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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 시기의 기업

문서에서 반기업정서 무엇이 문제인가? (페이지 116-119)

16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는 여러 법인들이 이윤추구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러시아회사(Russian Company, 1555년에 건립), 레반트회 사(Levant Company, 1581년 건립),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1600 년 건립), 허드슨만회사(Hudson's Bay Company, 1670년 건립), 왕립아프리 카회사(Royal Africa Company, 1672년 건립),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 1711년 건립)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주로 해외무역에 주력하는 이 법인들에게는 중상주의 경제정책의 일환으로서 법인 고유의 여러 특권뿐 만 아니라 특정 지역에 대한 독점적 무역권이 부여되었다. 이윤을 추구하는 법인의 등장은 곧 국가권력의 양보를 의미하는데, 이에 대한 정당성의 최대 근거는 ‘공익(public interest)’에 있었다.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정부가 개입의 축소로 인해 입게 되는 비용보다 커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선택 기 준이었다.

이미 1690년대부터 기업가들은 의회의 승인을 얻지 않은 채 대규모의 파 트너십-비법인회사-을 결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조직의 구성원들은 집단 으로서 재산을 소유할 수는 없으나 신탁을 통해 재산을 보유할 수 있었다.

정부는 초기에는 이들에 대해 별다른 제약을 가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 면서 이런 조직들의 공익성에 대한 회의가 커져 갔다. 1710년대에 설립 붐

이 일어나면서부터, 그리고 더욱 본격적으로는 1720년 거품법이 통과된 이 후에, 정부는 법적 승인을 동반하지 않은 비법인회사의 설립을 엄격히 통제 하였다.

비법인회사의 활동에 대해 여론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비법인회사의 경영 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사회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잠재적 투자 가들은 이 기업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어려웠고, 다른 이들은 기업의 부실화가 초래할 사회적 악영향에 대해 불안감을 가졌 다. 입법가와 학자들의 견해도 이와 맥을 같이 했다. 예를 들어 18세기 말 아담 스미드(A. Smith)는 『국부론』에서 이 기업들이 본질적으로 독점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의 활동은 개인들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 의 자본이 요구되는 무역활동으로 국한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7) 많 은 당대인에게 이 기업들은 '중상주의적 부담(mercantilist burden)'으로서 특권, 독점력, 비효율 및 구식 부패체제(Old Corruption)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8)

여기에 18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복음주의의 부활(evangelical revival)이라는 종교적 환경은 경제활동에 있어서 개인의 책임과 금전적 엄 밀성을 강조함으로써 개인별 책임의 규모를 축소하려는 정책방향에 대해 반 발하는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다.9)

2) 19세기 전반의 상황 변화

주식회사가 여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주식회사의 기능과 가능 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19세기에 들어서면서였다.10) 1825년 거품법이 폐지 되면서 주식회사 제도의 활용가능성이 많은 기업가들의 가시권에 들어오게 되었다. 특히 1830년대와 1840년대 철도건설 붐에 따라 수많은 주식회사가 등장하자, 이 기업들이 야기할 잠재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커져 갔다. 또 한 당시까지 영국의 경제발전의 주춧돌이라 여겨져 왔던 개인 기업이 쇠퇴 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확산되었다.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제는 기 업의 부실을 초래할 위험할 ‘비영국적인’ 제도라는 여론이 비등하였다.11)

7) Smith(1776).

8) Harris(2000).

9) Hilton(1998).

10) Mirowski(1981), 559-77면.

11) Taylor(2006).

직종 예 아니오

상인/ 제조업자 17 18

법조인 9 6

은행가 3 14

학자/의회의원 7 0

거주지

런던 18 15

런던 제외한 잉글랜드 9 11

스코틀랜드 5 10

아일랜드 4 2

합계 36 38

영국에서 주식회사는 19세기 중반까지도 구성원들의 집합이라는 관념이 지배적이었다. 즉 회사(company)는 모험가 집단(a company of adventurers) 이나 재산가 집단(a company of proprietors)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미 국에서 법인(corporation)이라는 용어가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사실과 대조적으로 영국에서는 법인과 비법인을 통칭하여 회사라는 용어를 더 널리 사용하였는데, 이런 언어사용의 차이는 개인의 집합이라는 측면을 더 강조 한 영국적 경제 환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12)

<표 8> ‘유한책임이 주식회사에게로 확장되어야 하는가?’

파트너십법에 대한 왕립위원회에 출석한 증인들의 견해

자료: Parliamentary Papers(1854)

이때부터 약 30년에 걸쳐 영국 경제는 수익처를 찾아 안정적 방법으로 투 자를 하고자 하는 자본공급자들과 이해를 같이하는 주식회사제도 옹호세력 과 섣부른 주식회사제도의 전면적 도입이 투기과열로 이어져 경제 전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세력과의 공방전이 전개되었다. <표 8>은 1854년 주식회사에게 유한책임을 부과하려는 입법을 둘러싸고 전개된 왕립 위원회의 조사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여기에 출석한 증인들의 견해는 찬반 이 팽팽히 맞서고 있으며, 많은 경우 직종이나 거주지에 상관없이 의견이 갈리고 있다.13) 19세기 중반까지도 주식회사가 사회적 악영향을 피하고 바

12) 영국에서 법인세의 도입이 늦어진 것도 이런 차이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Daunton(2001), 210-11면.

13) 은행가들이 반대편으로 기운 것은 기업의 무분별한 투자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은행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반영된 탓으로 보인다. 한편 학자와 의회의원들이 모두 찬성

람직한 방식의 자본 확보 채널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당대인의 견해가 얼마나 갈라져 있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 주식회사를 둘러싼 논쟁과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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