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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昧耶戒의 戒體

문서에서 密敎文化의 理解 (페이지 142-146)

라’63)고 하므로 정보리심에 입각한 有爲戒에서 無爲戒로 向上한다는 단계별 차제가 건 립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티베트의 관정의례를 보아도 분명하다.

티베트에서는 小乘戒⋅菩薩戒⋅삼매야계의 三戒를 구족하는 것이 밀교 관정을 받는 첫 번째의 조건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우선 소승계를 받고 다음에 보살계에 나아가며, 최후에 삼매야계를 받으며, 여기에서 비로소 관정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소승계⋅보살계는 분명하게 삼매야계의 道程⋅準備로서 생각할 수 있다.64) 관정을 받을 보살에게 삼매야계가 주어지는 것처럼 그 이전의 단계에서 5戒와 10善 戒가 주어진다. 이들 기본적인 계가 준수되는 것을 전제로 하여 無爲의 菩薩에게 주어 지는 계가 삼매야계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밀교에서 교화해야할 중생의 부류를 地上 菩薩과 10界九流의 중생으로 나누는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의 異名이다. 그밖에 發菩提心戒⋅無爲戒⋅佛戒 등으로 불리운다.

三昧耶(Samaya)의 語義에 대해 대일경소에서는 ‘三昧耶는 平等의 뜻이며 本誓의 뜻이며 除障의 뜻이며 驚覺의 뜻’66)이라 설하고 있다. 즉 중생과 부처⋅3밀⋅평등의 관 념을 기초로 하고 일체중생구제의 대서원을 갖고, 이 서원에 의하여 온갖 번뇌를 제거 한다는 의미로서 이것은 그대로 삼종보리심의 내용을 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平等이란 ‘여래께서 이 삼매야를 現證하실 때에 모든 중생들의 갖가지 몸 과 말과 뜻이 모두 다 여래와 동등하고, 선정과 지혜와 실상의 몸도 역시 필경 동등하 다고 관하는 것이다’.67) 즉 우리 중생이 부처님과 동일하고 평등하다는 자각을 말하는 데 뒤의 세가지 뜻은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다.

本誓란 ‘모든 중생들에게 다 성불의 뜻이 있음을 보고 곧바로 대서원을 세워, 반드시 보문으로부터 한량 없이 많은 방편으로써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다 무상보리에 이르게 하겠다’68)고 하는 것이다. 즉 중생이 가진 본래의 서원으로, 자신과 중생이 부처님의 경지와 일치하려는 근원적인 마음을 한결같이 지속시키는 것이다.

除障은 ‘갖가지 방편을 시설하여 널리 모든 중생들을 위해서 -중략- 無垢眼을 획득 하여 덮힌 장애가 모두 사라질 것이다’69)라고 하듯이 자신과 중생이 부처님의 경지와 일치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번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警覺이란 ‘모든 중생들은 다 무명의 잠 속에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공덕을 스스로 알지 못하므로 여래께서는 성실한 언어로써 [중생을] 감동시키어 깨닫게 함’70), 즉 나 와 중생이 부처님의 경지와 일치하는 데에 뜻을 두고 잊는 않은 것을 경책하도록 한다 는 뜻이다.

이 중에서 평등의 뜻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대일경소 5권에

이 계는 산스끄리뜨로 三嚩羅(saṃvara)라고 한다. 이는 공통된 緣으로 이 계를 함께 이

66) T.39, 674하.

67) 위와 같음.

68) 위와 같음.

69) 위와 같음.

70) 위와 같음.

룬다는 뜻이다. 이른바 혜의 방편 등이 모여 이룬 것이다. 또한 尸羅(śīla)라고 하는 것은 단지 청정의 뜻이다. 또한 삼바라는 평등의 뜻이다. 부처님께서 몸과 입과 뜻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고 한 것은 곧 이 三平等의 법문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 까닭에 三世無障礙戒 라 이름하게 된다.71)

라고 하여 삼매야계가 지닌 三平等의 뜻을 설하고 있다. 여래의 3밀과 행자의 삼업 이 加持相應해서 一體로 되어 삼세에 장애가 없음을 三平等이라고 한다. 대일경소에 서는 다시 삼평등의 뜻을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온갖 상념의 그물을 찢는 것이 이 삼바라의 뜻이다. 말하자면 희론과 온갖 견해의 그물 은 세로의 날실과 가로의 씨실이 서로 중복되고 교차하여 이루어져 있으므로 그물이라 부 른다. 지금 수행자의 몸과 입의 업은 스스로 다른 몸이 없고 지말을 통틀어 근본으로 돌아 오면 오직 一心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의 실상은 언제나 이러한 평등법계라고 관한다. 이 러한 까닭에 이 계에 머물 때에는 갖가지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모두 동일하게 한 모습으로 서 한량 없이 많은 견해의 그물을 모두 다 깨끗이 없앤다. 그래서 住無戱論執金剛印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72)

즉 근본의 경지에서 이 마음의 실상은 언제나 이러한 평등법계이며, 이러한 경지를 住無戱論執金剛印이라 이름하고 있다. 다시 대일경소 5권에서는 住無戱論執金剛印을 삼매야계의 계체로서 다음과 같이 설한다.

지금 이 淨戒는 바로 住無戱論金剛智印을 체로 삼는다. 특히 이 [문수]존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과 법을 상응시켜서 流轉하는데에 기여가 있기를 바라셨기 때문이다.73)

住無戱論執金剛의 智印이 바로 삼매야계의 계체라고 하는데 주무희론집금강은 문수 보살을 가리킨다. 즉 이 계는 문수보살의 智印을 계체로 삼는 것으로, 문수의 智印이란 大智로서 보리심의 덕을 말한다. 보리심론에도

71) T.39, 629중.

72) 위와 같음.

73) T.39, 629상.

제불보살이 옛적 因地에 이 마음을 발하고는 勝義, 行願, 三摩地로 계를 삼아 지금 성불 에 이르기까지 잠시도 잊은 적이 없다.74)

라고 설해져 있는 세 가지 보리심이 삼매야계의 사상적인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삼 매야계의 戒體는 바로 行願⋅勝義⋅三摩地의 三種菩提心을 일으키는 것이다. 行願心이 란 대비심으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일체중생을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여 구제하려는 마음이며, 勝義心이란 현실세계를 본래적 입장에서 실체가 없다고 보는 마음이다. 그리 고 三摩地心이란 부처와 한 몸이 된 입아아입의 경지를 말한다.75)

이러한 삼종의 정보리심은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것이기에 삼매야계는 衆生本具 의 戒를 받는 것이라 한다. 그래서 대일경소에서도 ‘정보리심은 그 성품이 그러하여 마치 금강과 같다. 이와 같이 아주 견고한 성품은 바로 스승으로부터 얻는 것으로 無 爲戒에 머물며 더러움 없고 혼탁하지 않으며 부서져 손상되지도 않는다’76)고 하였다.

따라서 금강불괴의 계로서 그 근본은 영구히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말을 바꾸어 말 하면 인간은 언제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본성인 보리심을 갖고 있고, 이 보리심은 영원 히 잃지 않는 것이지만, 이 보리심을 발동시켜서 속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 바로 발보리심계의 의미이다. 이 계를 부순다고 할지라도 계체는 영원히 끊을 수 없고, 수계 받음에 의해서 새롭게 보리심의 각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을 대일경소

 에서는

한 생애의 수명이 다하면 戒도 역시 따라서 없어지지만, 이 계는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세세의 태어나는 곳에서 언제나 함께 생겨나니 거짓으로 수지할 수도 없고 언제나 범할 수 도 없다. 또한 이 계에 머물기 때문에 진실한 지혜가 광명을 더하여 부사의한 中道와 심히 깊은 연기를 철저하게 보고 여덟가지 뒤집어진 견해를 그치며 두 가지 변을 멀리 여읜 다.77)

74) T.32, 572하.

75) 위와 같음. 참조.

76) T.39, 590하.

77) T.39, 591상.

고 하며, 그러하기 때문에 삼매야계를 통하여 일체의 사견을 여읜 진실한 생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삼매야의 계체는 자기의 정보리심이고, 이것을 일으킬 때에 온 우주가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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