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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마술적 리얼리즘’의 탄생

문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증언소설 연구 (페이지 38-45)

1. 해원(解怨)의 서사

1.2. 한국형 ‘마술적 리얼리즘’의 탄생

다시 이별하는 골짜기 의 순례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 설은 현재 할머니가 된 순례의 모습과 과거 소녀였던 순례의 모습으로 교차 편집되어 있다. 소설은 현재 시점으로 이렇게 시작한다.

33) 작가 김숨은 동일한 소재로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또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4장에서 다루도록 한 다.

34) 김형중 해설, 「임철우, 사도 바울」, 연대기 괴물 , 문학과지성사, 2017, 371쪽.

아침 6시. 사위는 아직 짙은 어둠 속이다. 눈에 푹 파묻힌 마을은 혼곤한 잠에 빠져 있다. (……) 바로 조금 전 어두운 동네 한 귀퉁이에 홀연 전등불 하나가 반짝 켜졌다.

(99쪽)

이윽고 그녀는 가방을 끌고 자박자박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끄륵 끄르륵. 바퀴 끌 리는 소리가 비명처럼 어두운 골목길을 흔들어 깨운다. (102쪽)

두 장면은 순례와 그녀가 사는 집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마치 무대와 배우를 향한 희곡의 지문처럼 보이는 이 현재 시점의 문장들을 따라가면, 우리는 우리의 손에 들린 카메라의 초점과 위치를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의 시선은 순례가 사는 마을부터 순례의 집으로 점점 줌 인zoom in되다가, 바퀴 달린 가방을 끌 고 힘겹게 걸어가는 순례 할머니의 모습을 포착하여 따라간다. 그 후 화면은, 마찬가지 로 눈이 내리고 아직 주변이 어둑어둑한 과거의 시점으로, 눈밭을 헐떡이며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으로 오버랩하며 전환된다.

두 무릎이 무너질 듯 후들거렸다. 부러진 왼쪽 팔 때문에 걷기가 한층 더 힘들었다.

숨이 차올라 더는 걸음을 재게 뗄 수가 없었다. 등 뒤에서 금방이라도 말발굽 소리가 쫓아오는 것 같아 순레는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엷은 구름 사이로 송장이 썩은 눈알 같은 반쪽 달이 떠 있었다. 눈 덮인 허허벌판이 흐린 달빛 아래 희부옇게 드러났다.

(103쪽)

과거 시점에서 소녀 순례는 고향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일본군을 저주하며 죽 을 각오로 눈길을 걸어가는 중이다. 할머니가 된 순례와 달리 소녀 순례는 생생한 감 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중국인 마을로 숨어들었다가 다시 위안소 주인에 게 끌려간다. “눈밭에서 개처럼 끌려가며 순례는 비명을 질렀다.”(109쪽) 그녀는 절체절 명의 순간에 놓여있고, 그녀를 바라보는 카메라는 시종일관 선명한 분노와 두려움을 담아낸다. 그리고 화면은 다시 현재로 오버랩하며 전환된다. 순례 할머니는 아까 그 모 습 그대로 고요하다. “어둡고 미끄러운 골목길을 그녀는 용케 자박자박 걸어 내려간 다.”(109쪽)

이 책의 다른 에피소드와 달리, 순례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중심인물의 회상으로 이 루어져 있지 않다. 철저히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적 기법을 연상시키는 화면 전환과

교차 편집으로, 과거의 그녀는 ‘상영’되는 중이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두 시점은 결코 섞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된 순례는 치매로 언어와 사유를 잃었기 때문에 그녀의 입에 서 소녀 순례는 발설되지도 회상되지도 않는다. 유일하게 동수만이 소녀 순례를 볼 수 있고, 그렇게 소녀 순례는 동수에 의해 이 세계에 딱 두 번 출현한다. 첫 번째, 동수가 순례 할머니의 사연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순간, 두 번째, 동수가 순례 할머 니의 보호자인 친척과 정대협 활동가를 통해 그녀의 사연을 모두 알게 된 순간.

이렇게 작은 발로 이 노인은 평생 얼마나 먼 길을 걸어 이곳까지 흘러왔을까. 그는 불현듯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자 왠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뒤를 돌 아보니 눈길 위로 발자국과 바퀴 자국이 길게 이어져 있다. 그것은 그녀 홀로 그려온, 한 생애의 멀고도 쓸쓸한 궤적 같다. 알 수 없는 비감에 젖어 걸음을 옮기던 동수는 퍼뜩 놀란다.

“가만, 저게 누구지?”

저만치 노파 바로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단발머리 소녀. (……) 샛노란 저 고리 소매와 옷고름이 팔랑거린다. 한겨울 눈밭 위, 소녀의 모습은 난데없는 한 마리 노랑나비처럼 화사하다. (147~148쪽)

잠시 후, 정동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남기고 대문을 나섰다. 엷은 눈발이 다시금 푸슬푸슬 흩날리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던 그는 문득 저만치 앞서가는 단 발머리 소녀를 발견했다. 검정 치마에 노랑 저고리 차림의 소녀. 아까 본 그 이상한 아 이다. 눈발 사이로 소녀는 한 마리 노랑나비처럼 팔랑팔랑 걷고 있다. 그러더니 홀연 담 모퉁이로 사라진다. (250쪽)

이렇게 동수가 마주한 ‘검정 치마에 노랑 저고리 차림의 소녀’는 언뜻 순례 할머니의

‘분신’, 일종의 도플갱어처럼 보이는데, 바로 여기에 두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첫째, 말로 표상할 수 없는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서 생존자의 분열적 현실을 드러 내기 위해 유령적 존재가 등장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데, 이는 보통 현재의 내가 ‘또 다른 나’와 마주하며 서사를 이끌어 가기 위한 배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소설에 서 소녀 순례의 모습은 관찰자인 동수에게만 보인다. 다시 말해, ‘또 다른 순례’를 의미 하는 소녀의 모습이 언뜻 순례의 도플갱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자신과는 조우하지 않는, 동수의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둘째, 사건 당시의 모습으로 남겨진 유령적 존재가 많은 작품에서 매력적인 소재로

등장해온 이유는 그것이 유발하는 모호하고 불안한 감정이 ‘사건성’ 자체를 암시하기 때문인데, 여기서 소녀 순례의 모습은 완벽히 천진하고 화사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즉, 이 소설에서 소녀 형상을 한 유령적 존재는 분열과 불안을 환기하는 대신 확신과 위안 을 선사하며 사건을 종결하기 위해 출현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특징이 같은 기원에서 유래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 다. ‘상영’되는 과거에서 막 빠져나온 듯 보이는 아름다운 소녀 유령과 그녀를 유일하 게 볼 수 있는 남성 주인공, 이 두 조합이 동일한 기능으로 묶여있으리라는 추론은 타 당하다. 실제로 이어서 다룰 김원일과 김숨의 작품에 등장하는 ‘또 다른 나’의 유령적 형상은 모두 ‘현재의 나’와 조우하며 인물이 지닌 갈등과 억압을 드러내고 진실을 누설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럴 때 ‘또 다른 나’는 당연히 ‘현재의 나’와 다르고도 익숙한, 낯설 고 불안한 존재가 된다.35) 이에 반해, 임철우의 소설에서 소녀와 노랑나비의 모습은, 타자의 고통에 섬세하게 반응하고 그 고통으로부터 타자를 구원해주고 싶은, ‘해원과 재생의 욕망’을 지닌 선량한 시인 동수를 위해 하나의 시적 기능으로 작동한다. 이럴 때 아름다운 소녀 환상은 ‘또 다른 나’가 아닌, 동수가 보고 싶은 순례, 훼손되지 않은 순결한 소녀의 상징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향수 어린 메타포로 삽입된 ‘소녀상’은 동 수를 포함한 독자 누구에게도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

프로이트는 「두려운 낯설음Das Unheimlich, The Uncanny36)이라는 논문에서 죽은 자의 생환이나 움직이는 인형, 귀신과 유령 등이 불러일으키는 ‘이상하게 두려운 감정’

을 설명하면서 이 ‘낯선 두려움’이 실은 ‘낯익은 것으로부터 유래한 공포’라고 설명한 다. 그는 ‘운하임리히Unheimlich’로 명명된 이 감정의 어원을 상세히 분석하는데, 그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을 요약해보자면 ‘운하임리히’란 ‘집과 같은, 고향 같은, 친밀한’의 의미를 지닌 ‘하임리히heimlich’의 반의어인 동시에 유의어라는 것이다. 마치 ‘억압된 것의 귀환’이 완전히 새로운 것의 출현보다 더 진득한 점성의 당혹감을 유발하는 것처 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유래하는 이 두려움은 아주 낯선 것으로부터

35) 김숨의 소설 한 명 에도 이별하는 골짜기 처럼 위안부 피해자의 소녀 시절을 연상시키는 유령 적 존재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노인이 된 위안부 피해자가 직접 소녀를 마주하고, 보라색 가면을 주며 써보라는 소녀의 강요에 “움찔”하며 “꺼림칙”함을 느낀다. “여자아이의 얼굴 에 짓궂다 못해 교묘한 표정이 번진다. 여자아이의 얼굴이 기묘하게 일그러지면서 순간적으로 산 전수전 다 겪은 얼굴처럼 늙고 지쳐 보인다. 그녀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고 자신의 손 에 들린 탈을 내려다본다. 물감을 칠하고 그 위에 니스를 칠해 심하게 번들거린다. 번들거림으로 인해 인간인 그녀가 흉내 낼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이 탈 위에서 만들어진다.”(「한 명 , 69~70쪽) 36)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장진 역, 「두려운 낯설음」, 예술, 문학, 정신분석 , 열린책들, 2016,

403~452쪽.

유래하는 두려움과는 다른 종류의 섬뜩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어린 시절의 소망처럼 죽은 것이나 사물이 영혼을 가지고 움직일 때,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불가능하다고 폐기해버렸던 것이 다시 돌아왔음을 감지하며 기이한 두 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운하임리히’, 즉 ‘언캐니uncanny’인 것 이다. 우리가 사탄보다 ‘사탄의 인형’을 더 기괴하게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에게 사후의 영혼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처럼, 애초 우리에게 도 살아 움직이는 인형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지녔던 소망은 원시 인류의 정령신앙처럼 엄연한 ‘현실’이었다. 다만,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하 듯, 인류는 근대를 통과하며 점차 정령신앙을 잃어버렸고, 우리는 유년기를 통과하며 인형이 살아 숨쉬길 바라던 어릴 적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우 리에게 억압된 이 단계의 잔여물과 흔적들이 회귀하면, 우리는 이 억압된 것의 귀환 앞에서 ‘친숙한 것heimlich으로부터 유래하는 낯설고도 낯익은 두려움Unheimlich’을 느 끼게 된다.

이 같은 프로이트의 설명은, 앞으로 다룰 김원일과 김숨의 작품에 등장하는 유령적 형상이 어째서 언캐니한 감정을 유발하는지 설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왜 임 철우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순례의 유령적 형상이 전혀 무섭지 않은 지는 설명되지 않 는다. 그녀는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노란 나비와 함께 팔랑팔랑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보는 동수는 다소 놀라워하긴 하지만 두려워하기는커녕 호기심을 느끼고 말을 걸며 쫓아간다. 아직 우리의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으니, 다시 프로이트의 논문을 이어 서 읽어보자.

프로이트는 논문의 말미에, 억압된 것의 귀환이 유년 시절이나 원시 시대를 상기시 킨다고 해서 반드시 언캐니한 것은 아니라고 부연하며 몇 가지 경우를 제시한다. 예컨 대, 억압의 강도와 방식이 억압이 발생한 당시 시점과 상황에 따라 현저히 다를 것이 고, 설사 같은 정도와 종류의 억압이라 할지라도 정령신앙을 뿌리째 뽑아버린 사람과 단지 한쪽으로 비켜 놓은 사람의 차이처럼 개체별 감수성이 다를 것이며, 더욱이 문학 과 같은 ‘창작된 작품’의 경우 작가가 설정한 세계의 틀이 어떤 형태인지에 따라서도 많은 변이가 있으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아무리 억압된 것이 회귀해도 두 려움을 유발하지 않는 대표적인 형식으로 동화와 신화를 꼽는다. 우리도 익히 알다시 피, 동화나 신화에서는 유령, 도플갱어, 사물의 영혼, 신체의 부분 등 그 어떠한 것이 그 어떠한 방식으로 돌아다닐지라도 언캐니를 유발할 수 없다. 애초 이 세계는 정령과 환상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약속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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