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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이후의 유럽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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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48년 이후의 유럽 국제정치

 전쟁의 소용돌이; 절대군주가 된 영주나 제왕들의 전쟁

 각종 왕위계승전쟁(스페인, 오스트리아), 발트해 제해권을 놓고 벌인 북방 전쟁(스웨덴 vs. 러시아)

 전쟁의 절정: 나폴레옹 전쟁

Chalres Tilly의 전쟁국가가설

 태양왕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 절대왕정의 시대

 절대왕정 지탱하는 가장 단순 논리: ‘왕권신수설’ 왕의 권위를 신이 부여

 이를 보강하기 위한 여러 논리 개발: 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질서와 안전을 위해서 필수적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 권력분할로 혼란이 일어난 다는 논리 & 군주에 대한 신민의 복종은 자기이익이라는 논리

 토머스 홉스는 <Leviathan>에서 이 논리를 가장 정교하게 발전

 절대왕정은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민경제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강화

(2)

민족국가

 민족국가: 혈연에 기초하여 공동의 사회 ·경제생활을 영위하며 동일언어를 사용하 고 동일문화 및 심리 공동체

 출현의 배경: 절대왕정, 자연경제 붕괴, 상공업 발달, 자본주의 생산,

 왕과 생산과 교환의 자유가 필요했던 신흥상공업자의 결탁: 봉건귀족을 제압하고 생산과 교환의 자유를 바라던 신흥 상공업자와 손을 잡고 봉건귀족의 세력을 누르 고 정치적 통일 성취

 전쟁: 국민의식 고취 & 중앙집권화

 문제점: 세금 & 병역 의무를 국민이 모두 감당하는 반면, 왕과 귀족의 특권을 유지

 시민혁명: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bourgeois 계급 성숙; 봉건적 질서에 대한 변혁 요구 및 보수적 세력에 항거

 입헌정치, 의회제, 내각책임제: 이것이 민족국가의 더욱 발전된 모습

 영국-17세기, 프랑스-18세기 말 독일-19세기

1648년 이후에도 다양한 국가형태 혼재

근대국가: 완성이 단지 웨스트팔리아 조약 하나로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조약체결 국가들이 상호 국가주권 존중하고 내정간섭을 삼간다는 국제법적 문서에 서명한 것은 중요한

신성로마제국 잔존: 1806년에 멸망-나폴레옹1세의 라인동맹에 통합됨으로써 멸망

합스부르크, 스페인, 포르투갈: 봉건체제를 탈피하지 못한 구 제국

독일, 오스트리아 같이 민족국가의 중앙집권체제를 아직 이루지 못한 분열된 국가 존재

웨스트팔리아 조약이 체결된 시점인 17세기 중반 이후 부터 1차 대전 직전까지는 유럽은 절 대적 주권을 확보하려는 유럽의 민족국가간의 치열한 세력다툼의 연속

 상비군을 유지하는 국왕의 힘이 중요 & 상공업의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지원

(3)

Napoleonic War &

Vienna System

나폴레옹 전쟁(1792~1815)

 프랑스 vs. 유럽 열강 연합군의 전쟁

 프랑스대혁명과 공화제 정부수립으로 프랑스와 기타 유럽의 전제군주제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놓이게 됨

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은 필니츠 선언(Declaration of Pillnitz, 1791)에서 유럽의 군주들에게 프랑스 부르봉 왕가가 권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봉기하 자고 호소문을 보냄: 혁명을 막지 못하면 전 유럽의 군주들이 위험해진다는 경고

 프랑스 혁명정부는 1792년 4월 전쟁을 선포했으나 패배

 나폴레옹은 전쟁 중에 1799.11.9년 쿠데타로 프랑스 대통령 자리에 오름

 전쟁의 이중성: 프랑스혁명 전파 & 나폴레옹의 절대권력 및 영토 확장

나폴레옹의 이중적 함의

 자신은 독재지만, 정복전쟁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자유와 민권사상을 유럽전역으 로 퍼트리는 역할(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함으로써 쿠데타로 정권 장악)

 나폴레옹 혁명(?) vs. 4.19-5.16 논쟁: 나폴레옹은 실패한 프랑스대혁명의 혼란을 틈타 권력을 잡은 독재정권

 나폴레옹 법전: 법 앞에서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 사유재산의 존중 등

 의도한 것은 아니나 전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프랑스혁명사상을 전 유럽으로 확대 시킨 역할

 오늘날 미국의 역할(Theodore Lowi)

(4)

Vienna System &

Holy Alliance

 나폴레옹 전쟁 처리를 위한 1814년의 비엔나회의(Congress of Vienna)에서 오스트리아 Meternich 주도로 오-영-러-프로이센의 4국 동맹을 결성하고 유 럽의 혁명물결을 차단하고 구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공동의지 과시

 프랑스는 나폴레옹으로 인해 쫓겨났던 루이 18세가 돌아와 부르봉 왕가를

세우면서 절대군주제로 회귀했으며, 1818년 신성동맹(비엔나체제)에 참여하

여 5개국 집단지도체제의 형태를 띠고 유럽질서를 관장하게 됨.

(5)

Vienna System

 신성동맹 & 비엔나체제의 특성: 메테르니히의 주도 로 프랑스혁명의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시도

 위로부터의 약간의 개혁을 시도하면서 정치기반 유지

 약소국의 희생을 통한 영토 분할을 보장하는 일종의 현상유지를 통한 강대국 간의 묵시적인 세력균형의 질서

비엔나체제의 문제점과 약화

1) 참여국가들의 초기의도와 달리 협조체제 내부에 보수적인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그리고 어느 정도 개혁적이면서 메테르니히의 주도권과 지나친 정치적 간섭에 대 해 반기를 든 영국과 프랑스의 분열

2) 인민혁명의 물결은 되돌릴 수 없는 대세: 프랑스 1830년의 7월 혁명과 1848년 2 월 혁명, 벨기에의 독립, 1848년 비엔나봉기로 메테르니히 실각

3) 독일통일 추진: 소독일통일론 vs. 대독일통일론; 1300년경만 해도 300개 이상의 제후국들로 분열되어 있다가, 비엔나체제 당시 39개로 감소(양대 세력은 프로이 센과 오스트리아).

 메테르니히는 민족주의의 발현이 곧 유럽질서를 불안정으로 이끌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비엔나체제를 통해 민족주의의 확산을 막으려 했음. 즉, 그가 대독 일 통일론을 주장한 것은 독일의 통일에 염두를 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다 성 취하기 어려운 제안을 함으로써 통일을 지연시키려 한 의도임

(6)

Frankfurt System or Bismarck System??

 Concert of Europe의 근간유지: 오스트리아 중심의 비엔나체제가 종식되었으나, 그렇다고 유럽에서의 BOP체제 큰 틀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님

 BOP는 1차 대전 전까지 유럽을 관통: 오히려 비엔나체제의 붕괴는 더욱 강화된 동 맹체제인 비스마르크 체제 탄생으로 이어짐

 비스마르크: 국내적으로는 언론, 종교(가톨릭), 사회주의 탄압을 한 비민주적, 대외 적으로는 독일통일 달성(철혈재상-

Blut und Eisen Politik

); 수상취임연설에서 지금 독일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이나 다수결이 아니라 피와 철이라고 선언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메테르니히 같이 폭압적이지는 않았음)

 현상타파 + 현상유지: 독일 통일을 위한 비스마르크의 노력은 초기의 유럽 기존 현상의 타파를 통한 전략과 1871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의 승리 이후의 현상유지 정책; 둘 모두 세력균형의 틀 안에서 진행

Frankfurt System

 1848년 프랑크푸르트 회의를 기점으로 삼음

 베를린 봉기를 수습하 는 회의

 오스트리아가 아닌 프 러시아 주도의 소독일 통일론 부상

Bismarck System

 1862년 비스마르크의 수상 재임을 기점으로 삼음

 독일통일을 위한 동맹 외교

 순수 세력균형과 비밀 중첩 동맹

(7)

Bismarck System 제 1 기

(수상재임 1862년부터 보·불전쟁의 승리 1871년까지)

 현상타파: 통일의 장애물이었던 오스 트리아와 프랑스의 제거

 1866년 오스트리아 침공: 오스트리아 의 독주를 막는다는 명분과 적당한 영 토적 보상을 통해 프랑스와 러시아를 안심시킨 후 전쟁을 통해 오스트리아 약화(7주간의 전쟁을 승리)

 당시 독일연방제국의 거의 모든 구성 원이 오스트리아에 가담했으나, 결국 패배했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연방에서 탈퇴)

 1870~71년 보·불전쟁: 프랑스를 제압 하고 독일통일제국을 탄생.

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써 독일통일의 장애물이자 경쟁자를 제압했고, 프랑스와 전쟁에서 승리함 으로써 한편으로는 보상금과 알사스 로렌을 획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 일인의 민족의식(애국심)을 고취함.

Austria-Prussian War, 1866

(8)

Bismarck System II

(1871, 보·불 전쟁 승리이후~사임)

 현상유지: 통일을 달성한 비스마르크 는 더 이상의 현상타파를 하지 않고 기 존의 유럽의 BOP를 적절하게 이용한 현상유지 전략을 구사

 구체적으로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피해 입은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복수를 막고, 남하정책을 통해 세력 확장을 꾀 하고 있는 러시아세력을 견제하기 위 해 비밀조약을 통해 거의 모든 국가와 중첩적인 동맹 맺음

 비스마르크 동맹체제는 비엔나체제를 포함하여 종래의 동맹의 주요 끈이 되 었던 종교나 이념과는 상관없는 열강 의 다각적인 힘의 대립관계를 이용하 여 그야말로 순전히 세력균형의 틀 안 에서 작동하는 체제

 Wilhelm II와 충돌 후 비스마르크 수상

직을 사임(1890.3)

Joseph Nye: juggling하는 곡예사

(9)

Bismarck System II

(비스마르크 사임 이후~1914)

 다시 현상타파: 비스마르크 사임 이후 빌헬름의 공격적/팽창적 외교노선으로 유럽협조체제의 안정성에 근본적 균열 시작됨

 동맹을 중첩시킴으로써 위협을 예방하 던 비스마르크의 전략을 수정하고 동 맹의 선호를 분명하게 결정하고 배타 적 동맹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음

 그 결과 독일은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와 함께 소위 삼국동맹으로 기존의 동 맹을 강화하고(=삼국동맹, Central Powers), 동시에 비스마르크의 퇴진을 기회로 그 동안 독일과의 동맹을 통해 서만 연결되어 온 프랑스, 러시아, 영 국이 서로 협력(=삼국협상, Triple

Entente) 관계 구축

Wilhelm II

(10)

세력균형의 붕괴와 제1차 세계대전

 삼국동맹과 삼국협상의 대결구조에 의한 BOP는 비스마르크 체제에서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던 변 화의 욕구를 담은 상당히 불안한 구조

 20C 초에 절정을 이루는 제국주의의 식민지쟁탈 전이 겹치면서 더욱 불안정

 빌헬름 2세의 세계정복의 야심이 본격화되던 중 마침내 발칸에서 러시아의 남하정책인 범슬라브 주의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범게르만주의 충돌 로 마침내 세계대전 발발

 오스트리아에 의한 발칸의 보스니아와 헤르체코 비나를 강제병합: 세르비아의 반발과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에 의한 부추김

 결국 1914년 6월 오스트리아 황태자 페르디난드 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청년장교단의 비밀 결사조직인 Black Hand의 일원인 가브릴로 프린 치프(Gavrilo Princip)에게 암살

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 공격 하자, 슬라브주의를 내세우면서 러시아가 오스트 리아 공격; 그러자 독일은 다시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에 선전포고 하면서 전쟁 시작

참조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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