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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그림보기] ①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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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ademic y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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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0, No. 3, 2012…341 누드의 여인이 말을 타고 있다. 낯설고 고전적인 마

을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 인 채 조용히 말과 함께 어디론가 가고 있다. 몽환적 인 느낌이다. 이 그림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주고 있고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갖가지 의 다른 대답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80년대를 지 나왔던 사람이라면‘애마부인’이라는 말을 떠올려봄 직도 하고 미술사에 대한 나름의 학식이 있다면 이 그 림은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 19세 기 중엽의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르네상스 시대 라파엘 이전처럼 자연에서 겸허하게 배우는 예

술을 표방하는 반아카데미 유파) 화가 중 한 명인 존 콜리어(John Collier, 1850~1934년)의‘레이디 고디 바(Lady Godiva)’라는 작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혹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모르고서라도 벨기에의 유명 초콜릿‘고디바’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눈치챈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 는 잠시 뒤로 미루어보자.

하나의 이미지가 섭취되면서 우리는 다양한 느낌을 결과로 배설한다. 이 일련의 과정이 바로 그림감상이 다. 그림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 나아가서 예술이라 는 것 앞에 왠지 우리들은 쉽게 위축될 때가 있다. “아

맛있게

그림보기

① 스토리텔링

Storytelling

Lady Godiva by John Collier, c. 1897, Herbert Art Gallery and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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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만큼 보인다”는 유명한 명제 앞에, 나의 무지(無 知)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기가 두려워질 때도 있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르는 만 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림감상,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그림감상과 관련하여 미술교육학계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있었다. 1960년대 말 미국의 미술교육학자 존 데브스(John Debes)가 처음‘비주얼리트러시(Visual Literacy)’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시각이미지는 반드 시 해석되어야 하는 보편적인 텍스트상의 지식으로 다루자고 주장하였다. 미술을 통한 창의력개발 즉 실 기위주보다는 작품의 이미지를 읽고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키우는 비평주의 미술교육론이 대두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림은 배워야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처 럼 간주한다는 입장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야 기를 강조하게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바로 반론에 부딪히게 된다. 미술은 한 개인의 감정과 정서 의 표현이라는 표현주의 예술론의 학자들과 갈등하며 논란이 되었다. 그림은 공부해야만 하는 외국어가 아 니며 예술가의 천재성이나 창의력은 지식에서 출발하 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도 일리는 있다. 최근의 미술교 육에서는실기와 해석의 두 가지 능력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2000년대 이후로 접어들면서 비주얼리트러시는 점 차‘미디어 리트러시(Media Literacy)’라는 포괄적 인 의미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림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가 싶더니, 오히려 온갖 미디어 속에서 이미 지는 수천, 수만의 형태와 의미로 분산되어 섭취를 기 다리고 있다. 사진이 등장하기 이전 시대의 철학자들 이 예술을 모방과 창조 사이의 어떤 의미로 고민했던 것조차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제 예술의 의미는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이에 따라 그림을 감상하는 방 식도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그러나 존재방식이 다양 하기 때문에 재미도 다양해졌다. 50년 전만해도 사람 들은 그림을 보기 위해 직접 어려운 걸음을 해야 했지 만, 이제는 다양한 매체로 원하면 얼마든지 그림을 접

할 수 있고 필요한 정보의 수집도 어렵지 않다.

그림을 맛있게 섭취하는 방법 중 첫 번째는 이미지 를 추리하며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storytelling)’; 즉 그림에서 순간포착된 이야기를 찾 는 것이다. 이것은 미디어 리트러시의 감도가 빠른 사 람일수록, 즉 이미지의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상식을 기초에 두고 해석해낼 수 있는 능력이 높은 사 람일수록 그림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실행하는 첫 번째 과정이기도 하다. 셜록홈즈와 같은 탐정가의 시 선으로 그림을 뜯어 보는 작업이 도움이 된다. 처음에 소개된 말을 탄 누드의 여인 그림을 보면서 추리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지면 특성상 풍 부한 붉은 빛을 볼 수는 없지만, 말을 둘러싼 안장과 휘장의 문양이 중세시대의 명문가임을 나타내준다는 것을 추리해 볼 수 있다. 빛이 동쪽에서 비춰지고 어 쩌면 이른 아침일 것으로 보이는 마을에 이 여인 이외 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여인은 긴 머리결과 가슴을 손으로 가리고 있으며 고삐를 쥔 모습은 목적지를 두 고 질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의자에 앉아 있듯 이 정적인 자태다.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도망치듯 숨으려는 기세도 없다. 말을 타고 있는 이 여인에게서 약간의 수줍음과 기품이 느껴졌다면 이 그림의 의미 가 대부분 전달되었다고 볼 수 있다. 대체 왜 이 여인 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대낮에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을까? 상상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그림감상이 주는 재미 중 하 나이다.

고디바(Lady Godiva, 990년경~1067년)는 11세기 영국의 코벤드리(Coventry)주레오프릭(Leofric) 백 작의 부인이었다. 남편이 자신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 는 농부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소작료를 부과하자 이 들을 동정한 고디바 부인이 남편에게 소작료를 줄여 주자고 요청한다. 백작은 아내의 말을 번번이 무시하 다가 자꾸 조르는 아내에게 황당한 제안을 한다. 부인 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로 말을 타고 마을 거리를 달리면 농민들의 소작료를 감면해 주겠다는 342…NICE, 제30권 제3호, 2012

맛있게 그림보기 - 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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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0, No. 3, 2012…343 것이었다.백작은 내심 정숙한 부인이 벌거벗은 채로

말을 타고 돌아다니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부 인은‘대다수 주민들을 위한 공중의 행복을 위해서’

라는 명분을 내걸고 이 같은 제의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시민들은 고디바 부인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면서 알몸으로 거리를 다닐 때 창 을 모두 닫고 내다보지 않기로 약속을 한다. 부인은 해가 뜨는 아침 7시에 의연히 마을을 돌았다. 호기심 많은 재단사 톰은 약속을 어기고 그 부인의 알몸을 보 고 말았고 그 순간 톰은 눈이 멀어버렸다고 전해진다.

백작은 결국 아내와 약속한 대로 소작료를 낮췄다.

고디바의 이야기는 실화라는 설도 있고 전설이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진위와는 상관없이 고디바의 행동 은 그림과 시, 화폐 그리고 동상으로 기념되며 옛날 코번트리 시에는 이 부인을 기념하는 동전을 만들어

‘공중의 행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라는 작은 글씨를 조각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고디바 부인의 이 런 행동은‘일반적 관행이나 상식, 불의한 힘의 역학 에 불응하고 대담한 역의 논리로 난관을 뚫고 나가는

정치’를일컬어 고다이버이즘(Godivaism)으로 기억 되고 있으며 양복 재단사 톰은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 한 죄로 졸지에 영원히‘관음증이나 호색한’의 대명 사로 자리 잡게 되어‘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 의‘Peeping Tom(몰래 훔쳐보는 톰)’이라는 숙어가 여기서 비롯되었다. 처음에 탐정가의 시선으로 그림 을 추리했다면, 이번에는 훔쳐보는 톰의 시선이 되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출처]그림으로 보는 <고다이바 Lady Godiva>

|작성자 Painwillbehumor

1926년, 벨기에의 초콜릿 장인 조세프드라프스 (Joseph Draps)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며 수세기 동안 변함없이 전해져 내려오는 고귀함 섹시함 모던함을 담을 수 있는 이름으로 고디바를 선택했다고 한다. 귀 족적인 기품 있으면서도 감각적인 매력이 있는 초콜 릿의 이름으로는 아주 적합했을 것이다. 약 1000년 전 의 알몸 시위로 정치적 성공을 거두면서 역사적으로 는 여성 노블리스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아이 콘이 되었다는 고디바 이야기를 알고 다시 그림을 보 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우리는 그림 작품이라고 할 때 자칫 색채 찬란한 유 화나 수채화 같은 서양화만 떠올릴 수 있다. 안타깝게 도 이것은 과거 우리나라 미술교육이 서양미술 편향 이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스·로마 미술로부 터 시작하여 현대 추상화까지 이어지는 서양미술사의 대강을 알면서도 정작 한국미술과는 친하지 못한 경 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 선조가 남겨놓은 많은 그림 중에 들여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작품들이 정말 많 다. 그 중 하나, 김홍도의‘노상파안(路上破顔)’의 이 야기를 상상해보자. 이 작품은 김홍도의 유명한 풍속 화첩 중 하나로 밑도 끝도 없이“길 위에서 미소 짓 다”는 제목만이 이 그림에 대한 정보의 전부이다. 그 러나 정해진 이야기가 없기에 우리는 마음껏 상상해 볼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소를 탄 아낙네, 그 뒤를 쫓는 남 편으로 보이는 남자와 큰 갓을 쓴 양반네와 길에서 마 노상파안(路上破顔)-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畵帖), 국립 중

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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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친 장면의 그림이다. 등장인물은 총 6명, 등장동물 들은 소, 말, 망아지, 닭. 들여다보면 볼수록 묘한 것이 세 어른의 시선이다. 부채로 얼굴을 살짝 가린 큰 갓 의 양반은 누구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지 분명하지 않다. 머리쓰게를 살짝 들어올리는 여인과 눈이 마주 친 것인지 아이와 닭과 짐까지 등에 업고 땀 흘리며 걸어가고 있을 중인 신분의 남편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양반네가 큰 말이 아닌 작은 조랑 말을 타고 가는 탓에 어딘가 품새도한량스러운 기운 이 있다. 조랑말을 몰고 가는 소년몸집의 몸종은 앞으 로만 시선을 둘 뿐 지나가는 행인가족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조랑말이 3월에 새끼를 낳아 5~6월까지 젖을 물린다고 볼 때, 이 장면은 한창 싱그러운 녹음 이 시작되는 깊은 봄. 흔히 여인의 마음이 깨나 뒤숭 숭해진다는 계절이다. 젖먹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여인 의 미소는 어쩌면 걸어가는 와중에 젖을 먹겠다는 양 반네의 어린 망아지에게 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 게 본다면 김홍도의‘노상파안’은 조선시대의 한가로 운 봄날, 사람냄새 물씬 나는 따뜻한 마을 어귀 풍경 의 스틸컷이다. 그러나 불량한 상상을 조금 해본다면 부채로 얼굴을 가린 양반네의 응큼한 미소와 서방 몰 래 눈빛을 주고받는 봄바람난 여인네의 남녀상열지사

의 한 장면이라고 못 할 것도 없다. 마치 스냅사진 한 장처럼 순간의 상황만 남겨진 이 그림에서 작가 김홍 도는 묘한 미소를 던져주고 있다.

그림 속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 고, 이를 통해 감동하는 것은 행복한 결과가 된다. 한 장의 그림을 통한 짧은 상상만으로도 한 편의 드라마, 소설, 영화가 가능해진다. 그림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 어 매체에서 쏟아지는 광고 이미지, 매일 쓰는 제품에 새겨진 로고 디자인의 이미지들도 그저 쳐다보는 것 을 넘어 뒤편의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는 훈련을 한다 면 21세기의 화두,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는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송주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에서 미술사와 미학을 배 우고 오하이오 주립 대학(The Ohio State University)에서 미술교육 석사(MA)를 전공하였다. 수년간 디자인 전문지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디자인과 예술에 관한 다양한 저술을 하 였고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코리아 등 많은 국제 디자 인전시를 기획, 연출하였다. 현재는 예술관련 서적의 편집, 번역을 하며 프리랜서 저술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344…NICE, 제30권 제3호, 2012

맛있게 그림보기 - 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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