운 책으로 특징지었다 이런 만물에 관한 책의 의식 . 이 화란풍경화를 탄생시키는 효소가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연에 관한. 이러한 해석이 화가들로 하여금 풍경화에 대한 의식을 촉진하고 적극적으로 이 방 면에 관한 작품을 많이 제작하게 했다.52)

코닝크스루(Gilles van Coinxloo)나 판 데 벨트(Esaias van de Velde)와 같은 화가들이 매너리즘에서 사실주의로 회화적 어휘를 변경한 대표적인 칼빈주의 화가들이다 자연의 풍요로움 공간묘사에 있어 자연스러움 운치 있는 구성적인. , , 통일성 풍경 가운데 인물의 축소와 통합 견고한 색깔 등을 클레인은 칼빈주의적, , 세계관과 연결지었고 매너리즘 풍경과 대조되는 것으로 분석하였다.53)

화란파 판화 중에 크리스프레인 반 덴 퀘본(Crispijn van den Queborne)의 삽 (Zeeusche Nachttegael,Middleburgh,1623에 수록 가 있다 노인이 우아한 옷을) .

51) Walters S.Gibon, p.63 재인용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 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 ”( 1:20)

52) J.M. Montias, “Work of Art in Seventeenth-Century Amsterdam:An Analysis of Subjects and Attributions,” in: Art in History/History in Art, Studies in 17th-Century Dutch Culture , edited by David Freedberg and Jan de Vries,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1, pp.235-52.

53) Reindert L. Falkenburg, p.346.

(20)

입은 젊은이에게 땅 위에 모든 것이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지으신 작품이 얼, , 마나 선한지 설명해주고 있다 모든 자연물들은 창조주를 향하고 있고 우리는 그. 분의 창조물들을 만지거나 봄으로써 그 분의 임재를 깨닫는다.54)

또 한명의 독실한 칼빈주의자였던 피셔(C.J.Visscher)의 즐거운 장소들< (Paisant 판화연작이 있다 이 작품에는 시간에 쫓겨 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자 Plaeten)> .

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란 부제가 달렸다 피셔는 이 그림에 어떤 도덕적 . 이거나 교훈적인 내용 없이 신학적인 내용을 새겨 넣었다 즉 자연이란 하나님의, . 거울이요 신성의 반영이란 의식이 내재해 있다, .55) 그런 점에서 피셔는 진리를 채 굴하는 광부요 아름다움의 빛을 널리 비추어주는 등대지기와 같다.

칼빈 자신도 제노바편 기독교강요(1545 )년 에서 순수하게 즐거움을 주는 주제들 가령 동물들과 마을과 전원과 같은 풍경을 묘사하는 것을 이미 인정한, 터였다.56) 화란의 화가들에게 풍경이 완벽한 주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많든 적든 칼빈의 가르침에 따라서 시. 각적인 세계(visible World)를 실어냈고 그리하여 풍경화가 화란 미술에서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57) 칼빈은 예술미든 자연미든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파악하고 눈에 보이는 대상물 이에는 무엇이라도 회화로 표현하든가 조 각해서는 안 된다”58)고 요청하였다 칼빈이 말한 눈에 보이는 대상물이란 천사. 나 성인들 중세미술에서 보이는 종교적 이미지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들이나 초상, , 일상적 삶 자연적 경관과 같은 이미지들이었다 종래에는 푸대접을 받던 시각적인, . 영역이 칼빈의 도움으로 새롭게 주목받기에 이른 것이다.59)

54) Sutten, p.13.

55) Sutten., p.13.

56) J. Calvin, Institution de la Religion Chrestienne (Geneva,1545),vol. , Ⅰ chap. , para 12, (ed., J.D. Benoit, Paris 1957).

57) Gene Edward Veith, Painters of Faith: The Spiritual Landscape in Nineteenth Century America , Washington: Regnery Publishing, Inc. 2001, p.23.

58) Inst ., ,Chapter 11, p.188. Ⅰ

59) Gene Edward Veith, p.22. 앨퍼스에 의하면 화란파는 기술 , ‘ ( 記 ) 의 미술 로 화가들이 머리 혹은 상상으로 그리는 대신 자연으 Art of Describing art’

로 직접 들어가 평평한 화란의 대지를 포착하고 공들여 목장 마을 그리고 , 교회탑을 묘출하였다고 한다. Svetlana Alpers, The Art of Describing Art:

Dutch Art in the Seventeenth Century ,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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