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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EP Original Article 精 神 分 析 :第 14 卷 第 1 號 2 0 0 3

J Korean Psychoanalytic Society Vol. 14, No. 1, page 72~90, 2 0 0 3

적의(敵意)의 일상생활과 정치

- 현대 한국문화에서‘병리적 인성’의 탄생 -

이 만 우

*

Everyday Life of Malice and its Politics

- The Birth of “Pathological Personalities” in the Korean Modern Culture - Manwoo Lee, Ph.D.

*

序 論(감성분석의 의의)

임상실제와 문화연구 사이에 어떤 유추를 인정하든 그렇 지 않든 간에‘정신분석적 문화연구(psychoanalytic cult- ural studies)’의 위상에 대한 논쟁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응용 정신분석’의 영역에서 체계적인 자료 수집의 문제와 그 자료에 대한 해석을 지탱하는 특정한 원리 를 모색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실제로 이러한‘자리 매김’작업은 적절한 경험적 연구(사례분석)와 결합되어야 만 유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미 필자는 정신분석적 문화연구가 연구자 또는 수용자 의 경험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생활에 만연된 감 성의 특수한 실행을 파악하는 것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만우 2000). 그 감성의 실행은 고통, 상실, 죄책감, 선망 과 탐욕 및 질투, 경쟁심 등과 같은 감정형태들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또한 그러한 감정형태들이 승화적으로 감추어지 는 한, 정신분석적 문화연구는 일차적으로 감정형태들의 분 절에 대한 증상학이고, 심층적으로는 일상생활, 사회제도, 및 정치행위에서 드러난 감정형태들에 대한 해석학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감정형태들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방법 으로서 정신분석적 문화연구를 자리매김한다면, 결국 그것 은 각종의 문화형태에 부착된 감성의 실행 속에서 우리의 정 신과정과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무의식적 권력작용(권력관 계로 구조화된 의미작용)에 대한 탐구라고 주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권력형성의 문제는 거시적 사회구조의 수준에서 해명되기 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사회심리적 경험-감성이

실행되면서 고착되는-속에 자리잡은 권력의 표상들을 파 악함으로써 보다 잘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신분 석적 문화연구는 권력의 동태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정신분석적 문화연구는 일상생활에서 차별화된 의미화의 결과, 즉 구조화된 권력관계에서 자신의 분석대상 을 설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억압적‘지배(domination)’

를 공고히 하는‘대상관계적 일상권력’은 적의의 감성이 실 행되면서 행사된다. 이러한 적의의 감성은 원초적 방어기제 (분열과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선망, 탐욕, 그리고 질투와 같은 부정적 감정형태들로 드러나면서 지배권력을 작동시 킨다.

적의의 감성은 세가지 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참 을 수 없는 감정형태를 유발하는 무언가에 대한 지각과 인 지이고, 둘째는 강렬한 불쾌와 고통의 정신역동이며, 셋째는 강력한 공격행위이다. 적의는 우리의 일상생활 전반에 편재 하고 있으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지 는 않았다. 따라서 적의의 감성에 대한 분석은 사회과학에서 일반적으로 무시되면서 허구의 영역으로 추방된 상태이다.

적의의 발현은 특히 환경 또는 유전성의 문제로 돌려지곤 했다. 젊은 여자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엽기적인, 그리고 심 지어는 어린 소녀를 성추행하고 생매장하였다는 신문기사를 볼 때, 그런‘살인마’는 틀림없이‘나쁜’유전인자를 가지 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난폭하고 끔직한 범죄행위가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억압의 해방이 라는 이름 하에서 정당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 그 자체가 그 자신이 지속적으로 투쟁하는 적의의 근원이다. 파괴를 위한 인간 행위자의 감성은 적의 의 기원에 존재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장난에서 살인에 이 르기까지, 그리고 스포츠에서의 공격심리로부터 테러와 대 량학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취하는 파괴성이다.

*국회도서관 입법정보연구관, 보건복지 담당

Senior Researcher, Division of Health & Welfare, National As- sembly Library,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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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 우

73 그리고 그것은 문화로부터 단절된 정신병적 인성을 창출한

다. 따라서 적의가 어떻게, 왜, 언제 발생하는가를, 그리고 발생된 적의가 무엇과 연결되는가를 인지함으로써 우리는 적의가 유도한 정신병리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 도덕적 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개인과 문화의‘어두운’ 측면, 즉‘나쁨’을 생산하는 본질적인 인성의‘어두움’을 인식해 야 하는 것이다.

선망, 탐욕, 그리고 질투는 적의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들 이자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형태들이다. 그것들의 대립자는 감사, 관대함, 그리고 동정이다. 이러한 감정형태들, 각각은 서로를 고립시키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사랑과 증 오의 변증법’ 은 우리의 일상생활의 감성적 문법을 형성하는 데, 그것은 개인적 층위에서는‘인성’ 의 짜임새를, 그리고 사 회적 층위에서는‘문화’ 의 짜임새를 구성한다.

선망과 감사, 탐욕과 관대함, 질투와 동정 등은 무의식적 권력작용에 의해, 우리 감정생활의 기본적‘힘’으로 등장한 다. 물리세계의 양과 음의 힘이 전자를 정의하듯이, 사랑과 증오의 상대적 힘도 역시 인성과 문화의 성격을 정의한다.

또한 원자의 상이한 조합이 분자, 즉 개인의 정체성을 보유 하는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를 정의하듯이, 상이한 인성들이 서로 모여 가족을 형성하고, 나아가 전체로서의 문화를 구성 한다.

아무도 양자와 전자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 의 존재를 공식화하고, 그 효과를 예견한다. 마찬가지로 인 간은 사랑과 증오를 가지고 타자들이 자신의 내부에서 느끼 는 것을 확실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한 것으로 부터 우리는 감성의 존재를 공식화하고 그 효과들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한 개인, 한 행위자, 그리고 주 체에 의해 다른 개인, 다른 행위자, 그리고 대상에 대해 느 껴진 적의의 효과, 즉 적의의 표출을 둘러싼 대상관계의 동 태성에 대한 탐구이다. 이 동태성은 우선 개인적 층위의 대 인관계적 선택/배제의 장에서 고찰된다. 그러나 주체 또는 대상, 그리고 선망자와 피선망자가 반드시 개인일 필요는 없다. (권력작용을 매개하는) 선망으로 표현된 적의는 사회 집단, 나아가 전체로서의 문화를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가 선망자일 때, 우리는 개인(피선망 자)을 향해 주요한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제도에 의해 표현되는‘제도화된 선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테러리즘의 경우 선망자는 개인이나 행 위자이고 피선망자는 문화나 문화의 일 측면인데, 테러리 즘이 보여주는 선망의 정치는 개인들, 사회제도, 문화형태, 또는 민족국가 사이의 관계를 통해 개인적 적의와 그 표현을

효과적으로 가장한다.

나아가 필자의 작업은 대상관계의 동태성 분석이 가지는 실천적 의의를 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이비 진단은 피선 망자, 즉 문화 또는 공급의 근원이 사라진다면, 적의가 사 라질 것이라는 희망에서 증오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또 한 그러한 해결은 적의를 줄이려는 낭만적 희망으로 욕망 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조야한 평등주의와 사회 적 평준화로 대표되는‘포퓰리즘’의 실험은 선망과 탐욕을 제거하려는 이러한 해소방식의 현재적 표현이다. 그러한 방 식이 성공하려면, 인간의 지각과 통각작용, 그리고 자유의 지와 상상력을 배제함으로써 가능하다. 우리의 희망은 적의 를 제거하거나, 또는 무시하려고 함으로써 더 엄청난 폭력 을 일상생활에 부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생생활을 지 탱하는‘긍정적 요소들’을 강화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전의 방식과는 다른 이러한 적의의 해소방식은 사회관계의 실재 적인 매트릭스인 권력과 그 작용에 대한 이론적 정교화를 위 한 계기를 제공한다.

본고에서 필자는 개인과 문화에 대한 적의의 영향을 분석 하기 위해, 먼저‘사악한 개인’이 문화형태들에 부여하는 투사물과 그로 인해 야기된 병리적 증상을 추적·진단하고, 다음으로 문화형태들이 개인들에게 가하는 손상을 논의한 후, 양자의 결합으로서 독특한 인성유형을 개념화할 것이 다. 그리고 결론에서 개인과 문화에 대한 정신치료적 의미 로서 적의의 해소문제를 거론하고자 한다.

1. 집단감정 또는 집단행위:문화형태의 심리적 기초

적의는‘남근(Phallus)’이라는 욕망의 대상원인에 의해 이끌린 심리적 욕동의 형태로 시작되고, 이 욕동은 곧바로 부모-아이, 그리고 형제/자매의 일차적 대상관계에 기초하 는 대인관계적 일상생활로 확대·전개된다. 그리고 적의의 정치는 적의의 부정적 감정형태들인 선망과 탐욕 및 질투 가 개인적 일상사로부터 사회관계와 문화과정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러한 충동이나 개인의 일상사가 국가정책 과 관습 및 문화형태에 결합해가는 다양한 방식이 관심의 초점이다. 따라서 필자는 행위자들이 의례, 관습, 법률, 그리 고 제도화된 문화형태들 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공정책을 통 해 자신들의 적의를 가장하고 숨기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서 거론할 것이다. 선망자에게 그 방식은 결과에 대한 책임 을 회피하면서, 선망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절호의 기회이다.

또한 피선망자에게 그 방식은‘사악한 의지’가 제도나 문화 그 자체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된다.

제도화된 선망은 집합적 사회집단들, 정치정당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조직체에 의한 손상, 기만, 보복, 그리고 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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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표현이다. 손상은 직접적으로는 이러한 제도의 표상들 (문화형태)을 통해서, 또는 간접적으로는 그 표상들의 의미 작용을 통해서 일어난다. 이것은 제도와 그 표상 자체가 사 악하고, 또는 그것에 의해 영구화된 모든 손상이 선망과 관 련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개인들에게 제도적 행위 (제도와 이에 기초한 공적 행위)의 사악한 영향은 독단적이 기는 하나 방어적이며 또한 기능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 인들에 대한 이러한 제도적 행위의 영향이 매우 해롭기 때 문에, 선망은 아이를 훈육하고 학생들을 교육하며 정신병 리를 치료하는‘변형’ 과 엇물리는‘지배’ 의 권력작용과 결 합됨이 틀림없다.

Freud(1921)는‘군집본능(herd instinct)’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적의에서 집단적 적의로 전환되는 것에 대 해 매우 흥미로운 분석을 제공한다. 그는 군집본능 또는 집 단 유대감은 아이가 동생의 탄생으로 고통받고 유치원에 보 내져 사랑과 관심을 얻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 경쟁하게 될 때 발전한다고 한다. 그 아이는 경쟁자를 제거하고, 부모나 선생님을 자신의 주위에 가두어 두고 싶어한다. 강렬한 선 망과 질투가 일어난다. 그러나 아이는 새로운 형제/자매나 다른 아이도 또한 사랑받으며, 만약 타자를 제거하면 자신 의 이해가 손상받을 것을 알고 있다. 대신에 아이는 다른 소년-소녀들과 동일시하고, 그들도 또한 그 아이와 동일시 한다. 모든 사람은 다소간 은연중에 집단적인 페어플레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취급을 보장)를 보장받기 위해 그 들의 개인적 주장을 포기한다. 그 때 원한에 사무쳐 지르는 소리,“공평하지 않다” 는 더 이상 개인적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편애는 있을 수 없다” 라는 규칙에 대한 또 다 른 위반을 지시한다.

개인적 원한이 수몰되어 있는 집단감정 또는 대중감정은 유치원에서 청소년 준거집단으로, 나아가 직업사회, 그리고 정치정당에 이르는 수없이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한다. 가 부장제적이고 권위적인 사회구조의 일 구성원으로서 우리 는 어떤 행위자가 기성 권력에 접근하려고 노력할 때, 전체 로서의 집단이 느끼고 표현하는 긴장과 적의를 쉽게 발견한 다.‘공정함’과‘정당함’에 대한 무언의 합의를 둘러싸고 너무나‘많은 것들’ 이 존재한다. 우리는 확실히 개인적으로 비탄의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는 하나, 타자를 비난하고 추 방하고자 하는 집단적 결정에 종종 참여한다. 프로이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사회에서 집단정신(Gemeingeist, esprit de corps, group spirit)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원래 선망으로 부터 기원한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 누구도 자기

혼자 앞서 나가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은 동일한 존재 가 되어야 하고 동일하게 소유해야 한다. 사회정의는 우리가 많은 것을 거부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그것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도록 하거나, 또는 그와 같은 것 을 요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평 등을 향한 요구가 사회적 양심과 의무감의 뿌리이다 (Freud 1921).

집단행위는 이미 구조화되어 그것이 부정적 감정형태들 을 가장하고 또한 행동화하도록 허락하기 때문에 대중적이 다. 때때로 집단구성원들에게 유용하게도 집단행위는 적의 를 구성원들이 긍정적으로 연결된 상호 유대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선망, 탐욕, 그리고 질투에 의해 유발된 부끄러움 과 죄책감은 부인될 수도 있다. 반면에 행위자들은‘공공 선’이라는 자기를 정당화하는 동일시에 빠진다. 동일한 자 극이 집단 이기주의, 국가적 민족주의, 파시즘, 종교적 근본 주의, 포퓰리즘,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이데올로기 권력에 기여한다.

그러나 집단은 개인적 이해의 단순한 융합이 아니다. 집단 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태만한 구성원 으로 하여금 어떤 행위를 인정하게 하고 다른 행위를 부인하 게 하는 능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20세기 첫 반세기 에 독일에서 태어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에 대해 심각한 적 의를 느끼지 않았으나, 그 이후 나찌 국가의 시민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그들은 유대인들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집단이 집단행위의 표면을 이루고 있는 적의를 확대한 셈이다.

여기에 개인에서 집단으로, 그리고 다시 거꾸로 흐르는 감

정의 흐름이 존재한다. 특히 후자의 상황에서 집단적 투사

는 행위자들이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게 강제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다. 그렇지만 지도자로 추앙된 자

의 경우, 역의 감정흐름은 처음에 그들이 집단에 투사했던

적의를 보충하고 확대한다. 이것은 지도력이 가지는 특성

이자, 때때로 지도자에게 개인적 적의를 수행할 충분한 무

대와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다[Freud는 단순한“군집동

물(herd animal)”과는 달리, 인간은“수장(chief)의 인도에

의해 무리짓게 되는 개인적 동물” 이라고 결론짓는다(Freud

1921)]. Schoeck(1987)는 군집본능과 지도력의 원리에

대한 Freud의 이론이 Adolf Hitler 치하의 나찌 독일에 대

한 정확한 형상을 폭로한다고 지적한다. 부정행위로 물들

어 있는 제도의 내부구조와 얼굴없는 통치, 그리고 침투할

수 없는 집단과정의 이면에 항상 개인적 실천-즉 강력한 의

지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과장과 증오에 가득찬 인성들[여

기서 개인과 인성 간의 중요한 구분이 존재한다. 개인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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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 우

75 자그대로 정신육체적(psychosomatic) 인간존재를 의미하

고, 인성은 문화과정 속에 자리매김된 사회화된 개인을 말 한다.]-이 있다는 것이다.

2. 병리적 투사와‘조증적’관리자

정교한 은닉과 혼란 때문에 종종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특 수한 사례를 통해 사회생활과 제도적 상황의 모든 영역에 대한 개인의 영향을 추적하는 것은 가능하다. 정치는 큰 사 람이 되려는 작은 사람을 분석하는데 훌륭한 출발점을 제 공한다. 예를 들어, Reinhold Hensch는 유대인과 집시, 그리 고 또 다른“나찌 국가의 적들”의 근절을 책임지는 나찌 친 위대(SS)의 수석 공보담당관이었다[Hensch는 유대인‘토 벌대’ 를 지휘하면서 온갖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잔인하고 사악한‘괴물(das Ungeheuer)’ 로 알려진 피에 굶주린 인 물이었다. 그는 미군에 의해 잡히기 전에 자살하였다]. 전쟁 전에 그는 프랑크푸르트 신문의 저널리스트였고, 많은 유대 인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공산당과 나찌당 모두의 당원이었다. 그의 동료는 그를“특별히 총명하지 않 은 사람”(Drucker 1978)으로 묘사하고 있다. Hensch는 신문 편집자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권력에 접근하기 시작 했다. 그 당시 그는 나찌의 정책에 놀랐음에도 불구하고, 다 른 선택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특별 히 총명하지도 않고, 두드러진 배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는 자기보다 잘나가는 유대인 동료들 을 시기하고 부러워하였다. 그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면서, Hensch는 자신의 삶의 전망이 어두울 것이라고 느꼈기 때 문에, 돈과 권력을 가진 그‘누군가’를 찾아야 했다.

나찌가 처음으로 통치하기 시작할 때, 그것이(돈과 권력을 원했던 것이 ; 인용자) 내가 4 ~ 5년 전에 나찌와 결합한 이유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별볼일 없는 권리 를 누릴 수 있는 파티 회원권을 가지고 있지만, 앞으 로 나는 ‘ 누군가 ’ 가 될 것이다! 명석한 두뇌를 가진 좋 은 혈통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 세련되어 있기 때문에 매우 유연하고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 지금이 나의 것을 얻을 때이다. 나의 목소리를 세우고자 한다.

너는 지금 나의 말을 들어야 한다(Drucker 1978).

Hensch의 견해는 전 세계를 전쟁상태로 몰고 간, 그의 지 도자인 Hitler와 그의 적인 Stalin의 견해와 다르지 않다.

Hensch가 갈망했던 바는 권력에 의해 동기화된 선망 및 탐 욕이다. 개인들은 중단되지 않는, 또는 잠재적인 역사적 힘 들을 결코 표상할 수 없으나, 그 힘은 종종“가장 조야한 형 태의 개인적인 편견에 의해서, 그리고 개인들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서”(Johnson 1983:376) 인도되곤 한다. 舊 소련의 Stalin은 협소하고 냉혹하게 탐욕적이었다. 크리미아 (Crimea) 반도의 유대인을‘정화’ 하는데 있어서, 그는 그 곳을 퇴역군인의 성적 쾌락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퇴역 군인을 위로하기 위하여, 크리미아에는 일부다처제와 여성 을 성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또한 Stalin 은 강탈자라기 보다는 권력과 영토, 그리고 보복을 위해 탐 욕적이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탐욕스러운 학살쇼를 안무 하기 위해서 국가의 각종 장치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적의 를 이전의 동료와 소위 동지들에게 돌렸다.

이러한 독재자들은 신문과 미디어를 완전히 통제함으로써 정치적 목조르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그들 은 Hensch와 같은 저널리스트의 조력을 받았다. 일례로 스 탈린은 봉건 짜르 시대부터 행해져 온 유습인 익명으로 거 부하는 공적인 제재관습을 활용하였다[익명으로 구성된 담 론은 신문과 미디어를 수단으로 제도화된 선망을 묘사한다.

그러한 담론은 주로 타자의 가치절하와 보복을 위해 사용되 었다. 또한 그것은 담론의 형성주체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Branson 1986)].

그것은 누군가가 독을 담은 편지를 신문사에 또는 또 다른 기관이나 조직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인데, 종종 세밀한 검색 없이 행해졌다. 그러나 스탈린 시대에 그와 그 주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적대하는 서명되지 않은 편지를 수단으로 행 해진 중상모략은 곧바로 그 발신주체를 시베리아(Siberia) 로 유배보내게 하였으며, 테러에 의한 통제의 중요한 수단 이 되었다. 아무도‘친근한 이웃’ 의 눈으로부터 안전하지 않 았다(Resnick & Wolff 1995).

이렇게 볼 때 적의와 선망의 두려움은 도덕성, 윤리, 법, 그리고 정의의 원리와 그 실천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 나친 도덕적 열정은 행복을 제거하고, 사람들을 바보스럽고 우둔하게 똑같은 수준으로 전락시켜 불행을 부르는‘가장무 도회’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열망의 효과는 우리 사회에 만 연된 도덕적 타락을 막고자 개인적으로 정화캠페인을 주도 한, 매우 보복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중년의 전도사(M氏)를 통해서도 추적될 수 있다.

M氏는 혼돈된 아동기를 보냈으며 사춘기에는 자살

까지 생각하게 한 수음에 강박되어 있었다. 1987 ~ 88년

민주화 운동 당시부터 그는 YMCA의 한 구성원이었으

며, 최근에는 도색잡지와 그림, 그리고 포르노그라피의

위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몸담고 있는 조직의 위원

회와 각종 시민단체에서 개진하였다(M氏는 열 살 때 어

머니의 죽음으로 항상 우울하고 마음이 황폐화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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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이로 인해 자신의 삶을 모두 어머니에 대한 기 억에 바쳤다. 성인으로서 그는 성개방과 성애주의가 수 음, 간음, 낙태, 그리고 성병을 통해 도덕적, 육체적, 나 아가 사회적 타락으로 젊은이를 이끈다고 믿었다. 덧 붙여, 그는 결혼상담과 여성잡지, 성애 팜플렛, 그리고 성애적 그림 모두를 “ 젊음을 훔치고, 은근히 젊음의 생 명성을 공격하는 도덕적 욕심 ” 으로 간주했다). 더구나 그는 스파이를 동원하고, 함정을 파서 도색잡지와 포르 노 비디오를 유통시키는 사람을 찾아내고, 심지어는 뇌 물을 수단으로 하여 그들을 추적·색출하고자 하였다.

제도적인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를 반대하였음 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수적인 단체나 개인, 특히 성개 방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고 믿는 일부 사업가들 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그는 몇 년 전에 미국의 성인 잡지인「펜트 하우스(Penthouse)」의 한국상륙을 저지 하기 위해서 정부, 시민단체, 그리고 일반 가정에 많은 공문과 권고문을 보내기도 하였다. 정력적인 활동에 힘 입어 그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각종의 보수적 시 민단체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하였다. 이에 고무되어 M 氏와 그의‘복음집단’은 자신들의 하부 조직을 동원하 여, 수많은 학교와 교회에 그들의 입장을 선전하고, 성 인잡지를 출판하는 출판사나 비디오를 제작하는 사람 들과 그들의‘음성 작업실’에 테러를 가하는데 이르 렀다.

M氏의 행동은 서양의 중세에 벌어졌던 현대판‘마녀사 냥’의 출현이다. 사상과 행동으로 무장한 그는 타자를 약탈 할 의도가 없었는 지는 모르지만, 자기와 타자 모두를 파괴 하는 일종의‘종교재판관’이었다. 그는 우리 문화에 만연 된 히스테리를 내면화하고, 좌절된 욕망과 선망의 고통을 통하여 그 히스테리를 확대하여, 그 전체를‘몸정치(Body Politic)’ 속에 재투입하였다. 이에 맞물려, 경찰은 외연적으 로‘근절의 지팡이’ 가 되어가는 반면, 법은 성적 남용에 대 해 의심받을 필요가 없는 자율적 행위자들의 행복을 간과 하는 방향으로 정립되어 가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정치문화에서도 생경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정치정당과 정치지도자들은 그들의 개인적 편견과 도 착적 야심을‘국민의 안정과 이익’이라는 표제 하에‘동일 한 목적(소위 대권장악)’ 을 향해 투사시킨다. 이러한 투사는 시선 속에 잡혀진 것이 무엇이든 간에 또는 누구이든 간에, 그것을 과장하고 폄하하며 그리고 궁극적으로 파괴하는 선 망의 생산물이다. 필자는 단순히 어떤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권력의 남용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사적

인 의도와 공적인 지각의 영향 하에서, 국가권력이 적극적 으로 개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것과는 별도로, 정상적인 시민 들에게 무질서에 가까운 상태, 심지어는‘조증 상태(manic state)’ 를 주입하는 적의의‘괴물’ 로 변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문제는 의식적인 의도에 의해 전개되는 고정화된 권력체계가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대인관계에서 작 용하는 권력인 것이다.

제도화된 국가의 기관들이 극단적인 제도적 폭력을 행사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나, 우리는 일상적인 국 가의 활동에서 선망과 탐욕의 극한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 더 멀리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한 국가의 활동을 개 인적 이익에 관련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부와 번영으로 시 작하는 국가의 특수한 목적에 개인들이 미치는 영향을 추적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잡담을 즐겨 실는 그럴듯한 시사잡지와 라디오, 또는 TV 는 특수한 욕망을 자극하여 유발하고, 특수한 인성을 부풀 리는데 엄청난 노력을 한다. 보통 금전욕을 부추기는 것은 광고와 연관되어 있으나, 때로는‘복권 추첨’ 이 선망과 탐 욕의‘정당한’ 근거를 만드는 것처럼 직접적이기도 하다. 대 중 광고의 경우, 그것은 새로운 욕망을 창조하고 예전의 욕 망을 변화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강력한 교육적인‘힘’ 을 가 지고 있다. 사실상,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문제시되는‘명품 열풍’ 의 문제는 그 동안 국가정책이 조장해 온 소비양태가 끝없는 선망의‘가르침’ 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보석상들이“다이아몬드는 영원 하다!”[이 슬로건은 1948년에 우연히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증가하는 세계적 다이아몬드 생산증 가에 직면하여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유지하고, 산업용 다 이아몬드와 큐빅 지르코니아(cubic zirconia)와 같은 인공 물의 출현을 가능케 하였다고 한다(Epstein 1992)]라는 슬로건 하에서 다이아몬드를 구입하려는 경제적 계층 모두 를 설득하는데 성공한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사실상 보 석은 갈라지고 벗겨지며 변색되고 그리고 매우 쉽게 가치 를 상실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슬로건은 보석계 뿐만 아니라 사회 일반에서도 엄청한 붐을 일으켰다.‘변하 지 않는 것’에 대한 선망과 탐욕이 곧바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얼빠짐과 허영은 확실히 다이아몬드 교환에 국한되는 것

은 아니다. 흔히 브로커들은 두려움과 탐욕이 주식시장을 지

배한다고 주장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투자은행 중의 하나

인 골드맨 삭스(Goldman Sachs)의 모토는“장기간의 탐

욕은 단기간의 탐욕과는 다르다” [여기에 장기적 성장을 희

생하여 단기적 이익을 강조하는 합병정책에 대한 사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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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 우

77 에서의 불안이 존재한다. 골드맨 삭스는 장기적 부 창조를

희생하여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떠돌이’ 정책을 반대하였 던 것이다(Elzey 1986)]라는 것인데, 이것은 지나친 재정 적 욕망을 부인하기도 하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주식 시장은 그 자체가 도박꾼에게 혼란을 가져다 주는 조증적 관 리자로 채워진‘활강용 썰매’ 와 같이 유동한다. 조증적 관리 자가 비록 몰락할지라도 그에 따른 모든 영향 자체가 모두 주식시장의 모습을 틀지우는 것은 분명하다. 주식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의 톱니바퀴에 기름을 치는 작업에 집중하고 최고 속도를 내도록 조장한다. 전체 체계, 즉 바퀴의 톱니에 대한 은연 중의 경멸은 인식되지 않은 채로 남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한국의 주식시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주 식투자에 온 정열을 바쳐, 자신의 인생을 탕진하였기 때문 에 그 휴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에 주목해 보자.

B氏는 엄청난 현금을 유통시켜 주식시장에 기름을 치려 고 했던 주식전문가였다. 지칠줄 모르는 탐욕 때문에, 별명 이‘뚱돼지’ 인 그는 조금의 유산(약 3억 정도)을 잘 활용하 여 합병거래에 사용하기도 하고 남용하기도 하였다. B氏는 자신의 재정적 성공에 매우 흡족하고 자랑스러워 했다. 그 는 자신의 부와 인맥, 심지어는 거만한 태도까지도 자랑의 소재로 삼았다. 심지어 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 정의 학생들에게,“탐욕은 좋은 것이다. 탐욕은 건강한 것이 고 가질 수록 기쁜 것이다.” 라고 단언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허영심이 지탱하는 금전욕은 B氏를 타락으로 몰고 갔다. 그는 주식시장에서 내부정보를 다루고 조작한다 고 고소당해 유죄선고를 받은 것이다. 결말이 화려하게도 그는 부과된 벌금을 내고 풀려나왔으나, 은행들의 불법적인 관행을 노출시킴으로써 주식시장의 일시적인 몰락을 초래하 였다.

3. 국가정책의 제도화와 타자성 상실

내부거래를 통해 주식시장을 강탈하고자 했던 B氏와 같 이, 많은 다른 사업가와 관료들은 공적 자원을 강탈하고 자 신들을 살찌게 하는‘손’을 물어뜯는 소망을 공유하기 마련 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아무리 법조계가 폐쇄 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나름대로의‘기능성’을 추구하게 되 어 있다. 따라서 사회가 다원화되어감에 따라, 법률서비스 의 기능은 확대되기 마련이다. 법조계는 판사와 검사 및 변 호사들에 더 많은 일을 제공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더 많은 법률서비스에 대한 필요를 확인시켜 주기 위해 법을 정리 정돈한다. 그러나 만약 변호사들이 의뢰인이 별로 없어서 직업적인 곤경에 빠진다면, 그들은 소송을 하는 새로운 방 법을 꿈꾸는 데 자신들의 시간과 정력을 낭비할 것이다. 예

를 들어 어떤 이익단체가‘상상적 변호하기’를 요청했을 때, 영리한 변호사들은 그 이익단체의 구성원들이‘더 많은 이 권’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바를 간파하고 자신의 능력을 광 고할 것이 틀림없다.

결국 법 체계는 시민의 보호자 대신에 모든 것을 삼키는‘육 식동물’과 같이 행동할 수 있다. 소송의 범람은 어떤 사례 는 결코 결론지어질 수 없이 복잡해져서 기나긴 지연만을 보증하게 된다. 법 체계가 건전한 시민들에게는 너무 비용 이 많이 들고 너무 고통스러우며 너무 파괴적이고 너무 비효 율적이다. 우리의 법 체계 하에서 변호사는 사건의 마지막 해결을 위해 높은 비율의 비용을 받고, 성공하지 못한 소송 관계자는 사건에 대한‘방어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거기에 위험이 잠복한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소송 사례는 재분배적이고 보복적인 정의를 포함한다. 재분배는 가진 자에서 갖지 못한 자로, 보다 정확하게는 더 원하는 자에게로 지향되는 것이다. 의뢰인이나 일반시민의 시각에 서 보면,‘살찌는 자’는 과도한 부모처럼 끝없는 자원을 가 진 큰 법률회사와 보험회사이다. 소송에서 나타나는 주장 들의 상해적 속성은 선망적 보복을 드러낸다. 불공평하게 대우받기 때문에, 또는 형제적인 동료와 대조하여 법의 집 행자의 경우만큼 성공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법은 누구에게 나 증오를 가지고 분노를 터뜨리도록 허락한다. 그러므로 놀랍지도 않지만, 세간에는“억울하면 판검사가 되라!”는 부모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이다.

탐욕은 별도로 하더라도, 법정소송에서 합법적인 채널을 통해 표현된 선망의 적의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 니다. 선망의 적의는 합리적인 책임성의 한계를 뛰어넘어 개 인의 사적-직업적 생명을 극도로 파멸시킨다. 예를 들면, 정 신분석가는 정신치료의 유효성 여부와 처방된 약 때문에 소 송당할 수 있다[정신분석가에게 불만을 품은 환자와 그 가 족은 정신치료의 효과를 믿지 않고 약물치료가 일반적인 관 습이라는 믿음 하에서, 분석치료를 수행하는 정신분석가를 공격한다. 어떤 경우, 분석치료를 선호하는 정신과 의사는 환자나 그 가족이 약물의 사용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물이 해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으로도 공격받는다.

원한에 찬 희생양은 별도로 하더라도, 이러한 적의의 소송

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위험을 피하고 부인하려

는 시도이다. 삶의 능동적인 추구가 위험스럽기 때문에, 그

러한 시도는 생명성 또는 삶 그 자체에 대한 선망적 공격

으로 보여진다]. 개인이 성공적인 방어를 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법의 적용이 미치는 이차적인 사회적 효과는 상해적

이고 부정적이다. 정신분석가를 포함한 정신과 의사에 적대

하는 근거없는 주장은 보험프레미엄의 증가, 불필요한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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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敵意)의 일상생활과 정치

78

테스트, 높은 의료비,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부분적 퇴거를 촉진한다. 그러므로 의료서비스의 질도 떨어지고, 전형적인 선망의 부정적 효과가 발생한다. 더욱더 나쁜 것은 이러한 행위가 모든 사람을 위한 삶의 질을 하락시킨다는 것이다.

또 다른 법정소송의 예는 경제적, 그리고 사회적 차이를 비교적 평준화하려고 하는 조세정책과 그 구현체인 세제(稅 制)에서 확인된다. 우리 나라 조세정책의 기본성격은‘자본 축적형 세제’ 라고 할 수 있다. 저축 및 투자촉진 그리고 수 출촉진을 위해 한국의 세제는 거의 매년 개편되어 왔으며, 제 3 공화국 이후 일관된 조세정책은 소비과세 중심체제를 가진‘몰수 세금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몰수 세율과 함께 그것을 지탱하는 법률은 개인성을 희생 하고 집단성을 증진시켜, 개인적 차이를 문화적 동일성에 굴 복시킨다는 Freud의 군집본능에 대한 견해를 예증한다. 이 렇게 조세정책은 선망을 자극하는 수단과 함께 구상되어 집 행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인들은 납세신고에 대해서 공개적이지 못하고 상당히 비밀스러운 태도를 견지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미 국에서도 납세신고와 관련하여 비밀스러운 양상이 드러난 때가 있었다. 그러나 1923~1953년 사이에 Wisconsin 주 에서, 누군가가 동료 시민의 자세한 납세신고 목록을 조사 하였다. 그로부터 남이 지불하는 전체 세금을 알고 싶어하 는 선망자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법은 개정되었다(Schoeck 1987). 세금을 통한, 즉 납세목록의 공개를 통한 사회통제 의 방식이 변화된 것이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요청만 하면, 모든 거주민의 이름과 자산, 및 수입이 알려지도록 언제든 지 그 목록이 공개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시민들이 은행으로부터 더 많은 신용을 얻기 위하여, 그리고 자식들 을 더 좋은 집안으로 결혼시키기 위하여 자신들의 자산과 수입을 과장하여 부풀려 신고하였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부풀리고 비방자에게 선망을 부가함으로써 적의에 찬 잡담 을 하는 비방자를 공격하였다.

국가에 의한 개인적 부의 제한은 전비의 부담으로부터 재 산과 특권을 유지하고 이익을 제공하는데 이르는 다양한 목 적을 위해 수행된다. 이것은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세금 징수에 의해 수행되며, 그것으로 국민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러한 활동은 개인적 시민을 희생으로 국가와 국가기관을 확대하고, 사회적 부조화와 재정적 장애를 증진시킬 때 탐 욕과 선망을 드러낸다.

1996년 국회의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상속세에 대한 보 고를 살펴보면, 정부의 탐욕을 잘 보여준다. 그 자료에 의하 면, 최근 3년간 상속세의 비중이 전체 국세수입의 1.8%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경원이 국회 재경위 김정수

(당시 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상속세 징수현상(증여세 포함)에 따르면, 상속세는 93년 6천 6백 71억원, 94년도 9천 74억원, 95년 1조 2백 93억원으로 각각 전체 국세수 입의 1.7%, 1.9%, 1.8%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의 입 장은 상속세 과세 강화를 통해‘부의 세습’을 방지해야 한 다는 것이다[물론 내세우는 목적은 상속세법으로 가장 혜 택을 보는 계층이 상속재산 9~70억원의 계층으로 중산층 과 저소득층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상속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1996년 국회 재경위 국정감사 자료)]. 세금 은‘우리’ 돈이고,‘당신’ 돈이 아니며, 세금을 관리할 수 있 는 것은 오직‘우리’ 라는 것이다.

세제의 선망적 요소는 세금 징수자의 도덕적 정열과 정치 가/공무원의‘지적인’ 자세 속에 잠복되어 있다. 한편으로, 전 자(세금징수자의 도덕적 양심과 정열)는 많은 보통의 시민 들이 국가정보원보다 세무서를 더 무서운 존재로 간주하게 하는 처벌적인 권력을 휘두른다. 다른 한편, 정치가를 포함 한 대중적인 공무원들은 경제적 성장과 개인적 인센티브를 희생하여 부의 재분배와 사회공학적 기술에 강박되어 있다.

Schoeck(1987)에 의하면, 공정성 또는 평등주의라는 이

름으로 지나친 재정적 측정수단을 고안하고 수립하는 사람

들은 자신들의 부와 배경에 대해 지나친 불안과 죄책감을

표현한다. 이것은 하층의 사람에 대해 동정을 유발하는 유

용한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선망을 부여하는 경

향을 조장하기도 한다. 달성할 수 없는‘평등’ 의 이름으로,

입법자들은 이유가 어떠하든 간에-공공연히 합법적인 이

유로-경제적으로 성공한, 또는 국민 대다수보다 더 많이 혜

택받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불공평함’ 을

수단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준화에 대한 요구가 포

퓰리즘적 지식인 집단 안에서 기원하고, 일반적인 투표자

는 우리의 선망대상이 거의 우리와 동일하기 때문에, 실제

로 높은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을 좀처럼 느끼

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처벌적인 세제는 특히 정

책입안자가 우월자로 간주되는 상층계급을 공격한다는 변

명에 불과한데, 실제로는 하층계급의 실제적인 가난을 이용

함으로써 그들의 선망을 위로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또

한 이것은 타자들(덜 혜택받는 손아래 형제-자매들 또는

아이들)의 욕망과 증오를 과장함으로써, 동료와 경쟁자(사

회경제적으로 보다 풍부하게 혜택받을 수 있는 부모 또는

손위의 형제-자매들)를 은연 중에 공격하는 군집본능의 활

용을 예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특별히 선호하는 것은 있

을 수 없다(정책의 공정함)” 라는 정책방향의 제도화는 선

동자들로 하여금 도덕적 정당성에 빠지게 하고 적절한 부

끄러움과 죄책감을 회피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들의 부인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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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 우

79 탐욕과 제도화된 선망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더 심한 병리

적 요소를 남긴다.

이를 두고 경제학자, Mishan(1960)은 일찍이 진보적인 세제와 복지경제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나쁘게 느끼는 것 을 막는 것이라고 결론을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이 상적으로 물론 세금은 저소득 계층의 사람들을 위로하는데 필요한 담론과 그에 뒤따르는 모든 주장을 포괄해야 한다.

이러한 타자의 선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세금은 그만큼 무 거워진다.”

흥미롭게도 여러가지 연구는 저소득 계층이 부자들을 벌 하는 것보다 돈을 버는데 더 관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 주 고 있다(Argyle 1992, 1994).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의 입법자들은 상황에 관계없이 고세율이 정당하거나 공평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고세율이 정 당하고 공평하다고 믿는다면, 발생한 이익은 환상에 가까 울 것이다.

선망의 경제는 한 사람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상실이라는 제로섬 게임에 대한 설명이다. 그것은 비대칭적으로 잘리 어진 커다란 케익조각보다는 동등하게 잘린 조그마한 케익 조각을 먹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번영과 성장을 강 화하는 것보다는 어떤 공격에 의존한 정책을 기대하기 때문 에 결과는 황폐화될 뿐이다. 경제활동은 위축되고 혁신은 질식되어 버리며 그리고 정치는 억압적이 된다. 더구나“재 산은 도둑질을 부른다”라는 대인관계적 상황에서, 개인들 은 재능과 성실한 노동이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 고 암시장에 지향된 반(半)범죄적 행위로만 자신들의 이익 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일상생활의 문법을 깨닫게 된다.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정신분석가인 Money-Kyrle(1988) 는 시장경제 체제를 가진 나라들에서의 두려움과 기대에 분 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장을 위한 훌륭한 기회를 제공 함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 체제는 화폐공급에서의 주기적 인 동요와 무제한의 자본축적 경향으로 고통을 받는다. 이 러한 결점은 교정되지 않는다면,“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과 같은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을 방해한다. 지난 세기부터 그러 한 교정이 점진적인 세제개혁과 고용창출을 비롯한 경제활 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 다. 그런데 이러한 수단들이 부유층 사이에서 엄청난 불안 과 적의를 유발하였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은 장자상속권 과 같은 관습을 통해 훔쳐진 자신의 부 때문에 고통받는다.

그들은 빈곤한 대중을, 자신들의 몸으로부터 그리고“자신 들의 영양물을 담고 있는 어머니인 은행으로부터 돈(생명 의 우유)을 뜯어내려고 협박하는 실제의 또는 상상적인 형 제-자매들(아이들)” 과 등치시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필요

한 변화를 치명적인 희생으로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한다.

기껏해야 부자들은 모멸감을 가지고, 즉 이익을 주기보다 는 상해하는 자비의 형태로 재분배의 수단을 인정할 뿐이 다.“물론 세제, 또는 인플레이션은 그것들이 지나치면 자 유주의 시장경제를 상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 기에, 무의식적 기원을 가지는 그것들에 대한 과장된 두려 움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효과적인 수단의 발견을 지연시키 는 주요 요소이다. ” (Money-Kyrle 1988)

경제순환의 희생물은 상이한 그림을 그린다. 가난한 사람 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 구하고 자신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그들의 아이들을 굶겨 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선의를 기만하는‘사악한 부모’ 에 대한 이러한 견 해는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는 중간계급 또는 상류계급의 지 식인들에게서 유래한다. 예를 들어 Marx는 훌륭한 직업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상류계급의 프러시아 가족과 결혼하고, 전 생애 동안 부유한 친척들과 친구들에 의해 도 움을 받았다. 자본주의에 대한 정교한 그의 비판은 직접적 인 관찰과는 약간 거리가 멀다고 할 수도 있는 지칠줄 모 르는 증오를 포함한다. 노동자들의 환상이나 고통을 투사한 소외와 착취에 대한 그의 설명은 그 당시의 사회적-역사 적 맥락과 어우러져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Hinshelwood 1983). 그의 이론이 억압받은 사람들에 의해, 또는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었을 때, 그의 진단과 처방- 자본주의의 몰락과 공산주의의 도래-은 부모의 좋은 재산, 즉 자본에 대한 공격을 지적으로 정당화시켰다.

Money-kyrle(1988)은 Marx가 공산주의적으로 통제 하고 파괴하려고 했던 사회적 부는 세가지 차별적 범주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한다. 그것들은 1) 필요물(음식, 옷, 주택) 2) 사치품들(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우리가 가지기 원하는 것) 3) 비양도적 상품들(미, 지능, 좋은 교육, 안정된 가정, 특징적 유전 등)이다. 모든 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비 양도적 상품의 속성과 소유물이 가장 욕망되고 선망되는 것 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소유하면 타자에 대해서 압도적인 우월감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세금은 우선 필요물에 부과되고, 다음에 사치품 에 부과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과방식 이상의 다른 이유 때 문에, 사람들은 드러나는 결점을 피하기 위하여 덜 분명한 항목인 비양도적 상품에 자신들의 증오를 지향한다. 더구나 인간은 우월성의 분명한 기호를 공격하기보다는 상품과 소 유물을 파괴함으로써 선망과 탐욕을 가진다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일례로 지위는 계급과 대조하여 부와 권력을 나타내는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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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敵意)의 일상생활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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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와 특권의 비양도적인 혼합물이다. 이러한 사회적 층화구 조(지위와 계급)는 서로를 보충하고, 새로운 부자들이 낮은 지위를 가지고, 또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적은 돈을 가진 다는 것은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처벌이 무 시와 모멸인 반면에, 지위의 보상은 타자의 명예와 감탄이 다. 예를 들어, 스타일있는 옷의 과시적 전시, 또는 국부적 인 호의를 벗어난 속물적인 발언은 지위의 차이를 사회복 지의 효과적인 무기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선 망의 공격은 우수한 화력(자기팽창과 타자폄하)에 의해 역 공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은 특권 계층과 그들을 본받고자 하는 계층 모두에게 유효한 것이다.

지위경쟁은 성난 선동가들이 여전히“한 쪽은 금을 얻고, 다른 한 쪽은 똥을 얻는다” 는 식의 불평을 터뜨림에도 불구 하고 계급갈등의 조야한 형태를 피한다. 불가피하게 부의 전 시는 스타일의 전시를 발전시킨다. 좋은 취향과 천부의 재능 은 지위를 부여하고, 간단히 활용되었을 때 권력과 같이 소 비자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따라서 소비자로 하여금‘캘 빈 클라인(Kalvin Klein) ’ 이나‘리바이스(Liveis)’ 와 같은 유명 브랜드가 창출한 비양도적 상품에 빠져들게 만든다.

환상은 상품을 위한 엄청난 요구와 그 상품들을 얻을 수 없 다는 것에 적응할 수 없음에 따라 더욱더 소비유형을 결정 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패션은‘상해 기쁨’ 임을 알 수 있다.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이 모멸감으로 고통 받을 때 성취감을 느낀다. 그 동안 캘빈 클라인은 비공식적 인 경우 편안하기는 하나 대부분 더러운 헌 옷이었다. 그것 은 지위추구의 최고 양식이 때로는 헛수고라는 것을 보여준 다. 따라서 브랜딩은 종종 유명세를 얻는 것에 불과하며, 선 망을 사회적 열등감으로 빗나가게 하는 것이다.

대중소비는 비양도적인 속성을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 게로 양도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영구화시킴으로써, 가치있는 상품을 소유할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부여한다.

또한 이러한 상품매매는 사회적 평준화 및 대중적 선망과 탐욕에 반대하는 강력한 방어의 가장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형태이다. 이렇게‘소비주의(consumerism) ’ 는 중요한 방 어일지는 모르나, 또한 그것은 비양도적 가치를 조롱할 때 공격적인 의도를 정화하는 기능을 한다. 심지어 복지수혜자 들은 빈민가에 살고 있지만 스타일있는 청바지를 얻을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바리케이트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소비는 특수한 경계 안에서 작동한다. 한 지역 에서 거부된 선망이 다른 지역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 이다. 즉 대중적 의사소통의 출현은 글자그대로‘서울 시민’

이, 이미 가진 것이 아니라 중요하게 느끼고 있는 가져야 하 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

도화된 방어가 이용가능하지 않을 때, 또는 그것이 적절한 방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분배되지 않은 자산은 개인적- 집단적‘먹이’로 남겨진다. 이것은 다층적인 전치와 관계 되는 바, 1) 개인에서 집단으로 2) 집단의 한 부분(특수한 사회계급의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3) 고지위 항목에 서 기본적 필요물로의 전치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동안 군중의 초기 분노는 주로‘빵의 이용가능성’에 관련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파리 의 폭동의 발생과 소멸은 빵 가격의 등락과 직접적으로 일 치하였다(Rud´ e 1986). 군중은 절대 봉건왕정의 특권을 공 격하는 특수한 부르주아지 구성원에 의해 조직화되고 활용 되었을 때 혁명적인 힘이 되었다[“이 시기 동안에, 혁명적 군중을 강제하는 일차적이고 가장 지속적인 동기는 값싸고 풍부한 음식공급에 대한 관심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이 등장한다.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이것이 대중적 혁명이 촉 진되는 기본적 자원이다… 심지어 이것은 군중과 부르주아 지의 동맹이익을 초월하고, 그것에 역행하는 군중에 의한 독립적 활동의 순간적인 몰락을 설명한다 … 그러나 주로 부 르주아지 지도자에 의해 인도된 정치사상의 영향이 없이는, 그러한 군중의 운동은 이상하게도 목적없고 황량한 결과만 을 낳았다.” (Rud´ e 1986)]. 이 경우 전치는 격노한 지식인 으로부터 배고픈 장인으로, 중간계급과 중상계급으로부터 하층의 질서로, 그리고 케잌으로부터 빵으로 향해 일어난다.

대학살로 결말지어진 선망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다시 역 으로 흘렀다.

역사학자, Eric Hobsbaum(1959)은 군중은 평등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히는 것도 아니고, 착취계급과 결합하기를 또 는 착취계급을 제거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좋은 궁전, 옷, 마차, 그리고 공장의 파괴가 자신들에게 도움 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반대로 상류계급의 지나친 행 동과 낭비는 오히려 군중운동을 위한 작업을 의미했다. 그 들이 원했던 것은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명백한 삶의 개 선이었다. 군중의 폭력적인 운동은 외부로부터 부여된 동 기와 지도력없이는 계속 진행될 수 없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적 대중혁명은 부와 권력으로 전치된

비양도적 상품에 대한 선망적 공격의 제도화이다. 혁명이 성

공하여 황홀한 동료의식이 지배하는 짦은 시기가 지나가면,

소유계급에 의해 인성화된 탐욕 그 자체가 등장하고‘특권

화된 부모’는 파괴된다. 고양되었다가 하락하고, 현실적인

손상이 일어나며 무너진 가치를 다시 복원시키는 어려움이

발생한다. 잘 알려진 상해와 중상모략의 순환 속에서, 예전

의 동지는 자신들의 희생양을 발견하기 위하여‘원인’을 배

신한 것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를 서로에게 강제한다[“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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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 우

81 이후에 일어나는‘마녀사냥’은 무의식의 역설적인 성격이

지니는 동기로부터 유래한다. 모함받아 몰락한 사람, 그리 고 실제로는 사실이 아니나 혁명의 배반자로 찍힌 사람들은 행정가(혁명의 관리자=선망자;인용자)가 혁명가들에게 투 사한 죄책감의 희생양이다.” (Money-Kyrle 1988:182)]

결국 마지막 형상은 전후 북한사회에서와 같이‘신성한’ 숙 청, 테러통치, 그리고 새로운 얼굴로 포장한 구세대의 전통 적 구조의 재정립으로 완결된다.

비단 이러한 선망적 공격은 제 3 세계의 대중혁명이라는 문화변동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지난 1980 년대 중 후반에‘참교육’을 모토로 하여 격렬하게 전개되어 지금까지 세력을 떨치고 있는‘전교조 운동’ 을 상기해 보자.

운동주체의 전략적인 목표는 전인교육이었으며, 전술적인 의도는 교육의 사적 부문을 제거함으로써, 입시교육 위주 의 엘리트 교육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교육의 기회와 내 용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한국 의 부와 특권에 대한 격렬한 비판적 주장들이 등장하고, 결 국 평등주의적 또는 포퓰리즘적 관점이 대세를 이루었다. 운 동주체들은 사적 엘리트 교육(출세주의적 입시위주 교육, 배 제적이고 획일적인 교복체계, 일방적 성교육, 쓸데없이 까 다로운 선발방식 등)을 반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적 학 습능력에 근거한 학생들의‘등급화(grading)’도 반대하였다.

어떤 경우 그들은 등급화의 지표로서 성적체계를 종종 무시 하곤 하였다.

그 효과는 부정적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학생과 교사, 모두는 교육자원의 결핍과 기준의 상실 때문에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가장 능력있는 학생이 다른 학생에 의해 항상 충 분히 도전받지 않는다면, 그/그녀는 더 정확하고 훌륭한 교 육을 받기 힘들 것이다. 즉 경쟁과 평가, 그리고 등급화의 중요성이 대두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운동주체들이 생각 했던 학생-교사의 대상관계가-한국사회의 문화적 맥락의 영향으로 인한-지배로 구조화된 권력관계만이 아니라, 치 료적‘변형’이 개입하는 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을 예증한다. 다시말해 교사는 평가와 등급화를 통해 학생 을 유능하고 경쟁적인 존재로 만드는 치료적‘변형’의 역 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국가정책의 효과가 설정 한 목적과 모순될 때는 언제나 선망은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자의 성장과 소유물을 보고 적 의를 느끼는 선망적 의도는 교육개혁을 풍부히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파괴한다.

4. 여성성 유기(遺棄)와 남근추구적 과장

국가정책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학습 및 교양과 같이 번

영을 반영하는 부, 또는 비양도적 상품의 속성에 대한 탐욕 적인 적의의 공격, 즉 정치적, 법적, 기업경영적, 교육적, 그 리고 임상사례에서 대상관계의 상호성(타자성)에 대한 제도 화된 공격을 확인했다. 이제 필자는 대상관계의 또 다른 측 면에 대한 동일한 공격, 즉 적의의 발생적 감정형태와 그것 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보려고 한다.

흔히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는 강박적으로 여성성 유기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타자 속에 적의의 선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선망의 정치적 착취와 관련하여, 권위 주의적 정부는 남근추구적 과장의 힘과 권력의 사용을 보여 준다. 그 정부는 자신의 남성다움이 모든 것을 보고 알며 그 리고 지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부장제적이고 남성성을 찬양하는 듯한 정부의 패로디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군사정권이 문민정부에 의해 대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 북한 정책의 변화과정을 살펴보면 여전히 이러한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패로디를 확인할 수 있다. 즉‘방망이와 사탕’ 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면서 그 실효성과 관계없이 대 북한정책이 입안되고 시행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의 발언내용[「현 정권 출범후 대통령의‘대북관련’발언의 변천과정], 통일외무위 원회 국감자료(1996. 9)]을 축으로 살펴보면,‘남북정상회 담 추진용의’ (제 14 대 대통령 취임사, 93. 2.25),‘북한 고 립불원’ (헬무트 콜 총리와 회담, 93. 3.2),‘남과 북은 평화 통일과 공동번영의 동반자’ (육사 49기 졸업식사, 93. 3.5) 등 의 회유책에서 핵문제와 잠수함 도발사건과 관련되어 응징 과 사과 요구라는 강경책으로 유동하고 있다.

북한은 <중앙통신>(96. 11.15)을 통해“미국이 남조선 정 부와 연계 아래 경수로 제공문제에 당치 않은 전제를 붙혀 그 이행을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 면서“우리는 경수로 제 공시한을‘차요시’ (간과)한 채 언제 중단될지고 모르는 중 유나 제공받으면서 핵동결을 무한정 계속할 수 없다” 고 위 협했다. 북한은“핵동력 개발이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전략 적인 의의를 가지는 중요한 부분이며, 여기서 시간은 사활 적 성격을 띤다” 면서“언제까지나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필 요를 느끼지 않는다” 고 말했다[「朝鮮日報」 , 1996년 11월 16일자]. 이에 대해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태도를 실제로 핵동결을 하겠다는 사전예고가 아니라, 전형적인 협박전술 (남근추구적 과장)이라고 치부하면서, 강력히 대응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즉 한-미-일 공조체제의 유지와 국방력 강 화(선망의 정치적 착취)를 통해 북한의 도발적 태도를 견제 하겠다는 것이다.

독재정권의‘독(獨)’ 은 제도적 힘, 크기, 주장, 야심, 용맹,

그리고 특권의 팽창과 관련된 남성성의 문화에서 지배의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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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敵意)의 일상생활과 정치

82

소들을 의미한다. 사업계에서도 우리는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바, 어떤 회사는‘시장의 왕’ 이 되고 그 밖의 다른 회 사는 그저‘시장의 불량배’의 위치에 만족해야 한다(한 회 사가 다른 회사들을 삼켜버리는 조증적인 합병의 냉혹한 과 정). 마찬가지로 많이 비대해지기는 하였지만 고래의 밥인 청어에 불과한 한국의 노동조합과 운동단체 및 정치적 대항 체에서,‘독’의 의미는 지나친 자만감에서의‘교만함’과‘전 능함’ , 그리고 자유주의적 목적을 전체주의적 정책과 실천 으로 변화시키는 거만한 권력의 행사이다.

동아시아 비교연구의 전문가인 인류학자, Ron Wilson (1992)은 컽으로는 열려져 있으나, 진기한 여성성 유기와 남성성을 찬양하는 문화를 가진 한국사회에 대해서 논문을 썼다[한국문화에 대한 그의 표면적인 기술은 매우 콧대가 높 은 사업가, 전투적인 노동자,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급진 주의자, 그리고 소란스러운 스포츠맨, 또는 맥주나 소주를 꿀 꺽꿀꺽 마시는 음주파티 등도 포함한다].

그의 심층적 분석에 의하면, 한국에서 남성은 마치 킹콩 처럼 강하고 여성은 연약하다고 한다. 이러한‘마초적 거만 함'은 사람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독립성과 권력의 정도에 대한 반사적인 불확실성을 숨긴다. 강박적 상태로 질주하던 미국의 초기 개척자들과는 달리, 한국의 근현대를 살고 있 는 사람들은 일제의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가, 그러한‘결 합’ 이 풀린 후에 다시 일상의 시민들은 공공부문의 서비스 를 주관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으로 돌려버리는 외적 방 어를 위해서 또 다른 나라,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다. 결국 조 야한 자기만족이라는 한국의 민족적 이미지는 관계를 지속 시키는 복잡한 그물망을 숨긴다. 신화로서 그것은 의존과 종 속에 대한 제도화된 부인을 예증하고, 다양한 의존과 종속 이 일어나는 선망적 원한을 표현하며 받아들이는데 기능한 다. 여기에 관련된 적의는 외부의 권력으로부터 민족적 대 리자로, 민족적 대리자로부터 기층 민중으로, 그리고 남성성 으로부터 여성성으로 전치되어 나타난다. 여성들은 그들 스 스로에 대해, 그리고 종종 독재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아버 지의 권력을 표상하는 정부부처에 의해 증오받기 때문에 가 장 나쁜 취급을 받는다. 이러한 적의는 여성에 대한 한국인 의 태도를 결정하는 의례와 일상생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여성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단순한 행동은 그들의 존재를 근 절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Wilson 1993).

이렇게 볼 때, 우리 문화의 위압적인 남성성은 여성의 기 능과 잠재성에 대한 조증적 공격의 변조물이다. 그러나 그것 은 또한 남성과 남성 사이의, 더 중요하게는 남성제도와 남 성 사이의 끊임없는 권력투쟁에서 칼과 방패로 기능한다. 이 제 남근추구적 경쟁-대체로 각종의 언론매체가 그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분명하다-의‘공적’ 전통이 유지·지속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은 남근추구적 경쟁에서 엄청난 열정이 자신의 경력 을 파멸시킨 자동차 디자이너(D氏)에 대한 이야기이다. 엄 청나게 많은 돈[Freud와 Marx는 각각 돈을 사회적 의미 작용을 감추는 것으로 간주했다. Marx에게 돈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의 소외와 노동자의 야만적인 착취 를 의미한다. Freud에게 돈은 상징적 등식(돈=배설물=음 경)으로 환원되고 가학피학증적 관계를 의미한다. 양자의 경 우, 돈에 대한 분석은 대상관계의 상호성이 파괴되는 것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호성의 파괴와 돈의 의미는 자본주의 적 사회관계와‘편집-분열증적 위치(paranoid-schizoid position)’사이의 상호작용에 기인한다(Wolfenstein 1993) 은 그것이 특히 불타는 남성성을 지탱할 때 분노를 형성시 킨다.

D氏는 한국 굴지의 H자동차 회사에서 자동차 디자 인에 관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만큼 아주 성공적인 자 동차 디자이너이다. 그는 젊었을 때 명문대를 나와, 세 계 제일의 자동차 디자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이탈리아에서 자동차 디자인 수업을 하기도 하였다.

지금 그는 한국에서 거의 최초로 자동차 디자인 회사 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기도 하다.

4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우 정력적으로 보였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예쁘고 젊은 아내는 그가 디자인 작업에 관여했다고 하는 펼친 날개 를 자랑하는 듯한 갈매기를 닮은 외제 스포츠카와 같이 그의 신속하고 화려한 삶의 양식을 보충하였다. 그가 H 자동차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을 때, K자동 차 회사의 간부가 그의 디자인 능력을 인정하여 파격적 인 조건으로 영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뿌리치고, 2년 안에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인 연구 센타를 설립하려고 하였다. 2000년까지 자기가 디자인 하여 판매될 첫 차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개인적 운 명의 변천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자동차 디자인 사업의 기적을 이루고자 하였다.

그러나 운세는 그의 편이 아니었다. 심각한 자동차

시장의 침체와 자동차 디자인에 관한 대기업의 기본

정책이 외국 자동차 디자인 스쿨로부터의 수입이라는

방향으로 선회함에 따라 거의 모든 사업계획은 심각

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행은 시작에

불과했다. 자신이 기획한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좋은

평가를 얻은 후, 그는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재정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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