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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작품의 세계

4.4 나오며

『산소리』는 패전(敗戰)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으로 가와바타는 기존에 고수했던 이원적 구도와는 달리 전후 중산층의 가정을 무대로 현실에 뿌리내린

155) 상징 사전에 따르면 삼나무는 쉽게 벌레가 먹지 않고 잘 썩지 않는 상록수로서 장수와 불멸 을 상징한다고 한다. アド·ド·フリース著 · 山下主一郎ほか(1989) 앞의 책 pp.114-115 참조.

인물들을 조형해낸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야스코와 후사코 모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실적인 인물들이기에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가와바타는 이러한 여성들에게서 심미성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미(美)와는 대척점에 있는 추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와타 미쓰코는 전 후(戰後) 시마키 겐사쿠 추도문에서 가와바타가 “나는 이미 죽은 자로서, 가련한 일본의 아름다움 이외에는 지금부터 한 줄도 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들 어 전후를 부정하는 이러한 정신으로 인해 가와바타의 문학 속 여성들은 더욱 환영을 쫓아 관념화되어 간다고 언급하고 있다.

156)

이는 가와바타의 문학과 여성 상(女性像)에 있어서 비현실성의 지적으로 볼 수 있다. 『산소리』에서 신고는 심미적 이상형인 기쿠코에게서 시종일관 결혼하기 전의 때 묻지 않은 소녀의 순 수함을 희구한다. 이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16〜17세 정도의 소녀에게 끌리는

‘소녀 지향성’과 통한다. 이러한 성향은『이즈의 무희』『산소리』등의 여성을 주 요 모티프로 하는 작품군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영원한 동녀(童女)의 이미지 와도 중첩되는 ‘소녀 지향성’은 가와바타의 이상적 여성상의 핵심적 요소로 작용 한다. 그러나 가와바타가 그려내는 이상적인 여성은 그의 관념 속에서만 살아 숨 쉬고 있을 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전후라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학이 꼭 현실을 반영할 필요는 없겠지만 ‘관념적인 미’가 아 니면 모두가 ‘추(醜)’라는 인식을 지녔던 가와바타의 미의식에는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산소리』에서는 이원적 세계가 꿈이라는 ‘몽환적 비장소’로 그려진다. 이 세계 는 꿈이 그러하듯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공간이다. 『산소리』에서 신고가 꾸는 꿈은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와바타가 설정한 꿈이라는

‘몽환적 비장소’는 전후 피폐한 현실과는 대비되는 장소로서 신고는 이 세계를 통해 현실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많은 이상을 실현해간다. ‘몽환적 비장소’는 시간 의 역행을 통해 노쇠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신고를 해방시키고 육체적 욕망을 해 소시키고 있다. 그러나 모든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몽환적 비장소에서도 그 끝은 언제나 ‘덧없음’과 ‘허무함’을 남기게 된다. 이는 몽환적 비장소의 삶은 스치는 공 간으로서 찰나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그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시

156) 岩田光子(1983) 앞의 책 p.103.

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처음으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단란하게 식사를 하는 모습과 그곳에서 신고가 가족들에게 고향인 신 슈로 단풍 구경을 가자고 제의하는 모습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신고는 지금 이 현실에서 기쁨을 찾는 현실의 인간으로 귀환한 것이다. 제14장

「모기떼」에서 신고는 자신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어린 창부를 보며 따뜻한 안식을 느낀다. 그리고는 “행복이라는 것은 이처럼 찰나적이 며 덧없는 것일지도 모른다.”(p.498)라며 인생의 깨달음을 얻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깨달음은 더 이상 신고를 몽환의 세계로 인도하지 않게 된다. 가족들과 함께 자신이 태어난 대자연 속 본원으로 회귀하여 자연의 풍요로움을 만끽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와 깨달음의 메시지는 당시 피폐한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독 자들을 향한 것이라 본다. 전후라는 혼돈의 시대에서 가와바타의 작품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기존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일상으로 귀환하려는 시도이며 현실 속에 굳건히 발을 디뎌 삶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라 할 수 있다.

5. 『잠자는 미녀(眠れる美女)』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