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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행정개혁 배경

레이건 행정부의 행정개혁은 크게 정부역할의 감소와 시장기능의 강 화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 조직 운영 및 공공서비스의 제공에 있어서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가 강조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전통 적인 계층제적 지시와 통제위주의 운영방식에서 규제완화, 권한이양, 공 공부문에서의 민간역할 확대, 감축관리, 신인사제도, 책임운영기관, 공기 업 민영화 등 주로 시장과 개인적 선택의 기제를 강조하는 대안과 방식 들이 선호되었다. 이러한 개혁기조의 배경에는 경기침체와 재정악화, 그 리고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사상의 부흥, 그리고 정부역할에 대한 기본 적인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베트남 파병 및 석유파동으로 재정악화와 경기 불황을 맞이한 미국 경제는 특히 1980년대 초반 실질성장률이 마이너 스를 기록할 만큼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되면서 감축관리(cutback management)와14) 정부규모의 축소(downsizing)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 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루즈벨트 행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던 연방정부의 역할과 규모에 대한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태도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단적으로 연방정부의 운영기제인 관료제는 모든 공공부문 문제의 원인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가능한 한 연방정부 의 역할과 권한을 줄이고자 하였다.15) 이러한 시각에는 올센(Olsen), 사

14) 1970년대까지 연간 재정적자의 폭이 300억 달러였으나, 1981년부터 84년까지의 재정적 자 평균은 1300억 달러를 넘어섰다.(Sturm. 1999)

15) 이 과정에서 카터행정부가 입법화한 Civil Service Reform Act(1978)에 기초해 만들어 진 일종의 고위공무원단에 공화당 성향의 인사들을 투입·양성함으로써 스스로 추진하는 정부지출 감축과 사업축소를 통한 작은 정부에 힘을 쏟게 하였다. 당시 의회 역시 공화 당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고위공무원에 대한 정치적 인사가 가능했었고, 이에 대해 일부 에서는 엽관제(spoil system)로의 회귀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Rockman,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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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Savas), 툴록(Tullock), 니스타넨(Niskanen) 등에 의해 크게 성장 하였던 공공선택론(Public Choice theory), 대리인이론(principal-agent theory), 거래비용이론(transaction theory) 등 조직 및 공공부문에 대한 제도주의 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적 접근이 중요한 영향을 미 쳤다.16) 또한 근면과 금욕의 결과로 얻어진 자본축적과 개인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비근로빈민(non-working poor)에 대 한 반감을 일정부분 정당화하였을 뿐 아니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간섭 을 최소화하고 개인의 경제활동 자유의 보장을 위해 제한된 정부, 감세, 자유방임주의 시장경제17) 등이 강조되었다.

정부역할에 대한 기본적인 반감은 주로 감축관리, 지방이양, 그리고 공공부문에의 민간 역할 강화 등으로 나타났는데, 먼저 레이건 행정부 가 추진한 정부역할 감축(cutback)의 대표적인 경우로 복지재정 및 프 로그램 수의 감축을 들 수 있다. 중복논란이 있던 기존의 사회보장 (OASDI), 실업보험(Unemployment Insurance), 의료급여(Medicare), 퇴직군인급여, SSI, 학교급식, Head Start 등의 프로그램들을 사회적 안전망 프로그램(Social Safety Net Program)으로 통합하고, AFDC, Food stamps와 같은 공공부조 프로그램들은 사회적 안전망 프로그램에 서 배제하면서, 그 자격요건은 강화하고 예산은 삭감함으로써 수혜자 규모를 축소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초기 레이건 행정부(1981 년~1984년)의 복지재정 감축비율은 사회보장급여의 경우 6.8%, 자산조 사에 의한 공공부조프로그램의 경우 7.5%, 기타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 그램의 경우 42.5%에 이를 정도였다(양재진, 2002).

또한 연방정부로부터 주정부·지방정부로 재원 및 사업 관리권한의 이 양(devolution) 역시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는데, 그 효과는 2가지로 나누

16) 예를 들어, 영국의 대처수상은 Niskanen의 책을 모든 Cabinet 구성원들에게 읽도록 하 였다(Hood, 1995) .

17) 모든 소득계층에 대한 소득세 25% 감축과 자본이득에 대한 세율, 상속세율, 증여세율 축소(Economic Recovery Tax Act, 1981)가 이루어진 것은 그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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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볼 수 있다. 먼저 재원이양의 경우 1981년 레이건 행정부는 77개의 개별보조금(categorical grant)을 9개의 포괄보조금으로 전환하여 통합·

지급함으로써 연방정부의 매칭펀딩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근거를 마련 하였을 뿐 아니라 그 규모도 기존의 개별보조금 규모에서 25%를 삭감 한 수준이었다(Waller, 2005). 이를 통해 실제 전체 사회복지지출에서 연방정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81년 62.5%에서 88년 59.1%로 감소하여 1980년대 중앙정부의 복지비지출이 줄어든 유일한 OECD 국가가 되었 다(양재진, 2002). 또한 사업 관리이양은 주정부와 지방정부가 자율성에 기초하여 스스로에 적절한 복지프로그램 구성 및 지출을 시도하고 담당 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포괄보조금 일 부를 다른 사업을 위해 전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나 포괄보조에 따른 사업의 설계·집행·관리능력 등 자치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 등은 이후 상당한 수의 자방정부 자체의 복지프로그램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재원을 잃거나 축소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Waller, 2005). 이러 한 양상은 권한이양이 주정부에서 카운티수준의 지방정부수준으로 재이 양(secondary devolution)이 일어나면서 더욱 많이 일어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특히 복지부문에 있어서 정부역할의 감축은 일정 부분 시장의 역할을 기대하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전통적인 자선과 기부의 활성화, 그리고 정부의 직접 생산 대신 보다 효율적인 민간을 활용하는 간접적 정책수 단이 보다 효율적이라 보았기 때문이다.18) 특히 고용연계를 강조하면서 다양한 고용관련 민간기관의 참여가 두드러졌는데, 구직활동 보조, 취업 교육 등 그 기능과 역할범위에 따른 다양한 계약과 파트너십의 형성이

18) 양재진(2002)에 의하면 1977년부터 1987년간 새로 생겨난 병원과 의료서비스 기관의 85%, 수입 증가분의 65%, 그리고 고용인구 성장의 63%가 영리조직에 의한 것으로 나 타났으며, 전제 사회복지 지출에 있어서 민간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 역시 1975년 7.8%에서 88년 12.3%로 증가하였다. 같은 시기 정부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19%에서 18.5%로 감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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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졌고, 이러한 경향은 TANF가 도입된 1990년대에 더욱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다(Martinson and Holcomb, 2002). 즉, 그동안 지속되었 던 정부부문의 역량강화(in-house capability building)보다는 보다 효 율적인 시장의 역량을 유입(borrow)하고자 한 것이다.

결국 연방정부의 기능축소와 지방으로의 권한이양, 그리고 민간의 공 공분야 참여확대라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기조는 이후 1990년대 클린 턴 행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1930년대 이후 성장해온 권리(entitlement)로서의 복지급여가 폐기되고19), 근로의무가 연계되며, 수혜기간과 수준이 제약되는 등 복지정책분야에 있어서 신보 수주의적·신자유주의적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