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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황증거에 의한 유죄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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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 구 논 문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의 인정

권 영 법 *1)

* 대구지방변호사회 변호사, 법학박사.

논 문 요 약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정황증거로부터 정황사실을 인정하고, 정황사실에 의해 주요 사실을 추정 내지 추론하게 된다.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반대사실에 대한 추론의 배제가 유죄 입증에 있어 핵심이 되고 있다. 형사소송의 동적인 성격을 감안할 때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 입증 문제도 새로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형사소송에서의 정황 증거의 의의, 필요성, 종류를 검토하고, 정황증거의 인식론적 구조를 분석하였다. 정황 증거만으로는 유죄로 추론하기에 모호하고,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다의성이 있다.

때로는 정황증거가 직접증거보다 강력한 증명력을 갖기도 한다. 나아가 정황증거는 이를 정량화하거나 배심원에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위험성이 있다. 미국과 영국의 다수 법원과 독일에서는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피고인을 무죄라고 추정하는 모든 가설에 대한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을 요구하고 있다. 정황증 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감안할 때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에도 허용 요건과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 원칙을 충족하면 유죄 인정이 가능하다고 본다. 정황증거가 허용되려면 정황사실이 요증사실에 대한 개연성을 증대한다는 관련성이 인정되어야 하고, 이러한 정황증거에는 피고인이 무죄라는 합리적 가설을 배제할 만큼 실질이 있어야 한다. 정황 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피고인이 유죄라는 가설뿐만 아니라 피고인을 무죄라고 추론하는 모든 합리적 가설을 배제할 만큼 입증되어야 한다. 나아가 국민참여 재판에서 재판장은 배심원에게 정황증거의 의미와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 원칙과의

연 구 논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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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2008년 6월 미국 유아 케일리 앤소니(Caylee Anthony, 3세)가 실종되었다가 6개월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케일리의 모(母)인 케이시 앤소니(Casey Anthony)를 살인죄의 용의자로 체포하였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모두 정황 증거였다.1) 2011년 7월 5일 배심원은 케이시의 일급 살인죄에 대하여 무죄로 평결하였다. 이 사건의 쟁점은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2)만 있는 경우 ‘피고

1) 즉 ① 케이시가 케일리와 외출한 뒤 한 달 후에 집으로 돌아왔고, ② 케이시의 차량 트렁크에서 시체가 썩은 냄새와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③ 케이시가 조사 경찰관에게 여러 번 거짓말을 하였고,

④ 케일리의 시체가 테이프로 싸여 있었으며, ⑤ 케이시의 집 컴퓨터에 여러 번 ‘포르말린’이라는 단어를 검색한 기록이 있었다:<http://en.wikipedia.org/wiki/Death of Caylee Anthony>

(2014. 12. 9. 방문).

관계에 대하여 배심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주제어] 정황증거, 직접증거, 오 제이 심슨 사건, 홀랜드 사건, 실질적 증거, 모든 합리적 가설의 배제, 관련성,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

논문접수 : 2015. 1. 23. 심사개시 : 2015. 3. 5. 게재확정 : 2015. 3. 18

목 차

Ⅰ. 서 론

Ⅱ. 정황증거의 의의와 형사 증거법상 의미 1. 정황증거의 의의와 필요성, 종류 2. 정황증거의 인식론적 구조 3. 정황증거의 위험성

Ⅲ. 비교법적 고찰 및 학설과 판례의 검토 1. 비교법적 고찰

2. 국내 판례와 학설의 검토 3. 종합적 검토

Ⅳ.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의 요건 1. 관련성과 실질성

2.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 원칙의 적용 3. 배심원에 대한 설명

Ⅴ. 결 어

※ 참고문헌

(3)

인이 무죄일 수 있는 모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있느냐’

였다. 언론의 보도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들이 ‘합리적 의심’이라는 기준에 의하여 무죄를 평결한 것은 정확한 평결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3)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정황증거만으로 공소를 제기하여 화제가 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부산 노숙자 살해 사건’인데, 피고인에 대한 살인죄에 대하여 제1심(부산지방법원 2011. 5. 31. 선고 2010고합856 판결) 유죄, 항소심(부산 고등법원 2012. 2. 8. 선고 2011노335 판결) 무죄, 상고심(대법원 2012. 9. 27.

선고 2012도2658 판결) 파기 환송, 원심(부산고등법원 2013. 3. 27. 선고 2012노524 판결) 유죄(무기 징역)로 진행되었다. 이 사건의 핵심도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 어떻게 정황증거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느냐였고, 위와 같이 정황 증거의 신빙성과 관련하여 심급마다 서로 다른 판결을 하였다. 제1심 법원은 정황증거만으로 살인죄를 인정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피해자의 돌연사나 자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음을 들어 살인 혐의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피고인의 살해 동기가 충분함에도 돌연사나 자살 가능 성이 있다고 하여 원심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위 대법원 판결의 논지를 살펴보면 의문이 든다. 피고인의 무죄를 추론하는 모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는 것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여기에 대하여 검사가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을 다하지 못한 경우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법원과 같이 피고인의 살해 동기가 충분하다고 하여 무죄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은 정황증거의 입증과 관련하여 어떠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4) 대법원 판결의 논지에 따르면, 앞으로

2)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 Indizienbeweis)는 간접증거(indirect evidence, indirecter Beweis)라고도 불린다. 국내 문헌과 독일 문헌에서는 정황증거와 간접증거라는 말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며, 영미 문헌에서는 대부분 정황증거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정황증거’도 정황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한다는 점에서, 엄밀하게 따진다면 간접증거란 용어는 정확하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정황증거’란 용어를 사용한다.

3) supra, not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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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판결에서 정황증거의 신빙성 여하에 따라서는 심급마다 유 ・ 무죄를 달리하는 판결이 계속 선고될 수도 있게 될 것이다.5)

이러한 대법원 판결은 형사 재판에 있어 심증 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증거에 의할 수도 있다는 기존의 대법원 판결6)의 연장 선상에 있는 것으로, 대법원은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입증에 특별한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직접증거와 달리 정황증거의 판단은 정황증거에 의한 정황사실의 인정, 정황 사실에 의한 주요사실의 인정이라는 두 단계 과정을 거친다. 후자인 정황사실에 의한 주요사실의 인정의 경우, 논리에 의한 추론 내지 경험칙에 의한 추정7)을 하게 되는데 논리와 경험칙을 동원한 추론이나 추정은 무수히 많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정황증거에 의한 추론이나 추정에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예컨대 오 제이 심슨 사건8)에서도 직접증거가 아닌 정황 증거만 있었다. 즉 심슨이 피해자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증인이나 자백이 없었고, 심슨이 살해하였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정황증거만 있었다. 즉 심슨이 도주한 사실, 사건 당일 심슨 부부가 다툰 사실, 범행 시각 즈음에 심슨이 범행

4) 이 사건 항소심 법원이 돌연사나 자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케이시 사건에 서의 ‘피고인이 무죄일 수 있는 모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있느냐’라는 판 단 기준을 적용한 것과 유사하다.

5) 1980년 중반 냉혈한이 백인 소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마을로 건너왔다는 피 의자가 체포되었다. 피고인은 7년간 재판을 받으며 수사를 계속 받았고, 구속과 석방을 반복적 으로 당하였으며, 삶은 완전히 피폐해졌다: Pete Early, Circumstantial Evidence: Death, Life, and Justice in a Small Town, Kirkus LLC, 1995, p. 432. 이러한 사례는 정황증거만으로 기소할 경우 유 ・ 무죄를 판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아가 형사소송에서 진실 발견도 중요하지만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유죄 입증에 대한 척도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6)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도5948 판결;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도9452 판결.

7) 논증에는 논리에 의한 추론(inference)와 경험칙에 의한 추정(presumption)이 있다. 그러나 증거와 관련하여 동원되는 것은 대부분 ‘경험칙’에 의한 ‘추정’이다: 권오걸, 사실 인정과 형사 증거법,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4, 67~68면.

8) People of the State of Calfornia v. Orenthal James Simpson (1994). 오 제이 심슨 살인 사건은 1994. 11. 2. 로스앤젤레스 지방법원에서 열렸고, 1995. 10. 3.에 무죄 평결이 났다:

<http://en.wikipedia.org/wiki/O, J. Simpson murder case>(2014. 12. 6.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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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근처에 있었던 사실, 피 묻은 칼자국과 심슨의 신발 사이즈가 같은 사실, 피 묻은 장갑 등이 있었다.9) 그런데 심슨 사건에서 전문가 증인으로 법정에 선 법 과학자 헨리 리 박사는 최근 심슨이 진범이 아니라 심슨의 아들이 진범일 것으로 추정한다.10) 이러한 사실은 정황증거와 이를 토대로 한 가설에 의한 유죄 입증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심슨 사건 에서 정황증거는 산더미처럼 많았고, 검사로서는 심슨이 범인이라는 가설을 세우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미법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신빙성에 큰 차이를 두지 않는다.11) 그러나 정황증거는 직접증거와 달리 위와 같이 추론 내지 추정을 기초로 하여 주요사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직접증거와 입증 요건을 달리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의 문헌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 의식을 찾아 보기 어렵고 주로 정황증거와 직접증거의 신빙성에 차이점이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법관이 사실 인정을 함에 있어 ‘합리성’을 제고하기 위한 검토만 하고 있다.12) 이와 같이 정황증거가 모여서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에 이르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 정황증거에 의한 개연성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법관이 확신의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것인가에 대하여 지금까지 충분한 논의가

9) Marilyn Church, and Lou Young, Art of Justice: An Eyewitness View of Thirty Infamous Trials, 1st ed., Quirt Books, 2006/ 최재경(역), 세기의 재판, 다연, 2006, 184~190면.

10)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장갑은 심슨의 손에 들어가지 않은 정도로 작았다. 심슨은 흑인 전처와 사이에 20대의 아들이 있었으며, 현장의 족적은 심슨 아들의 운동화와 일치되었고, 장 갑과 모자 모두 심슨 아들의 그것과 크기와 같았다. 심슨 아들이 일하던 레스토랑에 심슨이 와 주기로 했는데 니콜이 그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시킨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래서 헨리 리 박 사는 심슨 아들이 칼을 들고 들어 갔고, 심슨이 달려와 말렸으나 실패하고 그 과정에서 손을 다쳐 피를 흘린 채 비행기 시각 때문에 서둘러 돌아 온 것으로 추정한다: 표창원 ・ 유제설, 한국의 CSI, 북라이프, 2011, 96면 이하.

11) 일찍이 위그모어(Wigmore)도 직접증거가 정황증거보다 크게 우월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John Henry Wigmore, Evidence, 3rd ed., 1940, §26, at 401.

12) 예컨대 권오걸, 앞의 책, 266면 이하; 사법연수원, 형사 증거법 및 사실 인정론, 2009, 199면 이하; 조원철, “간접증거에 의한 사실의 인정”, 「재판자료」, 제110집; 사실 인정 방법론의 정립 [형사 재판편], 법원도서관(2006), 60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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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다. 나아가 현재 국민참여 재판이 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직접증거와 정황 증거의 의미와 차이, 정황증거의 입증 요건에 대하여 배심원에게 설명해야 하 는데, 지금까지의 논의는 주로 정황증거에 의한 유 ・ 무죄의 판결, 즉 사실 인정의 합리성을 검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므로 이 점에 대해서도 새로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정황증거의 의의와 종류, 필요성과 위험성, 그리고 정황 증거의 인식론적 구조에 대하여 검토한다(Ⅱ). 이어 국내 학설과 판례를 검토 하고 비교법적으로 영미와 독일의 예를 검토한다(Ⅲ). 이러한 검토를 토대로 하여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의 요건과 관련 문제를 검토한 뒤(Ⅳ), 필자의 논지를 개진하도록 하겠다(Ⅴ).

Ⅱ. 정황증거의 의의와 형사 증거법상 의미

1. 정황증거의 의의와 필요성, 종류

가. 정황증거의 의의

정황증거(circumstantial evidence)는 주로 직접증거(direct evidence)와 대비 하여 설명되고 있다. 학자들은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를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직접증거 혹은 적극증거(positive evidence)란 “요증사실(the issue on trial)에 대하여 증인을 소환하여 질문할 수 있는 증거를 말하며, 그 외는 모두 정황증 거일 뿐이다”라는 설명이 있고,13) “직접증거란 목격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말하며, 정황증거란 요증사실과 관련된 증거를 말한다”라고 설명

13) R. C. Walker, “Circumstantial Evidence in Homicide Cases”, Virginia Law Register, Vol.

20, No 10(Feb., 1915), p.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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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도 한다.14)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직접증거란 ‘사고시 신호등이 녹색등이었다’라는 증언과 같이 요증사실에 대한 증거를 말하고, 이에 비해 정황증거란 ‘사고 차량이 교차로에 서서히 진입하는 것을 보았고, 내 차량의 신호등은 녹색등이었다’라고 증언하는 것과 같이 요증사실, 즉 사고시 신호등이 녹색등이었다는 사실을 추정케 하는 증거를 말한다”라고 설명하기도 한다.15)

요컨대 직접증거란 추론이나 추정을 하지 않고 그 자체 요증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말하며, 정황증거란 요증사실의 존재나 부존재를 추론할 수 있는 증거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16) 다시 말해 직접증거란 요증사실에 대한 증거로, 이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증거이며, 증인의 신빙성, 인지 능력 등을 판사나 배심원이 평가하게 된다. 이에 비해 정황증거란 주요사실을 추론하게 하는

14) William C. Braun, “Circumstantial Evidence in Arson Cases”, Journal of Criminal Law and Criminology, Vol. 41, No. 2(Jul.-Aug., 1950), pp. 227~228.

15) Daniel P. Collins, “Summary Judgment and Circumstantial Evidence”, Standford Law Review, Vol. 40, No. 2(Jan., 1988), p. 494.

16) Kevin John Heller, “The Cognitive Psychology of Circumstantial Evidence”, Michigan Law Review, Vol. 105, No. 2(Nov., 2006) pp. 250~251. 그 외에도 직접증거란 문제가 된 사실을 해결할 것이라고 보이는 증거, 즉 요증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말하며, 정황증거란 요증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 논증에 쓰임으로써 요증 사실에 전제되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 라는 견해(Steven L. Emanuel, Evidence, Wolters Kluwer, 2007, p. 12), 직접증거란 구성요건 표지에 의해 징표되는 주요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를 말하며, 정황증거란 구성요건 표지와 떨 어져 있지만 간접적으로 주요사실을 징표하는 정황사실(Indizien)을 입증하는 증거란 견해 (Klaus Volk, Grundkurs StPO, C. H. Beck, 2008, S. 216), 정황증거란 행위자가 범행에 가담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 유죄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행동에 대한 증거를 말한다는 견해(Christopher B. Mueller, and Laird C. Kirkpatrick, Evidence, 4th ed., Wollters Kluwer, 2009, p. 162), 직접증거란 진술자가 목격하거나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말하고, 정황 증거란 간접적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란 견해(Judy Hails, Criminal Evidence, 6th ed., Wadsworth, 2009, p. 77), 정황증거란 사실임이 드러날 경우 다른 사실이 존재함으로 추론되는 다른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라는 견해(Jefferson L. Ingram, Criminal Evidence, 10th ed., LexisNesis, 2009, p. 100), 정황증거란 요증사실을 직접 입증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라는 견해(John L. Worral et al., Criminal Evidence, 2nd ed., Oxford, 2012, p. 72), 정 황증거란 주요사실을 추단케하는 정황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란 견해(Werner Beulke, Strafprozessrecht, 11. Aufl., C. F. Mϋller, 2010, S. 25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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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를 말하며, 정황증거는 증거로부터 정황사실을 추론하게 되며, 추론이 상 당성이 있느냐의 판단은 판사나 배심원이 하게 된다.17)

나. 정황증거의 필요성

많은 형사 사건에서 직접증거가 없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증거를 피고인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살인 사건에서 범인이 시신을 숨겨버린다던가, 범행 현장을 누군가 목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정황증거에 의 한 입증이 필요하게 된다. 시신이 없고 살인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없다고 하 여 범인을 수사하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직접증거와 정황증거 모두 허용해 야 한다. 다시 말해 직접증거와 같은 정도의 충분한 증거를 통하여 범행을 추 론할 수 있으면 이를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18)

정황증거는 탈세 사건에서 오랫 동안 논의되어 왔는데, 그 이유는 피고인만이 전체 소득 금액에 대한 기록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검사는 소위

‘순자산 기법’(net worth method)이란 정황증거를 사용한다. 이 방법에 의하면 어느 시점 피고인의 순자산을 계산하고, 그 다음 해 피고인의 순자산을 계산하여 신고된 소득보다 더 많음을 계산하게 되다.19)195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홀랜드 사건20)에서 검사는 납세자를 조세 포탈 혐의로 기소했고, 순자산 기법에 의해 정황증거를 제출하였다. 피고인은 수입 이외의 다른 자금원에 의해 순자산 증거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증거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즉 다른 가능한 방법에 의해 피고인이 순자산을 증식시켰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를 검사가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은

17) Daniel P. Collins, op. cit., at 494.

18) R. C. Walker, op., cit., at 722-723.

19) Thomas J. Gardner, and Terry M. Anderson, Criminal Evidence: Principles And Cases, 6th ed., Thomson, 2007, p. 62.

20) Holland v. United States, 348 U ・ S.121, 139, 75 S.Ct. 127, 137(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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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순자산 기법에 의하여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였다.21) 방화 사건에서도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22) 방화 사건에서는 개인별 일련의 특징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일련의 증거를 통하여 입증도를 강화시킬 수 있다. 예컨대 피고인 범행의 일련 특징(pattern)을 밝힘으로써 어느 정도까지 피고인의 범행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정황증거인 방화의 특징만 으로 범행을 입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나, 범행의 파편을 모음으로써 상당한 가치에 이르게 할 수 있게 된다.23)

은밀하게 주장되는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합의’의 입증에 있어서도 정황 증거에 의존하고 있다. 이럴 경우 정황증거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사실이 인정 되어야 합의가 입증되었다고 할 것인지 문제되고 있다.24) 불공정한 행위는 비단 행정 제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 문제로 될 수 있으므로 독점규제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에 있어 ‘합의’의 입증 문제 역시 형사상 입증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고 있다.

다. 정황증거의 종류

대법원은 정황증거에 의해 동업 계약의 체결(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도5255 판결), 남녀간의 성 관계(대법원 1976. 2. 10. 선고 74도1519 판결;

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도974 판결), 관세 포탈의 공모(대법원 1993. 3.

23. 선고 92도3327 판결), 살인(대법원 2003. 2. 26. 선고 2001도1314 판결),

21) Thomas J Gardner, and Terry M. Anderson, op. cit., at 63-64.

22) 방화 사건의 경우, 가솔린 등 인화물질을 소지한 사실, 방화를 전후하여 범행 장소에 출입한 사실, 방화 전에 가구 등 물건을 옮긴 사실, 거짓 알리바이, 범행 후 도주 사실 등이 정황증거에 해당한다: Willam C. Braun, op. cit., at 227.

23) William H. Hopper, “Circumstantial Aspects of Arson”, The Journal of Criminal Laws, Criminology, and Police Science, Vol. 46, No. 1(May - Jun., 1955), pp. 134ff.

24) 이선희, “독점규제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에 있어서 합의의 개념과 입증”, 「서울대학교 법학」, 제 52권 제3호(2011. 9.), 416면 이하.

(10)

배임의 범의(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1864 판결), 절도(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도5662 판결), 도주 차량(대법원 2004. 6. 25. 선고 2004도2221 판결)을 인정하고 있다.25)

심슨 사건에서도 범행 현장에서 수십 개의 혈흔, 장갑, 심슨이 소지하고 있던 칼, 사건 1달 전에 심슨이 칼을 구입하였다는 증언, 심슨의 차량 내 ・ 외부에서 발견된 혈흔 등 수 많은 정황증거가 있었다.26)

정황증거가 제출되면 법원은 절차에 따라 이를 판단한다. 그런데 몇몇 정황 증거는 매우 강력하여 거의 직접증거와 가깝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정황증거 에는 ① 범행 능력, ② 의도나 동기, ③ 유죄라는 의식, ④ 피해자의 관련성, ⑤ 피해자나 피의자의 성격과의 관련성 등이 있다.27)

쥬디 헤일즈 (Judy Hails)는 이러한 정황증거를 ① 범행 행위 능력, ② 의도,

③ 유죄, ④ 성격, ⑤ 타 행위 등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28)

첫째, 범행 행위 능력에는 기술, 기술적 지식, 범행 수단, 신체적 능력, 정신적 능력이 있다. 둘째, 의도(intent)에는 범행 수법(modus operandi), 동기, 협박이 있다. 셋째, 유죄(guilt) 의식에는 처벌을 피해 도주함, 증거 은닉, 도품의 소지, 재산의 급격한 증가, 증인을 협박함이 있다. 넷째, 성격(character)에는 특정 성격 이력, 피해자의 성격 이력이 있다. 다섯째, 타 행위(other acts)에는 동일한 범죄 행위, 습관, 우연이 아님, 전과 사실이 있다. 그 외에도 유죄 답변(plea guilty),

25) 이준호, “형사 재판에 있어서 증명력 판단의 기준-사실 인정에 관한 대법원 판례의 고찰”, 「사 법연수원 논문집」, 제2집(2005), 389~394면.

26) Lynda Gorov, “Circumstantial evidence is key in Simpson case”, Boston Globe (Jul., 5, 1994), pp. 1ff.

27) John L. Worral et al., op. cit., at 73ff.

28) Judy Hails, op. cit., at 78-97. 정황증거의 분류는 학자들마다 달리한다. 다만 정황증거에 대한 판례가 누적되어 오고 있는 영미에서는 분류 방법은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더라도 내용에 있어 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11)

피해자 관련 증거, 범죄 피해자 보호법(Rape Shield Laws)상 정황증거가 있다.

2. 정황증거의 인식론적 구조

직접증거는 증거의 증명력을 법관의 자유 심증에 의해 평가하게 되나, 정황 증거는 정황증거로부터 정황사실을 인정하고, 정황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을 추리하므로 두 단계 사고 과정을 거친다.29) 이와 같이 정황증거에 의한 사실 인정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정황증거로써 정황사실을 인정하는 과정 으로, 이는 직접증거로부터 주요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둘째는 정황사실 로써 주요사실 내지 요증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으로, 정황사실로부터 추인 또는 추론의 과정을 거쳐 요증사실을 인정하며, 경험칙이 매개 요소로 작용한다.30) 이때 정황증거에 의한 정황사실의 인정은 사실 인정의 적정성 문제로 귀결된다.31) 정황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이나 요증사실의 인정은 추인 또는 추론의 과정을 거친다. 이 경우 ‘증거의 고리’(Beweisring)의 경우 동등한 정황사실로부터 주요 사실이 추인되고, ‘증거의 사슬’(Beweiskette)의 경우 순차적으로 정황사실이 인정되어 주요사실이 추인되는 것을 말한다.32) 이와 같이 정황사실은 경험칙에 의하여 주요사실을 이끌어 낸다. 정황사실의 연쇄에 의하여 주요사실을 드러 나게 하는데 정황증거에 의해 정황사실을 입증하게 되고, 정황사실은 입증의 목표가 되는 사실을 이끌어 내게 된다. 정황사실은 확실해서 법관이 확신을 갖을 수 있어야 한다.33) 이러한 정황증거에 의한 입증은, 독일의 통설에 의하면

29) 한상규, “알리바이의 입증에 관하여-입증 책임과 입증 정도를 중심으로-”, 「강원법학」, 제38권 (2013. 2.), 195면; 사법연수원, 앞의 책, 199면. 이러한 정황사실에는 움직이기 어려운 사실, 적극적 간접사실, 물적 흔적, 소극적 간접사실이 있다: 권오걸, 앞의 책, 266~268면.

30) 김종률, “합리적 심증과 과학적 사실 인정”, 「형사법의 신동향」, 통권 제26호(2010. 6.); 권오걸, 위의 책, 275면.

31) 김종률, 위의 글, 72면.

32) 김종률, 위의 글, 76면.

33) BGH NStZ 1981, 31; 1999.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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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칙에 따른 다른 추론이 없을 경우에만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고려되어야 한다.34)

이와 관련하여 정황사실로부터 추인 과정에서 가설의 설정과 소거라는 검증 절차가 행해진다는 견해가 있다. 즉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가설과 반대되는 가설을 소거해 간다는 것이다.35) 이와 관련하여 엥기쉬(Engisch)의 귀류법적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다. 엥기쉬는 정황증거에 의한 증명, 즉 간접증명(indirecter Beweis) 모델에서 지각된 사실(소전제)과 지각되지 아니한 사실(결론)을 가교 한 것이 경험칙이라고 본다.36) 엥기쉬는 어떤 추론이 현실적으로 증명력을 발휘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여야 하는데, 여기서 특별한 사정이 존재 하는 것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다른 원인 또는 결과가 불가능한 것 혹은 비개 연적인 것을 소거해야 한다고 본다. 엥기쉬는 근거에 의한 추론에서 귀류법(歸 謬法)적 방법이 사용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37) 이와 같이 다른 가능성(경합 가설)이 참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가설이 불합리하거나 모순이 있음을 반박하여 소거함으로써 특정한 가설이 참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고 본다.38)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과거 독일에서 주장되었던 학설을 원용한 것으로, 인식 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주장은 형사소송의 동적인 구조를 간과하고 있다.

형사소송은 양 당사자의 논박을 통하여 사실 판단자인 판사나 배심원의 심증이 계속하여 개정(改定)된다는 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모든 증거 조사를 마친 뒤 판사 혼자 지금까지의 주장과 증거를 검토하여 다른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이러한 형사소송의 절차 지향적 구조와 가치를 간과한 것이다. 나아가

34) Klaus Volk, a. a. O., S. 217. 이러한 현재의 독일 통설은 후술하는 바와 같이 정황증거가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피고인이 무죄라는 다른 합리적 추론을 배제하는 경우에만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 입증이 가능하다고 보는 영미의 입장과 유사하다고 평가된다.

35) 김종률, 위의 글, 78면.

36) 김종률, 위의 글, 30면.

37) 김종률, 위의 글, 32면.

38) 김종률, 위의 글, 33면.

(13)

이러한 주장은 경험칙에 의해 타 행위 가능성, 즉 피고인의 무죄를 추론케 하는 다른 가설을 배제해야 할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로, 즉 정황증거에 의한 정황사실의 인정, 정황사실에 의한 주요 사실의 추론이라는 다 단계를 거치므로 각 단계 별로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이 적용되어야 한다.

3. 정황증거의 위험성

위에서 살펴본 정황증거의 의의, 종류, 특징, 인식론적 구조에 대한 검토를 토대로 하여 정황증거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아래와 같이 분석해 보았다.

첫째, 정황증거에는 모호성(模糊性)이라는 위험이 있다. 정황증거가 상당하더 라도 그 자체 유죄로 하기에는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예컨대 피고인이 절도죄를 범한 여러 정황이 있더라도 진범이 다른 경로를 통하여 절도죄를 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법원은 무고한 피고인이 있을 수 있으므로 피고인을 유죄로 선고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인식론적으로 볼 때 피고인이 유죄라는 것과 설득력 있는 정황증거가 많다는 사실에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게 된다.39) 지문이나 디엔에이(DNA) 증거가 있고 직접증거도 있는 경우 피고인을 유죄로 선고하기에 거의 어려움이 없게 된다. 그러나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정황증거 자체로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므로 혈흔, 지문, 범 행에 사용한 총이 있더라도 유죄로 선고하기에 어려움이 있게 된다.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사각지대에 대한 판단을 사실 판단자에게 떠넘기게 되는 것이다.40) 이와 같이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정황증거 그 자체로는 범행 사실을 말해 주지 않으므로 유죄로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있으며, 이러한 어려움을 판사나 배심

39) Paul Roberts, and Adrian Zuckerman, Criminal Evidence, Oxford, 2004, p. 182.

40) Ibid., at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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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그대로 떠안게 된다는 위험이 있게 된다.

둘째로는 정황증거의 다의성(多意性)을 들 수 있다. 목격 증인 등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 정황증거에 기한 추론이나 추론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이 경우 디엔에이(DNA) 증거 등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41) 이와 같이 정황증거에서는 추론이나 추정이라는 단계별 과정을 거치고 여러 해석을 허용 한다는 위험이 있다.

셋째로는 정황증거의 증명력(證明力)을 들 수 있다. 정황증거가 모이면 강력한 힘을 갖게 되나, 목격 증인 등 직접증거의 경우 반대신문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정황증거가 ‘관련성’과 ‘실질성’이란 관문을 통과하면 합리적 의심 기준을 넘어서게 된다. 정황증거가 모이면 피고인이 유죄라는 추론을 가능 하게 되며, 이럴 경우 이러한 추론을 무너뜨리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한다.42) 특히 과학적 증거인 디엔에이 증거, 지문, 혈흔 분석 증거 등이 보태어지면 이러한 추론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갖게 될 위험성이 있다.

넷째, 정황증거는 정량화(定量化) 하기 어렵다는 위험이 있다. 정황증거가 모여서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지금까지 충분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정황증거에 의한 개연성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법관의 확신의 정도에 이른다고 볼 것인지에 대하여는 구체적 논의가 없었던 것이다.43) 이와 같이 정황증거에 의한 고도의 개연성에 이를

41) Hener L. Reske, “A circumstantial case”, ABA Journal, Vol, 82(Jun, 1996) p. 18.

42) Nick King, and Globe Staff, "Power of Circumstantial Evidence", Boston Globe(Mar., 17, 1982), pp. 1ff.

43) 개연성 이론에 따라 법관이 법적인 증거 평가를 함에 있어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개연성의 조건, 이론이 전제로 하는 독립성, 전제 조건의 명확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D.

J. Finney, “Probabilities Based on Circumstantial Evidence”, Journal of the American Statistical Association, Vol. 72, No. 358(Jun., 1977), p. 316. Donald F. Paine, “Direct Versus Circumstantial Evidence”, Tennessee Bar Journal(Oct., 2012),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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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를 정량화 하기는 어렵고 이는 규범적 판단에 해당한다.44) 나아가 정황 증거에 의한 논리와 경험칙에 따른 유죄 입증의 가설이 무한할 수 있다는 점을 아울러 고려한다면, 정황증거와 아무런 제약 없는 자유 심증주의가 결합할 때 자의(恣意) 심증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게 된다.

다섯째, 정황증거는 설명(說明)하는 것이 어렵다. 정황증거라고 하여 증거 가치가 무시될 수 없다. 정황증거는 결론을 지지하는 다양한 관련 사실을 입증 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45) 그런데 정황증거와 관련하여 복잡한 구조에 대하여 배심원에 대한(즉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고, 다른 합리적 추론을 배제하는 입증을 요구한다는) 구체적 설시가 없다. 따라서 정황증거가 결정적이더라도 다른 의심을 야기한다면 엄격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배심원에게 설명해야 하는데, 실제에 있어 정황증거는 단계별 검토를 거치고, 정황증거의 연쇄가 있고, 또 추론이나 추정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이러한 복잡한 구조에 대하여 배심원에게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위험이 있다. 이와 같이 국민참여 재판에 있어 판사는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의미와 차이점, 인식론적 구조, 증거에 대한 판단에 있어 고려할 사항을 배심원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위험이 있다.

Ⅲ. 비교법적 고찰 및 학설과 판례의 검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황증거에는 모호성, 다의성, 증명력, 정량화의 어려움, 설명의 곤란 등의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이해를 토대로 하여 이하에서는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유죄 입증과 관련된 영미와 독일의 학설과 판례를 검토

44) Armin Nack, “Indizienbeweisfϋhrung und Denkgesetze”, NJW(1983), S. 1036-1037.

45) Adrian Keane, and Paul Mckeown, The Modern Law of Evidence, 9th ed., Oxford, 2012, p.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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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이어 국내의 학설과 판례를 분석한다.

1. 비교법적 고찰

가. 미 국

미국에서는 직접증거가 없고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두 가지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첫째는 정황증거만으로 피고인을 유죄로 선고할 수 있느냐이고, 두 번째는 정황증거만으로 유죄 선고가 가능하다고 볼 때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과 관련 하여 검사가 어떠한 입증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정표가 되는 사건인 홀랜드 사건에서 직접증거와 정황증거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intrinsically no different)라고 판시했다.46) 이 사건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정황증거만으로는 검사의 입증이 부족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47)

이러한 정황증거는 본질적으로 증언적 증거(testimonial evidence)와 다르지 않다. 정황증 거가 몇몇 사건에서 완전히 잘못된 결론에 이른 사실을 받아들이더라도 정황증거는 증언적 증거와 다를바 없다. 배심원은 증거가 정확한지 여부와 잘못된 추론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지 여부에 대하여 질문할 수 있다. 배심원은 개연성(probability)을 판단함에 있어 인간과 사 물에 대한 경험을 사용해야 하며, 이를 통해 합리적 의심 없는 평결에 이르면 족하다.

46) Holland v. United States, 348 U. S. 121, 140(1954).

47) Thomas J. Gardner, and Terry M. Anderson, op. cit., at 64. 최근 테네시 주대법원도 직접증 거와 정황증거의 가치는 같다고 판시하였다. 위 사건에서 직접증거로서 피고인의 승인(admission) 과 자백(confession)이 있었고, 정황증거로서 커플이 범행 현장에 접근하는 것이 목격되었다 는 것 등이 있었다: State v. Dorantes, 331 S. W. 3d 370(2011); Donald F. Paine, “Direct Versus Circumstantial Evidence”, Tennessee Bar Journal(Oct., 2012), p.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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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유명한 스카트 사건(Scott Case)에서도 법원은 정황증거는 모든 다른 합리적 가설을 배제할만큼 충분할 때에는 실종된 사람의 사망 사실과 살인, 그리고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48) 그러나 미국 연방대 법원의 이러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주 법원은 이러한 홀랜드 판결을 따 르지 않고 있어49)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오하이오 사건(Ohio Case)에서 피고인은 고의(intent)와 관련된 정황증거에서 주(州)가 제출한 증거가 부족하 다고 다투었다. 이에 대하여 항소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50)

범죄 구성요건 요소는 직접증거나 정황증거로 입증될 수 있다. 정황증거와 직접증거 모두 상 당한 가치가 있다. 정황증거의 가치를 재검토할 때 사실과 무관한 추론이고, 그러한 추론이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님이 합리적 의심에 의한 것으로 간주될 때 무시될 수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 연방법원과 다수의 주법원은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두 번째로,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입증하려고 할 때 어떠한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살펴본다. 쟁점에 대하여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 모든 주에서 정황증거가 피고인이 유죄라는 가설과 일치되고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가설과 불일치되어야 한다는 요건을 요구하여 왔다.51) 이러한 요건은

48) People v. Scott, 176 Cal. App. 2d 458, 1 Cal. Rptr. 600(2d Dist. Ct. App. 1959). 위 사건 에서 피고인의 처가 실종되었고, 시신이나 직접증거가 없었으나 남편인 피고인은 살인죄로 기 소되었다: Columbia Law Review Association, “Murder Conviction upheld despite Lack of Direct Evidence of Corpus Delicti”, Columbia Law Review, Vol. 61, No. 4(Apr., 1961), p.

740.

49) Thomas J. Gardner, and Terry M. Anderson, op. cit., at. 65 예컨대 플로리다 주대법원은 정 황증거만으로 범죄 구성요건 요소를 입증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지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사건에서 검사는 짐작할 수 있는 각 사건의 다양한 추리와 관련하여, 피고인을 무죄라고 볼 수 있는 합리적 가설에 대하여 반박하지 못했다: Jefferson L. Ingram, op. cit., at 102.

50) Ohio v. Thomas, 2002 Ohio 7333, 202 Ohio App(2002); Jefferson L. Ingram, op. cit., at 101.

51)Columbia Law Review Association, “Sufficiency of Circumstantial Evidence in a Crimi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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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법원에서는 무죄 평결을 요구하는 신청 사유로, 항소심 법원에서는 유죄 평결에 있어 증거가 부족하다는 항소 사유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은 배심원에 대한 설시에 있어서는 그리 적용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대한 연방법 원의 실무의 입장은 분명하지 않고, 연방 순회구 법원은 평결이 실질이 있는 증거에 의한 것인지 판단함에 있어 정황증거 요건과 합리적 의심 요건을 번갈아 채택하여 왔다.52) 그러나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과 ‘모든 합리적 가설의 배제’

(exclude every reasonable hypothesis)라는 요건을 정확하게 구체화하는 것은 어렵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다.53) 이와 같은 논란과 관련하여 테리 사건 (Terry Case)이 주목받고 있다. 테리 사건은 유아 강간 사건인데, 피고인 측은 원심 법원이 직접증거 없이 유죄 평결을 하였다는 이유로 상고를 제기하였다.

피고인은 건강한 어린 딸과 함께 있었다. 딸의 어머니가 잠시 출타한 후 귀가 하자 딸 위에 서 있는 피고인의 가슴과 딸의 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피고인은 표피(cuticle)를 자른 것이라고 말했으나 딸의 치부에는 피가 흥건했다. 진단한 결과 딸의 치부에서 다량의 피가 흘러 나왔음이 드러났고, 의사는 성폭력이 의심 된다고 말했다. 딸의 기저귀에서 채취한 디엔에이(DNA) 샘플을 검사한 결과 피고인의 디엔에이와 일치했다. 재판 결과 피고인에게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은 상고를 제기했고, 유죄 평결에 사용된 정황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가설을 배제하기에 부족하다고 다투었다. 알칸사스 주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54)

정황증거로 판결하기 위해서는 실질적 증거(substantial evidence)가 갖추어져야 한다. 정황 증거에 대한 오래된 규칙에 의하면 정황증거는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가설을 배제 한 만큼 실질적이어야 한다. 정황증거가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가설을 배제할 만큼

Case”, Columbia Law Review, Vol. 55, No. 4(Apr., 1955), p. 550.

52) Ibid.

53) Ibid., at 551.

54) Terry v. State, 2006 Ark. LEXIS 326(2006); Jefferson L. Ingram, op. cit., at 101ff.

(19)

실질이 있느냐의 문제는 배심원이 판단할 문제이다. 다시 살피건대, 당 법원은 배심원이 평 결을 함에 있어 이러한 숙고에 이르렀는지 검토해야 한다.

위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가설을 배제해야 하는 입증’이라는 요건 외에 ‘실질성’이라는 요건을 추가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지는 이후의 연방법원의 판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최근 연방 제10 순회구 항소법원은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정황증거가 직 접증거와 같은 가치를 가진 것이고, ‘실질이 있어야 하고’(must be substantial), 단순한 유죄에 대한 의심 이상이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55)

이상에서 보듯 미국 연방대법원, 연방법원, 다수의 주법원은 정황증거만으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하여 일부 주법원은 정황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는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미국 에서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련성’, ‘실질성’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나아가 피고인이 무죄라고 추정할 합리적 의심없는 입증 책임을 검사에게 부과하고 있다.

나. 영 국

위에서 보듯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 판결을 선고하기 위해서 검사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추론을 배제하는 입증을 해야 하고, 판사는 이 점에 대해 배심원에게 설명(instruction) 해야 한다. 또한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추론을 배제하는 입증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의 정도에 필적해야 한다.56) 이러한 요건은 영국법의 오래된 전통이었고, 위에서 보듯 미국에서 영국법을 계수하여 이를 발전시켜

55) United States v. Winder, 2009 U.S. App. LEXIS, 3467(10th Cir. 2009).

56) D. B. M., “Criminal Law: Function of the Appellate Court Where a Verdict of Guilty Is Based upon Circumstantial Evidence”, California Law Review, Vol. 28, No. 6(Sep., 1940), p. 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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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있다. 이러한 요건하에 영국에서는 시신, 범행 목격자, 자백 등의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 정황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는 판결이 선고 되어 왔다. 그러나 영국의 일부 사건에서는 시신 등 직접 증거가 없이는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다고 판시하는 경우도 있었다.57)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남아프리카의 스와질랜드에서 1991년 시신과 직접 증거가 없고 정황증거만 있는 살인 사건58)이 발생했다. 위 사건에서 스와질랜드 고등법원은 검사에게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 책임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다음의 두 가지 기준에 의해 정황증거를 판단했다:59)

첫째, 유죄 추론이 모든 증거와 일치되는지 검토해야 한다.

둘째, 피고인이 무죄라고 볼 모든 합리적 추론을 배제할 만큼 입증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황증거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직접증거와 마찬가지로 관련성(relevancy)이 인정되어야 하고, 증거의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어 허용성 문제를 넘어 서야 한다.60) 영국에서 정황증거란 관련 사실(relevant facts)에 대한 증거라고 정의되고 있고, 정황증거라고 하여 증거 가치가 무시될 수 없으며 정황증거는 결론을 지지하는 다양한 관련 사실을 입증하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 정되고 있다. 정황증거와 관련하여 영국에서는 무죄 선고와 관련된 배심원에 대한 구체적 설시가 없다.61) 그러나 법원은 정황증거가 결정적이더라도 다른

57) Francis Willmarth, “Criminal Law: Murder: Proof of Corpus Delicti by Circumstantial Evidence:”, California Law Review, Vol. 48, No. 5(Dec., 1960), p. 851.

58) King v. John Spokes Lawrence, Madeleke, Criminal Case No. 17/91, High Court of Swaziland.

59) Medard R. Rwelamira, “Munder without Corpus Delicti: A Brief Excursus no Circumstantial Evidence”, Journal of African Law, Vol. 36, No. 2(Autumn, 1992), pp.

132~138.

60) Paul Roberts, and Adrian Zuckerman, op. cit., at 182.

61) Adrian keane & Paul Mckeown, op. cit., at 12.

(21)

의심을 야기한다면 엄격하게 검토되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62)

이와 같이 영국에서도 다소 논란이 있지만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하고 있다. 다만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관련성, 상당성이라는 허용 요건을 갖추어야 하고,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추론을 배제하는 입증을 하여야 하며, 이러한 요건을 엄격하게 심사하는 있는 것이다.

다. 독 일

독일에서도 정황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입증할 사실은, 증거에 의해 결론을 도출하기 전까지 의심의 여지 없이 확정되 어야 한다는 원칙63)이 정황증거(Indizienbeweis)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64) 정황증거(Indizienbeweis)가 모여서 법관이 고도의 개연성의 확신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지금까지 충분하게 논의되지 않았 음이 지적되고 있다.65) 다시 말해 정황증거에 의한 개연성이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법관의 확신의 정도에 이른다고 볼 것인지에 대하여는 구체적 논의가 없었다. 이에 따라 정황증거에 의한 고도의 개연성에 이를 정도를 정량화하기는 어려우므로 정황증거의 연쇄에 대한 논리를 좀 더 공식화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66)

정황사실은 경험칙에 의하여 주요사실을 이끌어 내며, 정황사실의 연쇄에 의하여 주요사실을 드러나게 한다. 정황증거에 의해 정황사실을 입증하게 되고, 정황사실은 입증의 목표가 되는 사실을 이끌어 내게 된다. 여기서 정황사실은 확실해서 법관이 확신을 갖을 수 있어야 하며,67) 이러한 정황증거에 의한

62) McGreevy v DPP [1973], WLR 276, HL.

63) BGH JR 54 418; 75 34.

64) Ulrich Eisenberg, Beweisrecht der StPO: Spezialkommentar, C. H. Beck, 2011, S. 43.

65) Armin Nack, a. a. O. , S. 1036.

66) A. a. O., S. 1037.

(22)

입증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독일의 통설에 의할 경우 논리에 따른 다른 추론이 없을 경우에만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같이 독일에서도 정황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독일의 통설이 이러한 정황증거에 의한 입증시 다른 추론, 즉 피고 인의 무죄를 추론케 하는 입증이 없는 경우에만 피고인에게 불이익하게 고려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영미의 ‘합리적 의심’ 기준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이 검사에 대한 ‘입증 요건’이 아니라 법관이 유 ・ 무죄를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하여야 할 점으로 본다는 점에서 영미의 입장과 차이가 있다.

라. 검 토

이상에서 검토를 통해 미국의 다수의 주법원과 미국 연방대법원, 미국의 연 방순회법원을 포함한 연방법원, 영국의 다수의 법원과 독일에서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기에 어려움과 위험성이 있고, 이에 따라 영미와 독일 공통으로 피고인을 무죄라고 추정하는 모든 가설을 배제하는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을 요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영미에서는 이를 검사의 입증 책임 문제로 보고 있으나, 독일에서는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기 위하여 판사가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보고 있음에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된다.68) 나아가 미국에서는 이러한 요건 외에 ‘실질성’이라는 요건을 추가하여 보다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다. 이하 에서는 이러한 검토와 이해를 토대로 하여 국내의 학설과 판례를 검토하겠다.

67) Klaus Volk, a. a. O., S. 217.

68) 이러한 차이가 결과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형사소송의 동적인 구조를 감안하다면, 사후에 이러한 요건을 심사한다는 것과 사전에 검토한다는 것은 매우 큰 차이점이 있다. 나아가 판사가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과 입증 ‘요건’이라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23)

2. 국내 판례와 학설의 검토

가. 판 례

대법원은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에도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형사 재판에 있어 심증 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에 의할 수도 있는 것이며, 간접증거는 이를 개별적 ・ 고립적으로 평가하여서는 아니되고 모든 관점에서 빠짐없이 상호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평가 하고, 치밀하고 모순 없는 논증을 거쳐야 한다”69)라고 판시하고 있다. 정황증거를 종합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부합되게 평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이러한 판결은 정황증거와 관련하여 구체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없다.

다음으로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과 관련된 대법원 판결을 살펴본다.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하고 있다:70)

형사 재판에 있어서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 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이러한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다만 그와 같은 심증이 반드시 간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도 되는 것이며,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 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가 있다. 여기서 합리적 의심이라 함은 모든 의문, 불신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논리와 경험칙에 기하여 요증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적 의문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을 사실 인정과 관련하여 파악한 이성적 추론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하는 것이므로, 단순히 관념적인 의심이나 추상적인 가능성에 기초한 의심은 합리적 의심에 포함된다고 할 수 없다.

69)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10도5948 판결; 대법원 2009. 12. 24. 선고 2009도9452 판결.

70) 대법원 2013. 6. 27. 선고 2013도4172 판결; 대법원 2013. 2. 14. 선고 2012도11591 판결.

(24)

이러한 판결은 정황증거의 연쇄에 의해 정황증거가 유죄 판결을 선고할 수 있는 증명력을 갖는다는 것과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에 대한 일반 원칙을 언급 하고 있는 것일 뿐, 정황증거의 허용성이나 입증 요건에 대하여 그 어떤 의미 있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치과의사 모녀 살인 사건에서 제1심 법원은 “제3자의 범행이 물리적,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하여 검사의 입증이 없다”고 판시하여71) 정황 증거만 있는 경우 ‘피고인이 무죄라고 볼 모든 합리적 추론의 배제’라는 영미의 기준과 유사하게 판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제3자의 범행 가능성에 관한 증거들이 비록 정황증거이긴 하나 피고인의 유죄에 대한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고, 원심 법원이 제3자의 범행 가능성을 추론케 하는 증거들을 자세하게 심 리하지 않았으므로 논리와 경험칙에 맞는 합리적 판단이 아니라고 보았다.72) 그러나 합리적 의심이 없는 입증 책임이 검사에게 있다는 점,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 제3자의 범행 가능성에 대한 모든 합리적 의심을 배제시키는 입증 책임 또한 검사에게 있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대법원 판결의 태도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나. 학 설

먼저, 정황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학설을 살펴본다.

이와 관련된 국내 문헌을 살펴보면, ‘직접증거가 있어야만 사실 인정을 할 수 있다는 제약이 없으며, 자유 심증주의에 따라 간접증거 또는 정황증거에 의해 서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73) 직접증거와 간접증거의 구별은 직접증거에 높은 증명력을 인정하였던 증거 법정주의에서는 의미가 있었으나, 자유 심증주의에 서는 이러한 구별은 의미를 잃게 되었다,74) ‘간접사실을 간접증명하는 증거를

71) 서울지방법원 1996. 6. 26. 선고 96노540 판결.

72) 대법원 1998. 11. 13. 선고 96도1783 판결.

73) 노명선 ・ 이완규, 형사소송법,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478면.

(25)

정황증거라 한다.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구분은 자유 심증주의에 따라 구별의 실익이 없다’,75) ‘자유 심증주의에서는 직접증거와 간접증거의 구별 실익이 없다.

직접증거와 간접증거는 요증 사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상대적 차이에 불과 하다’,76) ‘직접증거와 간접증거의 증명력에 우열이 있는 것은 아니다’,77) ‘직접 증거는 요증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고, 간접증거는 요증사실을 간접적 으로 증명하는 증거이다. 자유 심증주의에서는 직접증거와 간접증거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78) ‘자유 심증주의에서는 직접증거와 간접증거의 구별의 의미를 상실하였다’,79) ‘직접증거란 요증사실을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고, 간접 증거란 요증사실을 간접적으로 추인케하는 증거이다. 직접증거와 간접증거와 사이에 증명력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구별에 특별한 실익이 없다’80)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이 통설은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증명력에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구별의 실익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설은 앞서 살펴 본 정황증거의 의의, 인식론적 구조와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신빙성에 큰 차이점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은 영미나 독 일에서도 대다수 받아들이고 있는 입장이므로 일응 수긍할 수 있다.81) 그러나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구별에 실익이 없다고 보는 것은 위와 같은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차이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이는 잘못이라고 하겠다.

74) 박상열 ・ 박영규, 형사소송법(개정판), 형설출판사, 2009, 437면.

75) 배종대 ・ 이상돈 ・ 정승환, 신형사소송법(제2판), 홍문사, 2009, 533면.

76) 이영란, 한국 형사소송법(개정판), 나남, 2008, 686~687면.

77) 손동권, 형사소송법(개정 신판), 세창출판사, 2010, 521면.

78) 신동운, 신형사소송법(제3판), 법문사, 2011, 931면.

79) 이은모, 형사소송법, 박영사, 2013, 516면.

80) 한상규, “알리바이의 입증에 관하여-입증 책임과 입증 정도를 중심으로-”, 「강원법학」, 제38권 (2013. 2.), 194면.

81) 영국과 미국의 일부 법원에서는 여전히 정황증거만으로는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국내 학설이 한결같이 직접증거와 정황증거의 증거 가치가 같고 구별 실익이 없다고 보는 것은 다양한 학설의 개진이라는 차원과 여기에 대한 아무런 문제 의식도 내비치지 않는 다는 점에서는 매우 아쉽다고 하겠다.

(26)

다음으로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 입증과 관련된 학설을 살펴본다. 정황증거에 의해 사실 인정을 하기 위해서는 ① 추리 과정이 논리와 경험칙에 반하지 않을 것,

② 정황증거가 다수이고 근접적이며 다각적일 것, ③ 정황증거 자체의 증명이 충분할 것을 요건으로 한다는 견해가 있다.82) 그러나 이러한 요건은 증거의 입증, 추론에 대한 일반 원칙과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증거가 다수이고 다양해야 신빙성이 제고된다는 것 역시 증거 가치 평가에 있어 일반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정황사실에 의한 주요사실의 추리와 관련하여 개개의 정황증거나 그것만으로 범죄 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증거를 서로 관련시켜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종합적 증명력이 있으면 그에 의해서 범죄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83) 그러나 수 개의 정황증거에 의한 ‘추론’이 정황 사실이든, 주요사실이든 각 추론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이라는 원칙이 적용 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요건이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과 관련하여 어떤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

정황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에 있어 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확인이 사실 인정의 모든 단계에서 적용되어야 하고, ② 모든 정황증거를 남김 없이 평가해야 하며, ③ 충분한 논증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견해가 있다.84) 그러나 이러한 기준 역시 합리적 의심 없는 입증이라는 기준에 충실하라는 것 외에 특별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모든 정황증거를 의심 없이 평가하라는 의미를 ‘무죄를 추론하는 모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는 입증’

으로 바꾸어 본다면 반대사실의 입증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기준의 제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82) 이재상, 신형사소송법(제2판), 박영사, 2011, 518면.

83) 조원철, “간접증거에 의한 사실의 인정”, 「재판자료」, 제110집: 사실 인정 방법론의 정립[형사 재판편], 법원도서관(2006), 62~64면.

84) 변종필, “간접증거에 의한 유죄 인정”, 「비교형사법 연구」, 제5권 제2호(2003), 406~408면.

(27)

이러한 ‘반대사실’의 입증과 관련된 견해가 있다. 이를 살펴보면 ‘형사소송에서 간접증거를 통하여 입증할 때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여야 하고, 추론 과정이 논리 칙과 경험칙에 부합되어야 한다. 반대사실의 존재 가능성의 입증은 간접증명에 해당하는데 반대사실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입증하여야 하는 사실이 참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므로 반대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85) 그러나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 정황증거에 의해 입증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반대사실, 즉 피고인이 무죄라는 모든 합리적 추론을 없게 하는 입증 책임 역시 검사에게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종합적 검토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에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영국과 미국, 독일 에서의 다수의 견해이다. 국내의 학설 역시 정황증거만 있는 경우에도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살펴본 정황증거의 필요성, 다시 말해 많은 사건 에서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으며 그럴 경우 직접증거와 같은 정도의 충분한 증거가 있는 경우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탈세 사건, 방화 사건, 부당한 공동행위에 있어서 합의의 입증 등과 관련하여 정황 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할 필요성이 제고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정황증거에 의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볼 때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하에서는 위에서 본 비교법적 고찰과 학설과 판례를 검토한 바를 토대로 하여 정황증거에 의해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요건에 대하여 검토하기로 하겠다.

85) 배문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에 있어서 간접증거에 의한 사실 인정”, 「동아법학」, 제59호 (2013. 5.), 151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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