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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주의와 학교의 공간

문서에서 근대성의 구현체로서 학교: (페이지 152-172)

가. 학교-공간-기계109): 구획화와 배치

⑴ 구획화와 배치

공간-기계는 시간-기계처럼 공간 자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분할하고 구획하는 방식 109) 학교공간이 사람들의 활동을 특정한 방식으로 절단하고 채취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며, 특

히 공간은 ‘순종적 신체’, ‘신체 규율’과 관련된 기계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을 포함하고 있다. 근대적 공간-기계의 형성은 근대에 이르러 나타난 공간적 변화를 의미하며, 새로운 질서를 표상하는 공간이다. 근대 공간으로서의 공장은 공간적 배 치의 전환, 즉 구획화(compartmentation)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공장이라는 공간 은 분업을 통해 시간적 배치를 공간적 배치로 전환하면서, 개인(노동자)의 분할과 규율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근대적 교육공간으로서 학교의 성립과정 역시 공간적 구획화를 분명하게 보여주 고 있다. 근대적 학교공간은 새로운 지식을 전파하고 새로운 질서의 진보를 입증하 는 공간이다. 중세를 지나면서 학교는 점차 독자적인 공간으로 분화되었다. 공동체 와 가족 내에서의 자연스러운 학습행위가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학습공간으로 분리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라는 분리된 시간과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그림 14〕처럼 근대화되기 이전의 학교의 평면도를 보면, 아직 학급단위로 분할되지 않았으며, 도 서관을 제외하고 기능적 분화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학교의 공간배치 는 아직 미분화된 개방체계였다.

그러나〔그림 15〕를 보면 상급생과 하급생으로 학년이 분할되어 있으며, 각 교실 의 기능적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이는 학교로 유입되는 많은 학생인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함이었음을 Ⅲ장에서 밝혔다. 학급․학년․과목․연령 등으 로 분할되면서 학교라는 공간-기계는 내부적 동질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림 17〕을 보면 1910년대 소학교의 교실 내부 구조와 교사-학생의 배치를 볼 수 있다. 하나로 구획화된 교실에 칠판과 교단을 중심으로 교실의 전면 중앙에 교사 가 위치하고 학생들이 일렬로 배치되는 형식이다. 이것이 전형적인 근대 교실의 공 간 배치인데, 원형이 마주보는 공간배치나 몇 개의 집단이 마주보는 공간배치와 구 별되는 것이다. 학생들 간의 의사소통은 억제되며, 하나의 중심에 의해 통제되는 구 조이다. 이러한 공간 배치는 지배와 복종을 통해 교사에게는 ‘권위’를, 학생에게는

‘순종’을 이끌어낼 수 있다. 아울러 교사는 다양한 제재와 보상을 통해 학생들에게 내면화, 심득(心得)되도록 했다. 특히 복도를 향하여 난 창문들을 통해 푸코의 일망 감시시설을 연상할 수도 있다. 일제시대의 소학교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교실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행위들이 복도 밖에서 볼 수 있다.

〔그림 14〕‘근대화’되기 이전의 영국학교 출처: 이진경, 1997a, 138쪽.

〔그림 15〕‘근대화’되어 학급으로 분할된 이후의 학교 출처: 이진경, 1997a, 139쪽.

〔그림 16〕과〔그림 17〕을 비교해보면, 우선 학습공간의 변화가 눈에 들어온다.

구들장과 좌탁이 칠판과 교탁, 책상과 의자로 대체되었다. 이는 확실히 전 시대와 구별되는 수업방식이다. 학생보다 높은 위치의 강단에서 수업하는 교사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시선은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은 학생들은 서 있는 선생의 움직임만 응시해야 한다. 학생의 시선이 분산되면 제재가 가해졌다. 그럼으

로써 교사의 권위는 높아졌고, 교실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로 구분된다.

〔그림 16〕1900년대 서당 풍경 출처: 이승원, 2005, 19쪽.

〔그림 17〕 1910년대의 소학교 수업모습 출처: 윤성렬, 2004, 139쪽.

⑵ 규율조직으로서의 학교

“일제하 보통학교와 규율”에 대해 분석한 김진균 등의 연구(1997)에서는 이 시기 교육의 특징을 학생에 대한 세밀한 검사․분류․평가, 학생들에 관한 관리와 통제의 강화, 시간표에 의해 이루어지는 교육 등 세 가지라고 말한다. 보통학교 초창기인 1920년대에는 학생의 연령편차가 심했으나 점차 평준화되었고,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학교의 습관규약에 복종하는 것이라며 ‘훈육조직으로서의 학교’임을 분명하 게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 보통학교의 공간적 배치를 살펴보자.

학교는 학교 건물과 운동장으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운동장은 야외에 있으며, 학 생들의 운동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측면이 있다. 운동장은 전 체 학생을 모을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확보되어야 한다. 넓은 규모의 운동장이 왜 이 시기 학교의 필수적 공간이었는가. 운동장은 각종 체조와 운동을 통한 신체훈련의 장이 었고, 동시에 전체 학생을 모아놓고 각종 행사를 치르고, 사열하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일종의 연병장이었다. 운동회를 하는 경우 여기에 모이는 사람은 학생들만이 아니라 기 관장과 학부모, 마을 주민들이었다. 학생들은 아무렇게나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저학년 이 중앙에, 고학년이 양쪽 측면에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전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 가 어디인가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고학년이 저학년을 보호한다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학교건물의 공간배치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교장실

을 위시한 관리통제 기능을 행하는 부문이 건물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각 교실에 대 한 통제와 동시에 운동장을 비롯한 학교의 공간에 대한 전망을 확보할 수 있는 위치가 선정되었다. 전반적으로 건물 배치는 권위적 질서를 표현하였다. 이런 공간적 배치는 사 실상 교실 내에서도 관철된다(김진균 외, 1997: 90).

우리의 초중고교의 구조가 병영을 그대로 본뜬 것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특별한 연구나 성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교문 옆에 붙어 있는 수위실은 위병소이며, 운 동장은 연병장이고 운동장 중앙 전면에 자리 잡은 구령대는 사열대다. 우리네 학교 는 민주적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기존 권위와 질서에 스스로 복속하 는 의식을 형성하기에 적합한 공간인 것이다. 이 땅에 근대식 학교를 처음 세운 게 군국주의 일본이라는 점을 돌아보면, 국민 동원체제 아래의 학교 공간으로 병영보다 더 적합한 구조가 없었다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홍세화, 2004).

이른바 교육지침이란 것이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학교, 그리고 시간표를 비롯하여 모든 규율이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강요되는 학교, 교사와 학생 사이는 물론 상급 생과 하급생 사이까지도 위계질서로 짜여져 있는 학교, 그 학교의 질서유지를 위해 규율부라는 경찰조직을 필요로 하는 학교, 그 질서를 위해 폭력이 정당화되는 학교, 그런 학교에서 10여 년을 생활하면서 우리의 의식을 넘어 무의식에까지 박혀버린 관념이 있으니 그것은 곧 ‘권위에 대한 복종’이 미덕이라는 관념이다(현병호, 1997:

96). 처음 학교 입학식 날부터 ‘앞으로 나란히, 옆으로 나란히’에 대한 훈련부터 경 험하게 되니, ‘순종’하는 신체는 다른 모든 교육과정보다 우선하는 것이었다.

푸코는 19세기의 감옥체계에서 과학적으로 신체를 길들이는 제도적 공간의 전형 적 모습을 발견하였다. 근대 감옥의 규율메커니즘이 군대, 병원, 작업장 등 사회전반 에 확대됨을 강조하면서, 감옥이 근대사회에서 ‘규범화 권력’110)의 토대가 되었음을

110) 규율장치들이 도처에 존재함으로써 지탱되고 모든 감금장치에 의존해있는 이 규범화 권 력은 우리사회의 중요한 기능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정상성을 판가름하는 재판관들은 우 리사회 도처에 현존해 있다. 우리는 교수-재판관, 의사-재판관, 교육자-재판관, ‘사회사업가’-재판관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규범적인 것의 보편성을 존속시키고, 저마다 자신이 있는 지점에서 신체, 몸짓, 행동, 품행, 적성, 성적을 규범적인 것에 종속시킨다. 감옥 의 구조는 밀집된 형태이건 분산된 형태이건 통합․배분․감시․관찰 체계를 갖추어서, 근

밝히고 있다. 푸코는 규율의 네 가지 요소를 밝히고 있는데, 첫째, 개인을 위계적이 면서도 기능적으로 배치하는 ‘공간배치의 기술’, 둘째, 신체동작을 코드화하여 행동 에 대한 규칙성을 부과하는 ‘활동의 통제’, 셋째, 신체 규율의 지속을 위해 활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열화하는 ‘생성의 조직’, 넷째, 개인의 능력을 집합 단위 내에 서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힘의 조합’이다. 위의 네 가지 요소들로 짜여진 규율의 그물망은 개인을 전면적으로 포위함으로써 사회에 유용한 ‘유순한 몸(docile body )’111)으로 만드는 것이다(박선웅, 2002: 78).

우선 ‘공간배치의 기술’은 앞에서 논의했던 학급의 구획화와 교실의 배치를 생각 할 수 있다. 연령에 따라 학년을 나누고 그들을 한 학급으로 편성한다. 〔그림 16〕

의 교실의 공간배치를 떠올리면, 교단을 중심으로 교실의 전면 중앙에 교사가 위치 하고 학생들이 일렬로 배치된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 교사에게는 권위가, 학생에게 는 순종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 다음은 학생의 활동에 규칙과 규율을 부과하는 ‘활 동의 통제’이다. 1859년경에 독일인 슈레버(Schreber)112)는 어린이들을 위한 두 가지

대사회에서 규범화 권력의 거대한 토대가 된 것이다(Foucault, 2003: 460).

111) 몸에 대한 규율체계로서 학교를 바라보는 푸코의 시각은 맑스주의적 관점과 차이가 있다 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맑스주의적 사회학자와 교육사회학자는 기본적으로 학교를 자본 가 계급의 지배를 유지하고 정당화시키는 이데올로기 장치로 본다. 그들의 시각에서, 학교는 자본주의적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지닌 노동력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노동의 위 계적 분업에 대한 존경심과 계급적 지배가 확립된 질서의 규준을 도덕적․시민적․직업적 의식에 대한 규준으로 학습시킨다. 즉, 학교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함으로써 의식을 조 작․통제한다. 반면에, 푸코는 학교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의식의 통제에 한정하여 본 것이 아니라 몸을 규율하는 권력에 초점을 두었다. 이와 같은 이론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푸코는 구조주의적 결정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푸코는 몸을 단순히 훈육체계의 효과로 취급하기 때문에, 푸코의 몸은 수동적이고 수용적이다. 푸코는 종종 담론에 대한 저항을 언 급하면서도, 규제와 감시에 대한 저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저항하는 몸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박선웅, 2002: 79).

112) 독일 드레스덴의 고등법원장을 지낼 정도로 저명한 판사였던 다니엘 파울 슈레버 (1842-1911)의 아버지이다. 다니엘 파울 슈레버는 42세 되던 해에 과도한 정신적 긴장으로 정신병에 걸렸다. 그는 라이프치히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자신이 '초자연적인 계시 '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치료를 받고 퇴원한 뒤에도 슈레버의 정신병은 계속 재발했고, 생의 후반 27년 가운데 13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죽었다, 61살에 『나의 신경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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