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와 역사서술 (1)
역사의 시기구분
역사의 삼분법
• 세계사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는 시기구분법
•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사가들로부터 시작
플라비오 비온도(Flavio Biondo)
• 1392-1463, 포를리
• 로마사와 관련된 저술을 남김
- De Roma instaurata (1444-1448) - De Roma triumphante (1479)
- Historiarum ab inclinatione Romanorum imperii decades (1483)
플라비오 비온도(Flavio Biondo)
• 중세의 연대기 작가들을 비판하면서
• “나는 이토록 거짓말과 경박한 말로 가득 차 있는 글을 지금껏
본 적이 없다”
“중세”의 발명
• 중세(Età medievale, Medii Aevi, Middle Ages)
- 르네상스의 지식인들이 암흑과 야만의 중간 시기라는 의미로 사용
• 중세의 시작 - 476년 로마제국의 멸망
사료비판 기술의 발달
로렌초 발라
• 1407-1457, 로마
• 1429년부터 파비아에서 웅변 술 강의
• 1448년 로마로 돌아와 교황청 서기관으로 근무
• 1440년 『증서』(Declamatio), 콘스탄티누스 기증장 비판 -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분노 를 사 화형을 선고받았으나 나폴 리 왕 알폰소의 중재로 처벌을 면함
- 문헌비평의 발달 촉진
임동현, 『고문서 연구와 18세기 남부 이탈리아의 제왕교권주의』
• 고문서 연구는 각 사본들의 진위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해왔다. 중세 내내 수많은 기 록들의 위·변조가 끊이질 않았는데 대부분의 경우 법률적 분쟁이나 소송에서 물질적 이득을 취하고 자 하는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었다. 그 밖에 교회의 세속적인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목적이나 혹 은 사상적으로 유대-그리스도교 전통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기도 했다. 르네상 사의 인문주의자들은 기록에 활용된 용어들의 정확성, 기록 안에 명시되어 있는 관료들의 직함, 기 록이 작성된 날짜의 표기 방법 등을 분석하여 이러한 위·변조를 적발해냈다. 이와 관련하여 로렌체 발라(Lorenzo Valla)와 이삭 카조봉(Isaac Casaubon)을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할 수 있다. 먼저 로마 출신의 인문주의자 발라는 『위조되었으나 진본으로 잘못 알려졌던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에 대한 논 고』에서 중세 내내 교황령 국가의 적법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던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 증장을 고문서 연구의 관점에서 비평했다. 그리고 이 문서가 8세기에 위조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 다. 이후 제네바 출신의 인문주의자 이삭 카조봉은 1641년 출판된 『바로니우스 비판』에서 발라가 확립한 방법론을 그대로 활용하여 『헤르메스의 서』(
Corpus Hermeticum
)에 대한 문헌학적 비평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고대 이집트인들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되었던 이 저작이 1세기에서 3 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김호연, 『역사란 무엇인가』
• 발라는 언어학자이며 역사학자로서 역사문헌의 언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사 료의 진위를 밝혀내는 획기적인 능력을 보여주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증 장의 허위성에 대하여』(1440)가 바로 그 같은 저술로, 발라는 언어학적 지식과 역 사적 지식을 통하여 콘스탄티누스 기증장이 허위문서임을 밝혀냈던 것이다. 발라 는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교황 실베스터에게 기증했다는 내용의 문서가 4세기 초 의 라틴어가 아니라 8세기의 라틴어로 쓰였다는 점과 기증장에 서술괸 콘스탄티 누스의 통치권 양도에 대한 비현실성, 당시 건설되지도 않은 콘스탄티노플을 교 구로 언급한 허위성, 황제의 관과 복장에 대한 묘사의 허위성 등을 밝혀냈던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