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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주의와 시간의 의미

문서에서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페이지 97-108)

가. 시간과 규칙: 엄수와 정확

근대적 시간관념이 갖는 현실성은 시간적인 생활방식, 즉 시간을 정해놓고(시간이 정해지고) 그것에 맞추어 생활하는 것이다.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자들의 상태에 대 한 서술에서 엥겔스(Engels)는 공장 안에서의 시간은 고용주가 ‘절대적인 법’이며 고 용주 마음대로 규칙을 만들고 수시로 그것을 변경하거나 덧붙일 수 있었다고 기술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공장규칙은 아주 보편적이다. ① 작업시간 10분 후에 정문을 폐쇄한다.

그 후에 온 사람은 아침식사 시간까지 들어갈 수 없다. 이 시간 동안 작업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직기당 3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② 기계가 작동중인 동안 자리를 비우는 직공은 한 직기당 한 시간에 3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작업시간 중 감독자 의 허가 없이 작업실을 떠나는 사람은 3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③ 작업용 가위를 가져오지 않은 직공은 하루에 1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④ 모든 직공은 직기의 셔 틀이나 솔, 기름통, 동력기, 유리창 등이 부서질 경우 이를 보상해야 한다. ⑤ 어떠한 직 공도 일주일 전에 통고함이 없이 결근해서는 안 된다. 공장주는 노동자의 실수나 잘못 에 대해 예고 없이 해고할 수 있다. ⑥ 다른 노동자와 대화를 하거나 신호를 보내고 휘 파람을 부는 행위가 발견될 때는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작업시간 중에 자리를 비우는 경우 6펜스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Engels, 1988: 219).

공장 출입, 장비착용, 공장 내 이동, 기기파손, 결근, 근무태도 등 공장 생활 전반 에 대한 규칙을 정하고, 위반 시에 벌금과 해고라는 제재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시간적 강제는 노동자에게 직접적이었으며, 사회적인 수준에서 제도화된다. 이 제 자본가의 시간이 노동자 자신의 시간을 신체적으로 강제하기 시작한다. 그 원인 은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확장에 기인하며, 그 결과 일과 생활의 시간적 분리가 기 계화된다. 이는 단순히 생활을 통제하고 규칙을 강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작업 장에서 노동을 공시화(synchronization)해야 할 필요도 포함하고 있었다(이진경,

1997a). 이는 시계시간이 이전의 노동리듬을 대신해서 새로운 작업리듬으로 전환되 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제 시간은 노동과 관련된 행위의 일반적 척도가 되었으며, 이러한 척도는 인간행동을 규정하고 위반 시에는 벌금이나 처벌 등의 강제가 동원 되었다. 시계시간, 기계시간이 사람들의 행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획하고 분류하는 기계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근대적 시간은 주어진 단위에 대해 무수한 선분들로 분절된다. ‘시간’의 선 분화는 시간을 동질적인 단위로 분할할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시간표와 시간관리 처럼 특정한 활동이나 동작을 선분화된 시간에 대응시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 한 선분화된 시간표는 16세기 초에 프랑스의 학교에서 작동하고 있었지만, 개화기의 우리에게 시계적 시간관념이란 19세기 말, 20세기 초만 해도 매우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2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기계시계의 보급, 계몽주의자들과 근대 매체의 계몽과 선전, 총독부의 장려 등을 통해 시간은 도시거주자들의 생활을 규제하는 요 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공장(일터)에서의 시간표는 매우 간단한 수준이었고 활동 의 외연적 제한 수준을 크게 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들어오면서 시간 표는 매우 정교하고 자세한 것이 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말이 되며 시간표는 시간 에 따라 미세한 동작 하나하나까지를 통제하려는 이른바 ‘동작관리’, ‘시간관리’가 나 타난다. 이로써 테일러주의는 시간-기계가 절단, 채취하는 활동의 폭을 미세한 부분 동작에까지 확장시켰고, 그 결과 시간-기계는 시계적 시간처럼 미시적 시간으로까지 얼마든지 분할 가능한 분절기계가 되었다. 이런 점에서 테일러주의는 근대적 시간-기계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진경, 1997a: 116~117).

근대적인 시간관을 갖는다는 것, 혹은 근대적인 시간을 일상생활에서 수용한다는 것은 단지 양력에 따라 날짜를 매기고 시간을 지키는 훈련을 한다는 것 이상의 좀 더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환을 요구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시간을 다양하 고 이질적인 사건이나 영역들에 대해 단일한 기준 내지 척도로 적용하는 능력과 사 고방식 혹은 태도와 습속을 요구한다. 이를 통해 이질적인 삶의 요소들을 하나의 시 간적인 좌표계 안에서 통일하고 통합하여 파악하는 능력이 획득된다. 그것이 없다

면, 양력은 달력을 볼 때나 날짜를 계산하는데 사용되곤 그만일 것이다. 그러한 국 지적 사용으론 근대의 시간적 생활방식은 물론 근대적 시간관 또한 실질적으로 습 득하여 사용한다고 말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근대적 시간관을 형성하는데서 정작 중 요한 것은 달력을 보지 않을 때도, 시간 약속을 하거나 지키지 않을 때도 하나의 단 일한 시간적 좌표계 안에서 다양한 사건들을 포착하고 배열하며 관련짓는 것이고, 그러한 관련에 따라 개개의 사건이나 사실이라는 부분을 전체적인 시간의 ‘흐름’ 속 에 통합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박태호, 2003: 167~168).

시간관념에 있어서 시계시간의 도입과 보급이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을 이루었다 면, 인간의 생활방식과 태도, 습속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는 시계시간이 수행한 기 능이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근대의 시간은 시간엄수와 정확성 을 그 특징으로 하는데, 이러한 시계의 이미지는 인간됨의 기준에도 적용될 정도로 기능적 정확성을 중시하게 된다. 시간을 잘 맞추는 것이 시계의 미덕인 것처럼, 사 람 또한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임무를 정확하게 수행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 다. 시간엄수는 그 자체의 정확성을 뛰어넘어 인간됨의 준거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 었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규율은 새로이 출현한 근대사회의 새로운 생활양식에 복속 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의 사람됨이 시계의 기계와 같으니 바퀴와 유사해 태엽이 구비한 중에 한 가지만 없어도 병신 되어 쓸데없을 것이오. 사람이 사지 백톄와 이목구비 중에 한 가지만 병들 어도 완전한 사람이 되지 못할지라 기계가 각각 제 할 직분을 다한 연후에 그 기계가 사시 쥬야를 물론하고 운동하야 제 시한을 마칠 것이오. 사람도 쟝부와 긔혈이 고른 연 후에야 운동과 행위를 임의로 하지 만일 병이 있으면 세상만사에 아무 생각이 없을지니 무슨 사업에 경영을 할 수 있으리오(독립신문, 1899년 10월 3일자 논설).

이 시기에 시간을 정확히 지킬 것을 요구하는 규칙들이 근대 제도와 시설들에서 만들어진다. 다음은 아펜젤러(Appenzeller)가 설립한 근대 학교, 배재학당의 교칙 중 일부이다.66)

66) 배재학당은 1885년 8월 3일에 선생 1명과 학생 2명으로 개교했으며, 창설된 지 10여년 만 에 설립목적에 부응하는 근대학교로 급성장하였다. 이에 학교의 학풍과 규율을 규정하는 ‘배

3) 등교(登校)

제3 등교시간은 오전 8시 15분에서 11시 30분까지며 오후는 1시에서 4시까지 하되 나오 고, 물러 갈 때는 문란하게 느리거나 뛰고 떠들지 못한다.

4) 시간 종(打鐘)

제4 학교에 나올 때나 수업을 할 때나 쉴 때는 반드시 종을 울린다.

8) 제명(除名)

제14 마음대로 오다 안오다 하며 일개월(一個月)이 넘는 자는 학교에서 제명한다.

9) 출학(黜學)

제15 큰 허물이 있으면 학교에서 출학을 명하고 그 다음은 허물의 경중(輕重)을 가려서 유기(有期) 또는 무기(無期)로 정학(停學)을 명한다.

10) 도강(都講)

제17 도강(都講=정기적인 시험)은 매년(每年) 2회(回)로 정하고 공부의 다소(多少)대로 끝수(點數=學點)를 주어 100점으로 만점(滿點)을 삼으며 학과(學科)는 3종이나 5종이 나 다소가 같지 않고 합한 수(數)를 책의 수로 제(除)하여 실수(實數)가 70점 이상인 자는 일등(一等)으로 하고 70점 이하는 일등이 못된다(배재백년사편찬위원회, 1989: 5 1~53).

배재학당학칙에서는 ‘정확한’ 등교시간(제3), 수업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제4), 제 명과 출학에 대한 시간규정(제8, 9), 시험횟수와 성적처리(제17), 식사시간(제21), 기 숙사의 소등시간(제20) 등을 명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과 유사한 ‘학교생활 전반’에 관한 규칙과 규정을 제시하고 있다. 등교시간은 학교생활의 시작을 명확하 게 알려주며, 기숙사의 소등시간은 하루의 마무리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제 학교의 하루, 학생의 하루는 시계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며, 그것을 알려주는 것이 종소 리이다. 나아가 학교생활 전반에서 시간 규칙이 강조되고 있다. 학생의 제재와 시험, 성적 등에도 시간 규칙이 강조되고 있다. 학교의 시간은 시계시간에 의해 규정되고, 이는 곧 규칙으로서의 시간, 준수되어야 할 정확한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발전하 게 된다.

영어학교에서 학도의 공부하는 시간을 매일 오전 아홉시로 정하고 만일 늦게 오는 학 재학당학칙(培材學堂學則)’이 1890년에 발표되었다. 이 학칙은 우리나라 최초의 학칙이라고 할 수 있다.

도가 있으면 매명에 벌금 십전씩 물리고 혹 무고이 올날을 아니오는 학도가 있으면 매 명에 벌금 십오전씩 물리는 고로 형세구차한 학도들은 매우 감당키 어렵다고 하나 학교 에 규칙이 엄하여야 학도들이 마음을 게을리 아니 먹고 정한 시간 안에 진즉들 다닐 터 이니 영어교수 헐치신씨의 학교에 규칙을 이렇듯이 엄한 세운 일은 공부에 유익할 터이 니 매우 치하할 만 하더라(독립신문, 1897년 1월 30일자 잡보).

그 시기의 신문에서도 학교에서의 시간엄수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해 계 몽하고 있다. 시간표는 그저 외면상의 규칙이 아니라 내면화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내면화의 기제는 벌금제였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렵다하더라도, 학 교에는 규칙이 엄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오히려 벌금제가 정확한 시간을 지키게 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학교가 학생에게 시간엄수라는 규칙을 강제하고 있는 것 이다. 이는 산업화 초기 공장에서 시간엄수를 위해 벌금제를 활용하던 것과 같은 논 리와 방식이다.67) 이런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학교 시간의 작동방식 역시 산업주의의 시간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나. 시간과 화폐: 근면과 계산

근대 시간의 생활방식은 시간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규제․비난할 뿐만 아니라 쓸데없이 빈둥대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시간에 맞추어 살아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정해진 시간만큼이나 부지런히 바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새 로운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시간의 낭비는 곧 돈의 낭비이다.

서양 속담에 따르면 시간은 곧 돈이라 하고 동양 글에 따르면 마대만한 근을을 아끼 라 하였으니 그 말씀은 같지 아니하나 속뜻은 서로 같은 것이 무슨 일이든지 게을리 하 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 하여 사업을 성취하라 함이라. … 사람이 해타하고 보면 실상은 버러지만도 못하고 짐승만도 못할지라. 버러지도 거미 같은 것은 처마 끝의 광활한 곳 에 그물을 만들어 내왕하는 나비와 천장의 동물을 잡아먹고 … 부지런하고 짐승에도 다 67) Ⅱ장 1절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톰슨(Thompson, 2000)이나 엥겔스(Engels, 1988)의 연구에

서도 정확한 시간엄수와 시간규율의 내면화를 위해 ‘벌금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이 드러난 다. 일제시대의 ‘공장체제와 노동규율’을 연구한 강이수(1997)의 연구에서도 노동규율의 확립 을 위해 벌금제가 도입되었던 기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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