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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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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이 1998년 집중투표제도를 도입한 이후 동 제도가 실효성을 갖지 못함에 대한 반성에서 2009년 개정을 통해 상장회사에 대한 특례규정까지 마련하였으나, 특례규정 에서도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도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위 규정에 의하면 집중투표제도는

“2인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경우”에 한하여 적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재벌 및 오너 경 영자가 의도적으로 이사선임에 시차를 두고 각 1인의 이사만을 선임하는 경우에는 정 관으로 그 적용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제도 자체를 무용화시킬 수 있다는 문 제점도 제기되고 있다.36)

실제로 집중투표제도는 상법에 도입된 직후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실무에서 그 도 입 취지에 부합하는 소수주주 보호를 위한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16년 12월 22일 배포한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발표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자료를 통해 2016년 4월 1일을 기준으로 지정된 26개 민간 대기업집단에 속해 있는 165개의 상장회사를 대 상으로 실시한 현황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를 배포했는데, 이에 의하면 전체 165개 의 상장회사 중에서 집중투표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8개 사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실 제로 집중투표제도에서 요구하는 방식으로 의결권이 행사된 경우는 전혀 존재하지 않 았다.37)

결국 소수주주의 의견을 이사회에 반영할 수 있는 이사의 선임을 보다 용이하게 하 여 결과적으로 재벌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할 목적으로 도 입되었던 집중투표제도는 현재 상법규정에 의하면 정관으로 그 적용을 배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재벌에 의해 사실상 지배되고 있는 대다수의 회사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 35) 박수영, “집중투표제도 의무화 - 상법개정안중 집중투표제도의 의무화에 대한 반론”, 기업

법연구 제27권 제3호(2013. 9.), 한국기업법학회, 117면.

36) 이처럼 시차를 두고 이사를 선임하는 것을 소위 ‘시차임기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미국 판례는 시차임기제가 법률에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으나, 일본의 경우에 는 주주총회 결의 취소의 원인으로 보고 있어 그 위법성 여부에 논란이 존재함을 알 수 있 다[大阪高等裁判所 1963年(昭和38年) 6月 20日, 昭和37(ネ) 1184 仮処分異議事件; Bohannan v. Corporation Commission, 82 Ariz. 299, 313 P.2d 379 (1957); Stockholders Committee for Better Management v. Erie Technological Products, Inc., 248 F.Supp. 380, 384 (W.D.Pa.1965)].

37) 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2016. 12.), 14면, 공정거래위원회.

고 있어 그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기 때문에 재벌은 시차임기제와 같은 방법으로 집중투표제도의 효력을 무력화시킬 필요도 없이 애초에 정관을 통해 동 제도의 적용을 배제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집 중투표제도는 상법에 도입 된지 20년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까지도 실무에서 배척되고 있어 사실상 사문화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상태에 있다.

소수주주를 보호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제 도 중 하나인 집중투표제도가 이처럼 배척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해당 제도에 대한 기업의 지배주주인 재벌의 거부감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의 지배주주인 재벌의 입장에 서는 이미 이사회를 자신이 원하는 이사들로 포진시켜 놓아서 자신이 원하는 결정에 대해 이사회로부터 견제와 지적을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굳이 자신의 의사에 반 발할 가능성이 있는 이사의 선임가능성을 높여줄 집중투표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2013년 집중투표제도 관련 상법규정을 강행규정으로 바꾸는 내용의 법무 부 상법개정안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2016년부터 다수의 국회의원들에 의한 상법개정 발의안이 국회에 제출될 때마다 이에 반대하는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에 부합 하는 각종 기사가 개제되었으며, 일부 언론조차 마치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하면 당장 이라도 국내자산이 적대적 외국계 헤지펀드에 의해 잠식될 것처럼 묘사하기 일쑤였다.

2003년 SK(주) 대 소버린 사건과 2006년의 KT&G 대 칼 아이칸 사건이 그 대표적 사 례로 언급된다.

SK(주) 대 소버린 사건은, 외국계 헤지펀드인 소버린이 SK(주)의 주식 14.99%를 매 입해 2대 주주가 된 후에 5개 자회사에 이 지분을 나누어 구 증권거래법에 따라 감사 위원이 되는 이사의 선임에 대한 의결권 3% 제한규정의 적용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소 버린을 대변하는 이사를 선출시키고 이를 통해 SK(주)의 경영권을 장악하려 시도했던 사례를 일컫는다. 당시 소버린은 경영투명성 제고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SK(주)에 경영 진 교체와 집중투표제도의 도입을 요구하였고,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고 SK (주)의 경영권 장악에도 실패하자 2005년 보유주식 전부를 매각해 9,459억 원의 차익을 누리고 떠났다. KT&G 대 칼 아이칸 사건은, 지배주주가 없는 기업이면서도 집중투표 제도와 사외이사제도 등 소수주주에 대한 보호장치가 잘 갖추어져 이상적인 기업지배 구조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던 KT&G가 2006년 외국계 헤지펀드인 칼 아이칸을 비롯 한 다수의 헤지펀드의 적대적 M&A에 노출되었는데, 결국 KT&G가 경영권 방어에는 성공했으나 외국계 헤지펀드는 약 1,500억 원의 차익을 누리고 떠난 사례를 일컫는다.

집중투표제도의 의무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이 두 개의 적대적 M&A 사건에서 외 국계 헤지펀드가 집중투표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던 사실을 근거로,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하게 되면 마치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이러한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굳이 위와 같은 사태가 아니더라도 연평균 20조원 상당의 수익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집중투표제도 도입 자체를 반 대하기 위해 애국심을 자극하는 전략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SK(주) 대 소버린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증시의 외국인 시가총액 비중은 40% 안팎에 달하고 있으며, 특히 이익 규모가 큰 재벌 대기업과 일부 시중은행 등 20

∼30개의 우량기업에 대한 외국인 자본 지분율은 최대 80%까지 달하고 있다. 실제로 1992년부터 2007년 9월까지 외국인 투자자에게 지급된 누적 배당 총액은 16조 6,000억 원이었고 국내 주가 상승에 따른 외국인 투자자의 평가차익은 306조 6,000억 원에 이 른 것으로 분석된다.38) 결국 연평균 20조원 규모의 막대한 수익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다는 것인데, 이는 앞서 살펴본 두 사례로 인해 각 외국계 헤지펀드가 실현한 이익금 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이다.

[그림 4] 외국인 투자자에게 지급된 배당금 규모

[출처] 대신증권, 「오늘의 리포트」(2010. 4. 25.).

38) 대신증권, 「오늘의 리포트」, 대신증권. 2010. 4.

더욱이 외국계 헤지펀드에 의한 적대적 M&A 및 주식매매 차익실현이라는 위험은 집중투표제도의 의무화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이미 존재하고 있 던 위협이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마치 집중투표제도가 의무화되면 그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되고 결국은 국내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바람직한 논증방법이라 보기 어렵 다.

이처럼 비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현행 법체계가 우리나라 기업들로 하여금 외국 계 헤지펀드의 위와 같은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이미 초다수의결제 (Super majority Voting),39)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제3자 배정 또는 사모 방 식의 유상증자,40)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주식연계채권의 사모 발행,41) 발행 즉시 의결권이 있는 주식으로 전환이 가능한 종류주식의 발행,42) 이사 시차임기제,43) 대량주식보유신고제 및 황금낙하산44) 등 다양한 방어책을 마련하고 있으며, 실제로 여 러 기업들이 이러한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래에서 제시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2년 사업연도를 분석한 우리 기업의 M&A 방어수 단에 관한 현황 분석 자료를 통해 보아도 알 수 있다.45)

39) 적대적 M&A의 방어수단으로 기업의 인수합병, 이사의 해임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주주총회 의 의결 요건을 강화하는 제도이다. 경영권을 위협하는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자구책 중의 하나로 의결 정족수는 정관에 규정대로 하는데, 실무에서는 보통 출석 주주의 80% 이상으 로 정한다.

40) 제3자 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란 회사가 긴급한 운영자금 등이 필요한 경우 기존 주주의 신 주인수권(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을 제한하고 새로운 주주만을 대상으로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제도를 말한다.

41) 사모펀드는 재벌들의 계열사 지원, 내부자금 이동수단으로, 혹은 불법적인 자금이동 등에 악용될 우려도 있다. 채권수요 확대방안의 하나로 도입이 추진되고 있는 사모 채권펀드의 경우에도 이러한 부작용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42) 적대적 M&A 상황에서 의결권 있는 주식의 보유 비율을 높여서 적대적 M&A를 하려는 상 대방의 지분비율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방법이다.

43) 원래 이사에 대한 시차임기제는 이사회 구성원들의 임기를 분산시켜 경영의 단절을 막을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었으나, 이사를 복수의 그룹으로 나눠 각 그룹별로 임기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이 가능해진다.

44) 적대적 M&A(인수합병)를 막기 위해 경영진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회사를 그만둘 경우 거 액의 퇴직위로금을 주도록 하는 제도이다.

45) 엄수진, “국내 상장사의 다양한 M&A 방어수단 도입현황”, 기업지배구조 리뷰 제71권(2013.

12.), 한국기업지배구조원, 81-86면.

No M&A 방어수단 유가 (693개 사)

코스닥 (908개 사)

전체 (1,601개 사)

1 임원해임 요건 가중 2.5% 11.8% 7.7%

2 합병 특별결의 요건 가중 1.3% 5.1% 3.4%

3 이사 시차임기제 도입 87.9% 86.6% 87.1%

4 황금낙하산 도입 2.0% 12.6% 8.0%

5 주식 연계 채권의 무제한적 발행 허용 5.3% 3.5% 4.3%

6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제3자 배정

또는 사모 방식 유상증자 실시 2.3% 1.9% 2.1%

7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주식연계채권의 사모 발행 0.6% 5.2% 3.2%

8 발행즉시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전환

가능한 종류주식 사모 발행 8.7% 11.7% 10.4%

9 유상증자시 신주인수권 증서의 매매를

불허용 4.6% 6.5% 5.7%

10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실권주 배정 0.6% 1.1% 0.9%

[표 7] 2013년 국내 상장사 M&A 방어수단 도입 현황

(단위 : 개 사, %)

[출처] 엄수진, “국내 상장사의 다양한 M&A 방어수단 도입현황”, 기업지배구조 리뷰 제71권 (2013. 12.),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위의 통계자료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이 우리의 법제에는 이미 우리나라 기업에 적절 하고도 다양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외국계 헤지펀드에 의한 적 대적 M&A는 항상 존재했던 위험이지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한다고 해서 갑자기 발 생하는 위험이 아니다. 집중투표제도는 오히려 재벌에 의해 왜곡된 기업지배구조와 경 제력 독점현상을 바로잡는 초석을 제공할 수 있는 제도인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조속히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하여 동 제도가 소수주주 보호를 통해 기업지 배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토대로 재벌개혁의 효율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강제 입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제2절 외국의 입법례

이하에서는 집중투표제도의 의무화를 전제로 집중투표제도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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