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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칼럼] 34년간의 KAIST 교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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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NICE, 제28권 제3호, 2010

회·원·칼·럼

34년간의 KAIST 교수 생활

화학공학과 나

경남고 재학시절에 어느 과로 가야 하는지를 놓고 많 은 고민을 했었다. 문과 체질은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면 백일장도 당연히 붙을 줄 알았는데 한번도 입상한 적이 없었으니 별로 소질이 없었다는 것을 고등학교 때에야 알았다. 이공계면 자연대로 가느냐 공대로 가느냐가 갈 림길이었다. 자연대를 졸업하면 중고등학교 물리·화학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공대를 졸업하면 취업 (럭키 화 학)이나 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을 알았다. 화공과 선배들 이 미국 유학을 가서 공부 잘한다는 소리가 신문에 종종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물리는 공부를 해도 별로 비전이 없어 보여 갈 곳이 많은 화학분야를 택했고 유학/취업 의 기회가 많은 화학공학과를 택했다. 나의 중·고등학 교, 대학시절까지 mentor역할을 하셨던 형님이 신문사 에 계셨던 지라 일본에서는 소니, 마쯔시타 등의 회사도 있고 전자공학(electronics)이 최고 인기였다는 것도 알 았었다. 그러나 그 당시 삼성전자도, 금성사(LG전자)도 없었던 때라 화학공학과로의 선택은 당연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 입학 후 2년 만에 전자과가 서 울대 최우수학생 입학학과가 되었었다. 화학공학과로 잘못 들어 갔다고 생각하고 물리과로 옮겼거나 박사학 위를 비화공으로 하여 현재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 에서 교수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입학할 무렵 화학공학 과 열풍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외국 journal에 논문쓰기

KAIST는 1976년에 부임하였는데 급여도 국내 대학 의 3배 정도였고 사택을 제공하는 등 특혜가 많은 기관 이었다. 거북했던 것은 부교수 승진을 하는 데 외국논 문 4편, 교수승진을 하는 데는 8편을 요구하는 것으로 KAIST에 부임했던 교수들에게는 이것이 큰 부담이었 다. 이 때 외국 박사학위 소지자의 대학 외 사회적인 수 요도 상당히 있었고, 이때의 KAIST 연구시설로 보아 서는 이 요구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 KAIST를 떠나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었다. 다행히 나 는 초기에 서울대 우수 졸업생들이 실험실에 많이 지 원하여 학생들하고 같이 밤늦게까지 영어를 고치며 외 국논문을 썼던 기억이 난다. 1979년 KAIST에 박사학 위 과정이 신설되고부터 외국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 야만 졸업을 할 수 있는 규정이 만들어져 교수들이 학 생 졸업시키느라 많은 고생을 했었다. 이는 지금은 학 과 자율에 맡겨져 있지만 오늘날까지 시행되고 있다.

외국 journal에 논문쓰기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효과 가 있었다고 본다. 본인이 1990년에 한국 학과별 랭킹 을 외국/국내 학과들과 비교 평가하는 연구를 했고 이 결과가 신문에 보도되어 국내 대학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바 있다. 지금은 Nature/ Science 등 세계 최일류 급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사람도 상당 수 있지만, KAIST의 경우 논문 편수 보다는 high impact factor

장 호 남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명예교수/정년연장교수 hnchang@kais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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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28, No. 3, 2010…371 journal의 논문 수를 중심으로 하는 선진국형 tenure/

승진심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KAIST 교수들은 또 한번의 시련을 겪고 있다.

벤처 설립

1990년에 한국과학재단(현재 한국연구재단)의 첫 번째 7개 공학연구센터 중 하나로 나의 생물공정연 구센터가 채택되었고 최종목표는 자립이었다. 그러 다 1999년 센터 종료를 앞두고 최종평가를 잘 받으 면 몇 년을 더 연장시켜 준다는 과학재단의 말에 음 식쓰레기 처리 벤처를 설립했다. 아무리 돌아봐도 지 난 9년간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산업화 할 수 있는 품목이 없었다. 화공분야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 다. 전자부품, software와는 달리 큰 commercial plant를 지어서 돈을 버는 상업운전을 하기 전에는 산업화 성공의 credit을 받기가 힘들게 되어 있는 것 이 화학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비애다. 그래서 1999년 한창 문제로 제기되었던 음식쓰레기를 처리 하는 벤처를 만들면 성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소위“묻지마”벤처를 만들었다. 돈이 된다하면 국내 기업들이 일본의 유사 기술을 수입해 벌써 산업화했 을 테지만 1995년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음식물쓰레 기 처리기(일명 부엌용 디스포저-미국식)를 금지하 고 있어 나의 연구가 쓸모가 있었다. 벤처는 2005년 에 매각되었고 현재 서울시 시범 사업(첫번째: 200 가구, 두번째 540가구)을 따내 운영 중에 있다. 정부 가 하루 빨리 분쇄기 허용법안을 개정해 매각한 벤 처가 돈을 벌었으면 한다.

학문에로의 길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은 1957~1963년으 로 사회가 어수선한데다 실력보다는 어느 줄을 잘 잡 느냐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길이다 보니“학교 우등생 이 사회 열등생”이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그래도 논 밭을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좋은 대학을 보내려는 학 부모들의 열기는 대단했고 상아탑 대신 우골탑이라 는 말도 유행하고 있었다. 1976년 KAIST에 부임하

면서 34년간의 교수생활을 하다 보니“공부를 잘 한 다는 것이 무엇인가?”또는“성적이 1등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다.

1963년 서울대 입학식에서 전체 입학생을 대표하 여 입학생 선서를 하고 나온 후 가족들과 점심 하러 가던 중 내가 다짐한 것이 있다. 이렇게 우수한 입학 생들 중에 내가 졸업할 때도 일등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서울대 일등 입학한 에너지를 아껴서 어딘가에는 쓸 수 있을 것이며 쓸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했다. 내 나름대로 탈출 구를 마련해 둔 셈이었다. 사실 1등을 하려고 너무 노 력을 과도하게 하고 좋은 성적을 내었다고 하여도 별 로 의미가 없는 것이, 교미를 끝낸 수벌처럼 기운이 다 빠져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한다면 이 사회는 누가 발전시키겠는가?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자기자신/부 모형제들/출신고교 등이 좋아하겠지만 내가 일등을 못하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할 것이고 공부를 잘 한 다는 것은 zero-sum의 성격이 농후한 것도 사실이다.

긍정적인 창의성

사회(좁게는 고향, 국내, 넓게는 국제적으로)는 발 전을 위해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 다. 1등은 A가 아니하면 B가 할 것인데 비해 Einstein의 상대성 이론은 Einstein이 아니었으면 아 직 아무도 못했을 수도 있고 Edison의 발명도 그렇 다고 본다. 누군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했을 수도 있지만 못했을 수도 있는 이것을 우리는“창의성” 라고 부를 수가 있다. 본인이 34년간 KAIST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대학 성적과 우수한 교수가 되 는 것은 큰 관계가 없다(혹시 반비례?). 특히 한국식 입시제도에서 공부 잘하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기에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고 느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보면 사회/국가/세계의 발전 에 많이 기여할 수 있는 인재가 더 나은 인재일 수가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논문을 많이 쓰는 교수들 보 다는 산업적/학문적으로 impact 있는 논문을 쓰는 교수가 더 창의적이며 기여가 큰 교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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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NICE, 제28권 제3호, 2010

학문에로의 길

34년간의 화학공학의 발전방향을 보면 현재보다 더 큰 분야로, 더 작은 분야로 각각 발전하고 있다. 응용 측면에서 보면 시대의 요구(현재, 미래)에 따라 발전 한다. 화학공학분야에서 더 큰 분야로 보면, plant/국 내, global, 태양계(우주선), universe; 더 작은 분야로 는 물질/소재 측면에서 nano system(화공의 경우로 보면 분자 level에 머물다가 여러 분자를 모아 약간 크 게 하면 물질의 특성도 달라져 응용분야가 넓어지는 효과가 있음)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응용분야로는 에 너지와 화학물질(biomass, 원자력, battery), 그리고 생 명공학, 녹색성장을 들 수 있겠다. 이미 개발된 화공 기술 들은 simulation기술로 정리되어 활용되고 새로 개발 되는 것들은 생명공학에서 metabolic engineering을 통 한 system화 기술로 대변되는 것 같다.

교수들의 능력이 일정하다고 하면 어느 쪽에 가서 연구를 하던지 간에 국내외에서 인정받을만한 전문성 을 갖는 것이 좋겠다.

화학공학회/정년연장교수 생활

화학공학회 관련

1976년 귀국하여 안암동에 있는 한국화학공학회 편 집위원으로 학회와 첫 인연을 맺었고, 1983년에는 아 시아-태평양화공회의(PACHEC III)의 사무총장을 맡아 보람 있는 일을 했다. 1990년에는 APBioCheC 을 창설하였는데 이는 현재 설립 중인 AFOB(Asian Federation of Biotechnology)의 모태이다. 한동안 보 직에 관심도 많았지만 이것저것 다 실패하다 보니 마 지막 7, 8년은 다른 일은 제외하고 생물공학제품의 산 업화 연구에만 치중하고 있다. 1999년에 설립한 e1biotech은 2005년 매각되어 현재는 서울시가 주도 하여 산업화가 추진 되고 있으며 아마 2011년에는 신 규아파트에 미국식 disposer를 쓸 수 있을 것으로 본 다. 현재도 음식쓰레기 등 유기성 폐기물을 이용한

VFA(volatile fatty acid)공정을 이용하여 bioethanol /butanol 등을 생산하기 위해 최근 eewsbiotech을 설 립하였다. 한번 벤처를 설립하여 고생한 경험이 있어 기대치를 낮고 잡고 있으니 잘되거나/잘못되거나 간 에 크게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정년연장교수의 생활

KAIST에는 (기업)석좌교수(chair professor), 정 년이 없는 특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가 있는 데 모두 5년 임기로 임명한다. 정년 전에는 특별한 일 이 없으면 재임용된다. 이번에 새로 생긴 정년연장교 수는 KAIST chair professor로 기획이 되었다가 같 이 정년을 맞은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정년연장 교수로 명칭을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교육법에 의하면 모든 교수는 65세에 은퇴하여 명예교수가 된 다. 65세부터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이 연금과 KAIST에서 주는 약간의 금액을 합친 것이 정년연장 교수의 급여가 되는 데 실 소득은 정년 전 급여의 약 70%정도 된다. 석·박사 학생을 지도는 할 수 있지만 모든 경비는 교수가 모두 부담해야 하며 실험실 space 비용도 교수가 부담한다 (KAIST는 최근 일반 명예 교수까지 단독으로 대학원생의 지도를 허용하였다).

석·박사 1명에게 지불되는 최소한의 경비는 1,200~1,500만원/년, 40평 정도의 실험실은 100만원/

월 정도이다. 정년 전에는 생물공학이 인기가 없어 전 공으로 선택하는 학생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겠 다는 학생이 꽤 있는 편이다. 참고로 KAIST는 90세 까지 근무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 연한이 점점 줄어들 어 80세, 75세에서 현재는 tenure를 받은 사람이면 70 세까지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사무실도 제공하 고 있다. 지금은 정년 4개월째로 강의 한 과목, 학생지 도 (박사 2명은 정년 전의 학생이고, 석사 3~4명은 정년 후에 지원한 학생), 벤처운영 및 학회활동, 회사 자문 등으로 상당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회·원·칼·럼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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