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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환율제도의 유지와 환율의 고평가

아시아 각국이 자본이동을 자유화하는 가운데 고정환율제도를 지속한 것은 아시아 각국의 거시경제변수들간에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대내외 불균형을 생성시킴으로써 거시경제의 긴장 도를 높인 대표적인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자본이동을 자유화하는 자본자유화와 환율정책 및 통화정책간 조화의 어려움을 흔히 “공존할 수 없는 삼위일체Inconsistent Trinity” 라고 표현하거나 Obstfeld(1998)가 사용하듯이 “Open Economy Tri-lemma”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자본자유화와 고정환율제도 및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3가지 중에서 정부는 2가지만을 택할 수 있으며 3가지 모두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자본자유화를 시행하고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는 경우에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하여야 하고, 고정환율제도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취하려는 경우에는 자본자유화를 포기하여야 하며, 자 본자유화도 허용하면서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가지려는 경우에는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보 았을 때 이러한 3가지 정책의 조합 중에서 유럽통화 통합은 자본 자유화와 고정환율제도를 선택하는 첫번째 정책조합을 선택하였으 며, 브레튼우드 체제는 고정환율제도와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선택 하는 두 번째 정책조합을 선택하였고, 브레튼우드 체제를 비판하 고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 것을 주장하던 자들은 세 번째 정 책조합을 선호하였다.88)

그런데 아시아 외환위기에 휘말린 아시아 국가들이 앞절에서 살 펴본 바와 같이 자본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실시해 나가면서도 상당

수가 미국 달러화의 명목환율에 연계된 경직적인 환율제도를 유지 하고 있었다.

태국의 경우 주요 거래국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에 의하여 바트화 에 대한 기준환율을 결정하고 이 기준환율을 중심으로 상하 변동폭 을 허용하는 명목상으로는 관리변동환율제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달 러화의 명목환율에 페그된 바스켓환율제도로 운영을 하였다.89) 다 른 동아시아 국가들도 사실상 이와 유사한 고정환율제도를 운용하 였으며, 이들은 1997년 7월 태국의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난 다음 에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한국 등 전염된 순서에 따라 서 차례로 자유변동환율제로 전환하게 되었다.

태국의 통화당국이 이처럼 바트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 하려고 했던 데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한 이유가 있었다. 첫 째, 태국 통화당국은 바트화를 “Baht Economic Zone”과 같이 인 도차이나 반도에서 중국 남부에 걸치는 바트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경제권을 형성하고자 하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바트화의 안정이 필 수적인 요건이었다.

두 번째의 요인으로는 태국의 많은 경상수지 적자는 자본유입으 로 채워져 나갔는데 저금리의 자본유입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자본 유출입에 따르는 리스크 프리미엄Risk Premium을 감소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는 국제투자가들의 입장에서 환차손의 위험이 있는 경 우 그만큼의 위험Currency Risk Premium이 국제금리에 부가되어 대 출되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도 유사한 이유로 달러화 에 연계된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여 환율을 안정시킴으로써 저금

89) 태국의 통화바스켓의 구성비율이 발표된 바는 없지만 Kawai(1997)의 회귀분석 결 과에 의하면 태국 중앙은행은 통화바스켓에 있어서 통화별 가중치를 달러화 79%, 엔화 10%, 싱가포르달러화 4%, 영국 파운드화 2%의 비율로 할당하여 사실상 바 스켓페그제로 운영한 것으로 보인다.

리의 외자유입을 촉진하고 국내물가를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달러화에 사실상 페그된 환율제도는 그것이 가져다 주는 편익도 많지만 제도운영에 있어서 많은 비용을 발생시켰다. 우선 고정환율제와 자본자유화가 동시에 지속되기 어려운Unsustainable 제 도라는 점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다.

제5장 2절 자본유입에 대한 이론적 논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본자유화에 따라 자본유입이 발생하는 경우 고정환율제도를 유 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개입하여 외화를 매입하는 과 정에서 통화증대를 가져오게 된다. 유입자본은 물가상승과 환율의 고평가를 가져와 궁극적으로는 경상수지 적자의 확대를 통하여 흡 수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달러화에 대한 페그에 따른 문제점으로서 달러화가 강 세를 보이게 되면 자국통화도 달러화와 함께 동반강세를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95년 5월 이후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 서 절상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달러화의 엔화에 대한 강세에 따라 사실상 달러화에 페그된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가 동반강세를 보이게 되어 엔화에 대해 고평가되었으며, 이것이 동아시아 국가 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킨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

이상에서 논의한 두 가지 환율 고평가요인으로 인하여 1990년대 중반 동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은 상당부분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난 다. 즉 동아시아 국가들의 자본자유화와 자본유입에서 오는 환율 의 고평가요인과 1995년 5월 이후 달러화 강세에 따른 고평가요인 이 결합되어 동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은 1990년대 초반에 비하여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JP Morgan의 1990년을 100으로 하는 실질실효환율 지수Real Effective Exchange Rate Index를 통하여 보게 되면 <그림

실질실효환율지수는 1997년 초반까지 상승세를 보이고 있으며, 최 고치는 1990년에 비하여 약 10% 정도 높게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선 태국의 경우를 보게 되면 태국의 실질실효환율지수는 1997 년 4월에 최고치 110을 기록하여 1990년에 비하여 10%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난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은 모두 1997년 3월에 각각 최고치 108.9, 119.2, 123.6을 기록하여 1990년에 비해 10%에서 20% 정도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는 1990년 1월에 최고치 104.5를 기록하고 그 이후로 하강하다가 1994년 7월을 전환점으로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여 1996년 4월에 최고치 89.8을 기록하고 있다.90)

이처럼 동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이 자본자유화와 1995년 중반 이 후 달러화의 강세로 인하여 고평가되었던 것이 1995년 이후 중국 을 제외한 대부분의 동아시아 각국에 있어서 무역수지가 악화되었 던 중요한 하나의 원인으로 보인다.

90) 한국의 경우 1990년 1월이 가장 고평가된 시점으로 나타나는 것은 1988년과 1989 년 무역수지의 흑자로 인한 환율의 고평가 현상이 연장된 때문이며 자본자유화에 따른 자본유입으로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자본유입으로 인한 환율의 고평가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의할 것이다.

<표 5-16> 아시아 국가들의 환율제도 국 가 내 용

중 국 (위안)

1994년부터 관리변동환율제

․ 종래에는 공정환율과 시장환율의 이중환율제도 채택.

․ 1994년 1월에 외환제도개혁 실시. 종래 높게 설정되어 있던 공정 환율이 시장환율과 같아지게 됨(사실상 절하). 중국인민은행(중앙 은행)이 전날 영업일 시장환율의 가중평균치에 기초하여 당일대 비 달러기준율을 발표. 달러기준율 상하 일정폭에서 변동 허용.

대 만 (신대만달러)

1989년부터 완전변동환율제

․ 1961년 고정환율제로 이행.

․ 1982년 관리변동환율제로 이행. 전일 시장환율의 가중평균치에 일정 변동폭(상하 2.25%)을 허용하는 시장평균환율제를 채택.

․ 1989년 4월 일일변동폭 제한을 철폐하고 완전변동환율제로 이 행. 중앙은행은 기본적으로 환율을 시장의 수급에 맡기는 방 침을 채택하기는 하였으나「비경제적 요인」과 투기적 움직임 에 대해서는 통화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

홍 콩 (홍콩달러)

1983년부터 미국달러에 페그된 고정환율제

․ 1983년 10월 이후 1미달러=7.8홍콩달러로 연동시킴(통화위원회 제도 채택). 홍콩달러 발권은행을 중개로 하는 은행간 거래에 는 이러한 공정환율이 사용됨. 비은행간 거래에서는 환율이 고 정되지 않고 좁은 범위 내에서 공정환율로부터의 괴리 허용.

싱가포르 (싱가포르달러)

관리변동환율제

․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달러의 변동을 허용하는 정책을 채택.

단, 싱가포르 중앙은행은 주요 무역상대국의 무역거래량에 대 응되는 통화바스켓에 대해서 싱가포르달러의 가치를 모니터함.

․ 외환시장 개입은 미국달러로 이루어짐. 싱가포르와 브루나이간 에는 1938년 이후 양국 통화를 등가에 의해 자유교환.

태 국 (바트)

1997년 7월 2일부터 관리변동환율제

․ 1984년부터 주요 무역상대국의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에 대하 여 바트의 가치를 고려하여 달러환율을 매일 발표하고, 일정 변동폭을 허용하는 제도를 채택.

․ 1997년 7월 2일부터 관리변동환율제로 이행하여 원칙적으로 환 율은 시장의 수급에 맡기되 과도한 변동이 있는 경우 중앙은

<표 5-16> 계속

국 가 내 용

말레이시아 (링기트)

관리변동환율제

․ 환율은 외환시장의 수급에 의하여 결정되나 중앙은행이 결정.

중앙은행은 주요 무역상대국의 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에 대해 링기트의 가치를 모니터하고 환율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개입.

인도네시아 (루피아)

1997년 8월 14일부터 완전변동환율제

․ 1978년 11월 미달러화에 대한 고정환율제도로부터 복수통화 바 스켓페그제도로 전환. 중앙은행이 주요통화로 구성된 바스켓으 로부터 루피아화의 달러에 대한 환율을 산출하여 매일 발표.

중앙은행과 상업은행간의 달러매매에서는 중앙은행이 발표하 는 환율의 상하 일정폭에서 변동 허용. 그 변동허용폭이 1992 년 이후 최근까지 서서히 확대되어 왔음.

․ 1995년 6월, 밴드폭 44루피아

․ 1996년 6월에는 최대 ±192루피아까지 확대. 정부는 달러에 대 한 루피아화의 연간 전체절하율의 목표치를 공표하여 왔음 (1996년도의 절하 목표치는 연간 3∼4%).

․ 1997년 7월 11일 환율변동폭을 8%에서 12%로 확대.

․ 1997년 8월 14일 완전변동환율제로 이행.

필 리 핀 (필리핀페소)

자유변동환율제

․ 1973년 6월, 변동환율제 채택. 파운드에 대한 고정환율제도에 서 미달러에 대한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 중앙은행이 은행간 거래의 기준치가 되는 환율을 발표.

․ 1984년 10월에 IMF 융자조건의 일환으로 변동환율제로 이행.

단, 1994년 11월에 환율이 전영업일 대비 상하 1.5%를 넘는 경우 외환거래를 2시간 정지하는 제도를 도입하였음. 잠시 변 동폭을 폐지하였다가 1997년 10월에 4%의 변동폭을 재도입하 였음.

자료 : 日本 經濟企劃廳 調査局,『アジア經濟』, 1998, 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