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사] 직립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연재기사

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9, No. 4, 2021 …

451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명예교수 hsna@korea.ac.kr

인간이 직립하면서 두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두 손의 운동영역이 넓어졌으며 두발만으로 몸을 지탱하 기위해 자세나 균형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이 크게 변했습 니다. 손의 정교한 움직임은 지능의 발달로 이어졌고, 말 을 하기 위한 구강 구조와 언어중추가 구축되는 등 하드웨 어와 소프트웨어의 공진화를 통해 현존하는 인간의 뇌에 이르렀습니다.

손의 사용에 의해 가장 크게 변한 뇌 부위는 복잡성을 처리하는 영역인 전전두엽입니다. 500만 년간 뇌의 크기가 3배 커진 반면 전전두엽은 6배 커졌습니다. 전전두엽은 인 간의 인식작용에 깊이 관여하며 창의성을 주도하는 통찰 기능에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인간이 지구를 정복해 현재 의 위치에 이르게 된 동력이 전전두엽에서 비롯됐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닙니다. 손의 사용이 뇌의 중추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 발달에 중요하다는 연구보고를 감안하면, 인공 지능 등 각종기기를 이용해 말로 명령하거나 기기 스스로 일을 하게 하는 등 손을 쓰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인간의 오만이 뇌의 진화를 멈춰버리지 않을까 불안하기 도 합니다.

인간이 직립을 하면서 땅을 향하던 시야가 정면으로 바뀌었습니다. 땅에 있는 먹이를 찾기 바쁜 네발짐승과 는 달리, 직립을 한 인간은 정면에 있는 상대방의 얼굴을 쳐다보게 되었고, 이는 소통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얼 굴 표정은 눈맞춤, 언어와 함께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한 중요한 도구입니다. 안면근육을 이용한 표정으로 내 생각 이나 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은, 과정이 간결하며 전달하려는 정보량에 비해 에너지가 적게 든다는 장점으 로 인해 발전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안

면근육의 수축은 점점 정교해졌고, 얼굴의 털까지 사라지 면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 게 되었습니다.

직립 인간은 네발짐승보다 눈 위치가 높아져서 시야 가 넓으며 시력도 좋습니다. 반면 직립 인간의 후각은 네 발짐승보다 둔합니다. 후각이란 휘발성의 입자를 감지해 정보의 종류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므로, 코가 땅과 가 까이에 있는 네발짐승의 후각이 직립 인간의 후각보다 민 감한 것이 효용성 면에서 맞아 보입니다. 시각이 뛰어나 면 Eagle’s eye 라고 비유하듯 독수리를 포함한 조류는 어마어마한 시각을 갖고 있지만, 후각은 무시해도 될 정 도입니다. 조류의 시각은 좋으면 좋을수록 먹이를 찾기에 유리하지만, 후각은 좋아도 상공에서 맡은 냄새의 위치를 파악하기가 어려워 먹이를 찾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 기 때문입니다.

외계인이 인간을 보면 ‘넘어지기 쉬운 막대사탕’ 같다 고 할 것 같습니다. 키 170센티미터, 어깨 넓이 40센티미터 의 우리 모습은 그들이 보기에 우스꽝스럽고 불안정해 보 일 것이며, 실제로도 우리는 머리가 무거워서 쉽게 넘어지 고 종종 뇌진탕에 빠지기도 합니다.

직립을 하면서 커진 뇌와 머리뼈는 네발짐승과는 달 리 수직으로 척추에 하중을 주고 있습니다. 이에 의한 임 상 질환 중 하나가 ‘척추 디스크’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 하면 디스크는 척추뼈 사이에서 충격을 완화시키는 알파 벳 ‘C’ 자 모양의 연골로, C 자의 열린 부분이 등쪽을 향하 기 때문에 네발짐승은 디스크가 밀려서 신경을 누르는 현 상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문제가 가능하려면, 디스크가 위로 솟구쳐야 하기 때문이죠. 반면 직립 인간은

직립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연재기사

452

무거운 머리의 힘에 의해 디스크가 뒤로 밀리면서 신경을 눌러 통증 등의 감각 이상과 운동 기능 장애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머리는 척추와 함께 무릎과 발목에도 직접 영향 을 줍니다. 네발짐승에서는 무릎과 발목에 가해지는 하중 이 네 다리에 분산되지만, 인간에서는 두 다리에 집중되어 각각의 다리에 2배의 하중이 실리는 셈입니다. 여기에 네 발짐승과는 달리 머리 무게까지 직접 주어지니 우리에게 무릎관절통이 많은 것은 직립에 대한 업보 중 하나입니다.

소화기관도 직립 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네 발짐승은 과식 등으로 소화기관의 부피가 커지면 아래로 처져서 배가 불룩한 모습을 보이지만, 어느 곳 하나 눌리 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직립 인간은 소화 기관의 아래쪽이 골반으로 막혀 있어서 과식을 할 경우 배 가 조금 나오더라도 소화기관 대부분이 아래로 심하게 눌 려서 식후 불편함이나 복통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네발짐승에서는 불가능한 치질(정확하게는 치핵)도 유발시킵니다. 치질은 피가 중력에 의해 항문 주 변의 정맥에 몰려 발생하는 일종의 정맥류로 항문의 위치 상 네발짐승에서는 발생이 불가능합니다.

하지정맥류 또한 직립을 하면서 얻은 질환입니다. 하지 정맥류는 다리에 공급된 피가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맥에 정체되어 있는 상태로, 직립을 하면서 다리는 2개 로 줄고 심장의 높이는 상대적으로 높아져서 나타나는 것 입니다.

네발짐승의 분만통은 인간만큼 심하지 않습니다. 대부 분의 네발짐승은 큰 고통 없이 분만을 하지만, 인간은 직 립 보행에 유리한 작은 골반을 갖게 되면서, 골반과 자궁 의 구조가 출산에 불리해졌고, 정교한 손의 움직임과 언어 등을 위한 뇌 발달로 인해 태아의 머리까지 커지면서 분만 통이 심해졌습니다.

직립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 수지 타산이 맞다고 생각 하시나요? 여러분의 생각이 어떻든 우리는 네 발로 엉금 엉금 기면서 삶을 시작한 뒤 두 발로 힘차게 걷다가 나이 가 더 들면 지팡이로 발의 숫자를 늘리는 운명에 놓여 있 습니다.

<약력>

나흥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1990년 모교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한 이 래, 기초의학인 생리학 연구와 학생 교육에 매진했다. 고 려대학교 우수 강의상인 ‘석탑강의상’을 19회 수상, 2017 년 「중앙일보」가 선정한, 전국 17개 대학 32명의 대학교 수 ‘강의왕’ 중 한 명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케이무크 (KMOOC, 일반인 대상 온라인 공개강좌)에서도 2017년과 2020년 최고의 강의 평가를 받는 등 학생 교육과 함께 과 학의 대중화 작업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한생리학회 이사장, 한국뇌신경과학회 회장, 한국뇌 연구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헌법기관이자 우리나라의 과학정책과 예산을 최종 심의하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 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신경병증성 통증 실험동물모델’에 관한 연구가 독

일 슈프링거Springer 출판사에서 발간한 ‘통증백과사전

Encyclopedia of Pain’에 실렸고, 그의 이름이 세계 3대 인

명사전 ‘마르키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

는 등 연구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기고 있다.