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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rience in Psychoanalytic Training in Clev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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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Report 精 神精 神 分 析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精 神精 神分 析分 析分 析 ::第第 12 卷卷 第第 1 號號 2 0 0 1 Vol. 12, No. 1, page 108~118, 2 0 0 1

미국에서의 분석경험 소고

유 재 학*

Experience in Psychoanalytic Training in Cleveland

Jaehak Yu, M.D.*

이 글의 목적은 제가 어떤 과정으로 미국에서의 정신분 석공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 및 결과를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런 글을 쓰는 것이 아직 때 이른 감도 없지 않지만- 특히‘결과’가 어 떤지에 대해서는 먼 훗날 평가를 하여야 한다고 생각됩니 다- 여러 가지 정황이 이 글을 쓰게 하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일년 여 남짓한 기간을 이곳 Cleveland에서 보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분석공부 준비

모든 정신과 전공의 지망생들이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다소간 차이는 있겠으나, 모두들 정신과 질병의 치료 중 정 신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처럼 여겨 집니다. 이곳 미국의 정신과 지망생들은 그 생각이 조금은 다르다고 느껴왔는데, 정신과를“brain을 연구하는(다루는) 내과” 정도로 생각하는 의과대학생들도 많이 경험하였습니 다. 한국에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 다고 추측됩니다.

아무튼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국에서의 정신과 전공의 시절 정신치료를 좋아하였고, 특히, supervisor K선생님의 도움으로 정신분석의 이론을 많이 접하게 되었고, 이 이론 이 환자를 이해하는데 지금까지 발견되어온 방법 중 가장 그럴듯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환자 에 대한 약물치료 경험도 매우 중요한 것이어서, 약물의 효 과가 분명히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약물치료에 대한 정확 한 이론의 부재는 저로 하여금 정신치료에 더 관심을 가지 도록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생각으로는 앞으로 정

신분열병의 정신병리를(사람들의 사고나 기분까지도) 뇌 내 의 화학물질의 정량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는 날이 꼭 오 게 되겠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환자의 고통경감(치료)이 고, 이 정신과적 치료의 mechanism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biology보다는 환자의 심리학적 이해가 꼭 필요하다는 정 신분석이론이 더 피부에 와 닿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러나 Freud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최근의 효과 있는 정신 과 약물이 available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고, 이러한 연 유로 해서 정신분석이론도 많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됩 니다. 그리고 그 이론도 많이 수정된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정신분석의 대가 중의 하나인 Anna Freud의 저서 중에는 자폐아에 대한 정신병리를 설명한 대 목이 나오는데, 그녀는 자폐아가 환경(부모를 포함해서)의 아동에 대한 response의 지속적 부재로, 아동 자신이 외부 로부터의 response를 포기하고 본인만의 stimulation-re- sponse를 하는 식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현대의 정신분석 가중 자폐아가 위의 이론으로 인하여 형성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 기억할 중요한 일은 왜 Anna Freud는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보는 것이라는 것을 저는 이곳 Cleveland에서 체험하 게 됩니다. 결론 중의 하나는 그녀는 부모-아동간의 상호 stimulation-response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것으로 생 각됩니다.

저는 정신과 전문의가 된 후, 1991년 정신분석학회 회원 이 되었고, 제 나름대로 학회의 원로 선생님들로부터 무언 가 배워보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정신분 석의 논문들을 더 많이 읽게 되었고, 정신치료 증례도 가지 게 되었습니다. 학회의 원로 선생님들의 의견으로는 조만 간 우리 학회도 국제학회가 인정하는 study group이 되고, 외국 분석가를 한국에 초청하여 한국에서 분석을 받을 수 있으면, 우리회원 중 다소는 국제학회가 인정하는 분석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청사진이 저를 고무시켰습니다.

*Clinical candidate, Cleveland Psychoanalytic Institute. Cleveland, Ohio, USA. & Clinical fellow, Addiction psychiatry fellowship pro- gram, University Hospitals of Cleveland/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Cleveland, Ohio,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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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의 말씀이 매우 vague

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론은 그럴 듯 한데, 그 evidence는 별로 없는 것 같고, 전 시간에 배웠던 정신 분석의 이론들은 다음시간에 잘 연결이 되지 않았고, 책을 읽어도 제것으로 만들어 가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곳에 와서 느끼게 된 것 중의 하나는 실지로 정신분석의 경험이나 치료경험이 없이는 정신분석의 이론 이 어떻다는 것을 매우 알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서울에 서 부족했던 것은 다름 아닌 경험의 결여였다는 결론에 도 달하게 됩니다.

이곳의 한 seminar에서 한 제 질문이 기억납니다. Psy- chotherapy 환자를 psychoanalysis 환자로 전환하는 문제 에 관한 seminar이었는데, 제 질문은 환자에게 어떻게 정 신치료와 정신분석이 다른지, 정신분석이라는 것을 초심자 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하는 것인지 이었습니다. Dr T 라 고 기억되는데, 그는 정신분석에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정 신분석의 경험을 얘기한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지 적하였습니다.

왜 외국의 분석가가 우리 나라에 오기 힘든지도 이곳에 오니 훨씬 이해가 쉽더군요. 단 한사람의 분석환자가 남아 있어도 그를 소흘이 다룰 수 없고, 분석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분석치료의 특징 때문이라고 이해되 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 대, 제가 의과대학생 시절, K선생님 의 정신과 강의 도중 느닷없이 당신께서 분석가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하시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것은 80년 대 초의 일이었고, 90년대가 되면서 이 희망이 더 높아졌 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한국에서의 정신분석가 배출은 언 제나“희망”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91년으로 기억되는데, 분석학회에서는 Dr K를 초청해서 서울에서 seminar를 가졌습니다. 그리고는 여러분들도 많 이 하시는 Seoul Tour를 Dr K와 하게 되는데, 북한산 정 상에 가까운 한 레스토랑으로 기억됩니다. 저는 그때, 지금 San Diego에 와있는 K선생과 Dr K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Dr K는, 본인은 대학을 남미의 한 나라에 서 졸업했으며, 미국에는 30대 중반에 가게 되었고, 그때 모든 것을 다시 시작했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 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세계적인 유명한 학자도 그 의 career를 30대 중반에 시작했다는 사실에 감명 받아, 미국 행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느끼고 있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은 너무 조로 하는 경향이 있어서, 나이 30이 되면 본인의 장래를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반면,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은 30의 나이이면 어 떤 일이나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극단의 예가 되겠습니다만- 몇년 전 이곳 institute의 소아정신분 석 과정의 candidate 중의 한사람은 성인정신분석과정을 끝내고 개업을 하고 있는 중견 분석가였는데, 뜻 한 바 있 어 소아분석을 다시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60의 나이로 이 과정에 apply하였고, 70의 나이에 이 과정을 끝낼 수 있었 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분은 70의 나이에 은퇴를 결정하였고, 소아분석가의 certificate를 받은 지 몇 달만에 은퇴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곳 원로 분석가의 한 사람인 Dr A는 80대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인데, 제가 Cleveland 에 온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 습니다.

Dr Yu는 젊으니 참 좋겠습니다. 아직도 30대지요?(그때만 해 도 저는 아직 30대였습니다) 분석공부가 평생공부인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시작하니 얼마나 좋아요. 나는 좀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아직도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아요.

93년경으로 생각되는데, 저는 미국의 여러 정신분석 in- stitute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싶은 한국의“학도”인데 특별히‘깍두기’라도 좋으니 미국 의 정신분석 institute의 candidate가 될 수 없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답장편지들은 모두 친절하기 그지없었지만 대답은‘no’였습니다. 단, 모두들 recommend하는 것이 미국에서 다시 정신과 resident를 할 수 있다면, 저의 pro- gress를 보아가며 institute의 입학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저를 쭉 개인적으로 후원해 주고 있는 Dr T도 미국에서 분석환자를 볼 수 있는 길은 이길 밖에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Dr T와의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이분이 한국에 seminar를 하기 위해 방문하였을 때, 민속촌을 tour하면서 저는 정말 미국에 가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고 싶다는 간절 한 희망을 피력하였고, 그 이후로 Dr T는 줄곧 저에게 조 언과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에 있을 때, 대부 분 이분과의 연락은 fax를 통하여 이루어졌는데, 제가 fax 를 하면 바로바로 다시 fax를 해 주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 었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fax한 날보다 하루 빠른 날짜의 답장을 받게 되는데, 한국과 미국의 시차 때문에 말입니다.

이런 친절을 경험해 보지 못한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서 분 석가에 대한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 습니다. 세계적인 분석가가 나의 편지에 일일이, 그것도 최 단 시간 내에 답장을 해준다?- 매우 기분 좋은 일이었습 니다. 이런 것이 분석가의 자세인 것 같다는 생각이 이 글 을 쓰면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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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resident 생활은 이렇게 해서 결정되었습니 다. 실지로 저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으로서 미국에 서의 정신과 resident가 과연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 었었고, 환자며 보호자를 영어로 대하기도 겁나는 일이었 고, resident면 꼭 해야하는 당직이 지겹기도 했습니다. 그 저 차분히 나 자신의 정신분석을 받고, 4년간의 didactic course에 참가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best achieve- ment가 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정신분석만을 접하는 것이 제 자신도 편하고, 저의 미국 행의 목적에 좀 더 부합 되는 것으로 생각되었었습니다.

(당직-정말 지겨운 당직. 저는 이곳 Cleveland에 정신과 3년차로 transfer했는데, 4일만에 돌아오는 on call duty는 정말 지겨운 과제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녁 5시가 되 면 병원에 남아있는 정신과 의사라고는 저와 1년차 intern 두 사람뿐이고,- 물론 backup call이 있지만- 하루는 당 직을 시작하면서 beeper가 몇 번이나 울리나 세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녁 5시부터 아침 7시 30분까지 30번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세는 것도 잊게 되었지만 말입니 다. 이 시절 저는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왜 사서 이 고생 을 하고 있나? 난 너무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 그래서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지금도 addiction psychiatry fellowship program의 full time job을 하면서, 그리고 institute의 seminar를 위해 읽 어 가야 하는 paper가 책상 위에서 첫 장도 들추어지지 않 은 채로 있는 것을 보게 될 때, 어느 세월에 이 논문들을 소화시켜서, 저보다는 정신분석이론을 많이 알고 있는 다 른 candidate들(주로 psychologist, social worker, 그리 고 sociologist도 있는데, 정신분석의 이론에 매우 밝고, 정 신치료의 경험도 많습니다.)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또, 이곳 미국의 정신과는 이제 기본적으 로 biology-oriented 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과 resident 나 소아정신과 fellow 그리고 addiction psychiatry fellow 를 하며 정신과의 biology part에 exposure되어온 저로서 는 과연 이런 biology oriented psychiatry의 view point 가 정신분석의 이론을 습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에 의문이 많았습니다. 즉, 현대의 정신과를 공부하는 것이 정 신분석 이론과 상치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입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최근에 이곳 분석가 Dr G에게서 들은 바는 제 의문에 답이 될 것처럼 생각됩니다. Seminar의 discussion은 psychoanalysis가 medical treatment인가 아니면, psychological treatment(medical treatment가 아 닌)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이 discussion은 여러 가지 이 유로 매우 복잡한 것 같습니다). Dr G는 이야기하길 다년

간의 MD 및 non-MD들에 대한 supervision 경험은, 똑 같은 분석교육을 받아 분석가들이 되어도, 이들은 각기 본 인의 background에 준해서 분석환자를 보더라는 것이었습 니다. 즉, MD analyst와 non-MD analyst들은 환자를 보 는 관점이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Freud의 저서 중“lay-person analysis”에는 medical doctor가 analysis training을 받을 수 있는 candidate 중 가장 나은 위치에 있지 않을까 하는 언급이 있습니다. 환자 들의 physical pain을 경험하는 medical doctor가 좀더 깊 은 환자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이러한 이론은 최근 강조되고 있는“ego is primarily body-ego”

라는 이론과 맞물려서 저에게는 지금까지 해 왔던 정신과 training이 정신분석과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정신분석 의 이해에 꼭 필요한 길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는데 도움 을 주고 있습니다.

New York에서의 암울했던 생활

저는 95년 New York 주의 SUNY(뉴욕 주립대) at Stony Brook의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1년차를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아침마다 들어서는 병원현관은 언제나 저에게 다음 과 같은 생각을 하게끔 했습니다.- 이제 또 정말 긴 하루가 시작되었군. 마치 지옥에 가는 느낌인데, 어느 세월에나 이런 지겨운 기분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을까?

환자와 말이 통하지 않는 정신과의사- 그것이 바로 저 였습니다. C선생님께서 수년 전 New York를 방문하셨을 때 본인의 미국에서의 수련 경험을 이야기해 주신 기억이 납니다.

C선생님 말씀하시길, 말이 안 통하니, 묻고, 또 묻고, 세 번 묻고, 네 번---, 한번 갈 것, 두 번, 세 번 가게 되고, 그러는 와중에 program에서는 나와 미국 resident의 환자의 치료 결과 를 비교했던 것 같은데, 내가 담당한 환자의 prognosis가 미국 resident의 환자에 비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저도, 말이 안 통하면 묻고, 또 묻고, 눈으로 대화하려고 애쓰고, 또 한가지 episode가 생각납니다. 말이 안 통하니 환자를 상대로 처음부터 interview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 각한 저는 제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환자의 chart뿐이라는 생각으로, 환자가 입원하면 먼저 chart를 읽기 시작했습니 다. 그런데 이 chart도 문제였습니다. 꼬부랑 글씨를 더욱 꼬부라뜨린 영어는 저에게는 완전히 암호해독 작업이었습 니다. 저녁 6시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저는 chart를 가 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저녁을 대강 먹고, 집사람과“암호 해독”을 시작했습니다.- 이건 c자 같은데, 아니 d자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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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에서는 이게 c자가 분명하잖아---(저는 집사람에게 정

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리고는 그 결과를 가지고 병동 으로 다시 가서 환자를 interview하고 다음날 presentation 을 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한번 벌어졌습니다. 96년 늦은 가을로 기억됩니다. 저는 그때 정신과 응급실(내과 및 외과 응급실 과 구분되어 있음)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 니, attending이 말하기를, 어제 저녁 한 한국인이 경찰에 의해 남의 boat에 들어가, 자고 있다고 하여 정신과 응급 실에 들어 왔는데, 이미 evaluation이 끝나고 별 증상이 없 는 것 같아 집으로 보낼 생각인데 보내기 전에 저더러 한 국말로 한번 interview 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리고는 저에게 묻기를 제가 North Korea 출신이냐, South Korea 출신이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South라고 대답 했더니, 하는 얘기가 환자는 North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참으로 이국 땅에 와서 여러 가지를 경험하였지만, 내 가 북한사람을 상대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일인데 하 고 생각하면서, 가벼운 흥분도 느꼈습니다. 한국말로 inter- view를 시작했습니다. 이 환자는 50대의 남루한 차림의 남 자였는데, 처음에는 한국말로 하니, 그분도 반가 왔던지, 활 짝 웃으며, 제가 언제 미국에 왔는지, 일이 고되지는 않느 니, 본인은 잠시 집에서 나온 상태가 되어 남의 boat에서 하룻밤 기거하는 신세가 되었다는 둥, 소위 정상적인 대화 를 구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계속하길 본인은 북 한 출신이고, 북한이 싫어 미국에 오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군대에서“중령”까지 하였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데 제 한국말 상식으로는 북한에서는 중령대신“중좌”호칭 을 사용한다는 것이었고 의아하게 생각한 저는 계속 말을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환자는 decompensate되더니, 결국 본인이 북한출신의 고급장교라는 delusion을 가진 환자(남 한에서 온)로 판명이 나더군요.- 환자는 집에 가는 대신 state hospital로 transfer 되었습니다.

한국의 정신과 의사라면‘중령’과‘중좌’의 차이를 알아 야 하듯이, 미국의 정신과 의사라면 미국의 군대계급쯤은 꾀고 있어야 할텐데, 저의 영어는 전혀 그런 수준이 아니었 습니다. 그리고는 말의 뉘앙스로 판단해야 하는 정신분석 이 나의 영어실력으로 가능한가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 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이러한 language barrier나 cultural barrier는 정신분석 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예를 하나 더 들겠습니다.

저의 분석가인 Dr T는 몇년 전에는 Labor Day weekend (Labor Day weekend는 미국의 중요한 명절의 하나로서

길고 더운 여름을 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 학년을 시작 하는 의미 있는 날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가 지난 9월 첫째 주 월요일 다시 환자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8월초로 기억되는데 분석에서의 방학을 며칠 앞두고 저는 언제 다시 분석 session이 시작되는지를 분석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몇 달 전에 분석가에게서 언제 방학이 시작되 고, 언제 방학이 끝나는지에 대해 한번은 들었지만 확인할 겸 한번 더 물어 보았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언제 다시 오면 될까요? -전에 난 분명히 얘기한 것 같은데.- 네, 제가 들었 는데 잊었습니다.- Labor Day Weekend가 끝나면 다시 시작 합니다. 분명히 forgetting이 있으니, 한번 연상을 해보세요. 는 Labor Day에 대해 연상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Labor Day(like a May Day)와 미국의 Labor Day(as a new start)는 아주 다른 것이었습니다. 분석가는 저에게 처 음이자 마지막으로 본인이 실수를 한 것 같다고 하더군요.

분명히 language difference와 cultural difference가 있 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저는 미래의 한국에서의 분석환자 에 대한 경험이 저에게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 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감정과 사고에는 common한 부 분이 많기에 interracial analysis도 가능한 것이고, 영어가 서툴더라도 미국환자를 이해할 수 있고, 프랑스영화를 우 리말 자막 없이 보아도 감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2년 동안 머물고 있었던 New York주의 Stony Brook은 작고 평화스러운 대학도시였으나 분석가는 이곳 에는 없었습니다. 미국 지리에 깡통이었던 저는 그저 막연 히 New York 근교의 도시이니, 이곳에서 분석 institute가 많은 Manhattan으로 분석도 받으러 다니고, seminar도 참 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Manhattan까 지는 편도로 두 시간 반 정도의 거리여서 출퇴근이 불가능 했습니다. 미국에 온 목적이 분석공부인데, 분석공부를 못 할 위치에 있었던 셈이죠. 그리고 이곳 병원의 정신과는 extremely biologically oriented된 program이어서 분석 가 training을 받은 원로 psychiatrist도 ECT의 expert가 되어 있는 그런 병원이었습니다. 단, 저를 program에 acc- ept해준 Dr H는 분석적 정신치료에 관심이 많은 psychi- atrist로 저를 2년간에 걸쳐 psychotherapy supervision 을 해주었고, 대학의 counselling center에서 환자를 refer 받아 두 case의 weekly psychotherapy를 했던 기억이 납 니다.(반은 흘려보내고, 반은 듣고.)

정신과 2년차가 되면서 program을 옮길 생각을 하기 시 작했습니다. 다시 Boston, New Heaven, Philadelphia, Washington DC, 그리고 Cleveland의 분석 institute와 psychiatric training program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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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Boston과 Cleveland의 institute에서 가장‘친절한’ 장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가지고 온 분석비용 을 생각했습니다(Resident의 월급으로는 이곳에서 최소한 의 생활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Boston에서는 2~3년 을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으로 Cleveland로 방향을 잡았고, 이곳의 psychiatric program에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습니 다(참고로 여러 variation이 있을 수 있으나, 최근의 top analyst의 한시간 fee는 New York, Boston, Washington DC등이 모두 $200~$250 정도이며, Cleveland는 $100~

$150 정도라고 합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분석 institute에서 accept가 되어도 저의 신분으로는 psychia- tric program에서 accept가 되어야 타 도시로의 이주가 가 능했기 때문에 Cleveland로의 transfer 건은 숨죽이는 나 날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96년 12월 저는 New York의 Waldorf-Astoria Hotel 에서 San Diego의 Dr T의 주선으로 제 분석가가 된 Dr T 를 만나게 됩니다. 그 당시에 Dr T는 Cleveland Institute 의 education committee의 chair 자격으로 저를 만났는데, 그 친절함에 저는 한눈에 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 고 이때의 인연은 제가 Cleveland에 와서도 계속되어, 저 의 분석가를 Dr T로 정하게 했습니다.

세월이 미국도 많이 변하여 십여 년전만 하더라도 분석 과정의 candidate들은 각 institute의 education committee 가 정해주는 분석가를 배정 받았었다고 합니다. 이 과정 이 하도 궁금해서, 이곳 원로 분석가의 한 분인 Dr S에게 education committee는 어떤 원칙을 가지고 analyst- candidate match를 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Dr S 는“in sequence”(순서대로)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 던 것이 지금은 candidate가 분석가들을 interview하고, 본 인이 본인의 분석가를 고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도 Clev- eland에 와서 서너 사람의 analyst를 더 만나보고 저의 분 석가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의문은 많습니다. 어떻게 한두 번의 만남으로 궁 합이 맞는지를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Analyst-analy- sand mismatch가 analysis의 failure의 한 원인이라는 것 도 사실로 생각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은 거꾸로 in- stitute에서 candidate를 어떻게 accept하는지 하는 문제 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해결책의 정답은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다섯 사람의 분석가중 저의 분석가를 정 하게 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 fee라고 생각됩니다. Dr T는 저에게 discount fee를 적용했습니다. 저로서는 normal fee를 감당해 낼 수 없는 처지이긴 했지만, discount fee는

또 나름대로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 한 것 중의 하나는 분석가에 대한 aggression의 expres- sion 문제인데, 본인의 fee를 깎아준 analyst에게 화를 내 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곳 Cleveland의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의 부속병원인 University Hospitals of Cleveland의 정신과 program과 Cleveland Psychoan- alytic Institute는 저를 accept해주었습니다. 97년 3월경으 로 생각되는데, 이곳 정신과 program의 training director 인 Dr R(이분도 제가 평생의 은인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 게 되었는데, 정신분석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신과의사 로서 정신분석을 공부하겠다는 저를 끝까지 support하게 됩 니다.)의 전화를 받고, 하도 기뻐서 환자를 보다 말고 밖으 로 나와 만세 삼창(한국말로)하던 생각이 납니다.

Cleveland와 Cleveland Institute에 대하여

Cleveland, Ohio는 Lake Erie의 남단에 위치한 공업도 시입니다. Steel Industry로 유명하고, 포항제철이 가동된 이래 steel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아서 영화가 예전 같지 는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곳은 Super- man의 만화가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고, Rock and Roll의 고향이기도 하며, 또 Cleveland Indians란 야구팀으로 유 명하기도 합니다. Cleveland Metropolitan의 인구는 250 만으로 Ohio에서는 가장 크고, 이곳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 곳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 다. 실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Cleveland Orchestra도 있 고 이곳 사람들이 자랑하는 Cleveland Museum of Art에 서는 우리 나라 중학교의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유명한 그 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은 이리호의 영향으로 눈 이 많고 흐린 날이 많아서, 왜 병원의 내부가 정말 화려한 지를 이곳에 와서 몇 번의 겨울을 지낸 후에야 알게 되었 습니다. 궂은 날씨를 compensate 하기 위해 밝고 화려한 조명이 필요한 것이겠죠. 여름은 미국의 어디나 그렇듯이 쾌적하고, 특히 제가 보기에는 이곳의 autumn color가 매 우 화려합니다.

New York에 비하면 매우 사람들이 친절하고 인간적이 어서, 집사람은 아이들에게도 Cleveland로 이사오게 된 것 은 매우 잘된 일이라고 평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런 분위 기에서 아이들은 순진하게 자라고 있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아이들이라 생각하면 서울의 복잡한 환경에 잘 적 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이곳의 Cleveland Psychoanalytic Institute는 규모는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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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매우 활동적인 program으로 알려져 있는 institute입

니다. 1950년대 말에 창립된 이곳은 Orthodox Freudian 을 지향하는 전통적인 곳인데, 초기에는 분석가들이 Phila- delphia에서 많이 배워 왔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오랜 분석기간과 주 5회의 분석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분석을 받아야 분석이 끝나게 되는 지- 과연 저는 이곳에서 저의 분석을 끝낼 수 있는지- 이 곳의 분석가에게 마다 물어보았습니다만, 그저 듣는 이야 기는 다른 institute 보다 길다라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정 신분석이라는 것이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대강이라도 말하게 되는 것이 적당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재 미있는 것 하나는 candidate들끼리도 각 candidate들의 분석 fee가 얼마인지 서로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 있다면, 저와 같은 candidate인 Dr R은 이미 7년째 본인의 분석을 하고 있으 며, 제가 기억하기로는 수년 전에 Houston-Galveston Psychoanalytic Institute(Texas)에서 받은 회신 중에, 그 곳에서는 candidate들의 분석시간으로 700~800회 정도 의 session을 권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곳에서 제가 내 년까지 분석을 받게 된다면 1200 session 이상을 하게 되 어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이곳 분석가들의 지론은 분석은 쉬는 날 없이 계속해야 한 다는 것이며, -주말은 할 수 없이 쉬는 것이고,- 경험상, 가 장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이런 continuous analysis 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철저한 분석으로 모든 환자의 갈등이 해 결되고, 모든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 니다. 이곳의 seminar를 계속 듣다보면 분석이론에도 어떤 흐름이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 같은데, 그 흐름중의 하나는 complete analysis는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Freud는 분명하게 분석으로 인하 여, Oedipus conflict의 resolution이 오게 되고, 그로 인하 여 치료가 된다고 명기하였습니다만, 이곳에서 듣는 이론, 그리고 경험하는 것은 complete resolution of Oedipus conflict는 실지로 없고 이것은 일생을 두고 반복되는 갈등 이며, 분석가에 대한 transference도 영원하고(partial re- solution of transference instead of complete resolution), complete free association도 없다는 것입니다. 단, 그러한 쪽으로 지향한다는 것뿐이죠.- 몇년 내에 꼭 분석을 끝내 야 한다는 저의 강박적인 생각은 이런 흐름의 감지와 함께 조금은 relieve된 듯한 느낌입니다.

이곳 institute의 구성은 교육분석가 8명을 포함하여 활동 하고 있는 분석가는 60여명, 그리고 candidate까지 합하여

한 70여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아분석으로 유명한 Hanna Perkins School은 Cleveland Psychoanalytic Institute와 는 전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소아정신분석 program이며, 이곳에 다시 소아분석가 및 candidate가 있습니다. 다수가 70대의 노인들이지만, 50대의‘젊은’ 분석가의 활동도 ac- tive하고, 저는 이곳의 candidate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 린 축에 속합니다. 미국의 어느 institute와 마찬가지로 젊 은 층의 MD는 적어서 지금은 candidate중 저만이 유일한 MD입니다.

가끔 정말 할아버지 분석가와 seminar를 하면, 이곳 in- stitute의 curriculum의 역사에 대해 듣게 되는데, 최근 10~15년 전에 object-relation theory를 교과과목에 집 어넣었으며, 5년 전부터 매년 New Kleinian의 대모 격인 London의 Betty Joseph을 초청하여 배우고 있으며, Chi- cago의 self-psychologist들도 일년이면, 두세 명 정도 강 의와 seminar를 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Katan Center(Anny Katan은 London에 있을 시절 Anna Freud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1950년대에 Cleve- land로 이주하여 이곳의 institute를 시작한 사람중의 한 사람임)는 이곳의 institute에 속해있는 기관인데, 환자를 analyst들에게 연결하는 주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기관 에서는 fund도 많이 적립되어 있어 심사를 통해서 poor people에게도 analysis의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Reduced fee의 case는 다른 도시에 비해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이 있습니다.

저는 이곳 institute에서 97년 9월에 저의 개인분석을 시 작하였고, 98년 9월에 didactic course를 시작하였으며, 99년 9월 분석환자를 보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Tutorial Didactics 그리고 Didactic Seminars

이곳 Cleveland에 오자 저는 제가 유일한 우리 class의 candidate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지금은 저의 class가 5명 의 candidate로 늘어나게 되었지만, 제가 didactic course 를 시작할 98년만 하더라도 저는 유일한 candidate로서 일 주일의 두세 번의 seminar를 저와 분석가 단 두 사람이 만나 진행하는 시간을 1년여 동안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것이 이름하여 tutorial didactics(didactic course)입니다.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다시 찾아오 지 않을 좋은 기회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남의 시선 때문 에 모르는 것도 물어보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아야했 던 서울에서의 seminar경험에 길들여진 저는, 이런 t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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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분석경험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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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의 1대1 대응이 아니었으면, 다시 벙어리 3년을 보냈을 지도 모릅니다. 정말 마음놓고 제가 모르는 것이면, 어떤 것이나 물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Dynamic unconscious의 dynamic이 무슨 뜻입니까? Econo- mic theory의 economic은 왜 또 economic 입니까? Fantasy면 fantasy이지, 거기 왜 unconscious란 형용사가 붙습니까? 이런 기초적인 질문부터 정말 궁금한 질문들까지, 시간 되는데까지 물어보았습니다. Freud가 어떻게 couch를 쓰는 방법을 고안 해 냈는지, 정말 couch가 다른 방법보다 효력이 있습니까? 선 생님 사석에서 선생님의 분석가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시는지 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분석의 실질적인 termination criteria 는 무엇입니까?

분석가들은 언제나 성의 있게, 그리고 나의 수준에 맞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상대방에 맞추는 기술 혹은 태도- 이런 것이 분석가의 기본적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Dr R의 명답 하나가 생각납니다. Freud가 어떻게 couch 를 쓰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나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옛날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둘은 서로 떨어 져 살았지만 그래도 가까운 편이어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방문할 때마다 본인이 알고 있는 요리의 recipe를 하나씩 가 르쳐 주곤 하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apple pie의 recipe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며느리는 이제 어머 니가 만드시는 맛있는 apple pie를 자기의 집에서도 먹게 되 었다고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성스럽게 시어머니 의 recipe에 따라 apple pie를 반죽하였고, 시어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oven의 온도와 시간을 맞추어 구어 내었습니다. 그런 데 이 apple pie의 맛은 시어머니 집에서 먹었던 apple pie의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어머니, apple pie를 구웠는데 이 맛이 아닌데요.

어머님 혹시 뭐 잘못 가르쳐 주신 것 아니세요?”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본인이 며느리에게 가르쳐 주었던 방 법을 repeat하였습니다. 무엇인가 잘못 가르쳐 주었거나 어떤 과정을 얘기해주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느리는 물론 시어머니도 왜 며느리가 만든 apple pie가 제 맛이 나지 않을 까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몇 달 후 며느리는 다시 시어머니 집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시어머니가 apple pie 만드는 방법을 다시 한번 관찰해 보기로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똑 같은 재료로 apple pie를 반죽하였고, 똑같은 온도와 시간을 oven에 setting했습니다. 그리고는 apple pie를 oven에 넣기 위해 반죽한 pie를 반으로 뚝 잘라서 oven 에 넣는 것이었습니다.“아니 어머니, 전에 반죽을 oven에 넣 기 전에 반으로 자르라는 말씀은 안해주셨잖아요?”“그래, 안 했다, 난 그저 내 oven이 작아서 반죽이 다 안 들어가니까

반으로 자른 거지 뭐.” 며느리는 다음부터 반죽한 apple pie 를 space가 넉넉한 자기의 oven에 반으로 잘라 넣게 되었고 시어머니의 apple pie 맛을 드디어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Didactic course의 backbone이야 어느 institute건 다르 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곳의 curriculum 은 제가 한국에서 읽었던 San Diego institute의 curricu- lum과는 무척 달라서 중요한 논문 몇 개를 제외하고는 매 우 새로웠던 논문들이었습니다.

이곳의 Dr M은 저와 tutorial didactics를 가장 오랜 기 간 하였는데,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분석이론의 부분 에 대해, 한번에 다 알 수 있는 내용이 아니고, 5-6번 읽 으면 알 듯하고, 특히 candidate를 가르칠 정도의 나이가 되면 좀 더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몰라도 조바심 을 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읽어야 할 paper들인 데요. 생각해 보면 저도 욕심이 많았지요. 한 두 번 읽고 seminar하면 모두 섭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입 니다. didactic course는 분석이론공부의 끝이 아니고 시작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느낀 것은 여러 가지 topic으로 나누어져 있는 course를 cover하다 보면 어떤 논문들은 아주 여러 번 읽 혀지는데, 예를 들면 Bird B(1972)Notes on trans-fer- ence;universal phenomena and the hardest part of analysis. JAPA, 20:267-301., Jacobs T.(1986) On countertransference enactments. JAPA, 34:289-307.

등입니다. Dr A는 같은 논문이라도 여러 topic에 걸쳐 여 러 번 반복해서 읽게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합 니다.

Dr R은 특색 있게 최근에 publish된 논문들 중 잘 inte- gration되어 있는 논문을 권하면서, 오래된 논문을 읽는 것 은 뜻 있는 일 이기는 하지만, out of date할 경향이 있다 고 가르칩니다.

Didactic course중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매 seminar마다 읽어야 할 paper와 함께 나누어주는 매 semi- nar의 summary입니다. 이것은 이곳 분석가들이 candidate 를 위해 그 seminar에서 꼭 알아두어야 할 내용을 summary 한 것인데, 특히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개인분석과정

이제 저 자신의 분석에 대해 조금 얘기할까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되는 관계로 공개적인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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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재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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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적당치 않은 생각이지만, 내용 없는 형식만 소개한다

면 공허한 글이 될 것 같고, 객관적인 사실들을 중심으로 이야기 할까 합니다.

저의 분석가는 위에 말씀드린 대로 Dr T입니다. 이 70 이 넘은(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의 나이를 모르고 있는데 1959년에 New York Columbia University의 medical school을 졸업했다는 것을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의사면허 증에서 확인할 뿐입니다.) 유태인 할머니는 병원에서 차로 10여분 떨어진 매우 고풍스럽고 조용한 유럽식의 주택가 에 저택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의 집과 떨어져 있는‘사랑 채’에 본인의 사무실을 차려 놓았습니다. 그의 사무실 건물 은 온통 아름드리 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나무사이로 잘 정돈된 정원이 있고, 매우 한가롭게 느껴지는 건물에 들어 서면 고풍스러운 실내 장식의 waiting room이 있고, 이곳 에서 치료실로 통하는 문이 열릴 때까지 의자에 앉아 기다 리게 됩니다. Waiting room은 은은한 조명의 stand가 많 고, 몇 가지 추상화적인 그림들이 벽에 걸려 있고, Dr T의 의사면허증과 Institute의 분석가 Certificate가 한쪽에 걸 려 있으며, 탁자 위에는 여러 가지 periodicals가 잘 정돈 되어 있습니다. 언제나 classical music station의 방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분석가의 사무실을 방문한 지도 5 년째로 접어들고 있는데, 그 동안 변한 것이라고는 달마다 바뀌는 탁자 위의 잡지들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변 함이 없는 환경은 분석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 니다.

극단의 예가 되겠지만, 어느 분석가가 들려주던 이야기 가 생각납니다.

분석치료를 꽤 오래 받는 환자에게 과연 어떤 factor가 환자의 치료에 도움이 되었나, 치료자와의 분석과정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나를 누가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환자는 대답하길-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저의 분석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제 등뒤에 그냥 쭉 앉아 있었어요. 그게 고맙게 느껴 집니다.

그의 사무실은 문이 두 개인데(한 문은 환자가 사무실로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문은 환자가 분석가의 사무실에서 분석을 마치고 나오는 문), 그리고 두 개의 문 사이에는 커 다란 양탄자를 걸어 놓아서 환자들은 그들의 previous client나 next client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이 두 개의 입구 및 출구도 2중문으로 되어 있어서 두 개의 문을 열어야만 사무실로 들어가거나 나올 수가 있습니다. 즉, 문이 네 개 가 있는 셈입니다. 실지로 분석가 사무실 안의 대화는 밖에 서는 이런 2중문 때문에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네 개의 문이 있는 사무실은 이곳의 다른 분석가들의 사무실

에서도 종종 보게 됩니다.

분석 초기의 몇 달은 이미 제가 준비해간 이야기로 채워 진 session(prepared session)이 많았던 것 같고, 이런 경향은 한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초기의 제 느낌을 적었던 글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

하루는 그럴 듯한 transference dream을 가지고 꿈의 내용 을 자세히 보고하고, 연상하고(정확하게 얘기하면 분석시간에 연상한 것이 아니라 아침에 꿈을 꾼 이후에 연상되었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보고하고), 저의 꿈에 대해 해석까지 했습니 다. 지금까지 배워온 대로요. 저는 말을 다 마치고, 분석가는 계속 침묵,- 그래서 저는 물어보았습니다.“Do you have any comment about my dream or my interpretation?” 분석가가 대 답하길.“How can I comment about your dream? You finished everything already. By the way, you seemed to do the recital by yourself in front of me.” 이런 얘기를 들으니, 저는 아침 부터, 아니 어제 밤 꿈 꿀 때부터 지금까지 이 시간을 위해 얼마를 투자했는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하면서 화가 났습니 다. 그리고는 볼멘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아니, 나는 그렇 게 배워 왔다고요. 뭐 그리 잘못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선 생님은 제가 보고만 하지, 선생님하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고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얘기하는 방법을 모른다고요! 어떻 게 하는 것이 얘기하는 겁니까?”

분석가가 대답하길“바로 지금같이 하는 것이 얘기하는 것 이지요.” 그러니까 분석가는 제가 북치고 장구 치고 하는 그 런 식보다는 분석가와의 interaction을 강조하는 것 같았습니다.

Static unconscious와 dynamic unconscious의 차이를 알 것 같 습니다.

그리고는 저는 분석가와 보고가 아닌 대화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분석의 모든 내용이 transference 에 집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Analysis의 session들은 transference를 이해하기 위해 연습하는 것이라고도 생각 되었습니다. 과거의 기억은 치료자를 상대로 하여 재연되 고, 또 치료자에 대한 감정이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기도 합 니다. 역시 느낌을 위해 2년여 분석 후 적었던 메모를 그 대로 옮깁니다.

이번 7월말 방학을 며칠 앞두고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 매우 감정적인 session을 가졌는데, 몇 session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찼고,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왜 지금 이런 감정이 드는 지 궁금해 졌습니다. 분석가는 방학을 앞두고 분석가와의 se- paration에 대한 감정이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separation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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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감정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남의 슬픈 이야기를 들으며, 참 용키도 하네, 좀 괘씸한 생각도 들 었습니다.

분석가가 어떤 때는 매우 피로하고 아프게 보인 적도 있습 니다. 실제로 하루는 분석가가 열을 내고 아팠습니다.“Are you OK?”하고 session을 시작하니, 분석가는 영락없이“You must have some thoughts about being sick.” 하더군요. 결국 그 시간에는 어려서 어머니가 아플 때의 걱정근심을 얘기하게 되었죠.

분석가는 등뒤에서 저의 얘기를 듣고 있는데, 분석가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분석가의 숨소리가 더욱 작아지 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석가는 transference를 찾 아내기 위해 더욱 정신을 집중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transference는 시간이 더 흐름에 따라 조금은 약해지기도 하고, 강해지기도 하는 것 같은데, 요즈음은 분 석가의 interpretation중 transference interpretation이라 고 여겨지는 것이 조금 적어짐을 느낍니다.- 이론에 의하 면 transference의 정도가 치료가 되어감에 따라 조금씩 엷어진다고 하는데- 그렇기를 바라지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근간에 느껴지는 바를 이야기한다면,- 제가 어떤 생각들 과 감정들을 분석 session에 가지고 와도(무슨 이야기를 하던 상관없이), 분석가는 언제나 같은 일- unconscious 란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분석하고 그것을 제게 그대로 돌 려줄 뿐이라는 것입니다. 분석 다음에 있어야한다고 생각 되는 synthesis의 process는 완전히 제 몫으로 남아 있습 니다.

또 하나의 생각은, 저의 association이 과연 free asso- ciation인지 association for defence or resistance인지 구별이 잘 안갈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한 session에서 저는 저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가며(딸아이는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들은 지속성이 부족 한 것 같다고 하면서), continuity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였습 니다. 분석가는 나의 분석이 주말이나 방학으로 interruption되 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 하였습니다. 분석가의 이야기를 들은 저는 최근에는 일요일 에도 주중과 같이 여섯 시에 일어나게 되고, 토요일과 일요 일에도 꿈이 많다는 생각이 난다고 association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생각이 들기를 나의 이러한 association이 분석가의 해석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그래서 분석가를 즐겁 게 해 주려는- 나의 unconscious intension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분석가의 interpretation이 정확한 것인지(실지로 저는 제 분석시간의 interruption이 싫어서 아이들의 continuity를 강

조한 것) 구별이 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분석가는 그 저 나의 의견에 agree합니다. 세월이 흘러야 진의를 알 수 있 다는 얘기같이 생각되었습니다.

제가 분석과정의 어디쯤 가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새벽마다 일어 나“나는 분석가에게 간다”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또 무 슨 나의 unconscious를 발견하게 될까? 하면서 말입니다.

분석환자와 Supervision

Cleveland에 도착했을 때의 막연한 기대는 분석환자를 이곳에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지 나며 알게된 현실은 이런 기대를 져버리게 했습니다. 분석 환자를 가지게 되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분석을 끝까지 책임져야하고, 분석가는 적어도 한 곳에 머물러 있음으로서 환자에게 stable condition을 제공해야 하는데, 몇 년 후에 는 귀국하게 되어 있는 저의 처지로는 분석환자를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는 문제였고, institute에서도 환자를 저에게 맡기는 것은 도덕적으로 매우 적당치 않아서 그런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저에게 커다란 행운이라고 할 수 있는 분석환자가 찾아왔습니다. Education committee에서는 세 번에 걸친 환자에 대한 seminar(Seminar는 환자의 분석 성공 가능성과 candidate의 readiness를 평가합니다.) 후 에 제가 분석환자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이곳에 서는 candidate의 case는 education committee가 모두 관장을 하고 있어서 committee의 허락 없이는 환자를 볼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저도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받는 것 같아 매우 영광으로 생각되었습 니다.

저의 환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글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고, 특히 on-going case에서는 그런 것 같습니다, 다음 지면을 이용하여 소개할 수 있을 것 같 아 언급을 하지 않으렵니다. 단, supervision의 개관과 su- pervision을 받으면서 받은 느낌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Supervision은 candidate가 분석환자를 가지고 있는 한 계속해야 하는 mandatory course인데, 대개는 일주일에 한번 그리고 case가 stable해 지면 2주에 한번, 혹은 한 달 에 한번의 supervision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본인의 su- pervisor도 본인이 고를 수 있게 되어 있고, fee도 본인이 supervisor와 상의하여 정하는 등, 그 과정은 분석가를 정 할 때와 비슷합니다.

Supervision 시간에 배우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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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면 환자의 unconscious에 tune하는 기술, 그리고 알아

낸 환자의 unconscious를 환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 다는 것입니다. 환자를 이해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중요하지 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환자에게 본인이 환자를 이해하 고 있다는 것을 전달해야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through interpretation.

Supervisor와는 분석가 못지 않게 친해지게 되는데, su- pervision을 시작하면서(혹은 환자를 보기 시작하면서) 저 의 분석가에게 향했던 libido의 amount가 적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분석가 한사람에 preoccupation 되어있는 candidate들은 이러한 과정으로 그들의 view point를 늘려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첫 case의 supervisor는 Dr R인데, 70세의 할아버 지로 교육분석가입니다.- 제가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수 있 는 것은 supervisor에게서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기 때문인데, 분석가와는 달리 supervisor는 본인의 경험까지 (개인적인 경험까지 포함해서) 자유스럽게 얘기해 주는 것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저의 식구를 본인의 집에 초대해 주기도 하였는데- analyst와 supervisor는 분석교 육의 과정에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생각됩니 다.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analogy를 하나 들자면, 우리 나라 식의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라고나 할까요? 그 러나 supervisor의 기능은 analyst의 기능을 포함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한번은 supervision 시간에 저의 개인 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듣던 supervisor는 저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If I were you, I would bring that topic to my analyst.

정신분석 training의 rule 중에 본인의 개인 analysis동안 어느 정도 기간에 걸쳐 환자를 보아야 하고 supervision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있는데, 결국 환자와의 관계에서 일어 나는 여러 가지 문제(그것이 positive하건, negative하건) 및 supervisor와 candidate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 지 문제(저의 경우에는 매우 positive한 supervisor라고 생 각되지만, case seminar를 듣고 있으려면 candidate 중에 는 supervisor와 의견이 맞지 않아 고민하는 것을 종종 보 게 됩니다.)를 본인의 분석시간을 통하여 integration 하라 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이곳 분석가의 하나인 Dr S는 언제나 입버릇처럼 이야기 합니다. 정신분석의 이론공부나, 분석을 받은 것, 그리고 환 자를 보는 것과 supervision 받는 것이 어느 하나 정신분석 의 training엔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 니다.

New York의 Dr Kernberg가 이곳에 와서 구미 각국의

정신분석 training 방법의 차이를 강의하던 것이 생각나는 데, 프랑스의 정신분석 training은 미국 및 영국과 조금 다 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에 의하면, 프랑스에서는 ca- ndidate의 개인분석은 2~3년 내에 끝내 버리고, 대신 환 자의 case를 가지고 하는 supervision이 아주 심도 있고, 그 기간도 매우 길다고 합니다. Supervision이 대단히 중 요한 것- 다시 말하면 실지로 환자를 잘 보는 것이 중요하 다는 이야기겠지요.

Dr R은 저에게 개인적인 충고도 많이 해 주었습니다. 한 번은 저의 이곳에서의 visa extension 문제 때문에 매우 골치를 앓고 있었습니다. 문제 해결의 key를 쥐고 있는 ECFMG(Philadelphia에 소재하고 있는 외국인 의사들을 관 장하는 기관)는 아주 단호하게 저의 마지막 6개월의 미국 체류가 불가능하다는 편지를 보내와서 저의 마음을 어둡게 했습니다. 이에 대해 저의 supervisor는 저에게 이런 충고 를 하였습니다. 본인이 보기에는 저는 매우 sincere하고 persuasive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다고, 저에게 Philadelphia에 가서 직접 담당자를 만나보는 것이 best way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sincere하 려고 노력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persuasive 하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해왔던 터였습니 다. 저는 supervisor의 충고로 Philadelphia로 날아가서 저 의 담당자를“설득”시키고 돌아왔습니다.

서울, New York, Cleveland, 그리고 다시 서울

이 글에서 저는 서울에 있을 당시 어떤 생각으로 미국에 서의 분석공부를 원하게 되었고, 서울 및 New York에서의 분석공부 준비과정, 그리고 Cleveland에서의 분석훈련과정 을 didactic course, 개인분석 그리고 환자와 supervision 으로 나누어 기술했습니다.

다시 한번 읽어보니 여러 가지가 느껴지는데 그 중 몇 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너무 좋은 면만을 기술했다고 생각됩니다. 어려움이 야 물론 많았지만 지면관계상(?) 생략합니다. 둘째, 과연 제 가 의도한 대로 이곳에서의 경험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 나 하는 의구심이 났습니다. 많은 부분이 단편적이고 전후 좌우의 설명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셋째, 저를 과거에 아 셨던 분들께서 이 글을 읽으셨을 때, 과연 어떤 평가를 해 주실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이런 생각은 과연 분석이 사람 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기본적인 저의 의문과 연결되 어 있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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