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매개상황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61-180)

매개상황은 소상황과 대상황을 연결하는 해석적 메타-커뮤니케이션 상황이다. 주체-구조를 매개하는 고등학교 입시의 매개상황적 요소는 (1) 성적과 성과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학교, (2) 불안감을 자극함과 동시 에 해소해주는 학원, (3) 명시적/암묵적으로 학벌을 비교하는 가족, (4) 차별화와 동질화의 이중적 또래 관계를 추출할 수 있었다. 각 매개상황 의 주제는 연구참여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지만, 구체적인 양상은 조금씩 다른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1) 성적과 성과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학교

연구참여자들에게 있어 학교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체계적으로 배우 고, 또래와의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적성을 계발하고 사회성을 함양하는 공간으로 의미가 있다. ‘작은 사회’에 해당하는 학교에서 이들 은 꼭 수업을 통해서가 아니라도 암묵적으로 많은 것을 문화적으로 훈습 (熏習)하게 된다.

연구참여자들이 배운 학교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적어도 교사와 공 부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성적이 곧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 다. 최인규의 초등학교 때 경험으로부터 극단적으로 드러나듯, 학교 성적 이 가장 우선시 되는 학교 문화 속에서는 교사가 아무리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더라도 성적이 좋다면 학생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칭찬을 해줘야 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최인규만큼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연구참여자들은 모두 학교에서 꾸준한 노력을 통해 우수한 성적을 거둠 으로써 ‘성적은 곧 권력’이라는 명제를 내면화했다.

박재혁: 전교등수란 게 되게, 중학교에서는 그게 절대권력이나 다름이 없어요.

연구자: 나도 그렇게 많이 느꼈었지.

박재혁: 선생님도 공부 잘하셨으니까 아시겠죠?

연구자: 또 선생님들의 권력을 또 등에 업잖아. 성적이 좋으면.

박재혁: 그게, 무슨 얘기를 많이 듣냐면, (중략) 어떤 친구가 중3 때 자 기가 공부 잘해서 두리고를 준비하고 있다고. (중략) 근데 학교 에서 일이 또 터졌대요. 근데 걔가 거기 연루됐다는 거에요. 걔 는 선생님이 싹 풀어주고, “넌 가서 공부해라!” 그러고 남은 애 들을 혼냈다는 거에요. (중략) [어떤 친구는] 학교에서 담배 피 우는 것도, 공부 잘하고 영재고 준비해서 좀 덮인 것 같기도 하다고. 근데 뭐 학교는, 학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겠죠? 안 타까운 얘기긴 하지만.

성적을 잣대로 학생에 대한 평가가 결정되는 학교의 전반적인 문화 측 면과 함께 제도적인 측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학교에서 이루어 지는 획일적인 교육은 어떤 학생에게는 굉장히 높은 수준일 수 있으나, 적어도 연구참여자들에게는 전혀 도전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학교 내신은 단지 주어진 시험 범위의 핵심 내용을 잘 외우고 실수만 하 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당연했다. 약간의 노력만 들이면 좋은 내신성적을 얻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에서는 교사와 친구들로부 터 높은 평가를 받게 되니 그들에게 있어 학교는 ‘공부하는 곳’의 의미가

아닌, ‘친구들과 노는 곳’이자 ‘환대받는 곳’으로 의미화되었다.

박재혁: 학교는 그냥 놀러 오는 곳이라... 아니 그니까 공부를 안 하는 건 아닌데, 그냥 학교가 좋았었던 것 같아요.

연구자: 편하게 다닌 느낌?

박재혁: 네, 편하게 다녔어요. 근데 뭐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학교를 다 좋아하더라고요? 학교를 싫어하는 애들은 대부분 상대적으 로 그리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아니어갖고. (웃음) 공통되는 얘 기인 것 같아요.

김리온: 저는 그냥 쌤이 절 이뻐해주셔서 챙겨주셨어요. (중략) 선생님 이 약간 되게 기특하게 보셨어요. 그러니까, 영재고 준비를 하 면서 성적이 이만큼 나오기가 쉽지가 않아요. (중략) 제가 인사 성도 밝고, 항상 끝나면 얘기해주시는 게 되게 “그림 같은 아 이”, 제가 입으로 말하기 뭐한데 (웃음)

연구자: 괜찮아, 괜찮아.

김리온: 그림 같은 아이라고 (웃음) 쳐다만 보고 있어도 좋다고, 그렇다 고 얘기를 해주셔서 전 너무 감사

연구자: 중3 [담임]선생님이?

김리온: (고개를 끄덕이며) 너무! 기분이 좋은 거에요.

또한, 중학교와 비교하여 고등학교는 영재학교, 과학고, 자사고 등 다 양한 종류의 학교가 존재하고, 따라서 연구참여자들은 자신에게 적합하 고 유리한 교육환경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존재했다. 특히 영재학교 의 경우에는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1학기에 학생을 선발하며, 설령 입시 에 실패할지라도 2학기에 과학고나 자사고에 지원할 수 있다. 과학에 재 능과 열정이 있는 연구참여자들이 특별한 교육환경과 높은 사회적 지위 가 부여되는 영재학교 입시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포기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들은 처음부터 영재학교 진학을 목표로 했든 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모두가 영 재학교 입시에 도전하였고, 그렇게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 될수록 경쟁에

서 승리한 학생들에게는 더 큰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었다.

영재학교 입시 경쟁을 통해 학교 안에서 사회적 지위가 극적으로 상승 한 사례는 안영우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연구참여자들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최상위권 성적을 받았지만, 시험에서 잔실수가 많았던 안영우 는 반에서 2, 3등 수준으로 다른 연구참여자들과 비교해 조금 낮은 성적 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문항이 서술형으로 출제되어 계산 실 수를 하더라도 부분점수를 받을 수 있는 영재성 검사를 치르는 다름영재 고에 지원하여 합격하면서 그는 “과학영재”라는 별명으로 그보다 내신성 적이 좋은 학생들보다 더 주목받는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대학의 서열화가 고등학교급으로 전이되면서, 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더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성도 생겨났다. 앞서 연구 참여자들의 이야기로부터 살펴보았듯이 입시 기간에 진행되는 수련회 등 의 단체 행사에 참여하는 대신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도록 배려하기도 했고, 과학고나 자사고 면접 기간에는 일부 교사들이 면접대상자들에게 모의 면접을 해주는 등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특히 자기주도학습전형이 실시된 이후로 외부 대회 수상실적은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것이 불가 능해지면서 학교에서 개최하는 교내 대회의 중요성이 더 커졌는데, 문제 는 교내 대회의 종류와 개수가 학교마다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국제중 이나 교육열이 높은 지역의 학교 같은 경우에는 부모들의 요구와 교사의 노력이 더해져 온갖 종류의 교내 대회가 열리는 반면, 변두리 지역의 학 교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안영우의 중학교는 지역적으로 교육열 이 그다지 높지 않은 곳에 자리했지만, 사립학교다 보니 주변의 공립학 교와 비교해서 더 많은 교내 대회가 열렸는데, 덕분에 수·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글쓰기 등의 인문계열 대회의 교내 수상실적을 쌓으면서 생활기 록부를 풍성하게 채울 수 있었다.

연구자: [영재고 입시에서] 학교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요? 추천서 같은 거?

안영우: 추천서하고? 학교 활동. 이게 기본적으로 외부활동을 [자기소개 서에 기재] 못 하니까, 학교에서 이런 과학 관련 행사를 많이

열어줘야지 저희가 쓸 거리가 많이 생겨요. 저희 학교가 그래 도 사립이라서 과학탐구대회나 이런 과학의 날 행사같은 거?

(중략)

연구자: 오... 아, 이게 학교마다 교내 행사들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 도 있네?

안영우: 네, 달라요. 그게 사립, 공립이냐에 따라서 교육청 영향을 얼마 나 많이 받느냐도 있고, 쌤들이 귀찮아도 이걸 해주냐 안 해주 냐도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쌤들이 귀찮으면 안 열거든요.

정리하자면, 공부하는 아이들 사이에서는 학교에서 주어지는 내신성적 이 교사나 또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권력으로 작용했으며, 이러한 학 교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참여자들은 실력주의를 내면화하였다. 고등학교 종류의 다양화는 학교의 서열을 만들어냈고, 그에 따라 중학교도 확장된 학벌주의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여러 변화가 생겨났다. 하지만 연구참여 자들도 고등학교급에서의 서열은 어디까지나 대학의 서열에서 비롯된 것 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안성민: 중학교 선생님이 이런 말씀 하시더라고요. 대학교는 어느 정도 인생을 책임져주는데, 고등학교가 대학교를 책임지지는 않는다 고. 맞는 말인 것 같아요.

(2) 불안감을 자극함과 동시에 해소해주는 학원

연구참여자들이 경험한 고등학교 입시는 모두 영재고 입시에서 출발했 다. 영재고의 경우 영재교육진흥법을 근거로 다른 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영재성 검사를 목적으로 지필고사를 보는 것이 허용되는데, 이 지필고사 단계에서 탈락자 대부분이 발생한다. 비록 영재고 지필고사가 중학교 교 육과정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출제된다고는 하나, 학교 내신시험 과는 다르게 창의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력을 요구하는 문항을 출제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을 충실하게 듣는 것만으로는 영재고 시험에 대비하기

문서에서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페이지 161-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