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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성 개념의 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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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정 분야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에 대 한 관심은 언제나 있었지만, 현대적 의미의 영재성에 관한 체계적인 연 구는 영미권에서 처음 이루어졌다. 진화론의 창시자인 Charles Darwin의 사촌으로도 유명한 Francis Galton은 ‘유전적 천재(Hereditary Genius)’를 주제로 영국에서 과학, 정치, 문학, 예술, 음악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보인 가문의 족보를 분석하였고, 특정 분야에 저명한 사 람의 자손일수록 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는 결 과를 바탕으로 영재성이 유전된다는 결론을 내렸다(Galton, 1869). 또한, 지적 능력의 유전성에 관심을 둔 Galton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태 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지능을 타고나며, 그 지능은 거의 변하지 않는 다는 고정된 지능 이론이 보편화 되었다.

고정된 지능에 대한 공감대 속에서 이루어진 스탠퍼드 대학의 Lewis Terman의 연구는 영재 연구에서 가장 유명한 종단연구 중 하나이다.

Terman은 또래에 비해 학습이 느린 학생을 판별하고자 Alfred Binet가 개발한 지능검사 도구를 수정하여 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 IQ)를 측정하는 스탠퍼드-비네 지능검사(표준편차 16)를 개발하였고, 이를 바 탕으로 스탠퍼드 지역의 IQ가 140 이상이면서 평균 나이가 11세인 1,500 여 명의 학생을 선발하여 방대한 종단연구를 시작하였다(Terman. 1925).

Terman의 연구는 비록 문화적, 사회경제적, 인종적 제한점이 있었지만, 영재들이 일반 아동보다 더 건강하고 적응력이 좋으며 학교에서도 높은 성취를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후 더 장기적인 종단연구에서도 개인의 성 격이나 행운 같은 요소가 영향을 주긴 하지만 지능검사를 통해 측정한 일반 지능(general intelligence, g), 즉 추상적 사고를 활용하는 능력이 개인의 성취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인임을 강조했다. 당시 영재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거만하고 사교성이 떨어지며, 책과 몽상에 잠겨 스스로

고립된 존재로 인식됐다는 점을 고려한다면(Clark, 2007/2010), Terman 의 연구는 기존에 영재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Terman과 마찬가지로 고정 지능의 중요성을 전제했지만, 그와 다른 접근을 취한 학자로 Leta Hollingworth가 있다. 그녀는 스탠포드-비네 지능검사 결과 IQ가 187인 8세 고도 영재 소년의 사례를 추적하며 연구 하였다(Garrison, Burke, & Hollingworth, 1917; Hollingworth, Garrison,

& Burke, 1922). 이후에도 고도 영재들에 대한 임상적인 연구를 통해 그 녀가 내린 결론은 Terman과 궤를 달리했는데, 고도 영재들의 경우 어른 의 지능을 가졌지만, 아이의 몸과 감정을 그대로 갖고 있으므로 또래와 의 관계 속에서 감정적으로 상처받기 쉬운(vulnerable) 성향이 있음을 보 고하며 그들을 위한 특별한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Hollingworth, 1942). 이를 현대적 용어로 표현하면 영재들의 비동시성(asynchrony)을 강조한 것이며, Hollingworth가 수행한 일련의 연구는 영재성과 관련한 연구 방향에 처음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제언했다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IQ만으로 영재성을 정의하는 흐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Paul A. Witty는 Terman의 종단연구 방법을 일부 차용하여 IQ 140 이상의 영재아 100명을 연구하였는데, 그 결과로 개인의 능력 이 외에도 성취하려는 욕구와 이를 돕는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높은 IQ가 반드시 높은 생산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Witty, 1930). 또한, 높은 IQ만으로 영재성을 판별한다면 예술, 글쓰기, 리더십 등의 가치 있는 분야에 탁월한 잠재력을 가진 영재들을 놓칠 수 있으므 로 영재의 정의를 확장할 필요가 있으며, 영재 판별의 기준도 시험 점수 가 아닌 실제 수행 능력에 초점을 둘 것을 제안하였다(Witty, 1958). 무 엇보다도 Witty가 영재 연구에 기여한 점은, 그간 영재성을 개인의 타고 난 인지적 최대 용량(capacity)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았던 시각에, ‘열정’

과 같은 비인지적 요인이나 환경의 중요성을 더했다는 데 있다. 이에 따 라 20세기 중반에는 영재성에 대한 논의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천성 (nature)과 환경적으로 제공되는 양육(nurture) 사이의 균형으로 재조정 되었다(Dai, 2018).

영재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에 따라 Witty 이후의 영재 연구 흐름 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뉘어 발전하였다(Sternberg & Kaufman, 2018). 첫째는, 영재성에 관한 논의에서 기존의 영역-일반적 (domain-general) 지능 개념에만 의존하는 경향에 반대하며 영역-특수적 (domain-specific) 지능을 주장하는 연구 흐름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단일 요인인 일반 지능(g)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Charles Spearman(1927)과 최소한 7가지의 정신적 능력이 통계적으로 독립적이 라는 Louis Thurstone(1938)의 논쟁으로부터 영재성과 관련된 여러 이론 이 도출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일반 지능을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 g-f)와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 g-c)로 구분하는 Horn &

Cottell(1966)의 연구가 있다. Horn-Cottell 모델은 지능이 중추 신경계의 효율적 작동에 기인하는 유동성 지능, 그리고 문화적 맥락이나 이전의 경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발달하는 결정성 지능으로 구성된다는 지능 이론이다. Horn-Cottell 모델은 이후 Carroll(1993)의 기여를 바탕으로 Cattell-Horn-Carroll(CHC) 모델로 발전하며 지능의 계층구조를 주장했 는데, 최하위층(Stratum I)은 Thurstone가 주장한 정신적 능력과 일부 겹치는 영역 특화된 기술이 포함되며, 중간층(Stratum II)에는 유동성 지 능, 결정성 지능 등이 포함된 여러 종류의 지적 능력이 포함된다. 그리고 가장 최상위층(Stratum Ⅲ)에는 하위층 모두에 영향을 끼치는 일반 지능 (g)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Spearman의 영역-일반적 지능 개념 과 Thurstone의 영역-특수적 지능 개념을 절충한 이론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영역-특수적 지능 이론으로는 Howard Gardner(1983)의 다 중지능(multiple intelligences)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영역-특수적 지능 이 상위의 일반 지능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독립적인 인지 체계로서 존재하며,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공간지능, 신체-운동지능, 음악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까지 총 8가지 지능 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실존지능 Gardner의 이론은 지능 에 대한 교육자들의 견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번째 연구 갈래로는 영재성을 정의할 때 지능과 같은 인지적 요인

뿐만 아니라 비인지적 요인이 종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일종의 시스템으 로 바라보는 접근이 있다. 이러한 맥락의 연구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영재성 정의는 Joseph Renzulli(1978, 2005)의 세 고리(Three-Ring) 모델 이 대표적이다. 세 고리 모델은 영재성을 (1) 평균 이상의 능력 (above-average ability), (2) 창의성(creativity), (3) 과제집착력(task commitment)의 상호작용으로 보았다. 이때 평균 이상의 능력으로 특정 영역에서 상위 15-20% 수준의 개별적 수행성을 제시했는데, 이는 전통 적인 영재성 정의에서 말하는 상위 3-5% 수준에 비해 그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Renzulli는 영재성을 크게 학업적 영재성 (schoolhouse giftedness)과 창의-생산적 영재성(creative-productive giftedness)으로 구분하였는데, 이러한 Renzulli의 이론은 영재를 위한 교 육 프로그램이 빠르고 효율적인 지식 습득과 더불어 창조적인 생산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더 포괄적인 영재 판별 과정을 통해 환경적 요소 로 인해 판별 과정에서 소외되는 영재들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며 큰 반향을 불러왔다.

Renzulli와 더불어 영재성을 심리적 요소 간의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 체계로 바라본 연구자로 Sternberg(2003)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영재성이 지혜(Wisdom), 지능(Intelligence), 창의성(Creativity) 등의 세 가지 요소 가 통합될 때(Synthesized) 발현된다는 WICS 모델을 제안했다. WICS 모델은 영재성의 발현이 단순히 사익을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의 실현이 아닌, 공공의 선을 위하는 지혜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영재성 모델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마지막 연구 갈래로는 영재성을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요소로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발달 모델이 있다. 이러한 발달 이론은 영재성이 개인의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가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며 영재성이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관점을 가지는 특징이 있다. 대 표적인 발달 이론으로는 Françoys Gagné(2005)의 영재성과 재능에 대한 차별화(Differentiated Model of Gifted and Talented, DMGT) 모델이 있 는데, Gagné는 그간 영재성 이론에서 부각되지 못한 환경적 요인(가족,

문화, 부모, 교육적 지원 등)과 개인 내적 요인(건강, 성격, 열정 등)을 강조하여 영재성(giftedness)을 어떤 발달 과정을 통해 특정 분야의 재능 (talent)으로 발현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두었다.

Abraham Tannenbaum(1986) 역시 잠재성이 영재성으로 발현되기 위 해서는 (1) 우수한 지능, (2) 탁월한 특별 적성, (3) 비지적 촉진제, (4) 환경적 영향, (5) 기회 또는 운의 다섯 가지 요소가 심리적, 사회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Tannenbaum의 주장은 영 재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당시의 개인의 잠재력이 당시의 사회적 가치 와 운이 좋게 잘 들어맞아서 영재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 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기존의 영재성 개념에서 간과되어온 요인을 포착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단, Gagné는 영재성과 재능이라는 용어를 엄밀하게 구분하여, 잠재력의 의미로 영재성을, 그리고 이러한 영재성이 발현된 결과를 재능이라고 정의한 데 반해, Tannenbaum은 영재성이라 는 용어를 잠재력이 발현된 결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Sternberg & Kaufman, 2018).

연구 분야와 학자마다 다양하게 사용하는 영재성의 개념과 그에 대한 이론을 합의된 틀로 정리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Subotnik, Olszewski-Kubilius, & Worrell, 2011), 앞으로도 연구자들 사이에서 영 재성에 대해 하나의 합의된 정의를 내리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이는 영 재성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한 편에서는 심리학적으로, 다른 한 편에서 는 교육학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즉 심리학자들은 어떤 심리사회적 특성이 영재성을 발현시키는지에 관심을 두고 이를 일반화하 려는 접근을 취하는 데 반해, 교육학자들은 영재성이라는 라벨과는 관계 없이 잠재성이 엿보이는 학생 개개인에게 적절한 학습 수준을 어느 정도 의 속도로 제공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McBee, McCoach, Peters, & Matthews, 2012). 본 연구는 후자의 교육적 관점에 따라 과학 영재의 일반적인 특성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과학 분야의 재능이 엿보이 는 학생들에게 어떠한 교육 기회와 환경이 제공될 필요가 있는지 고찰하 는 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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