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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의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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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제와 오늘의 성모 마리아*

1)

손 희 송

[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신부]

1. 들어가는 말

2. 신약성서에 나타난 마리아

3. 교회 역사 안에서 마리아 이해의 변천 3.1. 교부시대

3.2. 중세

3.3. 종교개혁과 마리아 3.4. 근대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론 4.1. 문헌의 형성 배경

4.2. 문헌 내용 4.3. 요약과 평가 5. 맺는 말: 마리아론의 전망

1. 들어가는 말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를 각별히 공 경해 왔다. 즉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의 으뜸으로써 특별한 공경 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그 공경이 삼위일체이신 그분께 바치는 ‘흠숭

* 이 글은 1999년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신학술진흥연구비’의 지원을 받아 연구 작성된 논문임.

(2)

지례’(欽崇之禮)보다는 낮으나 일반 성인들에게 바치는 ‘공경지례’(恭 敬之禮)보다 한층 높은 ‘상경지례’(上敬之禮)로써 마리아를 공경해 왔 던 것이다.

그런데 16세기 종교 개혁 이래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마리아 공경은 그리스도교를 분열시키는 대표적인 쟁점 사안이 되었다. “교 황권 다음으로 마리아론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에 신학적으로 가장 크게 분열된 영역이다.”

1)

한국의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도, 가톨릭 교회는 마리아를 숭배하는 이상한 기독교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우상을 숭배하는 이단이라고 말 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 공경을 어느 정도 이해 하는 개신교인들이라도 천주교의 성인 공경과 전구(轉求)를 문제시한 다. 개신교인들은 구원을 위한 은총의 절대성을 믿고,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하기 때문이다.

2)

종교 개혁 이래로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마리아에 대해 침묵이나 거부로 일관했다. 반면 가톨릭 측은 가능한 한 풍성하게 마리아에 대 해 언급하는 것으로 이에 대응하였다.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수 세기에 걸쳐서 개신교는 가톨릭과의 쟁론 속에서 반 마리아적 성향을 지녀왔고, 이에 대해서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를 반대하는 입장에서 (때로는 과도할 만큼) 마리아 신심을 장려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응답 했다. 이런 경향 속에서 마리아론은 신학분야에서 양적으로 가장 풍부 한 부분이 되었다.

3)

하지만 다행스럽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과열된 마리아 공경에 대해서 제동을 거는 동시에 바람직한 마리아론의 연구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과 교회의 전례를 연 구함으로써 복되신 동정녀의 역할과 특권을 올바로 밝혀 줄 것이니,

1) R.M.Brown, The Ecumenical Revolution, London(Burns Oates), 1968, p.298: D.플라나간, 교회일치와 마리아론 , 신학전망 35(1976/겨울), 59쪽에서 재인용.

2) 참조: 심광섭, 개신교적 관점에서 본 마리아론 , 사목 244(1999/5), 37~38쪽.

3) 저명한 마리아론의 전문가인 로랑땡(R.Laurentin)은 이미 1959년에 마리아에 관한 저 서가 10만여 권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하였다.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마리아― 오 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 심상태 역, 성바오로출판사, 1980, 21쪽.

(3)

그것은 언제나 모든 진리와 성덕과 신심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향 한 것이다.”

4)

한국 가톨릭의 현 상황을 볼 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대로 성서와 교부 신학에 바탕을 두면서 모든 진리와 신심의 근원인 그리 스도께로 향한 마리아론의 정립이 긴급히 요청된다. 이런 마리아론을 통해서 개신교 측의 오해와 비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동시에 가톨 릭 교회 내의 잘못된 마리아 신심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2. 신약성서에 나타난 마리아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여러 번 여러 모양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당신 아들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하여 더 이상 능가할 수 없을 정도로 결정적으로 당신 자신 을 계시하셨다(히브 1,1~3). 신약성서는 바로 이런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신약성서 안에 나타나는 모든 이야기들과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증 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성서의 진술도 일차적으로 나자렛 예수가 메시아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의 맥락 안에 위치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초기 서술에 속하는 바오로 서간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 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집중하고 있고, 마리아에 대해서는 단지 갈라 4,4에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아들이 “한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 간략 하게 언급할 뿐이다. ‘여인으로부터의 탄생’은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드러나듯이 일차적으로는 인간적 조건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5)

그러므로 이 표현은 구세주의 참된 인성을 강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하겠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의 역사에 등

4)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67항.

5) 참조: 욥 14,1; 15,14; 25,4; 마태 11,11; 루가 7,28.

(4)

장해서 율법으로써 상징되는 인류의 모든 고난을 넘겨받았다는 것, 그 는 온전한 인간이었기에 인간을 구원할 수 있었고 또한 율법의 지배 를 받는 사람을 구해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6)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는 친척들과 함께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 마리 아에게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야말로 내게는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르 3,35)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가 어머니 와 가족들에게 거리를 두려고 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여기 서 반(反) 마리아적 경향을 이끌어 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 면 마르코의 근본 신학 사상을 배경으로 이 대목을 살펴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르코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일이 가장 중요했는데, 그에 의하면 예수의 메시아 비밀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서 비로소 계시되고, 그 이전에는 가장 가까운 이들도 예수의 정체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전제 속에서 마르코는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에게까지도 예수의 정체가 가려져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자 한 것 이다.

7)

마태오 복음사가는 마리아를 메시아 예언의 성취와 연결 지어서 언 급한다. 마태오 복음의 일차적 관심사는 유다인들과 이방인, 즉 이 세 상 모든 이(마태 28,19)에게 나자렛 사람 예수가 구약성서에서 예언된 메시아라는 것을 선포하는 데에 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으로서(2사 무 7,11~16) 베들레헴에서 출생한(미가 5,1~5) “임마누엘”(이사 7,14) 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오래 전부터 “임마누엘”을 낳을 여인으로서 하 느님의 계획안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마리아는 메시아의 어머니라는 역할을 다한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뒷전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분으로 묘사된다.

8)

마태 1,18~25과 루가 1,34~35이 전하는 성령에 의한 동정녀 잉태 의 기사는 일차적으로 마리아론적 진술이 아니라 그리스도론적 진술 이다.

9)

즉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는 전적

6) Cf. K.H.Schelkle, Theologie des Neuen Testaments III, Du¨sseldorf, 1973, p.153.

7)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39쪽.

8)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43쪽;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 가톨릭 대학교출판부, 1998, 66쪽.

(5)

으로 하느님께 그 근원을 둔 유일무이한 존재로서,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서 역사에서 유래할 수 없는 새로운 시작을 마련하셨다는 것이 다.

10)

루가 복음은 마르코나 마태오 복음에 비해서 마리아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전해준다. 마태오가 단지 마리아의 어머니 역할에만 관심을 두 었던 것과는 달리 루가는 마리아를 한 인격체로서 묘사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신앙인(루가 1,38)이고 바로 이런 믿음 때문에 엘리사벳으로부터 복된 여인이라고 찬양 받는다(루 가 1,45). 그리고 마리아는 이런 순종과 신앙을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 는 순간에도 계속 견지하고(루가 2,19.51), 그 신앙 때문에 “영혼이 칼 에 찔리는 듯한” 고통(2,35)을 당하게 된다.

다른 한 편 루가 복음사가는 마리아를 이스라엘과 연결 지어서 생 각한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기뻐하소서, 은총을 입은 이여,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루가 1,28)라고 인사하는데, 이 인사는 스바니 야 3,14~17을 연상시킨다. 스바니야서의 이 대목에서 이스라엘은 “시 온의 딸”이라고 불리면서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는 데, 그 이유는 야훼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루가는 실제로 마리아를 ‘시온의 딸’로 묘사하려 하였다. 복음 사가의 눈에 동정녀는 자신의 인격 안에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백성이 종합한 다.”

11)

그리고 마리아는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를 예시(豫示)한다. 마리아는 천사의 전갈에 결국

“저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 니다”(1,38)고 응답한다. 이러한 순명의 자세로 마리아는 참되고 거룩 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들어서게 된다. 즉 모세나 여호수아와 다윗 그리고 성서 안에 나타나는 예언자들에게 부여된 동일한 칭호, “주님 의 종”이 마리아에게 적용됨으로써 그들과 같은 반열에 들게 된다. 그

9) 참조: 이영헌, 공관복음서를 통해 본 마리아 , 사목 105(1989/5), 12~13쪽.

10)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155~156쪽.

11) 스테파노 데 피오레스·살바토레 메오 엮음, 성서에 나타난 마리아 , 최영철 옮 김, 성바오로출판사, 1992, 53쪽.

(6)

리고 루가 복음에는 자신을 주님의 종이라고 부른 시므온의 이야기가 나오는데(2,23), 이 순간 마리아와 함께 새로운 대열이 시작된다. 즉 전체 교회는 마리아와 같이 하느님 앞에 시종으로 서있다(사도 4,29).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에 뿌리를 둔 순명으로써 교회공동체의 모범이 된다고 하겠다.

12)

새로운 하느님 백성인 교회에 요구되는 태도를 앞서 실현한 마리아 는 교회의 탄생 시간에 예수를 믿고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있었다(사 도 1,12~14). 사도행전의 이 부분에서 이미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 때부터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로 불려졌고, 기도하는 사람, 예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이해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마리아는 예수 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교회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 고 따르는 데에 동참하였던 것이다.

13)

요한 복음에서 마리아는 가나의 혼인잔치 장면(2,1~12)과 십자가 처형 장면(19,25~27)에, 즉 예수의 공생활 시작과 마지막에 등장한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는 곤경 중에 있는 이들을 위해 중재 에 나서서 아들 예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예수의 이해할 수 없는 대답

14)

에도 불구하고(2,3~4) 그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면 서 사람들을 예수에게로 이끌었다. “그분의 어머니는 시중꾼들에게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 하고 말하였다”(2, 5). 이 말을 통해서 마리아는 예수께 대한 신뢰하는 신앙을 실현하였 다.

15)

다른 한 편 마리아가 시중꾼들에게 당부한 말은 교회가 해야 할 사 명을 암시해 준다. 마리아의 당부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모든 민족들과 관련해서 사도들에게 위임하시는 사명과 특이하게 흡사하기 때문이 다.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것을 모두 다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시 오”(마태 28,20). 교회는 사도들의 뒤를 이어서 이 구원적 권유를 반복

12)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44쪽.

13) 참조: 이영헌, 공관복음서를 통해 본 마리아 , 앞의 책, 18~19쪽.

14) 참조: 스테파노 데 피오레스·살바토레 메오, 앞의 책, 127~129쪽; 이영헌, 요한 계 문헌에 나타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 신학전망 125(1999/ 여름), 6~10쪽.

15) 참조: 스테파노 데 피오레스·살바토레 메오, 앞의 책, 129쪽.

(7)

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이 말과 마리아의 권유 사이에 심오한 일치 가 있음이 드러난다. 즉 마리아와 교회는 한결같이 사람들을 그리스도 의 복음에로 인도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16)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에게 애제자를 아들로 삼게 하고, 애제자에게도 마리아를 어머니로 받아들여 모시도록 당부한다 (19,26). 여기서 마리아는 고유한 이름 대신 ‘예수의 어머니’로만 표현 되고, 애제자 역시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채 예수가 ‘사랑하던 제자’

로 소개된다. 예수의 어머니나 애제자라는 표현은 예수와의 밀접한 결 속 관계에 역점을 둔 호칭이다. 이들은 예수를 통해서, 예수 안에서 상호 결속되고 그 관계가 유지된다.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느 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제 마리아는 예수의 모친으 로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공동체의 어머니가 되신다.

17)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우 선적으로 그리스도론적으로 정향(定向)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신약성 서의 복음선포에서 절대적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비교 할 때 다른 모든 인물들은 주변 인물일 뿐이다. 마리아에 대한 진술도 아들 예수를 고려하는 가운데서만 이루어진다. 마리아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 때문에 구세사에서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지닌다.

또한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교회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루가와 요한 복음서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신앙인으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런 마리아는 신앙인의 모범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룩된 하느님 가족의 어머니가 된다.

16) 참조: 같은 책, 131쪽 각주 88.

17) 참조: 이영헌, 요한계 문헌에 나타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 앞의 책, 12~14쪽.

(8)

3. 교회 역사 안에서 마리아 이해의 변천

신약성서에는 마리아에 대한 언급이 양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 하 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로 마리아에 대한 공경이 증가하고, 따라서 신학자들과 교회 교도권의 발언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런 마리아 공경 과 신학의 전개 과정을 각 시대별로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3.1. 교부시대

초세기부터 8세기에 이르는 교부 시대에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고 찰은 주로 두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는, 신약성서의 저자들과 마 찬가지로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의 맥락에서 마리아를 고찰하였다. 두 번째는 사람들의 관심이 점차 마리아 개인을 수덕(修德)과 영성 생활 의 모범으로 주목하게 되면서, 마리아가 동정녀라는 것이 중요시된다.

그 결과 마리아의 ‘평생동정’ 교리가 형성되었다.

18)

교회 역사의 처음 몇 세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참된 인 성에 대한 신앙의 확신을 올바로 생각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의견을 모으는 투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대교부들은 마리아론적 진술 의 형태로 이 과정에 참여하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110년경) 를 비롯한 여러 교부들은 성령에 의한 동정 잉태는 그리스도의 신성 을 보증하는 것이고 마리아로부터의 탄생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분명 하게 밝혀주는 것이라고 보았다.

19)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 라는 칭호를 부여한 것도 이런 그리스도론적 전망에서 이루어진 결정 이다.

20)

이 공의회가 개최된 계기는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 리우스가 마리아는 신성을 낳은 것이 아니라 신성과 결합된 인간을

18) Cf. A.Mu¨ller/D.Sattler, “Mariologie”, in: Th.Schneider(Hrsg.), Handbuch der Dorgmatik 2, Du¨sseldorf, 1992, p.166.

19) Cf. Ignatius, Epistula ad Ephesios, 7,2; Epistula ad Smyrnaeos, 1,1: 조규만, 앞의 책, 129~130쪽.

20) 참조: 발터 카스퍼, 예수 그리스도 , 분도출판사, 1977, 419~420쪽.

(9)

낳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kos)일 뿐 하느님의 어머니 라고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 데에 있었다. 그의 주장에 반대해서 에페 소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하였다.

21)

왜냐하면 비록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인성만 낳으셨을지라도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은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리아는 신성과 인성을 지닌 그리스도를 낳으심으로써 하 느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그런데 교부들은 이런 마리아의 모성을 단지 생물학적 육신적 측면에서만 고찰하지 않았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 들을 낳으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부터 나오는 순종의 응답을 하였기 때문이다. “고대신학은 이 사실을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기에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몸으로보다 정신으로 먼저 잉태하였다’(Maria prius concepit mente quam ventre).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그녀의 절대적인 신앙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모친이 된 것이다.”

22)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낳는 데에 결정적인 요인이었던 신앙의 응답은 구원론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을 간파한 것은 고대교회 교부 들이었다. 유스티노(†165) 이래로 대부분의 교부들은 사도 바오로에 게서 발견되는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의 비교(로마 5,12~21)를 하와와 마리아에게 적용하면서, 마리아의 신앙적 순종으로 인해서 하와의 불 순명으로 야기된 비구원의 상황을 극복하는 길이 열렸다고 보았다. 대 표적으로 리용의 주교 이레네오(†202)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와의 불순명이 묶어 놓은 매듭을 마리아의 순명이 풀어주었고, 처녀 하와가 불신으로 맺어 놓은 것을 동정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

23)

그런데 유스티노가 시작한 하와 마리아의 대조는 마리아를 그리스 도만이 아니라 교회와도 깊이 연결시키는 바탕이 되었다. 에페 5,25~32에 따르면 하와가 첫째 아담의 반려자이듯이 교회는 둘째 아

21) DS 252(DS=Denziger-Scho¨nmetzer,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rum et Dek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Freiburg-Barcelona,

321963).

22)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118쪽.

23) Irenaeus, Contra haereses., III. 22,4(아래의 이레네오 인용은 볼프강 바이너르트, 마 리아― 오늘을 위한 마리아론 입문 , 62~65쪽에서 재인용하였음).

(10)

담인 그리스도의 신부, 반려자가 된다. 여기서 하와로 말미암아 야기 된 비구원의 상태를 회복하는 새로운 하와로서의 마리아와 둘째 아담 의 반려자인 제2의 하와로서의 교회를 비교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라고 하겠다. 이 점을 최초로 인식한 것은 이레네오였다.

이레네오는 세례 성사를 통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마리아로부 터의 탄생에 비유하면서,

24)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를 ‘동정녀로부 터 탄생한 임마누엘’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당신 피조물의 합일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었고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분은 스스로 순결 한 분으로서 순결한 모태를 열어 놓았는데, 그 모태란 다시 말하면 하 느님을 위해 인간을 다시 출산하고 그분 스스로 순결하게 만든 모태 를 말한다.”

25)

이렇게 이레네오는 동정녀이며 어머니인 마리아를 세례 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이들에게 어머니가 되는 교회와 유사하다고 보았다.

고대 교부들은 예수께서 마리아로부터 탄생한 사실을 들어서 그분 의 인성을 보증하고, 예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근거로 그분의 신성을 옹호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명히 하는 데에 주의가 집중되었던 시기에는 예수 탄생 이후의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렇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313년 밀라 노 칙령으로 박해가 끝나면서 박해 시대의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덕목 이었던 순교는 새로운 덕목으로 대치되어야 했다. 순교 대신에 그리스 도교의 극기적 삶의 새로운 덕목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동정이었고, 이와 관련해서 동정녀 마리아가 모범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 다.

26)

동정녀 마리아가 점점 더 확고한 공경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동 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라는 신앙고백도 내용적으로 변화되었 다. 원래는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 그가 성령에 의해서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고백하였는데, 점

24) Cf. Contra haereses IV, 33,4.

25) Ibid., 33,11.

26) 참조: 조규만, 앞의 책, 153~154쪽.

(11)

차로 주안점이 마리아에게로 옮겨가면서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하기 전뿐만 아니라 출산 이후에도 동정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성서가 분 명히 증언하고 있는 성령에 의한 마리아의 동정 잉태가 마리아의 ‘평 생 동정’으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평생동정”(aeiparthenos)이라는 표현은 오리게네스의 제자이며 알렉 산드리아의 주교인 베드로(†311)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되며, 4세기 후 반의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403)로부터 전래된 세례 신앙 고백문 에는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27)

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 만 공의회 문헌에서 처음으로 “평생동정”이라는 칭호가 나타난 것은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이르러서이다. 이 공의회는 “거 룩하고 영광에 가득 찬 하느님의 어머니요 평생 동정이신 동정녀 마 리아에게서”

28)

말씀이 육신을 취하셨다고 고백하도록 촉구하였다.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아직 그리스도론적 논쟁의 맥락 속 에 있다면,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라고 표현하는 것은 점차로 마리아에 게 시선이 집중되는 변화된 상황을 반영한다고 하겠다.

29)

고대교부들은 성모 마리아를 하와와 대조하면서 마리아 개인의 성 덕에 대해 관심을 두었지만, 5세기까지 동방 교부들은 마리아가 일련 의 불완전성을 지녔다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어서 오리게네스(†254) 는 성모 마리아가 모든 신자들의 모범이 되시지만, 그 성덕이나 믿음 이 처음부터 완벽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한다. 마리아 역시 다른 인간들 과 마찬가지로 신앙에 있어서 어둠을 통과하는 여정을 걸어야 했다는 것이다. 오리게네스는 시므온의 예언에서 언급되는 ‘칼’은 바로 마리 아가 아들의 십자가 죽음을 보면서 겪어야 했던 신앙의 회의를 뜻한 다고 보았다.

30)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모든 사람이 구원된다는 입 장에서, 즉 마리아 역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된다는 교의적 관점에 서 마리아의 의심과 불신앙을 말하였다.

31)

하지만 그는 마리아가 신앙

27) DS 44.

28) DS 422.

29) Cf. A.Mu¨ller/D.Sattler, “Mariologie”, p.170.

30) Origenes, In Lucam homilia 17,6~7(이어지는 고대교부들의 인용은 조규만,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에서 해당 교부들을 다룬 부분에서 재인용하였음).

(12)

의 회의 과정을 겪으면서 완전한 성덕에 도달하였고, 이런 점에서 마 리아는 신앙인들에게 더욱더 모범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서방교부 암브로시오(†397)는 마리아의 성덕이 처음부터 완벽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천사의 탄생 예고는 마리아의 삶과 사명에서 핵심 신비로서 마리아가 그때부터 하느님께 대한 전적이고 절대적인 순종과 함께 깊은 신앙의 삶을 살게 되었다. 암브로시오는 특히 제자들도 도망친 상황에서 십자가 아래 머물러 계셨던 마리아의 대단한 용기를 찬양한다.

32)

그는 마리아의 이러한 성덕을 바탕으로 마 리아의 무죄함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아우구스티노(†430)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마리아의 전폭적 인 순종과 신앙을 중요시한다. 예수의 잉태 역시 그의 신앙으로 말미 암은 것이고,

33)

이 신앙이 육친적 모성보다도 더 중요하고 참된 행복 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루가 복음에 나오는 시므온의 예언을 신앙의 의심으로 해석하는 동방 교부들의 견 해를 거부하고, 아들 예수의 수난으로 인한 고통으로 이해한다.

34)

또 한 그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어떤 죄로부터도 벗어나 있었다. 하지 만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자유로웠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아우구스티노는 원죄로부터 자유로웠던 분은 남녀의 성관계를 통하지 않고 태어난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35)

이렇게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를 통해서 마리아의 전적인 성성(聖性)과 무죄성에 대한 확신이 일차적으로 서방교회에서 관철되었고, 나중에 는 동방교회에서도 관철되기에 이르렀다.

4세기 말경에 그리스도의 모친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처음 으로 전개되었다.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403)는 성모의 죽음에 관 하여 성서에서 침묵하고 있는 만큼 그 실정을 잘 모른다고 전제하면 서, 성모의 생애가 어떻게 끝이 났든 영광스러웠을 것이라고 주장한

31) Ibid., 7.

32) Ambrosius, De Institutione Virginis 49.

33) Augustinus, De sancta virginitate 3,3; Sermo 215,4; De Sermone Denis 25,7.

34) Augustius, Epistula CXXI, 17.

35) Augustinus, Opus imperfectum contra Iulianum 5,52; 6,22.

(13)

다.

36)

그러나 이 문제는 당장에 그리 절박하지 않았기에 계속 논의되 지는 않았다. 나중에 투르의 그레고리오(†594)가 전승되어 오는 마리 아의 승천 이야기를 전하였다.

37)

예루살렘 지역의 전례에서는 이미 6세기경부터 매년 8월 15일에

‘천주의 모친 마리아의 날’을 거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축일 의 명칭을 성모의 ‘잠드심’(dormitio)이라고도 하고, 또는 ‘승천’(as- sumptio)라고도 하였다.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는 이 축일을 서 방교회의 축일표에 포함시켰다. 이리하여 동방교회나 서방교회를 막 론하고 마리아 축일이면 강론가들은 거의 일반적으로 마리아가 하늘 에 올림을 받았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38)

3.2. 중 세

교부시대의 마리아론의 특징은 하느님의 제2위격의 육화라는 그리 스도교 핵심 신비의 테두리 안에서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를 서서히 발견하게 되었다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 시대의 마 리아론은 그리스도론적이며 구원 역사적으로 정향되어 있었다. 교부 시대에 교의로 선포된 마리아에 대한 두 가지 신앙 고백, 즉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평생동정녀’라는 신앙 고백은 중세에도 논란 의 여지가 없는 신학적 가르침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서야 교리로 명문화된 성모 승천과 원죄 없으신 잉태는 중세 당시 신 학자들간에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파스카시우스 라드베르두스(†860경)는 당시에 위대한 교부들의 이 름을 빌려 쓰여진 마리아의 승천 전승들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에 대한 증언을 성서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데에, 그리고 교부들이 증언하는 마리아의 역할은 육화와 교회에 관련된 것으로서 마리아의 육체적 승천과는 무관하다는 데에 있었다. 그는 성모 승천 축일의 내 용은 하늘에서 완성에 이른 마리아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일 뿐이라고

36) Epiphanius, Adversus haereses Panarium 78,23: PG 42.

37) Gregorius of Tours, De gloria beatorum martyrum 4: PL 71.

38)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70쪽.

(14)

주장하였다. 하지만 신학적 토론을 거치면서 점차로 마리아가 육신과 함께 하늘에 불러 올림을 받았다는 신앙고백에 반대될 것이 없다는 의견이 관철되었다.

39)

이에 비해서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고 잉태되었다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이 가르침에 대한 반대 이유는 우선 성서에 서 그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아 우구스티노의 전통에서 변호하는 원죄의 일반성과 그로 인한 모든 인 간의 구원 필요성과도 합치되지 않는다. 즉 마리아를 원죄에서 제외시 키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신앙 진리가 약화되기 쉽다.

이런 신학적 이유에서 중세의 대학자들 대부분, 즉 켄테베리의 안 셀모(†1109), 베르나르도(†1153), 대 알베르토(†1280), 토마스 아퀴 나스(†1274), 보나벤투라(†1274) 등이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반대했다. 하지만 이들은 마리아가 원죄와 함께 잉태되었지만 이미 모 태에서 원죄로부터 정화되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40)

프란치스코회 신학자 둔스 스코투스(†1308)의 입장은 후대에 성모 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그 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의 구원론적 문제점을 ‘선행구속’(先行救 贖, praeredemptio)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즉 마리아는 아 담의 후손이므로 의당히 원죄의 죄과를 받아야 했지만, 하느님은 미래 의 예수 그리스도로의 구원 공로를 미리 앞당겨서 마리아를 원죄로부 터 보호해 주셨다(praeservatio)는 것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원 죄 없는 잉태로 인해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 능력은 더욱 완 전해진다고 강조한다.

41)

그러나 이런 신학적 탈출구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의 가르침은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논쟁에 상관없 이 11세기 이래로 12월 8일에 전례적으로 지내게 된 성모의 원죄 없 는 축일이 대중들 사이에서는 점점 더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39) Cf. A.Mu¨ller/D.Sattler, “Mariologie”, p.171.

40) 참조: 조규만, 앞의 책, 247쪽.

41) Cf. A.Mu¨ller/D.Sattler, op.cit., p.172.

(15)

중세 후기(12~15세기)는 ‘마리아의 시대’라고 부를 만큼 마리아 신 심이 대중화되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구원사업에서의 마리아의 역 할에 점점 더 많이 주목하게 된다. 특히 마리아의 중재 능력에 큰 신 뢰를 두었는데, 이는 ‘마리아 박사’라는 칭호로 불리는 베르나르도에 게서도 잘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마리아는 교회의 여러 지체를 위해 하느님께 그치지 않고 전구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은총을 전해 주는 수도(水道)와 같다.

42)

중세 후반기에 이를수록 그리스도를 엄격한 심판자로, 마리아를 자 비로운 어머니로 이해하였고, 그래서 마리아의 이름으로 구원을 청하 는 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보다 빠르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 게 되었다. 마리아는 왕이신 그리스도 뒤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대비’

(大妃)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중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은 성모 마리아가 본받아야 할 모범이기보다는 기적적인 도움을 청하 는 기도의 대상으로 국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43)

중세 후기에 마리아에 관한 많은 작품들은 외경을 근거로 온갖 상 상력을 동원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과장되고 잘못된 마리아 신심을 바로 잡으려는 신학자들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서 대 알베르 토는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보다 최고의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을 받을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많은 작 가들이 잊고 있었던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항상 주지시켰다.

44)

그는 물론 마리아의 중재성을 인정하지만, 그 중재는 항상 간접적인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마리아의 중 재성에 대해서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즉 마리아의 은총의 중재 는 아들 그리스도에 의존되어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45)

42) Bernhard of Chairvaux, sermo de aquaeductu: PL 183, 437~448; 참조: 조규만, 앞의 책, 252~254쪽.

43) 조규만, 앞의 책, 266쪽.

44) “어머니의 영예는 왕의 영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질을 지니는 것이므로 마리아는 신적 영예를 요구하지 못한다. 그분의 아드님은 그 의 신성을 그 어머니로부터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Albertus Magnus, In sententiarum III, 9,9).

45)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 q.27. art.5. ad.1.

(16)

3.3. 종교개혁과 마리아

종교개혁 시대에는 마리아 신심이 많이 변질되어 있었다. “종교개 혁의 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마리아 신심은 퇴폐처지에 이르렀었다 .”

46)

루터, 츠빙글리,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들은 이에 대해서 많은 비 판을 가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마리아를 반드 시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개혁자들의 입 장이 통일된 것은 아니고 서로 차이가 있었다.

마르틴 루터(†1546)가 마리아 공경을 완전히 배척하지 않았다는 점은 루터의 생애를 통해서도 감지될 수 있다. 그는 교회 전례력에 따 라 모든 성인의 축일에 맞추어 강론하는 습관을 점차 줄이기 시작하 여 1520년대 말까지 완전히 폐지했지만, 성모 마리아의 축일에 따른 강론은 그가 사망한 해까지 계속했다.

47)

1521년에 집필된 그의 ‘막니 피캇’ 주석

48)

은 마리아 신심의 뛰어난 증언이라고 하겠다.

루터는 교부 시대의 유산인 마리아의 신적 모성과 평생 동정 교리 를 끝까지 고수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도 여전히 토론의 대상이었던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에 대해서 루터는 한번 은총의 문제로 부인 하는 듯 했으나, 그는 그가 죽기 2년 전인 1544년까지만 해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49)

그는 이 교리에 관한 한 각 자 자기 신앙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또 한 성모 승천과 관련해서 루터는 마리아를 가장 높으신 여왕으로 부 르고 그분이 영광 중에 모든 성인들과 함께 계심을 믿지만, 그분이 육 신과 함께 하늘에 올림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성서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자신은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50)

루터는 종교 개혁 당시의 변질되고 퇴폐처지에까지 이른 마리아 공

46) R.Laurentin, Kurzer Traktat der marianischen Theologie, Regensburg, 1959, p.101. 당시 퇴 폐상에 대한 참조: 사와다 아키오, 루터와 마리아 , 정종휴 옮김, 가톨릭출판사, 1998, 60~63쪽.

47) 참조: 사와다 아키오, 앞의 책, 15~16쪽.

48) 참조: 같은 책, 93~126쪽.

49) 참조: 같은 책, 29~34쪽.

50) 참조: 같은 책, 34~35쪽.

(17)

경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방향의 마리아 신심을 모색하였다. 그는 무엇 보다도 마리아 공경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役事)를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구체적으로 루터는 마리아에게서 신뢰하고 신앙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면서 마리아 신심의 인 간적-모범적 역할을 강조하였다.

51)

1530년에 제정된 루터교의 가장 기 본적인 신앙고백서인 ‘아욱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에 서도 루터의 노선이 분명히 드러나 있다.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서 전구를 한다고 할지라도 죽음을 물리쳐야 하고, 사탄의 어마어마한 힘과 대항하여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다. 마리아가 이를 행할 수 있다면 그리스도가 도 대체 왜 필요한가? 마리아는 온갖 최고의 찬미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똑같이 간주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신앙과 겸손의 모범을 따를 것을 원하신다. 그런데 마리아에 대한 과장된 가르침으 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서야 할 자리에 마리아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52)

츠빙글리(†1531)는 루터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마리아 공경에 비판 을 가하고 성모의 중재성을 거부했지만, 성모 공경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평생 동정녀라는 것은 물 론 성모 승천도 인정하였다. 하지만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에 대해서 는 의문을 표시하였다. 츠빙글리는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서 마리아 를 이해하려고 했는데,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 경배를 지향하 고 있으며, 마리아의 영광은 예수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 다.

53)

이에 비해서 하느님의 위엄과 영광에 집중해서 신학을 전개하였던 칼빈(†1564)은 모든 형태의 성인 공경과 마리아 공경에 대해서 회의 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것을 인정했

51) 참조: 같은 책, 63~77쪽.

52) M.Luther, “Apologie der Konfession XXI”, in: Die Bekenntnisschriften der evangelisch-

lutherischen Kirchen, Go¨ttingen,

41959, p.322: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77쪽에서 재인 용.

53) 참조: 조정헌, 교회 재일치 운동의 관점에서 본 성마리아 , 신학전망 35(1976/

겨울), 46~47쪽.

(18)

지만, 그녀의 원죄 없는 잉태와 승천은 부인하였다. 칼빈은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마리아의 덕성을 인식하면서, 자기 추종자들도 이를 본받아 자신들이 하느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 는 것을 깨닫기 원했다.

54)

이렇게 볼 때 종교 개혁 초기에는 마리아론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 트를 갈라놓는 근본적 원인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5)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차이점만을 부각시킴으로써 점차로 프로테스 탄트 측에서는 성모 공경을 삼가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루터와 츠빙글 리에서 볼 수 있었던 성모 공경마저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성 인들과 성모에 대한 전구도 없어지고,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와 성모 승천도 보편적으로 거부되었다.

3.4. 근 대

종교개혁 이후에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가톨릭 교회와 쟁론을 벌리 는 가운데 점점 더 반(反) 마리아적 입장으로 경직되어 갔다. 이에 대 한 반동으로 가톨릭 측에서는 마리아 신심이 점차로 엄청나게 확대되 었다. 이 신심운동은 특히 종교개혁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았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프랑스에서 더욱 강렬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56)

18세기에는 루이 그리뇽 드 몽포르(†1716)와 알퐁소 리구오리(†

1787)와 같은 성모 신심가들이 등장한다. 루이 그리뇽은 그리스도께서 어머니 마리아께 순종하신다는 중세 후기의 사고 속에서 마리아의 권 위와 능력에 지나치게 큰 신뢰를 두고서 마리아의 중재를 거의 필수 적인 것으로 내세운다. 왜냐하면 그것은 더욱 겸손한 태도이기 때문이 다.

57)

그에 따르면 혼자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보다 중재자(마리아)와

54) 참조: 조규만, 앞의 책, 271~272쪽.

55)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76쪽.

56) 참조: 같은 책, 78~79쪽; 17세기의 과장된 마리아 공경과 그에 대한 비판에 대해 서는 조규만, 앞의 책, 278~281쪽.

57) 루이 그리뇽 드 몽포르에 관해서 참조: 조규만, 앞의 책, 282쪽.

(19)

함께 하는 것이 보다 완전한 태도이다. 루이 그리뇽은 속세의 왕에게 가는 일도 중재자의 안내나 추천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는 비유를 들 어서 마리아의 중재와 안내를 권유하였다. 그는 심지어 성모송이나 묵 주기도를 하지 않고 ‘주님의 기도’만을 하는 것은 이단의 징조라고까 지 말하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직접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가르치셨고, 그리스도교는 성모송이나 묵 주의 기도가 있기 전 오랜 세기 동안 ‘주님의 기도’만을 바쳐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의 주장은 문제성 있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알퐁소 리구오리에게서도 하느님 나라는 정의의 나라요, 마리아의 나라는 자비의 왕국이라는 중세기의 대중 신심이 반복된다. 만일 하느 님이 죄인에게 화를 내면 마리아 자신이 그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58)

마리아에 관한 이들의 가르침에 대해 찬동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비 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도 적지 않았다. 영국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서 나중에 추기경이 된 뉴먼(†1890)도 그에 속한다. 뉴먼은 알퐁소 리구오리, 그리뇽 드 몽포르, 독일의 오스발트(Oswald)의 작품 을 근거로 가톨릭의 마리아론을 공격하였던 퍼시(E.B.Pusey)와의 논쟁 에서 교부들의 가르침에 근거한 마리아론을 옹호하면서도 퍼시의 비 판을 일부 수용하여 과장된 마리아론을 거부한다.

“마리아의 영예를 위해서 쓴 글들 속에서 당신을 화나게 한 그런 글들을 보면서 나 역시 당신이 한 것처럼 약간 언급하고자 합니다. […] 그들은 나 를 슬프게 합니다. 아니 거의 화나게 합니다. 하느님에게만 드려야 할 능력 을 […] 복되신 동정녀에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스스로 생각했 습니다. 성서로부터 우리 주님의 신성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 만 일 내가 그런 뒤틀어진 글로 그렇게 미워하고 있다면 그리스도를 사랑하시 는 마리아는 얼마나 더욱 그렇겠는가? […] 나는 그런 주장을 아무런 주저 없이 나에게서 멀리 팽개칩니다. 마리아의 자비가 무한하다느니, 하느님은 그의 권능을 마리아의 손에 쥐어 주셨다느니, 그분의 아들 성자보다 마리아 를 찾는 것이 더 안전하다느니, 우리의 주님이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 어 있다느니, 하느님이 화를 낼 때 그 사람에게는 마리아가 유일한 피난처 라느니 […] 나는 당신의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런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 다. 그들은 나에게 마치 악몽과 같습니다.”59)

58) 참조: 같은 책, 287쪽.

(20)

18세기 말 인간 이성을 과대 평가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특히 독 일과 프랑스의 가톨릭 교회에서는 마리아 신심과 공경이 많은 비판을 받고 위축되었다. 하지만 곧 이어서 이성 절대주의에 대한 반발과 함 께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마리아 신심이 더욱 강화되었고, 19 세기에 자주 일어났던 성모 발현은 대중의 마리아 신심을 더욱 자극 시켰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미 고대교회에 등장하여 중세에 토론의 대 상이 되었으나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 마리아론의 주제들, 즉 성모 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성모 승천에 대해 신학적으로 더 깊이 논의하 려는 관심이 일깨워졌다.

60)

이미 17세기부터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규정해 달라는 신자들의 거센 요청이 있었지만 여러 교황들은 이를 거절하였 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이 문제가 새롭게 다루어지고,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회칙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Ineffabilis Deus)을 통해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 느님의 특은(特恩)과 특대(特待)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 스도의 예견된 공로에 비추어 원죄의 아무 흔적도 받지 않도록 보호 되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61)

이 회칙은 신학적으로 둔스 스코투스의 논거를 수용하였다. 즉 예 수 그리스도의 구원 공로를 미리 앞당기는 ‘선행구속’이란 신학적 개 념을 매개로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가 모든 인간의 구원 필요성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의 보편성과 합치할 수 있 다고 보았던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영혼과 육신 모두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는 신앙적 확신은 중세에도 그리 큰 논란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적으로 결정한 사건은 이제 곧 성모 승천도 믿을 교 리로 선포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았다. 이미 반 종교개혁 시대에 “마리

59) J.H.Newman, “A Letter Addressed to the Rev. E.B.Pusey on Occasion of his Eirenicon”, in: Certain Difficulties Felt by Anglicans, 1892, pp.113~115. 703: 조규만, 앞의 책, 295~296쪽에서 재인용.

60) Cf. A.Mu¨ller/D.Sattler, “Mariologie”, p.173; 조규만, 앞의 책, 283~284쪽.

61) DS 2803.

(21)

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았기에 하늘에 올림을 받았다”(assumpta quia immaculata)는 논거가 형성되었는데, 이 논거가 새롭게 부각되었던 것 이다. 그러나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를 전후로 신학적 관심 이 다른 데로 쏠렸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서 1950년에 이르 러서야 성모승천의 교의화가 이루어졌다. 교황 비오 12세는 회칙 지 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 (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서 “원죄가 없으 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현세 생활을 마친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 리로 선포하였다.

62)

교황 비오 12세의 재위기간(1939~1958)은 마리아 공경이 특별히 강조되고 촉진되었던 시기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세계를 원죄에 물들지 않은 마리아의 성심께 봉헌 하였고,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마리아 여왕 축일’을 제정하였다. 1953 년에는 마리아 성년이 선포되었으며 교황의 주재 하에 마리아 아카데 미 기관과 학부가 생겼다. 그렇게 되자 마리아 연구를 위한 연합기구 가 결성되고, 마리아에 관한 저서가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1950년대 말엽에는 마리아에 대한 관심이 현저하게 줄어들 었다. 교황 비오 12세의 후임자 교황 요한 23세는 과열된 마리아 공경 을 최대한 조절하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서 파티마 성모상의 이탈 리아 일주를 통해 이탈리아를 마리아께 봉헌하자고 운동을 벌인 ‘기 적의 순례단’을 맞이할 때, 교황은 신자들이 생활하신 그리스도를 진 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명백하게 강조하면서도 계획된 봉헌에 대 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63)

신학적으로는 20세기 초반에 고대교부들의 신학을 재발견하게 되 면서 마리아를 교회와 유형론적(類型論的)으로 비교하여 고찰하고, 그 녀가 실현한 신앙적 순종의 모범적 의미에 점점 더 관심을 두게 되었 다.

64)

이런 관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수용되었다.

62) DS 3903.

63)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83쪽.

64) Cf. A.Mu¨ller/D.Sattler, “Mariologie”, p.176.

(22)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4년 11월 24일에 선포된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의 제8장에서 마리아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물론 다 른 문헌에서도 단편적으로나마 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65)

체계적인 마리아론은 교회헌장 제8장에서 전개된다.

4.1. 문헌의 형성 배경6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소집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마리아에 대한 독 자적인 문헌을 반포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부응해서 신학위원회에 서는 “하느님의 모친이며 인간의 모친,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관해서”라는 제목의 초안을 작성하여 1962년 11월 23일 공의회 참가 자들에게 배부하였지만 첫 회기에서는 그 초안이 토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에 있었던 제2차 회기에서는 일단의 주교들이 독자적 인 마리아론의 문헌을 포기하고 그 대신 교회헌장에 첨부시키자는 청 원을 하였는데, 이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의 배 경에는 마리아의 위치에 관한 신학적 문제가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즉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 편에 더 치중해 있는 것으로 보아 특정 한 의미로서 마리아의 위치를 교회 밖이나 혹은 교회 위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특별히 탁월하기는 하지만 마리아를 교회에 속한 한 지체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67)

토론 끝에 표결에 붙여진 결과 1963년 10월 29일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들 중 1114명의 교부들이 마리아론을 교회헌장과 함께 다룰 것을 찬성하 였고 1074명의 교부들을 이에 반대하였다.

표결이 끝난 뒤에 네 사람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어서 마리아론의 본 문을 새로 작성하는 작업을 맡게 되었다. 이 위원회가 작성한 초안의

65) 참조: S.Meo,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에 관한 가르침 , 현대 가톨릭 사상 5(1991), 148쪽.

66)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85~88쪽; S.Meo, 앞의 논문, 149~153쪽.

67)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86쪽.

(23)

새로운 명칭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의 하느님의 모친, 복 되신 동정 마리아”였다. 이 초안이 공의회의 1964년 9월 16일에 시작 된 3차 회기에서 교부들의 토의를 거쳐서 교회헌장 제8장의 내용으로 확정되었다.

4.2. 문헌 내용

마리아에 관한 장은 5절로 구성되어 있다. 마리아론의 방향을 제시 한 서론 부분(52~54항)에 이어서 신· 구약성서에 나타난 마리아의 구 세사적 역할에 관한 해설이 제2절의 내용이다(55~59항). 제3절에서는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에 대해서 논한다(60~65항). 이런 신학적 내용 에 이어서 공의회의 교부들은 실천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마리아 신심 의 본질과 방향에 관해서 서술한다(66~67항). 마지막 절에서는 종말 론적 전망이 전개된다(68~69항).

68)

1) 서론의 첫머리 52항은 갈라 4,4로 시작한다. 그리고 곧 이어서 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에서 마리아에 대해 말하는 대목을 인용하는 데, 이는 갈라 4,4에 대한 주석이라고 하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께 혈육을 취하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뒤에서 전개되 는 마리아론에 대한 올바른 전망이 확실하게 정해졌다고 하겠다. 즉 교회가 그러하듯이 마리아도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있기에 교회론 과 마리아론 모두 그리스도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69)

53항은 마리아의 위치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속에서 언급하 면서, 가톨릭 교회의 마리아 공경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성모 는 “아드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뛰어나게 구원되시고 하느님과 불가분 의 관계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으며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되는 직무와 품위”를 지니시는데, 그분은 “이렇게 탁월한 은총 때문에” 다른 모든

68) 문헌의 신학적 특성에 대한 참조: S.Meo, 앞의 논문, 155~159쪽.

69)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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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보다 탁월하게 앞서 계신다. 둘째, 성모 마리아 역시 “구원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아담 혈통에 결합되어” 계시면서 교회 안에서 독자성과 탁월성을 지니고 계신다. 즉 성모는 “교회의 가 장 뛰어나고 가장 독특한 지체이며 신앙과 사랑의 명백한 전형(典型) 과 모범”이시다.

54항에서는 공의회가 이 문헌을 통해서 마리아에 관한 교리를 전부 설명하거나 신학적으로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려 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작업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또한 마리아에 대해 “여러 가톨릭 학파에서 자유로이 논의되는 학설들은 그 권리를 보장받고 있을 것이다”라고 밝힌다.

2) 두 번째 절은 구세사 안에서 드러난 마리아의 위치와 역할에 대 해서 다룬다. 55항에서는 마리아가 구약성서의 메시아의 내림에 대한 예언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밝히고, 마리아에 관한 예언의 구절로서 세 대목을 제시한다. 이른바 원복음(창세 3,15), 신약성서에 명시적으 로 인용된(마태 1,23),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동정녀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이사 7,14), 그리고 야훼로부터 구원을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가난 한 자들에 관한 구절에 마리아가 이미 예언되었다.

56항에서는 신약성서적 고찰이 시작된다. 여기서는 고대교부들이 즐겨 사용하던 하와-마리아의 유비를 적용하여 구세사 안에서의 그리 스도의 모친인 마리아의 능동적이고 구세사적인 역할을 강조하고 있 다. 즉 마리아의 순종의 행동은 하와의 불순명을 극복하는 것으로서, 이와 함께 마리아는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하 셨다.”

57~58항은 신약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마리아와 관련된 진술들을 열거하면서, “구원 사업에 있어서의 성모와 성자의 이 결합은 동정녀 로서 그리스도를 잉태하실 때부터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는 것을 밝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마리아는 아들이 하는 일을 모두 다 분명 하게 이해하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마저도 가슴속에 간직함으로써

“하느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은(루가 2,19.51) 복되다고 선언하시

(25)

는(마르 3,35; 루가 11,27~28)” 성자의 말씀대로 사셨다. 그래서 공의 회는 성모께서도 “신앙의 나그네길을 걸으셨고 아드님과의 일치를 십 자 정사(釘死)에 이르기까지 충실히 보존하셨다”고 강조한다.

59항에서는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결합에서 마리아와 교회의 결합 으로 주제가 넘어간다. 마리아와 교회의 밀접한 결합은 마리아가 “인 류 구원의 신비”인 교회가 장엄하게 선포되는 성령강림의 준비에 등 장하는 데에(사도 1,14) 암시되었다. 마침내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 아는 지상 생활을 마친 후에, 영혼과 육신이 천상 영광에로 부르심을 받았다.” 또한 마리아는 “주님으로부터 천지의 모후”로 추대 받으심으 로써 그리스도와 더욱 완전히 닮게 되시는데, 이렇게 그리스도와 닮는 것은 교회의 구성원들에게도 은총을 통하여 선사된다. 즉 은총은 인간 을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지니도록 하고(로마 8,29), 이런 사람 은 그리스도와 함께 임금의 옥좌에 앉게 된다(묵시 3,21). 이렇게 마리 아는 구원 업적을 독특한 방식으로 밝혀 줌으로써 마리아 공경을 통 해서 구세주를 찬미하게 한다.

70)

3) 제2절 마지막의 흐름을 이어받아서 제3절의 주제는 “복되신 동 정녀와 교회”이다. 여기서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모친으로서 교회와 특정하게 마주 대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전형이며 모범으로서 교회 안 에 위치하는 분으로 서술된다.

먼저 마리아가 교회와 특별하게 마주 대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마리 아의 중재성에 대해서 언급된다. 공의회에서는 마리아를 중재자로 표 현할 것이냐에 관한 문제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71)

한 편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리아를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 선포하려고 했고, 다 른 한 편에서는 이런 칭호를 단호하게 거부하려고 했다. 후자가 염려 했던 점은 마리아에게 중재자라는 칭호를 부여할 때 그리스도의 유일 한 중재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고, 그래서 교회일치를 위한 대화에 필 요 없이 부담을 준다는 데에 있었다. 토론과 논쟁 끝에 중재 안이 나

70) Cf. A.Grillmeier, “Kommentar u¨ber ‘die Dogmatische Konstitution u¨ber die Kirche’”, in: Lexikon fu¨

r Theologie und Kirche 12, Freiburg, 1966, p.336.

71) Cf. Ibid., pp.336~337.

(26)

오게 되었고, 그것이 채택되어서 오늘날의 공의회 문헌 본문에 수용되 었다.

60항에서는 먼저 1디모 2,5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의 중재성이 유 일무이하고 고유하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강조한다. 그 다음에 마리아 의 중재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무이한 중재성에 근거를 두는 것임 을 분명히 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은총을 통해서 그리스도로부터 구원된 이들은 동시에 타인을 위한 구원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확신 이 자리한다.

72)

61항에서 밝혀주고 있듯이 이런 점은 마리아에게 특 별하고 원천적으로 적용된다. 즉 마리아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분을 잉태하였고, 그래서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을 대 상으로 영적인 모성을 발휘한다.

제3절의 두 번째 주제는 63항과 함께 시작한다. 공의회는 교부신학 에 근거해서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이며 모범이라고 설명하는데, 내용 적으로는 마리아의 동정적 모성을 말한다.

73)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 을 낳는 어머니가 되셨는데, 이는 오직 성부께 대한 믿음과 순명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마리아는 믿음과 순명으로 바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에 낳아드렸다. 남자를 몰랐지만 성령의 그느르심을 받고 새 하와 로서 옛 뱀에게 속하지 않고 하느님의 천사를 믿어 조금도 의심치 않 으셨다”(63항).

교회는 마리아의 이런 모성을 본받는다. 즉 교회는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세례성사로써 “성령으로 잉태되어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나는 자녀를 낳아줌으로써 그들에게 불사의 새 생명을 줄”(64항) 때에는 자 신도 생명을 선사하는 어머니가 된다. 그런데 이 모성은 교회가 동정 녀 마리아처럼 신앙과 희망과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유대를 맺으며 따라서 전적으로 하느님을 위해 존재할 때에만 가능하다. “교회는 또 한 동정녀로서 신랑에게 바친 완전한 신의를 깨끗이 지키며, 주님의 어머니를 본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처녀답게 완전 무결한 신앙과 굳은 희망과 진실한 사랑을 지니고 있다”(64항).

72) Cf. Ibid., p.337.

73) 참조: S.Meo, 앞의 논문, 163~164쪽.

(27)

교회의 사도적 활동은 결국 마리아의 이런 동정적 모성을 본받고 실현하는 것이다. “교회는 그 사도적 활동에 있어서도 그리스도를 낳 으신 마리아를 쳐다보며, 바로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에게서 태 어나신 그분이 교회를 통하여 신도들 마음속에도 탄생하시어 성장하 시기를 바라는 것이다”(65항).

4) 제4절에서는 이상과 같은 신학적 고찰을 바탕으로 “교회내의 마 리아 공경”이 어떤 방향으로 실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언급된다.

구원계획 안에서의 하느님 모친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그분께 대한 존경과 공경이 요청되지만, 동시에 마리아의 모든 것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힘입고 있기 때문에 마리아 공경은 어느 것이나 상대적인 것으로서 마리아 공경은 그 자신에 머물지 않고 즉 시 성자와 성부로 연결된다(66항).

67항에서 공의회는 두 가지 극단, 즉 여하한 형태의 마리아 공경을 거부하는 “마음의 협소함”과 “그릇된 과장”을 피하라고 당부한다. 또 한 마리아 공경과 관련해서 교회일치 노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 의할 것을 권고한다. 신학자나 강론가들은 “말과 행동으로 갈라진 형 제나 다른 누구든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하는 것이 라면 무엇이나 다 힘써 피할 것이다.”

5) “나그네 길에 있는 하느님 백성의 확실한 희망이며 위로이신 마 리아”라는 표제가 붙은 제5절은 천상에서 영광을 누리시는 마리아가

“후세에 완성될 교회의 모상이며 시작”으로서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 한 희망과 위로의 표시”가 된다고 고백한다(68항). 마지막으로 공의회 는 갈라진 형제들, 특히 동방 교회에서 마리아께 공경을 드리는 이들 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교회일치와 민족들의 평화와 일치를 위해 서 성모님의 전구를 간구하자는 호소로서 끝을 맺는다(69항).

4.3. 요약과 평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과장되고 감상적인 과거의 마리아 공경에서

(28)

벗어나 보다 성서적이고 교부학적인 바탕을 둔 마리아론을 정립하려 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공의회는 신앙의 원천으로 되돌아가면서 내용 적으로는 마리아를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적, 교회론적 관점에서 고찰 한다. 즉 공의회는 마리아 개인에 대한 새롭고 특별한 찬미가 아니라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을 밝히는 데에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74)

동시 에 공의회 이전에 전성기를 누렸던 ‘특권 마리아론’의 중요한 주제인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성모 승천 교리도 구원론적이며 교회론적인 큰 맥락 안에 적절하게 수용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리아론에서 다음과 같은 기본 신학 노선 을 확인할 수 있다. “아드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뛰어나게 구원된”(원 죄 없이 잉태된) 마리아는 천주 성자를 낳으심으로서 하느님의 어머니 가 되는 영예를 누리신다. 그런데 마리아의 모성은 단순히 생물학적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마리아는 일차적으로 하느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는 신앙적 응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었고 그 다음에 비로소 육체적으로 모친이 되신 것이다(동정적 모성). 이런 신 앙적 응답의 자세는 자신의 이해를 넘어서는 순간에도, 고통 속에서도 계속 견지되었다. 그리고 마리아의 신앙과 순종의 자세는 구원론적 의 미를 지닌다. 즉 하와는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써 비구원의 상황을 초 래했지만, 마리아는 구세주를 보내시려는 하느님의 뜻을 믿고 받아들 여 끝까지 순종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한 새로운 하와가 되셨다.

마리아는 이런 신앙적 태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 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전형이 되신다. 마리아가 성부께 대한 오롯한 믿음과 순명으로 성부의 아들을 세상을 낳아드렸듯이, 교회도 성부의 뜻을 충실히 따르면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게 하는 어머 니가 된다. 또한 천상에서 이미 영혼과 육신의 영광을 누리시는 마리 아(=성모승천)는 교회를 위한 중재를 계속하시는데, 교회는 마리아의 영광 안에서 자신의 완성을 바라보며 희망을 지닌다. 그리스도와 일치 하며 살다가 마침내 그분 안에서 영광을 누리는 마리아는 교회의 탁

74) 참조: 볼프강 바이너르트, 앞의 책, 95쪽.

(29)

월한 지체로서, 그녀의 운명은 교회 공동체의 운명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다. 하느님이 마리아에게 행한 바가 우리 모두에게 완성될 것이 다.

5. 맺는 말: 마리아론의 전망

신약성서는 주님의 모친 마리아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전해주지는 않지만,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함으로써 구세주가 세상에 오실 수 있도록 협조한 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 다. 고대교부들은 육화의 신비와 관련해서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좀더 분명하게 밝혀 내었다. 마리아는 철저히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생활한 여인으로서 불순종의 여인 하와와 대조되는 새 로운 하와이며, 동시에 교회의 전형이며 모범이 되는 인물이라는 것이 다.

하지만 중세 이후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본래의 마리아 상에 많은 덧칠을 하여 마리아를 거의 신적인 존재, 기적의 여 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와 함께 적지 않은 이들이 마리아가 아들 예 수에게 명령할 수 있다거나, 마리아의 자비가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보 다 더 크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성서에 서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렵다. 성서에 따르면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뜻 을 거슬러 행동하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을 아들 예수께로 인도하는 분이고(요한 2,5), 하느님은 심판보다 자비를 앞세우는 분이다.

다행스럽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 공경과 관련해서 그릇된 과장을 피하고 갈라진 형제들이 오해를 품게 하는 말과 행동을 삼가 라고 당부하면서, 성서와 교부들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론적, 구원론 적, 교회론적 마리아론을 제시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도 1974년 3월 에 반포한 교황 권고 마리아 공경 에서 마리아론은 성서적이고 전례 적이며 또한 교회 일치적 성격을 띠어야 하며 인간학적 통찰과도 조 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방향 제시를 하고 있다.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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