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게맹경 외애밋들’ 김제( 堤)와 벽골제(碧骨堤)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저수지 제방. 익산 황등제, 고부 내제와 함께 호남 삼제(三堤)로 불리는 벽골제 수문(장생거).
우리 문화유산의 향기 105
풍요로운 황금들녘과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의 고장 김제에 가면 감탄과 눈물이 절로 난다. 금만 평야의 젖줄인 만경강과 동진강 사이 너른 들판을 이곳 사람들은‘징게맹경 외애밋들(김제만경 외 배미들)’이라고 부른다. 이 논 저 논, 가릴 것 없이 모두 한 논배미처럼 확 트인 너른 들판을 말한 다. 우리나라 농경문화의 산실이자 호남 제일의 곡창지대인 김제는 백제 때 지명이 벽골군이었다.
‘벽골(碧骨)’이란 우리말로‘벼 고을’, 즉 도향(稻鄕)이란 뜻이다. 이곳 사람들은 약 1,700여년 전 백제 때부터‘벽골제(碧骨堤)’라는 우리나라 최초, 최대의 인공저수지를 만들어 벼농사를 지었다.
이 벽골제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 때에 몇 차례 개축과 즉, 중수를 거쳤지만, 조선 세종 2년 (1420년) 심한 폭우로 유실되었다. 당시 제방의 길이는 약 3km, 수여거와 장생거, 중심거, 경장거, 유통거 등 다섯 개의 수문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25년 일본인 지주들이 만든‘동진농지개량 조합’에서 이 제방을 관개용 수로로 개조함으로써 거의 훼손되고 말았다. 그후 1975년 벽골제 발 굴조사, 1980년 일부 제방공사 및 장생거와 경장거 수문주변정비 등 복원공사를 마쳤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찾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민족의 서러움과 가슴 아픈 업보들을 어떻게 그냥 잊고 우리가 지금‘광활찬가’를 부르고 지평선 축배를 들 수 있는가. 이제 새만금에서 구슬쌀알이 펑펑 쏟아지는 날, 그때 우리 흰옷 입고 소달구지 타고 삼평선 돌며 춤추어도 늦지 않다. 이곳은 특히 모악산 금산사, 심포항, 장화쌀뒤주, 하소백련 지, (구)하시모토 농장사무실, 조정래 아리랑문학관 등 농경문화재와 전설 같은 명승지도 많다.
박영순|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