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플라톤의

N/A
N/A
Protected

Academic year: 2022

Share "플라톤의"

Copied!
20
0
0

로드 중.... (전체 텍스트 보기)

전체 글

(1)

플라톤의 크라틸로스 Kratylos 해설

- 언어적 성찰을 중심으로

이재원 (덕성여대)

I. 연구의 필요성

언어학의 시원 내지는 근원으로서의 크라틸로스는 플라톤 전집에 수록되 어 있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이다.1) 그러나 플라톤 철학에 관해 결실 있는 다양 한 해석을 제공하고 있는 블라스토스 G. Vlastos (1991: 45이하)는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과 중기 대화편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판이하게 다름을 주목한 다. 다시 말해서 블라스토스가 초기 대화편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를 역사적 소 크라테스로 규정하고 중기 대화편에 나타나는 소크라테스를 플라톤 철학의 대변 자로 규정하고 있다면, 크라틸로스는 - 비록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이 되어 등장 하는 대화록이라고 할지라도 - 소크라테스에 관한 실존적 기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크라틸로스는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에 속하므로, 중기의 플라톤 저작들은 플라톤 자신의 고유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2) 플 라톤이 이런 식의 기법을 사용한 이유는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신의 기억 1) 본고를 위해 참고한 것은 “Platon. Phaidon․Das Gastmahl․Kratylos Bearbeitet von Dietrich Kruz. Griechischer Text von LÉON ROBIN und LOUIS MÉRIDIER. Deutsche Übersetzung von Friedrich Schleiermacher. Wissenschaftliche Buchgesellschaft:

Darmstadt.”(이하 Pl.으로 함)이다. 필자의 짧은 고대 희랍어 해독능력 때문에 많은 부분을 슐라이허마허(F. Schleiermacher)의 독역본(베를린에서 1824년 내지 1826년에 출간된 2판)에 기댔다. 이러한 독역본에서 또다시 크루쯔 D. Kruz에 의해서 현대어법에 맞게 개별적인 표 현들이나, 어순 그리고 구두법 등이 약간 보완된 것을 참조하였다.

2) 예를 들어 블라스토스는 플라톤 대화편을 초기 대화편, 중기 대화편 그리고 후기 대화편으로 3등분하고 초기 대화편을 또 다시 a와 b로 이등분한다. “그룹1-a: 초기의 논박적 대화: 변 명, 카르미데스, 크리톤, 에우티프론, 고르기아스, 소(小)히피아스, 이온, 라케 스, 국가 제1권. 그룹1-b: 과도기적 대화: 에우티데모스, 대(大)히피아스, 리시스,

메넥세노스, 메논. 그룹2: 중기의 대화: 크라틸로스, 파이돈, 잔치, 국가, 파이 드로스,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그룹3: 후기의 대화: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소피스테스, 정치가, 필레보스, 법률.” (1991: 46이하).

(2)

- 2 -

을 보존하기 위해서 대화편을 집필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로서의 대화편이 글 쓴 작가와 글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 긴장감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 것 이 아니겠는가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3) 그러나 본고의 목적은 크라틸로스

에 나타난 언어적 사유들의 궁극적인 출처가 누구에게 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본질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더 이상의 논의를 전 개하지 않겠다. 여하튼 이러한 플라톤의 저작들 중에서 딱히 크라틸로스를 선 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고대 문헌 중에서 언어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고, 이것 은 철학의 관점(더 정확히 말해서 인식론적 관점)이 아닌 언어학적 관점에 의해서도 분석될 수 있다.4)

2. 최근 언어학의 큰 관심사 중의 하나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화용론’ 개념의 이전사적 기록이 축적되어 있다.

II. 크라틸로스의 제목과 부제에 관하여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으로서 플라톤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크라틸로스라는 제목은 인명에서 유래한다. 여기서는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헤라클리트학파의 크라틸로스 그리고 헤르모게네스 Hermogenes가 등장한다. 크라틸로스는 5세기 말엽에 살았던 사람인데, 플라톤의 첫 제자들 중의 한 명이었고, 크라틸로스의 상 대자로 등장하는 헤르모게네스는 히포니코스 Hipponikos의 아들이자 소피스트인 칼리아스 Kallias의 동생이며 소크라테스 제자 그룹에 속한다. 플라톤은 헤르모게 네스를 소크라테스 임종시에 참석했던 사람으로 파이돈 Phaidon에서 묘사하고 있다.5) 그 시절 거의 모든 단편들이 그러하듯, 이 세 사람은 서로 대화하면서 각

3) 박규철 (2003: 107이하)을 참조.

4) 예를 들면 르로아 Leroy, M.는 크라틸로스에 포함된 소쉬르 등이 제기한 현대 언어학의 제 문제들과의 관련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 한다: “그러므로 매우 유용한 토론을 불 러일으킨, 특히 소쉬르의 가설 중 몇 가지는 -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관계, 형식과 질료의 관계, 기호의 자의성, 어쩌면 또한 유명한 랑그/빠롤의 대립 - 명시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최 소한 함축적으로나마 이미 크라틸로스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68: 151).

5) “파이돈: 본래 아테나이 출신으로는 방금 말한 아폴로도로스 Apollodorus, 크리토볼로스 Critobulus와 그리고 그의 아버지, 또 헤르모게네스와 에피게네스 Epigenes, 그리고 아이스 키네스 Aeschines, 안티스테네스 Antisthenes 등이 있었죠. 그 외에 파이아니아의 크테십포

(3)

기 다른 자신의 견해(들)을 관철시키려고 한다.6) 이들 자신의 견해들이란, 명칭과 그 명칭이 지시하는 대상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크라틸로스의 필연론 (Naturentstehungstheorie, 또는 ‘퓌세이가설 phýsei-These’)과 헤르모게네스의 관 습론(Satzungstheorie, 또는 ‘테세이가설 thesei-These’) 그리고 이들의 견해에 때 론 동조하거나 반박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다.

전자에 의하면 ‘오노마 ὄνομα’ (일반명사와 고유명사)에는 원래부터 ‘올바름 Richtigkeit’의 속성이 부여되어 있어서 명칭으로부터 사물의 참된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에 반해서 후자는 명칭과 사물의 관계가 ‘계약’이나 ‘관습’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정의된다. 이들은 각자 언어에 대한 자신들의 서로 상반되 는 견해를 피력하고 소크라테스는 이들을 중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에 소크라테스의 언어에 대한 견해도 약간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크라틸로스의 대부분이 소크라테스와 헤르모게네스 사이의 대화임에 도 불구하고 (다시 말해서 이 두 사람의 대화가 양적으로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 하고7)), 왜 제목을 크라틸로스라고 하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은 -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 소크라테스가 관습론의 입장 에 서 있는 헤르모게네스의 주장보다, 비록 대화의 양은 적었지만 필연론에 근거 를 두고 있는 크라틸로스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음을 추정함에 의해서 다소간 해 소될 수 있다. 왜냐하면 어쨌든 ‘무엇의 제목’이라는 것은, 그 ‘무엇’이 가장 함축

스 Ctesippus 등이 있었죠. 그리고 메넥세노스 Menexenus와 다른 몇몇의 아테나이인들이 있었죠.” 파이돈 (59b이하).

6)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크라틸로스의 초반부는 소크라테스와 헤르모게네스, 그리고 후반부 는 소크라테스와 크라틸로스와의 대화인데, 거의 대부분의 대화를 소크라테스가 이끌어가 고, 나머지 두 명의 대화상대자는 한 두 군데에서만 자신의 주장을 몇 문장에 걸쳐서 엮어 낼 뿐, 대부분 소크라테스의 말에 긍정적으로 답변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슬레작이 주 장하는 ‘플라톤 대화편의 특징들’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 “1) 플라톤은 그의 철학작품들을 예외 없이 대화체로 서술한다 ... 3) 각각의 대화편은 분명히 대화의 주도권을 떠맡은 인물 을 갖는다. 대화 주도자의 이름은 우선 ‘소크라테스’이다 ... 4) 대화 주도자는 각각의 경우 에 있어서 오직 한 명의 대화 상대자만 대화한다. 두 명이 이상의 대화 참석자들을 동반하 는 대화들은 바뀌는 대화상대자와의 대화에서 대화 주도자를 등장시키는 대화 부분들로 구 성된다. ... 5) 대화 주도자는 이제 모든 이의 제기에 답변할 수 있다. 논쟁적 특성을 내포 하는 대화들 안에서 그는 모든 대화 참석자들을 논박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은 그 어느 누 구에게도 결코 논박당하지 않는다.” (슬레작 2000: 27이하).

7) 예를 들어 크라틸로스 전체는 58절(383절-440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45절(383절 -427절)이 소크라테스와 헤르모게네스와의 대화이다.

(4)

- 4 -

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핵심적인 내용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클라 틸로스가 양적으로 헤르모게네스보다 적은 대화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크라틸로스의 성격을 인정한다면 결코 적은 양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기 때 문이다.

예를 들어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는데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던 크라틸로스 같은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은 커녕 한 번도 담 글 수 없다고 한 수 더 떴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마 찬가지이다. 크라틸로스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누군가 질문을 하면 새끼 손가락 하나만 까딱거렸다고 한다. 크레센쪼 (L. Crescenzo 1998: 113이하).

이와 함께 크라틸로스의 부제목에 관련되는 사항들을 인지하는 것도 그것을 반듯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크라틸로스에는 “명명의 올바름에 대해서 ἢ περὶ ὀνομάτων ὀρθότητος, Von der Richtigkeit der Benennungen”라는 부제가 달 려있다. 여기서는 고대 그리스어와 현대 독일어 사이의 낱말등가 문제가 중요하 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어의 ‘오노마’는 일차적으로 일반명사와 고유명사를 총 칭하기 때문이다.8) 그래서 슐라이어마허는 - 크루쯔가 번역서의 각주에서 명시한 것처럼 - ‘오노마’의 독일어 대역어로서 ‘명명 Benennung’, 고유명사로서의 ‘이름 Name’ 또는 ‘낱말 Wort’, 복수로는 ‘낱말들 Wörter’이나 ‘낱말들 Worte’을 사용하 는데9), 사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오노마’는 한편으로 독일어의 ‘이름’이나 ‘명칭 Bezeichnung’보다 의미 영역이 더 포괄적이고, 다른 한편으로 독일어의 ‘낱말’보 다 의미 영역이 더 협소하다. 왜냐하면 클라틸로스에서 ‘오노마’는 ‘낱말’(언어적 단위)의 일반적인 의미에 가깝게 사용되는 경우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톤의 저술 속에 상위 개념인 ‘낱말’ 그리고 ‘고유명사’와 ‘일반명사’ 등과 같은 여러 하위 개념들 사이의 논리적 구분이 아직 명확한 용어로 포착되지 않고 있음 8) ‘오노마’ 개념의 번역 문제에 대해서는 바이데만 H. Weidemann(1982)과 슈밋터 P.

Schmitter(2003: 17)을 참조할 것.

9) Pl. 397을 참조할 것. 따라서 크라틸로스의 중심주제인 ‘오르토테스 오노마톤 ὀρϑότης ὀνο μάτων’은 코제리우 E. Coseriu에 의해서 “이름의 올바름 Richtigkeit der Namen” (1969:

36), 뷔히너 K. Büchner에 의해서 “낱말의 올바름 Richtigkeit des Wortes” (1968: 81), 펠링 D. Fehling에 의해서 “명칭의 올바름 Richtigkeit der Bezeichnung” (1965: 216) 등으로 번역 된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개념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고대 희랍어 원문과 독일어 번역문 을 병기했다.

(5)

을 알 수 있다.10) 이외에도 ‘오르토테스(올바름)’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 인지에 관해서도 충분히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오노마’가 낱말의 ‘소리’인지 ‘의미’

인지에 관한 사실도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점들은 본 고의 논의전개 과정에서 다소간 해결될 수 있다.

III. 관습론

크라틸로스의 서두는 “명명과 언어 외적 대상의 관계가 필연에 의한 것인가 또는 합의에 의한 것인가”(Pl. 383a5이하)라는 헤르모게네스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이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것은 배우기 어렵다”는 옛 격언에 빗대서

“낱말들에 관한 아름다움 또한 결코 사소한 공부거리가 아님”(Pl. 384b1)을 주장 하고 있다. 이러한 크라틸로스는 언어에 대해서 논의한 현존하는 최고(最古) 문 헌 중의 하나라고 간주되고 있지만, 우리들이 크라틸로스에서 다음과 같은 구 절을 찾았다면,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언어에 정통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내가 50드라크마[고대 그리스의 은화]를 주고 프로디코스 Prodikos11)의 강의를 들었다면 얼마나 좋겠나? 프로디코스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강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강의를 들을 필요가 있 다고 했으니 말일세. 그랬더라면 내가 바로 명명들의 올바름에 대한 진실의 경험 을 자네에게 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그[의 강의]를 듣지 못했네. 단지 일 드라크마어치만 들었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잘 모르겠네.” (Pl. 383b3이하).12)

10) 슈밋터(2003: 17), 로빈슨 R. Robinson(1969: 101)을 참조할 것.

11) 케오스 Keos지방의 프로디코스는 기원전 5세기 후반의 유명한 소피스트 중의 한 사람으로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 묘사되어 있다.

12) 이것 외에도 이와 유사한 주장들은 크라틸로스에서 두 번이나 더 등장 한다: “소라테스:

친구여, [명명의 정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올바른 생각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라네. 그리고 그런 일에 대해 돈을 지불해야 하고, 고마움을 표해야 될 걸세. 그런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들이네. 자네 형 칼리아스도 지혜를 얻기 위해서 많은 돈을 지불했네. 그러나 자네는 아직 아버지로부터 상속을 받지 못했으므로 형에게 잘 이야 기해서, 이것에 대해서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자네 형이 프로타고라스로부터 그것[명칭의 정당성]에 대해서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해서 일러달라고 하게나.”(Pl. 391b11이하). “소크라 테스: 헤르모게네스, 이것이[명명의 정당성에 관한 지혜가] 내게로 온 것은 특히 프로스파르

(6)

- 6 -

이러한 질의응답에 이어서, 헤르모게네스는 - 크라틸로스의 서두 이전에 이 미 알려진 - 크라틸로스의 ‘필연론’이 자신의 견해와 상충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크라틸로스가 자신이 주장하는 필연론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음 을 소크라테스에게 고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한다. 이러한 헤르모게네스 의 관습론적 주장은 다음 질문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소크라테스여, 저는 그와 그 밖의 많은 다른 사람들과 그것[명명의 올바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계약과 약속 Vertrag und Übereinkunft에 토대를 둔 것 과는 다른 낱말들 Worte의 올바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사물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게 되면, 그것이 올바른 이름이고, 다시금 다른 이름으로 대체하고 이전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것이 이전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것이 됩니다. 마치 이것은 우리들의 노예에게 다른 이름 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13)왜냐하면 사물의 이름은 본성 Natur으로부터 그 이름을 소유하 는 것이 아니고, 낱말들 Wörter을 만들고 사용하는 지시와 습관 Anordung und Gewohnheit에 의해서 그 이름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Pl. 384c12이하).

소크라테스는 위와 같은 헤르모게네스의 관습론적 주장을 일단은 받아들이지 만 오노마의 주체가 개인이든 사회이든 상관없다는 헤르모게네스의 대답에 대해 서 재차 답변을 요구 한다: “소크라테스: 내가 어떤 사물을 명명할 때, 즉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내가 말 馬이라고 부르고, 말이라고 부르는 것을 인간이 라고 부르면, 동일한 사물이 공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으로 불리지만 내 게는 특별히 말로서 불려지게 되고, 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적으로 말로서 불리는 것이 내게 사람으로 불려져도 되는가?” (Pl. 358a11이하). 소크라테스의 위와 같은 물음은 ‘언어 사회성’ 내지는 ‘언어 자의성’의 인정여부와 연관성을 가 지고 있는데,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언어 공동체간의 언어차이와 개인 간의 언 어차이가 헤르모게네스 (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헤르모게네스: ...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라마다 자신들만의 고유 한 낱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어떤 그리스 사람이 또 다른 그리스 사람과 티안 지역 사람인 에우튀프론 Euthyphron 때문이라고 생각하네. 왜냐하면 오랫동안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말을 귀담아 들었기 때문이네. 그리고 그가 나를 매혹시킨 것은 지식으 로 충만한 귀뿐만이 아니라, 영혼이네.” (Pl. 396d6이하).

13) 고대 그리스의 노예들은 팔리게 될 때, 보통은 새로운 주인이 이름을 다시 붙이는 관습이 있었다. 위의 예는 그러한 관습에서 연유한 것이다.

(7)

다른 낱말을 사용하고, 그리스 사람들이 이방인들과 다른 낱말을 사용한다는 사 실을 알고 있습니다.” (Pl. 385d4이하). 이것은 마치 스위스의 소설가 빅셀 P.

Bichsel의 책상은 책상이다 Ein Tisch ist ein Tisch14)를 연상하기에 충분하고, 따라서 현대 언어학의 핵심개념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그리고 랑그와 빠롤의 구 분에 대한 단초도 엿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극단적 상대주의는 소크라테스로 하 여금 프로타고라스의 테제 “인간은 만물의 척도”를 들먹이게 하지만, 그러나 곧 이 견해는 우리들이 힘들이지 않고 선량한 인간과 악한 인간을 구분 할 수 있기 때문에 포기되어야 하며,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이끌어낸다:

“사물은 즉자 대자적으로 Dinge an und für sich 자기의 고유한 존재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존재하는 것에 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고, 우리들의 상상 력에 의해서 이리저리 이끌어지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고유한 실체성에 따라서 스스로 존재한다.” (Pl. 386d11이하). 왜냐하면 만물은 이제 모두에게 동시에 그리 고 언제나 동일하지 않고, 각자에게 고유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후, 사물의 고유한 실체에 대한 본성적인 명명을 하기 위해서 그 유명한 언어의 직조 (옷감짜기)에 대한 비유가 등장한다.15)

소크라테스: 좋아! 우리가 어떤 것을 잘라야 한다면, 어떤 것의 도움으로라고 말해야만 하겠 지.

헤르모게네스: 그렇지요.

14) 빅셀 (1973: 21이하)을 참조할 것. 빅셀은 여기서, 어느 날 자신이 살고 있는 단칸방에서 완 전히 새로운 관점들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단순한 삶을 변화시켜보겠다는 결심을 하 는 노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노인은 방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들의 명칭을 바꾸는 간단한 방법으로 자신의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를테면 ‘침대’가 ‘그림’이 되고 ‘양탄자’가 ‘장 롱’이 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노인은 새로운 명칭을 선택된 낱말들의 음운론적 구조나 형태론적 구조를 변경하지 않고, 단지 그들의 지시 관련만을, 이로써 필연적으로 그것들의 의미, 즉 내용을 바꾸게 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우선 관습적으로 존재하는 시니 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기호 내적 관계를 해체하는데, 예를 들면 시니피앙 ‘남자’와 시니피 에 ‘아침’의 결합과 같이 일반 언어사용에 역행하는 새로운 결합을 만든다. 그래서 시니피앙 과 시니피에로 구성된 낱말과 그 낱말이 지시하는 대상 사이의 기호 외적 지시 관련에 변 화가 일어난다.

15) 언어를 직조에 비유하기 이전에 “말 Rede을 더 작은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가?” (Pl.

385c7), “말 Reden은 행위 Handlung인가?” (Pl. 387b10)라는 소크라테스의 물음이 있다. 이 것은 언어를 직조에 비유하기 위해 마련한 기초 작업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직조하기와 말하기를 행위라는 동등한 차원에 위치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8)

- 8 -

행위 도구 도구의 사용자 도구를 만든 자

(기술 있음)

행위 도구 도구의 사용자 도구를 만든 자

(기술 있음) 절단하기

옷감 짜기 베틀 북=옷감

짜는 도구 직조공 목수

구멍 뚫기 송곳 대장장이

명명하기 낱말들(Worte) 교사(Lehrkün- stler)

입법가(Gesetzge ber)

[연주하기] 키타라 키타라연주자

노젓기 노 뱃사공 목수

소크라테스: 그리고 [옷감을] 짠다고 할 때는 어떤 것의 도움으로, 그리고 무엇을 뚫는다고 할 때도 어떤 것의 도움으로 뚫는다고 할 수 있겠지?

헤르모게네스: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그래서 또한 우리가 무엇을 명명해야 한다고 할 때는 어떤 것의 도움으로 명명 한다고 할 수 있겠지?

헤르모게네스: 그럼요.

소크라테스: 자 그러면, 우리들은 무엇을 가지고 [구멍을] 뚫어야 하는가?

헤르모게네스: 송곳으로요.

소크라테스: 그리고 무엇으로 [옷감을] 짜지?

헤르모게네스: 베틀 북이요.

소크라테스: 그리고 어떻게, 무엇을 가지고 명명하지?

헤르모게네스: 낱말로요. (Pl. 397d9이하).

사실,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처럼 크라틸로스에는 언어에 대한 직조의 비유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보듯이 ‘절단하기’, ‘구멍 뚫기’, ‘연주하기’,

‘노 젓기’ 등이 차례대로 등장한다. 이러한 모든 예들을 간략하게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387d9이하 참조).

이러한 언어에 대한 직조의 비유를 좀 더 깊숙이 파고들면, 현대언어학의 핵심 개념이 된 낱말에서 소리와 의미(내용)의 구분개념도 엿보인다. 예를 들면, 옷감 짜기의 도구로서 베틀 북이 쓰이고, 이러한 도구의 사용자는 직조공이며, 이 베틀

(9)

북을 만든 사람이 목수인데, 이러한 목수에 해당되는 명명하기의 대체물을 알 수 없어 헤르모게네스는 혼란에 빠진다. 이때 소크라테스는 그것은 ‘입법가 Gesetzgeber’라고 운을 띄운다. 여기서 입법가는 오노마를 만드는 사람, 즉 ‘오노 마의 제작자 ὀνοματουργός’16)이다. 그런데 이러한 오노마는 내용적인 측면과 소 리/철자의 측면을 가지게 되는데, 소크라테스는 이를 위한 유추도 여전히 직조하 기에서 끌어온다.

소크라테스: 만일 일을 하는 도중에 [옷감을 짜다가] 북이 파손되어, 목수가 다른 북을 만들 때 모범으로 삼는 것은, 파손된 북인가, 아니면 달리 잘된 북이 있어 이 북을 본떠서 만든 것인가?

헤르모게네스: 잘된 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따라서 우리들은 진정 그것을 참된 북, 즉 이상적인 북이라고 할 수 있겠지?

헤르모게네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 옷감을 짤 때, 그 두껍고 얇은 정도, 무명과 털, 또는 그 밖의 재료 등에 의해, 북이 갖추어야 하는 것은, 전체적으로 북의 형상을 스스로 지니는 것이며, 그러한 성 질이 모든 작업에서 주어져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헤르모게네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도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지. 즉 본성에 따른 적합한 도 구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일세. 이 일이 무엇에 의해서 만들어져야 하는지는 개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본성에 의한 것이네. 특히 송곳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이것을 쇠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네.

헤르모게네스: 그렇지요.

소크라테스: 따라서 본성에 순응하는 북을 만들려면, 나무로 해야겠지?

헤르모게네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왜냐하면 우리들이 보았던 것처럼, 본성에 의해서 특별한 북은 어떤 옷감의 종 16) 소크라테스의 ‘오노마의 제작자’라는 표현에서 언어의 기원 문제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 는 가능성은 로빈슨 R. Robinson (“추상적인 연역 이론의 한 부분 part of an abstract deductive theory” 1969: 105) 이나 르로아(“방법론적인 가치 valeur méthodoloque” 1968:

150) 등의 주장에 의해서 감소된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슈밋터(2003: 20)에게도 발견되는데, 그는 소크라테스가 구체적인 신화적 인물이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을 결코 오노마의 창시 자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오노마의 제작자를 묘사하는데 사용했던 모호한 여러 가지 표현에서 찾았다: “노모테테스 νομοϑέτης (노모스 νόμος (언어사용)를 만드는 자)” (Pl.

388d6), “호 타 오노마타 티테이스 ὸ τὰ ὀνὀματα τιϑείς (오노마를 설정하는 자)” (Pl.

416b3), “오노마산테스 ὀνομάσαντες (이름을 붙이는 자들)” (Pl. 399d11), “호이 프로토이 타 오노마타 티테메노이 οί πρώτοι τὰ ὀνόματα τιϑέμενοι (최초로 낱말을 설정한 자들)” (Pl.

401d6).

(10)

- 10 - 류에 속하기 때문이네. 그 밖의 것들도 마찬가지네.

헤르모게네스: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제 명칭에 관해서 생각해 보세. 모든 입법가는 단어가 정말로 무엇인지를 보 면서 모든 낱말들을 만들고 빗으면서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닮은 이름을 소리와 음 절로 나타낼 수 있어야 하네. 만약 그가 정말로 진정한 입법가가 되려면 말일세. 그러 나 만약에 그러한 모든 입법가가 낱말들을 같은 음절로 나타내지 않아도 그것은 잘 못된 것이 아니네. 왜냐하면 같은 목적을 위해서 같은 도구를 만들지 않는 모든 대장 장이가 같은 형상을 같은 철로 만들지 않기 때문이네. 그가 동일한 형상을 주지만 그 러나 다른 철이네. (Pl. 389c3이하).

이런 식의 비유는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사고과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서 당시에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수공업 분야에서 실례를 가지고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17) 필자의 의하면 위와 같은 논의방식은 약간의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장장이의 구멍 뚫기와 입법자의 명명하기를 동일한 위치에 놓고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장장이의 구멍 뚫기는 대 상의 변화를 불러오지만 명명하기는 그런 변화를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인용 장소의 중요성은 ① ‘직조하기의 목적’과 ② ‘베틀 북의 재료’

를 구분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로 오노마의 내용(에이도스 토이 오노마토스 eîdos toỹ onómatos)과 음성과 철자 (프통고이 카이 쉴라바이 phthóggoi kaì syllabaí)로 유추되며, 이들 사이의 관련은 ‘티테나이 tithénai’, 즉 본성적이지 않 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몇 쪽을 지나서 또 한번 나타난다:

그러나 동일한 것에 대해서 다른 음절로 나타나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네. 어떤 글자가 첨가되거나 삭제되어도 마찬가지네. 사물의 실체가 있는 한, 그것이 이름에 의해서 명백해 진 한에 있어서. (Pl. 239c16이하).

이와는 달리 소크라테스가 계속 주장하고 있는 필연론은 (이 경우 좁은 의미 의) 오노마의 내용과 (아직은 세분화되기 이전의) 언어 외적 대상사이에 존재하 는 성질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명명하는 일은 노 젓기나 직조하기 등과 마찬가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나 할 수 있음), 17) 또는 언어와 수공업과의 연관성은 “수공업 발전이 대뇌 기능을 점차 향상시키고 언어를 관 장하는 대뇌피질 구조의 전문화를 초래했다는 것”(비엘작 R. Bijejac/브루통 R. Breton 2004: 29)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11)

이에 비해서 인간이 약속이나 관습 그리고 계약 등에 의해서 명명하는 것은 너무 나도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여기서부터 오노마는 조금씩 세분화되기 시 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명명하기가 ‘약속’과 ‘계약’으로 이루어졌다 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헤르모게네스는 납득하기 힘들다면서 계속되는 설명을 요 구한다. 미루어보면 아마도 헤르모게네스에게는 아직도 오노마의 정체가 세분화 되지 않은 듯이 보여 진다. 어쨌든 소크라테스는 헤르모게네스의 반박을 입증할 만한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 이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소피스 트에게 가서 도움을 받으라고 타이른다. 예를 들어 헤르모게네스에게 자기의 형 인 칼리아스에게 가서 그가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에게 돈을 주고 배운 ‘명명 의 올바름’에 대한 설법을 전수 받으라고 이른다. 그러나 헤르모게네스는 프로타 고라스의 저서인 진리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호머 같은 시인에게서 ‘오노마의 올바름’에 대해서 배워야 된다고 말한 다. 이후,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여러 가지 일반 명 또는 고유명(신의 이름) 들의 어원이 길고 장황하게 추적된다. 다시 말해서 어원론의 연구방식을 사용하여 오 노마로부터 ‘언어외적 대상의 참된 존재/본질 (우시아 토이 프라그마토스 oysía toỹ prágmatos)’를 추론할 수 있는 지를 살펴본다.18) 소크라테스에 의하면 이러 한 시도는 필연론을 주장하기 위한 훌륭한 자료의 기능을 한다.19) 이러한 필연론 18) 슈밋터(2003: 23이하를 참조할 것)는 ‘우시아 토이 프라그마토스(언어 외적 대상의 참된 존 재/본질)’를 ‘에이도스 토이 오노마토스(내용/의미)’에 병치시키면서 ‘토 온/프라그마(언어 외 적 대상)’과 ‘프통고이 카이 쉴라바이(소리)’와 함께 언어의 사각 모델을 주창하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그러한 세분화는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우시아 토이 프라그마토스’는 후반부에 나오는 언어의 삼각 모델에서 ‘프라그마(언어 외적 대상)’의 카운터파터로 독립해 서 등장하지 않고, 슈밋터가 진술한 자신의 글 여기저기에서도 클라틸로스의 내용을 설명 하면서 ‘언어 외적 대상의 참된 존재/본질’ 대신에 단순히 ‘(언어 외적) 대상’으로만 언급하 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위에 언급한 곳에서 실제 대상과 그 명칭 사이 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반해서 ...” 슈밋터 (2003: 29), “크라틸로스가 대화의 시작에서 주 장한, 우리에게 불명확하게 보였던 가설, 즉 ‘오노마’의 본성적 올바름에 대한 가설이 여기 에 와서는 결국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낱말 내용과 언어 외적 대상 사이의 본성적 관계로 해석된다. 또한 베틀 북에 대한 유추가 분명히 보여주듯이, 낱말 내용과 대상 사이의 본성 적 배속의 근거로 ... ” 슈밋터 (2003: 22), “이 첫 번째 오노마 모델에서는 각 사물에, 좀 더 정확히 말해서 각 대상의 참된 존재에 낱말 내용이 본성적으로 배속되는 특성을 ‘오르토테 스 오노마톤’으로 이해했다” 슈밋터 (2003: 23), “... 소크라테스는 낱말 내용과 언어 외적 대 상 사이의 관계를 ‘퓌세이 관계’로 보았고 ...” 슈밋터 (2003: 24),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

실제 대상과 그 명칭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반해서 ...” (슈밋터 2003: 29).

19) 이러한 필연론은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과 관련지을 수 도 있겠다. 왜냐하면 사물의 고정

(12)

- 12 -

은 신이 부여한 이름과 인간이 부여한 이름(트로이아의 강 이름: 신→크산토스 Xanthos 인간→스카만드로스 Skamandros, 새: 신→칼키스 Chalkis 인간→밤독수 리 Nachtarr), 남자가 부르는 이름과 여자가 부르는 이름(헥토오르 Hektor의 어 린 아들 이름: 남자→아스튀아낙스 Astyanax (부친이 구출한 도시의 구제자), 여 자→스카만드리오스 Skamandrios) 중에서 각각의 전자가 더 현명한 이름짓기이 며, 그것은 신이 부르는 이름이 인간이 부르는 이름보다 더 현명하고, 남자가 부 르는 이름이 여자가 부르는 이름보다 더 반듯하다는 사실로서 유추된 것이다.

(Pl. 391a1을 참조). 이러한 주장은 이것은 이름의 정당성을 필연론으로 본 결과 가 가져온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왜냐하면 특정한 이름이 더 반듯하다고 하는 것은 이름의 정당성이 부여된 것이며, 이름에 정당성이 있다고 함은 필연론이 관 습론 보다 더 합당한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명칭의 어원 들이 장황하게 열거되고, 이와 함께 오노마(내용/의미)와 언어외적 대상의 참된 존재 사이가 본성에 기초하고 있다는 주장 또한 대화의 중간 중간에 여러 번 출 현한다. (Pl. 397a4이하, 439a2이하 참조).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예외 적인 경우도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에우튀키데스 Eutychides: 행운아 소시아스 Sosias: 구세주

테오필로스 Theophilos: 신의 사랑을 받는 자 (Pl. 397b2이하 참조).

소크라테스가 위와 같은 명칭들을 예외적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조상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그래서 이러한 명칭들은 자신들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이러한 명칭들도 결코 자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조상으로 부터 물려 받았다는 이름 짓기의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영웅들이나 신들 의 명칭(크로노스, 헤로스, 헤스티아, 포세이돈, 플루톤, 제우스...)뿐만 아니라, 품 사에 상관없이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낱말어원이 탐구되고, 더러 어원이 모호

불변의 참모습이라는 것은 플라톤이 말하는 사물의 ‘우시아 ousía’를 쉽게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법가(노모테테스)가 “오노마의 실체를 직접 바라보면서”(Pl. 389d6이하) 오노마를 만들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가 주장했다면, 필연론과 이데아 사상과의 관련성은 줄어든다.

(13)

한 명칭의 경우에는 외래어로 치부되기도 한다.(Pl. 421c14이하). 그러는 동안에 현대적 의미에서의 보디랭귀지(Pl. 422e1이하)와 한자에서 볼 수 있는 상형 문자 적 제자원리(Pl. 422e7이하) 그리고 음운상징(Pl. 423b10이하)의 개념, 명칭변천(Pl.

422a2이하)과 같은 내용도 언급된다. 이러한 개념들은 현대 언어학의 핵심 개념 인 언어의 자의성을 해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서 소크라테스 는 클라틸로스의 전반부에서 헤르모게네스와는 달리 명명의 자의성에 반하는 필연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위와 같은 예들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필연론의 극치 는 다음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크라테스: 우선 r은 모든 운동의 기관인 것처럼 생각되네. 어째서 이것이 이런 이름을 가 지게 되었는지 우리들 스스로는 설명할 수 없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은 ‘가다 gehen’를 의 미하는 것이 확실 하네 ... 우선 ‘흐름 Strömen’과 ‘강물 Strom’에서 이러한 철자를 사용하면 움직임이 감지될 수 있네. 동시에 ‘반항 Trotz’과 ‘거칠거칠한 rauh’에서, 그리고 ‘찢다 reißen’, ‘때려 부수다 zertrümmern’, ‘부스러지다 krümeln’, ‘돌리다drehen’에서 ‘r’에 의해서 대부분 운동이 모방되네. (Pl. 426b11이하).20)

이로써 소크라테스의 오노마 모델이 완성되는데, 그것의 핵심은 베틀 북이 베 를 짜는 도구로서 필요한 것처럼, 명명하는데 오노마가 필요하고, 이러한 오노마 는 “가르쳐 주고 ... 존재를 구분하는 도구 διδασκαλικόν ... ὄργανον καί διακριτι κὸν τής οὐσίας” (388b13-c1)라는 사실이다.

VI. 필연론

크라틸로스의 후반부에 속하는 소크라테스와 크라틸로스의 대화 초입을 살 펴보면, 두 사람의 견해는 입법가의 능력에 관련되는 부분에서 서로 상충된다. 다 시 말해서 크라틸로스에 의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좀더 나은 명칭’, ‘그 보다도 더 나은 명칭’ 등과 같이 명칭 사이의 등급이 존재하지 않 고, 따라서 잘못된 명칭도 존재하지 않는 반면에, 소크라테스의 주장은 다음과 같 20) 사실, 희랍어 원문에는 ‘r’이 아니라 ‘ρ(로)’이다. 이에 따라 여기에 예를 든 낱말들도 몇 개

가 독일어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Pl. 426c1이하 참조).

(14)

- 14 -

은 것이다: 명명하기는 하나의 기술 → 훌륭한 화가는 작품을 아름답게, 서투른 화가는 작품을 추하게 묘사함 → 기술이 좋은 목수는 훌륭한 집을 건축, 기술이 미숙한 목수는 훌륭하지 않은 집을 건축 → 따라서 훌륭한 입법가와 미숙한 입법 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던 크라틸로스는, 결국 계속되는 소크라테스의 그림과 명명의 비유에 굴복하고 만다. 즉, “모두를 그리는 사람은 아름다운 스케치나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지만, 어떤 것을 추 가하거나 삭제하는 사람은 그리지만 나쁜 스케치나 그림을 그린다” (Pl. 431c10이 하)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유추 는 여전히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예술성과 관련 있는 화가의 목표와, 기술이 중심이 되는 목수의 목표는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 의 미숙함은 당시 ‘예술’과 ‘기술’을 표현하는 낱말이 분리되지 않았음을 그 원인 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고대 그리스의 예술과 기술은 - 마치 오노마의 경우처럼 - ‘ars’라는 한 낱말 속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클라틸로스의 후반에서, 오노마의 올바름에 대한 이러한 등급성의 존 재여부21)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 슈밋터(2003: 24)가 올바르게 지적했듯이 - 오 노마 (또는 낱말의 내용)가 아닌 소리/철자와 언어외적 대상 사이의 필연적 연관 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러한 필연적 연관성은 - 어떤 사물의 성질을 표시하고 있을 경우 - 있어야 할 어떤 문자가 빠져 있더라도 여전히 그 사물을 나타내기 때문에 부정되며, 반대로 삽입되지 말아야 할 문자가 어떤 오노마에 들어가 있을 때도 필연적 연관성이 부정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 들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약속과 관습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앞에서 예를 들었던 ‘r’에는 ‘속도’나 ‘운동’ 또는 ‘움직임’ 등의 성질이 포함되어 있고, 그와 반 대로 ‘t’가 ‘견고함’과 ‘튼튼함’을 나타내는데, ‘말타기 Reiten’에 ‘t’가 포함되어 있다 는 것은 필연론을 부정하는 실례, 즉 약속과 관습과 관계 있다는 것이다. (Pl.

434b13이하 참조). 또한 이것은 입법가가 최초의 명칭이 없을 때, 사물이 무엇인 지를 정확히 모르고서 명명하게되는 모순점도 설명해 준다. (Pl. 438a12이하 참 조). 이렇게 되면 소크라테스와 클라틸로스의 대화에서는 필연론을 주장했던 이 21)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오노마의 언어외적 사물에 반듯한 명명정도의 등급성이 곧 이어 등장하는 소리와 언어외적 사물 사이의 계약성 및 관습성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왜 냐하면 그러한 등급성을 상정해야만 이들 사이의 관습성이 극명하게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 다.

(15)

전의 헤르모게네스와의 논쟁에서와는 달리 관습론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 다. 왜냐하면 어떤 오노마가 ‘소리형상’으로부터 ‘언어 외적 대상’에 이르는 직접 적인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에토스 éthos’와 ‘쉰테케 synthékē’를 바탕으로 한 소리복합체로부터 ‘생각된 것 (das Gedachte, 디아노에이스타이 dianoeîsthai)/헤 게이스타이 hēgeîsthai)’을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 세히 살펴보면 이것은 첫 번째 오노마 모델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왜냐하 면 헤르모게네스와의 대화에서도 철자/소리와 ‘에이도스 토이 오노마토스(내용)’

사이의 관계는 ‘티테나이(자의적)’ 관계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 라고는 ‘내용’이라는 개념이 ‘생각된 것’으로 대체된 것이다. 여기가 바로 ‘발신자 와 수신자’, ‘전달 정보(소식, 신호)’, ‘중심 정보’, ‘부호화/부호해독’ 등과 같은 낱 말들이 연상될 가능성이 있는 장소라는 슈밋터의 주장은 정당해 보인다. (2003:

25참조). 어쨌든 ‘생각된 것’이라는 술어 속에서 ‘생각의 주체’가 존재해야 할 것이 고, 이것은 동시에 ‘화․청자’와 관련되고 따라서 현대 언어학의 중심 개념이 된

‘화용론적 상황’이 떠올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에서, 결코 화살표에 의해서 화자(송신자)에서 청자(수신자)로 전개되는 일방적 커뮤니 케이션이 아닌, 쌍방향(양방향․상호) 커뮤니케이션 개념의 단초를 떠올릴 수 있 다. 때문에 훗날 뷜러가 자신의 기호모델을 만들면서 크라틸로스에게 빚졌음을 언급했다면, 그것은 바로 헤르모게네스와 논쟁하던 초반부의 언어모델이 아니라, 이 장소가 되었어야 했을 것이다.22) 왜냐하면 헤르모게네스와의 첫 번째 모델보 다 두 번째 모델이 더 화․청자의 개념과 연관시키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어쨌 든, 헤르모게네스의 계약론․관습론과 크라틸로스의 필연론은 어떤 현상을 서로 다른 방면을 바라본 관점의 문제이지,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가진 것이 아니며, 그러한 동일한 것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명확히 밝혀낸 것이 소크라테스라고 할 수 있다.

V. 마무리

22)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뷜러의 언어이론(1982)에는 자신의 이론적 발상이 크라틸로스의 어느 부분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장소가 언급되어 있지 않다.

(16)

- 16 -

헤르모게네스 관습론과 크라틸로스의 필연론과 맞서며 전개된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요약해 보자. 우선 첫 번째 오노마 모델에서, 낱말의 ‘소리(프통고이 카이 쉴라바이)’와 ‘내용/의미(에이도스 토이 오노마토스)’은 ‘티테나이(비본성적) 관계’

에 있고, 낱말의 ‘내용/의미’와 ‘언어 외적 대상의 참된 존재(우시아 토이 프라그 마토스)’ 또는 ‘언어 외적 대상(토 온/프라그마)’ 사이에는 ‘필연적(퓌세이)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두 번째 오노마 모델에서는 ‘소리(프텡게스타이)’와 ‘사고의 내 용(디아노에이스타이/헤게이스타이)’에는 ‘쉰테케(관습적)’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오노마 모델을 언급할 경우에는 이 두 모델 중의 어떤 것인지를 명 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위와 같이 - 어느 정도 - 명확하게 오노마에 대한 자신 의 견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크라틸로스의 후반부에 크라틸로스에게 했던 말(“여보게 크라틸로스, 내 스스로 오랫동안 내 자신의 지혜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서 믿지 않네. 그래서 생각해보았는데, 그것이 실지로 무엇 에 관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살펴봐야겠네” (Pl. 428d4))을 되새겨 보 면 그의 오노마 모델이 훗날에는 다르게 전개될 수 있을 여지가 약간은 남아있음 을 알 수 있다. 이와 유사한 장소는 또 한 번 등장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이 그것 이다: “사랑하는 크라틸로스, 그러나 이러한 것들[지금까지 말한 여러 가지 주장 들]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네. 그러나 자네는 좀더 생각하여야 할 걸세. 쉽게 받아들이면 안 되네. 왜냐하면 자네는 젊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말일세. 자네가 생각한 것을 찾거들랑 내게 좀 알려주게.” (Pl. 440d 3이하). 이로 써 플라톤은 이상적 인물인 소크라테스를 통해 자신의 지식을 무조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 수 있음도 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플라톤의 크라틸로스에서는 철학의 문제,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인 식론적인 문제들이 관심거리라고 하지만 (슈밋터 2003: 16), 그래서 크라틸로스

의 연구분석이 언어학 분야에서보다도 대부분 서양고전철학에서 행해지고 있지 만, 그러나 그러한 인식론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와 수단으로서 언어적 재료들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에서 언어학적 분석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있다. 왜냐 하면 이름․낱말․명칭․명명에 관련된 사항들이 언제나 언어학의 중요한 기본테 마가 되어 왔고,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언어학의 여러 가지 세부 분과들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학과 인식론을 굳이 구분하여 연구영역을 미리 설

(17)

정하는 것도 간학문적 연구의 물결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지금의 시대에 걸맞지 않다.

참고문헌

박규철 2003, 역사적 소크라테스와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동과서

Ammann, H. 1962, Die menschliche Rede. Sprach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Lahr I. Baden 1925(Teil I) und 1928(Teil II), Nachdruck: Darmstadt: Wiss. Buchgesellschaft.

Bichsel, P. 1973, Ein Tisch ist ein Tisch. In: P. Bichsel, Kindergeschichten.

Darmstadt, 21-31.

Bijejac, R./Breton, R. 2004, 언어의 다양한 풍경. 시공사. (신광순 옮김).

Bloomfield, L. 1933, Language. New York.

Büchner, K. 1968, Platons Kratylos und die moderne Sprachphilosophie. In:

Ders. Griechisches und Griechisch-Römisches. Wiesbaden, 79-110.

Bühler, K. 1982, Sprachtheorie. Die Darstellungsfunktion der Sprache. Stuttgar t․New York.

Coseriu, E. 1969, Die Geschichte der Sprachphilosophie von der Antike bis zur Gegenwart. Eine Übersicht. Teil I: Von der Antike bis Leibniz.

Tübingen.

Crescenzo, L. De 1998, 그리스 철학사. 리브로. (김홍래 옮김).

Derbolav, J. 1972, Platons Sprachphilosophie im Kratylos und in den späteren Schriften, Impulse der Forschung 10. Darmstadt.

Derbolav, J. 1980, Das Problem des Metasprachlichen in Platons “Kratylos”. In:

Von den Bedingungen gerechter Herrschaft: Studien zu Platon und Aristoteles. Stuttgart: Klett-Cotta, 88-110.

Fehling, D. 1965, Zwei Untersuchungen zur griechischen Sprachphilosophie. In:

Rheinisches Museum für Philologie 108, 212-229.

Kainz, F. 1967, Psychologie der Sprache in 6 Bänden. Bd. 1: Grundlagen der allgemeinen Sprachpsychologie. Stuttgart.

(18)

- 18 -

Kerferd, G. B. 2003, 소피스트운동. 아카넷. (김남두 옮김).

Leroy, M. 1968, Etymologie et linguistique chez Platon. In: Bulletin de la Class des Letters et des Sciences Morales et Politiques (Académie Royale de Belgique), 5. Serie, 54, 121-152.

Nehring, A. 1945, Plato and the theory of language. In: Traditio. Studies in ancient and medieval history, thought and religion. Edited by J.

Quasten and S. Kuttner. Vol. III. New York, 13-47.

Platon 1973, Platon. Phaidon․Das Gastmahl․Kratylos. Bearbeitet von Dietrich Kruz. Griechischer Text von LÉON ROBIN und LOUIS MÉRIDIER.

Deutsche Übersetzung von Friedrich Schleiermacher. Darmstadt.

Rijlarsdam, Jetske C. 1978, Platon über die Sprache. Ein Kommentar zum Kratylos. Mit einem Anhang über die Quelle der Zeichentheorie Ferdinand de Saussures. Utrecht.

Robinson, R. 1969, Essays in Greek philisophy. Oxford.

Schmitter, P. 1981, Zur Vorgeschichte der Kommunikationstheorie. Zwei antike Kommunikationsmodelle. In: Sprachwissenschaft. Band 6, 186-199.

Schmitter, P. 2003, 페터 슈밋터의 언어기호론.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신형 욱․이재원․조국현 옮김).

Vlastos, G. 1991, Socrates, Ironist and Moral Philosopher. Cambridge.

Weidemann, H. 1982, Zur aristotelischen “Hermeneutik”. Eine Interpretation der Kapitel 1-4 und 9 von “de interpretatione”. Habl. FB 7 Philosophie Münster.

Merten, K. (1994), Evolution der Kommunication. In: hrsg. v. K. Merten/S. J.

Schmidt/S. Weischenberg, Wirklichkeit der Medien. Opladen.

Zusammnfassung

Erklärungen zum Platonischen Kratylos -Zur sprachlichen Reflexion

Lee, Jae-Won (Duksung Frauen Univ.)

(19)

Der Platonische Dialog Kratylos ist sehr wichtig nicht nur für Philosophie, sondern auch für Sprachwissenschaft im Sinne davon, daß hier im Ansatz schon vorhanden ist, was die neuere Kommunikationsforschung mit den Termini ‘Sender/Empfänger, Trägerinformation (Nachricht, Signal)/Hauptinformation, Enkodieren/Dekodieren usw. zu erfassen sucht. Wie aus dem dritten Satz des Dialogs (383a4-b1) bereits deutlich vorhergeht, ist das Hauptthema des Kratylos “Richtigkeit der Namen”, “Richtigkeit des Wortes”, “Richtigkeit der Bezeichnungen”. In der Diskussion darum vertreten die beiden Gesprächpartner des Sokrates, Kratylos und Hermogenes, konträre Positionen: Hermogenes ist der Ansicht, daß die Richtigkeit der Onomata lediglich auf Vertrag und Übereinkunft bzw. auf Satzung und Gewohnheit beruht, während Kratylos behauptet, es gebe eine Richtigkeit der Onomata, die jedem Dinge von Natur aus zukommt. Insgesamt gesehen kommt er zu zwei differenten Theorien über das Verhältnis von Onoma und Ding, und zwar zweite innerhalb der Diskussion mit Kratylos, mit der er dann den Dialog beschliesst. Im ersten Modell greift er zu einem Vergleich aus dem Bereich des Handwerks. In Analogie zum Weben setzt er die Handlung des Benennens und führt näher aus, so wie beim Weben das Weberschiffen als Werkzeug unentbehrlich ist, zum Benennen das Onoma gehört. Hier handelt es um den Gesetzgeber, der das Onoma produziert. Zunächst sagt Sokrates, daß der Gesetzgeber das Onoma, das jedem Ding entsprechend seiner Natur zukommt, in Töne oder Laute und in Silbe prägt. Nun wird nach Sokrates das Onoma in zwei Teilen (Töne, Laute vs. Inhalte, Bedetungen) gegliert, und das Verhältnis von dem Inhalt der Onemata und dem außersprachlichen referierten Ding ist naturgemäß. Dafür hat Sokrates zu viele Beispiele gegeben, z. B:

Bodylanguage, Lautsymbole, etymologusche Untersuchungen usw, die alle auf die Physei-These bezogen sind. Im zweiten Modell wendet er sich die Lautung zu und versucht zu überprüfen, ob sie vielleicht das wahre Sein des Gegenstands erkennen läßt. Nach Sokrates ist das Verstehen darauf zurückzuführen, daß der eine Gesprächpartner erkennt, daß der andere jenes (Inhalt) denkt, wenn er dieses (Lautung) ausspricht. Als Gründe für das

(20)

- 20 -

Funktionieren dieses Vorgangs nennt Sokrates dann éthos und synthéké, weshalb er zu der These kommt, daß sowohl Vertrag als auch Gewohnheit etwas beitragen zur Offenbarung, dessen was wir denkend sagen. Damit hat Sokrates einerseits bewiesen, daß vom Lautbild eines Onoma kein direkter Weg zum Ding führt, man aber andererseits aufgrund von éthos und synthéké

‘das Gedachte’ aus dem lautlichen Komplex erschließen kann. Da sich dieses Modell aber in hohem Maße von der anfänglichen These des Sokrates unterscheiden, spricht man vom einem zweiten Onoma-Modell. Nach P.

Schmitter hat daher Kratylos zur die Vorgeschichte der heutigen Kommunikationstheorie. Aber wenn wir einige Zitate am Ende des Kratylos genau sehen werden, kann es sein, daß es andere Entwicklungsmöglichkeit des Onoma-Modell gibt: “Vielleicht nun verhält es sich so, lieber Kratylos, vielleicht auch nicht. Nachdenken aber mußt du wacker darüber und nichts leichtsinnig annehmen; denn du bist jung und hast noch Zeit; und wenn du es durch dein Nachdenken gefunden hast, dann teile es auch mir mit.” (Kratylos 440d3-8).

주제어: 크라틸로스, 플라톤, 필연론, 관습론

Schlüsselbegriffe: Kratylos, Platon, Physei-These, Thesei-These 필자 E-Mail: arthurlee@hanmail.net

참조

관련 문서

점들이 발생하여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개인이 가진 고유한 정보인 생 체 정보를 바탕으로 생체인식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연구에서는 국내 한우의 난소를 이용 하여 국내 한우 난자의 성숙율과 수정 후 수정란의 발달율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 하기 위해서 기존의 보고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구조를 이해 하기 위해서는 더욱 발전된 매듭 이론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1.2 가상

편지들 속에서 키츠는 완전히 비자의식 진지성( 비록 많은 유머의 불꽃이 빛 나지만) 으로,시에 대한,그리고 시인으로서 그 자신의 여러 목적에 대한 그

그리고 자신이 만든 연을 직접 날려 보는 활동까지 하면서 이론만이 아닌 현실 성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자 한다...

행성의 물리적 환경을 파악하고 인간 거주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한 후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 개념에 비 추어 오류가 발생하지

검출을 위한 장치에 대한 그 규모와 초정밀성(발생입자detecting을 위 한 단계별 정밀성 및 컴퓨팅)에 대한 실물 규모를 몸소 느껴봄으로써 현대 입자물리학의

‘화인지법’은 당 이전의 중국인의 서법인 것이다. 원교가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해석은 우리 후인의 몫이다. 원교의 복고적 서론에 대한 조선중 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