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북한의 도시화와 도시건설의 흐름
본 장에서는 북한의 도시화와 도시건설의 흐름을 개관한다. 먼저 북한의 도시화와 도시발달을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북한 도시체계에 대한 개괄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북한 도시건설의 역사적 전개에서는 주로 북한 내부의 문헌을 기초로 북한의 도시건설이 시기적으로 어떠한 이념 하에서 전개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이러한 논의는 제4장부터 전개될 도시계획 및 개발행정 실태분석 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1. 북한의 도시화와 도시발달
북한의 행정구역은 1945년 해방 당시 6도 9시 89군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2015년 현재, 9도 1직할시, 2특별시, 24개 일반시로 구성되어 있다. 특급시는 남한의 광역시 와 유사하나 남한과 달리 도 단위 행정구역에 속한다. 특급시와 일반시는 구역으로 세 분화되며, 단위 행정구역의 직접적인 관할 대상이 되는 구 또는 지구로 세분화된다.
행정구역 중 ‘구역’은 남한의 ‘구(區)’에 해당하며 북한 행정구역 ‘구’는 남한의 ‘군 (郡)’과 유사한 특징을 가진다. 군(郡)이 생산의 기본단위로 규정되면서 지역이 그에 맞게 세분화되어 있다. 최하위 행정구역의 명칭은 기본적으로 시부에서는 ‘동’, 군부 에서는 ‘리’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구 12만 명의 만포시부터 326만 명의 평양시까지 총 27개 도시가 존재한다. 북한의 도시인구는 약 1,415만 명으로 전체 인구 2,335만 명의 약 60%로 추정된다.5) 2008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46.4%의 인구가 27개의 도시에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평양직할시의 인구 규모는 약 326만 명으로 가장 많으며 그중 농촌 인구가 43만 명으로 도시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일반도시에서도 농촌인구가
5) 북한도시 인구에 관한 자료는 북한이 2008년 국제기구의 도움을 받아 시행한 인구센서스자료(DPRK, 2009)에 기초한다. 이에 대한 정보는 통계청 ‘북한통계(http://kosis.kr/bukhan)’에서 제공하고 있다.
전체 도시인구의 약 19%를 차지하는 등 북한의 도시는 도농통합형 특성을 갖고 있다.
평양직할시는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남포특별시 보다 약 3배 가량 높은 수치로 평양시 로의 인구집중현상을 보여준다.
표 3-1 행정구역별 도시 및 농촌인구(2008년)
(단위 : 천명)
구분 합계 도시인구 농촌인구
전국 23,350 14,155 9,194
평양시
전체 3,255 2,823 432
구역 2,794 2,581 213
군 461 242 219
시 5,781 4,676 1,106
군 12,620 5,152 7,468
구역 1,436 1,319 118
구 219 172 47
지구 37 13 24
자료 : 통계청, 북한인구일제조사(2008)
주 : 1) 시점상의 차이로 최신통계(북한통계 등)와 값이 다를 수 있음.
2) 함경북도 청진시와 함경남도 함흥시는 구역으로 집계되었음.
해방 후 북한은 경제발전을 추진하면서 빠른 도시화를 경험하였으며 특히 해방 직후 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북한의 도시화 속도는 한국보다 앞섰다. 이후 한국의 도시화 율은 북한을 점차 추월하였으며 2010년에 이르러 한국과 북한의 도시화율은 각각 82.9%와 60.2%로 22%에 이르는 차이를 보인다.
북한 도시별 인구변동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평양, 남포 등 수도권 중심의 인구성장과 둘째, 신의주, 청진, 함흥 등 교역거점의 성장이 그것이다. 이는 평양 및 주변지역, 그리고 주요 교역거점이 인구성장을 주도했음을 의 미한다.
표 3-2 북한 도시의 현황(2008년 기준)
박희진(2015)은 북한 도시가 역사적으로 중공업우선발전전략 및 공ㆍ농업 균형발전 1940년 1967년 1972년 1980년 1982년 1987년 1993년 2008년 평양 286 1,555 1,847 1,842 1,907 2,355 2,741 3,255
함흥 75 424 489 594 613 701 710 769
2. 북한 도시건설의 역사적 전개6)
1) 1953~1960년 : 전후복구건설 시기
(1) 전후 도시건설 방향
전후 도시건설의 일차적 과제는 도시공간에서 식민지적 잔재를 청산하는 것과 한국 전쟁의 피해로부터 복구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시기 북한 주요도시들은 폭격으로 기 반시설이 파괴되었으며, 이는 일제가 조성한 도시공간을 상당 부분 해체하는데 기여하 였다. 한국전쟁은 대규모의 월남 사태를 촉발하여 도시로 이주할 가능성이 높은 인구 를 사전에 솎아내는 역할을 하였으며, 이에 따라 급속한 과밀도시화의 부담을 완화시 켰다(장세훈, 2003).
해방 이후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신궁과 신사를 헐고 그 자리에 공 원과 광장 조성하였다. 광장은 대중의 정치, 문화 행사의 중심지로서 도시체계에 있어 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광장은 도시중심부가 지배계급의 공간이 아 니라 대중들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장소로 이해되었다. 주택지구 건설에 있어서는 노동 자의 건강을 우선시 하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보건상 문제가 되는 곳에는 집을 지을 수 없으며, 모든 건축물은 도로에서 일정 정도 이격하여 일정한 건축 밀도를 유지하도 록 하였다.
북한 당국은 인민경제복구발전 3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파괴된 공장, 기업소를 복구 하는데 중점을 두고 사회주의의 경제적 기초를 구축하였다. 사회주의 공업화의 기초를 위한 공장, 기업소 건설과 동시에 주택, 교육, 문화 등 관련 시설들을 건설하였다. 전 후 초기에는 특히 평양의 도시건설에 주력하였다.
6) 이 부분은 리화선(1993)과 조선건축 등 북한내부에서 발행된 문건을 기초로 하였다. 북한 내부에서 발행된 문헌은 도시의 현실보다는 이념을 제시하는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여기에 서술된 내용은 북한 도시건설의 현실을 의미한 다기보다는 도시건설 이념의 변화과정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전후 도시공간계획
1953년 내각결정으로 「평양시 복구재건에 관하여」를 채택하여 평양시 복구건설의 기본방향 제시하였다. 이후 1954년 3월 청진, 함흥, 원산, 사리원, 강계 및 남포시에 대한 총 기본계획 승인, 1954년 6월 신의주, 송림 및 김책시의 총 기본계획 승인하였 다. 뒤이어 전국의 150개 읍 및 노동자지구 전망계획도가 작성되었다.
총 계획은 주민생활과 생산 활동에 편리하게 용도별 지역구분을 명확히 하고, 교육, 문화, 보건, 편의시설을 균형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한편 도시 중심부 에 광장을 계획, 도시 전반을 녹화, 합리적인 교통을 보장하는 것을 추진한다. 국가계 획에 근거하여 도시중심지로부터 집중적으로 중심가로, 광장을 건설하였으며 이는 북 한 주민들에게 도시에 대한 긍정적 전망을 제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전후 증가한 주 택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임시주택지구를 도시중심구역 밖에 계획하였다. 전후 1차 5개년 계획기간 동안 도시의 주요 영역간 도로망건설이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주변 식 방법(건물들이 길을 따라 길에 배치)으로 거리를 형성되었으며 주요 거리들이 모두 주변식으로 대개 4~6층 정도의 건물이 배치되었다.
전국적으로 도시중심부에 김일성광장을 배치하는 등 도시 중심광장을 조성하는 사업 을 전개하였다. 전후 얼마 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9만 2천여㎡의 중심광장을 조성하였 다. 용도별 지역구분을 명확히 하여 주민지구에 남이 있었던 산업기업소를 없애거나 옮기는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큰 도시에서는 상하수도 건설이 진행되었으며 도시 한복 판을 지나가는 철길을 옮기는 사업을 진행하여 소음, 먼지, 위험성을 제거시켰다. 새 로운 공장, 기업소들이 건설되고 생산규모가 증대됨에 따라 전후 도시 인구의 증가 및 새로운 주민지구가 출현하였다.
(3) 주택지구 건설
전후에 살림집의 계획방법이 빠르게 발전하여 다층살림집 건설이 추진되었다. 평양 몇몇 거리(청년거리, 보통문거리) 및 사리원, 원산 등 지방도시들에서 2~3층의 살림 집으로 구성된 구획들이 건설되었다. 살림집 구획의 크기가 보통 6~10정보 정도였으
터, 간단한 휴식터가 위치하며, 살림집의 1층에는 여러 가지 편의봉사시설을 배치하였 다. 이후 구획을 확대하여 살림집 지구를 몇 개의 소구역으로 나누어 주민생활에 편리 한 새로운 생활단위로 살림집 소구역 조직방법을 주요도시에 적용하였다.7) 대부분의 소구역인 인구는 5,000명~10,000명이 주거하고, 대지의 크기는 보통 13~23정보를 차지한다. 주민수를 고려하여 학교, 탁아소, 유치원, 목욕탕 등은 매 소구역마다 계획 하였으며, 초급 봉사건물(서비스 관련 시설)들은 생활단위별로 소구역안의 여러 곳에 배정되었다. 소구역에는 주민들의 사상문화교양과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한 선전실이 있으며, 밥공장, 가족식당, 식료품상점, 빨래집 등이 계획되었다.
그림 3-1 살림집 지구 구획평면(동평양 제17호)
출처 : 리화선(1993)
전후 많은 살림집이 건설되었으며 도시와 농촌에 1.340만㎡의 살림집이 새로이 건 설되다. 그 가운데 510만㎡의 살림집이 국가자금으로 건설되었다. 살림집 건축의 발전 단계는 전후 3개년 계획시기와, 5개년 계획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전후 3개년에 는 주로 쌓기식의 소층살림집을 건설하였다면, 5개년 계획시기에는 다층살림집을 많이
7) 살림집 소구역은 주거지역을 형성하는 기본단위로 우리의 표현으로는 근린(neighborhood)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각종 문화후생시설 부지, 정원, 도로 등이 포함된다.
지으면서 주로 조립식으로 건설하였다. 1956년 소층살림집 표준설계가 작성되어 규격 화된 조립식 건설에 맞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국가적인 단위 체계가 확립되고 이에 따 라 전국 범위에서 구조 간격, 층고를 통일시켰다. 1956년 첫 표준살림집들은 2방 1세 대(세대당 건축면적 65~70㎡)로 세대마다 화장실, 벽창과 창고, 온돌로 난방이 가능 하게 설계되었다. 1959년 이후에는 세대당 거주면적이 10㎡ 정도 더 늘어났으며 2개
지으면서 주로 조립식으로 건설하였다. 1956년 소층살림집 표준설계가 작성되어 규격 화된 조립식 건설에 맞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국가적인 단위 체계가 확립되고 이에 따 라 전국 범위에서 구조 간격, 층고를 통일시켰다. 1956년 첫 표준살림집들은 2방 1세 대(세대당 건축면적 65~70㎡)로 세대마다 화장실, 벽창과 창고, 온돌로 난방이 가능 하게 설계되었다. 1959년 이후에는 세대당 거주면적이 10㎡ 정도 더 늘어났으며 2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