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자 욕망으로서의 도시
우리에게 평소 바라기 어려운 꿈은 환 상 내지 욕망이라는 용어로 대변되고 는 한다. 그것은 현재의 욕망이 충족 될 수 없는, 쉽사리 부여잡기 어려운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 다. 이 때문에 욕망 또는 환상은 언제 나 손에 잡힐 듯 말 듯 안타깝게 우리
눈앞에 달려 있고, 어떤 면에서 그러한 이미지는 잡 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다. 필자가 처음 파 리에 여행갔을 때는 왜 그리도 ‘파리’를 외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며 호기롭게 ‘파리’를 ‘대 적’하러 가는 느낌이었지만, 돌아올 때는 내 심장을 놓고 오는 듯 떠나오기 싫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하다. 동경이 잡고 싶은 욕망이 되는 순간이었다.
누구든지 동경하는 사람이 있고, 동경하는 시대 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동경이 좋아하는 공간 또 는 도시와 겹칠 때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된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가장 좋은 장소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배경으로 ‘파리’ 같 영 화 와 도 시 11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 우디 앨런 감독, 2011년 개봉
●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 칼라 부르니 등 출연
● 제17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각본상, 제64 회 미국 작가 조합상 각본상, 제84회 미국 아 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제69회 골든 글로브 시 상식 각본상
동경의 시대, 환상의 공간, 낭만적 파리 예찬
-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이병민 |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은 피곤한 우리의 삶으로부터 ‘현실 도피’가 될 수 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의 시간도 될 수 있 으리라. 오히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 가게 되면, 관람객들은 이율배반적으로 우리가 살 아가야 하는 현재로, 우리의 삶을 불안하고 복잡하 게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도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에는 마법에 빠 져 모든 것을 내려놓을 만큼 매혹적인 도시, 그게 ‘파 리’라면 허탈함도 용서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로맨틱의 장소: 미드나잇 인 파리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는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바라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영화, 즉 타임슬립 영화다. 우디 앨런(Woody Allen)이라고 하는 재 능 많은 감독을 통해서 이 영화는 1920년대 파리 로의 과거여행을 통해 그 시대를 풍미했던 헤밍웨 이, 피카소, 달리 등 전설적 예술가들을 영화 속에 등장시켜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를 매우 적절하게 배경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디 앨런이 직접 감독하 고 각본을 만들어서 그만의 위트와 재치가 넘치는 우아한 판타지로 만든 이 영화는 파리, 로마로 이 어지는 우디 앨런의 유럽 시리즈 중 한 편으로 알 려지고 있다. 영화의 주된 줄거리는 ‘길’이라고 하 는 남자가 파리로 여행을 와서 매일 밤 파리라는 꿈의 도시에서 자신이 바라던 환상을 토대로 아름 다운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약혼녀 ‘이네즈’와 멀 어지게 되고 새로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어찌보면
간단한 이야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의 주인공이 길과 이네즈가 아니라, 문화예술의 역 사와 인물들이 등장하는 파리라고 본다면 이야기 가 달라진다. “책이든, 그림이든, 교향곡이든, 조각 이든, 위대한 도시에 견줄 수 있는 것을 과연 누가 만들 수 있을까?”라는 영화 속 대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사람들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관계가 얽혀 있는 매혹적인 도시 ‘파리’에 관한 이 야기이기 때문이다. 작가인 주인공이 100년의 시 간을 넘나들며 꿈에 그리던 황금시대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이 모자이크 를 이루며 도시의 시간이 변화하는 스펙트럼을 보
길은 환상대로 꿈의 도시 파리에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낸다
여주지만, 변화하지 않는 핵심 콘텐츠는 누구나 사 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법의 도시 ‘파리’와 도시가 품 고 있는 문화의 ‘품격’ 그 자체다. 현재와 과거 그리 고 좀 더 먼 과거가 공존하고, 역사의 가치를 존중
하는 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의 다양한 주름들 이 다양한 미장센으로 어우러지며 영화 속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매일 밤 12시, 종이 울리는 순간 홀연히 나타난 클래식 푸조에 올라탄 주인공 길이 도착한 곳은 놀 랍게도 1920년대의 파리였는데, 이러한 공간은 소 위 ‘벨 에포크(Belle Époque)’1)라 불리던 황금시대 의 도시였다. 그러한 배경으로 이 영화에는 실제로 예술가들이 많이 찾았던 파리의 역사적 장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길이 헤밍웨이를 만나는 레스토랑
‘폴리도르(Polidor)’, 영미문학 전문서점인 ‘셰익스피 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 벨 에 포크(Belle Époque) 시대에 등장한 ‘맥심(Maxim)’ 등은 모두 유명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실제 파 리의 명소다. 이러한 영화니 파리를 무대로 한 문학 산책으로 더한 선택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파리(Paris)’란 무엇일까?
잘 알려진 인문지리학자 투안(Yi-Fu Tuan)은 공 간과 장소에 대한 논의에서 장소와 공간을 구분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장소는 안전과 안정의 감각 과 결합된 것으로 식량·물·휴식·번식 등과 같 은 생물학적 필요가 충족되는 가치의 중심지가 되 는 것이며,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정감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땅과 밀착된 정감 같은 특 영 화 와 도 시 11
1) ‘좋은 시대’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문화·예술이 번창하고, 풍요와 평화를 누린 파리의 황금시대를 지칭함. 물랭루즈와 레스토랑 맥심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꽃의 파리는 그 후 외교 면에서나 경제 면에서나 쇠퇴와 핍박이 계속되어 1900년대 초의 파리를 아는 사람들은 한없
는 애착심을 가지고 이 시대를 ‘좋은 시대’라고 불렀다[네이버 지식백과.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1 4258&cid=42407&categoryId=42407 (2014년 10월 12일 검색). 원저작물(류은주. 2003. 모발학 사전. 파주: 광문각)에서 재인용].
파리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을 방문한 길
새로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길
로 인식되는 주관적인 장소로 볼 수 있다. 이 영화 는 ‘파리’라고 하는 도시에 대한 ‘꿈’ 이야기이기 때 문이며, 이때의 ‘꿈(Dream)’은 환상이자 소망이고, 욕망이자 아름다움이며, 실제의 파리가 아닌 희망 으로서 마치 백일몽처럼 사라져버리는 ‘희망도시’ 로 나타난다. 황금시대의 파리를 사랑했던 헤밍웨 이, 피카소, 달리와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집단적 기억과 공간이 현재의 주 인공과 함께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이 영 화의 가장 큰 강점은 아름다운 파리 그 자체에 있 다. “파리는 마음 속 축제다”라고 드러나는 대사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대한 의미를 그대로 함축하 여 나타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리는 낭만적인 예술 그 자체 로 그려지고, 파리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도시 자 체에 쌓여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 길이 집착하는 것은 파리의 현재라 기보다는 과거이며, 길은 유명한 장소를 찾아가 전 문가의 해설을 듣는 대신 파리의 공기를 느끼며 거 리를 걷고, 비를 맞고, 골동품 가게에서 보물을 발 견하고자 한다.3)
이러한 측면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는 2006년 작 ‘사랑해, 파리(Paris, Je T’Aime)’라는 영화와 비 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랑해, 파리’
는 파리에서 일어나는 사랑에 관한 총 18편의 5분짜 리 단편영화 모음으로, 프랑스 감독을 비롯하여 미 국, 브라질, 일본, 멕시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 국적의 감독들이 참여하여 만들어낸 옴니버스 영 화다. 20명의 세계 유명감독들을 모아 파리를 배경 으로 만든 영화이지만, ‘사랑해, 파리’는 여러 개의 퍼즐들이 모여서 ‘파리’라는 주제를 설명하고자 했 다. 이 때문인지 하나의 관통된 이미지보다는 다양 성의 백화점처럼 5분의 시간 동안 다양한 감독들 의 아우라와 사랑을 변주된 표현방식으로 이야기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파리를 다양한 각도로 비춰 주기는 하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와는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여행자를 유혹하는 파리의 문화와 콘텐츠들
파리 하면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2) 송미선, 류철균. 2008. 2000년대 영화의 장소 기반 서사 <사랑해, 파리>. 문학과 영상 9권, 1호: 111-130.
3) 윤성은. 2013. 2012년, 상호텍스트성의 어떤 경향. 영화연구 55호: 431-453.
파리에서 일어나는 사랑에 관한 옴니버스 영화 ‘사랑해, 파리’
떠오른다. 유명한 예술가들을 무수히 배출한 도시 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 하는 역사의 흔적이자 그 자체가 곧 역사인 도시다.
오랜 시간 잘 보존된 도시 환경과 구조물은 지난 세 월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에, 다양 한 매력을 뽐내는 도시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드나 잇 인 파리’는 많은 여행자들의 욕구에 불을 붙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카메라는 파 리의 도시와 거리 골목 사이사이를 비추면서 “너희
파리로 오고 싶지?”라는 말을 넌지시 내밀고 있다.
파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 거리의 매력과 도심의 향취를 느낄 수 있도록 스크린 안에 참으로 잘 담아 내었으며, 영화를 보는 내내 저들처럼 바로 저 거리 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 서 파리로의 여행을 꿈꾸게 만드는 프랑스 관광 홍 보영화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 요한 23세 광장, 팡테옹 등의 로케이션 장소 이외에도 짧지만 모네의 작품 ‘수련’도 비춰주고 있고, 당연하게도 센강과 에펠탑, 룩상부르 공원, 몽마르트르 언덕, 루브르 박물관 그리고 파리의 야경과 예술인들이 자주 가던 여러 카페들도 핵심적인 콘텐츠로 등장 하고 있다. 그뿐이랴, 파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건 물과 문화유적들은 베르사유 궁전과 로댕 미술관, 샹젤리제 거리, 퐁피두 센터, 콩코드 광장 등 모두 거론하기에 입이 아플 정도다.
영화와 관련하여 파리의 색다른 문화예술 관련 서 비스를 살펴보면, 문화예술의 도시답게 일반적인 여 행정보서비스는 물론이고, 최근 다양한 소셜 네트워 크 서비스와 인터넷, 증강현실 등의 도움으로 멀리 에서도 파리의 다양한 콘텐츠들을 향유할 수 있으 며, 영화뿐 아니라 쇼핑과 자전거 이용에 이르기까 지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즐길 수 있 는 정보가 다양하다(http://www.pariseguides.fr 등 참조).
화양연화(花樣年華)를 그리워하며
‘파리’라는 대도시 공간의 장소적 특징을 모티브로 영 화 와 도 시 11
파리의 다양한 문화예술 자원들
매혹적인 장소성을 지닌 장소를 통해 시간 중 심의 서사가 공간 중심의 서사와 조화를 이루며, 우리의 ‘꿈’이라고 하는 주관적인 욕망을 다양하고 함축적인 이야기인 영화를 통해 보여준다는 것이 다. 이러한 측면에서 장소기반 서사는 시간여행이 라는 시간적 서사를 통해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상 들에게 더 큰 상상력과 감동, 서사적 힘을 발휘하 고 있다.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추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우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화양연화)을 추 억하게 만들고, 향수에 젖게 만든다는 사실이 있다.
현재의 파리도 눈부시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주인 공의 심장을 뛰게 했던 것은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 이 살았던 과거의 파리다. 하지만 정작 벨 에포크 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대한 불만이 가득 하다. 고갱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공허하고 상 상력이 없다고 불평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으 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고갱은 미켈란젤 로와 다빈치가 살던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고 있 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되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에 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현재의 도 시가 갑갑한 만큼,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도시는 아 름답고, 우리는 환상을 좇게 된다. 영화 속에서 “예술 가의 임무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인간 삶의 허무 함에서 해독제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거트’가 말
이자 항생제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 서, 파리는 이방인에게 하나의 공간이면서도 현대 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황금시대이자, 욕망과 환 상의 동경의 공간이 될 것이다.
우리의 도시는 어떠한가? 개발이란 미명하에 도 시가 만들어지고 지금껏 이어져 온 시간의 역사는 투쟁과 반목, 갈등으로 투영되고 욕망이라는 다양 한 층위의 공간을 쌓아왔지만, 긍정적 브랜드를 어 떻게 쌓아왔고, 우리가 그러한 이미지를 받아들이 는지는 분명치 않다. 한류라는 이름과 글로벌 도시 라는 특성으로 내세우는 서울의 경우도 우리에게 ‘환 상’을 꿈꾸게 할 만큼 가슴이 뛰는 도시인지는 한 번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우리의 도시에 헤밍웨이나 피카소, 가스등이 빛나는 파리의 밤은 없어도, 가끔 은 비에 젖은 도시를 걸어보게 만들고 싶은 그런 향 수가 그립지 않은가? 화양연화를 꿈꾸어본다.
참고문헌
류은주. 2003. 모발학 사전. 파주: 광문각.
송미선, 류철균. 2008. 2000년대 영화의 장소 기반 서사 <사랑해, 파리>. 문학 과 영상 9권, 1호: 111-130.
윤성은. 2013. 2012년, 상호텍스트성의 어떤 경향. 영화연구 55호: 431-453.
전우영. 2013. [전우영의 영화와 심리학] ‘미드나잇 인 파리’. 동아일보. http://
news.donga.com/List/Series_70070000000986/3/70070000 000986/20130606/55674870/1 (2014년 10월 12일 검색).
Sony Pictures Classics.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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