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법적안정과 신뢰보호
2. 구별 방법론의 문제
(1) 실정법상 구별인가 강학상 구별인가
먼저,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의 구별이 실정법상 구별인가 강학상(학 문상) 구별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독일의 기본법 제80조 제1항에 의하면, “법률로써 연방정부, 연방장 관 또는 주정부에 ‘법규명령(Rechtsverordnung)’을 발포하는 권한을 부 여할 수 있다”고 규정함과 동시에, 동법 제84조 제2항에서는, “연방정 부는...‘일반행정규칙(allgemeine Verwaltungsvorschrift)’을 발할 수 있 다”는 규정을 두는 등, ‘법규명령’과 ‘일반행정규칙’이라는 용어를 명 확히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는 반면31), 우리헌법은 ‘법규명령’이나 ‘행 정규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국회법 등 실정법률에서 도 사정은 비슷하다.32)
한편 행정규제기본법은, “규제는 법률에 직접 규정하되, 규제의 세 부적인 내용은 -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또는 조례 규칙으로 정할 수 있다. 다만, 전문적 기술적 사항이나 경미한 사항으로서 업무의 성질상 위임이 불가피한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 임한 경우에는 告示 등 으로 정할 수 있다”(동법 제4조 제2항)고 하 여, 대통령 총리령 부령과 마찬가지로 告示 등 에서도 규제(법규
31) 기본법 제85조 제2항, 제86조 등에서도 “행정규칙(allgemeine Verwaltungsvorschriften)”
이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32) 다만, 舊국회법 제98조의 2(1997년 1월 13일 법5293호 개정)(대통령령 등의 송부) 에 의하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법률에서 위임한 사항이나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 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및 훈령 예규 고시 등 ‘행정 규칙’이 제정 또는 개정된 때에는 7일 이내에 이를 국회에 송부하여야 한다”고 규 정하였다. 이례적으로 “행정규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으나 입법적 착오라는 주 장이 제기되었고, 2000년 2월 16일 국회법 개정(법6266호)시, 이 용어는 바로 삭제 되었다.
사항)를 규정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告示’는 公示를 필 요로 하는 행정조치의 표현형식이다. 사무관리규정(대통령령)에 의하 면, 공문서의 종류로서 ‘공고문서’를 규정하면서, “고시 공고 등 행정 기관이 일정한 사항을 일반에게 알리기 위한 문서”라고 정의하고 있 다 (동 규정 제7조 3호).
특이한 점은, 이와 같이 헌법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실정법령이 ‘법 규명령’이나 ‘행정규칙’이라는 용어를 별도로 사용하고 있지 아니함에 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학자들이, 양자의 구별을 마치 실정법상의 구별인 것처럼, 행정권이 발하는 명령 중, 그 형식이 대통령령 총리 령 部令의 형식으로 되어있으면 법규명령이고, 고시 훈령 예규 등 형식으로 되어 있으면 행정규칙이라는 식으로 매우 쉽고 간단하게 양 자를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33)
그러나, 양자의 구별이 이처럼 쉽고 간단한 성질의 문제라면 처음부
터 “행정규칙 이론”의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컨대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의 구별은 강학(학문)상의 구별이며34), 후술하는 바와 같이 양자의 구별은 “상위법의 수권” 유무라는 ‘형식적 요건’35)에 의해 구별하는 것이 타당하다.
33) 그리고 이러한 전제 하에, 주지하는 바와 같이, 많은 학자들이, 이른바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과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판례도 마 찬가지이다. 즉, 대판 1990. 6. 9, 97누19915판결에서는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그 법 령의 내용이 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는 경우”라든가, 헌재 1992. 6. 26, 91 헌마25 결정에서도, “그 제정형식은 비록 법규명령이 아닌 고시, 훈령, 예규 등과 같은 행정규칙이더라도”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가 있다. 다만 실무가 중에도, 법규 명령의 “일반적인” 형식 내지 행정규칙의 “일반적” 형식이라는 진일보한 표현을 사 용하는 견해도 있다. 金東建, 대법원판례에 비추어 본 법규명령과 행정규칙, 고시계 98. 11, 42면 참조.
34) 同旨, 김철용, 행정규칙론의 과제, 고시계 98. 11, 63면 이하.
35) 전게 註 23) 참조. 이를 ‘내용적’ 요건 또는 ‘수권여부기준설’이라고 부르기도 한 다. 홍정선, 전게서, 198면, 235면. 그러나 ‘일반적 구속력’ 유무라는 내용적 요건과 구별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형식적 요건’이라고 命名한다.(후술 .4. 참조)
(2) “法規命令” 개념의 二元的 展開
주지하는 바와 같이 P. Laband, G. Yellinek, Anschütz 등 독일의 국 법학자들은 법률을 “실질적 의미의 법률”과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구분하고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규율하는 “실질적 의미의 법률”과
“법규(Rechtssatz)”를 동일시하였다.
그리고 법규 즉 실질적 법률은 의회의 규율에 해당하는 반면 법규 에 해당하지 않는 행정 내부적 규율영역은 행정권의 규율영역에 속한 다고 하는 법리가 이 속에 잠재해 있었다.36) 특히 Laband에 의하면 이원적 법률개념과 마찬가지로 명령개념도 “실질적 의미의 명령”과
“형식적 의미의 명령”이라는 이원적 구분이 가능하다고 한다.37) 그가 논하는 ‘형식적’ 내지 ‘실질적’ 의미라는 것은 서로 다른 별개의 기준 (Merkmal)에 입각한 것으로서, 전자는 의사표명의 ‘형식’에, 그리고 후 자는 의사표명의 ‘내용’을 표준으로 구별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에 의 하면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형식적 의미의 명령이라는 두 개념의 상 호관계는 서로 중복이 없는, 이른바 논리학상의 모순개념 관계에 속 한다. 실질적 의미의 법률과 실질적 의미의 명령이라는 개념 상호간 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이라는 두 개념의 상호관계는 어떠한 가? 이 두 개념은, 다수설에 의하면, 상기 ‘형식적 명령’을 ‘법규성’의 유무에 따라 중복 없이 二分한 개념으로서, 명령의 형식을 취하는 점에 서는 구별되지 않고 다만 법규성의 유무에 있어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법규명령 개념을 다시 형식적 내지 실질적 의미의 개념으 로 이원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일부 견해는 “아무런 단서 없이 법규명령이라고 할 때에는 그것은
36) 김유환, 법규명령과 행정규칙의 구별기준, 고시계 98. 11, 17면.
37) P. Laband, Das Staatsrecht des Deutschen Reiches, 5 Aufl. 2 Bd., 1911, S. 87.
‘형식적 의미의 법규명령’ 즉 ‘법령 등 공포에 관한 법률’에 열거되어 있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만을 의미해야한다”고 기술하고 있다.38)
이 견해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 보고, 아울러 告示 訓令 通牒을 행정규칙의 “형식”으로 보는 前提에서 출 발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는 상술한 바와 같이, 국내에서 비교적 폭넓게 수용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이러한 용어법의 시초는, 일본에 있어서 閣令 政令 省令을 형식상의 법규명령으로 보는 (또 告示 訓令 通達을 행정규칙으로 보는) 田中二郞 박사의 견해39)에서 비롯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通常的으로 법규명령이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의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여 이들을 법규명령의 ‘형식’으로 간주하는 것은 정 확한 학문적 태도가 아니다. 田中 박사의 견해가 정확한 학문적 자세 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지적되고 있다.40)
나아가 우리나라 일부 견해는 상기 형식적의미의 법규명령을, 다시
“진정한 행정규칙으로서의 법규명령”과 “부진정한 행정규칙으로서의 법규명령”으로 구분하고 있으나41), 특별히 실익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아니한다. 법규명령이란 개념 자체가 실정법상 개념이 아닐 뿐더러, 처음부터 특별한 형식을 필요로 하지 아니하는 강학상 개념으로 출발 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법규명령의 “형식” 및 행정규칙의 “형식”이란, 정확한 이론적 표현이 아니며, 단지 존재하는 것은 행정권이 발하는
“명령”의 형식일 뿐이다.42)
38) 김남진, 규범구체화행정규칙, 월간고시, 89. 11, 222면.
39) 田中二郞, 行政法講義案 上卷 第一分冊, 有斐閣, 1949, 139면 363면 등 참조. 또
“행정규칙의 고유의 형식”으로서, 訓令 通達 告示를 들고 있는 것으로, 園部敏, 行政機關の立法(初出 1949) 同, 行政法の諸問題, 有信堂, 1952, 91면 참조.
40) 大橋洋一, 行政規則の法理と實態, 有斐閣, 1989, 13면; 森田寬二, 法規と法律の支 配(一), 法學 40卷1號, 1976, 46-7면.
41) 김남진, ibid.
42) 拙稿, 전게논문, 433-7면 참조.
(3) 이른바, 법규명령의 형식의 행정규칙,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법규명령이나 행정규칙의 개념이 강학상 구별이며, 나아가 이들 개 념을 다시 형식적 개념과 실질적 개념으로 이원화 하는 방법에 문제 가 있음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그러나, 상기 나) 문제의 연장선 상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의외로 많은 학자들이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규칙” 내지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훈령 형식으로 되어 있는 재산제세조사사무처리규정이나 물 가안정에 관한 법률 제2조에 의한 최고가격의 고시 등과 같이, 국민 의 권리 의무에 유관한 사항이 훈령 고시 등에 규정된 경우(이른바
“행정규칙 형식의 법규명령”), 또 이와는 반대로 행정사무처리기준 등
을 정하고 있는 대통령령이나 부령 등(이른바 “법규명령 형식의 행정 규칙”)의 법적 성질 문제가 그것이다.
전자의 경우, 다수설43) 및 판례44)는 이를 “법규명령”으로 이해하지만 소수설은 “규범구체화행정규칙”으로 이해한다.45)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 인 법률지배의 원리에 비추어 볼 때,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될 수 없을 지 몰라도 동시에 그것은 무시할 수 없는 엄연한 현실로 존재한다.
특히 소수설에서는, 우리 대법원이 특정 행정규칙을 “규범구체화 행 정규칙”으로 인정하여 그 대외적 구속력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례로 받아들이면서, 이 경우 그것을 “구태여 법규명령으로 부를 필요가 없 다”고 함으로써, 결국 행정규칙도 대외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음을 시 사하고 있다.
43) 김동희, 전게서, 165 면: 박윤흔, 전게서, 248면 : 류지태, 행정법신론(제8판), 2004, 222면.
44) 대판 87. 9. 29, 86누484.
45) 김남진, ib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