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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

문서에서 반기업정서 무엇이 문제인가? (페이지 156-161)

1986년 12월 어느 날, 맨체스터에 새로 문을 연 주식 거래소에는 100명 정 도의 사람들이 최근 민영화된 영국가스의 주식 거래 현황을 지켜보고 있다 가 주가가 올라갈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마치 마권을 산 사람들이 모퉁이 상점에서 경마경기를 보며 소리를 지르는 것과 흡사하였다.25) 이것이 대중자 본주의 시대의 상징적 모습이었다. 대처 정부가 추진한 민영화 덕분에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자본주의에 직접 투자하도록 초대되었다.

1979년 당시 주식 소유자는 성인 인구의 4.5%인 250만 명으로, 주로 중간계 급의 중장년층 남성들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 이르면 성인 인구의 25%인 1,100-1,300만 명이 주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화이트컬러 근로자들의 1/3, 숙 련공의 1/4이 주식 투자자였으며, 미숙련공 가운데서도 10명 중 한 명이 주 식을 소유하는 등 영국 내 모든 지역과 모든 나이와 남녀 구분 없이 모든

25) Saunders & Harris, Privatization and Popular Capitalism, 1

사회계급에 주식 투자자가 퍼져있었다.26) 특히 민영화된 기업의 주식만 산 사람들이 전체 주식 소유자의 39%이고, 주급 100 파운드 이하의 소득을 가 진 근로자들이 민영화된 주식을 산 사람들의 37%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민영 화로 인한 주식 투자가 사회경제적으로 하층 집단에 더 많이 침투해 갔음을 보여준다.27) 그때까지 “상층계급의 폐쇄된 제도”라고 인식되어온 주식시장이 노동계급과 하층 중간계급에게도 열린 것이었다.

대처는 자신이 추진한 이 변화를 “대중자본주의(popular capitalism)”라고 불렀다. 재무장관 로슨은 처음에 민영화를 “인민 자본주의(people's capitalism)”라고 불렀는데 대처는 그 말이 공산주의에서 사용하는 ‘인민 공 화국’을 연상시킨다고 반대하면서 “대중자본주의”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28) 그것은 일반 대중이 기업의 주주가 되어 자본주의의 경제적 성과를 직접 자 기 것으로 거두는 것, 국민 모두가 셋집이 아니라 자기 집을 소유하는 것, 그리고 일부 부자들만을 위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영국 국민 모두가 중산층 이 되고 영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자본가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대중자본주의는 대처가 일찍이 간파한 인간의 성정, 즉 국민 다수는 부르 주아적 삶을 욕구한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1970년대까지도 영국에 서는 부를 축적하는 것이 죄악시되거나 개인의 노력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노동계급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대처는 국민의 다수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계속 증가하고 있는 중간계급’이며 이들은 부르주아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당시 아무도 생각 지 못했던 새로운 발상이었다. 대처는 부르주아적 삶의 방식이 좌파가 선전 하는 것처럼 부끄럽고 떨쳐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내려주신 자 연스럽고 좋은 방식이라는 사실을 과감하고 당당하게 주장하였다. 대처는

‘근면하고 자택을 소유하고 세금을 내는 중간계급’을 영국의 중심축으로 생 각하였다. 대처의 이런 입장은 다른 정치인들과는 매우 대조적이었고 그런 발언들은 대단히 충격적으로 간주되었으며, 좌파는 그것이 부자가 더 큰 부 자가 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라며 비난하였다. 이에 대해 대처는 사 람들에게 더 낫게 살 기회를 제공한다고 해서 이기심과 탐욕을 조장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자신이 진정 촉진하려는 것은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인간 본성의 최선이라는 주장이었다.

26) Ibid., 4.

27) Ibid., 144.

28) Lawson, The View from No.11, 208.

돈 자체는 목적이 아닙니다. 돈은 단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게 만들어주 는 수단입니다. 사실 재산은 이기적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관 용과 베푸는 사회를 가져다줍니다.29)

대처 정부는 공기업을 매각하면서 피고용인들의 주식 소유를 권장했는데 실제로 민영화된 기업들에서 피고용인의 90% 이상이 자사 주식을 구입하였 다. 그 결과 전통적으로 계급에 기반을 둔 구분, 즉 “보스와 노동자”, “우리 와 저들” 같은 구분이 약해지고 피고용인들이 자신을 고용한 회사와 일체감 을 갖는 효과가 나타났다. 자사 주식을 조금이라도 소유하는 것은 노동자들 로 하여금 경영진과 이해관계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으며, 회사가 잘 되는 것이 자기에게도 이롭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30)

민영화의 효과는 경제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민영화 정책은 수백 만 명이 추상적 의미가 아니라 구체적 의미에서 사회에 기득권을 가지게 만 듦으로써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높인다는 현실적 전략도 있었다. 나이절 로 슨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그 점을 잘 지적하고 있다.

주식을 산 사람에게 자신이 그 사회에 속한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미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며, 마찬가지로 현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해서 혁명 적 변화에 저항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중대한 기능을 한다. 주식이 더 많이 확산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민영화에 기득권을 가지게 되었고, 재(再) 국유 화를 모토로 하는 노동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31)

대처는 임대주택을 산 사람들과 새롭게 주주가 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 가 보수당을 지지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 예측은 실제로 맞아떨어졌다.

1987년 총선 자료에 의하면, 새롭게 주식을 소유하게 된 사람들의 54%가 보 수당을 지지하고 20%만이 노동당을 지지하였다. 특히 숙련공들의 경우 34%

가 노동당을 지지한 데 반해 43%는 보수당을 지지하였다.32) 대중자본주의는 특히 쁘띠 부르주아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대처의 예견도 정확하였다. 연구 자들은 보수당에 대한 지지와 자유 시장 정책에 대한 지지가 경영자나 전문

29) John Campbell, Margaret Thatcher vol. II The Iron Lady (Pimlico, 2003) , 249에서 재인용 . 30) Saunders & Harris, Privatization and Popular Capitalism, 29.

31) Lawson, The View from No.11, 206.

32) David Ma rsh, The New Politics of British T rade Unionism (I LR Press, Ithaca, 1992), 315.

직 종사자보다 쁘띠 부르주아에서 가장 높았음을 발견하였다. 보수당의 가장 듬직한 지지자는 자수성가한 중간계급으로 이들이 보수당 당원의 74%를 차 지하였다.33)

이 효과는 1992년에 예상을 뒤엎고 보수당이 연속 4번째 총선에서 승리했 을 때 명백해졌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줄곧 노동당이 우위를 지켰지만 실 제 총선 결과는 보수당 336석, 노동당 271석으로 보수당의 여유 있는 승리였 다. 물론 노동당 당수 닐 키녹이 존 메이저보다 인기가 없었고 3당으로 분립 된 상황에서의 선거라는 원인도 있었지만, 유권자들을 움직인 가장 큰 요인 은 경제였다. 즉 유권자들은 노동당의 경제 운영 능력에 의심을 품었으며 만 일 노동당정부가 들어서면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판 단했던 것이다. 특히 임대주택을 매입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보수당에 투표할 경향이 가장 높았다. 1992년 선거를 두고 평론가들은 이제 영국에서 사회주의가 거부되었고 사회민주적 좌파는 더 이상 매력적인 정치적 메시지 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블레어의 등장과 함께 상황이 바뀌 지만 당시 분위기는 그랬다. 그때는 마치 대처가 염원하던 근면하고 근검한 소규모 자영업자, 쁘띠 부르주아의 세상이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기억할 점은 대처의 민영화 정책과 대중자본주의의 목표가 1차적으로는 재정적, 2차적으로는 정치적이었지만, 궁극적으로는 문화적이며 정신적인 것 이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시장경제가 요구하는 식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시장 자유주의를 가르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보다 심대한 문화적 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 대처는 보수당 대표가 되 고 나서 처음 맞는 1975년 10월의 연례 당대회 연설을 준비하면서 연설문 작성자들에게 경제 문제에 대한 연설을 하지 않을 것이니 그렇게 준비하라 고 지시하였다. 경제 아닌 다른 것이 정신적으로 철학적으로 잘못 되어갔기 때문에 경제가 잘못된 것이며 “경제적 위기는 곧 국가 정신의 위기”라는 주 장이었다.34)

시장경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부의 창출이 “어쩐지 좋은 일이 아니다”

라는 국민 정서를 바꾸어 부를 노력과 모험에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격상시 켜야 했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새로운 도덕률의 기초를 세우는 작업이었다. “만약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단지 좋은 의도만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돈도 가지고 있었 다는 것입니다.”35) 이 말은 대처가 1968년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한 말이다.

33) Hugo Young, One of Us, A Biography of Margaret That cher (Pan Books, 1990), 526.

34) Thatcher, The Path to Power, 305.

대처는 성경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 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예를 들면서 부의 추구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존경받을 일임을 지적하였다. 대 처는 이 연설에서 그때까지 사회적 진보를 사회주의와 동일시해온 풍조에 찬물을 끼얹고 자본주의의 미덕을 찬양하였다. 이 점에서도 이녹 파월은 용 감한 선구자였다. 파월은 언젠가, 자기는 매일 아침 신 앞에 무릎 꿇고 자본 주의를 선물로 주신 것에 감사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파월을 제외 하고 보수당 지도자들 가운데 누구도 마거릿 대처만큼 자본주의라는 ‘더러 운’ 단어를 구차한 변명 없이 떳떳하게 사용한 사람이 없었다. 좌파 지향적 인 정서가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을 때, 더 큰 정부가 주도하여 더 많은 평등을 구현하는 것이 진보라는 전제가 널리 확산되어 있는 시대에, 대처는 자본주의의 윤리적·현실적 우월함을 거침없이 발언했던 것이다. 이윤을 산출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도 옳다고 역설하는 대처의 모습은 충격이었으며 너무 순진해 보이기조차 하였다. 그렇지만 대처는 개인적으로는 돈에 대해 금욕적 이었다. 대처는 마음속으로 진짜 재화와 서비스를 파는 것에서 부가 만들어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식시장을 진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마찬가 지 이유로 정부가 판매하는 복권의 도입에도 반대하였다.36)

그녀의 궁극적 목표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덕을 내세워 영국 사회에 뿌리 내린 사회주의를 억누르고,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운명을 관장해야 하며 할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었다. 대처가 1945년 이후의 사회민주적 합의를 그처럼 비난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두 발로 서기보다 남 에게 의지하려는 의존문화를 낳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는 기율의 문제이기 도 하였다. 대처가 바란 세상은 소수 극빈자를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국가 에 의존하지 않고 자립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그를 위해 대처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치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개인의 독립과 창발성과 자기신뢰가 무너지고 권리만 끊임없이 주장하고 의무는 무시하는 경향에 대 한 대처의 반감은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교육의 결과였다.37) 대처에 게 근면, 검약, 노력, 정직, 책임감 등은 단순히 빅토리아적 가치가 아니라

“영원한 진리”였다.

35) Campbell, T he Iron Lady, 388에 서 재인용; N oel Annan, Our Age: The Generation that made Post-war Britain (Fontana, 1990), 577도 참조 .

36) Campbell, The Iron Lady, 248-249.

37) 대 처의 양육에 대 해서는 박지향, 《중간은 없 다: 마거릿 대처의 생애와 정치》(기파랑 , 2007); Tha tcher, The Path to Power; John Campbell, Margaret Thatcher, vol. 1 The Grocer's Daughter (Jonathan Cape, 200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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