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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활공동체 실패사례 1) 아름다운손

제4장 자활공동체 성공 및 실패사례 분석

3. 자활공동체 실패사례 1) 아름다운손

아름다운손은 비즈공예, 리본공예, 펠트공예 등을 이용하여 수공예품을 제작‧판매 하는 자활공동체였다. 아름다운손은 2003년 2월 영등포지역자활센터에서 진행한 업그

6) 2007년도 사업본부만의 매출액이 12억원~15억원 정도로 예상된다고 한다.

레이드형 자활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영등포지역자활센터는 자활근로사업 참여자에게 비즈‧리본공예, 꽃 및 선물포장 등 수공예 기능훈련을 집중적으로 제공하 였다. 이와 동시에 액세서리 및 소품 등을 제작하여 거리판매, 유관기관판매, 기획판매 등의 방법으로 생산품을 판매하였다.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기술수준을 제고하 고, 대인관계에서의 자신감이 배양되었다.

2004년 아름다운손은 ‘재단법인 서울여성’에서 실시하는 ‘일하는 여성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판매경험을 쌓고 상당한 수익도 올릴 수 있었다. 또한 재단법인 서울여성 에서 실시한 ‘서울우먼비즈페어 2004’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으로 아름다운손에 대해 알 렸고, 상당수의 여성기업인들과 교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펠트공예 및 풍선 공예 자격증을 취득하여 사업을 다각화시켰고, 고용안정센터에서 지원하는 운전면허교 육을 통해 운전면허증을 취득하였으며, e-Business 교육과정도 수료하였다.

2005년 2월부터 서울시 기초생활보장기금의 지원으로 전세점포를 구하였으나, 지 역주민의 수요가 그리 많지 않아 매장을 통한 판매로는 안정적인 소득을 올릴 수 없 었다. 이에 아름다운손은 지역주민에 대한 강습, 인터넷 쇼핑몰의 운영, 각종 문화센터 에서의 강습 등을 실시하였고, 이를 통해 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7월 에는 자활근로사업 참여자 3인이 공동으로 자활공동체를 창업하였다.

자활공동체로 전환한 이후 아름다운손은 수공예품을 제작‧판매하기보다는 수공예 를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습을 하고, 수공예 재료를 파는 데 주력하였 다. 수공예품은 많은 시간이 드는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져 비싼 편이기 때문에 잘 판 리지 않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영하고 있던 인터넷 쇼핑몰에서의 판매도 부 진하여 참여자들의 수입은 지속적으로 줄어 1인당 60만원 정도까지 내려갔다.

수공예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작업도 아니고, 그만큼 기술을 습득하는 기 간도 짧기 때문에 자활공동체로 전환했을 당시에 다양한 수공예기법이 시장에 확산되 어 있었다. 이에 비해 아름다운손 참여자들은 직업경력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자활공동체에 참여했기 때문에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판로는 주로 서울의 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하여 수공예관련 강습을 하고 재료를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자활공동체로 창업할 당시 아름다운손은 2천만원 가량의 적립금도 있었고, 지역자 활센터에서 다양한 가용자원을 지원해 주는 등 큰 문제가 없었다. 수공예품 제조‧판매

업은 자활근로사업을 하던 중에는 수익 창출에 대한 압박도 거의 없었다. 업종선택 시 에 참여자 개인에게 적합한 사업을 발굴했던 것이 아니라, 지역자활센터에서 이미 정 해진 몇 가지 사업 중에 1가지를 택했다는 것 외에는 문제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참여자들이 자활공동체를 운영하면서 상호 간에 작은 갈등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였고, 이를 조정하거나 치유하는 기제가 없는 것이 큰 문제가 되었다. 매출이 줄어들어 수입이 적어지면서 공동체의식은 희박해지고,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져 사업 운영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 상태까지 갔다. 자활근로사업 당시에는 함께 노상 판매도 하면서 시쳇말로 끈끈한 정을 느낀 때도 있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자활공동체 로 창업하고 나서는 다투는 일이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노동의 양과 질은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분배하고 일부는 적 립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참여자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아름다운손 은 낮은 수입과 참여자 간의 마찰을 이기지 못해 2007년 2월 자활공동체를 해체하기 에 이른다.

2) O‧K특송

‘O‧K특송’은 동대문의 거평프레야 및 평화시장, 왕십리, 명동의 가톨릭회관 등에서 서울 및 수도권까지의 운송업무를 담당했던 소화물배송 자활공동체였다. 총 5명의 참 여자 중에 2명이 오토바이를 이용한 퀵서비스업체에 종사했던 경험이 있었던 것이 업 종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O‧K특송은 2003년 2월에 성동지역자활센터의 시장진입형 자활근로사업단으로 시 작되었다. 초기에는 거래처 발굴과 배송기사 확보에 중점을 두고서 사업을 진행하였 다. 참여자들은 거래처를 발굴하기 위해 소화물 배송이 잦은 업체 및 공장에 직접 방 문하여 전단지와 홍보물품 등을 전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였다. 이와 동시에 확보된 배송물량 및 주문에 대한 서비스를 전담할 인력 확보에 힘을 기울였다. O‧K특송은 자 활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중‧고령자 및 저소득 층 대상을 중심으로 인력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판로를 확보하고, 일비회원 (오토바이 배송기사) 모집과 조건부수권자의 참여 확대를 통해 자활공동체로 창업하기 위한 틀을 만들어 나갔다.

2004년에는 4명의 운송담당자와 1명의 회계‧관리직원 등 총 5명이 함께 O‧K특송 을 운영하였다. 당시에는 자활공동체도 아니었지만 김○○씨와 고○○씨를 공동대표로 하는 체제로 사업을 운영하였다. 자활근로사업단을 운영하면서 참여자들은 소화물 배 송사업의 성패는 거래처 확보에 있다고 판단하고서 동대문 인근의 시장상인에 대한 홍보활동에 주력하였다. 또한 성동지역자활센터 실무자는 모법인을 통해 SK텔레콤 본 사, 한국전력 본사 등의 배송물량도 확보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5년에는 고정적 인 거래처 100곳 정도와 거점 거래처 3곳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천주교 빈민사목위원 회가 운영하는 대안금융기관인 명례방협동조합에서 대출을 받아 종로에 사무실을 구 하였다.

그리고 2006년 1월에는 조건부수급자 2명을 포함한 총 3명이 공동으로 자활공동체 를 창업하였다. 그러나 자활공동체로 전환한 이후에는 배송기사를 모집하는 데 어려움 을 겪으면서 거래처도 하나씩 줄어들었다. 참여자의 영업력으로는 기존의 거래처를 유 지하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업은 일정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배송서비스의 특성상 항상 사고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O‧K특송 대표의 리더십과 관리능력 또한 부족하였다. 대표는 사업의 성장에 주력 하기보다는 공동체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다. 하지만 자활공동체의 사업적 성장을 확보하지 않고는 공동체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일반적인 배송업체 에서는 고객에게 불친절한 운전기사에게는 일감을 주지 않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O‧K특송은 불친절한 참여자들에게도 별다른 제재없이 일정 수준의 임금을 보 장하였고, 이러한 일이 계속 발생되면서 거래처가 점점 더 줄어들었다.

대표는 배송기사에 대한 임금 및 지원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참여자들이 자기책임성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동지역자활센 터의 실무자가 지원을 계속하는 것도 한계에 도달하였다. 실무자가 영업관리업무를 대 신해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심리적 지지 외에는 별다른 지원을 할 수도 없었다. 공공 으로부터의 보호된 시장도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거래처 확보와 인력관리 측면에서 실패하여 사업을 유지할 수 없었다. 마침내 2007년 6월 O‧K특송은 사업을 종료하였으 며, 사업권은 다른 배송업체에 넘겨졌다.

3) 빵의나라

‘빵의나라’는 제과점을 운영하면서 각종 과자류, 빵류 등을 주문받아 생산하여 배 달‧판매하는 자활공동체였다. 빵의나라는 2001년부터 노원북부지역자활센터에서 운영 했던 여성(15명)으로 구성된 자활근로사업단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대기업 브랜드 의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는 제과점이 지역에 그리 많지 않았다.

빵의나라는 2003년 11월에 자활공동체로 전환하였는데, 인원은 4명이었고 모두 조 건부수급자였다. 당시에 매장을 기초생활보장기금의 지원을 받아 마련하였고, 민간보 험회사의 음식물배상책임보험에도 가입하였다. 당시에 월매출액은 꾸준히 300만원을 상회하였고, 행사가 많은 연말에는 판매량이 증가하여 평소 매출의 2배~3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재료비에 대한 지출비율이 너무 높아서 실제 순이익은 얼마 되지 않았 다. 매장이 그리 번화하지 않는 상업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높은 매출을 기대하기는

빵의나라는 2003년 11월에 자활공동체로 전환하였는데, 인원은 4명이었고 모두 조 건부수급자였다. 당시에 매장을 기초생활보장기금의 지원을 받아 마련하였고, 민간보 험회사의 음식물배상책임보험에도 가입하였다. 당시에 월매출액은 꾸준히 300만원을 상회하였고, 행사가 많은 연말에는 판매량이 증가하여 평소 매출의 2배~3배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재료비에 대한 지출비율이 너무 높아서 실제 순이익은 얼마 되지 않았 다. 매장이 그리 번화하지 않는 상업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서 높은 매출을 기대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