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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연대의 미래교육체제

문서에서 제2기 제2기 (페이지 180-195)

가. 지식 중심의 학력에서 “살아가는 능력 중심의 역량”으로

1)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갖는 교육적 의미와 “역량” 중심 교육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인지고고학자들의 연구9)에서 제시한 현생인류의 조상인 크로마뇽인의 두뇌에서 일어난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현생인류가 출현하기 전 대뇌 구조는 비유컨대 커다란 방에 여러 컴

8) 그레타 툰베리(2019.9.23.) UN 기후행동정상회의 연설문 중 일부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 습니다. 우리는 대멸종이 시작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부 돈 과 끝없는 경제 성장의 신화에 대한 것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9) Mithen,Steven(1996), The Prehistory of the Mind, Thames & Hudson.

나카지와 신이치(2003),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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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터가 제각기 방 안에 분리된 채 작동을 하고, 각 방 사이에는 칸막이가 있어 다른 방에 있는 컴퓨터와 연결되지 않는 구조였다. 그런데 현생인류의 두뇌에는 그 칸막이가 무너졌 다. 이전에 각 방 안에 들어있던 뉴런이 이동하여 다른 방(영역)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며 유 동적인 지성의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현생인류는 가히 혁명적인 대뇌 구조의 변화와 함 께 출현한 것이다.

이러한 두뇌혁명으로 현생인류는 어떠한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전까지 무관했던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 한 연결과 관계맺음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어, 새로운 발상, 새로운 의미가 무한하게 생성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지와 감정의 영역이 연결되어 타인과 공감 능력이 생기게 된다. 이 공감은 인간 사이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확장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두뇌혁명이 현생인류를 진화시킨 것과 유사한 변화를 사회에 가져 오고 있다. 인공지능 수준의 디지털 기술은 이제까지 무관해 보이던 데이터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인간은 인간 두뇌의 외연 확장으로 인공지능 수준의 지식정보망을 활용하여 “관계에 대한 사유”를 무한히 넓혀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 한 초연결 스마트 사회에서 인간의 고유한 역할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뇌혁명으로 현생인류의 본질이 된 관계에 대한 사유의 주체적 측면과 공감능 력10)을 바탕으로 한 관계 맺기와 가치판단일 것이다. 관계에 대한 사유의 주체적 측면이란 삶의 질 요구에 기초하여 질문을 설정하고 그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설계하여 필요한 여 러 분야의 지식을 융합하여 필요한 지식을 창출하는 능력,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서는 태도,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통찰하며 윤리의식을 키우는 것 등을 말한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사유”와 관련한 주체적 능력 일체를 “역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정보사회 학습체제는 이러한 “역량”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역량”을 중 심에 두는 지능정보사회 학습체제에서는 삶의 과정과 학습, 교과와 교과, 교과활동과 교과 이외의 활동 등은 시간이 갈수록 경계가 약화되고 융합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와 같은 학습 양식의 변화는 교육체제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과 함께 이루어질 것이다.

10) 철학사적으로도 ‘관계에 대한 사유와 공감능력’은 일찍부터 주목받아왔다. 4세기 아우구스티누스 (Aurelius Augustinus Hipponensis 354~430)는 사유를 ‘관계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하였고, 근 대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Giambattista Vico 1688~1744) 역시 지능을 “상이한 사물들을 연결하 는 능력”으로 규정하고, ‘관계 맺는 능력’으로서 지능을 표현하는 용어로서 인게니움 (ingenium)을 제시한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랑시에르(Rancie’re, Jacques 1940~) 역시, 「무 지한 스승」에서, 지능을 ‘관계시키는 능력’으로서, ‘사유한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고 ‘이해하 는 것은 번역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관계시키는 능력’을 “모든 인 간이 자기가 가진 지적 주체로서의 본성”이자 “인류의 속성”이라고 단언하기까지 한다.

2) 학력개념에서 역량개념으로의 확장과 전환 가) 산업화 시대 교육

먹고사는 기본문제의 해결이 과제였던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공장노동에 적응시키는 교육 을 받고, 살던 지역을 떠나 공장이 밀집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주된 삶의 패턴이었다.

관 주도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국가는 “교육입국” 등의 슬로건을 통해 국민을 삶과 분리된 학습자로 동원하고, “산업역군” 등의 슬로건을 통해 국민을 삶과 분리된 노동자로 동원하였 을 뿐 국민을 삶의 주체로서 호명하지 않았다. 이러한 패턴 속에서는 교육과 생산이 삶의 장과 분리되어 학습과 삶, 노동과 소비가 분열된다. 동원된 학습과 노동은 공적인 것으로 높은 가치가 부여되고, 일상적인 삶과 소비는 사적인 것으로 낮은 가치가 부여되고 억압당 한다.

그 결과 경제성장에는 성공했지만 과열 학력경쟁으로 인한 과다학습, 장시간 노동의 보편 화로 인한 삶의 해체가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였다. 삶과 분리되어 동원된 학습과 노동의 효 율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림 4-7] 주당 학습시간 국제비교(2012)

출처: KRIVET Issue Brief 98호(2016.4.30.),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인의 학습시간(평균 비형식 학습시간

× 비형식학습 참여율)은 길지만 역량은 보통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학습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낮음. - 한국 의 경우 학습태도 점수(2.9점)는 가장 낮지만, 학습시간(142시간)은 23개 국가 중 가장 김.”

과거 산업화 시대 국민의 삶을 큰 틀에서 설계하고 분류하는 주된 주체는 국가였다. 국민 은 교육적으로 산업적으로 동원되어 국가에 의해 설계되고 분류된 직업 위계 중에서, 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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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직업으로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학력경쟁을 벌이는 존재였다. 이렇게 동원되어 자신의 삶으로부터 분리된 학습자가 추구하는 학력이란 요약·압축된 학문적 지식을 암기 적용하는 능력으로, 국가가 분류한 더 상위 위계의 직업으로 나가기 위한 자격증 역할을 하였다.

나) 5.31 교육개혁의 한계

세계화, 정보화라는 시대 인식에서 정부가 주도하여 1995년 5.31 교육개혁을 추진한 지 벌써 25년이 되어가고 있다. 90년대 중반의 교육개혁은 종합적이고 포괄적이며 대담하고, 20년 넘게 일관되게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5.31 교육체제의 한계도 명확 하게 드러나고 있다.

당시 초·중등 교육개혁 방안은 주입 암기식 교육으로부터 탈피하고, 자기주도 학습과 다 양성, 그리고 창의력을 기르고자 하는 지향을 밝혔지만, 교육과정과 학교 현장에서 그 지향 을 구체화할 만한, 산업화 시대 교육과는 다른 학습 개념과 학력의 상이 명확하지 않았다.

한때 초·중등 교사들의 자생적 교육운동인 열린교육운동을 통해 새로운 학습과 학력 지향 에 부합하는 교수-학습 모델 확산이 시도된 일이 있었지만, 그 흐름이 소멸하면서 교육개혁 의 지향 역시 사실상 사라져버렸다.

이런 사실은 5.31 교육개혁에서 초·중등학교 학생의 학교생활을 종합적으로 기록하겠다 고 도입된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 구조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학생부는 “지성과 인 성을 고루 갖춘 인재를 키운다.”는 취지에서 “교과 이외의 다양한 활동과 봉사활동을 상세 히 기록”하여 대입전형에 주요한 평가 자료로 활용하도록 도입한 것이었다. 여기서 눈에 띄 는 것은 지성과 인성, 교과활동과 교과 이외의 활동을 엄격히 나누어 보는 이분법이다. 산 업사회 교육체제는 요약·압축된 학문적 지식의 전수로서의 교과활동을 공적 지위를 갖는 주된 교육활동으로 보고, 주로 인성과 관련된 교과 이외의 활동을 상대적으로 사적이고 부 차적인 교육활동으로 엄격히 나누어 보는 것이 특징이다.

5.31 교육개혁에 내포된 학습과 학력개념은 지식 중심의 산업화 시대 학습과 학력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점에서 5.31 교육개혁은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 산업용 로봇 밀도는 세계 최상위권11)이고, 디지털 지식정보 기술의 선두주 자이기도 하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 자동화가 진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 교육이 산업사회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으면 교육적·사회적 파국을 피하기 어렵다.

11) 한겨레 미래&과학(2018.12.3.) ‘산업용 로봇 밀도, 한국 8년째 1위’ (http://www.hani.co.kr/arti/science/future)

[그림 4-8] 각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2017)

출처: IFR 보도자료(2018.10.18.) ‘Global industrial robot sales doubled over the past five years’

이제 학습과 학력개념의 근본적 전환을 핵으로 교육 시스템 전반을 재설계하여, 25년 전 발표되어 초·중등교육에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던 5.31 교육개혁을 대체하는 새로운 교육 혁신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다) “역량” 중심의 지능정보사회 학습체제

과거 국가에 의해 동원된, 삶과 분리된 학습자는 자기 정립이 어려웠다. 삶의 질 향상을 중심에 두는 지능정보사회에서는 삶의 주체로서의 자기를 정립하는 과정이 곧 학습의 과정 이다. 누구나 자기 삶에 의욕을 갖고 삶의 질 향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무엇을 배워 야 하는지 정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필요한 지식 창출, 태도 형성, 가치관 고양 등이 이루어 질 수 있다.

삶과 분리된 학습자에서 삶의 주체로서의 학습자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학력개념을 개념 적 앎(지식)에서 “할 줄 앎”, “살 줄 앎”으로 확장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 세 가지 앎의 융합으로서의 “살아가는 능력”을 중심에 두는 “역량”개념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력개념의 역량개념으로의 확장은 교육과정의 분권을 수반한다. 지식 중심의 “개념적 앎”은 중앙의 학문체계로부터 나올 수 있지만, “할 줄 앎”과 “살 줄 앎”은 삶의 현장과 교육 현장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삶의 현장, 교육 현장에서의 개별화된 교수-학 습, 팀별 학습과 과제수행 등 교수-학습 방법의 혁신을 통해 학습자들은 협업과 상생, 융합 역량 등 여러 역량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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