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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작품의 세계

3.3 여성인물의 표상

3.3.2 지카코

맑고 깨끗한 흰 살결과 여성스럽고 가녀린 긴 목선, 어린 처녀 같은 순수함 속 에 어머니의 포근함 거기에 관능미가 더해진 오타 부인의 여성미는『설국』의 고마코와 요코,『산소리』의 기쿠코 등의 이미지와 중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가와바타 심층의 아니마의 투영이라 할 수 있겠다.

버림받게 되는 원인이 된다. 지카코가 여성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 이것은 곧 존 재의 의미를 부정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카코는 기쿠지에게 반점을 보인 이삼 년 후에 “왠지 남성화되어 지금은 이미 완전한 중성”(p.13)이 되어버렸다고 나온다. 여성성을 상실하고 남성화되어버린 지카코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 된다.

손목에서 안쪽은 어울리지 않게 희고, 살집이 좋은 데다가 팔꿈치 안쪽에는 동 여맨 것 같은 힘줄이 뻗어 있었다. 기쿠지는 문득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 은 단단하고 두터운 살집인 것 같았다.

『全集 第十二巻』 p.49

“오타 씨의 시노 물병이지요? 좀 볼게요.”

하고 지카코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는 꽃 쪽을 향해 무릎걸음으로 다가갔다.

손을 짚고 고개를 숙이자, 골격 좋은 양쪽 어깨뼈가 튀어나와 독을 내뿜는 것처 럼 보였다.

『全集 第十二巻』 pp.86-87

가와바타가 창출해내는 여성 인물을 보면 그의 심층의 아니마를 엿볼 수 있다.

그의 이상적 여성은 희고 부드러운 살결의 청초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러나 지 카코의 묘사는 그와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지카코는 흰 피부가 어울리지 않는 여성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가늘고 여린 여성과는 거리가 먼 인물로서 살집 이 있고 뼈대가 굵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이며 건장한 남성을 떠오르게 하는 근육질을 자랑한다. 지카코의 이미지에서는 여성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처 럼 남성화되어버린 지카코는 아버지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노리개처럼 잠깐 이용되다가 버림받게 된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사랑하는 남성에게도 버 림받은 지카코는 위의 인용문에서도 표현되듯이 온몸에서 ‘독기(毒気)’를 뿜는 마 성적 존재로 표상된다. 기쿠지는 아버지가 주재하던 연례 다도회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일찍 귀가하라는 지카코의 말에 “강압적인 독기”(p.45)를 느낀다. 또 기쿠지 에게 오타 부인은 아버지에게 행복을 준 여자로 인식되는 반면 지카코는 아버지

에 대한 복수심으로 “과거의 독기를 내뿜는”(p.66) 복수의 화신처럼 묘사된다. 오 타 부인에게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긴 지카코는 기쿠지 어머니의 대리자 역할을 자처하며 질투로 인한 추한 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카코는 아버지의 뒤를 밟아 돌아다니기도 하고 미망인 집에 자주 찾아가 호통 을 치기도 하며 마치 그녀 자신의 마음속에 숨은 질투가 불을 뿜는 것 같았다. 내 성적인 어머니는 지카코의 심한 참견에 오히려 기가 눌려 바깥소문을 꺼렸다.

『全集 第十二巻』 p.17

위의 인용문을 보면 지카코는 아버지를 미행하거나 자신의 남자를 빼앗은 여 자에 대한 질투심으로 그 집에 찾아가 독기가 서린 말을 내뱉으며 위협적인 모 습을 보인다. 혐오스럽고 추악한 지카코의 이미지는 쥐, 박쥐, 두꺼비로 표상된 다.

119)

이 동물들의 상징성을 종합해 보면 모두 악마, 유령 등의 어둠의 존재와 결부되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불운을 가져오는 상징물로 표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20)

이는 지금까지 살펴본 지카코의 이미지와 중첩됨으로써 그녀를 어둡고 추한 존재로서 한층 부각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카코는 삶의 방식에서도 처세에 능하고 타산적이며 세속적인 모습으로 그려 진다. 지카코는 아버지에게 “냉혹한 악역에 익숙한 여자”(p.101)로 이용되기도 하 고 아버지 생전에 다실 관리를 도맡아 “편리한 일꾼”(p.17) 노릇을 자처하며 기 쿠지 집안에 의지해 다도 선생으로 작은 성공을 이룬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이 용당하면서도 계속 그 인연을 이어간 모습은 ‘사랑의 노예’를 상징하는 복숭아 꽃

121)

의 상징성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지카코는 다도를 가르치는 스승으로 나 오지만 내막을 보면 다도는 그녀의 생계유지와 신분 상승을 위한 발판임을 알 수 있다. 지카코는 자신의 제자 유키코와 기쿠지의 결혼을 성사시킴으로써 자신

119) 1장에서 기쿠지가 아버지와 함께 지카코의 집을 방문했을 때 다음과 같은 묘사가 있다. “대낮 인데도 천장에서 쥐가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4장에서 지카코는 기쿠지의 집을 방문할 때 양산을 들고 가는데 그때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손잡이가 긴 쥐색 박쥐 양산이 현관에 기대어 있었다.”

  5장에서 지카코의 반점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지카코의 유방에서 명치에 걸 친 반점은 두꺼비처럼 구체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120) アド·ド·フリース著 · 山下主一郎ほか(1989) 앞의 책 p.47 p.518 p.643 참조.

121) 1장에서 지카코의 집 “툇마루에는 복숭아꽃이 피어 있었다.”라고 묘사된다.

의 사회적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계산이 들어 있다. 그러나 계획이 무산 되자 “이나무라 댁 아가씨도 놓치고 기쿠지 씨도 분발해서 새 생활을 다시 시작 하시려면 다도 도구도 필요 없겠지요.”(p.126) 라며 다기를 팔아 자신의 부를 축 적하려 한다. 또 집도 팔겠다는 기쿠지의 말에 “아버지 대부터 출입했던 사람에 게 처리하는 게 안심이 되실 겁니다.”(p.126) 라며 계산적인 속내를 드러낸다. 지 카코가 세상적인 상식이 발달했다는 의미는 이렇듯 처세술에 능한 그녀의 이미 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