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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주의와 지식의 의미

문서에서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페이지 181-192)

가. 근대 지식과 근대적 신체

⑴ 근대적 신체의 발견

근대적 공간에서 근대적 시간에 익숙해지려면 우선 개인의 신체가 근대적 신체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근대의 기획에는 개인의 ‘신체’를 어떻게 문명화된, 계몽된 신체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근대국민국가는 건강한 신

체를 지닌 국민을 양성하려는 목표가 부각되었고, 그에 터해 위생 문제가 일차적으 로 대두되었다. ‘근대적 신체=위생=문명화’ 담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조선 사람 하나가 지나가니까 그 사람더러 외국 사람이 묻되 “왜 당신 집 앞길을 정 하게 못하느냐”고 한즉, 조선 사람 말이 “돈이 없어 못한다”하거늘, 외국 사람 말이 “돈 이 없으면 삯꾼을 얻어서는 못할지언정 왜 당신 손으로 고쳐놓지를 못하느냐”고 한즉, 조선 사람 말이 “첫째는 그 길이 내 길이 아니요 둘째는 내가 그런 일을 하기 좋아 아 니하노라”고 한즉, 외국 사람 말이 “만일 그 길이 당신 길이 아니면 왜 남의 길에다 대 소변을 보며 왜 더러운 물건은 버리느냐”고 한즉, 조선 사람 말이 “그것이 풍속이라”하 니 외국 사람이 다시 말을 아니하고 지나가면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이 “조선은 풍속 까 닭에 될 일이 못된다”고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듣거드면 혹 분히 여기는 사람이 있어, 사람마다 이 더럽고 진 길들을 자기 집 앞만 수리하자 하면 과히 힘도 아니 들 터이요, 자기 몸에도 유조(有助)하고 자기 위생에도 유조하고 나라 모양도 나고 조선 인종의 명 가(名價)도 올라갈 터이니, 풍속에 매여 이 망신들을 아니 하는 것은 세상에 난 장부의 떳떳한 생각일 듯하더라(독립신문, 1897년 2월 2일자 논설).

개화기의 여러 신문 논설과 사설에 조선의 비위생적 상태에 관한 비판담론들은 비위생 상태가 문명의 진보에 방해됨을 역설하고 있다. 이 시기, 도로의 위생, 의식 주의 위생, 목욕위생 등 생활전반의 위생에 대한 비판담론들이 근대 매체의 주류담 론을 형성하였다. 이를 위해 서양식 몸가짐과 위생이 나열되었고, 신체위생과 예절 은 서구문명의 위생과 예절로 재배치되었다. 개인의 몸가짐과 위생상태는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는, 그 자체로 계몽의 대상이 되었다. 거리 청소와 나무 심기, 우물의 청 결한 관리, 노상방뇨의 금지, 벌거벗고 나다니는 일의 금지 등 새로운 규범으로 제 시된다. 근대 매체가 위생 규율의 지침서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거처와 의복과 신체와 음식을 정결하고 위생적으로 먼지와 무더기와 더러운 물건을 궁벽한 곳에 버리며 더럽고 흐린 물을 집안에 머물러 두지 말라. 썩고 상한 악취는 독 이 된다. 의복은 때 묻고 더러운 비단이나 명주옷이 맑고 조촐하고 굵은 무명과 베옷만 못하다. 생활에도 좋지 않다. 이불과 요는 아침마다 내어 널어 볕과 바람을 쪼이게 하고 시쳐 빠는 것을 자주하라. 신체는 청결하게 한달 3~4차례 목욕, 입속은 항상 냉수로 양 치질, 흰 소금으로 이의 안과 밖을 씻어라. 음식은 익지 않은 것, 굳센 것 중 끓이거나 굽지 않은 것, 식어서 찬 것은 다 양생에 적당히 않다. 한 때에 과식하는 것은 좋지 않

다(독립신문, 1899년 6월 21일자 논설).

이처럼 이 시기의 신문들은 위생과 양생, 섭생을 위해 의식주 전반에 대한 생활방 침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러다가 이 시기의 전반적인 위생담론은 점차 아동의 건강 과 과학적 육아법으로 구체화되었으며, 이는 민족의 발전과 관련된 것이 되었다. 20 세기로 접어들면서 아동담론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의 하나가 바로 건강에 대한 관심 이었다. 위생과 건강의 중요성이 커지며, 무엇보다 아동의 육체적 건강에 대한 사회 담론이 우세하게 된다.123) 어떻게 하면 건강한 아이를 기를 수 있나, 지금까지 잘못 기른 점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위생과 질병, 영양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가 등장한다. 이러한 관심은 계몽기의 사상가들의 위생론을 바탕으로, 근대의학을 습득한 의사와 같은 전문가집단의 참여에 의해 체계화된다.

유아의 위생과 민족: 가정과 개업의 제씨에게

… 소아의 사망률이 많은 것이 민족의 비참사인 동시에 불명예인 것은 말할 것도 없 거니와, 죽지 아니하고 생장한다 하더라도 幼時의 위생이 등한하였기 때문에 결핵, 기생 충, 안질, 뇌와 골격의 諸病, 영양장애 등 수없이 건강의 손해를 받게 된다. 이런 불행을 면하려면 육아를 오직 상식(기실은 다량의 무지와 미신을 포함한)에만 의하던 재래의 조선가정의 사상을 타파하고 반드시 전문가의 지도에 의한 과학적 육아법을 채용하여야 할 것이다. … 우리가 가장 요청하는 바도 각지에 없는 곳이 없는 개업의들이 민족을 위한다는 견지에서 소아의 진찰, 건강간호 등에 봉사적으로 종사하는 것이다(동아일보, 1931년 5월 10일자 사설).

이 사설은 개별 가정에 대해서는 과학적 육아를, 전문가인 의사들에게는 민족을 위한 봉사를 촉구하고 있다. ‘위생=아동건강=과학적 지식=민족봉사’가 하나의 담론 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근대 지식이 이처럼 근대적 신체에 주목하고 근대 적 신체와 연결되는 지점을 살펴보면, 지식-권력과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123) 건강담론의 한편에는 건강한 어린이를 길러냄으로써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는 애국적, 민 족주의적 관심이 깔려 있었으며, 다른 한편에는 위생체계를 강화함으로써 통치를 용이하게 하고 식민지에서의 최소한의 보건상태를 보장받고자 하는 ‘위생경찰’로 대표되는 일제의 위 생행정도 이러한 흐름의 물질적 기반을 형성했다고 생각된다.

지식권력은 근대적 신체를 가진 주체를 만들고자 의도했음을 알 수 있다.

⑵ 과학적 양육과 근대적 모성

전통적으로 ‘양육’은 가정과 가족, 특히 어머니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근대와 함께 만들어지거나 혹은 중요해진 ‘아동기’는 자녀양육의 여러 측면들을 근 대과학과 만나게 했다. 물론 가족의 사회화, 특히 자녀양육과 관련된 변화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수들이 포함된 복합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서구사회의 경우 양육의 근 대적 변형과정에서 국가, 전문가―의사, 심리학자, 유아교육담당자 등―와 자본가 집 단, 종교단체, 그리고 이들의 이론적 선도에 호응했던 중산층이상의 교육받은 여성 (주부)들이 거론된다. 미국사회에서도 19세기~20세기 전반에 걸쳐 가정중심성 (domesticity)이 강화되고 그와 결부되어 여성의 자리가 가정으로 정착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이 전문가들(experts)이었다. 아동 문제에 있어서도 19세 기 말, 교육학과 심리학 분야의 전문가들은 과학적인 양육을 추구하는 중상류층 교 육받은 여성들이 주도하는 ‘어머니운동’124)의 이론적 지도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 후 어머니들의 과학적 양육론에의 적극적인 참여는 그 성격이 변화하는데, 20세기 직후 어머니들은 전문가의 지도를 수동적으로 따르는 역할에 한정되게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정중심성을 정당화해주는 전문가의 비중이었다. 특히 이 시 기 행동주의 심리학의 영향은 지대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핵심인물이기도 한 왓슨 (Watson)의 양육론은 인간을 ‘하나의 기계’로 보며, 작은 기계인 어린이를 주어진 문 화와 산업사회에 적합한 존재로 프로그램해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금욕 주의, 독립심, 엄격한 훈련이었다(Ehrenreich & English, 1972: 191~210). 행동주의 심리학에 터한 자녀양육에서는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습관은 아이들의 행

124) 어머니운동(the Mothers' Movement)이란 세기말, 미국사회의 교육받은 중상류층의 여성 들이 자녀양육을 보다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서 벌인 운동으로, 1883년 뉴욕시의 중상류층 어머니들이 'the Society for the Study of Child Nature‘를 조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뉴욕 시의 모임 이후 약 10년간 전국 각지에 걸쳐 이와 유사한 아동연구 어머니클럽들이 생겨났 으며, 전국적으로 아동연구 전문가의 강연회가 성행하였다(Ehrenreich & English, 1972: 19 1~196).

동 하나하나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그에 따른 행동변화지침을 설정하고 훈련하는 방식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습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규칙성 (regularity)이며, 규칙성은 시간표에 의한 아동의 생활관리와 직결되었다.

이처럼 가족과 자녀양육을 둘러싼 새로운 담론이 가족에로 수용되는 지점에서 핵 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은 여성―가정주부―집단이다. 가족이 지역사회와의 공동체 적 유대를 잃게 되면서, 새로이 가족의 역할과 이념에 대한 계도자로 부상한 의사와 심리학자 등 각종 양육전문가들의 이론과 지침은 가정주부들에게 아이를 관리할 지 식을 제공했으며, 이제 중산층의 가정주부들은 의사집단과 일종의 연대관계를 맺음 으로써 자신의 가정 내에서의 권력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노동자계급 의 여성들은 일종의 가족수당제도를 통하여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지 않고 직접 양 육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받는다. 이제 노동자계급 아이들에 대한 국가․사 회적인 의료 감시는 마치 국가인증간호부(state-approved nurse)와 같은 역할을 하는 어머니를 통하여 대행되었다(Donzelot, 1977: 17~22). 이에 돈제로는 여성은 ‘자율적 인’ 가정과 공동체적 생활에 근대권력의 개입을 불러들이고 실천한 것에 대한 책임 을 면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에렌라이히와 잉글리쉬(Ehrenreich & English, 1972)는 양육 전문가집단 과 여성과의 접점을 강조하면서도, 여성들이 적극적인 수용자도 아니었고, 그것을 통해 지위가 향상된 것은 더욱더 아니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과학과 근대학교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19세기말의 여성들은 학교 및 교육이론과 보다 평등한 협동 관계를 유지하여 ‘어머니운동’의 당사자가 되기도 했으나, 점차 전문가와의 관계가 위계화되는 과정을 밟았다는 것이다. 20세기를 넘어서면서부터 행동주의 심리학의 대두와 함께, 이제 전문가와 어머니들과의 관계는 협조가 아니라 전문가는 처방을 내리고, 어머니는 그것을 수행하는 상하관계로 바뀌었다. 따라서 전문적 양육지식과 양육과학은 여성들의 권한의 원천이 되기는커녕, 어머니들의 경험과 지혜를 무시한 남성주의적(masculinist) 과학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어느 관점에서 보던 공통점은 근대 이후 자녀양육에서 어머니의 ‘단독’ 역할의 중 요성이 커졌으며, 그 역할의 수행에 있어서 전문가집단의 과학적 지식이 중요한 변

수도 등장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상황 또한 문명의 부강이 개인의 위생과 건강한 신 체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는 담론이 형성되던 근대계몽기였기에, 근대적 신체와 그 를 과학적으로 양육하고자 했던 서구사회의 담론이 그대로 재현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녀를 잘 먹이고 튼튼하게 길러 자녀의 건강을 형성․유지해주는 것은 개 별 가정의 관심사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인구의 양과 질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 다. 이에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아동양육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관심이 집중되었 던 것이다. ‘어머니’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에게 할당된 역할이지만 모성의 사회적 구 성은 ‘누군가’에 위해 제기되고 호명되어 왔다. 이와 함께 서구의 경우 19세기 후반 에 여성의 고등교육의 증대가 이루어졌으나, 그것이 여성의 사회활동과 취업으로 이 어지는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일이었다. 여성들의 교육열이 찾은 출구는 아이를 양 육하고 가정을 지키는 성별분업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가정에 대한 지식을 전문화․

과학화한 가정학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19세기말 이래 신문과 잡지125)에서 여성교육 론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의미하는 여성교육이란 여성 자체의 교육이라기 보다 아동교육의 측면에서 모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근대교육 형성기의 모성담론을 연구한 채성주(2006)는 근대적 모성을 가부장적 모성과 계몽적 모성으로 나누고, 다시 가부장적 모성론 혹은 도구적 모성 론에서는 ‘민족의 어머니’와 ‘군국의 어머니’가 강조되고 있으며, 계몽적 모성론에서 는 ‘과학적 모성’과 ‘정서적 모성론’이 강조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서양에서도 과 학적 모성과 정서적 모성의 등장은 근대적 모성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과학적 모성론은 자연스러운 아이의 발달과 시간에 따른 규율과 습관의 내면화를 강조한다.

또한 근대의 의료체계를 전제로 한 위생담론 역시 과학적 모성을 구성하는 한 축이 었다. 과학적 모성론은 좋은 어머니와 나쁜 어머니를 구분했고, 이는 여성 내부의 차이를 생산해냈으며 어머니-여성으로 하여금 전문가에 비해 수동적 지위를 차지하 게끔 만들었다. 아울러 정서적 모성론은 과학적 모성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가진다.

125) “그 아내가 남편만큼 학문이 있고 지식이 있으면 … 그 자식 기르는 법과 가르치는 방식 을 알 터이니 그 자식들이 충실한 터이요.”(독립신문, 1896년 5월 12일자 논설). 『별건곤』

에서도 20년대 후반부터 ‘어머니상식’, ‘이때에 자녀 키우는 방법’, ‘자녀의 섭생법’ 등이 다 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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