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통일전략72에 대한 선행연구들은 전략과 정책의 개념을 혼 재해서 사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통일전략을 제시한다고 하면서 하 위 수준의 통일정책 나열에 그치는 경우도 있었고, 통일정책 연구를 표 방하면서 실제로는 통일전략을 언급하는 데 머무르는 경우도 적지 않 았다. 이러한 면에서 무엇보다도 전략과 정책을 개념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략(strategy)’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용한 수단을 사용하
는 행위, 즉 확보된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을 계획하고 집행하는 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전략 개념은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첫째, 단기적이 기 보다는 장기적 전망을 바탕으로 한다. 전략은 현재 당면한 문제들 에 대해 단기간의 즉흥적 해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문제에 대한 중장기적 해결책을 모색한다. 본 연구는 시나리오 기법을 적용하여 15∼20년 이후 신동북아시아 질서의 변화를 예상하고 중장 기적 통일전략을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둘째, 해결을 시도해야 할 문제의 복합성을 기반으로 한다. 전략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복합성을 내재하고 있기 마련이다. 당연히 문 제를 해결해야 하는 행위자는 단면적 판단만으로 전략 수립에 성공할 수 없다. 셋째, 전략 수립을 위한 행위자의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 탈 냉전의 지정학적 질서는 정치‧군사‧경제‧문화 등 다양한 영역의 행위 자들이 참여해서 형성되고 진화되어 나간다. 탈냉전과 미‧중관계를 기
72_‘통일전략의 개념’ 단락은 기본적으로 박형중의 2013년 연구 중 ‘국가전략’에 대한
개념을 부분적으로 발전시켰다. 박형중 외, 뺷박근혜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이론과 실 제 탐색 연구뺸 (서울: 통일연구원, 2013) 참조.
반으로 하는 ‘신형대국관계’하의 신동북아질서를 구성하는 동력 역시 정치‧군사‧경제‧문화 등 다양한 행위자들로부터 나온다. 행위자의 수 준도 정부기구와 비정부기구, 그리고 정부 간 기구를 망라한다. 요컨대 장기적 관점에서 다양한 행위자가 결합된 복합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전략 수립이 필요한 것이다.
‘정책(policy)’이란 전략의 하위개념이자 전략을 이행하는 수단의 하
나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과거 사례와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책이라는 개념을 전략이행 수단보다는 상위의 개념으로 사용해 온 경우도 볼 수 있 다.73이러한 경우는 정치행위자가 비전과 전략을 토대로 주조한(shaped)
‘상위의 정책 (higher policy)’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정책은 상위의 정책을 이행하기 위해 동원되는 기능 적 수준의 ‘하위의 정책(lower policy)’에 해당하는 것으로 과거 정부가 내세웠던 전략 수준의 정책과는 구별된다.
Ⅳ장과 Ⅴ장에서는 지금까지 밝힌 통일비전과 전략, 그리고 정책 개 념에 기반하여 <그림 Ⅳ-1>과 같은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한반도 통 일추진의 기본 원칙과 신동북아질서 유형에 따른 개별적 통일전략을 제시한다. 상위로부터 하위의 개념으로 ‘비전→ 전략→ 정책’의 순서에 따라 신동북아질서 유형에 따른 한반도 통일전략과 전략 이행을 위한 정책수단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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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기본적 비전: 한반도 통일
∙단계별 비전: 한반도 전쟁방지, 사실상 통일, 제도적 통일
∙중점지역별 분류: 국내, 남북, 동북아시아, 동아시아 ∙기간별 분류: 지속전략, 선별전략
∙담론화(정부/비정부) ∙한국 내 독자 정체성 강화 ∙남북 간 협력 정체성 강화
∙동북아시아/동아시아 협력 정체성 강화 ∙제도화(정부)
∙한국 내 통일관련 제도화 ∙남북 간 교류/협력 제도화 ∙지역 양자/다자협력 제도화 ∙조직화(정부/비정부) ∙한국 내 통일추진 세력 강화 ∙남북 (비)정부 행위자 간 교류 강화 ∙지역 (비)정부 행위자 간 교류 강화 전략
정책
(추진세력:
정부/비정부 행위자)
지역질서 시나리오에 따라 ‘한반도 전쟁방지’, ‘사실상 통일’, ‘제도적 통 일’로 구분하여 제시했다. 전략의 관점에선, 1절에서언급한대로 통일환 경 변화에 관계없이 추진해야할 지속전략, 즉 한반도 통일추진의 기본 원칙과 시나리오별 상황에 맞춰 추진해야 할 개별전략을 나눠 각각 Ⅳ
장과 Ⅴ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구체적 정책 제안의 단계에서는 정부
행위자와 비정부 행위자를 나눠 살펴보고 정책 유형 역시 담론화, 제도 화, 조직화라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제시하게 될 것이다.
특히 <그림 Ⅳ-1>에서 제시된 담론화, 제도화, 조직화의 세 가지정
책방향은 별도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그림 Ⅳ-1 통일전략을 위한 설계
담론화 정책(discourse policy)74은 통일 관련 담론의 재구성과 보 완, 발전을 통한 간접 통일전략을 강조한다. 통일전략의 수립과 이행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의 균형점을 찾 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의 정책적 영향력과 자율성의 한계를 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통일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직 접적인 제도화나 조직화를 통해 남북 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 고, 강대국을 설득하여 북한의 행동을 통제하는 간접적 해결방안이 있 다.75예를 들어 이미 개발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한국이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76 북한은 핵 시설의 동결이나 포기의 조건으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실질 적인 협상주체인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서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
74_‘discourse’는 사전적 의미로 ‘담론 또는 언술’을 뜻하지만, 한국 사회과학에서 ‘담론화’로
도 통용되고 있으며, 이 연구에서도 discourse policy는 ‘담론화 정책’을 의미한다. 통일정 책에서 ‘담론화’가 중요한 이유는 첫째, 자국의 독자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둘째, 정부 통일 정책에 대한 여론 형성에 순기능을 하며, 셋째, 북한을 포함한 한국의 대외관계를 국익에 맞게 재구성하는데 유용한 기능을 담당하고, 넷째, 지역협력체나 공동체창설을 위한 이니 셔티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담론화 정책의 기능을 다룬 자료는 다음과 같다. 손기영 은 한국의 대북포용정책을 절충주의적으로 접근하여 한국정부의 담론화 정책을 잘 설 명하고 있다. Key Young Son, South Korean Engagement Policies and North Korea: Identities, Norms and the Sunshine Policy; Christopher S. Browning,
“Small, Smart and Salient? Rethinking Identity in the Small States Literature,”
Cambridge Review of International Affairs, Vol. 19, Issue. 4 (2006), pp. 669~684.
비비안 슈미트(Vivien A. Schmidt)는 서유럽 국가들이 복지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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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미‧중관계나 대북정책을 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담론화를 통해 미국과 중국 정부를 설득하거나 두 나라의 대북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북한과의 실질적인 양자교류나 미국과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국가와의 3자 교 류를 통해서 남북통일의 담론화를 촉진하고 남북통일을 지지하는 새 로운 국제네트워크를 구축할 수도 있다.
제도화 정책(institutionalizing policy)은 담론화에 의해서 제기된 자국의 정체성이나 대외정체성을 법안이나 협약의 형태로 구체화함으 로써 국가의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알렉산더 웬트
(Alexander Wendt)는 집단적 행동의 제도화는 정부나 국제기구와 같은
규범적 행위자의 통합과 상시성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77 국내에선 남북경협 관련법과 국가보안법의 재구성을 통해 한국의 대북정책에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 남북한 간에는 상호경제협력조약이나 군사안보조 약을 통해 상호신뢰를 높일 수 있다. 한편 동북아시아 차원에서는 양자 나 다자협력의 제도화를 통해 상호신뢰나 상호의존도를 높일 수도 있다. 조직화 정책(organizing policy)은 개별 행위자 또는 집단 간의 상 시적 또는 불규칙적인 교류를 통해 제도화 이전의 단계에서 국가 간 상호신뢰를 높이고, 일회성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능을 한다. 국내 차원 에서는 통일정책을 추동할 수 있는 행위자들을 조직하고, 남북차원에서 는 상시적인 고위급 회담이나 비정부 행위자(시민단체, 지방정부) 간의 만남을 조직해 상호신뢰를 높일 수 있다. 더불어 동북아시아 지역차원 에서는, 주변국가와 양자‧다자간 채널을 구축하여 한국의 통일에 협력 적인 구조를 형성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77_Alexander Wendt, A Social Theory of International Politics (United Kingdom: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p.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