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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를 해( 害 )하는 사회문화적 요인

V. 법적안정과 신뢰보호

3. 법치주의를 해( 害 )하는 사회문화적 요인

민주주의 및 시장경제를 위하여 법치주의가 필요불가결하다는 인식 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다. 법 치주의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문화적 요인은 결국 우리나라의

선진국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라도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법치 주의의 실현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법 경시 사상 내지 태도, 이와 함께 가는 법 편의주의(便宜主義) 및 법 수단관 (手段觀)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편재해 있는 이러한 사회 문화적 요인을 검토하여 보자.

법 경시의 사상과 행동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 법과 원칙의 견지 내지 준법을 당리당략이나 이념 내지 이익단체나 집단의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하고 자기의 시각에서 필요하 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편법이나 불법, 탈법, 회피나 위법을 서슴치 아니하는 모습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광우병쇠고기 촛불시위에서 시 작하여 급기야 정권퇴진운동으로까지 변질하고 있는 최근의 시위는 그 단적인 예가 된다. 그러므로 법치주의의 문제를 법과 원칙의 문제 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유리하면 따르고 불리하면 따르지 아니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활용하는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법이 사 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하여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도 곧잘 활용된다. 정치국면을 전환하기 위하여 때만 되면 나오 는 개헌론도 그러한 태도의 하나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이 같은 법 경시 사상 및 법을 수단으로 보는 법 수단관의 극복이 실은 대한민국

건립 6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우리나라의 선진화로 향한 한 단계 도

약을 위한 당면과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편 법을 싫어하거나 되도록이면 법을 멀리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법 정서(情緖)에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의 법 경시사상이나 법 수단관은 흔히 이 같은 법을 멀리하고 싶어 하는 전 통적인 법 정서에 쉽게 편승하여 표출되기도 한다. 법을 멀리하고 싶 어 하는 법 정서는, 발생사적으로, 인격도야와 조화를 강조하는 유교 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 일제시대에 체험한

바와 같은 과거의 억압적인 법(repressive law)의 경험에서 연유한 것이 라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자기 이익에 따라 법을 따르기도 하고 혹은 멀리하거나 위반하기도 하는 편의주의가 주는 이익에 의하여 조장되 기도 한다고 판단된다. 법을 따르면 나만 손해라는 정서가 그러한 예 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잠시 후 정의(定義)하는 바와 같은 정의(正義)를 내용으로 하는 법치주의의 원숙단계에 이르면 법을 멀리 하고 싶어 하는 법 정서는 살아진다고 할까 의미가 없어지는 운명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분석적으로 법을 멀리하고 싶 어하는 법 정서는 위의 법 경시사상이나 법 수단관으로부터 구별되어 야 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에 비추어보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충돌”18)이란 잘 못 설정된 화두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화두는 다분히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각기 어떻게 정의(定義)하느냐의 문제에 의존한다. 민주주 의를 다수의 지배 원리로 이해하고 법치주의를 위의 형식적 법치주의 로 이해하는 경우에는 이 양자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를 자 유민주주의로, 그리고 법치주의를 사법권의 독립 및 위헌법률심사제 도를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충돌이란 있을 수 없다. 다 만 헌법 명문으로는 위헌법률심사(사법심사)제도를 가지고 있지 아니 하면서 위헌법률심사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헌법 명문으로 위헌법률심사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다는 설득력 있는 화두가 되리라 생각된다. 아무튼 민주주의를 다수의 지배 원리로, 그 리고 법치주의를 형식적 및 실체적 법치주의로 이해하는 경우에 비로 소 양자는 충돌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민주주의와 자유 주의의 충돌의 문제로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하리라 판단된다.

18) “법치주의와 법치주의”의 주제를 가지고 열린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의 2008년

530일자 학술대회의 화두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충돌이었다.

. 준법의 문제 - 준법정신의 고양은 법치주의 선진화의 관건

마지막으로 준법사상 내지 준법정신을 논의하지 아니하고 행하는 법치주의의 논의는 공허한 논의로 끝나기 쉽게 된다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에 관한 서양의 정치사상가·법학자 들의 논의를 보면 그 문헌 또한 한 두 개가 아닐뿐더러 법이란 지켜 지는 것을 묵시적 보편적 전제로 하여 그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고 단 언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들의 문헌에서 법치주의와 법의 준 수를 특히 결부시켜 논의하지는 아니한다고 생각된다. 그들에게 준법 은 생활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법 자체가 문제되는 우리 나라에서는 준법정신이 더 고양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아니하고 행하 는 법치주의의 논의는 법치주의의 실용적 가치를 반감케 한다고 생각 된다. 법을 따르지 아니한다면 우리가 정의한 바 있는 그러한 법치주 의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나라 언론에서 거론하는 법치주의는 실은 철저한 준법, 준법정신의 고양을 주장하는 논의인 경우가 대부 분이라고 생각된다19). 그러므로 우리나라 선진화의 관건으로 거론되 는 법치주의는 실은 준법사상 내지 태도의 고양이라고 하여야 정확하 리라 생각된다.

서양사람들의 일상의 사회생활을 우리와 비교하여 면밀히 관찰하여 보면 법의 노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법의 준수가 생활화가 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사람, 특히 독일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러하다.

가령 독일사람들의 경우에 법을 전통적으로 잘 지키니까 법의 내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독재도 될 수 있고 민주주의도 될 수 있다 고 생각된다. 나치의 법도 잘 지켰고(법을 통한 독재라 할 수 있다) 2

19) 예컨대 2008년6월12일자 조선일보 칼럼 복거일, “이명박 정권의 최후 방어선”;

2008년6월19일자 조선일보 사설 “죽어버린 法治, 이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 및 동일자 조선일보 칼럼 김영봉, 얼어난 좌파, 엎드린 우파등 참조.

차 대전 후 민주화된 법도 잘 지키니까 거의 하루아침에 곧 민주주의 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판단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나 라의 경우에 꼭 60년 전에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제도를 도입하였지만 헌법규범과 정치현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수 십 년 동안 살다가 1987 년에 비로소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이 괴리를 없앴다고 말 할 수 있 다. 헌법규범과 정치현실의 괴리의 시대를 뭉뚱그려 우리는 권위주의 또는 군사독재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과거 헌법규범과 정치현실의 괴리를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서 두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사회의 뿌리 깊은 법 경시사상 내지 법 편의 주의의 표출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광우병 쇠고기 촛불 시위가 출범한지 3개월에 불과한 정권에 대한 퇴진운동으로까지 변질 하고 있는 불법시위 및 전국적 불법파업노동 등, 그리고 이에 대한 적법한 법집행을 포기하고 있는 듯한 정부의 태도나, 대통령 선거 때 의 고소·고발사건의 취소로 응하는 여당의 대응태도를 관찰하여 보면, 이 또한 법을 멀리하고 싶어하는 전통적 법 정서에 편승하여 법 경시 사상 내지 법 수단관 내지 법 편의주의가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고 판단된다. 법치주의의 반대개념이 인치주의인데, 법치주의의 장족 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과거의 독재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래 의 오늘의 민주주의도 이렇게 인치의 다양한 모습을 아직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사회의 준법정신의 확립은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문화적 정서 때문이든 정치적 편의 때문이든 법이 지켜지지 아니하고서야 법치주의의 이상은 그 실 현이 어려우리라 판단된다. 그리고 법치주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는 민주주의도 시장경제도 선진국답게 원숙하게 활성화되기는 힘들 것이리라.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준법정신의 고 양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법치주의 실현의 중심에는 독립한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 못 지 아니하게 입법부도 거기에 서 있다. 법치주의의 이상이랄까 내용 이 입법에 담겨져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반적 적용 가능성 등 법의 형식적 요소와 정의 원칙, 기본적 인권과 같은 실체 적 요소를 입법은 지녀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헌법재판소 등 사법 부는 오직 2차적으로만 입법이 그러한 요소들을 지녔는가 여부의 판 단을 행하게 된다. 아무튼 입법의 필수요소들을 갖춘 그러한 입법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서 입법이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어떠한 원리에 의하여 움직여져야 하는지는 이상의 법치주의의 여러 원칙들 에 비추어 자명하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 경시사상, 법 편의주 의 내지 법수단관은 입법의 실체의 내용이나 절차의 도처에서 표출되 고 있다. 불합리 하거나 졸속의 입법이 예사로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 다. 입법은 신중하게 행하여져야 하고 제정된 법은 잘 지켜져야 한다.

졸속으로 만들어진 법이 잘 지켜지지도 않고 돌아서서 곧 개정작업에 들어가기도 하는 현실을 우리는 늘 보고 있다. 이것은 결코 법치주의 적이지 아니하다.

법치주의에 어울리는 입법의 절차적 실체적 원리 원칙들을 간략히 들어보자. 입법은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원칙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 위하여 입법상의 의사공개의 원칙 등 적법절차의 원리라든지 실체적으로 헌법합치성, 상하위법단계간 및 같은 단계의 법(조문)간의 일관성·통일성, 조문의 명확성 등의 원칙 등이 그러한 예로서 대단히 중요한 원칙이 된다. 입법은 정부정책의 실현수단인 경우가 많은 까닭에 정책 목적 및 그 실현수단에 비추어 본 합리성(rationality)을 지니는 일이 또한 중요하다. 이를 위하여 사전 적인 그리고 사후적인 점검이 필수적이다. 사후적인 점검의 문제가 입법재평가의 문제임은 물론이다. 입법재평가 feedback이 입법에 중요 함은 말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