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위진 남북조(魏晋南北朝) 문학
1. 문학 사조(文學思潮)
한대(漢代)는 유학(儒學)을 숭상하던 시대요, 또 무제(武帝) 이후로는 그것이 성하던 시대였다. 실로 한대에 있어서는 모 든 학술은 유학과 직결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위진 남북조로 내려오면서 이와 같은 풍조는 일신되어 문학 사상에서도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당시 사람들은 문학을 소위 도덕(道德)으로부터 분리해놓았다.
문인들의 사상은 낭만적이고 염세주의적인 경향을 나타내어
착잡한 현실을 도피하여 물외(物外)의 세계를 동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노장(老莊) 사상과 마침 그 당시 번역되어 성 행하던 불교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아 실제의 사회와 인생을 떠나서 소극적이고 퇴폐적인 염세주의 사상이 일시에 성하게 되었다.
왕 필(王弼)∙하 안(何晏)은 현리(玄理)를 담론하고, 죽림칠현 (竹林七賢)은 산천을 방랑하며 시와 술만을 즐기고, 도연명(陶 淵明)은 현실 사회를 외면하고 전원에 은거하였으며 청담지풍 (淸談之風) 또한 크게 일어났다. 이상과 같은 사조가 곧 ‘위진 남북조 시대 문학’의 특색을 이루게 되었다.
문학의 형식면에 있어서도 유미주의(唯美主義)를 지향하여 조탁 화려(彫琢華麗)한 것을 위주로 하는 동시에 문사(文辭)나 형식면에서도 아름다운 문장이라야 우선 가치있는 문학 작품 인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 조비(曹丕)의
<<전론(典論)>>을 위시하여 종영(鐘嶸)의 <<시품(詩品)>>이나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의 문학비평서도 모두 아름다운 병려체(騈儷體)의 문장으로 쓰여졌음을 볼 수 있다.
또 당시 문인들은 시(詩)이든 부(賦)이든 모두 이 변우(騈偶)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문학 자체의 순수하고 자유로운 발전과 동시에 인간의 충분한 감정 표현에 많은 저해를 가져 왔으므로 문학 본연의 가치는 자연히 하락되었다. 이에 대하 여 반론이 제기됨으로 후세의 고문운동(古文運動)으로 발전하 였고 따라서 변문도 점점 쇠퇴해져 갔다.
※불교와 도교의 성행, 유미주의, 자연문학, 산수문학, 문학의 도덕에서 해방, 현실도피, 죽림칠현 등
2. 시부(詩賦)
조(曹)씨 3부자와 건안 칠자(建安七子)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 났던 이른바 건안 문학을 혹자는 이 위진(魏晋) 문학에 넣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한대 문학에서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왕 필(王弼)∙하 안(何晏) 등은 그 동안 침체되어 있던 노장 학을 고창하여 종래의 정치 제도의 형식주의와 윤리 도덕의 속박 관념에 반대하고, 노장의 자연주의적인 인간의 자유사상 을 흠모하게 되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든 속박으로 부터의 해방을 갈구하였다.
정시(正始 : 240~248)는 곧 위(魏) 폐제(廢帝) 조 방(曹芳)의 연호이다. 정시 학풍은 위진 시대 학술 사상의 원류를 이루었 음은 물론, 그 영향은 후대에 와서 지대하게 나타났었다. 곧 문학상으로는 낭만파 문학의 선도가 되었고 또 풍조상으로는 청담(淸談)의 오국지풍(誤國之風)을 야기시켰다. 이 정시 학풍 을 계승하여 일어난 것이 곧 이른바 죽림칠현이며 이 죽림칠 현으로 말미암아 정시 학풍은 또한 발양 광대(發揚光大)되었 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다.
칠현(七賢)은 곧 혜강(嵇康)∙완적(阮籍)∙산도(山濤)∙상수(尙 秀)∙유영(劉伶)∙왕융(王戎)∙완함(阮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완적(阮籍 :210~263)은 자(字)가 사종(嗣宗), 진류(陳留) 울지 (蔚氏) 사람으로 건안 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완우(阮瑀) 의 아들이다. 특히 노장(老莊)을 좋아했다. 또 술을 즐기고 소 (嘯)와 금(琴)에도 뛰어났다. 그는 또 효성도 지극하여 모친의 상보(喪報)를 듣고 술 두말을 마시고 피를 토하며 통곡하였다 고 한다. 부(賦)로는 <동평부(東平賦)>∙유자(儒者)를 비방한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이 있다.
유영(劉伶 : 약 221~300 전후)은 자가 백륜(佰倫), 패국(沛 國) 사람으로 생졸년은 불상(不詳)이다. 때로는 옷을 벗고 나 형(裸形)으로 방안에 있었고 주량(酒量)은 완적(阮籍)보다도 더 강했다. 그는 항상 술을 잔뜩 마신 뒤 수레에 타고서는 사람 을 시켜 삽을 메고 자기 뒤를 따라오게 하면서 그에게 말하기 를, “내가 죽거든 곧 나를 묻어달라.”고 했다. 저술로서는 <주 덕송(酒德頌)>1편이 남아 있다.
혜강(嵇康 : 223~262)은 자가 숙야(叔夜), 초국(譙國) 사람으 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었으나 기재(奇材)가 있었고 박람하여 어디고 통하지 않은 곳이 없었으나, 노장학을 좋아하였다.
이 밖의 산도(山濤)∙상수(尙秀)∙왕융(王戎)∙완함(阮咸)의 4
인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작품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 게 알려지지 않았다.
도잠(陶潛 ; 372~427)은 자가 연명(淵明) 혹은 원량(元亮), 그 의 이름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심양(尋陽) 자상(紫桑) 사람으로 진 간문제(簡文帝) 함안(咸安) 2년에 나서 송 문제 (文帝) 원가(元嘉) 4년 향년 56세로 일생을 마쳤다. 일찍이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을 지어서 자신에 비유하였다. 오직 전원에서 궁경자급(躬耕自給)하면서 시주(詩酒)와 자연을 즐기 면서 일생을 보냈다. 세상에서는 그를 ‘정절선생(靖節先生)’이 라고 부른다.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귀거래사(歸去來辭)>∙<도화원기 (桃花源記)>, 그리고 수많은 전원시야말로 불후의 걸작이라 아 니할 수 없다.
도 잠은 당(唐)나라 이두(李杜) 이전에는 찾아보기 드문 위대 한 시인이었다. 혹자는 그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서양의 토마스 모아(Thomas More)의 <유토피아(Utopia)>와 비교해 서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 스(Diogenes)와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3. 소설(小說)
소설은 그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대개 고대 신화(神話)와 전 설(傳說)로부터 발달한 것으로, 중국도 역시 그러하다.
중국에서 그 예를 들어보면 <<열자(列子)>> <탕문(蕩問)>편 의 ‘여왜(와)보천지설(女媧補天之說)’이나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의 ‘예사십일지설(羿謝十日之說)’ 등이 있다.
고대 학자들은 이런 것들을 물론 믿지도 않았으려니와, 이런 것들은 정치나 교육 같은 원대한 사업을 함에 있어서는 큰 장 애물이 된다고 믿었다.
그 후 한대(漢代)에 와서 반고(班固)는, 소설가의 부류는 대 개 패관에서 나왔으며, 항간에서 주고받는 한담이나 아무렇게 나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자료에 의하여 조성된 것이다. 공자 가 말하기를 “소설이란 비록 보잘 것이 없는 것이긴 하지만 거기엔 반드시 볼 만한 점이 있다. 그러나 원대한 일에 인용 한다면 아마도 혼란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군자들은 소설을 쓰지 않았고, 그렇지만 또한 그것을 없애버리지도 않았다.
중국의 신화와 전설은 다만 고서적에 산견(散見)될 뿐인데
<<산해경(山海經)>>이야말로 중구구 고대 신화의 보고(寶庫)라 고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신화를 수록하고 있다. 이는 후인의 위작(僞作)이라고는 하지만, <<목천자전(穆天子傳)>>과 더불어 중국 소설의 원천(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곤륜산(崑崙山)과 서왕모(西王母)의 이야기가 있다.
<<목천자전(穆天子傳)>>은 진(晉)의 함녕(咸寧) 5년 급현(汲縣) 사람이다. 부준(不準)이 위(魏) 양왕(襄王)의 왕총(王冢)을 도굴 하여 죽서(竹書)의 <<목천자전(穆天子傳)>>을 다른 잡서 19편과 함께 얻었다. 현존하는 <<목천자전>>은 모두 6권으로 되어 있 는데 전5권은 주(周) 목왕(穆王)이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서방 (西方)의 서왕모를 정벌한 일을 서술하였고, 후1권에는 성희(盛 姬)가 도중에서 죽어 되돌아가 장사를 치룬 것을 기술하고 있 다. 특히 여기서는 서왕모의 괴이한 형상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아 신(神)에서 인화(人化), 다시 말하면 고대 소설이 자연적인 변천 과정을 밟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산해경(山海經)>>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중국 고대의 신화나 전설들이 곧 중국 소설의 실질적인 전신이요 기원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겠다.
위진 남북조 시대의 소설을 그 내용에 따라 분류하면 대략 다 음과 같다.
⓵신괴류(神怪類) : <<열이전(列異傳)>>∙<<박물지(博物志)>>
∙<<유명록(幽明錄)>>∙<<속제해기(續齊諧記)>> 등
⓶종교류(宗敎類) : <<선험기(宣驗記)>>∙<<명상기(冥祥記)>>
∙<<원혼지(冤魂志)>>∙<<신이기(神異記)>>∙<<습유기(拾遺 記)>> 등
⓷세속류(世俗類) : <<어림(語林)>>∙<<세설(世說)>>∙<<속설 (俗說)>>∙<<소설(小說)>>∙<<소림(笑林)>>∙<<계안록(啓顔 錄)>> 등
첫째, 신괴류는 이른바 한 대의 신선담(神仙譚)을 계승하여 나타난 귀신 지괴의 서(書)로서 많은 작품이 이미 망실되고 전 하지 않지만 그 유문(遺文)들이 <<태평광기(太平廣記)>>∙
<<태평어람(太平御覽)>>∙<<법원 주림(法苑珠林)>> 등에 간간 이 남아 있다.
장화(張華;232~300)는 자가 무선(茂先), 범양(范陽) 방성(方城) 사람이다. 그의 작품으로 <<박물지(博物志)>>가 있다.
간보(干寶;약317전후)는 자가 영승(영승), 신채(신채) 사람이다.
<<수신기(獀神記)>> 20권은 그의 작품이다. 간 보는 음양 술 수를 좋아하고 일찍이 그의 부친의 비(婢)가 주었다가 재생하 고 또 형이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여 천신을 보았다고 말한 것에 감화되어 이에 <<수신기>> 20권을 지었다.
둘째, 종교류는 육조 시대에는 이미 불교의 세력이 일반 사회 에 널리퍼져 있었으므로 불교 사상이 무의식 중에 귀신 지괴 의 서(書) 중에 혼입되었다. 이리하여 인과윤회지설(因果輪廻 之說)은 지괴서에 실려서 널리 퍼졌다. 한편으로는 이와 맞서 도교도 또한 신선 이기(神仙異記)를 작술하여 그들의 교를 신 성한 것으로 선전하였다.
셋째, 세속류에 속하는 소설은 신괴도 아니고 불교나 도교의 색채도 안 보이는 말하자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인간의 언행 이나 담소 등을 모은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 진 남북조 시대에 있어서는 이것이 가장 진보적인 소설류로서
비로소 지괴의 테두리를 버서나기 시작한 것이다.
유의경(劉義慶)은 이미 앞에서 설명했거니와 그의 <<세설(世 說)>> 8권은 <수지(隨志)>에 양(梁) 유효표(劉孝標)가 여기에 주를 가하여 10권으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현존하는 3권은
‘신어(新語)’란 두 자를 가한 것으로 송(宋) 안수(晏殊)가 정리 한 것이다.
금본<<세설신어(世說新語)>>는 모두 38편으로 덕행(德行)으로 부터 시작하여 구극(仇隙)에 이르기까지 내용에 따라 분류시켰 고 시대로 보면 후한에서 도진에 이르는 사이의 고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