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일_2018.06.10 심사기간_2018.07.01-16 게재확정일_2018.07.26
월북미술가의 북한에서 작품 및 활동 연구
-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따른 작품의 주제별 연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Art and Activity of South - North Korean artists - focusing on Socialist Realism -
오병희, 광주시립미술관
Oh, Byung Hee_Gwangju Museum of Art
차례 1. 서론
2. 월북 미술가의 월북 시기와 활동 2.1. 해방공간 월북미술가
2.2. 6.25전쟁 시기 월북미술가
3. 북한미술 창작의 기본 방향
3.1. 미술 창작의 방침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3.2. 북한미술의 창작 강령 및 시기별 특징
4. 월북미술가의 주제별 작품 연구 4.1. 사회주의 체제에 관한 작품 4.2. 사회주의 경제 기반 노동자, 농민 4.3.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
5. 결론
참고문헌
월북미술가의 북한에서 작품 및 활동 연구
-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따른 작품의 주제별 연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Art and Activity of South - North Korean artists - focusing on Socialist Realism -
오병희, 광주시립미술관
Oh, Byung Hee_Gwangju Museum of Art
요약 월북미술가는 1940년대 중후반 해방공간의 시기와 6.25 전쟁 기간에 거쳐 북한으로 들어간 미술가를 말한다.
이들은 남한에서 북한으로 월북한 후 미술가들을 교육하고 작품 제작을 하는 등 북한미술을 형성하고 발전시키 는데 공헌하였다. 월북미술가들이 1988년 해금되면서 한국에서 월북미술가에 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 이 후 세계적으로 이념의 대립시대가 끝나가는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이념적 대립이 완화되었 으며 이에 따라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에 관한 연구가 다각적으로 진행된다. 본 연구는 북한에서 미술 기반을 형성하였고 작품 활동을 한 월북미술가의 창작한 작품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주제별로 연구하였다. 냉전체제에 서 소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 창작의 기본 방침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이다. 북한미술은 사회 주의적 사실주의를 근간으로 북한 당국의 지침에 따르는 사회주의 노선에 근거를 둔 작품이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가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기법과 정부가 제시한 주제의 작품을 그 린다. 따라서 북한당국의 정책에 따른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은 시기별로 내용별로 구분 할 수 있다. 본 연구에서 는 『조선미술사』를 근거로 시기 구분을 하였으며, 월북미술가들은 제1시기에 인민군을 묘사하거나, 김일성의 항일투쟁의 사적지, 북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 관한 내용의 작품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제2시기는 사회주의 체 제에서 인민의 행복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린다. 제3시기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이 활기 차게 생산을 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을 그렸다. 본 연구에서 이러한 시기별 특징을 지닌 월북미술 가들의 작품을 주제별로 다시 분류하여 분석하였다. 분류한 주제별 항목은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작품, 사 회주의 경제의 기반인 노동자, 농민을 그린 작품,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 등 3가지이며 그 안에 구체적인 주제로 다시 분류하여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에 관한 주제별 연구를 통해 월 북미술가와 북한미술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연구토대가 될 것이다.
South-North Korean artists are Korean artists who have migrated from South Korea to North Korea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1940s and the Korean War. Many of these artists have contributed to North Korean art as both artists and educators. In the Republic of Korea(South Korea), studying South-North Korean artists was prohibited until 1988. Once the ban was lifted and the political antagonism between the two Koreas abated, lively research on South-North Korean artists and North Korean art followed, from many angles. This study looks into South-North Korean artists, whose contributions to North Korean art were considerable, by period and theme. During the Cold War, Socialist Realism was a fundamental, guiding principle of art-making in Socialist nations such as the Soviet Union, People’s Republic of Chin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North Korean art is based on the Socialist route per government guidelines. Therefore, North Korean artists, including South-North Korean artists, are notable for art of subject matter and techniques based on Socialist Realism. Art by South-North Korean artists can be grouped by period and contents, as influenced by the government’s policies.
In the first period, guided by Chosun Art History, South-North Korean artists would either depict soldiers or sites of Kim Il-Sung’s battles against the Japanese army, or work with the theme of North Korea’s Socialist economic development. In the second period artists’s main theme was the people’s happiness under the Socialist system. The third period can be characterized by a Socialist Realism in which productive farmers and urban laborers could be seen hard at work. This study investigates such South-North Korean art by theme. I have identified the following three broad categories: art about the Socialist system, art depicting rural and urban laborers, and landscapes or genre paintings expressing Socialist thought; and I have also identified subcategories. This theme-based research on South-North Korean artists’ practices will contribute to our systematic understanding of South-North Korean artists and North Korean art.
중심어
월북미술가 북한미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6.25 전쟁
해방공간
조선역대미술가편람
ABSTRACT Keyword
South-North Korean artist
North Korean art Socialist Realism Korean War Korean Liberation The History of
Chosun Artists, A Guide
1. 서론
냉전시기인 1950년대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작 품을 제작하였다. 이에 대해 자유주의 진영을 이끈 미국은 추상 모더니즘 미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펼친다. 냉전시기 미국의 미술정책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 데 쿠닝(De Kooning, 1904-1997),마르코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등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을 세계 미술계를 대표하는 작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가 대립하는 냉전체제에서 미국은 통제된 공산주의 국가와 다른 자유로운 국가라는 정치적, 문화적 이미지를 구축하였다. 남한은 자유주의 진영의 미국의 반공 이념에 따라 사회 주의 이념에 따라 전개된 북한미술과 월북미술가 작품과 작가에 관한 연구를 금지하였다. 즉 냉전체제에서 남한은 매카시즘에 입각한 반공 이념이 지배하였으며 월북미술가들과 북한미술 은 정치적, 문화적으로 연구와 전시가 금지 되었다.
본 연구에서 다룰 김용준, 김주경, 정현웅, 이쾌대 등 월북미술가들은 일제강점기 우리 미술계 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중요한 작가이다. 하지만 월북미술가에 대한 연구는 북한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사회적 정책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연구범위가 결정되었다. 한국에서 월북미술 가에 대한 연구범위를 시기별로 살펴보면 1988년 해금되기 전까지는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작가였다. 이 시기에는 소련과 미국의 냉전시기 북한에서 그린 작품에 대한 평가가 유보되었을 뿐 아니라 일제강점기 근대미술사에 중요한 작품조차 연구가 금지되었다. 하지만 미국, 소련, 중국 등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함께 참여하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의 영향으 로 1988년 월북미술가들이 해금되어 남한에 남아 있는 월북미술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 후 월북미술작가와 북한미술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2000년 제3회 광주 비엔날레 특별전 《북한미술의 어제와 오늘》전이 개최되어 북한미술이 한국에 알려진다.1) 또한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에 이루어진 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월북미술가와 북한미술연구가 지속된다.
2007년 이후 10여년 후인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남북한 간의 평화적 화해분위기에서 2018년 가을에 개최 될 광주비엔날 레에 북한미술 작품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2018년 광주비엔날레 북한미술 전시는 북한 미술 전문가가 기획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미술 전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 작가들을 초청하는 방안이 함께 추진되고 있다.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결과,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을 포함한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 사업 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문화관광체육부는 "학술대회 형식이나 남북한 미술의 학술비교연 구, 세미나, 전시 등 다양한 방식을 논의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앞서 서울과 평양에서 공연 을 진행했던 것처럼 북한미술을 가져와 국내에서 전시하고 우리 작품을 북한에서 전시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해 정부차원의 남북한 미술에 관한 상호교류가 추진 중이다.2) 본 연구에서 다룰 월북미술가들은 북한미술의 개척자로 평양미술전문학교의 교원, 전시의 개 최, 북한국기와 국장을 만드는 등 북한미술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월북미술가들은 월북 후 작품 활동은 북한의 정치 노선의 변화에 따른 사회주의적 사실 주의에 기반을 둔 작품을 제작하였다. 남북한이 공존을 위하여 노력하는 화해의 시기에 본 연구는 북한미술, 특히 남한에 거주하다 월북한 미술작가들의 작품과 활동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연구방법으로 월북미술가들이 북한에서 제작한 작품을 직접 보기가 어려워 국내에서 찾을 수 있는 북한 미술 자료를 토대로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자료 조사를 통해 한국근현 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월북미술가들의 북한에서 작품세계와 활동을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한반도 역사의 격변기인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중에 미술가들의 월북 한
1)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의 취지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분단초기 월북미술가들의 작품을 발굴하여 민족동질성 회복의 계기를 만들며 주체미학적 관점에서 제작된 최근 작품을 통해 북한미술에 대한 이해의 장을 마련코자 하였다. 조선중앙미술박물관 등 북한 작품의 전시를 원칙으로 하되,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작품들로 구성하였다.” 『광주비엔날레 20년』, (재)광주비엔날레, 2015, p.71.
2) 아시아경제 신문, 2018년 10월 27일자 ‘[미술계가 본 남북정상회담] "남한서 북한미술을, 북한서 남한미술을"’
<그림 2> 조규봉, 김교필, 지 청룡, 항일빨치산 영웅들, 1956
<그림 1> 길진섭, 종달새가 운다, 1957
이유를 알아보고 월북 이후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에서 창작 활동에 관해 알아보겠다.
이를 위해 필자는 월북미술가 작품을 주제별로 3가지로 분류하여 연구하였다. 연구자가 분류 한 월북미술가의 3가지 주제는 사회주의 체제에 관한 주제, 사회주의 경제의 기반이 되는 노동 자, 농민을 그린 주제,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 등이다. 그리고 첫 번째 사회주의 체제에 관한 주제를 세분화하여 역사적 정통성에 관한 작품, 김일성을 주제로 한 작품, 남한의 정치적 상황과 사회를 비판한 작품들로 나누었다. 두 번째 주제는 사회주의 경제의 기반이 되는 노동자, 농민에 관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주제는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 다. 이러한 작품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풍경화, 주체사상을 담은 조선화, 우리 민족의 민속을 그린 풍속화로 분류하여 연구·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 다룰 월북미술가의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시기의 활동, 북한에서 작품 활동 등은 한국근현대미술에서 월북미술가의 작품 활동을 알고 연구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2. 월북 미술가의 월북 시기와 활동 2.1. 해방공간 월북미술가3)
해방공간에서 친일을 한 화가들은 경력 때문에 1945년 8월에 결성된 조선미술건설본부에 참 여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 미술계는 좌우 대립이 생긴다. 좌파계열의 단체로는 조선프롤레타리 아 미술동맹, 조선미술동맹, 조선미술가동맹 등이 있었다. 그리고 중도좌파와 일부 중도 우파 를 포함한 미술단체로는 조선조형예술동맹, 조선미술문화협회가 있었다. 우파의 미술단체로 는 조선미술협회가 있었으며 중도좌파와 좌파 계열의 혁신계열의 미술가들과 일부 우파의 민 족주의 화가들이 1948년 8월 15일 이후 몰락하게 되자 친일을 한 화가들이 등장하게 되었으 며 대한미술협회가 결성한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보도연맹을 결성한다.
월북미술가들의4) 월북 시점을 살펴보면 먼저 6.25전쟁 이전 해방공 간에서5) 김주경, 길진섭(그림 1), 조규봉(그림 2), 김정수 등이 자발 적 의사로 북한으로 들어갔다. 특히 1946년 7월 조규봉, 김정수, 이쾌 대, 이석호 등은 하순 강원도에 해방탑 건립을 위해 북한으로 갔다가 조규봉과 김정수는 북한에 남고 이쾌대와 이석호는 가족이 있는 서울 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에 이쾌대는 1946년 북한에서 본 북한미술 계의 실정을 적은 「북조선미술계보고」를 1947년 2월 『신천지』
에 기고하였다.
1946년 말에 북한에 들어간 미술가들의 다수는 북한의 예술인 양성
을 위해 설립된 평양미술전문학교 교원이 되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북조선예술총동맹이 결성되고 그 산하에 미술연맹이 조직되어 김일성, 레닌, 스탈린의 초상화 제작과 기념문 같은 선전미술을 제작하였다. 하지만 화단의 중심인 서울에 비해 뒤떨어져 있어 남한출신 예술가를
3) 해방공간에서 친일을 한 화가들은 경력 때문에 1945년 8월에 결성된 조선미술건설본부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해방 후 미술계는 좌우 대립이 생긴다. 좌파계열의 단체로는 조선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 조선미술동맹, 조선미술가동맹 등이 있었다. 그리고 중도좌 파와 일부 중도 우파를 포함한 미술단체로는 조선조형예술동맹, 조선미술문화협회가 있었다. 우파의 미술단체로는 조선미술협회가 있었으며 중도좌파와 좌파 계열의 혁신계열의 미술가들과 일부 우파의 민족주의 화가들이 1948년 8월 15일 이후 몰락하게 되자 친일을 한 화가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대한미술협회가 결성한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는 1948년 12월 시행된 〈국가보안법〉에 따 라 좌익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전향시켜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보도연맹을 결성한다.
4) 월북미술가들 중 중진작가로는 전통화가 : 이석호, 정종여, 이팔찬, 이건영, 서양화가 : 배운성, 김주경, 길진섭, 정현웅, 김만형, 최 재덕, 이쾌대, 이순종, 윤자선, 이해성, 임군홍, 엄도만, 방덕천, 정온녀, 박문원, 기웅, 김용준, 조각가-조규봉, 김정수, 이국전이 있 다. 해방직후까지 신진작가이거나 무명의 작가로는 양화가 :최재순, 윤상열, 채남인, 윤석연, 현충섭, 박진명, 이춘남, 윤향열, 조각 가 : 장기남, 이성화, 이성, 김남표, 박승구 등이다. 월간미술, 1992년 12월호, p.56.
5) ‘해방공간’이 역사 비평 개념으로서 정당한 지위를 얻은 것이 1980년대 초이며, 그것은 ‘해방’ 서사에 대한 민족주의적・국가주의 적 전유에 저항하는 문학 비평에 의해 제기되었다. 테오도르 휴즈, 「냉전세계질서 속에서의 ‘해방공간’: 해방 직후의 남・북한문학」,
『한국문학연구』 28, 2005. 6, pp.4-5.
미술평론가 이구열은 해방공간을 1945년 해방부터 1950년 한국동란으로 보았다. 해방공간의 시기를 조선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부터 한국동란이 일어난 1950년 6월 25일까지를 해방공간이라고 정의 내렸다.
평양미술전문학교 교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평양미술전문학교의 설립은 북조선인민위원회에 서 1947년 3월 11일에 학교설립을 결정하였으며 1947년 9월 평양미술전문학교가 설립되었 다. 평양미술전문학교는 새로운 미술을 담당하고 새로운 미술가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 로 교육을 담당할 교원에 김주경, 길진섭, 김정수 등 월북미술가를 임명하였다.6)
1946년 10월, 북한에 간 김주경은 평양미술전문학교 설립에 공헌을 하였을 것이며 학교 설립 이후 바로 학교장으로 임명된다. 하지만 김주경은 1946년 10월 월북한 이후에도 남한에 들어 와 조선미술동맹의 서울시 지부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6년 12월에 동화백화점에 서 조선미술동맹 창립기념 전람회에 오지호, 남관, 이인성, 박영선 등과 함께 출품한다.7) 김주 경은 남한에서 이론 활동도 지속적으로 하여 1948년 1월호 『신세대』에 「조선민족미술의 향방」이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한다.
1946년과 1947년 당시에는 남한과 북한의 미술가들이 왕래가 가능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활 동이 가능하였다. 이러한 근거로는 이쾌대가 1947년 2월호 『신천지』에 1946년대 말 북한에 들어가 본 북한미술계의 실정에 대해서 쓴 글이나 임화가 1947년 4월 『문학평론』에 북한 문학, 예술에 대해서 소개한 글에서 나타난다. 길진섭의 월북시기는 1947년 7월로 남한에서 좌익 미술가들에 대한 검거와 탄압이 있는 직후이며 평양미술전문학교가 세워지기 두 달전이 다. 길진섭은 조선미술동맹이 미군정에 의해 탄압을 받아 회원들이 탈퇴하고 체포되면서 유명 무실해진 시기에 북한에 들어갔다. 그리고 평양미술전문학교의 교원과 1948년부터 10년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63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김주경은 1946년 10월 월북하여 1947년 11월 헌법작성위원회위원으로 선출되어 북한의 국 장과 국기도안사업에 참여하였다. 1947년 9월부터는 평양미술전문학교 초대교장이 되었으며 그 후 1948년 초 미술대학으로 개편된 후 1952년에 예술학부 교수의 학직을 수여 받았으며 학장으로 1958년까지 재직한다. 1954년 8월 6일 김주경의 주관아래 교직원, 학생들의 미술대 학 제1차 미술전람회를 개최하였으며 이 때 출품된 작품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근간을 두었다. 1949년부터 10여 년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58년 이후 에는 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작품 활동을 지속하였으며 김일성은 1978년 북한 창건 30주년 을 맞아 북한의 국기와 국장 도안에 참가했던 김주경에게 상을 주었다. 이 해 김주경은 『은혜 로운 품속에서』에서 「우리나라 국장과 국기에 깃든 이야기」를 통해 북한의 국기와 국장을 만든 과정을 기술하였다.
2.2. 6.25전쟁 시기 월북미술가
제2차 월북은 6. 25 전쟁 기간 중인 1950년 9월 15일 유엔군과 국군의 인천상륙작전 후 1950 년 9. 28 서울 수복 때 북한군과 함께 북으로 올라 간 미술가들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1950년 6월 북한군이 서울을 장악하자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했던 남로당계 박헌영파의 예술인들이 대거 서울로 들어와 남조선문화단체총연맹을 결성하였으며 산하단체로 조선미술 동맹을 조직하였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 할 때 교도소에 있었던 전통화가 이건영과 양화가 기웅,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박문원, 서울미대 1기생인 김진항이 2차로 월북한 작가이다. 이들 은 사상적으로 좌우대립시기에 좌파 성격을 지닌 예술가로 북한군이 들어 온 후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였을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승만 정권이 만든 보도연맹 산하인 미술동맹에 있다가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북한에 협조한 정현웅, 김만형, 최재덕, 정종여 등이 2차 월북미술가들이다. 보도연 맹은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 후 각종 불법화 된 예술단체의 해산과 반공 예술인들이 아닌 자들 을 사상적으로 전향시키고 교육하기 위한 기관으로 보도연맹 산하에 미술동맹을 운영하였다.
이 때 전향한 좌익계 화가인 이쾌대, 정종여, 최재덕, 김만형, 배운성, 정현웅, 김용환 등은
6) 학교설립에 관한 내용은 해방공간의 신문인 문화일보에 보도되었다. 해방통신, 「새 예술인 양성의 전당- 평양예술전문학교설립」,
『문화일보』, 1947. 3. 13.
7) 전남매일신문, 1977년 4월 18일자 ‘귀향의 길」(61)’.
길거리에 반공포스터를 매주 발표하였다.8)
이들은 북한군의 서울 점령 때 다시 한 번 전향하여 서울미술동맹을 만들고 작품을 제작하였 다. 서울 충무로 가네보(鍾紡) 빌딩에 위치한 서울미술동맹은 정현웅이 서기장이었으며 서울 미술동맹에서 미술가들은 김일성과 스탈린 초상화, 삐라, 포스터 등을 제작하여 전쟁을 지원하 였다.9) 그리고 박문원은 남조선미술가동맹위원장에 임명되었으며 윤자선과 엄도만은 서울미 술제작소에서, 정종여는 국립미술제작소에서 초상화반에 들어가 김일성 초상화를 제작하였으 며 9. 28 국군이 서울을 수복 할 당시 월북한다. 즉 이들 예술가들은 해방공간의 좌우의 갈등 속에서 중도좌파에 속하다가 우파인 이승만 정권에 의해 전향을 하였을 것이고 다시 북한군이 들어오자 다시 한 번 전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북한군이 들어온 후 전향한 작가로 김용준과 정현웅을 들 수 있다. 김용준은 교도소에 있다 출감한 서울대 1기 미대생 김진항에 의해 김용준은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임시교장으로 추대되 어 활동을 하다 교원들을 이끌고 월북하였다.10) 김용준은 월북 후 평양미술대학에서 조선화 강좌 개설이후 강좌장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53년까지 평양미술대학 교원이었으며 1955 년까지 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미술사를 연구한다. 북한에서 1960년 전후 미술 분야에서 조선화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이에 대해 김일성 교시에서는 ‘선명하고 간결한 전통화법을 연구 하여 그것을 우리 시대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 시기 김용준은 이론적 으로 조선화 창작과 조선화를 이념적으로 체계화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론 집필사업’에 관 여한 김용준의 행적을 살펴보면 1959년 이후로 『조선화 기법』(1959)과 『조선화 채색법』
(1962)과 같은 저서들을 남겼다. 『조선역대미술가편람』은 김용준에 대해 조선화의 전통적 인 채색화 형상방법에 대한 이해와 사회주의적 표현력에 대한 확신으로 김일성 항일 혁명 활동 을 형상화하는 창작을 주로 하였다고 기록한다.11)
정현웅은 광복 후 미술인 단체인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서기장을 맡고 조선미술동맹에 참가하 여 좌익 성향을 보였다. 이승만 정권 설립 후 좌익 탄압이 심해지면서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전향 하였으나 북한군이 들어오자 협조하고 국군의 서울수복 전후에 월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 기간에 북한의 문화재가 파괴되었는데 북한 당국은 이를 보존하기 위해 정 현웅을 물질문화 보존연구회 제작부장에 1957년까지 임명한다.12) 정현웅은 고구려 고분벽화 의 보존을 위한 모사를 자원하여 1년간에 걸쳐 안악고분 벽화의 모사를 완성하였다. 이 후 4년간 벽화모사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그림 3) 정현웅이 제작한 벽화 모사도는 북한에서 국보로 취급되어 국가후보지에 보존되어 있으며 평양미술관에 그려진 것은 정현웅의 모사도 를 다시 모사한 것이다. 그리고 1957년부터 1966년까지 미술가동맹 출판화 분과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출판화(그림 4), 역사화, 아동미술(그림 5)에서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67년 조선 예술의 전통과 가치를 재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조선화를 배우고 창작하게 된다.13)
<그림 3> 정현웅, 강서대표 현무도
<그림 4> 정현웅, 삽화
<그림 5> 정현웅, 누구 키가 더 큰가?, 1963
이쾌대는 의용군에 입대 한 후 낙동강 전투에서 전쟁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 었으나 남한에 남기를 거부하고 북한에 갔다. 그런데 이쾌대는 수용소에서 남쪽에 고향과 가족
8) 월간미술, 1989년 3월호, p.56.
9) 권행가, 「1950, 1960년대 북한미술과 정현웅」, 『한국근현대미술사학』21, 2010. 12. p.152.
10) 리재현, 『조선역대미술가편람』,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p.244.
11) 조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돌베개, 2002, pp.261-262.
12) 리재현, 『조선역대미술가편람』,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p.152.
13) 월간미술, 1990년 7월호, p.74.
<그림 6> 정종여, 5월의 농촌, 1956
이 있는 화가가 인민군 포로 신세가 된 것을 한탄스럽다고 자주 말하였다고 한다. 포로석방 시기에 포로수용소 내부에서는 좌익과 우익 포로들 사이에 대립이 극심하였다. 주변 사람의 신망을 얻고 있던 이쾌대에 대해 다른 막사의 반공포로들이 ‘좌익 제거대상’으로 지목되었다.
결국 이쾌대는 포로 심사에서 남한을 택할 경우 풀려나기도 전에 반공포로들 손에 죽을 것을 우려해 생존을 위해 북한을 선택하였다.14) 즉 이쾌대는 정치적 성향 보다는 예술가적 성향이 강한 화가였지만 생존을 위해 북한을 선택한 화가이다.
이쾌대의 북한에서 활동은 조선미술가동맹 소속 화가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1957년 제6회 세 계청년축전에 <삼일운동>을 발표하였으며 전국미술전람회에 <농악>을 출품한다. 1958년 월북 화가 김진항과 함께 중국 인민지원군 우의탑에 벽화를 제작하였으며 1961년 국가미술전 람회에 <송아지>를 출품해 2등상을 수상하였다. 남한에서 1988년 납ㆍ월북미술가 해금조치 가 내려진 후 3년 뒤인 1991년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최한 ‘이쾌대전’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 다. 이러한 이쾌대의 작품이 남겨진 것은 부인 유갑봉이 작품을 소중하게 간직해 왔기 때문이 며15) 해방 직후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그린 작품은 한국근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배운성은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점령당하자 국립미술제작소 판화부 책임자로 작품을 제작하 였으며 국군의 서울수복 시기 북한에 들어간다. 북한에서 평양미술대학 교원과 조선미술가 현역미술가로 활동하였으며 민속적인 주제의 많은 판화를 제작하였다. 이석호는 월북 후 1958 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활동하였으며 1959년부터 1963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 위원장으로 역할을 하였다. 배운성의 월북이유를 살펴보면 배운성의 부인은 여성 지식인 공산주의자였던 이정수로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아 좌익미술단체에서 활약하였다. 이 후 이승만에 의해 조직된 보도연맹에 참여하였으나 서울을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 서울미술제 작소 판화부를 담당한 경력에 의해 북한을 선택하였다.
이러한 북한으로 월북한 예술가들은 북한미술의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하였다. 임군홍은 1961 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개성시 지부장으로 활약하였다. 1970년대 초 김일성이 전통적 회화인 조선화를 토대로 미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함에 따라 조선화로 창작 방법을 바꾸었다.
정종여는 1952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활동하다가 1954년부터 평양미술학교 조선화 강좌 강좌장으로 10년간 재직하였다.(그림 6) 윤자선은 월북 후 조선미술가동맹 현역 미술가로 작품 제작을 하였으며 평양건설대학 미술교원으로 재직하였다. 교직은 아니지만 정 온녀는 1951년부터 내각사무국 전속미술가로 있으면서 김일성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렸다.
이와 같이 6.25 전쟁기간 중 장석표, 이순종, 김용준, 배운성, 윤자선, 이해성, 정종여, 정온녀, 이석호, 이팔찬, 황영준, 월북전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조각가 이국전이 월북한다. 2차 로 월북한 화가들은 6.25전쟁 이전 월북한 화가들과 함께 북한 미술의 기반을 형성하는데 공 헌을 하였다. 특히 김용준, 이순종, 황영준, 이국전은 평양미술대학 교원으로 학생을 가르치며 후진을 양성하여 북한미술의 기반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3. 북한미술 창작의 기본 방향
3.1. 미술 창작의 방침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소련의 영향권에 놓이게 된 북한 미술 창작의 기본 방향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이다.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의해 건국된 북한에서 월북미술가들의 창
14) ‘이쾌대의 1950~1953년 행적이 뜻밖에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함께 생활했던 사람의 후손에 의해 밝혀졌다. 2008년 작고한 화가 이주영의 아들이 아버지가 거제도 수용소에서 이쾌대로 부터 직접 미술지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때 이쾌대가 이주 영의 데생 연습을 위해 직접 필사해 한 장씩 제작한 『해부학 교본』(갱지 48쪽 분량)과 부인 유갑봉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나무 조각상, 몇몇 스케치화 등을 제시했다.’ 한겨레신문, 2010년 10월 8일자.
15) 이쾌대는 북으로 올라가면서 사랑하는 부인과 아이들을 위해 작품을 처분하고 꼭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부부는 분단의 아픔과 함께 다시 만나지 못했고 아내는 그 그림을 소중히 간직해 이쾌대가 근대미술사의 대가로 자리 잡게 하 였다. “아껴둔 나의 색채 등은 처분할 수 있는 대로 처분하시오. 그리고 내 책상, 헌 캔버스, 그림들도 모두 돈으로 바꾸어 아이 들 주리지 않게 해 주시오. 전운(戰雲)이 사라져서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때는 또 그 때대로 생활 설계를 새로 꾸며 봅시다. 내 맘 은 지금 우리 집 식구들과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송, 『이쾌대』, 열화당, 1995.
작활동은 당의 지시 및 국가에서 제시한 문화 정책에 따르는 작품을 제작한다. 북한은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 같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근간을 둔 작품 창작을 한다. 1991년 북한에서 발간한 『문학예술사전』(중)에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란 노동계급의 혁명적 문학 예술,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창작 방법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노동계급의 과학적이며 혁 명적인 세계관, 주체의 세계관에 기초하여 새 시대 인간들의 사상 감정과 생활을 진실하게 생동하게 반영함으로써 시대의 요구와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는 높은 사상예술성을 가진 훌륭 한 문학예술작품을 성과적으로 창작 할 수 있게 하는 현대의 유일하게 옳은 창작 방법이다.”라 고 정의 내란다.16)
미술사조상으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1932년 5월 Literary Gazette에서 문헌상 처음으로 나타난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소비에트 사회의 발전과 당의 지침을 나타내고 있으며 볼셰 비키 혁명은 정당한 것이며 미래에 대한 확실한 약속으로 이를 위해 낙관적인 이미지로 대상을 표현하였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생활상의 진실한 반영(Realism)과 생활 자체를 사회주의 적으로 변혁해 나가는 주체적 노력인 사회주의적 당파성(Socialism)이라는 두 가지 점을 추구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혁명의 초기나 과도기에 나타나는 프롤레타리아 예술과 구별이 되며 과거의 예술을 부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화와 과거의 전통을 변증법적으 로 통일해 나가는 미술양식이다.17)
중국은 극좌 사회주의운동이 이루어진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에 모택동 문예사상이 미술에 영향을 준다. 1942년 마오쩌둥은 ‘옌안 문예 좌담회에서의 강좌(在延安文艺座谈会上 的讲话)’를 발표하였다. 첫 날 대회의에 참석하여 문예창작자의 입장과 태도, 창작학습 및 창 작대상 등 5가지 문제에 관한 강좌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마오쩌둥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문예사상을 계승하여 ‘예술은 영원히 일정한 계급, 사회집단의 사상투쟁의 반영’을 계승한다고 발표한다. 동시에 ‘현 세계에서 일체의 문화 혹은 문학예술은 모두 일정한 계급과 일정한 정치 노선에 속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이 계급을 초월하여 예술과 정치가 병행하거나 혹은 서로 독립 된 예술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발표는 1949년 신중국 성립 이후에 미술가들과 혁명청년들에게 수용되어 정치적 기준에 부합한 혁명고사를 내용으로 삼았으며 작품의 주요 역할은 선전이므로 정치적 기준이 첫 번째이고 예술적 가치는 그 다음이었다.18) 이 후 북한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유일한 창작방법으로 인식하였으며 사회주의적 사실주 의를 근간으로 작품을 제작하였다. 문학수는 “우리 미술의 유일한 창작 방법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생활을 새 것과 낡은 것과의 투쟁에 의한 혁명적 발전 속에서 역사적 구체성으로 진실하게 묘사할 것을 화가들 앞에 제시 한다.”고 하였다. 즉 북한의 예술가들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유일한 창작방법으로 간주하고 작품 활동을 하였다.19) 따라서 월북미술가들의 북한 에서의 작품 활동은 북한의 유일한 창작 방법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근간을 둔 국가가 제시 한 혁명적 내용의 작품을 그렸다. 월북미술가들은 사실성을 근간으로 김일성, 김정일 등 사회 주의 지도자를 묘사함에 있어 강건하고 성심성의껏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하나의 완전한 인간 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풍경, 인물을 그릴 때 사실적이며 밝고 깨끗한 색으로 사회주의 사회를 이상향으로 나타냈다.
3.2. 북한미술의 창작 강령 및 시기별 특징
해방 후 북한은 사회주의 체제의 기초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 이념의 예술적 실천을 목표로 한 북조선문학예술동맹을 1946년 3월 15일에 결성하였으며 1947년 9월 평양미술전문학교를 개교를 한다. 이러한 북한의 문예정책의 기본 방향은 1947년 3월 조선노동당의 당 중앙위원회 제29차 상무위원회에서 채택한 ‘북조선에 있어서의 민주주 의 민족문화건설에 관하여’에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문화예술이 조국과 인민에게 봉사해야
16) 『문학예술사전』(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문학예술편집부, 1991, p.202.
17) Bown, Matthew Cullerne, Art under Stalin, Phaidon․Oxford, 1991. pp.88-95.
18) 王定國, 「毛澤東時代美術的當代解讀」 藝海, 2010年 07期, pp.79-80.
19) 문학수, 「유화에서 민족적 특성의 구현」, 『조선미술』, 1978, p.8.
한다는 전제 아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정에서 ‘민족문화’가 사회주의 정신으로 대중을 교양 시키는 목적을 지니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이후 1947년 제43차 상무위원회에서 미술의 구체적인 실천 강령으로 다섯 가지 사항을 제시 한다. 5가지 강령은 1. 당과 인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2. 근로대중을 선진의식으로 교양하는 사상적 무기가 되어야 한다. 3. 당과 국가의 정책을 올바로 반영해야 한다. 4. 민족문화전통을 계승하고 진보적 문화유산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5. 부르주아 사상에 반대하는 투쟁 을 강력히 전개하여 사회주의적 내용에 부합하는 민족적 형식을 찾아 창작방법을 구사해야 한다.20)이다. 이후 5가지 강령은 북한 미술정책의 기본 정책이 된다.
북한에서 발간한 『조선미술사(2)』에서 북한 미술에 전개에 대하여 시대구분 하였다. 첫 번 째 시기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의 평화적 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이다. 두 번째 시 기는 1954년부터 1966년까지의 전후복구와 사회주의 기초 건설시기이다. 그리고 세 번째 시 기는 1967년부터 1982년까지의 사회주의 미술의 전면적 건설시기로 시대구분 하였다.21) 북한 미술의 제1시기인 ‘평화적 건설시기와 조국해방전쟁시기’는 1945년 8월 15일 해방으로 부터 1953년 6.25 전쟁이 끝나는 시기이다. 이 시기 작품의 주제는 일본제국주의의 청산, 인민 생활과 투쟁의 적극적 반영에 의한 민주주의적이며 사실주의적 미술의 진입이다. 또한 창작에 있어 자연주의적이며 형식주의적 경향과 요소의 극복, 사실주의적 묘사 방법의 확립 등에 있었 다. ‘평화적 건설시기’인 해방 공간에서 북한은 김일성과 스탈린의 초상화와 기념문 등을 건립 하였다는 것을 이쾌대의 글로 알 수 있다. “북조선에서는 도시에서 촌락에 이르기까지 중심지 라든지 로터리라든지 그런 곳에 아-취(門)를 세운다. --- 북조선에서는 政治意慾에 따라 김일성장군의 스탈린 대원수의 레닌의 막스의 초상화가 도시의 주요한 건물에 장식되는 대 그것을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서 미술적인 일개의 작품으로 보기는 곤란 慮조치업다.”22) 그런 데 이쾌대는 이러한 작품들은 정치적인 의미를 배제하면 미술작품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6. 25 전쟁 시기의 미술가의 활동은 ‘전쟁승리 다짐’의 회화, 조각, 포스터, 만화 등에 집중되었 다. 1952년 6월 평양에서 개최된 조국해방전쟁 미술전람회에 당시 북한의 대표적인 유화가이 자 조선미술가 동맹 간부들의 작품인 정관철의 <월가의 고용병>, 서우담의 <돌다리 전투>, 문학수의 <영웅 조옥희>, 문석오의 <증산의 기쁨> 등이 전시되었다. 특히 조선화부에는 2차 월북한 정종여와 이석호의 <바다가 보인다>, <중국인민지원군을 맞이하는 농민>이 전시되 었다. 김용준도 1951년 <후방의 교실>, 1952년 <침략자의 만행>이란 작품을 제작하 였다.23)
제2시기는 전후 복구(1953-1956년)와 사회주의 기초건설시기(1957-1966년)이다. 이 시 기의 북한미술은 첫 번째로 미술에서 주체를 확고히 세움으로써 미술의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 미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실생활과 역사적 사변들을 진실하게 그려내기 위한 사실주의 묘사방법의 완성과 미술의 모든 종류와 형태의 전면적 발전 의 새로운 전환이었다.24) 특히 1955년 이래로 북한에서의 주요 전람회에서는 인민의 생활과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주제 이외에는 별다른 각광을 받지 못했다. 그림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부르주아 형식을 벗어나야만 하는 강박관념이 그들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용해공(鎔解 工)과 강선 지도사업, 농촌운동 등은 6·25전쟁을 미화(美化)하거나 북한 주민들과 군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사실주의적 형상으로 전개해 나갔던 것이다. 혁명적 과업을 주제로 해야 한다는 것, 김일성의 가계를 미화(美化)하거나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은 민족자존을 일 깨우는 작업으로 간주됐다.25)
20) 유홍준, 「북한미술의 사적 전개와 이해」, 『북한의 예술』, 을유문화사, 1990, p.21 재인용.
21) 윤범모, 『한국근대미술』, 한길아트, 2000, p.486.
22) 이쾌대, 「북조선미술계보고」, 『신천지』, 1947. 2, pp.135-137.
23) 이구열, 『북한미술 50년』, 돌베개, 2000, p.68.
24) 이구열, 『북한미술 50년』, 돌베개, 2000, p.72.
25) 양국주, 「수령님 말 한마디에 山水畵는 작아지고…」, 『월간조선』, 2010. 9.
<그림 7> 정창모,
항일유격대를 그린 북만의 봄, 1962
<그림 8> 정종여, 고성 인민들의 전선원호, 조선화, 145x523cm, 1958
1957년부터 사회주의 기초건설 시기에 5개년 계획 달성운동인 속도 경쟁의 천리마운동이 전 개된다. 천리마운동이란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천리마를 탄 기세로 사회주의 건설에서 생산성 을 획기적으로 높이자는 의미로 사용되는 사회주의 노력경쟁운동의 하나이다. 처음에는 사회 주의 생산경쟁운동 형태로 시작된 천리마운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북한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혁명을 촉진하는 강력한 추동력,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이 되었다.26) 그리 하여 1958년 공화국 창건 10주년 기념 국가미술전람회에 ‘사회주의 건설을 향하여 천리마를 탄 기세로 내달리는 근로자들의 모습’이 반영된 작품들이 많이 출품되었다.
제3시기는 사회주의 미술의 전면적 건설 시기(1967-1982)이다. 1966년 10월에 열린 제9차 국가미술전람회 때 김일성이 미술가들에게 한 담화문인 「우리의 미술을 민족적 형식에 사회 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미술로 발전시키자」라고 발표를 한다.27)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았던 조선화는 김일성의 교시에 의해 북한미술의 가장 비중 있는 장르로 뛰어 올랐다. 이 교시에서 김일성은 『조선화를 홀시하고 서양화를 숭상하는 사대주의·
민족허무주의 경향을 타파하고 새롭게 주체적 미술건설사상을 무장시키기 위해 조선화 부문 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역설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북한의 미술계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사실적 채색 표현의 조선화 창작이 한층 다채롭게 이루어져 ‘주체미술의 대전성기’를 이루게 된다.
4. 월북미술가의 주제별 작품 연구
북한 조선미술박물관에 정종여의 <오월의 농촌>(1956), 김용준의 <춤>(1957), 정현웅의
<미제의 남연군묘 도굴>(1956), <1894년 농민군의 고부해방>(1957), 정창모 <북만의 봄>(1966)(그림 7) 등 월북미술가 작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28) 본 연구에서는 북한미술의 기반을 닦고 북한미술사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월북미술가의 작품을 3가지 주제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이들 주제는 사회주의 체제를 그린 주제, 사회주의 경제의 기반 노동자, 농민을 그린 주제,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이다. 그리고 세 가지 주제를 세부적으로 분류 하여 6.25전쟁 등 역사적 사건을 그린 작품, 김일성의 업적과 지도력을 보여주는 작품, 남한의 정치적 상황과 현실을 비판한 작품, 사회주의 경제의 주체인 노동자, 농민을 그린 작품, 사회주 의적 사실주의 풍경화, 주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우리 고유의 민속에 관한 작품으로 분류하여 월북미술가의 작품의 내용을 알아보고자 한다.
4.1. 사회주의 체제에 관한 작품 4.1.1. 역사적 정통성 확보를 위한 작품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작품으로 정현웅이 동학농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고부민란을 그린 <동학군 고부해방>이 있다. 또한 이쾌대는 3.1운동에서 민중들이 일본 헌경에 적극적으 로 대항하는 능동적이고 사실적인 모습을 표현한 <3.1운동>을 그렸다. 같은 주제의 북한 작 가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교육제도를 폭로하는 한정주의 <보통학교 시절>이 있다. 작품은 월사금을 못 내고 교실에서 쫓겨난 소년의 감정 표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운사의
<붉은 륙전대가 오시는 날>은 소련군이 청진상륙 장면을 해방군으로서 묘사한 작품이다.
인민군과 통일을 주제로 한 작품은 항일 무장전쟁 이래의 북한미술의 전통이다. 6.25 전쟁과 북한군을 표현한 작품 으로 정종여의 <고성인민들의 전선원호>(그림 8)가 있 다. 강약과 율동이 살아 있는 힘찬 붓질이 두드러지며 대 담한 여백의 동적인 인물들에서 힘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북한군을 지원하는 후방 민간인들의 활동을 그린 작품이
26) 통일교육원 교육개발과, 「북한지식사전」, 통일부북한정보포털, http://nkinfo.unikorea.go.kr 27) 「조선화 또 하나의 제도권 미술」, 중앙일보, 1989. 5. 9.
28) 조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돌베개, 2002, p.122.
<그림 10> 길진섭, 장혁태, 송찬형, 최창식, 1961
<그림 11> 길진섭, 고봉철, 풍작이룬 청산리, 1965
<그림 12> 이쾌대,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 1961
<그림 9> 주귀화, 재봉대원들, 113x239cm, 1961
<그림 13> 조규봉, 어머니, 조각, 1959
다. 또한 북한의 6.25전쟁 중 참전한 동맹국을 그린 정종여의 <체스꼬슬로벤스코 의료단>, 이석호의 <중국인민군을 맞는 농민>과 같은 작품들도 있다. 같은
주제의 북한 작가의 작품으로 주귀화의 <재봉대원들>(그림 9)과 홍 종원의 <조국을 위해서>가 있다. 홍종원의 작품은 6.25 전쟁을 주제 로 한 대표작으로 실제 주인공인 리수복을 기념비적 형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영식의 <남진하는 길에서>는 샘물을 가지고 나와 후원 하는 남녘의 어머니와 수통에 물을 담아주는 소녀의 모습을 그려 6.25전쟁에서 남한의 민중들의 우호적인 모습이었음을 나타냈다.
4.1.2. 김일성을 주제로 한 작품
김일성을 주제로 한 작품은 김일성이 일제강점기 항일 혁명 활동을 하는 장면과 사회주의 건설 을 위해 활동하는 업적과 지도력을 나타내기 위한 작품이다. 김일성의 혁명적 정통성을 부각시 키는 작품으로는 김일성의 초상화, 항일무장 투쟁기의 김일성의 업적을 찬양하는 작품이 북한 미술의 제1시기에 많이 그려졌다.
월북미술가들은 김일성의 행적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많이 그렸다. 길진섭이 송찬형, 장혁태, 최창식과 합작한 <전쟁이 끝난 강선 끝에서>(그림 10)는 1953년 8월 3일 6.25 전쟁이 끝난 다음 김일성이 강선제강소를 방문하여 노동자를 만나는 장면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기반 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 밖에 길진섭이 장혁태, 이준언과 함께 그린 <작전 임무를 주시는 최고 사령관 김일성 동지>와 길진섭, 고봉철이 합작한 <풍작이룬 청산
리>(그림 11)가 있다. 또한 김만형이 1952년 <공화국 영웅들과 담 화하시는 위대한 수령님>, 임군홍의 <개성직물공장에 오신 김일성 원수> 등 월북미술가들은 김일성의 행적을 중심으로 작품을 제작하 였다. 이러한 작품들은 과거 소련에서 러시아 혁명을 일으킨 레닌과 스탈린을 영웅적 지도자로 묘사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인물화의 묘 사와 기법 등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4.1.3. 남한의 정치적 상황, 사회를 비판한 작품
남한의 정치적 상황, 사회에 대해 비판적 입장에서 그린 주제의 작품이 있다. 이쾌대의 <고향 을 떠나는 사람들>(그림 12)은 미국과 남한정부의 학정에 견딜 수 없어 살 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비극적인 가족의 상황을 그린 작품이다. 아내의 얼굴에 침울함이 남편의 얼굴에 분노가 나타나 있다. 정온녀의 <남녘의 딸들>은 남한의 여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자신이 있고 떳떳한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학생들의 피켓 내용으로 보아 시위는 반미와 반정부적인 시위임을 나타내며 당시 남한 정부에 대한 북한 정부의 비판적인 시각이 나타나있다. 조규봉의 조각 <남녘땅의 어머니>(그림 13)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의 삶에 대한 분노와 의지가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남한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그린 북한작가의 작품으로 정창모, 최 계근의 <4․19 용사들>이 있다. 이러한 남한에 관한 주제의 작품들은 대체로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우월성의 선전과 남한 정부에 관한 비판 을 담고 있다. 이러한 주제의 작품들은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북한체제 를 유지를 위한 목적의 작품으로 남한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담겨져 있다.
4.2. 사회주의 경제 기반 노동자, 농민 4.2.1. 노동자를 그린 작품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는 주체인 노동자와 농민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 하는 북한에서 노동자, 농민들이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역군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기웅의 <용
<그림 14> 기웅, 용해공, 1958
<그림 15> 최계근, 용해공, 160x315cm, 1968
<그림 16> 정온녀, 추수, 1955
<그림 17> 이석호, 소나무, 1966
해공>(그림 14)은 사회주의 경제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노 동자의 일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린 작품이다. 용해공의 표정에서 일에 대한 긍지와 의욕이 표출되어 있다. 정종여의 <용해 공>은 노동자가 앞으로 깊숙이 몸을 숙여 적극적으로 일하는 장면과 함께 일하는 보람을 느낀 듯한 웃음어린 모습을 띤 사회주의적 사실주 의에 바탕을 둔 인물표현이 나타난다. 그 밖에 1958년 사회주의 10월
혁명 40주년 기념 전람회에 출품한 임군홍의 <개성 직물공장>과 길진섭의 <성천광산 공훈 광부의 굴진>이 있으며 조각가 이국전은 <주물공>을 제작하였다. 노동자를 소재로 한 북한 미술작가의 작품인 최계근의 <용해공>(그림 15)은 노동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철을 생산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활달하게 표현하였다.
4.2.2. 농민을 그린 작품
정온녀의 <추수>(그림 16)는 농촌에서 추수하는 농민을 그린 작품이다. 추수하는 젊은 여인 들의 모습을 밝고 생기 넘치게 묘사하였다. 이쾌대의 <송아지>는 농촌 처녀가 송아지에게 젖을 주는 장면을 밝고 맑고 부드러운 느낌이 나게 표현하였다. 갓 태어난 송아지들에게 온갖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붓고 있는 처녀를 통해 축산업을 발전시키려는 북한 정부의 의지가 나타나 있다. 길진섭의 <밭에서 갖는 점심식사>는 농민들이 일한 후 점심을 먹는 보람을 나타낸 작품 으로 노동을 중시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었다. 이러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 은 구소련에서도 자주 그려졌으며 농민들의 모습이 밝고 기운이 넘치게 표현하였다.
4.3. 사회주의 사상을 담은 풍경화, 풍속화 4.3.1.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기반의 풍경화
북한의 명승지인 금강산이나 묘향산을 그린 풍경화의 목적은 조국에 아름다운 산들이 있어 사람들이 자기의 향토와 조국을 사랑하게 된다는 취지의 김일성의 풍경화에 대한 교시에서 시작된 것이다.29) 북한의 풍경화는 사회주의 풍경화로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과 같은 명승을 그려 조국의 강산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껴 조국애를 고양시키기 위한 목적의 작품이다. 인민들 의 적극적인 투쟁으로 더욱더 아름답게 변해가는 자연을 묘사하고 인민들의 사상 감정에 맞는 자연의 풍치를 그려냄으로써 사람들이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을 고양시키는 목적이 있다.30) 이러한 북한의 풍경화는 근대풍경화의 전통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소멸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발전한 형식으로 색채가 밝고 맑게 표현된 사회주의 풍경화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김용준의 공화국 창건 10주년 경축 국가미술전람회 2등 작품인 <강냉이>는 싱싱한 강냉이 줄기와 잎 이 성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뻗치고 있고, 그 사이에서 붉은 맨드라미가 무성한 꽃을 피우고 있다.31) 길진섭의 <초봄의 금강산>과 이석호의 <소나무>(그림 17)도 조국을 사랑하는 마 음을 고취시키는 주제의 작품이다. 북한에서 미술가들은 많은 풍경화를 그렸으며 월북화가가 아닌 북한 작가의 작품으로 백두산을 사실적으로 아름답게 묘사한 김민구의 <백두산 천지>
와 장재식의 <은하리 풍경>등 많은 작품이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둔 김주경의 <묘향산>(그림 18)은 부드러운 느낌의 나무와 산, 자연의 풍광, 중앙에 향산천을 두고 마주보는 산을 두어 원근감을 표현한 작품으로 아름다 움을 느낄 수 있다. 김주경의 <추수기의 들녘>은 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추수 중인 들녘이 나타나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작품으로 넓은 하늘과 조화를 이룬 풍경이 펼쳐지며 추수기의 노란 벼의 표현 등에서 인상주의 기법이 나타난다. 길게 늘어진 볏단은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닌 인간 삶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농업 생산에 관한 장면으로 생산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풍경화의 특징이다. 이런 작품은 감상의 목적보다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29) 월간미술, 1994년 8월호, p.65.
30) 『문학예술사전』(하), 과학백과사전출판사 문학예술편집부, 1993, p.199.
31) 조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돌베개, 2002, p.264.
<그림 19> 김용준, 춤, 1957
<그림 20> 김주경, 만경대, 1960년대
<그림 21> 배운성, 나들이
<그림 18> 김주경, 묘향산, 72x100cm, 1958
농업 생산을 강조하는 것이다.
4.3.2. 주체사상을 담은 조선화와 풍속화
전통적인 승무를 추고 있는 무희의 장면을 그린 김용준의 <춤>(그림 19)은 제6차 청년학생예술축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작품이다. 정지 한 듯 움직이는 춤사위의 연속성에서 조선화가 가진 여백과 간결성의 단면을 포착할 수 있다.32) 김주경의 <청년공원>(1965)은 평양의 천리마를 배경으로 가족을 동반한 시민들이 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사회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행 복이 가득한 이상향으로 표현한 사회주의체제를 홍보하는 목적성이 있다. <만경대>(그림 20)는 1960년대 김일성의 권력 강화와 우상화
를 목적으로 한 작품으로 만경대와 이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아름다운 자연배경과 함께 묘사하 였다. 만경대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상징하는 김일성 가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만경대는 1960년대에 조성사업을 하였으며 김일성이 만경대고향집에서 출생하
여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항일운동을 위해 10대에 고향을 떠났다가 광 복과 함께 다시 돌아와 조부모와 상봉한 역사적 장소이다. “대를 이어 혁명을 끝까지 해야 한다는 사상”이 깃든 곳을 그린 것이다.
배운성의 판화 <나들이>(그림 21)는 어린동생을 업고 나들이 가는 누 나의 사랑스러운 모습, 같이 길을 따라 나온 강아지의 장난꾸러기 같은 장면을 정겹게 표현하였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강조하였는 데 김정일은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곧 문학예술작품의 형식에서 ‘민족적’인 것을 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며 김정일의 민족 적인 것은 우리 고유의 생활감정과 음악, 그림 등에서의 ‘전통적’인 요소
와 연관된다. 바로 배운성의 민속판화는 주체사상과 연관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표현한 작품 이다.
5. 결론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의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 후 남북한 미술에 관한 상호 연구와 전시, 작가와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본 연구는 해방 후 이념의 갈등 속에 북한으로 건너간 월북미술가들의 북한에서 활동과 작품 연구를 통해 남북 한 미술 간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북한미술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목적 을 가지고 월북미술가들이 북으로 넘어간 시기의 활동, 북한에서 행적과 작품 활동에 관해 조사 연구하였다.
본 연구는 먼저 월북미술가들의 월북시기와 활동에 관해 알아보았다. 제1차 월북은 해방공간 의 좌우익 이념 갈등 시기에 자발적 의사로 북한에 들어간 김주경, 길진섭, 조규봉, 김정수 등으로 평양미술전문학교 개교 등 초창기 북한미술 기반을 형성하는데 공헌하였다. 제2차 월 북은 1950년 9. 28 서울 수복 때 북한군과 함께 북으로 올라 간 미술가들이다. 전통화가 이건 영과 양화가 기웅,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박문원, 서울미대 1기생인 김진항은 6.25전쟁 시기 월북하였다. 그리고 서울의 북한군 점령 시기 북한에 협조한 정현웅, 김만형, 최재덕, 정종여 등도 월북한다. 이러한 해방공간의 혼란기와 6.25전쟁기간 중 월북한 미술가들은 북한에 서 평양미술전문학교 교원이 되어 다음 세대 미술인을 양성하였으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에 바탕을 둔 작품 활동을 통해 북한미술이 형성되고 발전하는데 공헌하였다.
이러한 북한미술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월북미술가들과 북한미술가들의 예술창작 기본
32) <춤>에 관해 『조선미술(1960년 1월)은 ‘유한 가운데 강한 맛과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을 주는 생동감과 율동적인 운치를 보인다 고 평가하였고, 이 작가가 이 무용의 특징적인 면을 깊이 연구하여 화면을 통해 그 내면세계를 파악하고 있다.’ 고 설명한다. 조 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돌베개, 2002, 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