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지형조건이 유사한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 알프스산맥 일대 의 산촌지방에 가보면 도처에 생기가 넘치고 농촌주민들은 너나없이 넉넉한 표 정을 잃지 않고 있다. UR이건 DDA건, 어떤 대외개방의 파고가 몰려온다고 해도“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농산촌의 자연∙문화유산을 밑천삼아 우리의 길 을 의연히 걷는다”라는 자신감과 행동감이 충만하다.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농업, 농촌, 농민만이 가지고 있는 녹색 어메니티(green amenities: 농촌다움)의 신성불가침적 가치를 자산화하고 소득 화하는 데 있다. 청정 농림축산업이 아니고는 제공할 수 없는 안전한 친환경 유 기농 먹거리와 녹색자원, 생명의 원천인 농산촌이 아니고는 갖고 있지 못하는 지역 특유의 전통, 문화, 환경, 생태, 경관, 쾌적함, 그리고 농업인이 아니고는 누릴 수 없는 자유와 평화, 자주독립, 창의성 등이 이른바 유형∙무형의‘농촌 다움(녹색 어메니티)’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원초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풍부하게 해주는 소중한 어메니티, 자연∙문화유산을 정부와 국민 할 것 없이 지역사회 공동체의 자산으로 연계시켜 지역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동력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선진국 정부와 국민들은 산간벽지와 오지의 농산어촌 어메니티와 지 역에 기반을 둔 지연산업(地緣産業)을 생명처럼 돌보고 지원한다. 전통산업과 농업부문이 GNP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크기에 관계없이, 그리고 농산어촌의 인구 비중에 관계없이 녹색 어메니티 자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소중히 보전하고 가꾸는 것이 하나의 불문율(�文律)이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급격한 진전으로 어메니티의 가치는 더 커지고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산림과 농업의 비교 우위성을 따져 국토의 난개발을 합리화하려는 얄팍한 장사꾼 셈법이 통하지 않 는 곳이 선진국이다. 생명과 환경, 문화와 전통을 중시하는 친환경적인 지속가 능 철학이 21세기의 주류 사조로 국민의식 깊숙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구체 국 토 시 론
녹색 어메니티의 창출과 지속가능한 국토관리
김성훈｜상지대학교 총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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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선진국들은 녹색 어메니티가 국민의 삶의 질 (quality of life) 향상에 차지하는 비중을 곧이곧대로 평가하여 이를 농가소득의 40~60%까지 직접지원 (direct payment) 형태로 보조하고 있다. 조건이 불리 한 산골 오지의 농가일수록 소득보상 지원을 더 많이 받고 있다.
그러므로 농산어촌 어디를 가보아도 농가주택에 는 다목적 용도로 가축사육실, 치즈, 버터, 포도주 등 가내가공∙저장시설 그리고 아기자기한 민박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를 매개체로 웰빙(well-being)을 찾 는 도시민의 여가활용과 녹색관광 체험을 유도하여 산간벽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다. 휴가철이나 주말에는 도시민들이 농산어촌에 와서 며칠씩 머물 며 어메니티(농촌다움)를 즐기고 쾌히 그 대가를 지 불한다. 이른바‘팜스테이(farm stay)’는 도시민의 웰빙 수요와 농산어촌의 어메니티 공급을 교묘히 연 계시켜 농가소득 향상에 크게 일조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러한 팜스테이 수입이 유럽농가 평균소득의 30%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정부는 농촌주민들에게 15개 이하의 침대를 갖춘 민박시설의 설치를 지원하 고 세금 또한 면제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민 자녀가 장차 농공업에 종사할 것을 희망할 경우 초등학교 교육과정부터 정해진 프 로그램에 따라 마에스터(명인)가 될 때까지 그 교육 과정과 비용을 전액 국가부담으로 지원한다. 마에스 터는 농산업 등 산업종사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명예 이며‘부’를 보장한다. 그래서 농민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친환경 유기농 축산업을 영위하며 지방자치 단체의 장려하에 조상 대대로의 비법에 따라 자가 생 산물(치즈, 잼, 술, 음료 등)을 직접 가공, 저장, 판매 한다. 가공 관련 각종 인허가제도를 농민 위주로 간 편하게 고쳐 전통적인 가내식품 가공업을 적극 장려 한다. 우리처럼 정부가 독과점적 대기업의 이익보호
를 위해 법제도를 까다롭게 만들어 농민들이 식품 가 공판매 사업에 손쉽게 참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지 않는다. 이렇듯 선진국 정부들은 농업인들의 삶을 요 람에서 무덤까지 보살펴주며 지원한다. 그 후광으로 유럽의 농업, 농촌의 경관과 자연환경이 그림처럼 아 름답게 보전되고 도시민을 즐겁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도시생활과 다름없이 농촌지역의 사회, 교육, 문화, 복지 분야를 강물처럼 도도히 지원하여 도시민 을 위한 농촌 어메니티를 문자 그대로 풍요롭고 고즈 넉하게 유지, 보전한다. 소득구조는 물론 교육문화, 복지생활 면에서 농산어촌이 도시와 크게 차이가 나 지 않는, 그러한 녹색 어메니티를 보전하고 있는 나 라가 진짜‘선진국’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농업투융자 가 있었고 각종 산업정책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수 없이 많이 되풀이되어 왔지만, 대부분 품목별 대책이 거나 기능적 대책에 불과했다. 그리고 농촌대책 따 로, 도시대책 따로, 지역 및 국토관리정책이 따로였 다. 그 원인은 해당 부처 간 칸막이 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촌 어메니티 문제를 주로 GNP나 인구 또 는 산업차원에서만 접근했던 데서 비롯된다. 이제 이 세 분야를 하나의 살아 있는‘그린어메니티’로 통합 하여 총체적, 종합적으로 가꾸는 정책이 21세기 지 속가능한 새 국토계획으로 바뀌어야 한다. 농업, 농 촌, 농민 문제는 도시∙소비자 정책 및 국토관리계획 등과 같은 하나의 문제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산업, 환경, 문화, 복지의 문제 역시 따로따로의 문제가 아 니다. 농촌계획과 도시∙지역계획이 하나의 유기적 생물체로 계획되고 관리되어야 자라나는 우리 후손 들에게 아름다운 농산어촌과 녹색 어메니티를 고스 란히 물려줄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