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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교육과 수학 경시대회 남발의 문제

Ⅲ. 한국 수학교육에 대한 제언

4. 영재교육과 수학 경시대회 남발의 문제

2002년 영재교육진흥법이 시행되고 14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영재학교가 고등학교를 중 심으로 8개가 설립되었고, 전국의 모든 시도교육청에는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급이 설치되 어 영재교육 대상자가 3%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수학·과학 분야의 영재교육이 주 를 이루고는 있지만 이제 인문·사회나 예체능 분야의 영재교육도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재교육 대상도 점점 초등 저학년으로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양적으로는 영재 교육이 팽창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영재교육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인가를 되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영재교육 기관은 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순수한 의미의 영재교육을 담당하는 것보다는 또 다른 선행학습 기관으로 전락되어 우리 수학교육 의 정상화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영재학교나 영재교육원 입학을 위한 선발 과정에서 출제되는 문제는 고난이도 선행학습을 한 학생들에게 유리한 것들입니다. 선행학습으로 길러진 문제풀이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 문 제는 제대로 된 영재 선발의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중학생에게 응시 기회가 주어지는 영재 (고등)학교의 경우 그 선발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1학년 이전까지 고등학교 수 학 전체를 마쳐야 하며, 중학교 2학년부터는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집을 공부하는 것이 정설 처럼 퍼져 있습니다.

영재교육원 교육대상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창의성 검사라는 명목으로 지필고사를 실시 하고 있으며, 여기에 나오는 문제 역시 영재학교 선발시험 문제와 그 성격이 비슷합니다. 이 런 문제를 통해서 영재를 선발하는 것이 오히려 영재 교육의 발전과 수학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하고 있습니다.

가. 영재교육에 대한 질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야

14년이나 된 영재교육에 대한 질적인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교육은 교 육부에서 2014년 말부터 영재교육에 대한 지표를 만들어 각 시도교육청을 평가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그 평가 지표가 질적인 부분보다는 양적인 성격뿐인 내용이라서 교육의 질이 평 가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책임 있는 국가기관의 평가 보고서도 없는 형편입니다.

현 교육부는 작년 12월 초에 시도별 평가를 불과 보름 앞둔 시점에서 영재교육이 시도별 평 가지표가 되면서 시도교육청 담당자들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영재교육 평가지 표를 보면, 오직 양적인 지표인 영재교육 대상자 수와 영재교육에 투입한 예산만으로 평가 하고 있습니다. 다음 [그림 Ⅲ-16]에서 우리나라는 2003년에 불과 400개였던 영재교육 기 관이 2014년에는 3,172개로 무려 8배가 증가한 것을 보여줍니다.

[그림 Ⅲ-16] 영재교육 기관 수의 변화

이렇게 불일 듯 불어나는 영재교육 기관 확대를 보면 앞으로 영재학교는 크게 확대될 것입 니다. 그리고 영재학교 확대는 곧 영재교육의 질에 대한 부실로 이어질 것입니다. 여전히 영 재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 중 영재교육을 제대로 이해하는 전문가는 극히 드물며, 교사들에 대한 영재교육 연수가 영재기관 확대를 뒤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의 보통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는 교육을 영재교육이라고 실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교육부는 영재교육 기관을 확 대할 생각보다는 오히려 축소해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영재교육을 해야 할 것입니다. 현 재 시행되고 있는 영재교육은 제대로 된 교육과정마저도 없이 담당 교사가 임의로 만든 지도 안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관마다 교사마다 천차만별인 교육을 영재교육 진흥 이라는 명분만으로 엄청난 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고 있는데, 교육부는 시급히 이에 대한 질 적인 평가를 하여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 영재교육 커리큘럼

교육부는 영재교육 기관에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표준안을 만들어서 제공했어야 합니다. 그 래서 이 표준안을 기준으로 영재교육 기관의 질적인 지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재학교 를 비롯하여 영재교육원과 영재학급에 대한 교육과정은 전적으로 각 기관에 맡겨져 있습니 다. 그래서 각 영재교육 기관마다 교육과정에 편차가 너무 심한 형편입니다.

영재(고등)학교 입학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선행을 시작하여 늦어도 중

1까지 고등학교 과정의 수학 학습을 선행으로 마치고, 중2부터는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로

구분

<표 Ⅲ-15> 한국과학영재학교의 자연계열 교육과정

* (고급) 미적분학Ⅱ(4), (고급) 미적분학Ⅲ(4)은 필수과목이면서 AP과목임

** 일반천문학(3), 일반지구과학(3)은 둘 중의 한 과목을 선택하여 제4학기까지 필수로 이 수해야 함.

<표 Ⅲ-15>에서 보면 한국과학영재학교의 필수 과목에 해당하는 수학과목에도 (고급)이라 는 단서가 붙어 있어서 일반 고등학교 수학 과목보다 심화된 과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그리고 (고급)미적분학을 Ⅰ, Ⅱ, Ⅲ까지 이수합니다. 이미 필수 과목이 고등학교 수준 을 벌써 넘어서서 대학교 1학년 교육과정까지 이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선택 과목으로 들어가면 교양선택으로 수학Ⅲ, AP 과목으로 기초정수론, 선형대수, 미분방정식, 심화 선택으로 확률 및 통계, 수학 세미나, 특강과목으로 수학특강이 개설되어 있는데 이들 과목은 서울과학고보다 더 상위에 있는 수학과 전공과목입니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의 한 수학 전공 교수는 서울과학고등학교의 수학과 교육과정은 대 학의 수학과 교육과정을 심하게 선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학의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 에 와서 해도 충분하며, 고등학교 수준에서 폭넓은 경험과 다양한 프로젝트 등을 해서 학생 들의 잠재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가는 것이 영재학교가 정상적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교육과정을 비교해 보아도 서울대학교 교양과정의 수학과 교과목보다 앞선 과목이 대부분입니다.

참고로 러시아의 영재학교인 라브렌띠예프 수학 물리 학교(노보시비르스크 국립대학교 부설 수학-물리 학교)7)의 특징적인 교육과정 운영과 기본 원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지나치게 일찍부터 전공 교과에만 매달리게 하지 않고 일반 교과내용들에 대해서는 일반 학 교 교육과정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도록 구성한다.

둘째, 교수-학습 방법은 대학의 체계와 최대한 근접한 형태로 이루어지지만 교육내용은 대학 과 정과 중복되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러시아의 영재학교의 경우 교육과정 편성 원칙으로 ‘교육과정은 가능한 한 자세히 다루고 대 학교에서의 교육과정과 일치하는 부분은 중복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영재학교 교육과정 편성에 주는 시사점이 큽니다. 이들만을 위한 대학교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과 대학에서 어울려서 같이 수업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에게 대학교에서 배울 내 용을 미리 공부하게 하는 것은 나중에 대학 교육에 주는 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시간 낭비 가 될 수 있습니다.

7) 이희권(2009), 한인기(2000) 참조.

다. 영재 선발의 문제

다음 <표 Ⅲ-16>은 2015학년도 전국의 영재학교 입학전형 방법을 정리한 것입니다.

모든 영재학교는 입학전형에서 지필고사가 주된 평가요소가 됩니다. 영재학교의 창의적 문 제해결력 평가의 수학·과학 문제를 보면 대부분 수학·과학 올림피아드9) 문제와 유사합니 다. 즉, 창의성 또는 영재성을 평가한다는 명분 아래 중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으로는 도 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오랫동안9) 훈련을 받지 않은 학생들은 탈락할 수밖 에 없는 상황입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서울과학고등학교의 2014학년도 입학전형 기출 문제의 예시를 보겠습 니다.

2단계 영재성 검사에 출제된 수학 문제가 몇 개인지는 모르나 그 중 하나만 공개했고, 3단계 창의성·문제해결력 검사에 출제된 수학 문제도 하나만 공개했습니다. 다음 [그림 Ⅲ-17]은 2단계 영재성 검사 공개 문항입니다.

[그림 Ⅲ-17] 서울과학고 2014학년도 영재성 검사 기출문항

9) 수학 올림피아드 시험은 국내에서 대한수학회가 주관하여 치러지는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와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가 있다. 이 시험 문제의 출제 영역은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과정과는 무관하게 정수론과 기하학, 함수론, 조합론, 부등식 등에서 출제 된다.

10) 지금도 서울 대치동에서 영재학교 전문 학원을 운영하는 학원장의 증언에 의하면 영재학교를 입학하는 시험 준비를 한 마디로

‘마라톤’이라고 비유했으며, 이 마라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계속되며 여학생들은 대부분 중도에 포기하는 경 우가 많다고 한다. 현재 영재학교 재학 중인 여학생의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교 4학년에 시작되는 영재교육원의 경우 초등학교 5 학년까지 남녀 비율이 거의 1 : 1이었다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국제중학교로의 진로 변경으로 남녀 비율이 3 : 1 내지는 4 : 1 로 바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