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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황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50-161)

소상황과 달리 대상황은 개인의 행위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추상적, 보편적, 비가시적, 비일상적, 이론적 상황에 해당한다. 연구참여자들이 세 계-내-존재로서 놓여 있는 고등학교 입시의 대상황적 요소로는 (1) 학벌 주의, (2) 실력주의, (3) 신자유주의를 추출할 수 있었다.

(1) 학벌주의: 위계서열의 확산

우리나라 사회의 ‘학벌’이란 여러 의미로 정의할 수 있지만, ‘출신대학 의 위계서열적 층을 기초로 생성된 유사가족적 공동체’(이종현, 2007)가 가장 보편적인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위계서열적 층”의 정점에는

‘서울대’가 위치하며, 이러한 학벌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학벌주의’

로 정리할 수 있다.

본 연구를 위한 면담을 진행할 당시 중학생이었던 연구참여자들과의 대화에서도 나는 어렵지 않게 학벌주의를 읽어낼 수 있었다. 연구참여자 들의 입시 이야기를 다시금 살펴보면 그들이 표현한 학벌주의는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나는데, 첫째로는 학벌의 정의에서 ‘위계서열’에 초점 을 맞춰진,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발생하는 ‘후광효과’

가 대표적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김리온은 정신과 의사가 꿈이긴 하지 만, “최고의 서울대”를 갈 수 있다면 심리학과에 진학하는 것도 차선책 으로 고민할 정도였다. 박재혁의 경우에는 대학 이름이 곧 “사회적 지위 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하는 요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최인규의 사 례와 같이 학교 교사나 학원 강사가 높은 위계의 대학을 졸업한 경우에 는 그들의 교육적 태도 등과는 관계없이 학벌 그 자체만으로도 남다르게 바라보는 경향을 찾을 수 있다.

최인규: 저희 [유한국제중의] 사회쌤은 서울대, 다 서울대에요! 체육쌤도 서울대, 음악쌤도 서울대, 기술쌤도 서울대. 다 서울대에요!심지 어 계약직을 뽑는, 한 학기 계약직을 성균관대에서. 성균관대.

(웃음) 성대가 젤 학력이 낮아요. (중략)

연구자: 근데 선생님들의 출신학교를 다 알고 있네? 빠삭하게 알고 있 네?

최인규: 애들이 다 뒷조사가 있어요. 쌤들이 말은 안 하는데 애들이 다 뒷조사를 해요. (중략) 장난 아니에요. 깜짝 놀랐어요, 저는. 음 악쌤이 서울대 성악과 출신이에요. (웃음)

연구참여자들이 생각하는 학벌의 개념은 대학에 한정되지 않고 고등학 교급까지 이어진 ‘확장된 학벌’의 개념을 가졌다. 고등학교의 위계서열은 대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완벽한 상관관계는 아니지만, 고등학 교의 위계는 보통 그 학교에서 ‘얼마나 서울대를 높은 비율로 보내는지’

로 가늠할 수 있으며, 위계가 높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안성민: 두리고가 영재고 바로 아랫급으로 치는 것 같더라고요. 영재고, 바로 아래 급수가 하나고. 근데 두리고 되게 좋다고 평이 많던 데?

연구자: 아, 그러면은, 성민이가 인식하고 있는 그 학교의 순서? 그게 어떻게 돼요? 뭐 1티어라고 했던 데가, 내가 듣기로는 가름영 재고, 나름영재고, 다름영재고 정도는 1티어라고 들은 것 같은 데.

안성민: 영재고 중에서는 그렇죠. (중략) 이제 영재고가, 이과에서는 독 보적으로 영재고가 [서울대를] 제일 많이 보내죠. (중략) 수학도 엔간히 해서 내신을 잘 받았어, 그러면 두리고를 쓰고요. 근데, 얘는 누가 봐도 이과인데 영재고 붙었어야 되는데 떨어졌어, 그러면은 이제 과학고를 쓰는 거에요.

안영우: 저는 누나들이 둘이 있는데, 둘 다 특목고를 갔어요. (연구참여 자 모두 감탄)

연구자: 어디어디 갔어요?

최인규: 엘리트 집안!

안영우: 둘 다 국제고 갔어요. (중략)

박재혁: 딸 두 명이 문과 탑[학교에] 가고, 아들 한 명이 이과 탑[학교 에] 갔슈! (모두 감탄) 야, 농사가 풍년을 넘어가고 풍풍년이네!

(모두 웃음)

연구참여자들 모두가 이러한 학벌주의를 공유하고 있기에, 그들은 비 록 본인이 영재고를 지원할 계획이 없었더라도 “공부하는 애들”이라면 모두가 우러러보는 ‘확장된 학벌’ 획득에 도전하기 위해 고등학교 입시 경쟁에 동참했다. 예를 들어 영재고에 진학할 경우 의대에 가기 어려우 므로 과학고 진학을 계획했던 김리온도 ‘영재고’라는 확장된 학벌이 주는 후광효과의 가치와 의대 진학의 어려움을 저울질할 정도였다. 연구참여 자들이 말하는 ‘학벌’은 단순히 학문적 범주를 넘어 더 포괄적인 범주인

“네임밸류”에 대한 추구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자: [리온이는] 대학생이 아니니까. 그런 걸 경험해볼 수 없잖아요.

“쟤 서울대래.” “오, 서울대!” 이런 느낌.

김리온: “오, 쟤 다름영재고래!” “오오, 다름영재고!” 똑같잖아요? (중략) 솔직히 말해서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런 걸 느끼는 사람인데 당 연히 ‘좋은 데를 가야지 나한테 유리하겠구나’ 이 생각이 바로 들죠? 그게 있어요. 사람을 판단하는 데는 그런 게 있어요. 막, 영화사도 유명한데, 영화사도 “드림웍스 다닌다”, “허, 대박!” 이 러고, “디즈니 다닌다”, “하, 대박!” 다 이럴려고 하는 거잖아요?

연구참여자들이 표현한 학벌주의의 두 번째 양상은 학벌의 정의에서

‘유사가족적 공동체’에 초점이 맞춰진 ‘인맥’에 대한 관심이었다. 연구참 여자들은 ‘인맥’이라는 표현을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했다. 가장 대표적으 로는 “지인 찬스”라고 표현되는, 자신의 인맥에 포함된 사람을 통해 본 인이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맥락에서 언급되는 인맥이다.

하지만 아직 중학생인 연구참여자들은 사회적으로 “지인 찬스”라고 부를 만한 인맥 활용은 거의 없었다. 즉 ‘인맥’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지인 찬 스”는 미래 가치이자 잠재적 가치였으며, 실질적으로 그들이 말하고 경 험한 ‘인맥’이란 그러한 잠재적 가치가 축적된 ‘인적 자본’이자 학원, 영 재교육원 등에서 만나 자신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어 성장을 촉진하는

“말이 통하는 친구” 네트워크를 의미했다.

박재혁: 제가 아까 말했던 4학년 때만 영재원 [같이]한 그 친구 있잖아 요? 그 친구랑 저랑 SNS에 친구들만 봐도 확실히 다른 게, 그 친구는 페이스북에 그냥 학교 친구들로만 돼 있으면, 평범한 그냥 일반고 간 애들로만 돼 있으면, 제 친구의 상당수는 다 특목고, 자사고, 영재고, 이런 애들이. 과고, 외고, 이런 애들이 엄청 많아요. 그런 식으로, 인맥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 지를 알 수 있잖아요? (중략) 그런 애들이랑 다니면 좋은 점은, 일단 인맥이 나중에 사회생활에서도 크게 쓰일 수 있다는 거는

좀 너무 속물적인 거라서 제 입으로 대놓고 말하고 싶진 않지 만, 일단 제가 지금 살면서, 중학교 학생다운 삶을 살면서 되게 좋은 거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말이 통하는 애들이 많이 늘 어난다는 거에요. (중략) 더 하이클래스 애들이랑 놀 수 있는 거잖아요? 그니까 저 자신도 덩달아 향상이 되는 거죠.

정리하자면 연구참여자들의 학벌주의는 단순히 대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급도 포함한 ‘확장된 학벌주의’의 양상을 보이며, ‘네임밸 류’ 추구와 ‘말이 통하는 친구 네트워크’ 구성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는 위계서열이 높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둠으로써 자신의 외재적 가치 를 높임과 동시에, 본인이 가치를 두는 분야에서 본받을 점이 많은 사람 들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성장하는 내재적 가치 향상에 대한 기대가 반 영된 결과였다.

(2) 실력주의: 실력에 따른 기회 배분과 노력 중시

전근대 사회에서는 출생에 기초한 신분 체계가 존재했다면, 현대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앞서 소개했듯이 학벌에 따른 새로운 신분 체계가 존재 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참여자들은 더 높은 위계의 학벌을 그들이 자주 언급하는 “실력”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사고를 공유하고 있었다.

연구참여자들이 말하는 ‘실력’은 두 가지의 개념이 결합 된 의미로 표 현된다. 첫째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소질을 뜻하는 “능력”, “재능”, 또 는 “잠재력”이며, 둘째는 그렇게 타고난 소질을 최종적으로 꽃피우기 위 한 “노력”이다. 그들은 어렸을 때부터 본인이 학문적으로 어느 정도의 타고난 소질이 있으며, 끝없는 노력을 통해 잠재된 능력을 계발하여 자 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라고 여겼다. 그렇게 실력을 충분히 쌓은 사람이라면 “공부하는 애들” 사이에서 더 높은 지위를 획득 할 수 있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기에 타고난 ‘능력’도 있고 거기에 ‘노력’까지 더하여 충분한 ‘실력’을 갖춘 학생이 그에 걸맞은 결과를 얻지 못한 경우 분노하기도 했다.

최인규: 저희 16명 갔어요, 이번에 두리고. 저희 [중]학교에서. 근데 8명 정도가 사회통합이나 임직원자녀 전형으로 간 거에요. 그래서 애들 말이 되게 많아요. 능력도 없는 애가, 삘삘 노는 애가, “나 는 사회통합 전형이니까!” 하고 사회통합 전형 썼는데 남자가 미달이어서 붙은 애가 있고, 특례자 전형인데 특례자 전형 중 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애가 다른 일반중 애 특례자보다 나아 서 붙은 애가 있고요.

연구자: 특례자 전형은 뭐?

최인규: 아빠가 국가유공자에요. (중략) 아버지야 ‘아, 훌륭하신 분이다.’

하는데, 애가, 아무런 능력도 없고 노력도 없는 애가 갑자기 갔 다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요. 그리고 [저희 학교] 전교 2등이 썼어요. 걔는 다자녀로 쓸 수가 있었어요. 두리고에.

연구자: 다자녀[전형]도 있어?

최인규: 다자녀도 있는데, 다자녀로 쓸 수가 있었는데, 걔는 “나는 실력 되니까!” 일반으로 썼어요. 전교 2등이니까. 유한국제중 전교 2 등이 떨어졌어요. 저보다 수학을 잘하는 애가 갔는데 떨어졌어 요. 면접에서. 너무 웃기잖아요? 그래놓고 능력 없는 애들이란 능력 없는 애들은 싸그리 전부 붙여놓고.

연구참여자들이 생각할 때 학생의 학문적 실력을 가장 정확하게 알아 보는 방법은 정량적인 점수가 산출되는 수준 높은 내용의 시험이다. 이 에 따르면 중학교 내신의 경우에는 시험 문항의 수준이 연구참여자들 기 준에서 도전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즉 그들에게 있어 중학교 내신은

‘실력’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인 ‘능력’과 ‘노력’ 중에서 ‘노력’만을 평가 하는 시험으로 인식되었다.

안성민: 학교에서의 그 내신은 성실도를 의미하는 것 같아요. 성실하기 만 하면 아무리 수학을 못 해도 A는 나와요. 왜냐하면 선생님 이 문제를 거의 다 알려줘요. 단원평가 문제 이렇게 해가지고 시험장에 이 프린트만 풀면 어느 정도 이상. 그 한 90점 이상 은 맞을 수 있어요. 이론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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