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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구성체의 종류의 문제

문서에서 마르크스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페이지 141-146)

대적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알뛰세의 주장에 대해 라클라우(E. Laclau)와 무페(C.

Mouffe)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한다. 알뛰세가 주장하는 ‘중층 결 정’(overdetermination)과 ‘최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determination in the last instance by the economy)은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최 종 심급에서 경제의 결정이라는 것은 결국 경제에 최종적인 본질적인 결 정권을 주는 것으로서 경제를 특권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중층 결정에 어 긋난다. “만일 사회가 자체의 운동 법칙을 결정하는 하나의 최종 심급을 갖고 있다면, 중층 결정된 심급들과 최종 심급 간의 관계는 최종 심급에 의한 단순하고 일방적인 결정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E. Laclau / C. Mouffe, Hegemony & Socialist Strategy, 99쪽) 이처럼 라클라우와 무페는 알뛰세의 주장이 자기 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보면서 알뛰세의 이 론은 결국은 경제에 최종적인 권한을 주는 경제 결정론이나 경제 환원론 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3) 사회 구성체의 종류의 문제: 사회 구성체에는 표준 형태만 있

본주의 사회’, 생산 수단의 공동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가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하나의 독자적인 생산 양식으로 간주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사 회 구성체가 순서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연속적인 발전을 한다고 보는 전 통적인 입장은 이러한 설명에 장애가 되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발전 단 계에서 제외시켰다. 스탈린 시대에 쓰여진 소련 교과서 ꡔ세계 철학사 IIIꡕ 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각각의 경제적 사회 구성체는 인류의 진보적 발전 과정에서의 일정한 단계에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곧 경제적 사회 구성체가 발전하고 교체하는 역사이다. ‘원시 공동체’적 구성체 대신하여 ‘노예제’적 구성체가 도래하고,

‘봉건제’가 다시 그것을 물려받았다. 봉건제는 ‘자본주의’ 체제에 자리를 내주어야만 했고, 자본주의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적 사회 구성체의 순서적 교체의 기초에는 생산 양식의 교체가 있다.”(녹두편집부 편, ꡔ세계 철학사 IIIꡕ, 79쪽)

여기에는 마르크스가 ꡔ정치 경제학 비판ꡕ의 서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이 제외되어 있다. 이것은 생산 양식의 연속적인 발 전을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서,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원시 공동체나 노예 제의 변종으로 보거나 또는 봉건제의 동양적 특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 면서 하나의 독자적인 사회 구성체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1988년에 쓰여진 동독 교과서 ꡔ역사적 유물론ꡕ에서는 본문에서는 위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의 사회 구성체를 언급하고 있지만, 각주에서는 아 시아적 생산 양식과 관련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편의 사람들은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노예제에 선행하는 특수한 경 제적 사회 구성체(‘초기 계급 사회’)로 여기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마르 크스가 이 용어를 동양의 봉건적 생산 양식이 지니는 특성을 표현하기 위 해 사용했다는 견해이다.”(H, Steußloff, ꡔ역사적 유물론ꡕ, 144쪽)

여기서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을 하나의 독자적인 생산 양식으로 간주하 는 입장도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인류의 역사가 연속적

인 사회 구성체를 거치면서 하나의 단일한 발전 과정을 밟는다고 보는 것 이 아니라, 개별 사회에 따라서 서로 다른 발전 과정을 밟을 수도 있다는 점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입장을 따른다면 이러한 다섯 가지 또 는 여섯 가지 사회 구성체 이외에도 ‘천민 구성체’나 ‘소경영 구성체’와 같 은 또 다른 사회 구성체의 형태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J. P. Scanlan, ꡔ소련의 마르크스주의ꡕ, 215쪽 참조).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도 한국 사회의 사회 구성체를 둘러싼 논의가 벌어졌는데, 이때 한국 사회를 식민지성과 반(半)봉건성으로 특징지우면서 사회 구성체를 ‘식민지 반봉건 사회’로 규 정하는 입장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회 구성체는 표준 형태에서 언급하고 있는 사회 구성체 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물질적 토대인 생산 양 식에서 노예제와 봉건제, 자본제 등 여러 생산 양식이 뒤섞여 있는데 이 중에서 어떤 것도 지배적인 생산 양식이 아닌 경우도 있다(J. P. Scanlan, ꡔ소련의 마르크스주의ꡕ, 212-4쪽 참조). 또 어떤 사회에서는 물질적 토대인 생산 양식과 상부 구조가 서로 상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토대 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 변화하였지만 상부 구조인 국가 권력은 봉 건 세력이나 군부가 장악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만약 이러한 형태가 사회 구성체의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단기적인 현상이 아니라 상당히 오랫동 안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현상이라면, 이런 경우에는 한 사회의 특징이나 발전 단계를 파악하기 위해 제시된 표준적인 사회 구성체의 형태들이 도 움이 되지 않게 된다.

Ⅲ. 이데올로기

(독: Ideologie / 영: ideology)

1. ‘이데올로기’ 개념의 역사적 배경

이데올로기는 사회 과학이나 사회 철학에서 가장 난해한 개념들 중의 하나이다. 왜냐 하면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관념들의 근거 와 타당성에 관한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동안 이데올로기 개

념과 관련된 많은 이론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D. McLellan, ꡔ이데올로 기ꡕ, 15-27쪽 참조).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는 대체로 경멸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 되어 왔다. 어떤 주장이나 사상을 ‘이데올로기’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러한 주장이나 사상이 현실을 외면하고 있거나 은폐하고 있으며, 또 여러 가지 선입견이나 이해 관계들에 얽힌 편견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의도나 목표를 위해서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왜곡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이라는 비판은 진리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결함뿐만 아니라 또한 진리를 추구하려는 의지의 결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 는 다른 사람의 관념과 사고를 비판할 때 사용되었으며, 반면에 자신의 관 념이나 사고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져 왔다(J. Barion, ꡔ이데올로 기란 무엇인가?ꡕ, 5쪽 참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부르주아의 이해 관계를 옹호하는 이론이나 사상을 비판하면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 개념은 때로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예들 들면 마르크스주의 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 관계를 대변하면서 그들을 계급 투쟁으로 이끄는 사상이나 이론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또는 ‘프롤레타리아 이데 올로기’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은 오랜 논쟁의 역사를 지닌 민주주의, 정의, 자유 등의 개념들과는 달리 200년이 채 안된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 용 어는 18세기 산업 혁명 이후에 사회적, 정치적, 이론적 격변을 겪으면서 등장하였다. 전통적 교설이나 신조가 위계적인 구조에 기초하여 독단적 성향을 띠고 있었는 데 비해, 근대적 이론이나 사상은 민주주의와 다원주 의를 바탕으로 개방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는데, 이데올로기 개념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 이데올로기 개념은 다양한 집단들 사이의 이해 관계의 대립 속에서 자신의 이해 관계나 주장의 정당성을 주 장하고, 상대방의 이해 관계나 주장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상황에서 사용 되었다. 즉 과학이나 이성에 호소하여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상 대방의 문제점을 비판하여 대중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개념

이 사용된 것이다.

비록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베이컨(F. Bacon)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베이컨은 자 연에 대한 객관적 인식을 가로막는 편견이나 장애물을 ‘우상’(idols)이라 고 부르면서 인간의 의식이나 관념이 거짓되고 왜곡되는 현상을 이론적으 로 규명하려고 하였다. 베이컨은 이러한 우상으로서 인간의 일반적 특성 에 기인하는 ‘종족의 우상’, 특수한 환경이나 교육으로 인해서 개별적 개 인들이 갖게 되는 ‘동굴의 우상’, 잘못된 언어의 사용으로 인해서 발생하 는 ‘시장의 우상’, 허구적인 이론이나 권위 때문에 발생하는 ‘극장의 우상’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독단이나 선입견과 같은 인간의 잘못된 관념 과 관련된 문제는 이후에도 돌바하(Holbach)나 엘베시우스(Helvetius)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에 의해서도 계속 다루어졌다.

‘이데올로기’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프랑스 혁명 직후인 1789년 드 트라시(A. D. de Tracy)라는 프랑스의 철학자에 의해서였다. 그는 ꡔ 관념학 원리ꡕ에서 다른 모든 과학의 지평이 되는 새로운 관념들에 대한 과학, 즉 ‘이데올로기’(idea-logy)를 주장했다. 종교나 형이상학적 선입견 에서 벗어나서 관념들의 기원을 합리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정의롭고 행복 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이데올로기 개념은 처음에는 긍정적이며 진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 개념은 나폴레옹(B. Napoleon)에 의해서는 경멸적 이고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자유주의 및 공화주의 성향의 이데올 로그들(ideologues)은 나폴레옹 정부가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 에서 점차 혁명성을 상실해 가자 이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 러한 이데올로그들의 비판을 오히려 논박하면서, 정의를 추구하는 프랑스 가 불행을 겪게 된 것은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데올로기를

‘안개 속의 형이상학’으로 간주하였다. 이데올로기는 역사적 교훈이나 인 간 정신에서 비롯되는 지식에 토대하여 정의나 법을 세우는 대신에 비현 실적이고 애매한 형이상학적 원리를 토대로 정의나 법을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이데올로기는 그 개념이 사용되기 시작한 초기부터 긍정적 의미

와 부정적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대립적 의미는 이후 에도 계속 이어져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둘러싼 논의에서 주요 논란점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이론적, 정치적 논의의 전면에 등장 시켰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물질적 생산 과 정을 토대로 사회적, 정치적 사상이나 관념의 변화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엥겔스는 객관적인 사회 과학을 정립하려고 시도하면서 드 트라시의 실증 주의적이고 과학주의적인 전통을 이어받게 되었다. 이러한 마르크스와 엥 겔스의 이론적 작업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마르크 스주의 전통과 깊은 연관을 맺게 되었다.

드 트라시가 추구했던 접근 방식, 즉 이데올로기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 학적인 연구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서구, 특히 미국에서 활발하게 이 루어졌다. 이들 나라의 학자들은 나치즘이나 스탈린주의를 비난하면서 그 러한 관념들의 기원을 설명하였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데올로기라는 용어 는 비합리적이면서 전체주의적 성향을 지닌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대중화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이제는 마르크스 주의를 비판하는 무기로 사용하였으며, 다니엘 벨(Daniel Bell)은 ‘이데올 로기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마르쿠제(H. Marcuse)가 주장하고 있듯이, 사상이나 이론의 객관성과 과학성을 강조하는 주장이나 또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대신에 효율성의 논리를 강조하는 주장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도 있다(H. Marcuse, One- Dimensional Man, 9-12쪽 참조).

이처럼 이데올로기 개념은 비록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그러나 여 러 사상가들에 의해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면서 이에 대한 상반된 평가 와 더불어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 동으로 저작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이데올로기 개 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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