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유주의적 시장경제를 받아들였지만 빅토리아시대의 가치로 돌아가 규율 있 고 책임지는 개인을 만들어내자는 대처의 호소는 기대한 만큼의 효과를 보 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도 다수는 복지국가와 집산주의를 지지하고 있으며,

‘자립’이라는 대처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관료제에 의존하려는 성향 을 보이는 국민이 상당 수 존재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업의 책임을 실업자들 자신에게 묻는 태도가 급격히 늘었다는 사실에서 자립을 강조한 대처의 가르침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았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즉 1989년 조사에서 “실업자들이 정말 원한다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명제에 동의한 사람이 52%, 동의하지 않은 사람이 28%, 동의도 부정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19%로 나타났다.52) 국가의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도 확실히 줄어들었다. 비대해진 국가를 축소하고 개인을 해방 시키려 한 대처의 중점 사업이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는 것은 기업이지 정부가 아닙니다”라고 일갈하였다. “정부의 일은 사람들에 게 어떻게 사업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번영하고 더 많 은 기회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53) 블레어는 기 본적으로 대처 수상의 정책노선을 거의 대부분 수용하여, 국가경쟁력 제고, 노동시장의 유연화, 복지지출 감소, 법질서 유지 등을 핵심과제로 추진하였 다. 그 때문에 “제3의 길”이 대처주의와 차별성이 별로 없다는 지적을 받기 도 했고 일부 사람들은 블레어를 “대처의 아들”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엄밀히 말해 “포스트 대처주의자”이다. 그것은 대처가 남긴 족적이 워 낙 커서 그 후의 누구도 그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지도자를 평가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소와 는 다른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었는지 이다.54) 마거릿 대처는 영국 국민과 제도로 하여금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거나 받아들이 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역사를 만들어간 지도자였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지도자 한 사람의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1960~1970년대에 계속된 영 국경제의 쇠퇴와 국가 위상의 추락은 국민들로 하여금 전후 지속된 사회민 주적 합의에 회의를 품게 만들고 무언가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사실 을 깨닫게 하였다. 대처 개인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영국사회가 당면했던 총 체적 좌절감과 문제의식도 대처의 과감한 혁명을 도왔던 것이다. 대처가 보 여준 리더십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돌아가고 싶으 면 당신들이나 돌아가시오. 나는 돌아가는 것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라는 대 처의 강인한 리더십은 많은 적을 만들기도 했지만 바로 대처주의 혁명을 추 진한 동력이었다. 선진국으로의 진입이라는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한 우리에 게 대처 시대의 경험은 귀감이 될 것이다.

53) Robert Taylor, "Employment Relations Policy" in The Blair Effect : the Blair Government 1997-2000 ed. Anthony Seldon (L ittle, Brown, 2001), 250에서 재인용.

54) Jeremy Moon, Innovative Leaders hip in Democracy: Policy Change under Thatcher (Aldershot England:

Dartmouth Publishing Co, 2003), 33, 74.

재벌비판을 통해 본 일본의 반기업정서

제5주제

정 진 성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교수)

<제5주제>

재벌비판을 통해 본 일본의 반기업정서

정진성

(한국방송통신대 일본학과 교수)

재벌비판을 통해 본 일본의 반기업정서

1. 머리말

우리나라에서는 광범위하고도 강력한 반기업정서가 존재한다고 생각되지 만, 일본에서는 그러한 강력한 반기업정서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기업친 화적 정서가 더 지배적이라고 생각된다.1) 우리는 여기서 소박하게 “왜 일본 에서는 반기업정서가 강하게 나타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일본인의 전통적인 관습, 또는 사고구조로부터 찾아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유력한 방법일 수 있다. 일본인의 기업에 대한 감정은 자본주의가 도입되고 기업활동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전통 사회의 구조나 관습, 제도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이에(イエ, 家) 제도의 존재는 일본인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기업을 하나의 이에로 보게 함으로써 기업공동체적 관념을 일반화하는데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을 공동체라는 틀 속에서 보는 사회에서 반기업정서가 사회에 만연하기란 쉽지

1) 이러한 평가는 몇몇 설문조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예를 들어, 종합컨설팅 회사인 액센추어(Accenture)사 가 2001년 세계 22개국 CEO들을 대상으로 자국 국민들이 기업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지 문의한 결 과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동의한다는 회답이 45%인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회답은 53%로 동의하지 않는 다는 회답이 동의한다는 회답을 상회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는 동의한다는 회답이 70%(조상대상 국가 중 1위), 동의하지 않는다는 회답이 28%로 동의한다는 회답이 압도적으로 많다. 또한 2003년에 중앙일보가 한 국, 중국, 일본 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기업인식에 관한 비교조사에서도 한국의 반기업적 정서가 일본, 중국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않을 것이다. 또한 이익을 취하는 행동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도 영향을 준 다. 성리학적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돈을 버는 것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닌 반 면, 상업적 전통이 있는 일본에서는 돈 버는 것에 대해 적대적이 아니며 이 런 태도가 반기업정서가 발달하지 못한 요인일 수 있다. 이와 같은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을 역사적 접근에 대비되는 구조적 접근이라고 해 두자.2)

이러한 구조적 접근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반기업정서가 약할 수밖에 없다 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 다.

기업친화적인 정서는 일본에서 2차대전 전보다는 2차대전 후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만일 일본인의 기업에 대한 정서나 시각이 역사적 관습, 전통에 규정받고 있다면 오히려 과거의 전통, 관습이 더 진하게 남아 있던 전전에 기업친화적인 정서가 더 강해야 하지 않을까? 구조적 접근에서 의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반기업정서에 대한 역사적 고 찰을 통해 그 대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실제로 일본의 근현대사를 통람하면 수차례에 걸쳐 강력한 반기업정서가 분출되었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현재의 반기업정서의 부재라는 현상은 역사상에 출현했던 반기업정서에 대한 대응 과정의 산물로서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머리에서 제기한 “왜 일본에서는 반기업정서가 강하게 나타나 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일본에서는 반기업정서를 풀어가는 메커니즘이 어 떻게 형성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 질 문에 대해 역사적으로 반기업정서가 고양되었던 시기를 대상으로 하여, 반기 업정서가 생성된 요인, 반기업정서를 적극적으로 표출한 집단 및 표출 양식, 그리고 반기업정서에 대한 기업 및 정부의 대응을 밝힘으로써 이에 대답하 고자 한다.

일본에서 반기업정서는 언제부터 생성되기 시작했을까? 우선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우선 ‘반기업정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의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반기업정서란 무엇인가? 여기서는 반기업정서가 발생한 이유에 상관 없이 대중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기업에 대한 반감은 모두 반기업정서로 간 주한다. 단, 반‘기업’정서와, 반‘대기업’정서, 반‘기업가’정서와는 구별할 필요 가 있다. 반대기업정서나 반기업가정서는 반드시 기업 일반에 대한 반감은

2) 예를 들면, 김은희‧함한희‧윤택림『문화에 발목잡힌 한국 경제』현민시스템, 1999.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반기업정서의 존재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여론 조사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반기업정서가 존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신문 등 의 당시 자료를 이용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작업량이 방대할 뿐만 아니 라, 반기업정서의 존재 여부 판별에서 자의성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반기 업정서가 광범위하면서도 집단적∙조직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경우를 연구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대중들의 집단적인 반기업운동, 정당 등 정치집단 의 반기업활동, 노동조합의 활동 등이 이에 해당된다.

반기업정서를 위와 같이 정의할 경우, 일본사회에서 반기업정서가 크게 고 양된 시기로서 소화공황기(1930년대 전반), 전후개혁기(1940년대 후반에서 50 년대 전반, 제1차 석유위기 전후의 시기(1960년대말부터 70년대 전반)를 생각 할 수 있다.3) 물론 각 시기의 반기업정서는 그 내용도 다르고 그 경제정치적 배경도 다르다. 소화공황기는 불황이 심화하는 중에 재벌비판이라는 형태로 주로 혁신우익세력에 의해 반기업정서가 분출되었으며 전후개혁기는 경제민 주화의 요구 속에서 격렬한 노동조합운동 속에 반기업정서가 나타났다. 석유 위기 전후의 시기에는 시민운동 그룹을 주된 세력으로 해서 환경문제 등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추궁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위의 세 시기 중에 소화공황기의 재벌비판의 검토를 통해 일본에서의 반기업정서의 생성 배경, 표출과정과 그 귀추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문서에서 반기업정서 무엇이 문제인가? (페이지 167-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